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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우였다. 지체한 시간만큼 늦은 출발은 해지는 그늘이 아래 놓인 꽃을 보는 것은 아닌지 염려했다. 다소 서들러 들어선 길에서 조급한 발걸음에도 지난 기억을 되살려 꽃자리를 더듬어 갔다.
 
여기쯤 이었는데ᆢ 혹, 지나친건 아닐까 하는 마음에도 불구하고 그자리에서 별일 없다는 듯이 환하게 웃는 모습이 반갑기만 했다. 이미 그늘에 들어 다소곳하게 있는 꽃도, 오후 막바지 햇살을 받아 더욱 강하게 스스로를 드러내고 있는 꽃도 모두가 이쁘기만 하다.
 
저절로 붉어졌으랴
주고받는 마음 조각들이
도중에 만나 서로를 건드렸다
 
외길이어도 다르지 않다
무심할 것만 같은 바위도
노을에 불타오르지 않던가
 
온도를 가진 생명인데
어찌 붉어지지 않을 도리가 있으랴
 
가슴에 스미는 온기가
일을 낼 것만 같은 가을이다
 
늦었을거라는 염려가 무색하게 좋은 상태의 꽃과 적당한 빛이 있어 눈호강하기에 좋았다. 먼길 돌아들었지만 수고로움을 다독여주는 꽃과의 눈맞춤이 있어 온전한 하루를 보냈다.
 
훔쳐본 금강초롱꽃의 속내가 꼭 이렇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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安否안부

處暑처서라더군요. 가을에 대해 물었으나 답을 듣지는 못했습니다. 산 너머엔 비 온다고 하고 강 건너에는 폭염이라고 하고 바다 건너엔 천둥번개 친다고 하지만 이곳은 그저 흐린 하늘에 간혹 바람이 지나갈 뿐입니다.

긴, 여름이라 힘들었다 말하지만 짧은 가을 맞이를 주저합니다. 여름은 비록 길지만 옅어서 건널만 했는데 짧은 가을의 깊은 수렁을 어쩌지 못하는 심사가 이렇습니다.

처서라고 희망을 걸어보는 것은 곧 金風금풍이 전하는 蕭瑟소슬한 기운에 기대고 싶은 마음 때문이겠지요. 북으로 열린 들판 너머는 늘 아득하기만 합니다.

어쩌면 보내고 맞이하는 것이 사람의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입니다. 그러기에 그저 바람이 일어나는 쪽으로 비스듬히 고개를 돌립니다.

나는 잘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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他山之石 타산지석

誰謂他山石 수위타산석
可以攻美玉 가이공미옥
玉性溫且潤 옥성온차윤
石品頑更碌 석기완경록
精麤旣不倫 정추기불윤
軋磨又太酷 알마우태혹
攻之不以漸 공지불이점
殘缺因撞觸 잔결인당촉
玉人撫之泣 옥인무지읍
深藏在空谷 심장재공곡
塵埋色逾姸 진매색유연
皎潔光朝旭 교결광조욱
安得博物子 안득박물자
把贈申戒勖 파증신계욱
不願求善賈 불원구선가
唯思甘韞匵 유사감온독

누가 타산지석으로
아름다운 옥을 다듬을 수 있다고 했나
옥은 본성이 따뜻하고 빛나지만
돌은 성품이 완고하고 거칠다네
정밀함과 거칢이 이미 다른데
삐걱대며 가는 것이 또 너무 가혹하네
다듬기를 점차적으로 하지 않으면
부딪쳐서 깨어지고 만다네
옥인이 어루만지며 울다가
빈 골짜기에 깊이 숨겼는데
진흙 속에 묻혀도 빛은 더욱 아름다워
맑고 깨끗함이 아침 햇살에 빛나네
어디서 박학다식한 사람을 얻어
이것을 주어 경계하고 힘쓰게 할 수 있을까
좋은 값에 파는 것도 원치 않으니
그저 고이 상자에 넣어 두고 싶네

*조선사람 조임도 (趙任道 1585∼1664)의 글이다. 우연히 만난 글에서 내가 사는 세상이 보인다.

모난 돌이 자신을 옥이라고 우기는 세상이다. 그 모난 구석이 자랑인양 더 모나게 굴고 있다. 여기에 세상 온갖 돌들도 덩달아 옥인양 아우성이다. 이런 아우성에는 필히 곡절이 있을텐데 그것은 자신이 모난 돌임을 숨기고자 하는 꼼수가 숨어 있다. 그 꼼수가 들어날까봐 목소리를 더 높인다.

