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철란
삶의 터전을 시골로 옮기고 주변 산을 탐색하는 즐거움이 컷다. 뒷산은 보고 싶었던 야생화들이 제법 많은 종류가 있어 사시사철 궁금한 곳이기도 했다. 산들꽃을 찾아다니게 하는 출발점이 된 곳이다.

골짜기 능선 등을 살피며 구석구석 발자국을 남기던 중 산능선 솔숲 바위아래 낯선 꽃을 만난 것이 이 사철란과의 첫만남이었다. 그후로 늦여름 산행길에 한두 개체씩 봐오던 것을 올해는 다른 곳에서 무더기로 다시 만나게 되었다.

화려함은 없다. 그저 수수한 모습으로 더 친근하게 다가오는 꽃이다. 긴 꽃대에 여러개의 꽃이 한방향으로 핀다. 입술모양의 꽃부리가 특이하다.

제주도와 울릉도 및 전라도 도서지방에서 나는 상록 다년생 초본이라는데 내륙 깊숙한 숲에서 발견 된다. 사철란과 비슷한 종으로는 붉은사철란과 털사철란, 섬사철란 등이 있다.

근처에 어리연꽃 피는 그리 크지 않은 저수지가 있어 피는 시기와 겹치니 때를 맞춰 함께 만나는 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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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화
어린시절 추억이 깃들었다. 등하교길 달달한 맛의 유혹을 물리치지 못하고 기어이 밭 언덕을 넘었다. 딱히 먹을 것도 없었던 시절이고 맛의 강한 유혹을 알기에 솜이 귀한 시절임에도 불구하고 어른들도 한두개 씩은 따 먹으라고 허락했던 것이다. 그것이 다래다.

내가 사는 이웃 면소재지 인근에 목화 재배지가 있고 이 꽃이 필무렵 면민의 날 행사 겸 묵화축제를 한다. 1363년 문익점이 원나라에서 씨앗을 숨겨온 다음부터 재배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그 식물이다.

순한 꽃이 핀다. 곱다라는 말로는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로 한없이 이쁘고 정겹다. 한지에 곱게 물을 들이고 손으로 하나하나씩 조심스럽게 접어 만든 꽃처럼 보이기도 한다.

꽃 피었다 지고 열매 맺고 그 열매의 속이 비집고 나와 눈 쌓인 것 처럼 보일 때까지 내내 눈요기감으로 충분하다.

물레를 둘리고 솜을 타서 옷이나 이불을 만드는 과정을 보며 자랐다. 많은 손질을 거치는 과정이 모두 정성이다. '어머니의 사랑', '당신은 기품이 높다'라는 꽃말이 이해되는 것은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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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롱나무꽃

백일의 붉은 절조

詠百日紅 영백일홍

皤皤白髮主人翁 파파백발주인옹

曾見花開七月中 증견화개칠월중

作客已經三十日 작객이경삼십일

還家猶帶舊時紅 환가유대구시홍

배롱나무꽃을 읊다

하얗게 센 백발의 주인 늙은이

일찍이 칠월에 꽃이 핀 것 보았지.

나그네 생활로 한 달이 지났는데

집에 돌아와 보니 예전처럼 붉게 피어 있네.

-신광한. 기재집 권9

*알고 보면 반할 꽃시(성범중ㆍ안순태ㆍ노경희, 태학사)에 마흔 번째로 등장하는 신광한(申光漢,1484~1555)의 시 "詠百日紅 영백일홍"이다.

배롱나무는 나무 백일홍을 말한다. 백일홍나무에서 배롱나무로 변화된 것으로 본다. 꽃이 백일 동안 핀다고 해서 백일홍이라고 하였다. 원산지인 중국에서는 자미화紫薇花라고 한다.

꽃은 여름에서 초가을까지 제법 오랫동안 꾳을 보여주며 주로 붉은색이 많으나 더러는 보라색, 흰색으로도 핀다.

햇볕을 좋아하는 남부수종으로 중부 이남에 심었다고는 하지만 요즘들어서는 꼭 그렇지만은 않다.

이 나무의 주요한 특징은 수피에 있다. 줄기 껍질은 붉은 갈색이고 벗겨진 곳은 흰색이다. 매끈한 줄기로 인해 줄기를 문지르면 가지와 잎이 간지럼을 타듯 흔들린다고 해서 간지럼나무라고도 했다.

위에 인용한 시나 책에 나와 있는 다른 시인 성삼문의 '비해당사십팔영도' 처럼 옛사람들이 배롱나무에 주목한 것은 오랫동안 피는 모습이었다. 조선 후기 사람 신경준 역시 마친가지다. 배롱나무는 꽃을 한꺼번에 피고 지는 것이 아니라 나누어 피어 오랫동안 붉은빛을 유지 한다고 '절도 있는 나무'라고 했다.

내가 사는 근처에 배롱나무 군락지로 유명한 곳이 있다. 꽃이 피는 때면 제법 많은 이들이 찾는 명옥헌이 그곳이다. 여름이면 한번씩 찾아 꽃그늘 아래를 서성이곤 한다.

*'알고 보면 반할 꽃시', 이 책에 등장하는 꽃시를 따라가며 매주 한가지 꽃으로 내가 찍은 꽃 사진과 함께 꽃에 대한 내 나름의 이야기를 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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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단
덕유산 향적봉을 지나 중봉으로 가는 능선에서 만났다. 어디선 본듯 한데 도무지 이름이 생각나지 않았다. 늘 그렇듯 사진을 찍어와 검색하는 과정에서 이름을 찾았고 그날이 첫 눈맞춤이었다.

날마다 여기저기서 올라오는 수많은 식물들의 사진을 보는 과정에서 이미 눈에 익었던 것을 보았다고 착각한 것이었다. 비교적 흔한 경험이라 그러려니 한다.

특이한 모습이다. 꽃은 층층으로 달리며 입술 모양으로 피는데 솜털이 많은 것이 털모자를 연상케 한다. 들여다보고 있으면 참 이쁘다.

속단續斷이란 이름은 끊어진 것을 잇는다는 뜻으로 약용식물로 사용된 것으로부터 유래되었다. 어린 잎은 나물로도 사용되어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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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갈하다'

자연스럽다는 것 속에는 사람의 손길이 닿았지만 억지를 부려 욕심내지 않은 상태를 포함한다. 또한 시간을 거스르는 것이 아닌 앞서거니 뒷서거니 그 시간과 동행하는 것이리라. 그 가운에 정갈함이 머문다.

나무둥치 위에 가즈러히 흰고무신 한컬레 놓였다. 뒷축을 실로 꼬맨자리가 어설퍼 보이지만 단정함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닫힌 문이라지만 조심스럽게 머리 위 글귀를 따라 읽는다.

살어리

살어리랏다

청산에

살어리랏다

멀위랑

다래랑 먹고

청산에

살어리랏다

토방에 놓인 고무신이 정갈한 주인의 마음자리를 닮았으리라. 굳이 청산별곡을 읊조리지 않아도 이미 마음은 청산 그 한가운데 머문다.

가만히 흰고무신을 들었다. 두 손으로 가슴에 대어보고 그 자리에 놓았다. 주인의 정갈한 마음자리가 내 마음 속으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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