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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어살고 싶은 선비의 서툰 세상나들이를 위로하는 것이 지는 매화이고, 아플 것을 지레짐작하며 미리 포기하고 한꺼번에 지고마는 것이 벚꽃이다. 있을때 다하지 못한 아쉬움으로 뒷북치며 매달리다 스스로 부끄러워 붉어지는 것이 동백이고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때면 즈려밟는 것이 진달래다. 일하는 소의 눈망울을 닮은 사내의 커다란 눈에 닭똥같은 눈물방울을 흘리게 만드는 것이 지는 산벚꽃이고 지극정성을 다한 후 처절하게 지고마는 것이 목련과 노각나무다.

몸과 마음을 아낌없이 하얗게 불사르고 난 후에도 순결한 속내를 고스란히 간직한 때죽나무와 쪽동백처럼 뒷 모습이 당당한 꽃을 가슴에 담는다.

늘 다녀서 익숙한 계곡에 들던 어느날, 다 타버리고 남은 희나리 처럼 물위어 떠 있던 꽃무덤을 발견했다. 순간,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가슴 깊은 곳에서 밀려나오는 먹먹함에 숨죽이고 꼼짝도 못한 채 물끄러미 꽃무덤만 바라보며 서 있었다.

그때부터 시작된 꽃무덤 찾기가 올 봄에도 이어진다. 매화의 수줍은 낙화로 부터 시작된 꽃무덤 찾기는 동백에서 벚꽃과 진달래, 철쭉으로 이어졌다가 모란에서 주춤거린다. 때죽나무와 쪽동백에서 다시 시작되어 여름철 노각나무에 이르러 한 고개를 넘는다. 찬바람 불고 눈이라도 내리는 날이면 어김없이 차나무꽃 지는 모습을 찾는 것으로 마무리 한다.

숲을 어슬렁거리며 꽃무덤 찾는 발걸음 마다 꽃의 정령이 깃들어 내 가슴에서 다시 꽃으로 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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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窓을 내다'

들숨과 날숨의 통로를 여는 일이다. 풍경을 울려 그리운 이의 소식을 전하려고 오는 바람의 길이고, 대지의 목마름을 해갈할 물방울이 스며들 물의 길이다. 한곳으로만 직진하는 일방통행이 아니라 가고 오는 교감의 길이며, 공감을 이뤄 정이 쌓일 여지를 마련하는 일이다.

내다 보는 여유와 들여다 볼 수 있는 배려가 공존하고, 누구나 그 존재를 알 수 있는 물리적 공간이지만, 마음을 내어준 이에게만 허락된 정情의 자리이기도 한ᆢ.

내게 있어 그 창窓은 산과 들에 피는 꽃이고 힘겹게 오르는 산이며 자르고 켜는 나무고 마음을 드러내는 도구인 카메라며 내 안의 리듬을 찾는 피리다. 있으나 있는지 모르고 지내다 초사흘 저녁과 그믐날 새벽이면 어김 없이 찾게 되는 달이며,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며 사숙하는 이름을 만나게 해준 책이다. 무엇보다 미소만으로도 이미 충분한 바로 당신이다.

그 창窓에 나무새 한마리 날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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煮茗香 자명향

呼兒響落松蘿霧 호아향락송나무

煮茗香傳石徑風 자명향전석경풍

아이 부르는 소리는 송나를 스치는 안개 속에 들려오고

차 달이는 향기는 돌길의 바람을 타고 전해오네.

*진각국사가 스승인 보조국사가 있는 억보산 백운암을 찾아 갔을 때, 산 아래에서 스승의 목소리를 듣고 읊은 시라고 한다.

송나松蘿를 쓴 스님의 모습에는 이미 차향 가득할테니 들고나는 모든 소리 역시 차향이 배어있으리라. 차 달이는 향기라는 단어에 매료되어 찾아본 글귀다.

꽃이 떨어지는 것은 땅 위에서 한번 더 피려는 것이다. 꽃 떨어진 자리에 바람이 일어 다시 피어난 꽃에 숨을 더한다. 물에도 젖지 않은 꽃에 시선이 머무는 이유는 그리운이에게 마음을 담아 '헌화가'를 부르기 위함이다

자명향 煮茗香,

'차 달이는 향기'를 볼 수 있다면 헌화가를 부르는 마음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꽃진 자리에 꽃향기 피어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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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의 슬픔은 그날로 끝났고 그날의 즐거움도 그날로 끝났다"

*문장 하나에 걸려넘어진다. 정채봉 선생님의 "눈을 감고 보는 길"이라는 책의 머릿말의 일부다. 우연히 내게 온 오래된 이 책은 초판본이 2001년이니 20여 년을 건너와 손에 들어온 셈이다. 다시 새로운 글로는 만나지 못할 일이기에 아주 특별한 인연이라 여긴다.

내게 화두 처럼 함께해 온 생각과 맥이 통하는 단어나 문장을 만나면 바짝 긴장하거나 반대로 한없이 풀어지는 기분을 경험한다. 이제는 단어나 문장을 벗어나 그런 기분을 느끼는 영역이 다양해지고 있다.

"가슴에는 늘 파도 소리 같은 노래가 차 있었고 설혹 슬픔이 들어왔다가도 이내 개미끼리 박치기하는, 별것 아닌 웃음거리 한 번에 사라져 버리곤 했다."

머릿말에 바로 이어지는 문장이다. 선생님은 바다를 처음 본 그것도 동해바다의 특별한 느낌을 평생 간직했다고 한다. 이제 바다의 넓고 깊은 품에 안겨계실까?

'어제 같은 오늘이면 좋고 오늘 같은 내일을 소망한다'

어디서 차용한 것인지 내가 쓴 것인지는 이미 잊어버렸다. 하루에도 여러번씩 되뇌이는 이 문장이다. 위의 정채봉 선생님의 문장과 그 맥이 서로 다르지 않다고 본다.

"그날의 슬픔은 그날로 끝났고 그날의 즐거움도 그날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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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에 쌓여 키워온 마음이 세상을 향해 기지개를 켠다. 안으로만 안으로만 쌓아둔 속내가 더이상 어쩌지 못하고 비집고 나온 것이리라. 연노랑 꽃잎을 마저 열지도 못하면서 고개까지 떨구었지만 의연함을 잃지는 않았다.

얼마나 다행인가.

숨죽여 내리는 비라도 쌓이면 망울지게 마련이듯 감춘다고 해도 감춰지지 않은 것들이 부지기수다.

들키면 안될 무엇이 있는 것일까.

소리도 없는 비가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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