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하게 제압하라 - 남자 직원들이 당신을 미치게 할 때
페터 모들러 지음, 배명자 옮김 / 리더스북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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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요즘 뒤늦게 <더 지니어스>에 빠졌다. 매 게임마다 참가자들이 저마다 다른 능력과 재주를 활용하여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모습도 볼거리지만, 대부분의 게임이 참가자들의 협력과 연합, 또는 대립과 갈등 관계를 요하는 것이다보니 그들 간의 커뮤니케이션 방식 또는 리더십, 팔로어십을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특히 남성 참가자들과 여성 참가자들의 커뮤니케이션 방식 차이가 뚜렷하게 보이는 점이 재미있다. 매 게임에서 문제 해결을 주도하는 리더를 맡는 사람은 남성이 압도적으로 많다. 남성 참가자들은 기본적으로 나이와 경력, 지식과 능력 등을 바탕으로 서열을 정한 다음에 게임을 임하며, 대놓고 비난을 하거나 의견을 묵살하는 식으로 대립이나 갈등 관계를 형성하는 것도 불사한다. 반면 여성 참가자들은 튀는 행동을 자제한다. 나이가 많고, 직업상 선배라도 서열을 정하지 않는다. 게임을 하다보면 어쩔 수 없이 대립이나 갈등 관계가 생기는데, 그 때마다 반드시 뒷자리에서 '미안하다', '진심이 아니다' 라고 달랜다. 다들 오랫동안 사회생활을 한 사람들인데 남성은 남성대로, 여성은 여성대로 서로 다른 방식의 커뮤니케이션, 인간관계를 고수한다는 점이 신기한 한편, 불편하게 느껴졌다. 만약 저것이 TV 속 게임이 아니라 직장생활이라면, 그것도 남성 위주의 직장이라면, 남성들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여성들이 어떻게 직장 내 '유리 천장'을 뚫고 성공할 수 있을까?



<오만하게 제압하라>의 저자 페터 모들러는 남성과 여성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은 근본적으로 다르며, 남성 위주의 사회에서 살아남고 싶은 여성들은 반드시 남성의 커뮤니케이션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시대가 바뀌었다는 이야기가 나온 지 오래지만, 능력이 있음에도 그것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는 여성들은 여전히 많다. 대부분 이유는 하나다. 업무 능력이 뛰어난 여성이라도 의사관철 능력에 있어서는 확실히 남성들을 따라잡기 어려운 것이다." (p.6) 여성은 선천적으로 '관계'를 중시하는 반면 남성은 '지위'를 중시한다. 아이들만 봐도, 여자아이들은 가장 친한 친구 한 명 또는 소규모로 노는 것을 좋아하고, 이야기, 특히 비밀 이야기를 하는 것을 좋아한다. 대장 노릇을 하거나 잘난 척 하는 아이는 미움을 받기 쉽다. 반면 남자아이들은 크게 무리를 지어 노는 경우가 많고, 대장과 부하를 가리며 서열을 정하기를 좋아한다. 놀이 방식도 영웅놀이나 몸싸움 등 경쟁하는 것이 많다. (p.110) 여성이 남성 중심의 조직에서 일한다는 것은 여자아이가 남자아이 무리에 끼어들어 칼싸움을 하도록 내던져진 것과 마찬가지다. 소꿉놀이가 익숙해도, 칼싸움을 하는 무리에 들어가면 칼싸움을 하는 방법을 익혀야 하는 법. 남성 중심의 조직에 들어간 여자라면 남성의 규칙, 남성의 커뮤니케이션을 익혀야 한다.



