지식의 탄생 -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10인과의 인터뷰
카렌 호른 지음, 안기순.김미란.최다인 옮김, 안기정 감수 / 와이즈베리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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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어릴 때부터 역사나 시사 등 사회적인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대학에서 사회과학을 전공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고, 그 중에서도 자본주의 사회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경제학을 택한 것은 잘한 선택이었다. 그런데 막상 공부를 해보니 사회나 체제보다 그 사회를 구성하는 '인물'이 더 재밌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제학을 예로 들면, 경제학 이론을 만들어낸 학자나 경제 정책을 채택하는 지도자, 정부 관료들. 이 사람은 어떻게 이런 경제학 이론을 생각하게 되었을까? 어떤 성격을 가졌고, 가정환경이나 교육환경은 어땠기에 이런 정책을 지지했을까? 기회가 된다면 한번 자세히 알아보고 싶었다.


그런데 나보다 먼저 이런 접근을 한 사람이 있었다. 바로 독일의 경제학자이자 저널리스트인 카렌 호른. 그의 저서 <지식의 탄생>이 바로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10인을 대상으로 저명한 경제학자들의 성장과정과 가정환경, 학습 경로 등을 심층적으로 파고들며, 학자의 개인적인 특성과 학문 간의 연관성을 찾아낸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전부터 내가 알아보고 싶었던 내용을 먼저 연구한 학자가 있을 줄이야...!! 한 발 늦었다는 생각에 마음이 아프기도 하지만(!), 인터뷰 대상인 학자들의 면모도 화려하고 인터뷰 내용도 알차서, 이 책을 직접 '만들' 수는 없었지만 '만날' 수 있었다는 사실에 감사하기로 했다. (^^)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인터뷰에 응한 10명의 학자들 한명 한명의 면모가 참 화려하다는 것. 그야 전원 세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들이니 화려하지 않을 수가 없기는 하다. 그렇지만, 세계적인 경제학 교과서의 저자이자 현대 경제학의 아버지 폴 새뮤얼슨, '불가능성의 정리'를 만든 애로, 공공 선택 이론의 뷰캐넌, 성장 이론의 대가 솔로 등 경제학 원론, 또는 미시, 거시 경제학 시간에 배웠던(그리고 덕분에 시험 기간에 골치 깨나 아팠던) 인물들을 이렇게 또 다시 한 권의 책을 통해 다시 만나게 될 줄이야! 하지만 학교 다닐 때는 어렵게만 느껴졌던 학자들과 그들의 이론이 이번에는 전과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이유가 뭘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론을 이론 그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이론을 생각해내기까지 그들이 어떤 인생을 살았고, 당시 사회적 환경이 어떠했으며, 어떤 학자들과 교류하고, 그 후에는 어떤 이론으로 발전시켰는지 등 주변지식과 함께 봐서 그런 것 같다.


재밌게도, 학자들의 상당수가 경제학을 전공하기 전까지 경제학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고, 집에서 경제에 대한 대화를 한 적도 별로 없으며, 심지어는 애초부터 경제학을 전공하겠다고 마음을 먹고 대학에 진학하거나 학위 과정을 한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새뮤얼슨의 경우, 지금은 '시카고 학파'라고 불릴 만큼 경제학계 내에서 큰 조류를 형성하고 있는 시카고 대학에 진학한 이유를 그저 '집에서 가까우니까' 라는 말로 일축했다. (설마 슬램덩크에서 서태웅이 북산고를 택한 이유와 같을 줄이야...) 게다가 그는 대학에 들어가기 전까지 경제학에 관해 알고 있었던 것이라곤 아버지 서재에 있던 하버드 클래식 시리즈에서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을 요약본으로 읽은 것이 전부였다고 한다(p.73). 이런 걸 보면 선행 학습을 한다고 꼭 잘하게 되는 건 아닌 것 같다.

