튤슈를 사랑한다는 것은 - 사랑의 여섯 가지 이름
아지즈 네신 지음, 이난아 옮김 / 푸른숲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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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  똑똑똑.. 사랑 종합선물세트 도착했습니다.

  사랑을 빠지는 걸 뭐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당신은 특정 인물의 행동에 의해 감정의 변화가 극심해 지는 심각한 병에 걸렸습니다. 그 사람이 기뻐하면 마음이 벅찹니다. 당신에게 친절하면 금새 행복해집니다. 기분이 언짢아 보이면 당신도 속이 상하고 마음이 조급해집니다. 내 눈으로만 보는 세상에서 그 사람과 함께 되어 세상을 보는 듯한 느낌, 당연히 내 맘을  이해해줄 거라 믿고, 내 생각대로 해 주었으면 하고 바라게 되는 심리상태... 등... 감정의 기복이 생기는 것을  사랑에 빠진 사람들의 공통된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톨슈를 사랑한다는 것은'이란 제목에서' 사랑'에 관한 6가지의 이야기들이 묶인 사랑 종합선물세트이다. 종합세트들이 다 그렇듯이, 사랑에 대한 조금씩의 맛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왠지 허전한 뭔가가 아쉬움을 남긴다. 그 아쉬움의 여운은 직접 사랑을 하면서 채워나가라는 배려였을까. 한 입 베어물었을 때 상큼한 맛과 기분이 상쾌해지는 사과를 기대했지만, 몸에 좋은 빨간 토마토를 먹는 느낌이라고 할까. 몸은 더 좋아지고 있지만, 느낌은 영 허전하다.

# 점점 캐릭터에 빠져들다.

  6개의 이야기들은 각 등장인물마다 개성있는 캐릭터를 가지고 있다. 가장 높은 산에서 세상을 지배하는 나이많은 '독수리'와 바다에서 펜터마임과 발레를 하며 몸짓으로 사랑을 전하는 바다의 미의 여신 익투스의 서로 이루어 질 수 없는  불가능을 전제로 한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로 시작되는 꾸러미들은 하나씩 열 때마다 각각 다른 맛과 향기로 사랑에 대한  여러가지 맛을 느끼게 한다.

  죽음을 감수하고, 서로를 위해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멋진 사랑이야기를 시작으로,
힘들때 서로를 위로함으로써 시작된 연민에서 시작된 사랑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 자신을 더 사랑해주기 바라는 바램들이 집착이 되어, 참나무에게는 만족하지 못하는 인형을 보며 괴로워하는 고통을, 인형에게는 참나무에 갇혀 자신을 잃어버리는 아픔을 남기고 서로에게 상처만 남기게 된다. 다시 환생에서 남녀로 만난 두 대상들이 이번 생에서는 조금 더 현명하게 사랑을 하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한 기억이 떠오른다.

    상대가 존재해야만 사랑과 꿈을 달성할 수 있는 담쟁이 덩굴의 사랑의 열망에서, 선인장, 장미나무 등등의 캐릭터들을 보며 자연스럽게 내 주변의 사랑을 하는 사람의 모습을 살피게 되었고, 찰나에 만난 석판에 새겨진 두 남녀의 사랑이야기에서는 석판에서 벗어나 손가락을 맞닿게 하는데 성공한 남자의 노력에 박수를 쳤던 순간이었다. '사람'이 보기에 아쉬운 작품일 뿐 그들 두 석상의 인물들에게는 서로 만날 수 있어서 행복했을거라 생각한다.

  나비, 시인, 그리고 여자에서는 아기를 낳고 싶은, 종족 보존을 위한 기본적인 갈망과 다른 사랑의 괴리의 모습이 보인다. 모두가 그렇지 않지만, 잠재적으로 가지고 있는 종족보존의 본능을 나비와 잘 연관시켜서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되도록 만드는 작가의 아이디어와 솜씨, 그리고 나비에 대한 체계적인 조사가 깃들어 있어 읽는 내내 즐거웠다. 모두가 현실에서 받아들이기 힘든 환상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이지만, 캐릭터 외의 여러가지 모습들은 충분한 과학적 인문적 지식을 바탕으로 한다.
   
