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을 위한 변명
신명호 지음 / 김영사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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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 그들도 인간이였다.
동북아 3국 즉 중국, 한국, 일본의 역사를 살펴보면 왕조국가였다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그들 국가의 왕조 중 한국의 왕조만큼 오랜 기간을 이어온 왕조는 어느 나라에도 없다. 이 특징은 전 세계사를 통틀어서도 마찬가지다. 천년의 신라역사, 고려 9백여 년, 조선왕조 5백년 등 실로 막강한 왕조의 나라였다. 하지만 이 세 나라의 왕조는 조금의 차이를 보인다. 그 차이가 왕조의 운명을 결정지은 것이라고도 본다.

중국의 왕조는 삼국 중 가장 절대적 권력의 왕이였다. 천자(天子)라고 해서 그 권력은 백성과 신하 위에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력이였다. 그러다 보니 역으로 반역을 키워 온 온상이기도 해 긴 역사의 왕조는 존재하지도 못햇다. 일본의 경우는 중국과는 반대로 왕권(王權)보다 신권(臣權)이 우위에 있어서 왕은 이름 뿐 이여서 신권에 의해 언제든 엎어질 수밖에 없었다. 반면 한국의 왕조들은 왕권(王權)과 신권(臣權)이 줄다리기 하는 양상을 보여왔다. 명목상으로는 백성과 신하위에 엄밀하게 왕권(王權)이 존재했지만 조화로운 권력의 분배를 통해 서로의 권력을 유지 해 온 것이다. 

때론 왕권(王權)과 신권(臣權)의 권력 불균형이 생겨 왕권(王權)이 무너지는 반역이 성공하기도 했고 권력의 한 축이였던 신하들의 목숨이 파리 목숨보다 못 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왕권(王權)과 신권(臣權) 두 권력의 조화가 5백년에서 천년에 가까운 왕조를 유지 할 수 있었다.

왕권(王權)과 신권(臣權)의 조화는 결국 서로 권력을 가진 자들이 자신의 권력을 그대로 유지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였다면 그 속에 백성들의 안위는 그야말로 피폐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너무나 인간적인 왕의 고뇌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왕이라기 보다 왕권(王權)과 신권(臣權) 사이의 줄다리기를 해야 할 입장에 있었던 왕이라면 어떤 마음이였을까?
이 책 [왕을 위한 변명]은 바로 그런 입장의 왕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한다. 왕이라는 권력의 상징으로써 그 권력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상황에 처한 왕들의 인간적인 고뇌로 살펴본 시각이라 신선함이 있다.
조선시대 27명의 왕 중에서 10명, 태종, 세종, 세조, 연산군, 중종, 광해군, 인조, 영조, 정조, 고종 등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들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조선왕조 500년간 굵직한 발자취를 남긴 왕들이었다. 격동기의 역사를 온 몸으로 살아온 왕들이기에 그 인간적 고뇌가 얼마나 컷을런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 기록이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로 나타나고 있다. 

아버지의 아들로서, 태종 / 형제인가 경쟁자인가, 세종 / 불교를 향한 염원에 담긴 뜻, 세조 / 한 세상 내 마음대로 원을 풀리라, 연산군 / 극도의 공포심이 빚어낸 이중성, 중종 / 저주를 혹신한 극단의 심리, 광해군 / 무엇이 천륜마저 저버리게 했을까, 인조 / 이복형 경종의 죽음 앞에서, 영조 / 만들어진 천재성, 정조 / 외롭고 고단한 황제, 고종

태종은 태상왕 이성계와 갈등을 겪으며 끊임없이 아버지의 애정과 신뢰를 얻고자 했다. 천운을 갖고 태어났다는 세종은 왕좌에 올랐으나 형제들에게는 경쟁자였다. 세조의 불교를 향한 염원은 원인 모를 병이 원인이었고, 연산군은 폐비 윤씨의 빙의로 무병을 앓았다. 신하들을 이용해 권력의 중심에 섰던 중종은 오랫동안 가슴속 깊이 숨겼던 본심을 자신도 모르게 드러냈다. 광해군은 자기 확신과 포용력 그리로 용인술이 부족한 왕이었다. 존명사대의 틈에서 실리를 찾으려 했던 인조는 소현세자의 죽음에 고개를 떨구었다. 국왕으로서 영조의 일생은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한 일생이었다. ‘천재 임금’으로 성장한 정조의 뒤에는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태교와 최고의 교육환경이 있었다. 고종은 을미사변 이전까지는 항상 누군가에 의지해 살았다.

