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세상에서 가장 큰 스케치북 ㅣ 고인돌 그림책 7
박수현 글.그림 / 고인돌 / 2010년 8월
평점 :
품절
언젠가는 꼭 통일이 될 우리나라를 향해서...
1990년 10월 3일 분단국가 중 하나인 독일이 통일이 되었다는 소식을 나 역시 접했다. 꽤 어렸을 적(중고등학교 시절)에 발생한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검색을 해서 정확한 날짜를 확인하니 내가 대학 1학년 때 일인 것이다.
어느 새 세월은 유수와도 같이 흘러서 2010년이 되었다. 싱가포르에 살면서 종종 택시를 이용하는데, 간혹 택시 기사들은 우리가 탈 때면 'Korean?'이냐고 묻곤한다. 그런데 어느 날엔 한 택시기사분이 너희 나라도 빨리 통일을 해야한다며, 독일 이야기를 언급한 것이다. 나도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건만, 그렇다고 통일이 우리가 원하면 100% 그대로 이뤄지는 알라딘의 요술램프는 아니지 않는가! 하지만 외국 사람에게 그런 말을 듣는 기분이 조금 묘했다. 한국이란 나라에 대한 관심이 크고 애정어린 말로 건넬 수도 있겠지만, 언제나 나라가 반토막 나있는 상태로 있다는 건 손가락 하나가 다친 것보다 훨씬 큰 아픔이니 말이다.
요즘 뉴스를 한창 즐겨보는 아이가 10월 3일에도 뉴스를 본다고 텔레비전을 켰다. 그런데 그 날이 바로 통독 20주년이었는지 뉴스 메인에는 베를린 장벽을 허무는 장면과 함께 다양한 통독의 모습을 조명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국에 있을 때에도 아이에게 통일과 관련된 그림책을 몇 권 읽어준 기억이 난다. 지금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은 DMZ 비무장지대에 살고 있는 동물에 대한 내용이 아직까지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있다. 아이와 함께 통일이 되면 그 곳에 가서 멋진 동물도 볼 수 있다는 아이다운 단숨함도...
또 요즘엔 아이가 제법 커서인지, 함께 뉴스나 책을 보면서 북한 사람들이 생활이나 탈북자들의 실상도 대화를 할 수 있어서 반갑다. 내 아이가 이렇게 자랐구나, 생각의 폭이 넓어졌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한켠 뿌듯해진다.
그러던 중에 내가 살고 있는 가까운 곳에 한국 도서대여점이 생겼다. 집에서 책을 구해 보는 건 한계에 이르렀고, 서로 서로 도서를 교환해서 볼 수 있는 반가움에 가끔 그곳을 찾는다. 아이와 함께 우리나라 역사와 문화, 지금 현실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어서 찾은 그 곳에서 반가운 그림책을 만날 수 있었다. 바로 [세상에서 가장 큰 스케치북] 이 책이다.
우리나라가 하루라도 빨리 통일이 되기를 바라며, 또한 동일의 통일 장면을 처음으로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 지켜본 우리 아이가 딱 적절한 때에 멋진 책을 만나게 된 것이다. 독일이 통일이 되면서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것을 보며, 우리나라가 통일이 된다면 비무장지대를 마음껏 누빌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보았나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 마음 속엔 우리나라의 통일이 되는 장면과 독일 통일의 모습, 팔레스타인 장벽이 허물어지는 모습이 묘하게 매치되었다. 아마 나 뿐 아니라 우리 아이도 그런 생각을 한 것 같다.
팔레스타인 마을에 사는 단짝친구 '하루'와 '미투' , 그들은 매일매일 즐거운 놀이로 함께 보낸다. 늘 평범하게 하루하루 뛰놀며 살아가던 그들에게 어느 날 갑작스레 마을 광장을 가로막는 커다란 장벽이 생기게 된다.
장벽엔 군인들이 지키고 있고, 조그만 문이 생기고 통행증을 받으면 서로 왕래할 수 있지만, 아이들 뿐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큰 충격으로 다가온 사건이 된 것이다. 만일 학교 운동장에서 함께 놀다가 그 곳이 가로막혀 두동강이 난 모습을 상상해보라. 축구경기를 하다가 서로 얼굴조차 쳐다보지 못한 상황이랑 마찬가지인 것이다. - 아니 오히려 그것보다 훨씬 더 큰 사건이지만...
매일같이 만나던 하루와 미투가 그 장벽으로 인해 기다림의 시간을 갖게 된다. 늘상 만나서 놀던 가족같은 친구가 자신들의 눈앞에 놓인 장벽으로 인해 원하지 않던 이별을 경험하게 된 것이다. 우리 아이도 자주 묻는다. "왜 어른들은 전쟁을 하냐고?" 말로 이야기해도 되지, 왜 그렇게 무시무시한 전쟁 무기를 만들어서 사람들을 죽이는 전쟁을 하는지 의아해한다.
나 역시 어른의 한 사람으로 아이들에게 그런 아픔을 주는 게 부끄럽다. 결국은 사람들의 욕심으로 인해 전쟁이 일어나는 게 아닌가! 우리나라에 있는 휴전선과 DMZ 비무장지대도, 이젠 사라지고 없는 독일의 베를린 장벽도, 팔레스타인 장벽도 아이들의 의사와는 전혀 상관없는 어른들의 이기심과 욕심으로 인한 것이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자신들의 가치관은 정말 중요하다. 인종과 종교, 관습과 문화가 서로 다르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의 존엄성이 아닐까 싶다. 책 속에서도 함께 뛰어놀던 아이들은 서로를 그리워하면서 장벽에 하나씩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실제 이스라엘에서 팔레스타인 무장 테러를 방지한다는 목표로 세운 팔레스타인 장벽.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상황 - 역사와 문화를 알기에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평범하게 살아가던 사람들에게 친구나 가족, 친척들과 갑작스런 단절을 주는 건 굉장한 아픔이며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한 횡포가 아닌지...
장벽이 가로막은 마을의 숨막히게 흐르는 정적. 슬픔..... 미투와 하루는 장벽에 자신들의 마음을 담아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만나고 싶은 친구의 얼굴을 그림으로 그리면서 마음을 달래는 그들의 모습이 책 속에서도 진하게 느껴진다.
다른 그림책보다 비교적 커다란 판형의 책 속에는 아이들이 장벽에 그리는 그림으로 하나 가득이다.
어른의 욕심과 이기심에 반해 아이들은 순수 그 자체이다. 우리 아이도 여기서 만난 여러나라 아이들과 함께 국적이나 종교, 피부색과 언어를 따지지 않고 친구가 되었다. 이 책을 읽고 뜻하지 않게 여기서 살게 된 소중한 경험과 생각이 우리 아이가 어른이 되었을 때 다른 사람들을 포용할 수 있는 능력으로 아이가 가진 소중한 재능으로 남게 되기를 기도한다.
우리 아이가 어른이 되었을 땐 남북한이 함께 공존하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자유와 평화, 인간의 존엄성이 보다 빛을 발하는 그런 지구촌 세계의 모습을 볼 수 있기를 간절히 간절히 바란다.
언젠가는 장벽이 무너지고, 우리나라 역시 임진각 자유의 다리를 건너 북한 땅을 자유롭게 오고 갈 수 있기를, 비무장지대에서 아이들이 멋진 동물들을 자유롭게 볼 날이 있기를 손꼽아서 기다리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