   담쟁이에 대한 여러가지 고전 이야기와 나비의 생태, 독수리의 생태, 참나무의 생활방식들은 충분한 과학적 지식이 뒷받침되어 있어서 더 환상적인 요소들이 들어갔을 때 글의 매력을 더하게 하였다. '윤회'라는 다시 태어남을 인정하지 않는 이에게는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조금 더 상상력을 넓히면 여러 이야기들은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때론 연인이 속삭이는 애절한 사랑이야기로 귓가에 울리면서 더 마음을 애절하게 만든다.

  한 번씩 볼 때마다 생각할 부분이 달라졌던 재미난 작품이었다. 작가의 생애와 수익금의 일부가 좋은 곳에 쓰인다는 것을 알고 보았을 때는 조금 더 긍정적으로 작품을 보게 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작품 자체의 힘만을 가지고도, 충분히 상상력과 지식이 부족한 나에게는  두 가지를 모두 채워주는 기쁨의 시간이었다.

  플라스틱 인형을 품에안아 뿌리에 담기로 결정한 뒤 참나무와 인형이 내 뱉는 말은 일상 생활의 연인들에게서도 많이 듣는 이야기라서 더 마음에 와 닿았다.

 

  "사랑하기 때문에 너와 하나가 되고 싶었어. 그런데 이것봐. 넌 지금 내게서 악착같이 벗어나려고

    하잖아. 널 강제로 변화시키고 싶은 생각은 없어. 너를 내 안으로 들인 것은 내 의지였지만,

    밖으로 내 보내는 건 내 힘으로도 어쩔 수 없어. 이 상황을 받아들이고 서로에게 좀 더

    관대해지고 맞추어 살아가도록 노력해 보자. 응?"

 

 "네게는 너 자신이라는 것이 있단 말이야. ..중략..왜 날 이해하지 않으려는 거야?   ..중략...

   네가 네 삶을 살아가듯 나도 내 삶을 살아가고 싶다고! "


# 하늘과 바다, 어느쪽을 바라볼 것인가?

  즐거운 이야기보다 슬픈 이야기가 더 사람을 마음을 치유해 준다는 글을 본 기억이 난다. 이루어지지 않는 사랑 이야기들은 그러니까 더 열심히 대화하고 노력해서 사랑을 이루어가라고 속삭여준다.

   어렸을 때 할아버지가 들려주신 재미난 이야기처럼 입으로 소리내어 읽고 들으면 더 생생해지는 입말이 살아있는 재미난 작품 꾸러미들이 모여있다.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지만 풍자의 미학에 스며있는 여러가지 사유들을 잡아낸다면, 담겨지는 생각은 그렇게 쉽게 끝나지 않을거라 생각한다.

    가볍게 읽는다면, 한없이 가벼워 하늘로 함께 올라 갈 수 있다. 깊어지려 하면, 바다 깊은 어둠의 속까지 빠져든다. 위를 바라볼 것인지 아래를 바라볼 것인지는 독자의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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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은 로맨틱 코미디
노라 에프런 지음, 박산호 옮김 / 브리즈(토네이도)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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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 40대 재미난 여성의 글이라 생각했는데....


  <해리가 셀리를 만났을 때>,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을 즐겁게 보았다. 미워할 수 없는 맥 라이언이 연기한 캐릭터는 날 미소짓게 만들었다가, 진한 감동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게도 만들었다. 감정이란 작은 연못에 동심원 모양의 큰 물결무늬를 만드는 대사들을 생각하며 시나리오를 쓴 작가가 누구인지 많이 궁금해했다. '영화 캐릭터처럼 젊고 발랄한 그녀가 쓴 건 아닐까?'하는 생각과 함께, 한 번 쯤은 작가의 다른 작품을 읽어 보고 싶다고 내내 생각했다. 

