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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줄가리'
꽃이라고 하면 쉽게 활짝 피어있는 상태를 떠올리기 마련이다. 꽃이 주목받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만개한 꽃이 주는 특유의 느낌을 통해 전해지는 공감에 있을 것이다. 하지만 꽃 한송이는 수많은 상황에 맞물리는 다양한 노력에 의해 피어난다.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게 저 혼자 둘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낱"

*장석주는 시 '대추 한 알'에서 수많은 상황에 맞물리는 다양한 노력에 주목했다. 결과에 집착한 나머지 잊었거나 때론 외면한 과정의 중요성에 대한 깨달음을 여기서도 만난다.

나팔꽃이 환하게 꽃을 피워다가 진다. 조금씩 움츠려드는 모습이 꽃만큼 아름답다. 누구나 보지만 누구도 보지 못하는 순간이 있기 마련이듯 어느 한순간도 꽃 아닌 때가 없음을 다시 확인한다.

꽃을 피우고 열매 맺는 것을 보며 딱히 대줄가리와 여줄가리를 구분할 필요가 있을까. 어떤 일을 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일에 딸린,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일'을 뜻하는 말이 '여줄가리'다. 이 여줄가리에 반대되는 말로 '어떤 사실의 중요한 골자'를 일컫는 '대줄가리'가 있다. 대줄가리에 주목하다보면 여줄가리의 수고로움을 잊고 말았던 지난 시간들이 가슴에 머문다.

지는 자리가 따로 없음을 몸으로 말하고 싶은 것일까. 나팔꽃의 강단지게 다문 꽃잎에서 여줄가리의 아름다움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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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몸살

멀리서 산 기슭만 보여도 가슴이 뛰고 머뭇거리는 발걸음이 차마 떨어지지 않는다. 꽃이 피어날 몸짓을 감지한 까닭이다. 꽃벗들의 꽃소식 들려오기도 전에 몸은 이미 꽃몸살을 앓기 시작한다.

한겨울 눈이 내리면서부터 시작된 매화꽃 향기를 떠올리며 남쪽으로 난 창을 열고 물끄러미 바라보듯, 여름 끝자락에 이슬이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땅으로만 내려앉을 때가 되면 서쪽으로만 고개를 돌린다.

이때 쯤이면 아무도 찾지않을 산기슭에 홀로 또는 무리지어 꽃수를 놓고서도 스스로를 비춰볼 물그림자를 찾지 못해 하염없어 해지는 서쪽 하늘만 바라볼 고귀한 꽃이 눈 앞에 어른거리만 한다.

안개가 마을의 아침을 품는 때가 오면 꽃몽우리 맺혀 부풀어 오를 것을 이미 알고 있기에, 이제나 필까 저제나 필까 꽃소식 기다리다 고개가 다 틀어질지경에 이르러서야 그곳에 발걸음을 내딛는다. 다 꽃을 마음에 둔 이들이 꽃과 눈맞춤하기 위해 이 꽃몸살은 통과의례다.

몇년을 두고 뜰에 들이고자 애를썼던 꽃이 지난해에 드디에 자리를 잡았다. 올해 싹이나고 그 끝에서 꽃봉우리가 맺혔다. 아침 저녁으로 눈맞춤하며 잘 자라고 있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 일상의 큰 즐거움이었다.

사라지는 것은 순시간이더라. 다시, 꿈을 꿔야 하는지는 아직 모르겠다. 뒷산 가까이 두고 살피는 꽃의 더딘 움직임이 간절함을 더하는 과정을 누리는 것이 내몫인가 싶기도하다.

이곳 저곳에서 들리는 물매화 피었다는 소식에 자꾸 뒷 산만 바라본다. 오랜 꽃몸살 끝에 첫만남의 그곳에서 봐야 비로소 본 것이기에 아직은 더 꽃몸살을 앓아야 한다.

목이 늘어나는 것은 너 만의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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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또리 저 귀또리 어여쁠사 저귀또리

지는 달 새는 밤에 절절(節節)이 슬피 울어 사창(紗窓)에 여윈 잠을 살뜰이도 다 깨운다

네 비록 미물(微物)이나 무인동방(無人洞房)에 내 뜻 알기는 너뿐인가 (하노라)

https://youtu.be/M8m2qwVM114

*병와가곡집에 나오는 작자 미상의 사설시조다. 임을 그리는 여인의 마음을 담았다고 하나 어찌 여인만이 임을 그리워할까. 국어교고서에도 실렸다는데 언제적인지 내 기억에는 없다.

