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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의사 장기려 - 우리 시대의 마지막 성자, 개정판
손홍규 지음 / 다산책방 / 2012년 5월
평점 :
몇 해 전 장기려 박사의 일대기가 공연된 적이 있었다고 한다(지금도 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늘 그렇듯 나는 우리나라 선각자들 그들의 이름 석 자 정도만 알 뿐 제대로 알지 못한다. 장기려도 그 중 한 사람이다. 의학 박사라는 정도밖엔 알지 못한다. 그러다 언젠가 중고 서점을 기웃 거리다 이 책을 발견하고 잠시도 주저하지 않고 손에 넣었다. 다소 청소년 위인전기 같은 표지가 조금 그렇긴 한데 작가가 손홍규라고 하니 더 주저할 것도 없었다. 물론 난 아직 손홍규 작가의 작품은 읽어보지 못했지만 그의 이력은 익히 알고 있었던지라 선택해도 후회는 하지 않겠다 싶었다. 그리고 그 예상은 적중했다. 그는 유려하게 장기려 박사의 일대기를 풀어냈다.
장기려 박사의 이야기는 일제 강점기와 6. 25 전후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아마도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어렵고 힘든 시기는 아니었을까 싶다. 난세에 영웅이 있다고 하지만 이 시기 기억하고 싶은 몇몇 의인들이 있다는 것은 우리를 숙연하게 만든다. 손양원과 주기철, 김구 등 잊을 수 없는 아니 잊으면 안 되는 사람들 말이다. 그 가운데 또 기억할 사람이 바로 장기려 박사다.
그는 일제 강점기 부자는 아니지만 아버지가 일본인 밑에서 조선인 노동자들을 관리하는 일을 해 가난하게는 살지는 않았다고 한다. 공부도 아주 뛰어난 건 아니지만 대체로 우수한 편이었는데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진로를 고민하다 우연히 친구의 어머니가 의사 한 번 만나 보지 못하고 돌아가는 것을 보고 그때부터 의사가 되기로 결심을 했다고 한다. 그때는 일제 강점기였던 만큼 일본인 의대생들의 차별을 견뎌가며 그들 보다 몇 배의 노력을 기울여 조선 최고의 외과 의사가 되기도 한다. 당시 그는 스승인 백인제 교수 밑에서 의술을 연마하며 폐암 환자의 수술을 성공으로 이끌기도 했는데 그런 이력이면 승승장구할 수도 있었겠지만 친구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에 그 모든 걸 버리고 인술의 길을 간다. 또한 그가 그럴 수 있는 것엔 늘 희생하며 사셨던 그의 할머니의 영향이 컸다. 또한 보이지 않는 그림자였던 아내의 역할이 더해지기도 했고. 그는 나중에 월북해 김일성대학에서 교수가 되기도 했는데 이후에 발발한 6. 25와 그로인한 가족과의 생이별과 월남해서도 연좌제로 인한 고통 등이 고스란히 녹아져 있다.
작가는 당시의 사회 풍경, 장기려 박사의 의사로서의 시대적 고뇌를 생생하게 복원하기도 했는데 특히 일제 강점기가 끝난 직후의 풍경도 꼼꼼하게 되짚어 내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그렇게 희망적이고 이상적인 것만은 아니다. 물론 이후 남북으로 갈라져 전운이 감돌기도 하지만 바로 직전 흥청망청 대는 사회 배경도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마치 일본에 복수라도 하듯 본국으로 돌아가지도 못하는 일본 여성을 어떻게 농락했는지 말이다. 여담이긴 하지만 전에 이 시기의 일본 여성을 조명한 책을 읽었던 적이 있는데 일본이 맹위를 떨쳤다고 해서 그 나라 여성들이 꼭 행복했던 것만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나마 우리나라 위안부는 이렇게 일본 정부에 항의라도 할 수 있지 그들은 어디 가서 항의도 보상도 받지 못하고 있다.
내가 더 이 책을 읽으려고 했던 건 그와 더불어 동시대인으로 함석헌이나 김교신과의 교류가 있었다는 것인데 그것은 이 책을 읽는 일종의 보너스 같은 것이기도 하다. 때로 사람은 실력 있는 사람이 돼야겠다는 생각도 드는데 바로 이럴 때다. 내가 실력 있는 사람이 되면 그런 훌륭한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다. 그런데 오늘 날은 그 목적이 변질돼 자신의 입신양명을 위한다는 것이다. 하긴 입신양명을 위한 마음이야 어느 시대고 사람의 하나같은 마음이니 그걸 무조건 나무랄 수만은 없지만 어두운 시대 장기려 박사와 시대를 함께했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건 적지 않는 감동을 준다.
그는 자신의 둘째 아들과 월남하여 남과 북이 갈라지고 전쟁의 상흔으로 많은 정신적 고통을 당하지만 평생 신앙에 의지하며 독신으로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 작가 손홍규는 장기려의 전기와 수상록을 바탕으로 이 작품을 썼다고 하는데 나중에 검색해 보니 정말 그 이름으로된 기독교 신앙 서적이 눈에 띈다. 슈바이처가 의사면서 신학자인 것은 익히 잘 알려진 사실이기도 한데 그도 그랬던 것 같다. 그에 대해 더 알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