  상큼한 표지와 '내 인생은 로맨틱 코메디'라는 매력적인 제목의 책을 발견했다. 그토록 궁금해 했던 작가의 책이 나온다고 해서 망설임없이 책을 집어들었다. 제목을 보며 로맨스 내용이 담긴 소설이 아닐까 생각했다. 세 번째 에세이를 읽으면서, 이건 소설이 아닌 신문기사에 기고한 에세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40대 여성의 여러가지 일상사에 관한 때로는 지나치게 솔직해서 얼굴이 화끈거렸다. 글을 읽은 내내 지루함이란 친구는  옆집 한 구석에서 때를 기다리며 자고 있었다. <그래 솔직해지지 말자>가 제목인 마지막 글을 읽으면서  작가의 현재 나이가 65세(?) 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많은 예상들이 빗나가 버리고 하나만 일치했다. '책 읽는 시간이 아깝지는 않겠구나.' 솔직히 말하면 처음에 읽었을 때는  기대와 너무 달라서 삐딱한 시선으로 책을 보았다. 조금 마음의 안정을 찾고, 두 번, 세 번째 읽고 서평을 쓰는 지금은  작가의 글의 의미가 조금은 내게 와 닿았다. 내게는 실망과 즐거움을 모두 겪게 해 준, 묘한 여운이 있는 독특한 책이다. 

 

# 15편의 재치 넘치는 에세이들..

 

   내 인생은... 이라는 제목을 보았을 때, 자신의 삶을 이야기 하는 내용이라는 걸 이해하고 읽기 시작한다면 조금 더 편안하게 책을 읽을 수 있다. 

  내가 바나나 껍질을 밟고 미끄러지면 사람들은 그걸 보고 웃는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바나나 껍질을 밟고 넘어진 이야기를 하면 이번에 웃는 사람은 그들이 아니라 바로 나다. 즉 웃음거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스타가 되는 것이다.

  컴플렉스는 숨기려고 하면 할 수록 더 눈에 띄는 것이라는 걸 그녀는 이미 눈치챈 것일까? 약한 모습, 실수하는 모습들을 숨기려고 하는 마음을 지닌 나에게, 실수나 약한 모습은 네가 감추기 때문에 더 커지는 것이라고 그녀는 이야기 한다. 편하게 이야기 하면서 아무렇지 않게 만들어 버리면, 모두가 아는 실수는 이미 실수가 아닌 사실이 되어 너를 힘들게 하지 않을거라고 오히려 더 즐겁게 변할 수 있을 거라고 이야기 한다.

  어머니의 말을 재치있게 해석한 그녀의 센스는 삶의 연륜과 낙천적인 성격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실수 연발, 그리고 그녀의 이야기는 유쾌하면서 발랄하다. 딱딱하고 근엄한 어른의 목소리를 빼고, 편하게 다가오는 언니/누나가 들려주는 솔직담백한 이야기들은 여성들에게는 친밀감을 남성에게는 다른 세계를 보는 듯한 새로움을 준다.

  조금 더 일찍 이 책을 보았더라면, 머리와 패션이 달라지는 여성이 어떠냐고 물어보았을 때, 조금 더 정성들여서 친절하게 답변을 해 주었을 거라는 생각하게 되었다. 보다 나은 모습을 들이기 위해서 공들인 여러가지 모습들과 장비, 시간 등등은.. 정말 예뻐보이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공들인 시간과 노력에 대한 부분에 대해서 그 시간의 노력을 인정해 주는 것은 최소한의 예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두번째 이혼이라던지, 생활방식의 차이에서 오는 문화적 차이도 많았다. 때론 글을 몰입하게 힘들게 하는 건 문화적 차이도 무시할 수 없다는 건 알게 되었다. 하지만 유쾌하고 담백하면서 허를 찌르는 그녀의 글은 다른 어떤 이들의 글보다 달콤하고 매혹적이다. 양육과 사춘기에 대한 그녀의 글은 따쓰한 애정이 아닌 부모가 되는 힘겨움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

* 사춘기는 아이를 위한 시기지 부모를 위한 시기가 아니다.

* 사춘기는 부모에게 과도하게 의존하는 아이들이 나중에 둥지를 떠나야 하는  불가피한 순간에

  대비할 수 있도록, 독립할 수 있는 좋은 시기다.

 * 각자 삶을 좀더 편하게 살아갈 방법은 있게 마련이다.

 

  이렇게 이야기 해 주는 상담사의 말은 다 거짓말이라면서 자신의 견해를 주장하는 그녀의 말은 지나치게 정직하다.

* 사춘기는 부모를 위한 시기지 아이를 위한 시기가 아니다.

* 사춘기는 아이에게 과도하게 집착하는 부모들이 나중에 아이가 둥지를 떠나야 하는 

   불가피한 순간에 대비할 수 있도록 독립할 수 있도록 돕는 좋은 시기다.

 *  힘든 시기가 지나가길 기다리는 것 말고는 삶을 더 편하게 살아갈 방법 따윈 없다.

