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쓰메 소세키 지음, 김정숙 옮김 / 비채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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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 작품은 1910년 3월 1일부터 6월 12일까지 아사히 신문에 연재된 나쓰메 소세키의 장편소설이다. 전작   <그 후>의 연재가 끝난 후 신문사가 예고를 위해서 다음 작품의 제목을 알려달라고 재촉하자, 제자에게 아무거나 좋으니 제목을 붙여달라고 했고 고미야 도요다카의 책상위에 니체의 <차라투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가 있었고, 아무데나 펼쳐보니, ‘문’이란 단어가 눈에 띄어 그것으로 정해 신문사에 알렸다고 한다. 이렇게 남이 붙여준 제목으로 이 작품은 탄생되었다.

 


 ‘그 문을 열면 처마에 닿을 듯 깎아지른 절벽이 툇마루 끝에 버티고 있어서 아침나절은 비쳐도 좋을 한 줄기 햇살마저 쉽게 그림자를 드리우지 못한다. 잡초가 무성했다. 밑에서 돌로 쌓아 올린 게 아니므로 언제 무너질지 모를 위험이 있었지만, 신기하게도 여태 한 번도 무너진 적이 없다고 한다.’(p10)

 


 소스케와 오요네가 살고 있는 집의 모습이다. 소세키의 작품 중 부부 중심의 이야기로 펼쳐지는 것은 이것이 처음이다. 그림자 드리워진 삶, 불안에 휩싸여 위태로운 삶을 살아간다. ‘물처럼 옅고 담담한’(p188) 그저 친밀감을 표시하는 간략한 말을 주고받다가 가까워진 그들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미 되돌릴 수없는 상황임을 알았다. 소세키의 작품 중 유일하게 금슬 좋은 부부상을 그렸다. 금슬이 좋아보이기는 하나 그 둘 사이에는 체념과 인내 같은 것이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었고, 미래나 희망이라는 것은 보이지 않았다.

 


 ‘금슬에 있어서는 보통 사람 이상으로 좋지만 자식에 관해서는 보통 사람보다도 불행했다.’(p161) 아이를 가졌으나, 세 번이나 잃었다. 달을 못 채우거나, 채우고 낳았어도 울음소리 없는 차디찬 ‘살덩이’뿐이었다. 연거푸 아이를 갖는데 실패하자 점쟁이를 찾았는데, 폐부를 찌르는 듯한 말을 듣게 된다.

 


“당신은 자식을 못 가져.”

“왜죠?”

“당신 어떤 사람한테 몹쓸 짓을 했군. 그 귀신에 씌어 죽어도 자식을 못 가져”(p169)

 


 사회활동에서 접할 수 있는 경험과 기회를 스스로 차단했다. 삶은 점점 단조로워졌다. 그럴수록 둘의 존재는 절대적이 되어 갔다.

 


 ‘외부를 향해서 성장할 여지를 찾지 못한 두 사람은 안으로 안으로 깊이 파고들어 가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들의 생활은 폭이 좁아질수록 더 깊어져갔다. 그들은 육 년 동안 세상과 산만한 교섭을 하지 않은 대신 육 년의 세월에 걸쳐서 서로의 가슴을 파냈다. 그들의 생명은 어느새 서로의 밑바닥에까지 파고들었다.’(p172)

 


 현재 상황에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하나하나 펼쳐 보이는 방법으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지금은 이렇게 세상과 단절된 채 모든 것을 체념하고 살아가지만, 그는 한 때 상당한 재산이 있는 부모를 두었고, 쾌활한 성격에 복장이며 얼굴에서 빛이 났었다. 친구라면 누구누구 할 것 없이 소스케에게 모여들곤 했었다.

 


 원수는 외나무 다리에서 만난다고 했던가. 벼랑 위의 주인집 남자 사카이와 점점 친해졌다. 한 해가 저물어가는 섣달 그믐날 자꾸 놀러오라고 청한다. 세상 사는 이야기며, 골동품 이야기도 하고. 세상과 단절한 채 살아가던 소스케는 그의 세상 이야기에 빠져든다. 그러다가 동생 고로쿠를 자신의 서생으로 삼고 중단했던 공부를 시키는 건 어떠냐는 사카이의 말을 듣고 몹시 기뻐한다. 거기까지 듣고 인사를 하고 나왔어야 했는데, 천천히 더 놀다가라는 만류로 앉아 있다가 영원히 묻어두고 싶었던 그 이름을 듣고야 말았다. 대학 친구 야스이.