 

또한 학자들 중 상당수는 수학, 통계학을 공부하다가 경제학을 전공하게 되었다고 했지만, 몇 명은 사회적, 정치적인 이슈에 대한 관심으로 경제학을 공부하게 되었다고 했고, 이후에 이런 학문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도 여럿 있었다. 뷰캐넌의 경우 공공 선택이론을 대표하는 학자 답게 정치제도와 민주주의에 대해 관심이 많았는데, 남부 출신이라는 약점과 살면서 받은 사회적 차별로 인해 다수보다는 소수, 강자보다는 약자를 위한 경제학을 연구하게 되었다고 했다.

 

블랙과 애로의 이론을 따른다면 지배적인 다수의 의견을 찾아내어 그 의견을 그저 소수에게 계속 강요하면 됩니다. 나는 바로 그 부분에 반발했어요. 내 가치관에서는 이런 점이 매우 중요합니다. 나는 늘 억압받는 소수에 민감하게 반응하죠.' (pp.162-3)

펠프스 역시 경제학 그 자체를 목적으로 여기지 않고, 사회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여겼다. 그는 자본주의 사회의 성장의 동력을 '다이너미즘'으로 명명하고, 이를 규명하기 위해 지금도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는 다이너미즘 결핍의 사례로 이탈리아를 제시했는데, 그의 설명을 읽어보니 이탈리아가 아니라 우리나라 얘기 같아서 안타까웠다. 대학을 나와 직장에 들어가고 결혼한 뒤 정해진 나이에 은퇴하는 - 이런 정해진 경로대로 사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사회를 과연 건강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깊이 반성해 볼 일이다.

 

무기력과 직장 내 무능력, 그리고 서른 다섯 살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결혼해서 쉰다섯 살에 직장에서 은퇴할 때까지 학수고대하며 기다리는 이탈리아 젊은이들의 얼굴에 비친 공허함을 엿볼 수 있었지요. 그래서 나는 다이너미즘 결핍에 시달리는 이탈리아를 비판하기 시작했고, 그 문제의 근원을 알아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p.404)

 

새뮤얼슨은 또한 '앞으로 경제 이론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예전에는 하버드 경영대학원을 나오면 직장을 잡고 나이를 먹으면서 승진하고 명예롭게 은퇴하는 것이 당연했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아요. 이는 기업 지배 구조 실패의 주된 원인입니다. 회사는 엉망이 되든 말든 한몫 잡아 웃으며 빠져나가는 경우가 생기는 거죠.(p.90) 

라고 대답했는데, 요즘도 심심찮게 들리는 - 부실 경영, 뇌물 수수 등으로 조직뿐 아니라 사회 전체에도 큰 물의를 일으키고도 제 한 몸과 재산 챙기기에 급급한 사회 지도층들에 대한 뉴스가 떠올라 마음이 아팠다. 이것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제도적인 문제이고, 전 세계에서 공통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이라면 해결할 방법은 무엇일까. 정말이지, 이렇게 보면 경제학자라는 직업은 아무리 사회가 발전하고 나라가 잘 살게 되어도 수요가 풍부한 직업인 것 같다. (실제로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경제학을 전공했거나 경제학에 관심이 많고, 원론 이상의 지식을 가지고 계신 분이라면 지식이 더욱 풍부해지는 것을 느끼면서, 한장 한장 즐기면서 읽을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경제학에 대해 잘 모르는 분이라도 어떤 가정환경과 교육환경에서 지식인이 만들어지고 지식이 형성되는지 알 수 있는 책인만큼 꼭 읽어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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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든 행복
레오 보만스 엮음, 노지양 옮김, 서은국 감수 / 흐름출판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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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근사한 책 한 권을 만났다. 제목도 근사한, <세상 모든 행복>. 보통 책 한 권 크기에 비해 상당히 크고, 두께도 두꺼워서 두 권, 세권에 가깝지만... ^^;; (다른 책과 비교해보니 무게감, 부피감이 여실히 느껴진다...) 다 읽고나서 보니 책의 두툼한 두께만큼이나 내 마음의 두께도, 그리고 행복의 무게도 좀 더 늘어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 책은 저자 레오 보만스가 '행복이란 무엇일까' 고민한 끝에 전세계 행복학 권위자 100명에게 연락을 취하고 그 중 50명을 선별하여 행복에 관한 과학적, 실증적 연구를 집대성하여 만든 '글로벌 프로젝트'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요즘 책을 읽을 때마다 드는 생각인데, 도대체 작가들은 어디서 이렇게 기발한 아이디어를 얻고, 또 행동으로 옮기는 것일까? 덕분에 이렇게 방 안에 가만히 앉아서 조금만 시간을 들여도 귀한 지혜들을 얻을 수 있으니 감사하고 또 감사할 뿐이다.