세상 사람들이 옥으로 쓰고자 주목하는 이에게 온갖 돌들이 옥이 아니라고 고개를 들이밀며 소리를 높이고 있다. 옥을 밀어낸 자리가 돌이 차지할 자리가 아닌 것을 알고도 억지를 부리는 것이라는 것을 모난 돌들만 모른다.

정 맞을 일만 쌓아가는 모난 돌들의 아우성이 아무리 높아도 돌은 옥이 될 수 없다. 그 아우성이 옥의 가치만 더 높여준다는 것을 알기나 할까?

대의명분은 이미 사전에나 있는 말이 되었고 자기 밥그릇 챙기기가 최우선인 돌들의 세상에도 결국은 여리고 순한 생명 앞에 무릎 꿇게 된다.

여리고 순한 생명들이 아름다운 세상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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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리디여린 것이 굳은 땅을 뚫고 세상으로 나올 수 있는 힘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언 땅, 모진 비바람, 작렬하는 태양 아래서도 꽃을 피우는 일의 근본적인 힘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생명을 가진 모두는 저마다 주어진 사명을 다하기 위해 굳건히 설 힘을 갖고 태어난다. 그 힘은 자신을 지켜줄 무엇이 있음을 태생적으로 믿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설령 비바람에 꺾일지라도 멈출 수 없는 그 힘이다.

솔나리가 꽃대를 올렸다. 아직 남은 힘을 다해 꽃봉우리를 더 내밀어야 하기에 먼 길을 준비하듯 다소 느긋할 여유도 있어 보인다. 어느 한 순간도 꽃으로 피어난 그 때를 잊지 않기에 가능한 일이다.

꽃 피고 열매 맺는 수고로움을 환한 미소와 향기로 견디는 것은 벌, 나비, 바람 등에 의지해 사명을 다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이 믿음으로 멈추지 않을 수 있다.

그대 또한 가슴 속에 그런 믿음을 품었다. 뜨거운 태양 아래서나 비바람 몰아치는 중심에서도 굳건히 버틸 수 있는 것, 그 믿음이 삶의 배경이다.

그 힘을 믿기에 든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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蟬說 선설
매미가 우는데 소리가 등에서 나온다. 무릇 천하에 소리를 내는 동물은 모두 입으로 소리를 내는데, 매미만 등에서 내는 이유는 무엇인가? 입으로 소리를 내는데도 사람들이 알지 못할 뿐인가, 아니면 매미라는 물건이 미소해서 이목구비(耳目口鼻)의 기관을 갖추지 못해서 그런 것인가.
 
벼룩과 이와 개미를 보면 지극히 자질구레한데도 입을 가지고 있고, 지렁이와 굼벵이를 보면 지극히 굼지럭거리는데도 입을 가지고 있다. 소리를 내지 않는 것들도 입을 가지고 있는데, 매미처럼 맑고 기이한 소리를 내는 것이 입으로 소리를 내지 못한다면 어찌 이상한 현상이 아니겠는가.
 
옛사람이 “매미는 이슬을 마신다.”라고 하였으니, 매미에게도 입은 있는 것이다. 입이 없다면야 사람들이 물론 이상하게 여길 것도 없겠지만, 입이 있는데도 소리가 등에서 나와야만 사람들이 “왜 그럴까?” 하고 이상하게 여길 수 있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말이 많은 것을 싫어해서 하늘이 매미의 입을 일부러 함봉(緘封)하여 경계한 것은 아닐까. 이에 대해서 느껴지는 바가 있기에 이렇게 써 보았다.
 
*조선사람 녹문(鹿門) 임성주(任聖周, 1711~1788)가 남긴 '매미에 대한 설'이다.
 
문득 돌아보니 어느날부터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때를 지나 제 몫을 다한 까닭이리라. 그 울음소리로 때가 되었음을 알았고 그 울음소리로 때가 무르익었음도 알았는데 그 울음소리가 사라지니 다른 때에 이르렀음도 알겠다. 이처럼 소리에 주목해 일상의 때를 구분하게 해주는 것이 얼마나 될까. 羽化우화하여 한철을 제 멋으로 마음껏 보냈으니 모두가 登仙등선 하였길 빈다.
 
계절을 이끌어가는 비가 차분하게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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