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룡소의 그림동화 1
레이먼드 브릭스 글.그림, 박상희 옮김 / 비룡소 / 199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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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만해도 포근해보이는 곰 아저씨.

레이먼드 브릭스의 작품을 처음 안 것은 책이 아닌 비디오였습니다. 아이를 낳고 책이며 비디오며 어떤 것이 좋을까 잘 몰랐던 그 시절에 정말 아주 우연하게 접한 [배고픈 애벌레]와 [스노우맨] 비디오.

지금은 DVD가 있어서 비디오는 잘 안 보지만, 가끔은 그 오래된 비디오 [스노우맨]을 꺼내서 보곤 합니다.
잔잔한 음악과 함께 대사 없는 그 애니매이션이 나와 우리 아이를 얼마나 환상의 세계로 인도했는지 모릅니다.

그러고나서, 영어 전문 서점에 가서 [스노우맨] 그림책을 보고 얼른 사왔습니다. 아이가 점점 자라면서 그림책을 읽어주면서, 우연히 레이먼드 브릭스의 [산타 할아버지]와 [산타할아버지의 휴가] 를 읽게 되었지요.

그 후 레이먼드 브릭스의 팬이 된 저와 우리 아이는 같은 작가의 그림책을 찾아서 읽기 시작했습니다. 

이 책도 참 따뜻해요. 레이먼드 브릭스의 책은 풍부한 유머와 위트가 넘치기도 하고, 참 따뜻한 심성으로 아이들의 감수성을 자극하고 있는데, 이 책은 정말 하얀 눈과 커다랗고 폭신한 곰인형을 함께 느끼고 있는 기분이랄까요?

이 책에 나오는 덩치 큰 곰은 그냥 보기만해도 포근하고 따뜻해보이는 느낌을 줍니다.
지난 번 레이먼드 브릭스의 작품 중 하나인 '바람이 불 때에'를 읽은 적이 있어 이 책을 읽으면서 이야기를 했더니 핵전쟁의 참혹함을 주제로 한 바람이 불 때에는 다시 읽기 싫다고 너무 슬펐다고 하더군요.

언제나 밝은 책을 썼던 작가이기 때문에 그 책을 읽으면서 저 역시 내심놀랐는데... 하지만 이 책은 특유의 밝고 명랑한 분위기가 잘 풍기는 것 같아 읽는 내내 즐거웠답니다. 

아이들은 모두 곰인형을 좋아합니다. 전 지금도 참 좋거든요. 우리 아이 역시 남자임에도 인형들을 참 좋아합니다. 아마 이 책의 주인공인 틸리에게도 곰인형은 친구 이상일 것 같네요.

항상 곰 인형을 안고 자는 틸리에게 어느날 진짜 북극곰이 찾아옵니다.  너무 반갑고 곰과 함께 지내는 시간이 즐겁지만, 틸리가 해야 할 일들이 많아지게 되지요. 

틸리는 곰을 위해서 잠자리도 마련해주고 맛있는 음식도 줍니다.  또한 곰이 어질러놓은 곳도 청소하고 심지어 목욕도 시켜주네요.  
하지만 왜 틸리의 부모님은 곰이 우리 집에 함게 살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할까요?
 
커다란 곰을 침대에 눕히는 주인공 소녀 틸리와 그 안에서 잠을 자는 모습을 보며, 저 역시 아주 커다란 곰인형을 베고 누워보고 싶더군요.
현실과 상상의 적절한 조화가 멋진 책이랍니다.  겨울철 눈이 내리는 날에 읽으면 더욱 따뜻해지는 동화가 아닐까 싶어요. 

레이먼드 브릭스 특유의 개성 넘치는 그림들, 만화를 보는 듯한 기분으로 책을 넘기면서 틸리와 곰의 일상 속으로 들어가볼까요?
게다가 아이의 순수함이 넘치는 대화 역시 마음에 쏙 들어요. 자연스러운 번역이라서 그런지 마치 틸리가 되어서 곰에게 혹은 엄마에게 이야기를 하는 듯 읽으면 그림책을 읽는 즐거움이 두 배로 늘게 되지요.

과연 정말 내 집으로 곰이 찾아온 걸까요?  엄마와 아빠에게 들키지 않고 곰과 함께 지내는 것이 가능할런지, 틸리의 꿈이었는지 아니면 정말 실제 곰이 온 것인지 아이들과 함께 즐거운 그림책 여행을 떠날 수 있는 그런 책이 아닐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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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찌 2010-06-01 2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레이먼드브릭스 책, 아이들이 넘 좋아하죠!
 