이 책은 또한 유럽연합(EU) 상임의장 헤르만 반 롬푀이가 세계 200여개국 정상들에게 선물한 책으로 알려져 더욱 화제가 되었다. 이 책을 읽고 각국의 지도자들이 국민들을, 그리고 세계를 좀 더 행복하게 만들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담았을 그의 마음이 참 애틋했다.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 독일의 메르켈 총리가, 프랑스의 사르코지 대통령이, 그리고 대한민국의 이명박 대통령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고 상상했겠지? 그의 바람대로 그들이 이 책을 정말 읽었는지 궁금하다. (그렇다면 세상이 곧 더욱 행복해질테니 기다려보자)


본문을 보면 <세상 모든 행복>이라는 예쁜 제목대로 세상의 모든 행복에 관한 학자들의 연구 결과가 실려 있다. 신기하게도 저마다 다른 나라, 다른 환경에서 사는 학자들인데도 연구 결과의 핵심은 조금씩 비슷했다. 소득과 행복이 비례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 가족과 연인 등 인간 관계에서 오는 행복이 크다는 것, 행복을 멀리서 찾지 말고 일상에서 찾으라는 것 등 이미 잘 알고 있는 (그러나 실천은 하기 어려운ㅠ ㅠ) 내용들도 있었다.

그런데 더욱 신기한 것은 그 결론까지 다다르는 과정은 학자마다, 나라마다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어떤 학자는 조국이 비록 가난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며 행복을 연구했고, 어떤 학자는 잘 사는 나라에 살면서도 행복을 느끼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비교하는 식으로 행복에 대해 연구했다. 또 기독교 문명에 기초한 국가들과 중국 등 유교권, 이슬람권 국가들의 관점이 조금씩 다른 것도 재미있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행복해지기를 원하지만 각자 처한 환경마다, 그리고 역사적 배경에 따라 원하는 내용은 조금씩 다를 수도 있다니. 반대로 그렇게 다른 사람들이 모두 하나같이 행복해지기를 원한다는 것도 재밌다.


책을 읽으면서 나도 행복이란 뭘까, 생각해봤다. 불행하냐고 묻는다면 그렇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행복하다고 가슴을 펴고 말할 만큼은 아닌 것 같다. 행복하다고 말하면 지금 당장 즐겁고 기쁜 일들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는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 내지는 불안 등등 부정적인 생각이 먼저 들기도 한다. 그런데 얼마 전 어느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이런 말을 들었던 게 생각이 났다. 자세히 기억은 안 나지만, 사람은 생각과 느낌, 즉 이성과 감성이 적절하게 균형이 맞아야 하는데, 너무 생각만 하거나, 너무 느낌에만 충실하면 밸런스가 무너져서 정신적으로, 심하게는 몸까지 망가뜨릴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 말을 듣고 어쩌면 내가 행복하다고 자신있게 말하지 못하는 것은, 행복을 너무 머리로만 '생각'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맛있는 음식을 먹었을 때, 샤워 후 좋은 향이 나는 로션을 바를 때, 하루 일과를 마치고 마음 편히 침대에 누워 좋아하는 책을 읽을 때 등등... 그 때 그 때의 짧은 순간에 스치고 지나가는 느낌, 바로 그 느낌이 곧 행복인데 말이다.