그렇다면 남성의 커뮤니케이션은 어떤 특징이 있을까? 저자는 여러 가지를 제시했는데, 그 중에서 나는 '서열'과 '지위'라는 단어가 인상적이었다. 여성들은 보통 나이나 지위 고하에 관계없이 평등하고 협력적인 관계를 유지하려고 하는데, 남성들은 그렇지 않다. 처음 만나면 자신의 나이와 직업, 직장, 직급 등 지위를 밝히고, 연장자, 선후배 순으로 서열을 정한다. 그러므로 남성과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여성은 이 사실을 반드시 명심하여 자신이 그 사람보다 연장자인지, 상사인지 부하인지 등을 정하고, 그에 맞게 행동하면 편하다. 또한 여성들은 많이 웃고 대화를 많이 하는 것이 인간관계에 좋은 영향을 줄 것이라고 믿지만, 남성들은 그렇지 않다. 표정은 진지하고 엄숙하게, 말은 가급적 아끼고, 이따금씩 화가 나면 말을 쏟아내는 대신 침묵하는 편이 남자로 하여금 위압감을 느끼고 여자를 존중하게 만든다. 지위에 맞는 태도와 자세, 외모, 이미지 관리를 하는 것도 중요하다. <직장의 신>의 미스 김처럼 언제나 꼿꼿하고 도도한 자세를 유지하고, 단정하고 깔끔한 정장 차림과 완벽한 화장을 고수하며, 엄마나 누나처럼 굴지 않고 철저히 일적으로 상대하면 직장 생활을 같이 하는 남자들에게 결코 만만하게 보이지 않을 것이다.



비써 박사(여자 상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남자 부하)를 빤히 보고만 있었다. 그런 다음 어쩔 줄 모르고 서 있는 조교(그)에게 아주 짧고 직접적인 질문 몇 가지를 던졌다. "지난 한 주 동안 어디 있었지? 왜 내게 결근한다고 보고하지 않았나? 어째서 항상 다른 사람들이 그쪽 일을 대신해야 하는 거지?" 질문이 끝날 때마다 조교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쩔쩔맸고, 그러는 동안 둘 사이에 흐르는 불편하고 긴 침묵을 비써 박사는 아주 잘 참아냈다. (중략) 이 광경을 지켜본 다른 여성 세미나 참가자들의 반응은 회의적이었다. "너무 심한 거 아니에요?" 그녀들은 비써 박사의 무례한 태도가 조교에게 불쾌감을 주었을 거라며 걱정을 했다. 그래서 나는 메르코브(남자 부하) 역할을 했던 스파링파트너에게 기분이 어땠는지를 물었다. (중략) "기분 나쁠 건 없었어요. 자존심이 상하지도 않았고요." 비써 박사가 그렇게 심하게 대했는데 어째서 그는 자존심이 상하지 않았을까? "상사잖아요." 그는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상대방이 상사였기 때문에 자존심이 전혀 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pp.26-7)



저자의 설명이 대체로 맞지만, 가족관계나 성장 환경, 가치관 등으로 인해 여성화(!)된 남성들도 많아서 매사에 적용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남성 커뮤니케이션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큰 것은 사실이지만, 교육, 패션, 코스메틱 등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은 직종도 늘고 있는 추세이고, 여성 커뮤니케이션의 장점을 받아들이려고 하는 개인 또는 조직도 많다. <더 지니어스> 중, 후반부를 보면 서열과 지위 위주로 게임을 진행하던 참가자들이 서열 붕괴, 지위 상실로 인해 급격히 세력을 잃고 탈락하는 일이 발생하는데, 이런 것만 보아도 남성 커뮤니케이션의 한계는 분명히 존재한다. 여성이라면 맹목적으로 남성 커뮤니케이션의 장점만 수용할 것이 아니라, 남성 커뮤니케이션의 장점과 함께 여성 커뮤니케이션 기술도 익혀서 보완적으로 활용하면 좋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직장보다도 실생활에서 이 책을 통해 배운 지혜를 활용해 보려고 한다. 가끔 이유 없이 화를 내거나 시비를 거는 것처럼 말하는 남자(특히 남자 어르신 중에 많다)들을 대하게 될 때가 있는데, 그 때는 내가 뭘 잘못해서, 나를 싫어해서 그런 것 같다고 속상해 하지 말고, 약해보이는 상대의 우위를 점하고 싶어하는, 지극히 전형적인 남성 커뮤니케이션이라고 이해하면서 슬기롭게 넘기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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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미루지 마라 - 하버드대 긍정심리학 보고서
탈 벤 샤하르 지음, 권오열 옮김 / 와이즈베리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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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시간을 울리는 호각이 울리자 모든 직원이 식사를 하기 위해 자리에 앉았다. 샘은 여느 날처럼 도시락을 열고는 투덜대기 시작했다. "제기랄! 또 땅콩버터와 잼 샌드위치야. 정말 진력 나!" 그는 하루도 안 거르고 그놈의 땅콩버터와 잼을 바른 샌드위치에 대해 불평을 해댔다. 보다 못한 동료가 드디어 한마디 했다. "이봐, 샘, 그게 그렇게 싫으면 부인한테 다를 걸로 만들어 달라면 되지 않나?" "모르는 소리 말게," 샘이 대답했다. "난 결혼 안 했어. 샌드위치는 내가 직접 만든다고." (p.12)