  
  이렇게 강변하는 그녀이지만, 자식이 독립한 후에는 양육할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알려주며 자식에게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고 잔잔하게 이야기 한다. 마지막에 자식 걱정은 죽을 때까지 끊이지 않는다 라는 글을 보며,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따스한 애정은 동, 서양 모두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 코믹함을 얻을 것인가? 진지함을 느낄 것인가?

  가볍게 읽으면서 재미난 나이든 아주머니의 재치있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시간을 보낼 수 도 있다. 책이 항상 진지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가볍게 읽어지는 책은 책 나름대로, 진지한 책은 진지한 책대로 색깔이 있을 뿐 평가의 기준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조금만 더 깊게 들여다 보면, 여러가지 인생의 진지한 성찰이 담겨있다.

  가볍게 가볍게 사람들의 시선을 유혹하지만 막상 잡으려 하면 럭비공처럼 쉽게 잡히지 않고 튀어버리는.. 럭비공을 받는 요령을  아는 사람만이 그 받는 기쁨을 아는 것처럼, 조금만 진지해지면 얼마든지 여러가지 깨달음도 캐낼 수 있는 책이다.

  책도 많이 읽지 못하고, 생각도 짧아서 한 번에 두 가지가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어느정도 유머에 익숙해진 후에 진지함을  얻을 수 있어서 읽는 내내 새로움이 가득했다. 

  자신의 삶을 즐겁게 바라볼 수 있는 당당한 사람만이 유쾌한 모습과 진지한 모습을 둘 다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유쾌함이 별로 없는 난, 작가의 솔직함을 뒤에 숨은 유머를 배우고 싶었다. 그 유머와 자신감이 부러웠던, 가독성이 높은 필력이 질투났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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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의 역사사랑
이덕일 지음, 권태균 사진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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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에 끌렸다. 역사 사랑(Love)? 역사 사랑(舍廊)!

  
  읽을 책을 선정할 때 여러가지를 생각한다. 작품에 강한 인상을 받아 그 저자를 기억해 두었다가 다시 읽는 경우가 있다. 내 경우에는, 뒤통수를 강타하는 충격을 받아 정신이 혼미해지는 책을 만나면, 그 저자의 출간된 책을 다 읽기 전까지 마음이 안절부절해진다. 읽다 보면 꾸준함과 더 흠뻑빠지게 하는 작가도 있지만, 보통은 들쭉날쭉 하다는 걸 알게 된다. 속된 말로 '작가의 이름에 낚이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제목에 더 신경을 쓰기 시작하게 되었다. 2-300페이지의 많은 내용을 한 번에 살펴볼 수 없는 나에게 제목은 큰 의미를 차지한다.

  서점에 가면 많은 책들이 손길을 달라고 애원한다. 모든 이에게 다 관심을 줄 순 없다.  예쁜 표지로 단장하고 손에 들기 좋은 모습이 처음에 눈에 들어오지만, 인상적 광고 한 줄처럼 제목으로 소리치는 그 모습에 끌린다.  '이덕일의 역사 사랑'은 작가의 유명세 보다는 제목에 끌린 책이었다. 처음에는 사랑방인 줄 모르고 역사에 대한 애정이 담긴 책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머리말을 읽어 보면서,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의 사랑방 손님이 머무르던 사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역사에 관한 많은 이야기가 끊어지가 단절된 오늘날, 옛 사랑에서 나오던 이야기들을 되살리고 싶은 마음에 제목을 역사사랑이라고 지었다고 한다. 옛 이야기들이 모인 역사적 기록을 사랑(Love)하기에 舍廊 이라고 지었다고 내 맘대로 착각하면서 읽기 시작했다.

 

# 6개의 갈래로 나누어진 많은 이야기들. 읽는 내내 함께해서 즐거웠던 사진자료들.


  지조와 절개의 외길을 걷다, 대륙에서 한 민족의 기상을 찾다, 시간의 날줄과 사람의 씨줄 민중과 함께하는 역사 혹은 생활의 발견, 해양을 향한 상상력 혹은 일본이라는 나라, 세계사의 들판에서 우리 역사의 좌표를 찾다. 라는 큰 6가지의 작은 상자들이 모여 한 권의 책이 되었다.