 

그러고보면 이 책을 읽기 전부터 나는 이미 행복한 사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다만 그것을 인식하지 못했을뿐. 책에 실린 이 사진 한 장처럼, 의식도 하지 못한채 지나쳐버렸을 빛 한 조각이 내 손짓 하나에 태양보다 밝은 빛이 되듯이 내 마음에 떠다니는 느낌 하나하나가 내가 인식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 행복도 되고 불행도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소중한 교훈을 알려준 고마운 책 <세상 모든 행복>.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날 등 행복을 느낄 기회가 더 많은 오월인데, 이 책에서 얻은 행복에 대한 교훈을 (이번에야 말로) 생활 속에서 꼭 실천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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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 무엇이 가치를 결정하는가
마이클 샌델 지음, 안기순 옮김, 김선욱 감수 / 와이즈베리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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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모 기업 총수 일가의 상속분쟁에 대한 보도가 있었다. 보도에 대한 반응 중에는 아무리 사회적으로 영향력이 큰 대기업 총수의 일이라도 사적인 일을 이렇게 공적으로 크게 보도할 것까지 있느냐는 부정적인 의견이 우세했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마치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보이는 대기업 총수도 보통 서민들과 다름 없이 가족 때문에, 형제 때문에, 돈 때문에 고민을 한다는 것이 놀랍다는 반응도 있었다. 아니, 그 어마어마한 재산으로도 살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고 내심 위안이 되었다고 해야 할까.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 마이클 샌델 교수가 이런 사정을 알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그의 신작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 간접적인 대답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마이클 샌델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정의란 무엇인가>로 대한민국에 이른바 '정의' 신드롬을 불러 일으키며 인문학서로는 드물게 오랜기간 베스트셀러 1위 자리에 머물며 큰 사랑을 받은 저자이자 하버드 대학의 교수이다. 그의 신작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은 '정의' 논쟁의 틀은 유지하되 과녁을 '시장 경제'로 옮겨서 쓴 책이다. 시대가 시대인만큼 경제에 대한 코멘트를 하지 않을 수 없다는 마음에 이 책을 쓴 것일까 하고 봤더니,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언급한 사례(유치원에서 지각하는 부모들에게 벌금을 물리는 제도를 실시한 결과 오히려 지각하는 경우가 늘었다는 유인설계의 오류 사례 등)를 다시 거론할 만큼 예전부터 경제학에 대한 고민을 해 오신 모양이다. (<정의란 무엇인가>를 설렁설렁 읽어서 놓친 것일까? 이번에 다시 찬찬히 읽어봐야겠다.)

 

책의 초반부에는 시장경제의 논리가 끼어들 틈이 없어 보였던 도덕적, 공적 담론에 경제 논리가 파고든 사례가 다수 소개되어 있다. 탄소배출권, 기여입학제, 놀이공원 예약제도 등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져 있고 이미 실시 중인 사례도 있는 반면, 이민권, 렉서스 차로, 대리 줄서기 사업 등 아직 낯선 사례들도 있었다. 아무래도 미국이 자본주의의 역사가 우리나라보다 더 길기 때문에 공적 영역에 경제 논리가 파고든 사례가 더 많은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러고보니 어제 뉴스에 조만간 버스 지정좌석제가 실시된다는 보도가 나왔는데 이것도 비슷한 사례로 볼 수 있을까?)

