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렇게 말하기 뭣하지만, 아저씨는 문제가 좀 있어요."

"그럴지도 모르지." 하고 나는 말했다.
"아저씨가 지금 어떤 곤경에 처해 있든지 —— 보나마나 곤경에 처해 있겠지만 ㅡ 그건 아저씨가 자초한 게 아닌가 싶어요. 아저씨에게 근본적으로 어떤 문제가 있어서, 그게 자석처럼 갖가지 골칫거리를 끌어들이는 거죠. 그러니까 조금이라도 눈치가 있는 여자는 아저씨 곁을 재빨리 떠날 거예요.
"네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군."
- P95

그렇게 압도적인빛 바로 아래에, 이런 유의 어둠이 존재한다. 사다리를 타고조금 지하로 내려왔을 뿐인데, 이렇게 깊은 어둠이 있다.
- P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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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먼 어느 곳에, 천박한 섬이 있어요. 이름은 없습니다. 이름을 붙일 만한 섬이 아니죠. 아주 천박하게 생긴 천박한 섬입니다. 거기에는 천박한 모양의 야자나무가 있죠.
그리고 그 야자나무는 천박한 냄새가 나는 열매를 맺습니다. 그런데 또 거기에는 천박한 원숭이가 살고 있어서, 그 천박한 냄새 나는 야자열매를 즐겨 먹어요. 그리고 천박한 똥을 싸죠. 그 똥이 땅에 떨어져 토양도 천박해지고, 그 토양에서 자라는 야자나무를 더욱 천박하게 하죠. 그런 순환입니다."
- P69

최소한 샌드백은 아닙니다. 살아 있는 인간이죠. 맞으면 맞받아칩니다. 그 점을 분명하게 기억해 두는 편이 좋을 겁니다."
- P71

저는 자신의 인생을 어쩌다 잃어버렸고, 그 상실된 인생과함께 사십 년 이상이나 살아 온 인간입니다. 그리고 저는 그같은 처지에 있는 인간으로서, 인생이란 그 와중에 있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한정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인생이라는 행위 속에 빛이 비추는 것은 한정된 아주 짧은기간뿐입니다. 어쩌면 불과 10여 초에 지나지 않는지도 모릅니다. 그 시간이 지나 버리고 나면, 그리고 그 빛이 보여주는 계시를 포착하지 못하면, 두 번 다시 기회는 존재하지않습니다. 그리고 사람은 그 후의 인생을 구원 없는 깊은 고독과 후회 속에 살아가야 하는지도 모릅니다. 그 같은 황혼의 세계에서 사람은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 P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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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3-10 08: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 빛이 보여주는 계시를 포착하지 못하면, 두 번 다시 기회는 존재하지않습니다.인생을 구원 없는 깊은 고독과 후회 속에 살아가야 하는지도 모릅니다.]
이문장 읽고
오늘도 열쉼히 ^.^

모나리자 2021-03-10 13: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리에겐 ‘오늘‘, ‘지금‘이 기회이겠지요. 함께 오늘도 열심히!!^^ㅋㅋ
 

종탑 끝이 얼마나 가늘고 얼마나 선명한 분홍빛이었는지, 오직 자연으로 이루어진 이 풍경, 이 화폭에 누군가가 예술의 작은 흔적, 단 하나의 인간적인 표시를 남겨 놓으려고 손톱으로 하늘에 줄을 그어 놓은 것 같았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가면 종탑만큼 높지는 않으나 그 곁에 반쯤 무너진 네모난 탑의 나머지 부분을 볼 수 있었는데, 그때 우리는 무엇보다도 돌 더미의 어두운 진홍빛에 놀랐다. 마치 가을날 안개 낀아침에 강렬한 보라색 포도밭 위에 치솟은, 거의 개머루빛에가까운 자주색 폐허처럼 보였다.


- P118

 결국 우리가 되돌아가는 곳은 항상종탑이었고, 종탑이 언제나 모든 것을 지배했다. 종탑은 예기치 않은 뾰족한 봉우리로 마을 집들을 불러내면서, 마치 수많은 인간 속에 몸을 파묻어도 내가 결코 혼동하는 일이 없는 신의 손가락처럼 내 앞에 모습을 내밀었다. 