  각 상자들 안에는 13개에서 33개 까지의 다양한 꾸러미들이 모여서 독자의 호기심을 유발한다. 백과사전 식의 다양한 이야기들은 지적 호기심을 찾는 이들에게는 큰 만족을 줄 수 있지만, 일관된 이야기를 원하는 독자에게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역사서로 기록된 사실들에서 느껴지는 살아남은 강자의 자기 합리화와 야사에 담겨진 정사에 보이지 않는 뒷이야기들 역시 모두 글을 적는 역사가의 개인적 주관에 배인 이야기이기에 사실은 많이 알 수 있지만, 진실은 스스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역사 사랑이라고 하지만, 역사에 대한 이야기거리가 담겨있는 이야기 보따리가 아닌, 역사 사랑을 지은 저자의 개인적 생각이 역사적 사실과 현재의 사실과 함께 섞여서 나오기 때문에 때론 긍정하기도 때론 부정하기도 하면서 읽다보니 어느새 끝이 나 버렸다.

     나에게는 역사적 사실을 많이 알게 되었다기보다 작가의 역사관이나 현실을 바라보는 관점을 알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작가의 생각과 내 생각의 합일점과 차이점을 찾아가면서 나만의 역사를 보는 시각을 알게 되어 소중한 만남이었다. 컬러로 된 생생한 사진이 첨부되어 글만 읽는데 따르는 피로감도 줄여주고, 사진 뒤에 숨겨진 여러가지 것들도 살필 수 있어 좋았다.


# 역사는 나에게 어떤 의미일까?

 

   저녁즈음에 작가가 만든 손바닥보다 조금 큰 사랑에 들어갔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나와보니, 캄캄한 어둠 속이었다. 

  영화, 책, 시사, 역사적 분쟁, 효와 충, 무역마찰, 팔만대장경 제작 동기, 정치적 자살, 조선의 성폭행 처리, 윤달 등 다양한 분야에서 끊임없이 이야기 해 주는 그의 이야기는 한 번에 몰아쳐서 읽는 걸 권하고 싶지 않다. 필요할 때 찾는 사전처럼, 이야기가 궁금하거나, 잠깐 마음의 여유가 생겼을 때 제목을 쭉 ?어보다가 마음에 드는 구절을 찾으면 잠깐 읽고 사람들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화제로 삼거나, 생각을 다듬어 보는 것이 더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 시간에 한 번에 쭉 읽기에는 아까운 책이었다. 여섯 꾸러미로 구성되어진 꾸러미 내의 이야기들 사이에 연관성이 깊었으면 좀 더 책에 대한 애착이 컸을 텐데, 신문 칼럼을 모아놓은 것처럼, 그때 그때 달라지는 내용들은 한 번에 읽기에 많은 불편함을 준 것도 사실이다. 

  역사에 대한 사랑이 넘치는 작가의 글을 읽으며, 나에게 역사는 어떤 의미인지 고민해 보게 되었다. 한 때는 떨쳐버려야 할 귀찮은 승리자의 오만과 패배자들의 한탄이 섞인 읽을 가치없는 글 모음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다 계속되는 반복의 순환의 고리에서 지금 발걸음을 옮기는 데 지침이 되는 기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활의 도구들은 변화하지만, 수천년간 변화해온 욕심과 욕망과 집착과 광기의 문화는  그 대상만 변주된 채로 계속해서 살아남아 우리를 괴롭힌다는 느낌이 들었다.

  예전보다 조금 더 지식이 늘어가고 생각도 조금씩 늘어나는 지금은 '한 마디로 정의 내릴 수 없다'라는 것만 알게 되었다. 다양한 의미들 속에서 어떤 것을 선택하고 어떻게 대해갈지는 조금 더 역사를 알아나간 뒤에 생각해도 늦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읽는다고 역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늘어나지 않는다. 조금 더 역사에 대한 관심이 생기게 하는 이야기 창고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야기에 대한 호기심으로 여러가지 역사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게 만들고 싶은 작가의 욕심을 엿보았다고 하면 지나친 비약일까?
   
  역사 사랑방에서 역사에 대한 작가의 사랑을 많이 느끼고 돌아온 시간이었다. 역사의 의미에 대해 돌이켜 보게 해 주었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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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년 - 여자로 태어나 미친년으로 진화하다
이명희 지음 / 열림원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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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쳐야 미친다. 하지만 '미친놈'이라는 표현이 '미친년'이란 표현보다 어감이 좋은 건 불쾌하며 불공정하다.
 