 


 추측은 맞아 떨어졌다. 속 썩이던 동생이 조만간 몽골에서 야스이라는 친구를 데리고 오기로 했고 저녁을 먹기로 했으니 꼭 오라고. 소스케는 사색이 되어서 주인집을 나와야 했다. 친구 야스이를 배신했던 소스케. 학교도 중단하고, 친구도, 부모도 친척도 모두 버렸다. 아니 버림을 받았다. 세상도 등져야 했다. 그 어두운 과거 때문에 다시 벼랑 위에 선 심정이 된 것이다.

 


 무거운 마음을 어찌할 수 없어 산문(山門)을 찾는다. 마음의 구원을 받고자 찾은 절에서조차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었고 ‘초상집 개’ 처럼 집으로 돌아온다.

‘나는 문을 열어달라고 왔다. 그렇지만 문지기는 문 안쪽에 있어서 아무리 두드려도 끝내 얼굴조차 내밀지 않았다. 단지 “두드려도 소용없다. 혼자 힘으로 열고 들어오너라”라는 목소리만 들려왔을 뿐이었다.'(p264)

 


 소스케는 야스이와의 만남을 피했다가 돌아왔지만 궁금한 마음을 참지 못하고 주인집 사카이를 찾았다가 이런 말을 듣는다. 초봄만 되면 개구리 부부가 장난꾸러기들의 돌에 맞아 죽은 시체가 헤아릴 수 없이 많다면서, “그런 걸 생각하면 당신이나 나는 실로 행복한 거예요. 적어도 부부가 되어 있는 게 밉살스럽다고 돌로 머리를 얻어맞는 공포는 없을 테니까요. 게다가 쌍방이 모두 이십 년이고 삼십 년이고 안전하다면 그거야말로 경사스러운 일이 틀림없지요.”(p272~273) 사교에 익숙한 사카이의 농담 섞인 이야기는 끝없이 이어지는데, 마음속에는 뭐라 형용할 수 없는 비애와 끔찍함이 떠나지 않는다.

 


 왜 그렇게 사느냐고 물을 수 없다. 어찌하다보니 그런 지경에 이르렀고, 죄책감이 똘똘 뭉친 마음으로 체념하고 인내하며 오로지 자연의 혜택인 세월이 약이라는 말을 믿고 삭이면서 살아간다. 통속소설처럼 화끈하고 행복하게 살지도 못하고 어두운 과거로 인해 전전긍긍하며 살아간다. 봄이 왔다고 좋아하는 오요네에게 다시 겨울이 올 거라는 소스케의 대응에서 끝없이 순환되는 자연과 삶의 희로애락이 겹친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이 작품을 읽고 감명을 받아 <태엽 감는 새>를 쓸 수 있었다고 한다. 한 번 뿐인 삶,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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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시로 - 일본 메이지시대 말기 도쿄의 대학생을 그린 청춘 교양소설 문학사상 세계문학
나쓰메 소세키 지음, 허호 옮김 / 문학사상사 / 2010년 8월
평점 :
절판



 이 작품은 일본 메이지 시대 말기 도쿄의 대학생을 그린 청춘 교양소설이라고 불리운다. 앞서 읽은 <풀베개>와 달리 초반부터 황당한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재미에 쏙 빠져 들어갔다. 순박한 청년 산시로(三四郞)는 구마모토에서 올라온 시골 청년으로 대학 진학을 위하여 도쿄에 상경한다.  지적 탐구 등 대학 생활에 대한 희망을 가득 안고 말이다. 도쿄행 열차 안에서 만난 여자와 나고야에서 내리게 된다. 여자가 혼자서는 불안하다며, 숙소를 안내해 줄 수 있느냐고 묻는다. 산시로는 선뜻 마음이 내키지 않았지만, 거절할 용기는 더욱 없어서 대충 대꾸했다. 허름한 여관에 들어갔는데, 이 여자와 자신은 일행이 아니라는 해명도 못 한다. 산시로가 먼저 들어가 목욕을 하는데, 여자는 “등을 좀 밀어드릴까요?” 한다. 괜찮다고 해도 나가지 않고 오히려 들어온다. 당황한 산시로는 욕조에서 뛰쳐나온다.



