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입 금지 미래그래픽노블 2
실비아 베키니.수알초 지음, 이현경 옮김 / 밝은미래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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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딱지" 효과 때문에 선택했다. "수상작"이라니까, "최고의 그래픽노블"이라니까 재미있겠지..... 정작 [출입금지]가 어떤 책인지 전혀 예측해보지도 않고 "황금딱지"만 보고 데려왔다. 그토록 건성이었으니, 책 간지에 왜 슈퍼마켓 진열장이 그려졌는지, 첫 페이지부터 생수병 흔들리는 그림이 왜 등장하는지 감도 못 잡을만 하다. 지진을 표현한 것이다. 여느 지진이 아니라 2016년 8월 24일 이탈리아의 작은 도시, 몬테포르티노에서 발생해 300여명의 사망자와 11000명의 이재민을 낸 지진이었다. 




[출입금지]는 이 지진을 중심으로, 한 순간에 사랑하는 이와 삶의 터전을 잃은 사람들의 현재진행형 고통 또 그 고통에 성숙한 의미를 더해 다른 차원으로 넘어가려는 노력을 보여준다. 도자기 화분 만들기 수업 에피소드가  왜 자세히 묘사되었는지를 책을 덮기 직전에 깨달았다. 깨어진 화분을 이어붙인 선생님께서 알려주시니. "깨진 화병이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올 수 없듯이 우린 그 상처를 지울 수 없지. 그렇지만 우리의 이야기로 그 상처에 의미를 담을 수는 있단다."  







[출입금지]를 다 읽고 난 독자에게는, 표지의 붉은 털 개가 다르게 보일 것이다. 같은 시공간에 배치된 생명체로 보이지만, 한 쪽은 이제 상상 속 존재요 다른 쪽은 추억하며 그 꺼진 생명을 부여잡으려 한다. 붉은 개는 아이들에게 이르지 못한다. 


요새 미디어나 학자들의 글에서 큰 스케일, 지구적 차원의 대재앙을 자주 언급한다.우리가 집합적으로 무감해진 것일까?  규모화된 대재앙 (혹은 공포)에 압도당한 사람들은 작은 도시를 강타한 지진을 잊는 것 같다. 지진 때문에 트라우마적 고통을 경험하면서도 다시 일어나려는 사람들이 우리에게 말을 건네고 있는데도 말이다. 


멀리 갈 필요 없다. 당장 2017년 포항 대지진 이재민들이 3년이 지난 2020년에도 보상을 기다리다가 친척 집으로 원룸으로 옮겨다니며 추운 겨울 속으로 내던져 진다는 기사가 올라와 있다. 단지 물리적 '집'의 문제가 아니라, 그 분들이 어떤 마음의 겨울을 이겨내고 있는지 [출입금지] 덕분에 상상하게 된다. 상상 속에서만 손을 내미는 비겁함도 반성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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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코.입.귀.촉 - 삶이 바뀌는 다섯 가지 비밀
박지숙 지음 / 쌤앤파커스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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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기에도 메인 디쉬와 디저트가 있다면, 내가 메인보다 더 챙기는 디저트는 바로 건강 실용서. '~가 원인이다.' '~하라''~ 먹어라' '~ 먹지 말라. ~하지 말라' 비슷한 뉘앙스의 권고가 반복되지만 겸허한 마음으로 꾸준히 입력 중이다. 그러다가  평소 생각과 공통분모가 큰 책을 발견하면, 이것은 디저트가 아닌 노다지? [눈, 코, 입, 귀, 촉] 가 바로 그 노다지. 


프로필 사진만 보아서는 [눈, 코, 입, 귀, 촉]의 저자 박지숙은 30대의 외양이다. 하지만 10년 주기로 굵직하게 하는 일을 세 번(최초 10년은 대학 강단, 다음 10년은 병원에서 상담치료, 다음 10년은 "힐링 전문가") 바꾸었다 하니, 아무리 생각해도 50대 이상일 수 밖에 없다. 활자로 전하는 천 마디 건강 조언보다, 저자의 프로필 사진이 더 강력한 설득력을 발휘한다. 



