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차창밖 풍경처럼 그저 스쳐지나가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

나는 때때로 이 흐린 하늘이 어서 빨리 개었으면 하고 바라는 것과, 내 옆자리에서 몇 시간이고 나에게 즐거운 이야기를 들려줄 새로운 사람이 앉았으면 하고 바라는 것과, 끼니때마다 찾아오는 허기를 달래줄 홍익회 아저씨가 카트를 밀며 나타나기를 바라는, 그다지 중요하지도 않은 유아기적 사고를 하며 무심히 창밖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내가 지금 향하는 방향이 처음에 목적했던 곳으로 가고 있는지, 조금 천천히 가더라도 내려서 걸을 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잠깐씩 스치기도 하지만 나는 또 무심히 창밖을 보며 그 지나가는 풍경 속에서 작은 변화를 찾으려 애쓰는 것이다.

수도 없이 봐왔을 그 풍경이 지겹기도 하련만 나는 가끔 습관처럼 박수를 치며 감탄하고, 정신 나간 사람처럼 웃기도 한다.

그렇지만 나를 둘러싼 그 풍경에 항상 익숙한 것은 아니어서 변하고 있는 것이 내가 아니라 풍경이라고 떼쓰는 어린아이처럼 우길 때가 있다. 

나이에 따라 사람의 피부만 말라가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생각도, 감정도 점차 시큰둥하고 시니컬한 상태가 되면 마치 생각에서도 각질을 털어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히곤 한다.

내가 여행을 하는 것인지, 풍경이 나를 납치라도 하는 것인지 나의 여행은 한참을 제자리에서 맴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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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아

아침을 먹고 혼자 산책을 나섰단다.
잔뜩 흐린 하늘과 바람이 부는 날이었지.
그 길에서 나는 노란 산수유꽃을 만났지.  
회색빛 하늘을 배경으로 꽃망울을 터트리는 가녀린 산수유꽃이 얼마나 장하던지.....
오늘은 네게 그 꽃이 내게 들려준 이야기를 하려고 한단다.
믿지 못하겠다고?
그래.  세상엔 가끔 믿지 못할 일이 벌어지곤 한단다.
우리는 그것을 기적이라 부르지.  
수화기를 통해 멀리 떨어진 내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고 한번쯤 생각해 보았다면 너는 분명 기적을 믿는 것이란다.


아들아

산수유꽃에게 물었단다.  매년 봄철 한때 잠시 피었다 지는 것이 지겹지 않느냐고.
너무 유치한 질문이었지?  나는 그 대답을 듣고 아주 많이 부끄러워 했단다.
  "우리는 순간을 나누어 영원을 얻는 것이랍니다.  벌과 나비에게 꿀을, 사람들과 모든 생명체에게 향기와 아름다움을.  이런 것들은 아주 짧은 순간에 지나지 않죠.  그것을 통하여 우리는 영원한 생명의 씨앗을 얻는답니다.  우리가 주는 것에 비해 우리가 얻게 되는 것은 얼마나 소중하고 값진 것인지 우리는 매년 그 신비에 감탄한답니다.  당신네 인간들은 오히려 순간적인 것에 탐닉하고 영원한 것을 멀리하더군요.  인간을 제외한 모든 생명체가 알고 있는 이 자연스러움을 인간 중에는 지혜로운 자만 그리 한다고 들었어요."

 
아들아

나는 사랑, 믿음, 기쁨, 행복, 관심, 우정 등 영원한 것이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는 데 반평생을 보냈는데 이것이 보편적 진리였다는 사실에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었단다.
어쩌면 인간에게 만물의 영장 자리를 주었던 하느님이 몹시 후회하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되더구나.
삶은 화려할수록 금세 사라지는 꽃과 같은 것이란다. 
아무도 보아주지 않는 평범한 것에 삶의 신비는 자신의 모습을 꽁꽁 숨기곤 하지.
어느 책에선가 '죽음은 이 세상에서의 삶을 끝내는 것이지만 관계마저 끝내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던 말이 기억나는구나. 