  여자는 떠나면서 “당신은 어지간히 배짱이 없는 분이군요.”한다.(p13) 산시로는 그 여자와 헤어진 후 곰곰이 생각하는데, ‘23년간 숨겨왔던 약점을 단번에 들켜버린 심정이었다.’(p14)


또 다른 짙은 수염의 사내는 “후지산은 일본 최고의 명물이야. 그것 외에 자랑거리라곤 아무것도 없어. 그런데 후지산은 옛날부터 있던 자연경관이니까 뽐낼 것도 못 되지. 우리가 만든 게 아니거든.” 산시로는 러일전쟁 이후에 이런 사람을 만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p21)



 도쿄에 온 산시로는 온통 놀랄 일 뿐이었다. 전차의 땡땡 울리는 소리에 놀라고 역에서 쏟아져 나오는 많은 사람을 보고 놀란다. 도시의 파괴와 건설의 격렬한 활동에 놀란다. 여태까지 배운 것으로는 놀라움을 막을 방법이 없었다. 멍해지고, 두렵고, 외로움을 느끼기도 하고 뭐가 뭔지 모를 모순에 빠지기도 한다.



 무슨 일이 생기거든 찾아가 도움을 청하라는 노노미야를 만나게 되고, 학교에서는 요지로와 친구가 된다. 요지로는 ‘살아있는 머리를 죽은 강의로 가득 채워봤자 희망이 없다’며 일단 전차를 타는 게 가장 초보 단계이며 제일 쉽다고 한다. 강의는 쓸모없지만, 도서관은 중요하다고 한다. 대단히 수완이 좋은 요지로는 히로타 선생의 식객이다. 대학에서 서양인 교수를 들이려고 하자, 그들은 융통성이 없다며, ‘신시대의 청년들을 만족시켜줄 만한 사람을 끌어와야'(p154) 한다고 말한다. 요지로는 히로타 선생을 대학 교수로 만들겠다며, <위대한 어둠> 이라는 논문을 쓰고, 학생들 모임을 주최하느라 분주하다. 열심히 의견을 내놓고 활약하지만, 끝에 가서는 일을 망친다.



 ‘광선의 압력’을 연구하는 노노미야, ‘철학의 연기’를 뿜어대는 히로타 선생, 노노미야의 여동생 요시코, 노노미야를 존경하는 미네코, 미네코를 모델로 그림을 그리는 화가 하라구치(原口), 산시로는 이들과 전시회, 연극 등을 구경하며 어울린다. 노노미야, 산시로, 미네코가 삼각구도인가 생각 했는데, 의미를 알 수 없는 Stray sheep(길 잃은 양, 미아)을 중얼거리며 산시로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해 놓고, 미네코는 다른 남자에게 시집을 간다.



 산시로는 그렇게 요지로에게 휘둘리고 빌려준 돈을 떼이기도 하고, 마음에 두었던 미네코와 어긋났지만, 그렇게 심각하게 고민하거나 방황하지 않는다. 충동적이지 않고 절제하는 자아상을 보여준다. 교양소설이라는 평가에 걸맞게. 오히려 요지로가 이끄는 대로 어울리며 도쿄 생활에 적응을 해 나간다. 아직까지 ‘절실하게 생사 문제를 생각해 본 적이 없는’(p240) 산시로는 자신의 마음속에 자리한 세 가지의 세계 사이를 넘나든다. 그 중 세 번째 세계 찬란한 봄날처럼 빛나는 웃음과 환성, 아름다운 여성상이 있는 심오한 세계는 산시로가 접근하기 어렵다. 자신이 주인공이 되고 싶었던 이 세계는 결국 어긋났다. 하지만 이러한 여러가지 경험을 통해서 좌충우돌했던 도쿄 생활에 적응하면서 그 후로는 좀 더 성숙한 모습으로 성장하지 않았을까.



 100년이 넘은 작품임에도 지금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다. 언제나 청춘의 시기에 고민하고 마음 쓰는 대상은 거의 비슷하니까. 도쿄 대학에 있는 ‘산시로의 연못’에 가면 나쓰메 소세키의 고뇌의 흔적을 느낄 수 있을까. 흔적이야 송두리째 사라졌겠지만, 언제 다시 도쿄에 간다면 작품속의 배경이 된 그 자리를 돌아보면서 내리쬐는 햇살과 공기를 한 번 느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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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당 (10주년 기념 리커버 특별판)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9
레이먼드 카버 지음, 김연수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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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이먼드 카버는 작년에 읽은 작가와 술을 통해서 처음 알게 되었고, 타인의 슬픔을 마주할 때 내 슬픔도 끝난다에서 소개된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이라는 작품을 알게 되어 언젠가 꼭 읽어보리라 생각했었다. 얼마 전 명사의 서재라는 이벤트를 통해 소설가 김연수의 인터뷰를 읽게 되었고 그가 번역한 이 작품을 만나게 되었다. 한 작가와 만나게 되는 과정은 절묘한 타이밍이 작용한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열 두 편의 단편이 들어있다. 단편소설을 읽을 때마다 짧은 글 속에 이토록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녹여낼 수 있을까 감탄한다. 레이먼드 카버는 미국 단편소설 르네상스를 주도한 리얼리즘의 대가로 평가된다. 한 번도 자전적인 것을 쓴 적이 없지만 술, 가족이라는 테마는 그의 단편 소설에 고스란히 옮겨져 있을 정도로 형상화 되어있다. 특히 작가와 깊은 관계가 있는 술에 관한 문제로 고민하는 마음이 여러 작품 속에 들어 있었다. 인물들은 평범하면서도 소외된 빈민이나 약자 계층으로 큰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이 주를 이룬다. 하지만 도드라지게 못된 성격의 인물군은 거의 없으며 자신의 주어진 삶에 불만을 품지 않고 받아들이는 모습이 보인다.