[왕을 위한 변명]을 통해 살펴 볼 때 새로운 시각으로 역사의 중심에 있었던 한 인물 특히 왕에 대한 고찰은 많은 한계를 가질 수 밖에 없다. 그 심정을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많은 부분을 상상하고 억측하고, '인간 통찰'이라는 미명으로 채워 넣을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굳이 이런 시도를 한 이유는 역사의 주체는 역시 인간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 때문이다”. 

인간이라는 존재를 넘어선 특별한 인간 이상의 왕은 아니였다.
절대권력 그 속에 담긴 무시무시한 비인간적 요소에서 한 발짝 물러나 외교, 신하, 부모, 형제들과의 사이에서 고뇌하며 나약한 한 인간의 모습으로 다가온 왕들. 그런 왕들을 오히려 다 가깝게 느끼는 계기가 되어 따스한 미소가 머문다.
역사는 결국 사람의 삶에 대한 기록이며 그를 통해 미래의 희망을 마련하는 기틀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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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위당 장일순의 노자이야기
장일순 지음, 이아무개 (이현주) 대담.정리 / 삼인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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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가슴속에 온 우주만큼이나 넓은 마음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 넓은 마음이 때론 구름도 끼고 비도오고 바람도 불며 온갖 풍파 겪으며 조금씩 작아지는지도 모르겠다. 한줌 바람에도 흔들리며 힘들어 하는 스스로를 돌아보며 한순간 이나마 평안을 유지할 수 있길 간절히 바래본다. 옛 성인들의 삶에서 그 묘책을 찾아보려 하지만 늘 아쉬움 속에 더디 가는 발걸음 만 붙잡고 있을 뿐이다.

인생을 살아가며 자신의 내면을 닦는 구도의 길에 스승과 도반이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고 한다. 나에게 내 삶을 온통 다 드러내 놓고 함께할 스승과 도반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 아직 깜깜하기만 하다.

언젠가 도덕경을 손에 들고 한참을 바라만 보다가 이내 책장에 도로 둔적이 있다. 겁이 나서였을 것이다. 눈에 보이는 글자라도 다 온전히 읽을 수 있을 것인지 하는 두려운 생각 말이다. 아쉬움이 컷 던 탓 인지 다시 찾은 노자이야기다.

이 책 [무위당 장일순의 노자이야기]는 도덕경을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조금은 쉽게 접 할 수 있도록 대담형식을 통해 해설한 책이다. 장일순 선생과 이 아무개(이현주) 목사와의 대화라 처음 접할 때의 두려움은 조금 나아진 듯 하여 다행이다.

우선 두 분은 어떤 사람인가?
무위당 장일순 선생은 1928년 원주에서 태어나 서울대 미학과에서 수학하던 중 6.25 동란으로 학업을 중단한 채 고향으로 돌아왔다. 이후 선생은 40여년간 원주를 떠나지 않고 지역 사회에 뿌리내린 사회 운동가로 살아오셨다. 원주대성학원을 설립하고, 밝음신용협동조합의 설립에 참여하였으며, 한살림운동을 주창하여 많은 젊은이에게 '정신적 선배' '사상적 큰 스승'으로 존경받아 왔다. 1970년대 유신독재 시절, 천주교 원주교구의 선구적 저항, 가톨릭 농민회의 민중 운동, 김지하 시인의 투쟁, 1980년대에 한살림운동 등이 원주를 중심으로 일어났고, 모두 선생과 떼어서는 생각할 수 없다. 1960년대에 선생은 답답하고 우울한 날들을 서화로 달래기도 했다. 선생의 서화는 주로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나누어 받거나 사회 단체의 기금 마련전에 출품되었으며, 이따금 작품 발표전도 했는데, 지금까지 다섯 번의 개인전을 원주, 춘천, 서울에서 개최했다. 선생은 1994년 5월 22일 67세를 일기로 영면했다.

이 아무개 목사는 1944년 충주 출생, 감리교신학대학교를 졸업했다. 본명은 이현주이고 관옥(觀玉)이라고도 부른다. '이 아무개'는 필명이다. 19살에 동화작가 이원수의 추천으로 등단, 마흔 두 살까지 동화를 썼다. 목사이자 동화작가, 번역 문학가이기도 한 그는 동서양을 아우르는 글들을 집필하는 한편, 대학과 교회에서 강의도 맡고 있다.

