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아

 

오늘은 하루 종일 비가 내렸지.

이런저런 문제로 고민이 많으신 할머니께서는 홀로 성당에 가셨고, 늦은 아침을 먹는 내내, 한없이 가라앉는 나를 느꼈었단다.

그래서일까?

너는 조용히 일어나 베란다로 향하더구나.

유리창에 길게 이어지는 빗줄기 너머, 네 시선은 도망치듯 아주 멀리 달아났었지.

불도 켜지 않은 어두운 거실에서, 오전내 너는 책만 읽더구나.

물끄러미 네 얼굴만 한참을 바라보았단다.

'아! 네 얼굴에 투영되는 그 고운 마음결이 어쩌면 저렇게 자연스러울 수 있을까?'

나는 정말 감탄했단다.

시시각각 변하는 너의 표정에 나는 한동안 넋을 잃고 있었지.

나는 화장실로 향했단다.

화장실 거울에는 잔뜩 굳은 내 얼굴이 어색하게 웃고 있었단다.

 

아들아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몸만 굳어가는 것이 아니란다.

마음 결결이 피어나던 그 많은 표정을 함께 잃는 것이란다.

마음을 숨기며 어색하게 굳어지는 나.

나는 그렇게 교육받았단다.  그렇게 나의 몸은 마음과 차츰 멀어졌단다.

몸은 자라는데 마음은 한없이 작아지고 있음을 나는 미처 몰랐었구나.

 

 

아들아

 

네 마음이 맘껏 즐길 수 있는 곳은 너의 얼굴이란다.

네가 너른 들에서 네 몸을 키우듯이, 마음이 자라는 네 얼굴을 고이 간직하렴.

마음이 숨쉬는 그 공간을 결코 잃어서는 안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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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시장이 넓으면서도 참 좁구나'라고 생각하는 하루였다.

오후에 알지 못하는 어떤 아주머니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내용인 즉 멀리 군산에서 올라왔다며 나를 꼭 만나고 싶다는 것이었다.

나를 어떻게 아느냐는 질문에 만나 뵙기 전에는 말씀드릴 수 없노라며 완강히 버티는 통에 어쩔 수 없이 약속을 하고 집을 나섰다.

잘 차려입은 30대의 여인.

남편 몰래 여유자금 2000만원으로 시작한 주식투자는 곧 바닥을 보였고, 지인들로부터 빌린 돈으로 원금을 회복하려는 욕심에(어쩌면 원금보다 더 큰 이익을 기대했을지 모르지만) 그동안 여러 경로로 알게 된 주식 전문가(소위 '고수'라 불리는)의 정보를 받아 다시 시작한 주식거래, 잠시 원금을 회복하고 남을 정도의 돈도 벌어 보았지만, 조금만 더하고 그만두자 했던 것이 빌린 돈마저 잃고 말았단다.

그러기를 두어 차례 반복하니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 자신이 갚아야 할 빚이 2억대에 육박했더란다.  자신은 미대 동양화과를 졸업했고, 학원도 운영했었으며, 남편은 선생님으로 재직중이라 했다.  돈을 갚을 여력도, 남편 볼 면목도 없어 유서를 쓰고 나왔지만 실행에 옮기지 못했고, 다시 집에 들어가니 시댁에서 빚을 얻어 자신이 빌린 돈을 갚았더란다.  지금은 자신의 친정어머니가 운영하는 식당에서 일을 거들고 있다 했다.  주식투자로 원금이나마 회복할 수 있다면 원이 없겠다 했다.  그리고 자신이 거래하던 증권사의 직원을 통해 나의 연락처를 알게 되어 전화를 했노라고.

방법 좀 일러 달라며 매달렸다.

나는 들려줄 말이 없었다.  그녀의 입장은 일견 이해 못하는 바가 아니지만, 그리고 오죽했으면 그 먼 곳에서 예까지 찾아왔을까 동정심이 들기도 했지만, 나는 진실로 그녀에게 해줄 말이 없었다. 

  나라고 처음부터 수익만 발생했겠는가.  단지 여유자금이 많지 않았던 나는 그리 많지 않은 돈을 잃은 후, 주식 관련 서적과 챠트의 분석에 매달렸다.

주변에서는 이름만 대면 알만한 사람을 소개할테니 만나서 배우면 어떻겠느냐 권했지만, 나는 처음부터 그럴 마음이 없었다.  '남의 옷은 나의 몸에 맞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내게 맞는 방법을 찾고자 노력했다.  당시 시중에 출판된 주식 관련서적의 대부분을 읽었고, 새벽까지 챠트 분석에 심혈을 기울였다.  '제발 그만 자라'는 아내의 잔소리를 수도 없이 들어야 했다.  그렇게 나는 전업투자자가 되었다.

