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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글로 세상을 1밀리미터라도 바꿀 수 있다면 - 공감과 연대의 글쓰기 수업
메리 파이퍼 지음, 김정희 옮김 / 티라미수 더북 / 2020년 6월
평점 :
이 책도 번역 수업에서 알게 된 책이다. 그동안 읽었던 글쓰기 관련 책과 결이 다르다고 해야 할까. 제목에도 잘 나타나 있고 부제도 ‘공감과 연대의 글쓰기 수업’이라고 되어있다. 저자 메리 파이퍼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임상심리학자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이다. 오자크에서 태어나 네브래스카에서 자랐고 캘리포니아대학교에서 인류학을 전공, 네브래스카대학교에서 임상심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전 세계 의료 전문가, 학생, 공동체를 대상으로 강연활동을 펼치고 있으며 《나는 심리치료사입니다》, 《나는 내 나이가 참 좋다》 등 열한 권의 책을 집필했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은 1부 나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 2부 헤엄치듯 글쓰기 3부 행동으로 옮기기 세 부분으로 되어있다. 작가는 자신의 세계관을 바꿔준 책, 《안네의 일기》를 처음 접한 열두 살 시절 이야기부터 쉰다섯 살 워싱턴 D.C.에 있는 홀로코스트 메모리얼 박물관을 방문해 안네 프랑크 전시를 관람했던 경험을 털어놓으며 ‘세상을 잇는 글쓰기’에 대해 말하기 시작한다. 나 또한 고1 때 《안네의 일기》를 읽고 안네 프랑크를 따라 상상의 친구(?)에게 일기를 썼던 경험이 있었기에 친근한 교감이 일어났다.
‘성공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걸 너무도 잘 알지만, 문학이 이 세상에 없어서는 안 된다는 것도 알기에, 당신은 세상을 바꾸기 위해 글을 쓴다. (…) 세상은 사람들의 관점에 따라 변한다. 그러므로 단 1밀리미터라도 사람들이 현실을 바라보는 방식을 바꿀 수 있다면, 당신은 세상을 바꿀 수 있다.’-제임스 볼드윈(James Baldwin) (p42)
‘나는 당신이 과거라는 숲으로 들어가 당신이 남긴 발자취를 따라 걸어보기를 바란다. 태어난 순간의 이야기에서 출발해서 의미있는 여러 경험으로 이정표를 더해가면서 연대표를 구성할 수도 있고, 특별한 장소, 뜻깊은 추억, 아니면 삶의 커다란 주제나 질문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꾸려갈 수도 있다. 살면서 맺었던 관계, 일, 종교, 음식, 놀이 등을 주제로 삼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p65)
작가는 마흔넷의 나이에 약간의 시간이 생겼을 때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의 소리를 듣고 지역 대학 글쓰기 수업에 등록했다 한다. 베스트셀러 작가의 늦은 글쓰기 입문 에피소드를 접하고 보면 왠지 ‘나도 할 수 있다’라는 자신감이 생길 것 같지 않은가. 하지만 처음 글쓰기에 입문하는 독자라면 무엇을 써야 할지 막막할 것이다. 그렇다면, 먼저 저자가 권하는 방식을 소개해 보겠다.
‘나의 유래는 ( )입니다.’라는 문장 형식으로 시를 써 보라고 한다. 저자가 쓴 예를 몇 가지 들어보겠다.
나의 유래는 에이비스와 프랭크, 아그네스와 프레드, 글래시 매이와 마크입니다.
나의 유래는 오자크 산맥과 콜로라도 동부 고원, 눈 녹은 산과 물뱀이 사는 남쪽 개울입니다.
나의 유래는 열광, 어둠, 관능 그리고 유머입니다.(p53)
이 시에는 반드시 음식, 장소, 종교에 관한 언급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 현재부터 먼 과거까지 시간을 거슬러서 갖가지 자취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거기에는 지금 자신의 핵심가치를 형성한 결정적인 사건, 중요한 사람, 잊지 못할 경험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저마다 각자의 재능이 있고, 시간을 보내는 방식이 있다고 했다. 간단한 방법이지만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나’를 돌아보는 이 과정에서 잘 몰랐던 자신을 알 수 있지 않을까. 나를 알아가는 작업이야말로 어떤 글쓰기를 할까, 무엇을 쓸까를 정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선결 작업이라고 할 수 있겠다.