이 책의 근간이 되는 노자라는 사람과 그 사람의 도덕경은 무엇일까?
노자는 기원전 6세기 무렵의 중국의 주나라 때 사람으로 역사가이며 또한 정치가이며 나라의 여러 분야에 걸쳐 깊은 이해를 가진 인물이었다. 도덕경은 그 노자라는 사람이 남긴 도(道)에 관한 이야기와 덕(德)에 관한 이야기를 합하여 도덕경(道德經)이라고도 부른다.

도덕경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도는 우주의 '궁극실재(窮極實在), 혹은 '근본원리(根本原理)요, '덕'이란 그 도가 구체적인 인간이나 사물 속에서 자연스럽게 구현될 때 얻어지는 '힘'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라고 말한 [오강남]님의 설명이 그나마 이해가 가는 설명이다.

두 분은 이력으로만 본다면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이만 보이는데 이토록 깊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이 경이롭기까지 하다. 대화의 깊이를 더해주는 두 분의 관심사도 참으로 다향하다. 노자에서 시작하여 기독교, 불가이야기, 유교, 동학에 심지어 마르크스주의 동서양을 아우른 사상적 조류에 정통하다. 초보 입장에서 보면 상상을 초월한다. 장일순 선생처럼 한문에도 익숙하지도 않고 또한 이 아무개 목사처럼 성경도 모르는 사람이지만 인간이 가지는 내면의 가르침을 얻기엔 충분하지 않을까 하는 자기만족으로 어렵게 한 장 한 장 읽어간다.

두 분은 스승과 제자 사이라지만 사제지간 대담에서 흔하게 보이는 스승의 일방적으로 설교형식은 없다. 구도의 길에 함께 나선 도반으로 보여 부럽기만 하다. 이 아무개 목사는 서문에서 "우리는 진지하고 따뜻하고 간곡한 '말씀'을 서로 나누었다. 그러면서 자리를 함께 한 우리 모두가 '한 몸'이라는 사실에 문득 소름이 돋기도 했다. 아울러 현실의 두터운 어둠을 찢고 동터오는 새벽 빛 줄기를 얼핏 훔쳐볼 수도 있었다"라고 했다. 이것이 진정 두 분이 노자이야기를 이끌어 온 힘이 아니였을까?

이 책을 읽고 나서도 막상 가슴에 남아 있는 건 뭘까? 생각해 보면 아무 것도 없다. 정성들여 읽었건만 이 모양이니 아직 공부를 덜된 탓으로 돌릴 수밖에 없다. 지금은 훗날 다시 읽으며 한 줄이라도 그 의미를 가슴에 세길 수 있는 기회를 줄 거라 믿기에 마지막 장까지 읽어가는 걸 목표로 삼아 이제 그 마지막 장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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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적은 말한다 - 글씨로 본 항일과 친일
구본진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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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살면서 가슴에 꽂히는 일이 있었나?
살면서 가슴에 꽂히는 일이 있다면 그 일에 대한 설레임으로 살아가는 삶이 얼마나 여유로울까 싶다. 나에게 그런 일은 무엇이 있나? 다양하고 많은 부분에 관심을 가지고 접해 본 것 같다. 산과 들판을 헤매며 찾았던 식물공부가 그랬고 어느날 문득 내게 다가온 불교가 그랬고 전국을 돌며 역사 흔적을 찾아 다녔던 문화유적답사가 그랬다. 돌아보면 관심사는 내가 처한 조건에 따라 변해왔지만 상황이 변해도 유지되어 온 관심사는 있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만큼 지속적이고 깊은 관심은 아니였나 보다.

필적학(筆跡學)이란 생소한 말이다. 필적학이란 사람이 쓴 글씨를 가지고 그 성격이나 심리를 연구하는 학문. 필적 감정을 포함하여 필적과 성격의 관계, 필적에 의한 심리 상태 따위를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한다. 이런 학문이 있다는 것도 처음 알게 되었지만 사전적인 의미보다는 심정적으로 더 가까운 느낌이 드는 것은 평소 글씨에 관심이 많아서일까?