 
 
不狂不及 - 미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미쳐야 미친다'라는 책을 본 기억이 난다.
 
  저자는 여기에 성별의 표현이 들어갔을 때 폄하된 느낌이 들어간다고 한다.
  
  미친년이 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미친놈이 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책에서 의미가 당당하게 받아들여지지만 글에 사회적 금기어로 인식되는 걸 편하게 적는건 많이 불편하다. 

  책에 크게 적어져 있는 표현 대신에 Crazy Woman(미친년)을 사용하려 한다.

    너무나 익숙해져 있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관행 속에서 가부장적 학대와 차별에 의한 여성들의 반응을 사회는 단순히 'Crazy Woman(미친년)'이라 함축해서 말한다고 이야기 한다. 자신의 목소리를 드러내는 여자에게 '나쁜 여자'라는 철퇴와 함께 숙청대상으로 비난되는 세태에서, 여자로 태어나 'Crazy Woman(미친년)' 소리를 듣는다는 건 진화의 증거이지 실패를 의미하는 건 아니라고 이야기 한다. 재생이 아닌 부활이라는 관점에서 'Crazy Woman' 소리를 듣는 건 당연하다고 한다.
 
   영어 표현에서 Crazy 하다는 표현에 미치도록 좋아한다는 의미가 있다는 걸 중학교 때 배운 기억이 난다. 일반적으로 인식되는 상황에서 벗어나게 하는 건 사랑의 힘 중 하나라는 생각과 함께, 강하고 비난적인 느낌이 조금은 윤색된 느낌이다. 하지만 표현 자체가 강해서 내게 거부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잉게보르크 바하만의 [나]인 제목의 시를 소리내어 읽어 보았다. 당당하게 자신의 삶을 추구하는 시적 자아가 마음에 들었다.  

  책에는 작가가 생각하기에 'Crazy Woman(미친년)'이라 생각하는 9인과의 인터뷰가 담겨있다. 격정적 어감에서 벗어나고, 페미니즘에 대한 본능적 거부감을 조금 덜어내고 보면 자기 삶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치열하게 인습과 싸워온 9인의 여성이 아닌 '인간'을 만날 수 있다.

   책을 읽기 전에는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맞춤책으로 여성에게 열렬한 지지를 받는 책이라 생각했다.  속 시원한 소리를 해 주는 소통의 도구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강했다. 책을 읽고 조금 선입견을 벗어내니 새로운 모습이 많이 보였다. 편하게 읽어지지 않지만, 그들의 열정과 생각은 귀담아 들을만한 가치가 있다.


# 9인 9색, 당당함과 자기 선택의 공통점을 지닌 아홉빛깔의 무지개를 닮은 그녀들..

  트랭크 갤러리 작가이며 '미친년 프로젝트'를 진행한 박영숙 작가를 만남이 가장 좋았다. 깊은 좌절에 빠져야 미칠 수 있고, 다른 이들과 일한다는 건 다름을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소리친다. 부당한 대우와 인식이 있다면 싸워서 이기라고 말하며 상처를 피하지 말고 싸워 이겨내 새살을 돋게하라고 주장한다.
 
  미친년은 곱게 미칠 수 없다는 표현이 와 닿았다. '전통 문화'에 억압된 틀에 벗어나려면 '제대로 미치는 것이' 중요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녀 사냥' 뒤에 숨어있는 시기와, 직관적 통찰력의 사람에 대한 비난, 그리고 가난한 집 딸들보다 부잣집 딸들이 겪는 정신적 장애와 광기에 대한 시선도 신선했다.
 
  그리고 미친년을 美親蓮이라고 미화시키는 걸 거부하고 미친년일 뿐이다라고 말하는 부분도 동감했다. 금기와 여성의 성적 욕망 등 시간의 흐름에 변하지 않고 꿋꿋하게 자신의 생각을 견지하는 멋진 모습에 첫 시작이 나쁘지 않았다.