나는 스케줄러 복잡하게 기록할 필요도 없고, 신용카드 쓸 일도 없이 게으른 건강법을 실천 중이다. 건강검진일 꼼꼼하게 챙기지도 않고, 건강보조제를 구입하는 일도 거의 없다. 곰곰 생각해봐도, '게으르다'할 밖에..... 따로 챙기는 게 없다. 건강법의 핵심조차도 느슨하다. '마음이 편안하면 다 좋다' 


[눈, 코, 입, 귀, 촉]의 저자 박지숙의 어린시절 스승이었다는 금오 스님은 "심신일여 心身一如"라는 말로 저자를 일깨워주었다 한다. 30여년 전 저자는 "마음이 편하면 몸이 편하다"로 이 말을 이해했으나,이제는 '몸이 즐거우면 마음도 행복해진다"로 이해한다 말한다. 


박지숙은 "오감感-눈, 코, 입, 귀, 촉 정화"를 위한 구체적 팁들을 저자가 현장에서 만나고 치료한 사람들의 실 사례를 들어 소개한다. 나는 여러 귀한 조언을 "고마운 마음을 가져라"로 압축시켜 이해했다. 


저자는 동국대학교에서 '선 禪 심리치유'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현재 (주)카루나힐링의 대표이다. 출판사에서 소개하는 그녀는 "대한민국 대표 마인드 힐링 전문가, 기업 명상 전문가"이다 

https://karunahealing.modoo.at/

프로그램만 보아서는 기업 경연진, 정치인, 방송인, 유명인사 등을 주 대상 삼는 것 같아 접근하기 쉬워보이지 않다. 하지만, [눈, 코, 입, 귀, 촉]가 전하는 조언은 한글 읽을 수 있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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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라임오렌지나무
J.M. 바스콘셀로스 원작, 이희재 만화 / 양철북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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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한 잔 천천히 마시면서, 읽을 생각으로 집어 들었다가 두통 선물을 받았다.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의 "제제"에게서. 혼자 있었기에 망정이지, 눈물과 콧물 협주, 두통까지 얻었다. 제제야, 나의 2020년 매끈했던 두통일지에 한줄 기록을 남기게 하는구나! 너를 절대로 공공 장소에서 만서서는 안 되겠다. 적어도 나는....






9살? 11살? 초등학교 때 읽어서 그랬을까? 나는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를,  '책 덮을 때, 기분이 아주 안 좋았던" 책으로 기억한다. 내용을 이해도 못하면서, 나름 이 책에서 하이라이트 문장을 뽑아서 짝사랑 앓던 시절 무던히 자주 써먹었다. "사랑하기를 그만두면 그 사람은 죽은 거와 다름 없다."뭐 이런.... (원문을 찾아보니, You kill in the heart. You quit liking somebody and one day he dies.)

정작 나는 줄거리는 홀랑 잊고 있었던 것이다. 2020년 12월 3일 제제를 다시 만나며 확인했다. 




작가 바스콘셀로스Jose Mauro de Vasconcelos 20년간 품고 있던 자신의 이야기를 단 12일 풀어냈다 한다. 1968년에 처음 나온 이 책이 5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남반부, 북반부 사람 가리지 않고 파고들고 있다는 걸 작가는 알 수 없겠지만. 역시나 인간의 무기이자 연장(extension)은 글이다. 


브라질의 빈부격차 문제를 요새도 미디어에서 다룬다. 2020년 리오데자네이로에는 또 다른 '제제'가 살고 있을 것이다. 저항하기 힘든 가난 앞에서 불안감의 출로를 찾는 어른 가족들에게 축구공 취급받는 어린이. 이가 부러지고, 피부에 지워지지 않는 흉터를 얻은, 마음의 흉터는 봉합할 길도 깊이를 가늠할 길도 없어 언어화하지 못하는 제제들. 아이들을 상상하다가 두통이 생겼다. 


마음이 아픈 사람들에게 초록은 자기치유력을 투사할 수 있는 생명이다. 제제에게 키 작은 라임 오렌지 나무가 그러했듯. 사랑하는 이를 잃고 너무 어린 나이에 커버릴 수 밖에 없었던 제제는 라임 오렌지 나무와는 헤어졌지만, 그 자신이 또 다른 제제에게 나무가 되어 준다. 작가 바스콘셀로스는 계속 라임 오렌지 나무가 되어 준다. 우리를 나무되라 이끌어준다. 



