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작된 세계 라임 청소년 문학 45
M. T. 앤더슨 지음, 이계순 옮김 / 라임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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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홉살 때 읽었던 [걸리버 여행기]부터 십대 때 탐닉했던 SF, [공각기동대]와 [총몽]에서도, 미래 세계는 지하 혹은 지상 슬럼도시와 대비되는 선택받은 자들의 공중도시로 이원화된다.  한결같은 상상력이다... 집단 예지몽처럼, 오래된 상상이 현실이 될까 두렵다. 



[조작된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작가 M. T. 앤더슨이 상상한 [조작된 세계]에서는 오염된 지구표면에 인간들이 살고 공중은 소수의 특권층과 부브가 차지했다. 부브는 외계 존재이다. "화강암으로 만든 탁자(11)"같은 땅딸막한 몸에 새끼들을 주걱처럼 주렁주렁 차고 다니니 우스꽝스러운 모양새인데, 한 순간에 지구를 접수할 만큼 기술력이 발달했다. 인간 우위에 있다. 인류를 동물원 동물처럼 흥미로운 관찰대상 삼으면서 겉으로는 지구와 "공동번영동맹" 맺자며 상생의 제스춰를 취한다. 그 이유가 의외인데, "인간들은 우리(부브)보다 훨씬 영적이야...우리는 지나치게 상업화되면서 영성을 다 잃어버렸지(102)"때문이라 한다. 


Olivia Jester , “Space Alien 107” / CC0

 



이 점잖은척 하는 종족에게도 인간의 언어로 이해하자면 관음증적 훔쳐보기 취미가 있다. 무성생식하는 이 종족에게는 인간이 재생산 성공도를 높이기 위해 초콜릿을 선물하고 향수를 뿌리고 서로의 몸을 탐닉하는 자체가 흥미로운 볼거리이다. 부브는 인간에게 돈을 주고  인간의 애정생활을 관찰하고 실시간 리얼리티 오락거리로 소비한다. 주인공인 10대 소년, 아담 코스텔로는 가족의 생계가 막막해지자 여자친구와 기꺼이 그 도촬의 자발적 피실험자가 되기로 한다. 그 돈으로 식구들을 먹여살릴 수 있으니까. 하지만, 상대를 보기만 해도 분당 심박수가 100회가 넘어가고 동공이 팽창하는 지속적 흥분상태가 인간의 "진짜" 사랑이라 믿는 부브들은 그 공식을 깨뜨리는 불협화음을 "사기 행각"으로 규정한다. 아담 코스텔로와 여자 친구가 서로에게 시들해져 미움까지 느끼자 이들을 사기죄로 고발한다. 




부브, 이  외계 종족은 도대체 인간에게서 무엇을 보고 싶고 기대하는 것일까? 이들은 아담 코스텔로가 그린 "있는 그대로의 지구" 모습을 보고 싶어하지 않는다. 부브 침공 이후, 당장 입에 풀칠할 거리를 고민하며 가족관계건 인간관계가 다 깨진채 야생의 동물처럼 살아가게 된 인간들을 보고 싶어하지 않는다. 홀로그램 이미지처럼 아름다운 지구 이미지만 원한다. 부브에게 아첨하고 부브들의 욕망을 잘 읽은 인간들만이 밥그릇을 챙기고 밥을 넘길 수 있다. 길들여졌다. 



작가 M. T. 앤더슨은 청소년 시절 사회풍자 소설에 심취했었다 한다. 그래서인가 [조작된 세계] 주인공이 겪는 "메릭병"의 증상이 의미심장해 보인다. 메릭병은 오염된 수돗물을 마셨을 때 생기는 위장병인데, 부브가 긴축재정으로 수돗물을 정화하지 않았으니 지구인들이 피하기 어려운 병이다. 주요 증세는 설사이다. 심지어는 아담 코스텔로는 연인 클로이가 리얼리티 쇼 조회수 높일 심산으로 강제 키스를 해왔을 때도 설사를 했다. 외계인 부브들은 처음엔 이 물똥이 사랑의 호르몬이 배출시킨 액체라고 알았다가 후에 "사기"의 증거 삼는다. 또한 주인공의 어머니 역시, 부브 침공 이후 실직하고 가족이 와해되고 극심한 혼란을 겪으면서도 온통 '푸드트럭' 알바생 취직 가능성이 20%, 40%,35%만 앵무새처럼 읊조린다. 인류의 삶을 영영 뒤 엎어버릴 거대한 변화가 일어나는데도 주인공의 설사는, 주인공 어머니의 취직 강박은 인간이 그 거대 음모에 저항하기엔 근시안임을 보여주는 것 같다.