    글로리아 스타이넘, 김태연, 이브 엔슬러, 현경, 빅토리아 루, 묘지 스님, 윤진미, 유숙렬 등.. 현재 사회적으로 알려져 있고, 자신의 어려움을 극복해 낸 그들의 이야기는 아직까지도 배려가 부족한 한국사회를 사는 여성에게 작은 힘이 될거란 생각이 들었다. 9인의 여성들은 CEO, 페미니스트, 종신교주, 여성 사제, 스님, 예술, 저널 등
다양한 분야와 종교를 초월해서 '멘토'라고 불릴만큼 멋진 '인간'이다. 모두가 다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있다.

  멘토는 한 명만 가져도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9인 중의 한 명도 없다면 다른 사람을 찾으면 된다. 하지만 멘토가 아니더라도 확고한 생각과 깊은 사색후의 행동한 모습들은 우유부단한 내게 많은 걸 얻을 수 있는 의미깊은 시간이었다.
 

'왜 여자 혼자 고민하는가?', '근본적인 여성성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남자들이 삶의 주도권을 잡게 된 것은 여자도 책임이 있다.', '피를 보지 않으면 불행하단 말인가', '자신의 닮은 꼴을 열망한다는 것은 다른 꼴은 봐 줄 수 없다는 이야기다', '행복은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자신이 아름답다는 자신감이야말로 세상을 살아가는 힘이다.', '세상이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당신이 세상을 사랑하라!'
'이 땅의 모든 자식들에게 헌신하는 어머니가 성직자다', '온전히 미치면 나도 살고 남도 산다','아픔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잊는 것이다.' '인생의 주인공이 자기라는 깨달음만큼 중요한 건 없다', '인생의 고단함을 가족들에게 숨기지 말라.' '건강한 가족 안에는 건강한 남녀의 이야기가 깃들어 있다', '자신이 주인인 여자가 좋은 여자다.'
'세상 사람들이 다 말려도 내가 좋으면 무조건 올인이다.', '생을 축복으로 만들 수 있는 힘이 여성에게 있다.'

    그냥 제목만 듣기만 해도 많은 걸 이야기 해 주는 이야기는 깊게 읽을수록 더 깊게 다가온다.

  # 당당한 그들이 아름답다.

  갑자기 든 생각.. 잘난 사람을 욕하는 사람은 없다. '잘난 사람이 잘난 짓을 하는 건 재수가 없을 뿐 당연한 거니까.' '하지만 잘나지 않은 사람이 잘난 척 하는 건 견디기 힘들다.' 역시 문제는 '성별'의 문제가 아니라, '인격'의 문제는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다른 사람을 생각하기에 앞서, 내 스스로 '여러가지 편견'에 대해 당당한지, '남성'으로서 부끄럽지 않게 살고 있는가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되었다. 답이 쉽게 나오지 않는다. 어쩌면 쉽게 답을 내리는 게 경솔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의 편견이 답답한 '여성'에게, 우유부단하게 생각이 많은 이에게,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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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테와 다산, 통하다 - 동서 지성사의 교차로
최종고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07년 3월
평점 :
품절




# 큰 울림속에 숨어있는 세세함을 엿보다.

  책을 읽기 전에는 '괴테'하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파우스트>를 지은 작가,
색채론을 지을만큼 색과 인간의 감성을 연결시킨 자연철학자, 74세의 나이가 되어서도 19살의 소녀에게 청혼할 만큼 평생 사랑이 넘쳤던 인물로 기억했다.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를 엿보며 부성애가 강한 다정한 아버지의 모습과 어유당 전서를 통해, 고전, 시문집, 예, 법, 지리, 의학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폭넓게 저작을 하고,
수원 화성을 거중기를 이용해서 지었던 인물, 천주교 박해로 가족 모두가 시련에 빠진 모습까지만 떠오른다. 소설 <목민심서>를 통해, 조금 더 그의 모습을 알 수 있었지만 그건 일부에 불과했다.

  길가에 피어있는 작은 야생화를 보며, 작은 것의 소중함과 치열한 삶의 배움을 배운다. 하지만 높은 산에 오르게 되면, 크고 높은 기상과 높이 있는 것에 대한 여러가지 생각들로 세세하고 소소한 것을 놓치기 십상이다.
 