어린시절, 나는 왜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를 "기분 안 좋아지는 책" 으로 기억했을까... 생각이 꼬리를 물다 보니, 폴리아나형 꼬마에게 "시소의 반대편"이 있다는 게 안보였던 것 같다. 누구라도 시소를 타면 오를 뿐 더러 내려갈 수도 있다는 게 안 보였을 것이다. 내가 행복하니 어린이라면 다 행복한지 알았던 것이다. 폴리아나형 단순함 때문에 불편해했던 이들 있었겠구나를 이제서야 그 단순함을 미안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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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0-12-04 07: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책이 2,3편 있는 거도 모르다가 뒤늦게 사놓고 아직 읽지는 않았어요 ㅎㅎㅎ저는 아이유의 제제라는 노래도 되게 잘 썼다고 생각했는데 뭇매맞는 거 보고 어리둥절...유년기는 결코 때묻지 않은 순수함도 보호받는 시기도 아니고 마냥 서글픈 걸 매맞고 뽀르뚜까 죽어 울고 나무 베어버리는 제제 보며 너무 빨리 알아버린 거 같아요. ㅎㅎㅎ

얄라알라 2020-12-04 09:07   좋아요 1 | URL
2,3편이요? 와! 그렇군요. 작가를 찾아보니, 배우도 하시고 다채로운 삶 사셨더라고요. 쓰신 책 리스트가 길던데, 포루투갈어인가 눈에 안 들어와 관심 안 가졌는데 2,3편이 있었겠네요. 알려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죽은 자의 집 청소
김완 지음 / 김영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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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산 게이의 [헝거]가 온라인 서점 메인화면에서 계속 유혹했어도 고집스레 버텼다. 광고로 내세우기 좋은 소재뒤에 감춰진 격한 감정의 굴곡까지 감당하기 어려울 것 같아서. 읽단 [헝거]를 읽고 난 후,  내 100대(?) 소원 중 하나는 작가 록산 게이를 만나 보는 것. [죽은자의 집 청소]역시 비슷한 이유에서 안 읽고 버텼다. 하지만, 추천사마다 절절하다. 첫 문단을 읽는데, '헛!' 허를 찔린 반응. 문장이 예사롭지 않다. 다시 책날개로 돌아가니, '청소부''인 동시에 '시인' 이었구나. 김완 작가는 오랜 세월 대필 작가(ghost writer)로 글을 써왔다 했다. 


책 읽는 내내 폭포 아래서 물줄기로 두들겨 맞는 얼얼함에 머릿 속은 빠르게 회전했다. "죽은 자"가 제목의 키워드이지만 작가는 산 사람이 죽은 자를 대하는 방식,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를 넘어서는 공감과 연민(작가가 애묘인인지라 고양이가 많이 등장한다), 거창하게는 불평등, 소외, 탐욕, 죽음조차도 돈으로 처리되는 이 시스템 등...흉내도 못낼 시적인 문장으로 쿡쿡 다 쑤신다. 이 정도 독자 오장육부 다 뒤집을 정도로 전율시키고 뇌까지 각성시키는 글 쓰려면 자기를 갈아 넣어야 하는데, 희한하게도 작가님에 대한 이야기가 없다. 자신을 그다지 드러내지 않으면서 이처럼 내밀한 글을 쓸 수 있다니, 신묘한 능력일세 하며 읽는데 마지막 즈음....작가의 이야기가 나온다. 


죽은 자들의 공간을 들락이며 살았던 시간, 생 마감한 이후의 시간의 경계조차 뭉개듯 상상의 교감을 누적해서 그런가, 내 눈에는 작가가 30대가 아니라 300살 넘은 사람처럼 보인다. 김완 작가님, 참 많이 배웠습다. 감동이 너무 커서, 차마 초라한 문장으로 리뷰도 못 올릴 지경으로.





책 전체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의외로 일본 행정 관료들이 "고독사"를 "고립사"라고 언어유희하듯 명칭 변경한 이면의 함의였다! 그렇다. 솜털만큼도 그 고독은 감춰지지도 덜해지지 않는다.