내 책상 앞에는 이런 글귀가 쓰여있다. "행복은 추구의 대상이 아니라 발견의 대상이다." 행복해지기 위해 뭔가를 하는 것이 아니라, 뭔가를 하고 있는 그 속에서 행복을 찾으라는 말인 것 같다. 하버드대 긍정심리학 보고서 <행복을 미루지 마라>는 이렇게 일상 속에서, 내 삶 속에서 행복을 찾는 방법에 대해 설명하는 책이다. 저자 탈 벤 샤하르는 하버드대학교에서 철학 및 심리학을 전공했고, 현재 하버드대학교에서 <행복>이라는 제목의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 수업은 몇 년 전 우리나라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책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와 예일대 셸리 케이건 교수의 <죽음>과 함께 아이비리그 3대 명강의로 꼽힌다고 한다. 



긍정심리학과 행복학에 관한 책이 너무 많아서 이 책도 비슷한 책일 줄 알았는데 읽어보니 그렇지 않았고, 오히려 긍정과 행복을 재정의한 점이 인상적이었다. 일부 자기계발 전문가들이나 긍정심리학자들은 특별한 비법만 알면 성공과 행복을 손에 넣을 수 있고, 긍정이라는 것도 무조건 현실을 긍정하는 것으로 왜곡하여 설명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저자는 '진정한 긍정'은 어려움, 불만족, 절망, 불행 같은 고통이 끊이지 않는 현실을 직시하고 피할 수 없음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러한 설명은 긍정심리학의 대척점에 있는 비관주의, 냉소주의와 다름 없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고통을 직시한 다음 절망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소소한 행복들을 발견하는 기쁨을 누리라는 것이 확연히 다르다.



"우리는 컵의 비어 있는 부분에 너무 집착해 우리 일상 속에 점점이 박혀 있는 작지만 위대한 보물들을 놓치는 경우가 너무 많다. 온갖 어려움과 실망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는 여전히 기념할 만한 것이 많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종종 일종의 모닝콜이나 관점의 전환이 필요하다. 그 계기는 우리의 수호천사가 마련해 줄 수도 있고, 어떤 영감에 의해 스스로 눈을 뜰 수도 있다. 지금 당장 내가 기념할 만한 것은 무엇인가? 내 인생의 긍정적인 측면, 보물, 컵의 차 있는 부분에 주목할 때, 무엇이 보이는가?" (p.149)