우리가 쓰는 글은 우리 자신으로부터 나온다. 자신의 영혼을 더 깊이 탐구할수록 글도 더 깊고 풍성해진다. 불교 스승 페마 초드론(Pema Chodron)은 불교에서 말하는 ‘평정’이라는 개념을 ‘모두가 초대되는 만찬’에 비유했다. 우리의 내적 경험과 외적 경험을 열린 마음으로 모두 받아들이라는 것이 그의 조언이다. 우리 작가들은 독자에게 자신의 감수성과 도덕적 세계관, 관점을 제공해야 한다.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 제대로 알아야만 이런 선물을 온전히 건넬 수 있다. 잊지 마라. 모호한 생각은 모호한 글로 이어진다. 내적으로 명료해야 독자에게 사려 깊고 정직한 글을 보여줄 수 있다.(p55~56)
2부에서는 글쓰기를 수영에 비유하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수영을 못하는 나이지만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 특히 추운 겨울에는 수영장이 있는 곳으로 가서 물에 뛰어들려면 상당한 용기가 필요하다고 한다.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하지 않으려고 궁리하지만 결국 그냥 물속으로 뛰어든단다. 빨리 헤엄을 쳐야 몸이 빨리 데워진다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이라고. 빈 페이지는 수영장의 차가운 물과 같다고도 했다. 글쓰기도 이와 같다. 일단 시작하라는 얘기다. 일단 시작했더라도 채워지지 않는 하얀 화면을 보며 끙끙 앓기도 할 것이다. 작가는 ‘변화를 꿈꾸는 작가를 위한 글쓰기 규칙’을 언급하며 작가와 심리치료사의 공통점과 차이를 보여준다. ‘공감하는 훈련’이 둘의 공통점이라면, 차이점은 심리치료사와 내담자는 같은 공간에서 둘이서 모든 과정을 함께 이끌어가지만, 작가는 독자를 직접 마주하지 않는다는 것. 쓰고 있는 페이지에 집중하고 자신의 생각과 대면하는 시간이 많은데 그러다 보면 독자를 지나치게 의식할 수도 있다고 한다. 바로 자기검열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생각을 펼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글쓰기와 심리치료는 둘 다 사람들을 산 정상까지 데리고 갈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내는 일이다. 정상에 올라 호흡이 바뀌고 눈이 경이로움으로 가득 차면, 이제 그들은 기적을 행할 준비를 마치고 그 산에서 내려올 것이다.’(p145)
이 장에서는 글쓰기의 시작부터 고쳐쓰기 과정까지 자세하게 안내하고 있는데, 무엇보다 관점과 프레임에 대한 언급은 글쓰는 이가 기억해야 할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되었다. 관점은 철자법이나 문법 같은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라 ‘세상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반영’한다고 했다. 우리가 쓰는 모든 글에서 우리의 가장 내밀한 동기와 도덕적 진실성을 망라한다고 했다. 우리가 쓰는 글에는 아무래도 자신의 사고와 철학이 고스란히 담기기 마련이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의 관점은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프레임이다.’(p188)(중략) 최고의 작가는 독자의 관점을 넓혀준다. 독자가 세상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많은 것을 아우르는 은유와 더 큰 프레임을 만들어 낸다.’(p188)
또 세상을 잇는 글을 쓰는 우리 작가는 이분법을 피해야 한다고 했다. 흑백논리로는 다른 사람의 흑백논리를 깰 수 없다는 말도 했다. 글쓰기를 통해 나를 알아가고 그다음 단계는 독자를 변화시키고 독자의 관점을 넓힐 수 있는 작가가 최고의 작가라는 얘기다. 평범한 일상도 글이 되는 시대에 나의 글로 세상과 연결하고 나아가 더 나은 작가를 지향하는 글쓰기를 알려주는 것 같아 격려와 응원을 받은 기분이 들었다.
3부는 글쓰기의 실천편으로 편지 쓰기, 연설문 쓰기, 에세이 쓰기, 블로그 쓰기, 음악과 시 쓰기에 대해 얘기한다. 단, 음악과 시 쓰기는 쓰는 방법을 알려주는 게 아니고 좋아하는 음악과 시를 소개하는 정도다. 저자는 강연활동을 활발하게 하고 있는 만큼 연설문을 쓰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자신감 있는 연설을 위해서는 그 비결이 ‘준비’에서 나온다고 했다. 이야기에 힘을 싣는 방법,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무대공포증 이겨내는 방법까지 자세하게 설명해 준다. 3부 내용에서는 ‘에세이 쓰기’가 새롭게 다가왔다. 보통 에세이라면 작가의 일상적이고 개인적인 경험담을 담은 가벼운 이야기쯤으로 인식했는데, 작가는 ‘자신의 삶을 타인이 깨달음을 얻는 순간으로 치환’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독자를 위해 이야기를 단순화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에세이는 우리가 얻은 깨달음을 세상 사람들과 나누기 위해 보내는 초대장’(p265)이며 ‘우리가 공유하고자 하는 것은 삶의 아주 작은 단편과 경험이지만 거기에는 우리 자신의 영혼으로 엮어낸 이야기가 담겨 있다’는 말에 다시 한번 공감했다. 이렇게 세상 사람들과 공유하는 글을 쓰기 위해서는 관찰하고 반문하는 것을 멈추지 말라고 한다. 그러니 글감이 없다고 걱정할 일이 아니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 주변의 풍경, 거리를 걷는 사람들, 이 모든 것들을 그냥 넘기지 말고 묘사하라는 말이다. 그럴 수 있다면 우리의 시선과 관점은 많은 것을 포착하고 사색의 과정을 거쳐 많은 이야기로 탄생하지 않을까.
‘살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일은 영혼을 성장시키고, 그 성장시킨 영혼을 인류를 위해 사용하는 것이다. 작가는 독자의 영혼이 성장하도록 촉진한다. 성장을 위한 가장 좋은 토양은 사랑이다. 글쓰기는 눈에 보이는 사랑이 될 수 있다. 결국 우리가 독자를 진정으로 변화시킬 방법은 그들을 사랑하는 것이다. 우리가 글을 쓰면서 의도했던 변화를 확인하기 위해 사는 건 아니지만, 독자는 우리가 심은 나무 그늘을 즐길 것이다.’(p305)
정말 멋진 문장이 아닌가. 작가는 어떤 유형의 글이든, 글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말했다. 또 평범한 사람도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했다. 이런 작가의 말에 용기를 얻어 글쓰기를 배우고 싶은 사람이나 확장하는 글쓰기로 나아가고 싶은 독자가 읽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