국가무형문화재 제30호 가곡 예능보유자 조순자 선생님이 알려주신 덕분에 찾아본다. 음원을 찾다가 발견한 선생님의 스승님이라는 홍원기 선생님의 남창가곡으로 거듭 반복해서 듣는다.

귀뚜라미 소리가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모르고 더욱 애잔해지는 시절이다. 어디 숨었는지 모습을 찾을 수가 없어 우는 소리에 더 주목하게 된다. 깊어가는 계절 만큼이나 깊숙히 스며드는 가을밤의 정취에 썩 잘 어울린다.

속내를 풀어내기는 귀뚜라미 뿐만은 아닌가보다. 흰독말풀도 하얗게 세어버린 속내를 풀어내는 중이다. 귀뚜라미나 흰독말풀이나 임을 그리워하는 당신이나 기울어가는 달이 건네는 위로가 더욱 따뜻한 밤이 될듯 싶다.

가을엔 심장의 울림에 귀기울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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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청득심以聽得心'
귀 기울여 경청하는 일은 사람의 마음을 얻는 최고의 지혜라는 뜻으로 논어에 나오는 말이다.

마음을 얻기 위해 귀 기울인다는 것의 본 바탕은 공존共存에 있다. 홀로 우뚝 서 자신만을 드러내기 보다는 곁에서 함께 한다는 의미로 이해한다. 이는 너그러운 마음을 가질 때 가능해지는 일이며, 너그러운 마음 자세를 관용寬容이라 한다.

관용에는 네가지 단계가 있다고 한다.
첫번째는 '나와 다른 것을 이해하는 것'
두번째는 '나와 다른 것을 인정하는 것'
세번째는 '나와 다른 것을 받아들이는 것'
네번째는 '나와 다른 것과 함께하는 것'이다.

자신의 장점을 모르면 세상살이가 팍팍할 수밖에 없다. 반대로 자신만의 맛과 멋을 다른 이와 더불어 누릴 수 있다면 모두가 추구하는 행복한 삶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마음을 얻고자 하는 근본 바탕은 공존이 있고, 상대방의 말을 귀 기울여 듣는 것이 그 시작이다.

늦둥이 능소화가 담장을 넘어오는 가을바람에 귀기울이고 있다. 벗과 함께하니 예전에는 듣지 못했던 이야기까지 들을 수 있으리라.

이 가을엔 나에게 오는 이의 심장 소리에 귀 기울여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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諂 첨 (아첨할 첨),
듣기 좋은 말 속에는 언제나 함정이 있다.

"아첨을 하는 데도 방법 있다. 몸을 가지런히 잘 정돈하고, 얼굴 표정을 점잖게 하고, 명예와 이익에 아무 관심도 없으며, 아첨하는 상대방과 사귀려는 마음이 없는 듯하면서 자연스럽게 아첨하는 것이 최상이다.

올바른 말을 간곡하게 하는 것으로 자신의 속마음을 드러내 보여 상대방의 환심을 산 다음 그 틈을 잘 이용하여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는 것이 중등의 아첨이다.

아침저녁으로 발바닥이 다 닳도록 문안을 여쭙고 돗자리가 다 떨어지도록 뭉개고 앉아서 상대방의 입술을 쳐다보고 얼굴빛을 살핀 다음 그 사람이 하는 말마다 다 좋다고 하고 그 사람이 하는 일마다 칭찬하는 것은 최하의 아첨이다. 그러한 아첨은 듣는 사람이 처음에는 좋다고 하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오히려 싫증을 내기 때문이다. 싫증을 내면 아첨하는 사람을 비루하다고 여기게 되고 종국에는 자신을 갖고 노는 게 아닌가 의심하게 된다."

*조선사람 박지원(朴趾源 1730~1805)의 마장전馬駔傳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마장전은 "말을 거래하는 사람이 전하는 이야기로 선비들의 친구사귐이 부패하여 말거간꾼 보다 못함을 풍자한 소설"이다.

아첨인지 아닌지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 아첨하는 이야 목적하는 바를 얻기 위해서니 지탄 받아 마땅하더라도 문제는 아첨을 받는 이도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는 것이다. 달콤한 말에 취하면 사리분별의 눈이 없어지게 되어 결국엔 스스로 덫을 찾아 들어가게되는 처지에 놓이기 십상이다.

또한, 자리가 주는 책임 보다는 자신이 오른 자리의 달콤함을 누리기에 여념이 없다면 이것 또한 아첨이 아닐까. 스스로가 자신에게 아첨하는 것, 박지원도 놓친 아첨 중에서도 최악의 아첨이 버젓이 일어나고 있다.

달콤함에 취한 벌의 최후는 어떻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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