알게 모르게 사람들은 여러 가지 모습으로 자신을 드러내면서 살아간다. [필적은 말한다]에서처럼 글씨도 자신을 나타내는 강력한 도구 중 하나일 것이다.
간찰의 옛날 형태인 죽간을 모아 복원한 전시회를 본적이 있다. 또한 전라남도 곡성군 옥과미술관에는 옛 사람들의 간찰들을 모아 상설 전시를 한다. 이런 기회를 통해 살펴보았던 글씨에서 그 사람들의 일상으로 들어가 보는 착각을 하기도 했다.
개성이 강하게 묻어나는 글씨와 지극히 사사로운 내용의 편지글 속에 담긴 사람들의 따스함이 베어나 흥미 있게 보았다. 저자가 보았던 것을 어렴풋이 나 역시 보았던 것 같다.

글씨를 보면 그 사람이 어느 정도의 학식이나 정신적 수준을 갖췄는지, 성격이 어떤지, 어떤 마음 상태인지 알 수 있다. 학식이 높은 사람은 글씨가 완숙하고, 선 굵은 대인의 면모를 가진 사람은 글씨가 크고 속도도 빠르고 시원시원하다. 곧은 품성을 가진 사람은 글씨에 힘이 있고 최소한 정제된 균형미가 있다. 자결한 사람, 관료로 평생을 바친 사람, 의병장으로 기개를 떨쳤던 사람, 어진 선비, 교활한 친일파 등의 특징이 글씨에 유형적으로 드러나고 구체적인 성격도 밀도 있게 분석해보면 알 수 있다.(p.56)

이렇게 글씨를 통해 알게 되는 한 사람에 관한 정보가 얼마나 정확하게 그 사람을 대변하는지 나에겐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니지만 독특한 저자의 구본진에게는 검사라는 직업과 함께 글씨 컬렉터라는 이력이 보여주는 것 만큼 이런 관점에서 글씨를 본다는 것이 매우 흥미롭다.

[필적은 말한다]는 강력범죄를 주로 다룬 검사가 글씨에 매료되어 1천여 점의 친필 글씨(간찰, 서예 작품, 문서, 책, 사료 등)를 모아 분류했던 내용을 [글씨가 내게 말을 걸다, 필적은 말한다, 글씨로 본 항일과 친일, 자결로 항거한 항일지사의 글씨, 친일파와 일본 침략자들의 글씨, 인간을 닮은 글씨, 글씨에 담긴 인생, 글씨가 바로잡아준 역사의 진실, 글씨에도 명품이 있다, 진흙 속에서 진주 찾기, 글씨 수집에서 나는 인생을 배웠다] 등 열 가지로 구분하여 설명하고 있다.

특히 항일운동가 4백여 명, 친일파 1백5십여 명의 친필 유작들을 살피면서 그들 간의 차이점을 발견하고 필적학적 입장에서 살펴 본 김구의 졸박성과 이완용의 교묘함, 여운형의 지조와 여운홍의 환절, 이승만의 절제와 박영효의 일탈, 손병희의 호방함과 최린의 공교함, 이준의 웅혼함과 조중응의 경박함 등은 개인적 흥미를 넘어 역사적 사실에 대해 다시금 살펴보게 하는 역할까지 하고 있다.

이 책을 읽다보면 글씨를 통해 한 사람에 대해 뭐든 알 수 있다는 생각까지 들게 한다. 과장이 있을 지라도 일정정도는 공감이 가는 부분이다. 또한 이 책은 글씨뿐만 아니라 옛문헌의 수집에 대한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여러 가지 도움이 될 만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추사 김정희는 문자향서권기(文字香書券氣)라고 했다.
백지를 한 장 준비하고 정성껏 글씨를 써 본다. 이 책을 읽으며 반복적으로 드는 생각이 내 글씨에 내면에 흐르는 기상이 어떻게 담겨있을까 하는 생각이였다.
붓글씨를 배워 좋은 글씨를 써야지 하는 욕심은 뒤로 미루더라도 나 자신을 나타내는 그 무엇 하나에서라도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임을 다짐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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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딛고 세상을 향해 뛰어올라라 - 아버지의 인생 수업
송길원 지음 / 한국경제신문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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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이미 부모가 되었고 내 아이가 커서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한 선택을 하고 먼 길을 나섰다. 그런 아이를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생각이 내 아버지에 대한 안타까움이다. 자식을 위해선 못 할 것이 없으셨던 아버지였다. 시골에서 농사를 천직으로 여기며 묵묵히 살아오신 그분의 쳐진 어께를 닮아가는 것처럼 느껴지는 요즘 더 자주 생각하게 된다. 내가 느끼는 이 안타까움을 훗날 내 아이가 느끼는 것은 아닐까?