이 책의 또다른 장점은 저자 자신이 직접 경험한 사례가 많이 제시되어 있다는 점이다. 영국 유학 시절 학년 중에서 유일하게 제적당했으나 그 덕분에 컨설턴트로 활동하는 기회를 잡을 수 있었고, 박사 과정 3년째 되던 해에는 어려운 자격시험을 앞두고 극도의 스트레스에 시달렸으나 그 덕분에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을 수용하는 법을 배웠다. 최근에는 딸과의 즐거운 추억이 담긴 사진을 아들이 없애는 바람에 화가 머리 끝까지 났으나 잘 참고 침착하게 타이름으로써 분노를 조절하는 법을 배웠다.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사소하고 일상적인 일이지만 이런 일들을 통해 교훈을 얻고 행복을 느끼는 방법을 가르쳐준다는 점이 이 책의 최고 미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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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의 숲에서 경영을 만나다 정진홍의 인문경영 시리즈 1
정진홍 지음 / 21세기북스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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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인문의 숲에서 경영을 만나다>는 인문학과 경영학의 통합을 시도한 시조(始祖) 격인 책이다. 자칭 경제경영 전문 서평 블로거이고 인문학에도 관심이 많은데 왜 이 유명한 책을 이제까지 안 읽었는지 의문이 들기도 했지만, 늦게 읽은 김에 왜 이 책이 '인문경영'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만들며 출판계를 넘어 경영학과 인문학계 전반에 새 바람을 일으킨 것인지 이유를 찾으며 읽어 보았다.



첫째, 인문학과 경영학 사이에서 균형을 잘 잡았다. '인문경영'이 주제인 책들은 크게 두 가지 패턴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인문학을 중심으로 하면서 경영 또는 자기계발의 지혜를 곁들이는 것이다. 보통 인문학을 전공한 학자들이 이런 류의 책을 많이 쓰는데, 너무 어려워서 읽는 것을 포기하고 집어던지기 쉽다. 둘째는 경영학을 중심으로 하되 인문학에서 근거나 사례를 찾는 것이다. 이 책이 여기에 속한다. 저자 정진홍은 대학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했고 커뮤니케이션학으로 박사학위까지 받은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다. 비전공자가 전공자에게도 어려운 인문학과 경영학에 관한 책을 쓰는 것은 모험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저자는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답게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 쉽고 재미있게 글을 썼고, 비전공자인 만큼 핵심만 쉽고 명쾌하게 설명할 수 있다는 점을 살렸다.



둘째, 고전과 최신 트렌드를 잘 조화시켰다. 인문학 중심의 인문경영서를 보면 어렵고 딱딱한 고전을 해석하고 풀이하는 데 그치거나, 저자의 지식을 과시하는 수준에 머문 경우가 많다. 반면 이 책은 중국 고전, 고대 로마 고전, 근대 고전 등 여러 나라, 여러 시대의 고전이 인용되기는 하지만 비중이 그리 크지 않다. 그 대신 빌 게이츠, 잭 웰치, 클린턴 등 현대의 경영인, 직장인들이 존경하는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소개되어 있고, 창의성, 디지털, 스토리 등 최신 트렌드에 대한 설명 비중이 크다. 티핑 포인트, 블루 오션, 드림 소사이어티, 스토리텔링 등 경영학에서 자주 접할 수 있는 용어들도 인문학적으로 설명했다. 고전을 읽기에는 겁이 나고, 최신 트렌드만 알기에는 헛헛하다 하는 사람에게 추천할 만하다.



"내가 가진 레퍼런스의 두께는 곧 나의 두께다. 우리는 자신의 레퍼런스만큼 이 세상을 보고 느끼며 살아간다. 똑같은 영화를 봐도, 똑같은 책을 읽어도, 받아들이는 것은 천차만별이다. 각자의 레퍼런스가 다르기 때문이다. 즉 내가 영화를 보거나, 내가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나의 레퍼런스가 영화를 보고, 책을 읽는다. (중략) 책도 마찬가지다. 그저 다이제스트된 것을 보는 것이 아니라 본인이 직접 읽고 곱씹어야 진짜 내 것이 된다. 그렇게 레퍼런스의 두께를 만들고 나면, 그 두께만큼 세상을 느낄 수 있다. 즉 낯선 곳에 자신을 던져 자기 안의 에너지를 끄집어내는 것이 바로 레퍼런스를 키우는 가장 좋은 방법임을 기억하라." (pp.115-6)