서서 걷는 악어 우뚝이 마루벌의 좋은 그림책 52
레오 리오니 글 그림, 엄혜숙 옮김 / 마루벌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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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 리오니의 우화는 정말 멋집니다. 이렇게 재미있고 교훈적인 이야기를 멋진 그림책으로 만날 수 있다는 게 참 좋아요. 언제 읽어도 내 마음에 잔잔한 감동과 여운이 남는 주옥같은 그림책. 내가 좋아하는 작가 중 한 사람이 바로 '레오 리오니' 입니다.  

이젠 그의 새로운 작품을 만날 수 없다는 게 안타깝지만, 불혹의 나이에 시작한 동화작가의 길에 아이들 뿐 아니라 엄마, 아빠에게도 사랑을 듬뿍 받는 주옥같은 명작을 남긴 작가지요. 
이 책 주인공 악어의 이름이 정말 내용과 참 잘 어울립니다. "우뚝이". 영어로는 어떻게 되어 있는지 참 궁금합니다.

우리 아이에게 책을 읽어줄 때면 시대가 시대이니 만큼 영어동화도 많이 읽어주고 한국말로 된 이야기도 영어로 많이 들려주고 했는데 레오 리오니의 책을 보면 참 번역이 잘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으뜸 헤엄이"와 같이요. 아마 영어로는 Swimmy라고 알고 있는데...

이 책의 시작은 새끼 악어들이 알에서 깨어 강둑을 기어 올라오는 것부터 시작됩니다. 모두 악어는 기는 것으로 알고 잇는데 단지 주인공 우뚝이만은 늘 새로운 것에 도전을 하려고 합니다. 똑바로 서서 걸어 나온 악어 우뚝이. 


우뚝이는 서서 걸어 다니기 때문에 기어 다니는 악어들과는 좀 다른 시야로 세상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훨씬 더 많은 세상을 볼 수 있지요.
하지만 우뚝이는 자신만 이런 세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악어들에게도 적극 동참할 것을 권유하지요. 다른 악어들은 그런 우뚝이를 귀찮아하게 됩니다. 

우뚝이는 강가를 떠나서 더 멋진 세상의 모습을 보려고 합니다. 원숭이에게 물구나무서는 법과 꼬리로 나뭇가지에 매달리는 법을 배운 우뚝이는 이제 의기양양하게 자신의 친구들에게 다시 돌아옵니다.

늘 새로운 것을 배우려는 악어 우뚝이가 참 멋져 보입니다.
그리고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친구들과 늘 함께 하려는 마음이 너무 예쁘네요. 친구들까지 변화시키는 너무 멋진 우뚝이. 

친구 악어들은 원숭이들에게 배운 재주를 보여주는 우뚝이를 보며 시큰둥하게 우뚝이는 너무 슬퍼합니다. 떠나는 우뚝이가 고개를 돌려 친구들을 바라보는 순간 악어들의 모습을 보며 아이와 너무 재미있게 웃었습니다.

끊임없이 노력하고, 자신이 얻은 노력의 결실을 다른 사람에게 아낌없이 나눠주는 모습이 얼마나 멋진가요!  요즘엔 성적 때문에 자신의 정보를 절대 남에게 알려주지 않는 학부모들도 많다고 들었어요.  또한 남과 늘 비교하고 남보다 뛰어나기를 바라는 부모의 이기심.
이 책을 읽을 때마다 언제나 마음 한 구석엔 양심의 가책을 느끼기도 합니다.

남을 배려하는 마음. 남에게 좋은 것으로 베풀고자 하는 마음. 또한 누가 뭐라고 하든지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것을 위해 앞으로 나가는 모습 -  몇 페이지 안되는 그림책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야하는지 많이 배우게 되었네요.

언제나 노력하는 자에게 반드시 열매가 주어진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보다 넓은 세상을 향해서 적극적으로 뛰어드는 그런 삶을 살아보렵니다.

저도 아직 늦지 않았으니까요. 레오 리오니의 삶 그 자체가 고스란히 들어간 그림책을 읽으면서, 또한 존경하는 작가인 레오 리오니 그 분의 모습 안에서도 참다운 삶에 대해 깊이 생각할 수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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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돌이 전통문화 그림책 솔거나라 1
이종철 지음, 이춘길 그림 / 보림 / 199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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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림의 솔거나라 시리즈는 참 유명합니다. 입소문을 타고 자녀에게 솔거나라를 사준 분들도 꽤 많을 것 같아요. 