커가면서 엄마보다는 유난히 아버지를 따랐던 아이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하고자 먼 길을 떠났다. 이제 중학생이 되는 딸아이라 여간 마음이 놓이지 않은 상황이지만 강한 의지를 보이는 아이를 말리지 못하고 말없이 안아주는 것으로 대신했다.

기숙사 생활하며 학교에 적응 잘 하는 것처럼 보여 다행이지만 딸 아이를 향한 아버지의 마음은 불안하기만 하다. 늘 여유로운 마음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 대견하고 친구들과도 잘 어울리는 것이 앞으로 다가올 문제에 대해 잘 견디며 뜻하는 바를 이룰 것이라 점점 믿음이 간다.

그 아이가 오랜만에 집에 왔다. 기운이 없어 보여 이유를 물었더니 친구들 사이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아직 어리고 부모로부터 멀리 떨어져 생활하는 아이들이라 다들 힘들거라고 생각은 하지만 막상 그런 이야기를 듣는 마음이 편하지 않다. 여태까지 잘했으니 앞으로도 슬기롭게 해결해 나가리라는 믿음이 있지만 조금은 벽을 보이는 것 같아 서운한 마음이 드는 것이 부모 마음인가 싶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 아이와 의사소통의 통로가 있다는 것이다. 나이차를 극복하고 같은 음악에 대한 공감이나 책을 유난히 좋아하는 아빠를 닮은 아이라 책을 통한 소통이 그것이다.

[나를 딛고 세상을 향해 뛰어올라라]는 딸을 염려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담아 먼저 읽어보고 딸아이에게 주고 싶었던 책이다. [꿈, 성장, 도전, 좌절, 소통, 행복, 사랑]의 7가지 항목으로 나눠져 있으며 많은 명사들의 이야기와 명언들이 인용되어 있어 내용의 풍부함을 더 하고 있다. 나 만이 아니라 세상 아버지들의 마음이 다 담겨있는 것이라 생각된다.

저자는 [이 땅의 아버지들은 모두 자식 앞에서 당당하고 싶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즐거울 때나 힘들 때나 소통을 통해 삶과 인연의 소중함을 되새기는 것이다. 그때부터 나는 절망에서 벗어나기 위한 희망노트를 쓰기 시작했다. 희망노트를 통해 나 자신과 특히 내 아들들과의 소통을 꾀했다. 그리고 그 이후 내 삶은 확연히 달라졌다. 아버지로서의 정체성을 찾으며 나는 다시 일어섰고, 아이들도 밝게 자라 스스로의 삶을 개척해 나가고 있다. 나는 가족 간의 연대는 부모 자식 간의 진정한 역할을 찾는 것에서 비롯된다고 믿는다. 아버지의 존재감이 확고할수록 자식들은 이 세상의 두려움을 떨치고 성숙한 어른이 될 것이다. 따라서 아버지는 인생 수업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아버지의 지위고하나 재산의 유무를 떠나,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어떤 방식으로든 멘토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 속에 아버지들의 간절한 소망이 다 담겨있다.

아이들이 커 가면서 점점 자신의 위치를 잃어가는 것이 아버지들의 현실이다. 가족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한다고 만은 이야기 하지 못할지라도 아버지들이 처한 현실은 그리 녹녹치 않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독립적인 자신만의 사고와 생활공간을 갖는 건 당연하겠지만 그 틈에서 설 자리를 잃어가는 아버지들 또한 있는 것은 사실이다. 사회적 불안감에 가족의 공간에서도 아웃사이더로 전락하는 인상은 쉽게 지울 수 없다. 세상 모든 것이 공부로 대변되고 그 아이의 공부를 위해 온 가족은 매진하게 된다. 그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집에서 아빠의 위치는 희미해져 가는 것이 현실인 것 같다. 동년배 친구들이나 이웃 아버지들의 모습에서도 비슷한 상황을 보게 된다. 퇴근하고 집에 가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요소가 없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공부로 아내는 그 아이들 공부 뒷바라지로 자신만이 소외되는 것 같은 느낌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강요받은 것 처럼 늦은 귀가에 자신의 존재를 확인 할 무엇인가를 찾게 되는 것 같다는 쓸쓸한 어께를 보이고 있다.