"빈곤은 밥과 돈의 문제이기 이전에 생각과 정신의 문제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빵일지 모르지만 정말 긴요한 것은 '자존감의 회복'이다. 가난한 이들도 중산층들이 흔히 접하는 연주회와 공연, 박물관과 강연 같은 '살아 있는 인문학'을 접하는 과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다. 이는 그런 경험들이 깊이있게 사고하는 법, 현명하게 판단하는 법을 삶 속에서 가르쳐주기 때문이다." (pp.11-2)



셋째, 인문학과 경영학의 통합이라는 시도 그 자체의 가치다. 몇 년 전까지 경영학은 경영학대로 잘 나가고, 인문학은 인문학대로 위기를 맞고 있었다. 이 책을 비롯하여 인문학과 경영학을 조화시킨, 일명 '인문경영서'가 유행하기 시작하면서 경영학은 학문으로서의 역사가 짧다는 약점을 인문학을 통해 보완하고, 인문학은 '인문학의 위기'라는 말이 돌 만큼 심각한 평가절하의 상황에서 경영학 등 신학문과의 만남이라는 새로운 돌파구를 찾을 수 있었다. 돈 안 되는 학문은 거들떠보지 않는 세태 속에서 인문학의 가치를 재발견한 것은 놀라운 일이다. 혹자는 '인문경영'이라는 이름으로 인문학을 재해석하는 것 역시 인문학을 돈벌이의 수단으로 전락시키는 것이라고 비난하기도 하지만, 모든 학문은 인간을 위해 쓰이는 수단이자 도구다. 인문학이 위기를 맞은 것은 인문학 그 자체의 가치가 떨어져서가 아니라 시대의 요구에 맞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책처럼 CEO를 비롯한 경영자, 직장인들을 위해서든, '클레멘트 인문학'처럼 비록 당장 형편은 어렵지만 인문학을 통해 자존감을 높이고 삶의 의미를 재발견하고자 하는 빈곤층을 위해서든 인문학은 앞으로 더 '발견'되고 '발굴'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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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사서 - 3천 년 역사를 이끈 혁신, 전략, 인재, 소통의 비전
김원중 지음 / 민음인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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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휴가 때 경북 영주에 있는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인 소수서원에 다녀왔다. 이곳의 원래 이름은 백운동서원인데, 당시 풍기군수 주세붕이 중국의 백록동서원을 흠모하여 선현을 배향하고 젊은이들을 교육하는 시설을 만든 것이 그 유래라고 한다. '백운(白雲)'이라는 이름이 무색하지 않게 머리 위로 흰구름이 두둥실 떠다니는 모습이 서원의 고즈넉한 분위기와 잘 어울렸다. 서원을 거닐고 있자니 몇백 년 전에 중국의 것을 본따서 우리의 것으로 승화한 주세붕 선생의 정신이 새삼 감동스러웠다. 옛사람들의 좋은 것을 보고 더 좋은 것으로 승화하는 '온고지신'의 자세는 후세 사람들의 귀감이 되기에 충분하다.



'온고지신' 하니 얼마 전에 읽은 책 한 권이 떠올랐다. 바로 고전 전문가 김원중이 쓴 <경영사서>라는 책이다. 저자는 어려서부터 한학을 익히고 성균관대 중문과에서 문학박사를 받은 학자로, 삼성전자, 사법연수원, 경찰청, 전경련, 한양대 등에서 강의하고 현재는 삼성경제연구소에서 고전 강연을 하고 있다. 이 책에서 저자는 <한비자>, <손자병법>, <사기>, <정관정요> 등 중국의 대표적인 고전 네 권을 통해 현대인들이 배울 만한 경영과 처세의 지혜를 소개했다. "오래전부터 고전을 통해 시대의 고민을 풀어 보려는 움직임들은 많았고 현재에도 계속해서 시도되고 있다. 나 또한 지금까지 30여 권의 고전을 펴내면서 수천 년 전에 고민했던 문제들이 오늘날에도 지속되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p.10) 고전 하면 말 그대로 옛사람들이나 보던 옛날 책[古典]으로 여기고 간과하는 경우가 많은데, 저자는 일찍부터 고전의 가치를 깨달아 현대인, 그 중에서도 기업을 운영하는 경영인과 직장인이 익히면 좋을 지혜들을 연구했다. 



