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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과 바람과 기온이 어우러져

지극한 마음을 모았다.

당신과 내가 만나

정성으로 생을 엮어가는

그것과 무엇이 다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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初七日戊子 초칠일무자

萬事思量無係戀 만사사량무계련

惟有牙籤一癖餘 유유아첨일벽여

安得一日如一年 안득일일여일년

讀盡天下未見書 독진천하미견서

12월 7일의 일기

인간만사 아무리 떠올려 봐도

마음에 끌리는 것 하나 없지만

한 가지 고질병은 여전히 남아

아첨이 꽂힌 책을 사랑한다네

일년처럼 긴 하루를

어찌하면 얻어 내어

보지 못한 천하의 책을

남김없이 읽어볼까

*조선사람 통원(通園) 유만주(兪晩柱 1755~1788)가 서른 살 때인 1784년 12월 초이레 아침에 썼다는 시다. 서른 살의 패기가 넘친다.

코끝이 시린 차가움으로 가슴을 움츠니지만 싫지는 않다. 매운 겨울이 있어야 꽃 피는 봄도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것이 무엇이든 마음을 사로잡는 무언가를 두고 "1년 365일 처럼 긴 하루는 없을까?" 하는 마음을 갖는다는 것이 주는 깊고 넓은 위로를 안다.

그 힘으로 오늘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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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奴告買月 답노고매월

僮僕欺余曰(동복기여왈)

今宵買月懸(금소매월현)

不知何處市(부지하처시)

費得幾文錢(비득기문전)

달을 샀다는 아이에게

아이 종이 나를 속여 말했네.

"오늘 밤 달을 사다 매달아 놨소."

"어떤 시장에서 샀는지는 모르겠으나

달 값을 몇 문(文)이나 주었지?"

*조선사람 무명자無名子 윤기尹愭(1741∼1826)가 일곱 살 어린 나이에 썼다는 시다.

달을 샀다는 아이나 달 값이 얼마냐는 아이나 마음 가운데에 둥근달을 품었다. 그 달이 비추는 세상은 또 얼마나 밝을까.

대문을 나서며 산 위의 달을 본다. 미세먼지로 다소 선명함이 떨어진다. 품을 덜고 채우는 동안 늘 다른 모습의 달이지만 그 품의 온전함을 안다.

달의 위로는 오늘도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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小窓多明 소창다명

使我久坐 사아구좌

작은 창에 볕이 많아,

나로 하여금 오래 앉아 있게 한다.

춥다는 호들갑이 무색하리만치 포근한 날이다. 볕도 좋고 하늘도 맑아 그 온기를 누릴만 하다.

추사 김정희의 글씨다. 제주도에서 오랜 귀양살이를 마치고 서울에 올라와 한강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 초당을 짓고 살면서 쓴 현판이라고 한다. 책상 하나 놓인 방안으로 볕이 쏟아져 들어온다. 그 볕이 고마워 꼼짝안고 앉아 있는 정경情景이 눈앞에 보이는듯 하다. 복잡한 심사야 어찌되었건 적막을 누리는 마음에 공감을 한다.

추사秋史가 자字니 호號니 논란이 있나 보다. 그것이 무엇이든 김정희를 나타내는 것이니 따로 가릴게 없어 보인다. 문외한의 눈에는 그렇다는 것이니 문안의 이들의 이야기는 별개로 한다.

볕이 드는 창가에 앉아 맑은 하늘을 바라보는 기분이 덩달아 맑아진다. 지금 이 날씨와 잘 어울리는 글귀라 읽고 또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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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頂花 산정화

誰種絶險花 수종절험화

雜紅隕如雨 잡홍운여우

松靑雲氣中 송청운기중

猶有一家住 유유일가주

산꼭대기에 핀 꽃

누가 심었느냐!

저 험한 절벽 위에

붉은 꽃잎 빗방울처럼

쏟아져 내린다.

구름바다

푸른 소나무 사이로

어럽쇼!

집 한 채 숨어있구나.

*조선사람 자하紫霞 신위申緯(1769~1845)의 시다. 그가 "춘천 부사 시절 어느 봄날 청평산으로 나들이 갔다가 절벽 위 울긋불긋한 꽃잎들을 보았다. 깊은 산중에 누가 꽃을 저리도 많이 심어놓았을까. 어라 숲 한쪽에 누가 볼세라 오두막이 한 채가 숨어 있다. 집주인이 세상을 피해 숨었을망정 심지 않으면 안 될 만큼 꽃을 좋아하는지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을 산중에 심었으련만 오늘 들키고 말았다. 남의 비밀스러운 정원을 들여다 봤으니 가던 길 서둘러야겠다." 시를 해설한 안대회 선생의 심사가 절창이다.

사시사철 자연이 비밀스럽게 가꾼 꽃밭을 염탐하러 다니는 입장에서 그냥 넘어가지 못하는 무엇이 있다. 늘상 엿보는 것만은 아니다. 때론 비밀스러운 그 꽃밭의 꽃이 먼저 눈맞춤하자고 나를 불러들이기도 한다.

꽃이 전하는 꽃마음이 내 마음과 통하는 지점 어딘가에 비밀스러운 꽃밭 하나를 가꿀 것이다. 좋은 벗에게 꽃밭 가는 길을 슬그머니 흘릴 것이다. 가던 길 서둘지 않아도 된다는 말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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