하지만, 대부분의 SF 소설이 그렇지 않나? 주인공이라면 출구를 찾아내기 마련이다. Star Wars 시리즈 저항군처럼 통쾌한 전복이 아니더라도 기발한 잠행을 꾀할 수 있다. 강제 연결되고 강제 전시된 삶에서 도망가기! 누군가는 소극적 도피라 하겠지만, 그래도 낮게 엎드려 있으며 전복을 위한 힘을 응축해볼 수 있진 않을까? 반전 결말보다 오히려 도피가 현실적인 결말로 보인다. 



해당 리뷰는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읽고,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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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독일인입니다 - 전쟁과 역사와 죄의식에 대하여
노라 크루크 지음, 권진아 옮김 / 엘리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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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라 크루크. 미국 대학에 자리를 잡은 독일인 교수. 그녀가 40여년 살면서 계속 붙잡아 왔던 그 화두를 오랜 조사를 거쳐 고백하듯 풀어낸 책을 나는 고작 몇 줄로 기억해 쓰려니 저자에게 미안해진다. 


온라인 상 표지 이미지로만 보았을 때보다 책 판형이 훨씬 컸다. 게다가,잡지인지, 일기인지, 사진첩인지 장르를 특정할 수 없는 독특한 형식도 참신했고, 수록한 자료들 역시 참신했다. 책만 봐도 저자의 전공을 알 것 같았다(일러스트레이션). 


[나는 독일인입니다] 안에는 저자 로라 크루거가 학창시절 문장문장 분석하며 읽었던 히틀러의 연설물, 돌아가신 할아버지에 대한 서류, 저자 가족들의 옛 사진, 삼촌이 10대 때 썼던 일기 등 다양한 자료가 등장한다 이 모든 자료는 "로라 크루거가 독일인"이며, 그녀의 삼촌이 이차세계대전 중 사망하였고, 할아버지가 나치 부역자라는 사실과 관계된다, 저자는 그 죄책감을 평생 안고 살아왔으며 숨기지 않고 저 빗장 안까지 열어보려 했다. 그 시대 독일에서 살아보지도, 독버섯의 은유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한국인이지만 그녀의 감정선을 따라 연민도 느꼈다가 슬펐다가 안도도 한다. 








저자에게 한 번 더 미안해지는 대목인데, 사실 나는 [나는 독일인입니다]를 읽으며 가장 인상 깊었고, 읽고 나서도 계속 생각나는 것이 저자의 문장이 아니다. 저 사진이다. 이차세계대전 당시 독일이 패전하자 미 연합군은 독일인 민간인들에게 홀로코스트의 참상을 직접 목격하도록 시켰다. 혹은 포로수용소의 시신을 실은 차량을 일부러 독일 시민들이 볼 수 있게 하였다고 한다. 


실제 저 사진에서 사람이 사람에게 행한, 아니 독일인이 유대인에게 행한 짓에 경악하는 이들이 모두 여성이나 아이인 것은 우연의 일치인가?  실제로는 성별을 특정하여서 그 광경에 노출되게(즉 아이와 여성만 골라서 그 잔혹한 장면을 보게) 하지 않았을 것 같다. 여성만을 특정해서 참상을 보게 했다면 왜 인지 궁금하다. 혹은, 성별 특정하지 않고 독일 시민이면 누구나 세계대전 당시 독일인들이 저지른 만행을 알게 했던 거라면, 왜 하필 위 사진에서는 여성만 등장하게 편집했는지 그 의도가 무척 의아하다. 답을 모르겠으니 계속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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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계속 엄선해서 배출하고, 서가에 공간 생기니 또 다시 책을 들이고.....약이 없는 병이다. 다시 솟아 오른 책 더미에서 [검은 개]부터 뽑아들었다. 책 읽을 시간이 부족하다는 핑계로 제일 먼저 멀리한 장르가 소설이었다. 그런데, 책 덕후들의 서재를 기웃거리다보면 결국은 소설이 공통의 축인 것 같았다. 읽지 않아왔던 교만을 반성하며 [검은 개]를 탐독했건만, 이것은 왠 철학책이던가! [TENET] N차 관람하듯, N차로 읽어야 한단 말인가! 