 

이렇게 더 많은 비용을 부담하는 자에게 더 많은 이익이 돌아가는 시장 경제의 논리는 언뜻 매우 합리적이고 효율적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더 많이 가진 자들이 더 많이 누리는 이러한 시스템이 사회적 형평성에도 기여할 수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부유층 비율이 높은 지역의 명문대 진학률이 갈수록 더 높아지고 있다는 보도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부유할수록 사교육의 수혜를 더 많이 받는 반면 가난한 집에서는 사교육에 접근조차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개천에서 용 나는' 일은 갈수록 더 줄어들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돈이 있어도 살 수 없었던 것을 살 수 있게 된다고 해서 효용이 늘어날까? 저자는 아니라고 대답한다. 노벨상, 오스카상을 돈을 주고 살 수 있게 된다면 상의 권위는 추락할 것이다. 친구에게 선물 대신 현금을 주면 효율성은 높아질지 몰라도 친구 간의 우정이 커지기는커녕, 오히려 불쾌감을 주어 우정이 식을 수도 있다. 돈으로 교육을 사는 - 사교육의 열기가 전보다 높아졌다고 해서 개인이 더 행복해진 것도 아니요, 사회의 총효용이 더 높아진 것도 아니라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세상에는 돈으로 살 수 있는 것보다 살 수 없는 것, 아니 돈으로 사고 싶지 않은 것도 많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경제적 가치로 환산하고, 사랑도, 우정도, 행복도 모두 돈으로 살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현실은 비통하기 그지 없다. <정의란 무엇인가>가 대한민국에 '정의' 열풍을 불러일으켜 남녀노소 누구나 '정의란 무엇인지' 고민하게 만들었던 것처럼,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또한 우리 시대 경제의 역할과 진정한 가치란 무엇인지 다시 한번 고민하게끔 만드는 열풍을 일으켰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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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은 정의로운가 - 서울대 이정전 교수의 경제 정의론 강의
이정전 지음 / 김영사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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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추기라도 한듯이, 최근에 읽은 책마다 마이클 샌델, 그리고 그의 저작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언급이나 인용이 나왔다. 그것도 각각 저자도, 장르도 다른 책이었는데. 지난해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구었던 <정의란 무엇인가> 열풍의 여세가 아직도 가시지 않은 걸까.

 

<시장은 정의로운가>. 이 책에서도 <정의란 무엇인가>의 흔적을 느낄 수 있었다. 일단 제목에 '정의'라는 단어가 그렇고, 책의 한 부분을 인용한 대목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정의란 무엇인가>의 연장선상에 있는 책이냐고 하면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정의에 관한 책이라는 점에서는 동일하지만, <정의란>이 학문상 도덕철학의 관점에서 쓴 책이라면, <시장은 정의로운가>는 전적으로 경제학적인 관점에서 쓰인 책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의란>을 읽을 엄두가 안 나는 사람, 또는 강연 동연상만 보고 책 읽기는 미뤄둔 (혹은 나처럼 포기한) 사람이라도 충분히 쉽게 읽을 수 있다. 경제학이 무엇인가. 추상적이고 형이상학적인 개념들을 여러번 반추해도 겨우 이해할까 말까한 철학과 달리, 경제학은 누구나 본능적으로 알고 있거나 경험상 체득된 지식만 활용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학문이 아닌가.

 

앞서 고백했듯이 나는 <정의란> 강연 동영상만 보고 책은 읽다가 말았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강연을 볼 때 어렵고 막연하게 느껴졌던 주제들을 더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예를 들면 '정의'란 대체 무엇인가. 마이클 샌델 교수는 소크라테스식 문답법으로 강연을 진행하는 분인만큼 강연의 주제인 '정의'의 개념에 대해서도 명확하게 '정의' 내리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강연을 보고 정의란 무엇인지 한동안 깊은 고민에 빠졌었고, 책에서도 답을 찾을 수 없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답을 얻을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원칙'이다.

