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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으로'
저절로 피고 지는 것이 있을까? 보이지 않는 수고로움을 기꺼이 견디면서 이겨나가야 비로소 때를 만나 꽃을 피울 수 있다.

여름 대밭의 주인공으로 피어날 때를 기다린다. 적당한 그늘과 습기, 온도가 만들어 주는 최적의 환경이 만들어질 때를 기다려 비로소 문을 연다. 이미 시작되었으니 오래걸리지 않을 것이다. 화려한 치마를 펼치고 자신만의 리듬으로 춤을 출 때가 곧 오리라는 것을 안다.

뒷담을 넘어온 저녁 공기가 계절이 변하고 있음을 은근하게 알려온다. 풀벌레 소리 또한 박자를 맞추어 그게 맞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기다림이란 지극한 그리움을 가슴 속에 가득 쌓아두는 일이다. 하여, 이 또한 수고로움을 견뎌내야 한다. 기다림은 언제나 먼 훗날의 이야기며 늘 내 몫이라지만 지나고 보면 또 지극히 짧은 시간 아니던가. 아프고 시리며 두렵고 외로운 이 수고로움이 가슴에 가득차면 그대와 나 꽃으로 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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描山描水總如水 묘산묘수총여수
萬草千花各自春 만초천화각자춘
畢竟一場皆幻境 필경일장개환경
誰知君我亦非眞 수지군아역비진

신처럼 산을 그리고 물을 그리네
온갖 화초가 다 활짝피어 있네
피경 이 모두가 한 바탕 꿈
너와 나도 참 아닌 것을 누가 알리오

*조선사람 김수온(金守溫, 1410~1481)의 시다.

무엇이 그리 바빳을까. 그렇게 열심히 살았던 이유가 이리 황망하게 가려고 그랬나 싶다.

여름날 소나기 지나가듯 먼 발치서 겨우 몇번 만났다. 딱히 이렇다 할 인연이 있는 것도 아닌 나에게도 이리 안타까움으로 가슴이 먹먹한데 그를 가까이 두었던 그 많은 이들은 어떨까. 앞으로 한동안 지리산 기슭이 텅 빈듯 공허할 것이다.

이제 나는 바래봉이나 노고단, 벽소령 등 지리산 소식을 누구에게서 들을 수 있을까. 그를 떠올리게 하는 꽃을 찾다가 그가 자주 찾던 지리산 노고단 오르는 길에서 만난 노각나무 꽃을 떠올렸다. 온몸을 통째로 떨구었으나 살아 생전 그 모습 그대로를 간직한 그 삶과 이토록 닮은 꽃이 또 있을까 싶어 두손 모아 그 앞에 바친다.

"피경 이 모두가 한 바탕 꿈
너와 나도 참 아닌 것을 누가 알리오"

고영문 선생님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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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초앓이
김동명의 시 "파초"에서 시작되었을까. 파초앓이는 내 뜰을 마련하면서 부터 표면화 되었다.

내가 졸업한 국민학교 화단의 파초로부터 시작된 파초 구경은 강희안의 양화소록 속 파초, 김홍도ㆍ장승업ㆍ정조의 그림에서 조익이나 송시열 등의 시에 등장하는 옛사람들의 파초 사랑을 부러워하다가 결국 현실의 파초 실견으로 이어진다.

나주 가운리 파초, 담양 삼인산 아랫마을 파초, 쌍계사 파초, 송광사 불일암 파초. 섬진강가 파초ᆢ. 크던 작듼 상관없이 파초가 보이면 무조건 그 앞에 서서 요모조모 살피기를 반복하며 파초앓이를 키워왔다.

백방으로 구하려고 하다 겨우 얻은 것이 삼인산 아랫마을에 파초를 심은 사람에게서다. 두 뿌리를 얻어 하나는 다른 사람 집에 심어주고 하나는 내 뜰에 심었다. 두해동안 그 커다란 잎을 보이고는 사라졌다. 내가 심어준 다른 집에서는 그후로도 계속 자라 이게 무슨 일인가 하고 괜히 심술을 부리기도 했다. 그 파초가 사라지고 난 후에 다시 시작된 파초앓이가 몇년 지나 어린 뿌리를 얻고서 날이면 날마다 아침 저녁으로 눈만춤 하고 있다.