아들아 


순간적인 것을 많이 나누렴.
순간적인 것을 탐하면 탐할수록 소중하고 영원한 것을 보지 못한단다.
나의 아들은 순간을 미련없이 주고,  영원을 얻는 삶을 살았으면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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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일이면 아들과 아내를 대동하고 가까운 서점으로 간다.
어제도 다르지 않아서 간단한 점심을 먹고는 분당의 교보문고로 향했다. 
초등학교 일학년의 아들은 요즘 <신기한 스쿨버스>와 <너도 보이니>에 푹 빠져 있다.
다른 책을 권해도 요지부동 고집을 부린다.
읽은 횟수만 세어도 책을 외울 정도로 많을텐데 여전히 그 책이 좋단다.
봄바람이 세차게 부는데 아들은 기분이 좋았나 보다.  숨을 못 쉴 정도로 바람이 거센 날씨를 좋아하는 것도 아들녀석만의 특별한 면모이다. 
아내는 요즘 명상에 관련된 책을 읽고 있다.
여러 이유로 말미암은 마음 속의 스트레스를 다루기 어려웠나 보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들녀석의 보살핌도 그러려니와 나의 문제도 아내에게는 적잖은 스트레스의 요인임을 잘 알고 있다.  그런 면에서 나는 아내에게 늘 죄스럽다.
서점은 신학기 학용품 세일을 하는 관계로 몹시 복잡하였다.
시끌벅적한 분위기에서도 앉을만한 자리 곳곳에는 책을 든 사람들로 넘쳐난다.
혼잡한 자리를 비집고 한동안 책을 읽다가 저녁을 먹으러 밖으로 나왔다.
불과 십수 년 전만해도 건물보다는 공터가 많아 겨울이면 불어오는 찬바람에 마음까지 을씨년스러웠던 분당의 거리는 이제 더 이상 건물이 들어설 수 없는 환락의 도시로 점차 변하고 있다.  저녁을 먹으며 아내는 아들에게 몇 번씩 다짐을 한다.
  "아빠 또 올라오시니까 가실 때 울지 마"
아들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영 자신이 없는 표정.  맛을 느끼지 못하는 저녁밥을 꾸역꾸역 먹었다.  아들도 나도.
웬만하면 버스로 이동하는 나는 이 시간이면 매번 차를 갖고 오지 않은 것을 후회한다.
아들과 어려운 이별을 했다.  고개를 숙인 얼굴에 눈물이 맺히고 있다.
오늘도 아들은 울고 있었다.  아내는 자신의 옆으로 아들을 불러 가슴에 안으며 내게 손짓을 한다.  아내의 재촉에도 여전히 내 발걸음은 무겁기만 하다.
버스에 올라 자리를 잡았을 때 아내로부터 걸려온 전화.  집으로 들어가는 길이라며 아들에게 전화를 건넨다.  아들과의 통화는 여전히 힘겹다.
어른들은 가끔 사내녀석이 눈물이 너무 많다고 걱정을 하시지만 나는 그런 아들의 모습이 좋기만 하다.  웃을 때는 세상 걱정 하나도 없이 티없이 깔깔 웃고, 슬플 때는 눈물을 흘릴 수 있다는 것이.
내가 세상의 그 누구로부터 눈물의 배웅을 받을 수 있겠는가.
나는 그렇게 아들이 쏟는 눈물의 빚, 사랑의 빚을 지고 이별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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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고약한 날씨다.
기상청 예보대로 황사가 있는지 코도 매케하고, 봄바람도 드세다. 
더구나 비도 추적추적 내리니 외출도 여의치 않아 독서나 할 요량으로 집어든 책이 <사유하는 도덕경>이다.   한마디로 어려운 책이다.  노자의 군더더기 없이 짧은 철학시는 읽는 사람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도록 그 여지를 주고 있지만, 나의 사고는 그 언저리에도 이르지 못하고 뱅뱅 원을 돌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진도로 언제 81장(章)에 이르는 그의 시를 다 읽을지 걱정부터 앞선다.  그래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것은 고전을 읽을 때 빠져들게 되는 보편적 진리의 깊고 그윽한 맛 때문이다.  조금 쉽게 해석한 도덕경이 없을까 찾던 중에 만난 이 책도 어렵기는 매일반이다.  너무 얇은 책은 그 의미를 이해하기 어렵고, 조금 두꺼운 책은 장황한 설명에 나의 사유가 끼어들 여지가 없게 만든다.  오전 내내 제1장도 이해하지 못한 채 제자리 걸음이다.  구제불능이다.