나이 들어 육체적으로 약해졌을 때 소일거리는 되겠다 싶어 시작한 주식투자가 직업으로 변한 것이다.  그동안 이런저런 곳에서 고액의 수강료를 지불하고 주식을 배웠지만 많은 금액의 손실을 보았다며, 자신을 가르쳤던 사람을 비난하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자연과학이 아닌 다른 분야에서는 절대적 법칙을 찾기 어렵다.

주식시장은 더욱 그러하다.  사람들의 성격에 따라 스캘퍼,데이 트레이더, 스윙 트레이더,포지션 트레이더가 되기도 하고, 자금 규모에 따라 시장 주도자 또는 이른바 개미 투자자가 되기도 한다.  주식 투자자의 지식 정도에 따라 가치 투자자 또는 묻지마 투자자가 될 수도 있다. 그 외에도 많다.  이렇듯 다양한 변수를 지닌 투자자 개개인에게 어떤 강사가 만족스런 해답을 제시할 수 있을까.

강사의 경험과 지식을 참고하여 자신만의 방법을 찾는다면 모를까.

주식시장은 확률적 법칙이 작용할 뿐이다. 확률을 아무리 높여도 100%에는 이르지 못한다.   그러므로 그 패턴을 연구할 뿐이다.또한 주식시장이 머니게임임을 인정한다면 시장 주도자의 심리를 분석하여 그들에게 편승하면 된다(개인적으로 소위 '작전'이라 불리는 주가조작을 지지하지는 않지만 부정할 수도 없다).  절대로 대항해서는 안된다.   자신의 성격,자금 규모, 지식의 정도, 거래 환경 등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 나는 최근에 오프 라인의 삶을 지향하며 10여 년을 몸담았던 주식시장을 떠났지만, 남아있는 그들에게는 오직 자신의 방법만이 그들을 지켜줄 것이라 믿는다. 

그녀와 헤어진 지금, 나는 내가 걸어갈 새로운 사업의 방향과 그 방법을 고심하고 있다.

그녀의 축쳐진 어깨가 나를 몹시도 아프게 한다.

할 수만 있다면 선녀의 장옷이라도 훔쳐서 그녀에게 입혀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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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교리 시간에 신부님으로부터 지적을 받았다.

지난 주일미사의 영성체 의식에서 자격도 갖추지 않은 내가 의식에 참여하려 했다는 것이다.(오늘 비로소 알게 된 것이지만 영성체 의식은 세례를 받은 자만이 참가할 수 있단다.)  무지는 커다란 죄악이라는 말에 느꼈던 무안함이란......

공개적으로 창피를 주려는 의도를 갖고 했던 말은 아니었겠으나 낯이 뜨거워지는 것은 어찌할 수없었다.

"사람들 대부분은 기독교의 계율이 의도적으로 조금 지나치게 가혹하다고 진심으로 믿는다."는 키르케고르의 말이 떠올랐다.

 

하루 종일 비가 내렸다.

기분이 우울하다.

날씨가 나의 내면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은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도 어느 한 사람의 생각이나 기억이 타인에게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  내적인 것이 외적인 것으로 변화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타인의 내면에 닿을 수 없듯 말과 표정, 행동 등의 외적으로 드러나는 현상에 나의 내면은 수시로 변함고 있음을 알고있다.

자연은 이 원리를 너무나 잘 인식하고 있다.

절대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지 않고 항상 외적인 모습으로만 존재하는 것이다.

아니 그렇게 위장한다.

나의 마음은 쉽게 휘둘린다.  미련하게도.

어쩌면 시시각각 변하는 자신의 마음을 인식조차 못하고 지나치는 경우가 허다할 것이다.

 

성경의 주제는 모순을 모순 자체로 받아들이라는 것에 있다.

탄생부터 모순적인 인간이 모순을 해석하려 들면 모순과 모순이 만나 더 큰 모순을 잉태하고, 실타래가 꼬이듯 혼란 속에 빠지고 만다.

타인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오롯이 나의 생각만을 더듬는 것은  생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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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저녁 아들과의 전화 통화.

"XX야! 오늘 뭐했어? 날씨가 따뜻했는데 밖에 나가 놀았어?"

"....음..나가 놀지는 않았고 나가서 머리 깎았어."

"그랬어?"

아들 녀석 갑자기 목소리를 낮추어 한 마디 한다.

"그런데 아빠, 머리가 약간 바가지야."

그때 전화 수화기를 통하여 들려오는 아내의 목소리.

엄마가 옆에 있어서 내게 큰소리로 자신의 불만을 말하지 못했나 보다.

"아빠, 내일 설악산 간다고 일찍 자래.  대명콘도 알지?  할아버지, 할머니랑 아침 일찍 출발한대.  엄마가 전화 짧게하고 자라는데....."

"응, 그래.  알았어.  양치는 했어?"

"응.  자기만 하면 돼."

"그래.  그러면 잘 자고 재미있게 놀다 와."

전화를 끊고, 머리를 깎은 아들 녀석의 모습을 상상하니 웃음이 절로 나온다.