오래전에 나온 솔거나라를 개정판으로 한 권 두 권 만나는 것도 기쁘답니다. 그 때에도 책 뒷부분에 한지를 붙여놓은 책이 참 획기적이다 싶었는데, 개정판은 더욱 세련된 그림과 함께 우리나라 한지의 우수함을 잘 나타내주고 있네요.  

보림의 솔거나라 시리즈를 도서관에서 빌려보다가 몇 년 전에 큰 맘먹고 모두을 구입하였지요. 도서관에서 30권 중 삼분의 이를 다 읽었지만 아직 여섯살인 우리 아이가 몇 년을 두고두고 읽을 수 있다고 생각이 들어서 구입했고, 아이 아빠도 책을 보면서 그림이 예쁘다고 좋아했던 기억이 납니다.

유치원에 갔다 온 아들이 서둘러 정리해 둔 책꽃이에 꽂여 있는 이 책들을 보면서 뛸뜻이 좋아한 게 몇 년 전인데, 요즘도 새록새록 솔거나라 책들이 생각이 나요.

보림 솔거나라 시리즈는 다 재미있고 유익하지만, 제가 가장 좋아하는 책이 [한지돌이]와 [쪽빛을 찾아서] 랍니다. 두 권 다 우리의 옷감과 염색기술, 그리고 한지의 우수성을 잘 나타내주거든요. 이런 두 권의 책은 국외로 번역이 되어서 세계의 어린이들이 읽으면서 자랑스런 대한민국의 전통문화를 배웠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한지돌이>는 제가 우리 아이에게 많이 읽어준 책입니다. 하지만 새로 나온 책을 보고 또 그렇게 좋아하는지, 여긴 한지를 찾아보는 것도 어렵고, 한지 공예 체험 같은 것은 더더욱 그러하지요.  

그래서 그런지 유독 솔거나라 그림책 중에 <한지돌이>책이 더 반가운지도 모르겠네요. 

예전에 아이와 함께 세계박물관 문화 전시회에 가서 한지로 만든 여러가지 물건을 본 기억을 떠올려봅니다. 책 속에 나와 있는 이야기대로 정말 멋진 그릇과 반짇고리, 삼합상자 등을 만든 것을 하나씩 자세히 살펴보면서 무척 좋아했지요.
종이로 만들었는데 꽤 크고 튼튼한 것이 우리 나라 사람들의 재주를 잘 엿볼 수 있었고, 나중에 기회를 만들어서 꼭 우리 아이와 함께 한지공예를 배우고 싶었거든요.
저도 역시 너무 예뻐서 정말 집에다 하나 두고 싶은 생각이 들었답니다.

또한 한지 뿐 아니라 문방사우에 대해 아이와 함께 이야기 했지요. 이 책 표지에서도 보이듯 문방사우 - 붓과 먹, 벼루와 종이(한지). 옛날 우리 나라 사람들이 글을 쓰거나 공부를 하기 위해 사용했던 필기도구들을 보며 지금의 필기도구를 생각해봤어요. 

아이가 아직 벼루와 먹을 사용해보지 않았기에 그것도 나중에 직접 먹을 벼루에 갈면서 붓으로 한지에 글씨를 써보고 그림을 그려보자고  약속 했지요.

이 책에는 종이를 어떻게 만들었는지, 옛날 사람들은 기록을 남기기 위해 어떤 방법을 사용했는지 아주 자세하기 그림과 이야기가 나와있네요.
우리 아이는 책을 읽으면서 옛날 사람들이 동굴에 벽화를 그리고 바위나 나무, 돌에 새기는 그림을 보며 신기해 하기도 하고 무슨 글자인지 알려달라고 해서 좀 난처하기도 했지요. 책에 있는 그림 하나하나 그냥 지나치지 않고 꼼꼼하게 살펴보는 아이의 표정이 무척 진지해 보였답니다.

닥나무로 한지를 만드는 과정이 세밀하게 나와있어요. 글씨를 쓸는 종이 고유의 기능 뿐 아니라 한지로 만든 여러 가지 물건들을 보고 아이 뿐 아니라 저도 많이 놀랐답니다. 또한 물건 뿐 아니라 한지를 옷 안에 넣어서 따뜻하게 만들어 방한복으로 사용했다는 이야기를 보면서 우리 나라 조상들의 지혜에 감탄을 하게 됩니다.