"고독사 선진국 일본. 그 나라의 행정가들은 '고독'이라는 감정 판단이 들어간 어휘인 '고독獨사' 대신 '고립立사'라는표현을 공식 용어로 쓴다. 죽은 이가 처한 '고립'이라는 사회적 상황에 더 주목한 것이다. 고독사를 고립사로 바꿔 부른다고 해서 죽은 이의 고독이 솜털만큼이라도 덜해지진 않는다 (4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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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0-11-15 16: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네요. 고독사는 고립사네요. 고립사가 더 와닿을 수 있겠어요.
 



















처음 읽은 책은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이는 오랜 기간, 전국구 시간강사로 광폭 행보(?)를 해온 경험 덕분에 더 힘이 실릴 수 밖에 없는 글입니다. 직접 대학생들과 강의실에서 토론으로 맞장 뜨고, 그들의 레포트를 읽으며 20대의 생각을 가까이에서 모을 수 있었기에, 힘이 실릴 수 밖에 없는 글입니다. 


두번 째 읽은 [진격의 대학교] 역시 마찬가지의 맥락에서, 사회학적 통계보다도 시간강사로서의 오찬호 선생님이 만나온 지방대 대학생들의 증언을 자료 삼는 글입니다. 여전히 대학 서열로 성골, 진골을 나누고 차별하는 우리 사회를 비판하고 있습니다. 


세번 째, [하나도 괜찮지 않습니다]를 읽을 즈음, 오찬호 박사님은 대학교에서 평생직장을 찾을 생각을 딱히 하진 않는가  감을 받았습니다. (정교수로 안착한 선배 사회학자나 윗 세대 교수 중 일부의 "갑질"능력을 폭로하시더군요! 세상에, 특강을 의뢰해 불러놓고는 강사료 대신 학생 레포트를 주시다니요! 세상에, 오찬호 선생님이 쓰는 대중적 책이 가볍다고 면전에서 비꼬 다니요!) 여하튼, 오찬호 선생님은 대중적 저술과 강연이라는 채널이 그 비판적 목소리를 알리는 데 더 효과적이고, 본인 스스로 그 채널에서 리드할 재능이 상당함을 간파하신 듯 합니다. 


오찬호 선생님은 사회학자로 드물게(죄송합니다. 제가 잘 모르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학계 바깥에서 일반인 독자 팬덤을 형성하고 있어서, 그분의 책 광고와 저자와의 만남 댓글은 대개 뜨겁습니다.  고등학생, 대학생, 성인 남녀 두루두루 팬층으로 확보하고 계신가봅니다. 이 분의 책을  손꼽아 기다리는 독자들 실망시키지 않고, 참 책도 빨리 쓰시고 글도 시원시원해서 잘 읽힙니다. 


[결혼과 육아의 사회학], [지금 여기, 무탈하세요?]까지 내리 읽다보니, (독자로서) 오찬호 선생님과 친해진 느낌입니다. 비판적 세상 읽기, 사회학적 상상력으로 세상의 틈새 보기가 체화된 학자라는 존경심도 들고요. 


[지금 여기, 무탈한가요?]는 중고등학생 논술 교재에 연재하던 선생님의 글을 다듬어 최근 펴내신 책이더라고요. 

제가 이미 알고 있다 생각한 화두들도, 선생님의 풍부한 예화와 직설화법으로 다시 소개되면 처음 만나는 화두인양 눈길을 끕니다. 


다만, [지금 여기 무탈한가요?]를 읽으며 궁금한 점이 들었습니다. 선생님의 다른 책들도 마찬가지이고요. 21세기 한국 사회의 (고질적) 병폐, 적폐, 불평등의 현실을 묘사하고 고발하시는 데 꾸준히 기여해주시니 감사하지만, 이런 한국의 현상을 글로벌한 스케일에서 어떻게 위치지을 수 있는지, 그냥 "다 나쁜 건가?" 이 질문이 생기더라고요. "무탈하지 않고," "하나도 괜찮지 않은" 그 마음, 그런 세상보기의 시각이 물론 중요하지만, 한국의 현상이 그렇게 암울한 것인가? 다른 사회들과 비교급 혹은 글로벌한 스케일에서 문제 공유하고 해결할 의지는 어디서 찾을 수 있는가? 궁금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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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22598 2020-11-10 0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관심이 많은 분야인데...이분 책 한번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얄라알라 2020-11-10 10:04   좋아요 0 | URL
글을 어쩌면 이렇게 술술, 재밌게 쓰시는지....부러운 작가분입니다

2020-11-10 05:41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