저자는 먼저 <한비자>를 통해 리더십에 대해 설명했다. 저자인 한비는 '동양의 마키아벨리'라고 불릴 만큼 현실정치를 중시했다. 그는 공평함과 엄정함으로 신하를 통제하는 것을 좋은 리더십으로 보았다. 개인의 자의적인 판단이 아니라 법을 중심으로 하는 체제, 즉 시스템을 강조했다는 점은 높이 사지만, 진시황과 조조 등 법가를 따른 인물들이 끝내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했다는 점은 후세 사람들이 '반면교사'로 삼을 만하다. <손자병법>을 통해서는 전략 경영의 비법을 설명했다. <손자병법> 하면 흔히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는 말을 떠올리는데, 원전에는 '백전백승'이 아니라 '백전불태'라는 말이 나온다고 한다. '백전불태'란 백 번을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는 뜻으로 결코 승리를 보장하지 않는다. 싸워서 승리하는 것보다는 싸우지 않고 승리하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을 역으로 강조한다고 볼 수 있다. 병법서라서 당연히 싸움에서 이기는 방법에 대한 책인줄로만 알았는데, 오히려 싸우지 않는 방법, 싸우지 않고도 이기는 방법에 대한 책이라니 놀라웠다. 그만큼 싸움의 무의미함, 승리의 무상함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는 뜻이리라. 그렇다면 전쟁도 드물고 물리적인 싸움도 보기 힘든 현대 사회를 본다면 손자가 흐뭇해 할까? 겉만 본다면 몰라도, 자세히 들여다본 다음에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것이다. 하다못해 텔레비전 TV쇼에서마저 경쟁과 대결이 판을 치는 세상이 아닌가. 싸우지 않고도 이기는 것을 으뜸으로 여겼던 손자는 분명 모든 것을 경쟁과 승패로 치환하는 현대 사회를 못마땅해 했을 것이다. 

 


사마천의 <사기>를 통해서는 인재 경영과 처세에 관해 설명했다. 사마천은 왕의 뜻을 거역하는 죄를 저질러 생식기를 거세당하는 궁형을 받았다. 수치스러운 마음에 자살까지 하려고 한 그가 마음을 고쳐먹고 아버지의 유지를 이어받아 완성한 책이 <사기>다. 그래서인지 <사기>에는 '인간의 도리'에 관한 내용이 많다. "춘추 전국 시대에서 한나라에 이르기까지, 격동하는 역사의 흐름 속에서 수많은 부류의 다양한 개성을 가진 인물들의 인생 역정을 살피는 책이 바로 <사기>입니다. 인간이 겪을 수 있는 모든 것들, 가장 극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이 치열하게 고민했던 문제와 사고가 여기에 다 모여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p.197) 인간의 도리 중에서도 인재를 다스리는 방법의 예로 저자는 진나라 시황제를 든다. 진시황은 출신에 상관없이 능력에 따라 인재를 받아들인 것으로 유명하다. 이로 인해 빛을 보지 못하고 있던 다른 나라의 인재들이 너나할 것 없이 진나라를 찾게된 것이고, 초나라 출신의 '이사' 같은 인물이 무려 22년 동안 재상직을 맡으며 수많은 개혁 정책을 펼칠 수 있었던 것이다. 처세에 관해서는 한나라 유방의 부하인 한신과 소하를 살펴보면 좋다. 한신은 유방이 한나라를 세우는 데 큰 공을 세웠으나 처신을 잘못하여 '토사구팽' 당하는 신세가 되었다. 반면 소하는 전쟁터에서 칼 한 번 휘두른 일 없는 문관이지만 처신을 잘하여 일등공신으로 추앙받았다. 지도자, 리더, 상사로서 보다는 직원이나 부하로서 일하는 날이 더 많은 보통의 샐러리맨들이 필히 알아두어야 할 내용이다. 마지막으로 <정관정요>를 통해서는 신뢰의 정치, 소통의 가치, 인문학 육성의 중요성 등을 역설했다.