제 친정이 시골에 있는 관계로 아이에게 책을 읽으면서 한지를 바른 창문이랑 문 그림을 보여주고, 할아버지 집에 있는 문이 기억나는지 물어보았지요. 아직도 잘 기억하고 있어서인지 나중에 시골에 가서 그 문을 자세히 살펴보자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책 뒷부분에 한지에 대한 설명과 함께, 다양한 한지를 붙여놓아서 직접 보면서 그 감촉을 느껴볼 수 있도록 한 배려가 너무 마음에 듭니다.
한지돌이를 다시 만나며, 꼭 한지 만들기도 해보고, 한지를 이용한 다양한 공예품도 만들어보리라 생각합니다. 

우리의 자랑스런 한지. 앞으로 세계 속에서도 멋지고 고급스런 종이로 그 우수함을 펼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싱가포르 미술관에서도 우리의 한지 공예를 이용한 다양한 작품들이 전시되는 그런 기회가 꼭 있었으면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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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찌 2010-06-01 2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주에 한지 박물관이 있다네요. 저도 기회가 되면 울 딸들과 가서 꼭 체험해 보고 싶어요. 저 어릴적에 새 봄이 되면 한지로 문풍지를 세로 발랐거든요. 문고리 부분에는 나뭇잎도 한장 끼웟서 덧 발랐답니다.
 
성적표 받은 날 내인생의책 작은책가방 2
진 윌리스 지음, 토니 로스 그림, 범경화 옮김 / 내인생의책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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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표 받은 날] 처음엔 책 제목을 보면서 아이가 성적이 나빠서 부모님께 보여드리기가 무서워서 벌이는 에피소드나 혹은 집으로 돌아오기까지 조마조마한 마음을 그려놓은 책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책 소개를 보니 이게 왠일?  처음부터 무척 강하게 나가는 주인공 플러프 편지는 기가 막혔다. 

책을 끝까지 읽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다 읽고 나서 느낀 점은 이 책은 엄마, 아빠들을 위한 동화책이 아닐까 하는 거였다.  아니면 그림책을 읽는 초등 저학년들의 대리만족. 

우리 아이도 당연히 성적표를 받아온다. 여긴 만점자들은 거의 나오지 않아서 올백을 맞아야 한다는 부담감은 없지만, 당연히 성적에 대한 순위도 있고 시상도 하기 때문에 난 은근히 시험과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를 아이에게 주고 우리 아이 역시 시험이나 공부에 대한 압박감이 존재한다. 

그렇다고 다른 아이들처럼 공부하는 시간이 많지도 않고, 나 역시 시험성적보다는 공부하는 과정을 더 중요시하려고 노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으면서 찔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성적표 때문에 편지 한 장 달랑 써놓고 가출을 결행하는 우리의 주인공 플러프. 그렇게 집을 나가면 부모님께서 걱정하실 거란 생각은 못 한 것일까?  아니면 그런 생각은 했지만 그럼에도 자신의 성적표에 대한 불안감이 더 큰 것이었을까? 

책을 넘기면 왠지 익숙한 토끼들의 모습이 나온다.  '난 전에 이런 토끼들의 모습은 본 적이 없었던 것 같은데,' 하고 생각하다보니 이 책의 그림을 그린 작가가 '토니 로스'라는 것을 알았다. 우리 아이가 엄청 좋아해서 즐겨 있는 Horrid Henry 시리즈의 그림 작가인 것이다. 번역본 제목은 호기심 대장 헨리. 

플러프는 가출을 하고 난 후 평소 해보지 못한 행동을 한다. 이른바 비행소년이 된 것이다. 귀걸이는 물론이거니와 꼬리엔 염색을 하고 심지어 오토바이를 타고 순무 밭을 폭주하는 게 아닌가! 

탈선이랑 탈선은 다 한 듯 그림책을 넘길 때마다 나오는 플러프의 모습에 놀랐던 나, 설마 이렇게 끝이 나는 건 아니겠지 싶었다.  하지만 책에서 보듯이 의기양양하게 악마의 언덕 쓰레기장에 있는 지옥의 토끼들 내준 시험에 통과를 했지만, 자일스 농부 아저씨게 한 짓은 몰랐으면 한다는 말에 여전히 순진한 토끼임을 엿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이것이 정말일까? 눈에 보이는 것이 모두 진실이 아닐 수도 있는 것처럼, 플러프의 편지는 그냥 눈속임이었던 것이다. 

성적표에 부모님의 사인을 받아가야하는데, 형편없는 성적 때문에 부모님의 눈을 피해서 할머니 집에 가 있었던 것이다.   

