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함께 글을 작성할 수 있는 카테고리입니다. 이 카테고리에 글쓰기

山頂花 산정화

誰種絶險花 수종절험화

雜紅隕如雨 잡홍운여우

松靑雲氣中 송청운기중

猶有一家住 유유일가주

산꼭대기에 핀 꽃

누가 심었느냐!

저 험한 절벽 위에

붉은 꽃잎 빗방울처럼

쏟아져 내린다.

구름바다

푸른 소나무 사이로

어럽쇼!

집 한 채 숨어있구나.

*조선사람 자하紫霞 신위申緯(1769~1845)의 시다. 그가 "춘천 부사 시절 어느 봄날 청평산으로 나들이 갔다가 절벽 위 울긋불긋한 꽃잎들을 보았다. 깊은 산중에 누가 꽃을 저리도 많이 심어놓았을까. 어라 숲 한쪽에 누가 볼세라 오두막이 한 채가 숨어 있다. 집주인이 세상을 피해 숨었을망정 심지 않으면 안 될 만큼 꽃을 좋아하는지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을 산중에 심었으련만 오늘 들키고 말았다. 남의 비밀스러운 정원을 들여다 봤으니 가던 길 서둘러야겠다." 시를 해설한 안대회 선생의 심사가 절창이다.

사시사철 자연이 비밀스럽게 가꾼 꽃밭을 염탐하러 다니는 입장에서 그냥 넘어가지 못하는 무엇이 있다. 늘상 엿보는 것만은 아니다. 때론 비밀스러운 그 꽃밭의 꽃이 먼저 눈맞춤하자고 나를 불러들이기도 한다.

꽃이 전하는 꽃마음이 내 마음과 통하는 지점 어딘가에 비밀스러운 꽃밭 하나를 가꿀 것이다. 좋은 벗에게 꽃밭 가는 길을 슬그머니 흘릴 것이다. 가던 길 서둘지 않아도 된다는 말과 함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騷騷木葉下江皐 소소목엽하강고
黃黑天光蹴素濤 황흑천광축소도
衣帶飄颻風裏立 의대표요풍리립
怳疑仙鶴刷霜毛 황의선학쇄상모
不亦快哉 불역쾌재
낙엽은 우수수 강 언덕에 떨어지고
우중충한 날씨에 흰 파도가 넘실댈 때
옷자락 휘날리며 바람 속에 섰노라면
하얀 깃을 쓰다듬는 선학과도 같으리니
그 얼마나 상쾌하랴
 
*조선사람 다산 정약용(丁若鏞)의 不亦快哉行 불역쾌재행 연작시 20수 중에 일곱번째 시다. 다소 답답한 상황에서 반전의 묘미를 살려 끝내 얼마나 통쾌한가를 알게 한다.
간밤에 쏟아지던 비가 그치고 하늘을 덮은 구름이 사이로 따사로운 햇볕이 난다. 움츠렸던 가슴을 펴며 하늘 한번 쳐다보니 그저 고마울 뿐이다. 내친김에 한수를 더 읽어보자. 열아홉 번째 시다.
 
琴歌來趁月初圓 금가래진월초원
無那頑雲黑萬天 무나완운흑만천
到了整衣將散際 도료정의장산제
忽看林末出嬋娟 홀간임말출선연
不亦快哉 불역쾌재
달 둥글면 거문고 타고 노래하기로 하였는데
어찌할까 온 하늘을 먹구름이 다 덮다니
옷을 모두 챙겨 입고 헤어지려 할 즈음에
숲 끝에 얼굴 내민 예쁜 달을 보게 되면
그 얼마나 반가울까
 
*기대가 허물어지나 싶었는데 끝내 그 아쉬움을 달래줄 상황을 만나니 반가움은 배가 된다. 일어섰던 자리에 그대로 앉아 심중에 담아둔 회포를 풀어내 긴밤을 지세워도 좋으리라.
 
*사진은 다랑쉬오름에서 바라본 아끈다랑쉬오름과 성산일출봉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붙잡고 싶은 가을의 끝자락이라고 하자는 마음과는 달리 코끝이 찡하는 차가움을 기다리는 것은 순리를 거스르지 않으려는 몸의 반응이리라.

고로쇠나무 잎이 마지막 볕을 품는 것 또한 이와 다르지 않음을 안다. 왔던 곳으로 돌아가 세상에 나와 시나브로 품었을 시간을 되돌려주기 위해 마지막 의식이다.

볕 좋은날, 절기를 외면하려는듯 햇볕이 가득하다. 조금은 거리를 두었던 사이가 가까워져야 할 때임을 아는지라 귀한 볕을 한조각 덜어내어 품에 가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소설小雪이다.
이때부터 살얼음이 잡히고 땅이 얼기 시작하여 점차 겨울 기분이 든다고 한다. 그럴듯한 서리 두어번 내렸으나 아직 따뜻한 햇볕이 간간이 내리쬐어 소춘小春이라고도 불린다는 이 말에 더 가깝다.
 
반가운 새들이 날아왔다. 큰 날개로 유유자적 하늘을 선회하는 독수리떼도 왔으니 때는 분명 겨울로 들었다는 것을 안다.
 
비가 오려나 싶다.
기온으로 봐선 눈은 아직 멀은듯 한데 하늘의 일이라 짐작만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볕 좋고 바람 적당한 날
무엇하나 서두를 것 없다는 듯
숲은 고요하다
 
고로쇠나무에 앉은 늦가을이
바람의 유혹에 헛눈 팔다
저와는 상관도 없는
어설픈 함정에 빠졌다
 
머뭇머뭇 딴짓하다
붙잡힌 것은
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