이웃 서재를 드나들며 뒤늦게 알게 된 이언 매큐언의 작품들을 차근차근 독파해왔다. 미셸 투르니에, 아멜리 노통브 이후 좋아하는 작가 목록에 이름을 더하게 되어 감사한 마음이다. 그러나, [검은 개]만큼은 줄거리 이해도 어렵다.


화자인 지식인 중년 남성이 아내의 부모에게 흥미를 느껴 장인장모님 이야기를 한다. 떠오른 줄거리 아래로 들어가보면, 유럽정치사(세계대전, 이념충돌, 홀로코스트, 세상의 표리부동(내세우는 가치와 실제의 간극)뿐 아니라 세대의 책임을 이야기하는 것 같다. 새벽에 읽을 땐 몰랐는데 아침에 다시 생각해보니 이책엔 유난히 자식들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주인공만 해도 여덟 살에 부모님을 잃었고, 주인공의 조카 역시 폭력적 부모 밑에서 반 버림 받았고, 장인장모님의 냉전(?)에 그 자녀들도 어떤 의미에서는 방치되었다. 이언 메큐언은 가족에서의 관계보다 더 큰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 과거의 혼란(전쟁, 살상, 이념적 대립, 이념형과 실제의 괴리), 이미 일어났던 일로 인해 현재 세대, 그리고 나중 세대들이 감내해야 할 숙제가 늘어간다.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나? 내가 유럽인이었다면, 유럽의 역사와 현 정치상황을 좀 더 잘 안다면 [검은 개]를 이해하는 수준이 달랐으려나? N차 읽고 나면, [검은 개]의 "검은 개"를 이야기할 수 있겠지. 지금은, 버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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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균호 2020-09-04 13: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엄선해서 방출하기는 모든 장서가들의 고민이네요

2020-09-05 00: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9-05 00: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조용헌의 인생독법
조용헌 지음 / 불광출판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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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江湖 동양학자." 이색적인 이름이다. [인생독법] 책날개에서 작가 조용헌을 소개하는 단어인데, 오직 그에게만 붙여줄 수 있을 것 같다. 조용헌은 어렸을 때부터  "~사"는 "~사"인데, "도사"를 꿈꿔왔다 한다. 불교학을 선택했던 이유도 그 꿈에 근접시켜줄 것 같아서였다 하고(그는 불교민속학 박사이다)... 어린 시절 꿈을 따르듯, 그는 "강호江湖," 그것도 한국 땅만으로 부족해서 세계 여러 곳을 다니며 사람들을 만나고 특별한 공간들을 방문해왔다. 그렇게 반편생을 살아 이제 인생의 가을에 온 그가, [인생독법]에서 잘 사는 법을 들려준다. 



조용헌의 글은 이런저런 매체를 통해 읽어왔다. 그는 보이지 않는 세계의 힘와 작용을 믿고 경험해보았으며, 거기서 배웠다. 나는 넓디넓은 "강호"는 커녕, 시멘트로 지어진 집 밖으로도 잘 안나가면서(사회적 거리두기를 핑계로 더욱), 조용헌 자신의 표현을 빌자면 "발냄새, 땀냄새 나는" 그의 글에서 크게 배운다. [인생독법]에서 새롭게 배운 점, 아니 부러워한 점은 그의 소신이다. 


그는 자신을 386세대이며, 한국의 386세대들이 그러하듯 "사회과학의 세례를 받았"다 한다. 그의 시원한 문장을 직접 인용해 본다. 


"나는 386세대에 해당한다. 이 세대의 특징은 사회과학의 세례를 받은 세대라는 점이다. 세례란 무엇인가? 성스러운 강물이나 호수의 물속에 한 번 들어갔다가 나오는 것이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물에 적실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물은 알고보면 표피만 적신다. 피부만 적실뿐인지 몸속까지 뼛속까지 그 물이 적실 수는 없다. 비록 사회과학의 세례를 받기는 하였지만, 나의 근육과 뼛속까지 와 닿은 것은 전통 사상인 유, 불 선이었다. " [인생독법] 11쪽 


인생에 대해서, 더군다나 인생을 읽는 법, 잘 사는 법을 이야기하기 쉽지 않다. 그런데 조용헌은 시종일관 같은 심지에서 나온 불로 이야기한다. 그래서 뜨겁게 전달력이 있고, 읽는 이는 감화시킨다. 한 마디로 여러 노선 갈아타지 않고 시종일관이 있기에 힘이 있다. 나는 그렇지 못하다. 적어도 현재에는. 많이 부족하다. 