만일 우리 아이가 최악의 성적표를 받아온다면 난 어떤 반응을 보일까? 과연 우리 아이는 엄마 아빠의 꾸중이 두려워 피해서 숨을 곳이 있을까?  갑자기 궁금해졌다.  이 곳에서 숨을 때란 마땅하지 않을테니 아이가 엄마, 아빠에게 숨기지 않도록 늘 엄마는 네 편이라는 사실을 인식시켜야하는 것인지.

책 속에서 플러프는 이렇게 외친다.  

  [저는 그저 엄마 아빠께, 살다보면 이 세상에는 더 나쁜 일들이 많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어요. 제 끔찍한 성적표보다 말이죠. 엄마, 아빠가 화를 다 내셨다면, 오셔서 저를 데려가 주세요. 어서요! 엄마. 저, 배고파 죽겠어요. 할머니가 해 주신 양배추는 냄새가 고약해요!]  라고.    

플러프의 편지는 그런 나쁜 일에 비하면 자신의 성적표는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거라는  애교 반 협박 반의 편지인가보다. 그래도 그렇지!  

하긴 편지 내용만 그렇지, 그렇게 하지 못하고 할머니 댁에 가서 얌전히 있는 소심한 플러프이니 말이다.  이 쯤 되면 플러프의 엄마 아빠의 화도 풀렸을까? 

우리 아이도 그렇게 생각을 할까?  플러프처럼 행동하는 것보다는 시험 성적표 나쁜 게 낫다는.   인생에서 성적이 행복이나 성공의 지름길이 아님에도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좋은 성적만을 강요하고 있다.  

누구든지 플러프의 편지대로 행동할 가능성이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기 않도록 하기 위해서 이 책의 작가는 기성세대들이 성적으로 아이들을 판단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책을 썼을 것 같다.  

어찌되었든간에 플러프의 가출소동은 해프닝으로 끝이 났다. 성적을 걱정하는 만큼 다음 성적을 받을 때까지는  채소밭 이름표도 읽고, 당근도 세지 않을까 싶다. 

게다가 늦되는 아이가 있으니까, 기다려 준다면 나중엔 털북숭이 초등학교에서 일등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면 펄쩍펄쩍 뜀뛰기를 잘하는 플러프이니만큼 체육에서 두각을 나타낼 수도 있고 말이다.  단순히 한 가지 성적만으로 아이를 판단하지 않고, 또 기다려주고 아이의 특성을 알아서 조금씩 발전하는 모습에서 자신감과 성취감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게 부모의 역할일 듯 싶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번역자인 초등학교 사서교사의 말을 옮겨보았다. “성적표는 ‘환승역’과 같아요. 잘못 탄 버스라면 갈아타면 되고, 더 빠르고 좋은 버스가 있다면 그 버스를 다시 타면 되지요. 아이의 성적 때문에 화를 낸다고 해서 아이의 성적이 오르지 않으니까요. 이번 성적표는 마지막 성적이 아니지요. 선생님의 일시적 판단일 뿐입니다.”  

환승역이라는 말이 정말 멋져서, 이 말을 A4 용지에 옮겨서 프린트해서 방에 붙여놓으려고 한다.  잘못 탄 버스라면 얼른 내리고, 더 빠른 버스가 있다면 잡아타면 된다는 것을. 때론 자칫 비뚫어질 수도 있고 너무 느리서 부모님을 애타게 할 수도 있지만, 인생의 종착지까지 가는 버스는 무척 그 길이 길다는 것을. 그리고 결코 한 대의 버스만을 갖고 종착지까지 갈 수 없으며, 누가 먼저 일등으로 도착하느냐 하는 운동경기가 아님을 명심해야 할 것 같다. 

유쾌하게 읽고 싶은 그림책이었는데, 오히려 성적 때문에 고민하는 제 마음을 위로해준 그림책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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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찌 2010-06-01 2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 성적에 집착하면 아이도 저도 불행 시작인것 같아요. 잘 한다고 생각될수록 욕심을 버려야 할듯 싶네요. 현명한 엄마가 되어 보자구요~
 
나는 형이니까
울프 닐손 글, 에바 에릭슨 그림, 사과나무 옮김 / 크레용하우스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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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넌 정말 멋진 형이구나!  그림책 속에서 의젓한 네 모습을 보면서 정말 자랑스러웠어. 나도 그런데 아마 네 부모님은 더욱 그랬을거야. 