 

경제학은 흔히 '상호이익'을 추구하는 학문이라고 말한다. 무역에서도 비교우위를 추구하고, 개인의 선택은 비용은 최소화하고 이익은 극대화한, 합리적인 것이며, 그러한 개인들의 이익의 합을 더한 것이 사회의 이익이기 때문에 사회의 이익, 즉 공익은 언제나 최적의 상태에 있다고 본다. 그러나 현실이 어디 그러한가. 하루에도 수없이 이익보다는 손해를 보고, 심지어는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실수나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 인간이다.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고, 사회생활도 똑같다. 모든 사람이 이익을 얻는 '윈-윈'이라는 개념은 학문상에나 존재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이런 세상에 시비를 가리고 당부당을 밝혀줄 원칙, 즉 정의가 없으면 손해본 자, 약자의 설 자리는 더욱 좁아질 것이다.

 

비록 경제 민주화나 경제 정의가 피할 수 없는 대세라고 하더라도 그 구체적 내용에 관해서는 마뜩찮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이제 과거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시대적 상황이 우리 앞에 펼쳐지고 있다는 점이다. 경쟁보다는 협동이 더 중요해지고, 효율성이나 생산성보다는 사회적 통합이 더 중요해지는 시대가 오고 있다. 이제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있는 시대는 저물고 있다. (p.302)

 

출판계, 학계의 여러 인사들이 분석한 것처럼, <정의란 무엇인가>가 인문서로서는 유례 없이 인기를 끈 것은 정의에 대한 대한민국 국민들의 갈망 또는 갈증이 컸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생각해보면 나 역시 세상이 변해도 흔들리지 않는 원칙이나 신념을 원했고, 그 때 만난 것이 경제학이라는 학문이었기 때문에 공부하기 시작한 것이 아닌가 싶다. 여느 사회과학의 학문들과 다르게, 효율성, 비용편익 등 경제학의 개념을 활용하여 대상을 분명하게 판단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법은 나라에 따라, 체제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지만, 그에 비해 경제학은 환경의 영향도 받지 않는다는 점도 좋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희생을 감수하는 판단이 필요하고, 한정된 자원을 분배하는 결정을 내려야 할 때에는 경제학이 장점보다 단점이 더 많은 학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경제학적인 마인드로만 생각해서는 라가디아 판사처럼 눈이 아닌 가슴을 울리는 판결을 내릴 수 없다. (p.43 노인과 명판사)

 

한창 이슈화되어 있는 '정의'라는 개념을 경제학과 결합하여 쉽고 재밌게 풀어쓴 점이 좋았고, 거기에 현재 대한민국에서 논의되고 있는 문제들과도 접목시켜 설명한 점이 참 좋았다. 인문학과 경제학을 함께 다룬 책들을 보면 논의가 어느 한 쪽에만 치우쳐서 아쉬운 때가 많았는데, 이 책은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것 같아서 만족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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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단식 - 머리를 쓰지 않고 발로 뛰지 않는 IT 중독을 벗어나라
엔도 이사오 & 야마모토 다카아키 지음, 김정환 옮김 / 와이즈베리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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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시대에 책을 좋아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예전엔 취미가 뭐냐고 물으면 가장 흔한 대답이 음악감상, 그리고 독서였다. 하지만 요즘은 책 읽기를 좋아한다고 말하면 이상한 사람까지는 아니라도 별난 사람, 신기한 사람 취급을 받는다. 그도 그럴 것이, 예전에는 지하철이나 버스 안에서, 또는 카페 안에서도 책을 읽는 사람을 쉽게 볼 수 있었는데, 이제는 스마트폰으로 SNS서비스 대화에 열을 올리거나, 정신없이 게임을 하거나, 동영상을 보는 사람들을 훨씬 자주 마주친다. 그런 사람들 속에서 지극히 아날로그 적인 매체인 책을 읽고 있노라면 시대에 발맞춰가지는 못할 망정 뒤처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두려움과 고독감이 든다.

 

 

그렇다면 디지털 시대에 일을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하지만 최근에는 인터넷 중독, 게임 중독, 스마트폰 중독 등 디지털 시대의 부작용이 늘어나면서 디지털 기기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반성과 자기점검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경영 전략의 세계적 석학 엔도 이사오 교수와 IT업계 CEO인 야마모토 다카아키가 쓴 <디지털 단식>가 바로 그러한 책이다.