늦가을 마다 얼어죽지 않게 하려고 무진 애를 쓴다. 또 봄이 되면 싹이 나오기를 얼마나 기다리는지 화단이 발자국으로 다져진다. 그 파초가 허리만큼 키를 키웠다. 그 옆에 작은 녀석을 동반했으니 보는 재미는 두배가 되었다.

이런 파초앓이에 불을 지핀 작품이 이태준의 산문 "파초"다. 글 속에 등장하는 파초를 아끼는 마음에 백만배 공감하며 여름이면 잊어버리지 않고 찾아서 읽는다.

"파초는 언제 보아도 좋은 화초다. 폭염 아래서도 그의 푸르고 싱그러운 그늘은, 눈을 씻어 줌이 물보다 더 서늘한 것이며 비 오는 날 다른 화초들은 입을 다문 듯 우울할 때 파초만은 은은히 빗방울을 퉁기어 주렴 안에 누웠으되 듣는 이의 마음 위에까지 비는 뿌리고도 남는다. 가슴에 비가 뿌리되 옷은 저ㅈ지 않는 그 서늘함, 파초를 가꾸는 이 비를 기다림이 여기 있을 것이다."

섬진강 어느집의 파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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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情이 든다는 것'
떨어진 꽃이 다음생으로 건너가는 중이다. 꽃은 피고지는 매 순간을 자신만의 색과 향기로 온몸에 생채기를 남겨 기록함으로써 다음생을 기약하는 자양분으로 삼는다.

핀 꽃이 떨어져 다시 피었다가 땅으로 스며드는 것을 무심한듯 끝까지 지켜본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정情이 든다는 것도 상대방의 그림자에 들어 나 있음을 억지로 드러내지 않는 것과 서로 다르지 않다.

하여, 정情이 들었다는 것은 각자 생을 건너온 향기가 서로에게 번져 둘만의 새로운 향기를 만들어내는 것임을 아는 일이다.

스며든 향기에 은근하게 잠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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觀其所友 관기소우
觀其所爲友 관기소위우
亦觀其所不友 역관기소불우
吾之所以友也 오지소이우야

그가 누구를 벗하는지 살펴보고,
누구의 벗이 되는지 살펴보며,
또한 누구와 벗하지 않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바로 내가 벗을 사귀는 방법이다.

*연암 박지원의 문집 '연암집'에 나오는 문장이다. 이 글은 담헌(湛軒) 홍대용(1731~1783)이 중국에 들어가 사귄 세명의 벗인 엄성, 반정균, 육비와의 만남을 기록한 글 '회우록'을 지어 연암에게 부탁한 서문에 나오는 글이다. 홍대용과 이 세사람의 우정은 당시 널리 알려진 것으로 대를 이어지며 사람 사귐의 도리로 회자되었다.

산수국이 피는 때다. 그 독특한 모양새와 색감으로 필히 찾아보는 꽃이다. 산수국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모습 중에서 이 모습을 놓치지 않고 담는다. 연인이나 부부 또는 형제나 자매 등 보는 이의 관심도에 따라 여러가지 해석이 가능할 것이다. 매번 찾아 눈에 담는 나는 '벗'으로 받아들인다.

흰머리 날리는 때에 만나 별다른 공통점도 없지만 어우러짐이 좋다. 굳이 공통분모를 찾자면 꽃이다. 꽃이 불러 꽃에서 얻은 모아 향기를 나눠간다.

만나는 시간의 쌓여 자연스러움이 베어나는 것만으로 이해하기에는 무엇이 더 있다. 일부러 애쓰지 않지만 그렇다고 속수무책으로 손놓고 있지도 않다. 다 아는듯 하지만 따지고 보면 그렇지도 않다. 꽃을 사이에 두었다지만 그 근본 바탕은 성정이 비슷한 것이리라. 여기에 배려가 더해지니 서로를 물들이고 있다.

농담濃淡, 차이가 있어 어울리고 그 차이로 더욱 빛나는 사이다. 물들고 베어나는 모든 것이 자연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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