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수요일

소포

가을날 오후의 아름다운 햇살 아래

노란 들국화 몇 송이

한지에 정성들여 싸서

비밀히 당신에게 보내드립니다

이것이 비밀인 이유는

그 향기며 꽃을 하늘이 피우셨기 때문입니다

부드러운 바람이 와서 눈을 띄우고

차가운 새벽 입술 위에 여린 이슬의

자취없이 마른 시간들이 쌓이어

산빛이 그의 가슴을 열어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당신에게 드리는 정작의 이유는

당신만이 이 향기를

간직하기 가장 알맞은 까닭입니다

한지같이 맑은 당신 영혼만이

꽃을 감싸고 눈물처럼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하늘이 추워지고 세상의 꽃이 다 지면

당신 찾아가겠습니다

*이성선 시인의 시 '소포'다. 누군가에게 담백한 마음 담아 전하고 싶은 소포입니다.

'시 읽는 하루'는 전남 곡성의 작은 마을 안에 있는 찻집 #또가원 에 놓인 칠판에 매주 수요일에 올려집니다.

#곡성 #곡성카페 #농가찻집 #곡성여행 #섬진강 #기차마을 #구례통밀천연발효빵 #들깨치아바타 #곡성천연발효빵

전남 곡성군 오산면 연화길 5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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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과 비, 꾸물거리던 날씨가 바지가랑이를 붙잡는다. 덩달아 마음도 걸음의 무게를 감당하느라 주춤거린다.

흐린 하늘 안에도 맑고 투명한 빛이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경험치가 쌓여 한결 느긋해진 마음자리 덕분이다. 시선이 닿는 곳에 이처럼 마알간 빛으로 미소짓는 얼굴 있다. 산을 넘는 발걸음이 늘 바람보다 앞서는 이유다.

하도 이뻐 님 보듯 자꾸만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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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초롱
보기 전에는 실물을 한번 보고 싶고 보고 난 후에는 실체를 봤기에 더 보고 싶은 꽃이 있다. 매년 먼 길을 나서는 이유다.

참 귀한 꽃이다. 다른 나라에는 없는 우리나라 특산종이며 분포지가 한정되어 있고 설악산이나 태백산 등 높은 산에서나 자라니 쉽게 볼 수 없다.

금강산에서 처음 발견되었고 꽃 모양이 청사초롱처럼 생겨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특유의 청보라색이 확실하게 마음을 사로잡는다. 못 본 사람은 있어도 한번만 본 사람은 없다는 그꽃이다.

귀한 꽃을 벗의 부름에 함께 볼 수 있었다. 초롱불 밝히듯 맑고 밝아 더 따스한 희망을 얻을 수 있길 바란다. 꽃이 전하는 위로가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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眉宇間 隱然帶出澹沱水平遠山氣色 方可與語雅致

미우간 은연대출담타수평원산기색 방가여어아치 이흉중무전벽

얼굴에 은근하게 맑은 물과 먼 산의 기색을 띤 사람과는 더불어 고상하고 우아한 운치를 말할 수 있다.

*이덕무李德懋,1741~1793)의 '선귤당농소'에 나오는 글이다. '문장의 온도'에서 한정주는 이덕무가 언급한 사람과 같은 사람을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 속의 '한스 숄'과 '조피 숄', '포이에르바하에 관한 테제' 속의 '카를 마르크스', '레닌의 추억' 속의 '블라드미르 레닌', '옥중수고' 속의 '안토니오 그람시', '동지를 위하여' 속의 '네스토 파즈', '아리랑' 속의 '김산',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속의 '신동엽',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속의 '김수영', '어느 청년 노동자의 죽음' 속의 '전태일',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속의 '윤상원', '나의 칼 나의 피' 속의 '김남주' 가 그들이다."

한울타리 안에 있는 사람들이라고는 할 수 없는 무리들을 본다. 속내는 감춘 채 명분을 앞세우나 이름 걸고 제 뜻을 밝힐 용기도 없다. 자신의 영리추구 이외 그들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버릴 때는 과감히 버려야 한다.

지금이 그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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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늦여름 더위로 지친 마음에 숲을 찾아가면 의례껏 반기는 식물이 있다. 곧장 하늘로 솟아 올라 오롯이 꽃만 피웠다. 풍성하게 꽃을 달았지만 본성이 여린 것은 그대로 남아 있다. 키가 크면 큰대로 작으면 작은대로 꽃이 주는 곱고 단아함은 그대로다.

연분홍색으로 피는 꽃은 줄기 윗부분에서 꽃방망이 모양으로 뭉쳐서 핀다. 흰꽃을 피우는 것은 흰무릇이라고 한다. 꽃도 꽃대도 여리디여린 느낌이라 만져보기도 주저하게 만든다.

어린잎은 식용으로, 뿌리줄기는 식용이나 약용으로, 비늘줄기와 어린잎을 엿처럼 오랫동안 조려서 먹으며, 뿌리는 구충제로도 사용하는 등 옛사람들의 일상에 요긴한 식물어었다고 한다.

꽃은 '무릇' 이러해야 한다는듯 초록이 물든 풀숲에서 연분홍으로 홀로 빛난다. 여린 꽃대를 올려 풀 속에서 꽃을 피워 빛나는 무릇을 보고 '강한 자제력'이라는 꽃말을 붙였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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