내가 어렸을 때는 이발의자의 등받이가 높아 의자의 양쪽 팔걸이에 판자를 올리고 그 위에 앉아 머리를 깎았었다.  녹슨 바리깡에 머리가 찝혀 화들짝 놀라고, 아픔에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지만 이를 악물고 참아냈었다.  오죽하면 머리를 다 깎고나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겠는가. 

이발의자를 내려와 타일이 다 떨어져나간 세발대에 머리를 숙이면 빨래비누로 짧은 머리를 박박 비누칠하던 이발소 주인의 손놀림도 잠시 플라스틱 머리감개의 고문이 다시 시작되었다.  아프다는 내색도 못하고 빨리 끝나기만 빌어야 했던 어린 시절 모습은 지금 생각하면 그저 안쓰럽기만 하다.감은 눈으로 흐르던 비누거품을 닦을 새도 없이 파란 플라스틱 조루의 물세례를 받고나면 드디어 길게만 느껴지던 이발 의식(?)이 끝난 것이다.

짧아진 머리 탓에 선선한 바깥 바람에도 추위를 느꼈었다.

그  시절만 해도 자신이 원하는 머리 모양을 선택한다는 것은 언감생심 꿈도 못 꿀 일이었다.  그래서인지 아이들 머리는 하나같이 빡빡 밀었거나 상고머리가 대부분이었다. 

아들 녀석은 자신의 머리 스타일이 제 마음에 들지 않았던지 내게 자신의 심정을 전하려 했나 본데 그 나이에는 엄마의 의견에 따라 머리 모양이 결정되니 낸들 무슨 수가 있겠는가.

머리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이지만 요즘 젊은 엄마들의 행태에 눈살을 찌푸리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아직은 어리고 연약한 아이의 머리에 독한 염색약을 사용하여 염색을 해주는가 하면, 파마를 하는 경우도 보게 된다.

중금속이 뒤섞인 염색약과 파마약의 성분도 성분이려니와 도대체 누구 좋으라고 그렇게 하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가끔 염색이나 파마를 한 꼬마의 모습을 볼 때는 그 부모가 혹시 계모, 계부가 아닌지 의심부터 하게 된다면 나의 생각이 너무 보수적이라고 비난 아닌 비난을 퍼부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연약한 아이의 피부에 독한 확학약품을 퍼붓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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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아

 

어제는 네가 유치원을 졸업한 날이었지.

졸업식에 가지 못하는 나는 하루 종일 너의 모습을 떠올리며 ’조금 섭섭하지 않았을까?’ 걱정했단다. 

꽤 많은 아빠들이 졸업식에 참석했었다는 말을 너의 엄마로부터 전해 들었을 때 얼마나 미안했던지.....

반에서 가장 큰 꽃다발을 받아 기분이 좋았다는 너의 말은 내게 커다란 위로가 되었단다.

지난 설 연휴에 너와의 짧은 산책에서도 피곤하지 않겠냐며 나를 먼저 걱정했었지.

어느새 너는 마음마저 훌쩍 자라있더구나.

너와의 지난 추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는데 시간에 비해 턱없이 짧은 기억은 아쉬움만 더하였단다.

 

아들아

 

어떤 일의 말미에 서면 지난 것에 대한 아쉬움과 시원섭섭함 그리고 미래에 대한 기대감과 설레임이 교차하곤 하지.  어쩌면 약간의 두려움이나 불안감이 슬쩍 동행할지도 모르겠구나.

네 나이에  그런 감정을 느낀다는 것은 가능한 일이 아님을 알고 있단다.

너는 아무개의 엄마가 특송을 했는데 어떻게 그런 목소리를 낼 수 있는지 신기했다는 것과 송사와 답사를 누가 했었다는 것과 저녁에 할아버지, 할머니, 엄마와 같이 탕수육을 먹으러 나갔었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중요하지 않았겠니?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너를 생각하면 대견함과 함께 그 빡빡한 생활에 내가 먼저 답답함을 느끼게 되는구나.

너는 그저 새로 산 가방과 옷과 신발에 마냥 즐겁기만 한데.....

 

아들아

 

자란다는 것은 새로운 규칙을 하나씩 덧붙이는 것이란다.

늘어난 규칙이 때로는 힘들고 지치게 하더라도 불평없이 견디렴.

그럴수록 더욱 잘 지키려 노력하면 네 몸은 자연스레 따라가는 법이란다.

갈등과 고민은 네 머리 속에 있는 규칙과 네 몸이 분리되어 나타나는 현상이란다.

네 몸이 익숙해지면 규칙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지.  오히려 규칙을 잊고 자유로워짐을 느낄 수 있단다.

기억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너의 첫번째 졸업식이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은 아비된 자의 지나친 욕심이겠지?

 

아들아

 

너의 졸업과 곧 있을 입학을 생각하며 프랑스의 시인 레미 드 구르몽의 말을 적어보고 싶구나.

"우리는 행복해야 한다.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 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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