[청소년들은 비록 새우잠을 자더라도 고래 꿈을 꾸어야 한다]

이 말은 내가 아이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다. 비록 지금은 힘들더라도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당당하게 걸어가길 희망하는 아버지의 마음이다.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 아주 소중한 통로를 제시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고 있다. 현재 내가 처해있는 불안전한 조건에 굴하지 않고 용기를 내어 아이에게 슬며시 이 책을 건네는 것은 어떨까?

이번 주말 집에 오는 딸아이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싶은 아버지의 마음을 담아 전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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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선뎐
김점선 지음 / 시작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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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사람의 삶에 대한 이야기는 언제나 무게감이 있게 다가온다. 
김점선 그 사람은 누구인가? 
1946년 개성에서 태어나 이화여대를 거쳐 홍익대 대학원에서 서양화를 전공, 1972년 제1회 앙데팡당 전에서 파리 비엔날레 출품 후보에 선정되며 등단하였다. 1987~88년 2년 연속 평론가협회가 선정한 미술 부문 올해의 최우수 예술가로 선정되었다. 1983년 첫 전시회 이후 개인전만 60여 차례 열었다. 작가는 작품 활동 외에도 KBS-TV '문화지대'의 진행자를 맡는 등 문화 전방에서 활발한 활동을 해왔다. 지은 책으로는 [10cm 예술], [나는 성인용이야], [나, 김점선], [바보들은 이렇게 묻는다], [김점선 스타일], 그림동화 시리즈 [큰엄마], [우주의 말], [게사니] 등이 있다. 
낫선 사람이기에 찾아 본 그 사람의 이력이다. 그리 간단치가 않다. 자신의 자서전이라고 할 만 한 [점선뎐]의 내용을 미리 보는 하다.

"각자의 삶은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예술품이다"

난 그동안의 짧은 삶에서 사람이라면 그가 누구이고 무슨 일을 하던지 [온 우주를 통 털어 독립된 자아를 가진 단 하나뿐인 특별한 존재다]는 생각을 하며 살았다. 어떤 이의 삶이든 그 사람의 삶을 온전히 들려다 보면 쉽거나 간단한 삶은 없다. 격동의 시대를 살아온 사람일수록 그 변화는 더 크리라는 것은 쉽게 짐작이 된다. 이 책의 저자 김점선의 삶 또한 그렇다.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에 소신을 가지고 그 무엇의 간섭에도 굴하지 않고 밀고 나가는 사람을 별난 사람이라고 한다면 김점선은 분명 별난 사람이다. 

[점선뎐]에는 유년의 기억, 아이를 키우는 독특한 교육관, 부모에게 느꼈던 사랑, 가난한 임산부로서 어머니 또래의 군고구마 장수 아주머니 곁을 맴돌던 일, 먼저 떠난 남편에 대한 그리움, 투병 중인 암을 받아들이는 자세 등 김점선의 삶이 보여 주듯 진솔함이 곳곳에서 묻어난다. 글을 읽어가며 다시 읽었던 앞장으로 페이지를 넘기는 횟수가 늘어간다. 김점선 만이 쓸 수 있는 내용이다 싶은 것이 참 많다.

김점선 그 사람이 이토록 독특한 삶의 깊이를 가질 수 있었던 배경엔 무엇이 있을까? 
굴곡이 많았던 살아 온 환경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그 사람만의 자유로운 영혼과 치열했던 삶에 대한 강한 의지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 강한 자아의식을 형성하게 만들어준 또 하나의 무기가 바로 방대한 독서량에 있었다고 본다.

살아생전 김점선은 많은 주목을 받았을 것 같다. 독특한 이력에 강한 삶이 주는 만만찮은 느낌과 많은 사람들 속에서 우뚝 선 그 사람의 삶을 들여다보는 동안 내내 외로움이 묻어난다. 자신과 가족을 지키기에 그토록 애쓴 결과가 암으로 나타난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 마져 든다.

사람들의 삶을 살펴보다 보면 비슷한 느낌을 갖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김점선의 삶은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그 사람만의 독특한 발자취가 있다. 
김점선 그 사람은 이제 갔다. 이제 그 사람의 삶에서 보여준 의미는 그 사람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예술작품 만이 대변 해 줄 것이다. 

김점선은 바로 김점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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