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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은 로맨틱 코미디
노라 에프런 지음, 박산호 옮김 / 브리즈(토네이도) / 2007년 5월
평점 :
절판
# 40대 재미난 여성의 글이라 생각했는데....
<해리가 셀리를 만났을 때>,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을 즐겁게 보았다. 미워할 수 없는 맥 라이언이 연기한 캐릭터는 날 미소짓게 만들었다가, 진한 감동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게도 만들었다. 감정이란 작은 연못에 동심원 모양의 큰 물결무늬를 만드는 대사들을 생각하며 시나리오를 쓴 작가가 누구인지 많이 궁금해했다. '영화 캐릭터처럼 젊고 발랄한 그녀가 쓴 건 아닐까?'하는 생각과 함께, 한 번 쯤은 작가의 다른 작품을 읽어 보고 싶다고 내내 생각했다.
상큼한 표지와 '내 인생은 로맨틱 코메디'라는 매력적인 제목의 책을 발견했다. 그토록 궁금해 했던 작가의 책이 나온다고 해서 망설임없이 책을 집어들었다. 제목을 보며 로맨스 내용이 담긴 소설이 아닐까 생각했다. 세 번째 에세이를 읽으면서, 이건 소설이 아닌 신문기사에 기고한 에세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40대 여성의 여러가지 일상사에 관한 때로는 지나치게 솔직해서 얼굴이 화끈거렸다. 글을 읽은 내내 지루함이란 친구는 옆집 한 구석에서 때를 기다리며 자고 있었다. <그래 솔직해지지 말자>가 제목인 마지막 글을 읽으면서 작가의 현재 나이가 65세(?) 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많은 예상들이 빗나가 버리고 하나만 일치했다. '책 읽는 시간이 아깝지는 않겠구나.' 솔직히 말하면 처음에 읽었을 때는 기대와 너무 달라서 삐딱한 시선으로 책을 보았다. 조금 마음의 안정을 찾고, 두 번, 세 번째 읽고 서평을 쓰는 지금은 작가의 글의 의미가 조금은 내게 와 닿았다. 내게는 실망과 즐거움을 모두 겪게 해 준, 묘한 여운이 있는 독특한 책이다.
# 15편의 재치 넘치는 에세이들..
내 인생은... 이라는 제목을 보았을 때, 자신의 삶을 이야기 하는 내용이라는 걸 이해하고 읽기 시작한다면 조금 더 편안하게 책을 읽을 수 있다.
내가 바나나 껍질을 밟고 미끄러지면 사람들은 그걸 보고 웃는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바나나 껍질을 밟고 넘어진 이야기를 하면 이번에 웃는 사람은 그들이 아니라 바로 나다. 즉 웃음거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스타가 되는 것이다.
컴플렉스는 숨기려고 하면 할 수록 더 눈에 띄는 것이라는 걸 그녀는 이미 눈치챈 것일까? 약한 모습, 실수하는 모습들을 숨기려고 하는 마음을 지닌 나에게, 실수나 약한 모습은 네가 감추기 때문에 더 커지는 것이라고 그녀는 이야기 한다. 편하게 이야기 하면서 아무렇지 않게 만들어 버리면, 모두가 아는 실수는 이미 실수가 아닌 사실이 되어 너를 힘들게 하지 않을거라고 오히려 더 즐겁게 변할 수 있을 거라고 이야기 한다.
어머니의 말을 재치있게 해석한 그녀의 센스는 삶의 연륜과 낙천적인 성격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실수 연발, 그리고 그녀의 이야기는 유쾌하면서 발랄하다. 딱딱하고 근엄한 어른의 목소리를 빼고, 편하게 다가오는 언니/누나가 들려주는 솔직담백한 이야기들은 여성들에게는 친밀감을 남성에게는 다른 세계를 보는 듯한 새로움을 준다.
조금 더 일찍 이 책을 보았더라면, 머리와 패션이 달라지는 여성이 어떠냐고 물어보았을 때, 조금 더 정성들여서 친절하게 답변을 해 주었을 거라는 생각하게 되었다. 보다 나은 모습을 들이기 위해서 공들인 여러가지 모습들과 장비, 시간 등등은.. 정말 예뻐보이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공들인 시간과 노력에 대한 부분에 대해서 그 시간의 노력을 인정해 주는 것은 최소한의 예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두번째 이혼이라던지, 생활방식의 차이에서 오는 문화적 차이도 많았다. 때론 글을 몰입하게 힘들게 하는 건 문화적 차이도 무시할 수 없다는 건 알게 되었다. 하지만 유쾌하고 담백하면서 허를 찌르는 그녀의 글은 다른 어떤 이들의 글보다 달콤하고 매혹적이다. 양육과 사춘기에 대한 그녀의 글은 따쓰한 애정이 아닌 부모가 되는 힘겨움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
* 사춘기는 아이를 위한 시기지 부모를 위한 시기가 아니다.
* 사춘기는 부모에게 과도하게 의존하는 아이들이 나중에 둥지를 떠나야 하는 불가피한 순간에
대비할 수 있도록, 독립할 수 있는 좋은 시기다.
* 각자 삶을 좀더 편하게 살아갈 방법은 있게 마련이다.
이렇게 이야기 해 주는 상담사의 말은 다 거짓말이라면서 자신의 견해를 주장하는 그녀의 말은 지나치게 정직하다.
* 사춘기는 부모를 위한 시기지 아이를 위한 시기가 아니다.
* 사춘기는 아이에게 과도하게 집착하는 부모들이 나중에 아이가 둥지를 떠나야 하는
불가피한 순간에 대비할 수 있도록 독립할 수 있도록 돕는 좋은 시기다.
* 힘든 시기가 지나가길 기다리는 것 말고는 삶을 더 편하게 살아갈 방법 따윈 없다.
이렇게 강변하는 그녀이지만, 자식이 독립한 후에는 양육할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알려주며 자식에게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고 잔잔하게 이야기 한다. 마지막에 자식 걱정은 죽을 때까지 끊이지 않는다 라는 글을 보며,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따스한 애정은 동, 서양 모두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 코믹함을 얻을 것인가? 진지함을 느낄 것인가?
가볍게 읽으면서 재미난 나이든 아주머니의 재치있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시간을 보낼 수 도 있다. 책이 항상 진지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가볍게 읽어지는 책은 책 나름대로, 진지한 책은 진지한 책대로 색깔이 있을 뿐 평가의 기준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조금만 더 깊게 들여다 보면, 여러가지 인생의 진지한 성찰이 담겨있다.
가볍게 가볍게 사람들의 시선을 유혹하지만 막상 잡으려 하면 럭비공처럼 쉽게 잡히지 않고 튀어버리는.. 럭비공을 받는 요령을 아는 사람만이 그 받는 기쁨을 아는 것처럼, 조금만 진지해지면 얼마든지 여러가지 깨달음도 캐낼 수 있는 책이다.
책도 많이 읽지 못하고, 생각도 짧아서 한 번에 두 가지가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어느정도 유머에 익숙해진 후에 진지함을 얻을 수 있어서 읽는 내내 새로움이 가득했다.
자신의 삶을 즐겁게 바라볼 수 있는 당당한 사람만이 유쾌한 모습과 진지한 모습을 둘 다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유쾌함이 별로 없는 난, 작가의 솔직함을 뒤에 숨은 유머를 배우고 싶었다. 그 유머와 자신감이 부러웠던, 가독성이 높은 필력이 질투났던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