- P123

내가 책을 읽고 있을 때 내 의식은, 내 자아의 가장 깊은 곳에숨어 있는 열망에서부터 저기 정원 끝 내 눈앞 지평선 너머 보이는 곳에 이르기까지 갖가지 상태를 동시에 펼쳤는데, 그와같은 일종의 다채로운 스크린에서 우선 내게 가장 내밀하게느껴진 것, 쉴 새 없이 움직이면서 나머지 모든 것들을 지배하던 손잡이는, 바로 내가 읽고 있는 책의 철학적인 풍요로움과아름다움에 대한 내 믿음이었고, 또 그 책이 어떤 책이든 간에그 풍요로움과 아름다움을 내 것으로 만들려는 욕망이었다.



- P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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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가지 더 물어봐도 돼요? 아니면 안 묻는 게 좋겠어요?"
"물어봐도 상관없어. 대답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부인이 다른 남자랑 집을 나갔어요?"
"모르겠어." 하고 나는 말했다. "어쩌면 그랬을지도 모르지. 그럴 가능성이 없지는 않아."
"이상하네, 계속 같이 살았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몰라요?"
맞는 말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왜 그런 것도 몰랐을까.
- P39

"그렇게 사소한 일이 의외로 중요해요, 태엽 감는 새 아저씨" 하고 가사하라 메이는 내 눈을 들여다보듯 보면서 말했다. "집에 가면 거울을 찬찬히 봐요."
"그럴게."
- P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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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골 방들은 — 눈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미생물들로 공기나 바다 전체가 빛을 발하거나 향기를 내뿜는 몇몇 고장에서처럼. 미덕, 지혜, 습관 같은, 공기 중에 떠 있는, 은밀하고도 눈에 보이지 않으며 넘쳐흐르는, 온갖 삶이 발산하는 무수한 냄새들로 우리를 매혹했다. 


- P94

.... 그해 모든 과일로 솜씨 있게 만든 투명한 젤리 냄새, 계절에 따라 변하면서도 가구와 집 안에서 나는 냄새로 톡 쏘는 하얀 젤리 맛을 따끈한빵의 달콤함으로 중화하는 냄새, 마을의 큰 시계처럼 한가로우면서도 규칙적인 냄새, 빈둥거리면서도 질서 있는 냄새, 태평하면서도 용의주도한 냄새, 세탁물 냄새, 아침 냄새, 신앙심 냄새, 불안만을 가중하는 평화와 그곳에 살지 않고 스쳐 가는 사람에게는 시(詩)의 커다란 보고로 사용되는 산문적인 것에 행복해하는 냄새였다.  - P95

 이 분홍빛 촛불, 그것은 여전히 보리수 색깔이긴 했지만, 이제 꽃들의 황혼이라고 부를 수 있는, 그들의줄어든 삶 속에서 반쯤 꺼진 채 졸고 있었다. 이윽고 아주머니는 죽은 잎과 시든 꽃잎을 맛볼 수 있는 끓는 차에 프티트 마들렌을 담그고 과자가 충분히 부드러워지자 한 조각 내게 내밀었다.


- P98

 콩브레에서는 모든 사람들을, 동물이건 사람이건 간에 너무도잘 알았으므로, 만약 아주머니께서 ‘전혀 알지 못하는 개 한마리가 어쩌다 눈앞을 지나가는 걸 보기라도 하면, 아주머니는 그에 대한 생각을 멈추지 않았고, 그 이해할 수 없는 사실에 자신의 온갖 추리력과 자유 시간을 쏟아부었다.
- P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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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3-08 14: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분명 1권을 읽고 또 읽었는데 모나리자님이 올려주신 구절을 다시 읽으니
넘 !새로움 ㅋㅋㅋ
보리수 열매 색깔이 분홍빛 촛불 색이라고 전혀 생각도 못했는데,,,

프루스트의 감각적인 문장속에 일상의 모든 움직임이들이 살아 움직이네요 ^.^

모나리자 2021-03-08 16:57   좋아요 1 | URL
정말 거의 보여주는 묘사더라구요. 콩브레 마을 풍경, 사람, 성당 등 눈에 꽂히는 게 다 대상이었어요. 눈으로 그림을 그리면서 읽어야 하는 작품 같아요.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