  말할 수 있는 도(道)는 상도(常道)가 아니고, 명명할 수 있는 이름은 상명(常名)이 아니다.  무명(無名)은 천지의 시작이고, 유명(有名)은 만물의 어머니이다.  그러므로 항상 무욕(無欲)으로써 그 무의 오묘함을 보고, 항상 유욕(有欲)으로써 그 유의 왕래를 본다.  이 무와 유는 동시에 나왔지만 그 이름을 달리한다.  유/무를 동시에 말하여 현묘(玄妙)하다고 한다.  현묘하고 현묘하도다.  그것은 온갖 묘리(妙理)가 출몰하는 문(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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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log.yes24.com/document/2120922



 "애애애애앵~"

"국민여러분, 국민여러분!

여기는 중앙민방위경보통제소입니다. 지금부터 훈련공습경보를 발령합니다.

현재 시각 우리나라 전역에 훈련공습경보를 발령합니다.

주민과 차량의 이동이 통제되오니 당황하지 마시고

민방위 대원의 안내에 따라 신속하게 대피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학창시절 매월 15일이면 들을 수 있었던 멘트이다.

사이렌과 함께 이 멘트가 울리면 지나던 차들은 그 자리에 멈추어 서야만 했고, 행인들은 골목이나 건물안에 들어가 '대피'해야만 했다. 학생들도 예외는 아니어서 점심을 먹고 오후 수업이 진행되는 중간에 사이렌 소리가 울리면 복도로 뛰쳐나온 아이들은 지정된 장소로 뛰어가곤 했다.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열을 지어 쪼그리고 앉은 채 자신의 머리를 앞에 있는 친구의 등에 기대는 것으로 훈련 준비를 마치면 해제 경보가 울릴 때까지 옆에 앉은 친구와 달콤한 수다를 늘어놓는 것이 훈련의 전부였다.  나른한 오후의 지루한 수업보다는 선생님의 눈을 피해 소곤소곤 속삭이던 그 시간이 학생들에게는 더 좋았는지 모른다.
마을의 장난꾸러기 꼬마놈들은 가끔 도로변에서 까불대다가 민방위 아저씨에게 혼쭐이 나기도 했다.
귀한 시간 뺏긴다며 투덜대던 어른들도 자신들의 불만을 터놓고 토로하지는 못하던 시대였다. 그렇지만 그 누구도 이 요란한 사이렌 소리의 의미를 정확히 믿지는 않았다.
그래서 실제로 북에서 누군가 미그 19 전투기를 몰고 귀순했을 때 당시 방송은 "이것은 실제 상황입니다. 공습경계경보를 발령합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이것은 실제상황입니다!"라고 목이 터져라 외쳤건만 아무도 믿지 않았던 우스운 일도 있었다.
그날은 일요일 오전이었고, 한미 합동 군사훈련이 진행되던 기간이었음에도 사람들은 양치기 소년의 거짓말인 양 태연히 자신들의 생업에 열중했던 것이다.  오후가 되어서야 사건이 한바탕 호들갑에 불과했던 것으로 판명되었지만 설령 그것이 실제 상황이었다 하더라도 별반 달라지지는 않았으리라.

오늘은 제 377차 민방위의 날.  

오래 전에 들었던 사이렌 경보음을 들으며 지금은 잊혀져 가는 그 시절의 혼란과 먹거리가 궁했던 국민들을 그날 만큼은 엄하게 통제하던 노란 완장이 생각나는 하루였다.
지금은 아이들도 그 사이렌 소리에 아랑곳 하지 않고 수업을 계속 한다는데 그때의 이야기는 <대한 늬우스>에나 등장하는 코믹 영화가 되어버렸다.
내가 그때의 추억을 떠올리듯 시계바늘은 거꾸로 돌릴 수 있어도 시간이 만든 사람들의 의식은 지울 수 없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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