이 책에 소개된 네 권 모두 수세기 동안 나라의 지도자들에게는 국가를 경영하는 기본 원리가 담긴 책으로서, 관료와 군인들에게는 지도자를 섬기고 백성을 다스리는 실무서로서, 학자들에게는 선현의 지혜가 담긴 교과서로서 전해져왔으며, 이제는 중국을 넘어 동양과 서양 모두에서 인류의 고전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책을 읽기 전까지만 해도 네 권 중에 단 한 권도 제대로 읽어본 책이 없어서 잘 읽을 수 있을까,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는데, 읽고나니 네 권을 포함하여 다른 고전들도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아무래도 고전 자체가 쉬워서라기보다는, 저자가 쉽게 해설한 덕이 큰 것 같다. 기왕이면 원전을 읽는 것이 좋겠지만, 뜻을 이해하지도 못하고 글자만 읽을 바에야 이 책 같은 해설서를 곁에 두고 의미를 풀이해가며 읽어보는 것이 어떨까? <경영사서>를 통해 인문학과 경영학, 고전의 지혜와 현대적 교훈을 모두 잡을 수 있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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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각하는 CEO - 직관의 오류를 깨뜨리는 심리의 모든 것
유정식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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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요즘 뒤늦게 <더 지니어스>에 빠졌다. 매회 참가자들이 저마다의 재능을 발휘하여 게임을 풀어가는 모습도 볼거리지만, 사람들이 편을 짜고 그 안에서 행동하는 모습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신기하게도 늘 같은 사람들이 한 편이 되지는 않는다. 물론 그 중에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이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은 상황에 맞추어 기존의 편에서 나오기도 하고 다른 사람을 불러서 새로운 편을 만들기도 한다. 그리고 같은 편 안에서는 반드시 팀을 주도하는 리더와 참모, 그들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들이 생긴다. 가령 초반부에는 차민수를 주축으로 하는 연합과 이에 맞서는 김구라의 연합이 있고, 김구라의 연합 안에는 왼팔, 오른팔처럼 움직이는 이상민과 김풍이 있었다. 그런데 차민수의 탈락으로 연합이 붕괴되면서부터는 김구라의 연합이 무너져 이상민이 따로 연합을 만들고 김구라의 팬을 자처하던 김풍마저 홍진호와 연합을 맺었다. 방송에서는 김구라의 독단적인 리더십이 연합의 붕괴와 자기자신의 탈락으로 연결된 것이라고 분석했는데, 시청자로서 보기에도 정말 그랬다. 머리도 좋고, 말도 잘하고, 참가자 중 제일 방송계에서 영향력이 있는 인물이지만, 언제나 다른 이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독선적으로 행동했다. 김구라 스스로는 그것이 카리스마라고 생각했을지 몰라도, 다른 참가자들의 마음을 얻지는 못했고, 결국 모두로 하여금 등을 돌리게 만들었다.