난 한국에서 태어났고, 너보다 4살 많은 남자 아이의 엄마란다. 우리 아이는 동생이 없이 외동아들이라서 여섯 살 때 너만큼은 멋진 형이 아니었던 것 같아. 지금은 제법 자라서 이웃에 있는 동생들도 아껴주고 함께 놀아준단다.  

우리 아이가 여섯 살이었을 땐, 어리광쟁이 아이였거든. 그래도 늘 친구들과 어울려 놀기 좋아하고 책을 사랑하는 아이였어. 지금도 그렇지만 이젠 공부에 바빠서 예전만큼 책을 읽거나 놀 수 있는 시간이 적거든. 

네가 동생이랑 지은 집이랑 텔레비전을 보면서 나랑 우리 아이는 부러웠어. 우리도 마당이 있는 집에 살면서 그런 집을 지어보고 싶었거든. 

유치원에서 혼자 집에 왔을 때 아무도 없는 것을 알고, 네 마음은 무척 복잡했을거야. 아직 어렸을텐데 혼자 집을 보는 것도 힘들었을테고, 또한 너보다 더 어린 동생이 있었잖아?  문이 잠겨있어 집 안에 들어갈 수도 없었고 좋아하는 과자도 없었고 말이야.

그런데 침착하게 동생을 데리러가고, 동생의 옷이랑 모자까지 챙겨서 데리고 나왔지. 형이 되어서 동생을 잘 돌보는 네 모습이 얼마나 기특하던지, 꼭 껴안아주고 싶었어.  

둘이서 다정하게 걸어가는 모습이 얼마나 보기좋던지, 함께 깃발도 만들고 나무로 집까지 지었잖아?  깃발을 보면서 엄마 아빠 생각이 났지만, 동생을 위해서 눈물을 꾹 참는 네 모습. 난 그런 네 모습에 눈물이 나기까지 했단다. 

울타리를 만들고 남겨진 널빤지로 동생과 함께 힘을 합쳐서 멋진 집을 지었더구나. 게다가 그 집에는 나뭇가지와 마른 풀을 모아서 만든 침대에 멋진 낙엽 이불도 있으니까.  나도 그런 집에서 살아보고 싶어.  얼기설기 삐뚤빼뚤하고 이리저리 흔들리더라도 여섯 살 형의 솜씨로 만든 집이라니 정말 대단한 거 있지?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할아버지가 될 때까지 살 수 있는 집을 짓겠다고 하는 네 모습. 집을 다 짓고보니 무척 자랑스러웠지만, 작아서 나중에 키가 자라면 더 큰 집을 짓겠다고 하는 네 결심도 좋아보였어.  

집 안에서 밖으로 바라보는 네 동생과 팔짱을 끼고 뿌듯하게 바라보는 네 모습이 얼마나 보기 좋았는지...... 

게다가 텔레비전을 보고 싶다는 동생의 말에 넌 텔레비전까지 만들었어. 마당 구석에 있는 상자를 발견하고 커다란 텔레비전에 리모콘까지...  둘이 함께 집도 만들고 텔레비전을 만들면서 사이좋게 시간을 보내는 모습은 우애있는 형제라는 것을 무척이나 잘 느끼게 해주었단다. 

우리 아이에게도 그런 형이 있다면?  아니면 동생이 있어서 그렇게 함께 놀 수 있다면... 이런 생각을 하니까 네가 너무나 부러웠어. 

둘이서 보냈던 그 시간은 네가 어른이 되어서도 멋진 추억으로 남아있을 것 같아. 아마 넌 지금도 여전히 동생을 잘 돌보는 멋진 형이겠지?  아마 지금은 따뜻한 집에서 맛있는 과자를 먹으면서 둘이 나란히 쇼파에 앉아서 재미있는 텔레비전을 보고 있을 수도 있겠지. 

멋진 형으로 아주 오래 그렇게 자라기를 바랄게. 씩씩하고 의젓한 형의 네 모습도 좋지만 아직은 엄마 아빠에게 귀여운 아들이 되어주렴, 아마 엄마 아빠도 네 그런 모습을 모두 다 사랑하실거야. 

참, 이 책의 원제목이 [When We Were Alone in the World] 라는 것을 알았어. 그 제목은 네가 집에 왔을 때 심정을 아주 잘 표현한 것 같아. 하지만 난 우리말로 번역된 [나는 형이니까]도 멋진 제목이라고 생각해.  

그 다음 네 모습과 네 행동이 바로 말해주니까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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