나는 처음에 저자가 다름아닌 IT업계 CEO라는 점이 너무나도 놀라웠다. 이 책은 문제의식 면에서 보면 얼마 전에 읽은 <로그아웃에 도전한 우리의 겨울>과 비슷한데, 그 책은 저자가 호주의 언론인이고 디지털 기기에 중독된 세 청소년의 어머니였기 때문에 충분히 고민할만한 내용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IT업계 CEO라면 누구보다도 디지털 기술을 사랑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IT 기술, IT 기기를 보급하기 위해 힘쓰는 사람이어야 할텐데, 되레 '디지털 기기로부터 멀어져라', '디지털 단식하라'고 주장한다는 건, 업계에서 미운털이 박히는 것은 물론이요, 자기 밥그릇마저 위태해질 얘기 아닌가.


그러나 책을 읽으면서 왜 IT업계의 CEO임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이 책을 썼는지 이해가 되었다. IT업계 종사자임에 앞서 한 조직의 CEO로서, IT 중독으로 인해 정보와 커뮤니케이션이 전에 없이 폭발적으로 늘어나 인간의 처리 능력을 넘어섰고, 그로 인해 현장에서 직접 눈으로 보고 사람들을 만나며 보내는 아날로그 시간이 격감했으며, 이로 인해 조직의 효율성이 하락하고 창조성이 약화되어, 분명히 전보다 더 많은 시간을 업무에 할애하고 있음에도 조직의 성과는 늘어나지 않는, '이유 없이 바쁜 상태'가 만연한 것을 목격한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세계적인 경영 석학 엔도 이사오의 도움을 받아 개인뿐 아니라 조직이 디지털 중독에서 벗어나 효율성과 창의성을 높일 수 있도록 일종의 '처방전'을 모색했다.

 


업무 시간에 상사 몰래 컴퓨터, 스마트폰만 들여다본다면 - 이제 디지털 단식 하라


90년대에는 컴퓨터, 21세기에는 휴대폰, 스마트폰 등 최신형 IT기기가 등장할 때마다 기업에서는 앞다투어 직원들에게 기기를 보급하고 조직의 성과가 향상될 것을 기대했다. 하지만 어떤가. 좋은 점도 분명 있지만, 컴퓨터로, 휴대폰, 스마트폰으로 업무와 상관없는 일을 하면서 업무시간을 때우는 '월급 도둑'도 늘어났다. 직장인 입장에서도 하루에도 수십 건의 이메일을 확인하고 '질보다 양'으로 승부하는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만드느라 정작 '일다운 일'은 못한다는 생각에 불안감이 클 것이다. 현장에서 뛰며 직접 배우는 것보다 인터넷, IT기술을 다루는 것에 더 익숙한 신입사원이 늘어날 수록 이러한 고민은 커질 것이다. 듣자하니 요즘 신입사원 중에는 상사가 어떤 자료를 찾아오라고 하면 정말 그 자료를 인터넷에서 '찾아오기'만 하고, 그 자료가 어떤 결론을 담고 있고, 업무에는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 등을 '생각해오지'는 않는 사람이 많아서 조직에서 애를 먹고 있다고 한다.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 선배로부터의 교훈, 스스로 문제를 찾고, 해답을 찾기 위해 고민하는 힘... 어쩌면 디지털 기술이 가져온 해악이 효용을 넘어서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디지털 중독 등 디지털 기기의 폐해를 다룬 책들 중에서도 이 책은 직장, 기업의 업무방식에 대해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으며, 입사원, 중간관리자, CEO 등 조직내 지위에 따라 어떤 문제 현상을 일으키기 쉽고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 나누어 설명되어 있어서 디지털 기기로 인한 업무 스트레스를 안고 있는 직장인, CEO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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