내게 익숙한 언어와 틀거리는 사회과학이지만, 하늘과 바람과 나무를 그 세계의 언어로 알고 싶은 욕심이 있다. 하지만 다시 진자는 돌아와, 익숙한 단어들을 버무려 세상을 보려한다. 충분치 않다. 진자가 다시 움직인다. 다른 세계에도 손 뻗어보고 싶다. 하지만 머리만 차가워서 그 언어 또한 제대로 듣지도 못한다. 한 심지에서 타는 불이 아니다. 그래서 약하다. 팔레트를 여러개 들었다 해서, 명화가 나오겠는가. 내게 딱 맞는 팔레트를 찾아야지, 색만 섞는다고 그림이 나오겠는가. 왜 그 질문이 중요하고, 그 질문에 답하고자 하는 뜨거움이 있기나 한건지 고민해야지.


[조용헌의 인생독법]은 한 심지의 힘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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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르노빌 - 세계를 경악시킨 체르노빌 재앙의 진실
앤드류 레더바로우 지음, 안혜림 옮김 / 브레인스토어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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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체르노빌의 목소리]도 혼자만의 공간에서 읽었다. 새벽녘, 슬픔과 공포에 가슴이 뻐근해져서 쉬엄쉬엄 읽어 나갔다. 스티븐 킹 소설도 아니건만, 공포감이 척추를 싸하게 마비시키는 것 같았다.

[체르노빌 01:23:40] 역시 공교롭게도 혼자만의 공간에서 읽었다. 생명을 잃어가는 많은 사람들, 숭고하게 희생한 사람들 때문에 마찬가지로 가슴이 뻐근해졌다. 글로만 읽어도 이렇게 압도되는데, 현장을 직접 찾았던 앤드류 레더바로우 Andrew Leatherbarrow는 어땠을까?





[체르노빌 01:23:40]은 1986년 4월 46일 체르노빌 핵 발전소 폭발사건을 한 축으로, 저자 자신이 2011년 체르노빌 참사 지역 여행에 다녀온 이야기를 또 다른 축으로 교차하며 전개된다. 저자는 체르노빌 대참사관련 자료들이 너무 어렵거나 편파적이어서 직접 쓰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하지만, "덕질"수진이라기 무색한 수준의 전문성을 보인다. 도대체 저자는 원자로 설계도를 어떻게 구했고, 러시아 어도 모른다면서 그 많은 문헌과 인터뷰 자료를 어떻게 다 해독했는지 경이롭기만 하다.

저자가 강조하는 점은

첫째, 정부는 "원자로 운전원의 실수나 무책임" 등 개인 차원으로 책임을 돌리려 노력해왔으나, 명백히 구조적- 즉, 원자로 설계 자체- 문제 였다.

둘째, 체르노빌 대참사가 아포칼립스가 되지 않도록 막은 데는 숱한 사람들의 헌신과 희생이 따랐다. 화재 당일 진압에 나섰던 소방관들은 물론, 제대로 분류도 안되고 보상도 못받은 청산인들, 그리고 이후로도 방사선 노출의 후유증을 앓고 있는 많은 사람들의 희생에 독자는 숙연해진다.

내가 감명받은 점은,

비전문가 덕후가 어떤 이슈가 궁금해서 사명감을 가지고 파헤쳐 들어갔을 때, 명망 높은 학자나 전문가에 버금가는 힘 있는 이야기를 전한다는 점이다. 저자가 체르노빌을 여행했던 2011년에는 일본에서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났다. 저자는 일본 정부, 도쿄 전력회사를 비판하는 문구를 책 후반부에 흘려 놓았다. 앤드류 레더바로우가 집필중인 책이 바로 이 동일본 대지진 관련된 것이라니, 차기작도 기대해본다.

<TENET>에 구소련의 옛 비밀 핵실험지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체르노빌 01:23:40]의 1장 "원자력 발전의 역사"파트를 읽다보니, Kyshtym 참사 등 기밀로 유지되던 참사들이 실제 있었고 오랜동안 은폐되어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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