<더 지니어스>를 보다가 <착각하는 CEO>를 읽으니 연결되는 내용이 많았다. 저자 유정식은 포항공대 산업경영공학과와 연세대학교 경영대학원을 졸업했고, 기아자동차와 LG CNS 등 여러 기업의 컨설턴트를 걸쳐 현재는 인사 전문 컨설팅 업체와 모바일 솔류션 기업의 대표를 역임하고 있다. <시나리오 플래닝>, <컨설팅 절대 받지 마라>, <경영, 과학에게 길을 묻다> 등의 저서를 쓰기도 한 그는 다음의 파워 블로거이자 국민TV라디오 <최동석 유정식의 경영토크>, 부산교통방송 <유정식의 색다른 자기경영>의 진행자로도 활동하고 있다. 신작 <착각하는 CEO>에서 저자는 '경영은 곧 심리'라고 역설한다. 경영학은 학문의 역사상 행정학, 경제학 등 여러 타 학문에 기반하고 있는데, 저자는 경영학이 특히 심리학과 많은 관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사실이 간과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한다. "이 책은 심리학에서 이미 밝혀놓았지만 경영현장에서 알지 못하거나 알면서도 무시하는 것들, 경영상의 실수와 실패에 있어 근본원인으로 작용하는 인간의 심리적 한계 등을 살펴봄으로써 경영의 오랜 관행을 반성하고 새로운 방향을 모색한다." (p.16) '경영학도 어려운데 심리학까지?' 겁먹을 필요없다. 이 책은 '무임승차자의 발본색원, 가능할까?', '야근은 정말 승진에 중요할까?', '스티브 잡스는 과연 좋은 리더일까?', '연봉으로 직원들의 동기를 높일 수 있을까?' 등 평소 직장인, 경영자들이 궁금해 했을만한 일상적인 고민들을 다루고, 설명 또한 유명하고 잘 알려진 심리학 실험이 대부분이라서 내용이 크게 낯설지 않다.



<더 지니어스>와 관련해서 나는 7장 '스티브 잡스는 과연 좋은 리더일까?'의 내용이 인상적이었다.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고 디자인의 가치를 높였다는 점에서 스티브 잡스는 훌륭한 업적을 남긴 인물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경영자로서, 상사로서도 그가 과연 훌륭했을까? 저자는 스티브 잡스처럼 카리스마 있고 나르시시스트 적인 경영자는 좋은 리더가 되기 어렵다고 말한다. 반대로 유약하고 무난한 성격을 가진 경영자일수록 좋은 리더가 되기 쉽다고 평가한다. "나르시시스트가 조직의 리더가 되면 앞에서 언급했듯이 정보의 흐름을 막아 조직의 성과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이와 더불어 자신의 창의력을 과대평가하여 직원들에게 강요하고, 그들 또한 그 리더의 아이디어를 참신한 것인 양 수용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조직 성과를 저해하는 경향이 있다." (p.164) <더 지니어스>에서 김구라 역시 다른 참가자들이 제시한 좋은 의견들을 묵살했고, 그러한 행동 때문에 역으로 안좋은 입장에 몰렸다. 이 때를 노려 그를 경계하던 사람들이 서로 뭉쳐 그를 밀어냈고, 결국 그는 예상보다 빠른 탈락을 맞이하고 말았다. 만약 그가 다른 참가자들의 말에 더욱 귀를 기울이고 적을 많이 만들지 않았더라면 다른 결과를 맞지 않았을까? 좋은 리더, 좋은 리더십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CEO, 리더십뿐 아니라 CEO를 모시고 리더십을 직접적으로 체험하는 사람들, 즉 직원들의 멤버십, 팔로워십에 관한 내용도 나온다. "휴식과 식사시간 후에 처음 접하는 결재 건은 쉽게 승인하는 반면, 배가 고플 때 들이미는 결재 건에 대해서는 필요 이상으로 깐깐하게 굴지 모른다." ("밥 먹고 합시다!"라고 외쳐야 하는 이유, p.549) "혹시 지금 상사에게 평가 혹은 결재를 받아야 한다면, 또는 누군가와 중요한 협상을 하기 전이라면 그에게 아이스커피보다는 뜨거운 커피를 권하는 것이 좋다." (상사에게 뜨거운 커피를 권하라, p.551) 등 평소 사회 생활을 하면서 아무렇지 않게 생각했던 일들, 간과했던 일들이 의외로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놀랐다. 반대로 아무 설명 없이 나에게 할당되는 일들에 어떠한 심리적인 의미나 장치가 있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니 무섭기도 하다. 저자는 '직원들의 심리를 잘 안다고 믿는 기업들의 자신만만함에 의문을 제기하려 한다'고 했지만, 직원의 입장에서는 직원들의 심리를 조종하고 통제하는 기업을 견제해야 할 것이다. CEO라면 자신이 지금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직원이라면 CEO가 착각하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점검해보며 읽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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