  동시대에 떠올랐지만, 한 번도 연관점을 찾지 않았던 괴테와 다산과의 만남에 대한 첫 책이 나왔다. 객관적 서술을 위해 최대한 두 인물의 글을 이용해서 접점과 차이를 찾으려는 시도가 좋았다. 괴테에 관한 이야기는 많지만, 괴테에 대한 제대로 된 전기가 번역되어 유통된 것을 찾기도 힘들고, 다산에 대한 전기는 아예 존재하지도 초상 역시 여러곳에 통일되지 않게 그려진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는 안타까운 마음 뿐이었다. 이것이 첫 발걸음이 되어 다산과 괴테에 대한 많은 이야기들이 더 논의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책은 소중하고 귀하다.
 
# 따로, 또 같이, 비슷하지만 특색있는 그들을 통하게 하다.
 
 시대는 사람을 만든다. 하지만 사람은 시대를 변화시키기도 한다. 시대의 산물이라는 접근에서 괴테와 다산의 동양과 서양의 시대조류에서 어떻게 지내왔는지 비교하기 시작한다. '어린 시절', '그들이 남긴 유산',  '괴테학과 다산학' 으로 나뉜 3부의 구성은 다산과 괴테에 대한 여러가지 사회적 측면에서의 모습들과 잘 알려지지 않은 여러 사실들을 한 권의 책으로 쉽게 알 수 있게 배려해 주었다.
 
  개인의 일생을 잘 드러내 주는 평전이라기 보다는, 그들의 사회적 삶에 대한 간명한 요약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하나에 대한 깊이 있는 서술이라기 보다, 특징들을  조금씩 모은 이력서를 보는 듯 하다. 

  사랑에 대한 이야기나, 사상적 틀은 시대와 문화의 차이로 인해서, 많이 다르다.
하지만, 치열하게 살았던 삶과 다양한 분야에 대한 관심, 민족성이 아닌 보편성에 대한 시선 등 같으면서도 다른 모습들을 많이 엿볼 수 있는 점은 이 책의 가장 큰 강점이다. 무엇보다 충분한 사진 자료와 어렵지 않은 글이 있어, 생소한 분야도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는 가독성 높은 책이다.

# 새롭게 알게 된 사실과 죄담과 비교 연표.

  현재 국내에 출간된 읽어 볼 만한 다산과 괴테에 관한 책들과 꼼꼼한 주석과 좌담, 비교 연표까지 자료가 풍성하다. 무엇보다 괴테와 다산을 더 깊이 알기 위한 징검다리로서 매력적인 책이라 생각한다. 

  풍부하고 유복한 곳에서 태어났지만 '외로움'을 안고 살 수 밖에 없던 괴테와,   가족안에서 유복하게 자랐지만 '천주교 및 정치적 불안정'으로 '생이별'을 해야 했던 다산은 보통 사람이면 견디기 힘든 어려움 속에서도 환경을 원망하지 않고 꾸준히 자기 생을 살았다는 점이 가장 크게 다가왔다.

  바이마르 공국의 재상까지 지냈던 점과 각자 스타일로 사랑에 빠진 점 등 새롭게 알게 된 사실들은 좀 더 그들을 알고 싶게 만든다. 괴테 스스로 인정했듯이 독창성 없이 선인들의 지혜를 바탕으로 새롭게 많은 사람들을 울릴 수 있는 여러 작품과 활동은 독창성이 전혀 없는 내게 큰 힘이 되었다. '현재의 좋은 작품은 옛 고전의 맛을 지금의 시대에 맞게 새롭게 살려낸  변형 음식일 뿐'이라는 이야기가 생각난다. 공부에 대해 막막하게 생각하는 이에게 위로가 되는 말 하나를 찾아 기쁘다.

  아버지와 어머니께 극진해서, 당연히 어머니가 생모인줄 알았는데, 9홉살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양어머니하고도 잘 지내고, 아버지를 잘 따랐던 그의 뒤에 숨겨진 아픔과 생이별의 아픔 속에서도 꿋꿋이 독서하고 자기 정진에 힘쓴 모습은 가정환경에 어려운 아이에게 큰 힘이 될거란 생각이 들었다. 봉사활동 하는 아이가 힘들어 할때 '다산의 삶을 이야기 해 줘야지'라는 생각을 했다.

  P.S 예쁜 표지와 보기 편한 글씨, 공들인 흔적이 애쓴 흔적이 담겨 있어서 기분이 좋았다. 이것이 시작이 되어, 좀 더 많은 괴테와 다산에 대한 이야기가 넘쳤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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