 현재 우리는 소통의 부재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기차>도 역시 그런 모습을 보여준다. <비타민>에서 흑인 넬슨이 누런 새끼들의 잘라낸 귀를 기념품이라고 보여주는 대목이 있다. 왠지 섬뜩했다. 황인종을 가리키는 베트남인은 물론 여러 작품의 공간 배경으로 나오는 우물, 칸막이 자리, 다락방, 칸막이 객실, 소파, 알코올중독치료 센터 등 닫힌 공간 속에서 외부의 소리와 차단된 상황을 상징하기도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잘라냈다는 귀는 상대방의 말을 듣지 않으려는 마음의 다른 표현이기도 하겠다.


 <신경써서><내가 전화를 거는 곳>은 술을 끊지 못해서 아내와 별거를 하거나 치료센터에 들어가 생활해야 하는 인물이 나온다. 앞 작품에서 아내 이네즈는 로이드와 이혼을 하려는 이야기를 하러 온 것 같은데, 로이드는 한쪽 귀가 귀지로 꽉 막혀서 답답하고 어쩔 줄 몰라 주먹으로 자신의 머리를 치는 등 괴로워하는 상황이다. 그런 모습을 보니 냉정하게 이혼 이야기를 꺼낼 수가 없다. 주인집 할머니로부터 베이비오일을 빌려서 귀지를 빼내고 귀가 들리도록 로이드를 돕는다. 헤어지려고 마음먹었다면 그런 도움조차 싫을 텐데도 묵묵히 도움을 준다. 헤어지는 마당에 매몰차게 대하지 못하고 배려의 마음이 느껴져서 더 연민이 느껴졌다.


이제 잘 들려.” 그가 말했다. “괜찮아진 거야! 이제 들을 수 있다고. 당신이 꼭 물속에서 말하는 것 같았는데. 이젠 아니야. 깨끗하게 들려. 괜찮아. 세상에. 잠시나마 미쳐버리는 줄 알았다구. 하지만 이젠 좋아졌어. 다 들려. 들어봐. 여보. 커피를 끓일게. 주스도 있고.”(P170)


 그러게 평소에 신경써서아내의 말을 잘 듣고 소통을 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술 때문에 가정이 흔들릴 지경까지 갔으면 멈출 줄도 알았어야 했는데. 로이드는 화장실 변기 뒤에까지 숨겨 놓고 마신다. 이제 잘 들린다는 건 그녀에게 고맙고 같이 잘 해보고 싶은 마음의 표현일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안 그래도 늦었다구.” 그녀는 문으로 갔다. 하지만 문 앞에서 그녀는 돌아서더니 그에게 뭐라고 얘기했다. 그는 듣지 않았다. 그는 듣고 싶지 않았다. 그녀가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그 말을 하는 동안. 그의 입술의 움직임을 지켜봤다. 그 말을 끝마친 뒤, 그녀는 안녕이라고 말했다. 그러더니 그녀는 문을 열었다 닫으며 밖으로 나갔다.(P171)


 로이드의 귀 문제를 해결하느라고 약속시간에도 늦었지만, 로이드와의 재고된 삶도 다시 시작하기에 늦었다는 것을 중의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듣고 싶지 않은 말이라고 건성으로 들으면서 자신의 요구를 관철할 수는 없다. 문장이 군더더기가 없으면서 위트가 있다. 짠한 장면을 읽으면서도 웃음이 난다.


 맨 처음에 나오는 <깃털들>은 한 번도 아이를 원한 적이 없이 잘 살고 있던 잭과 프랜 부부가 잭의 친구 버드의 초대를 받아 놀러갔다가 낙원의 새를 의미하는 커다란 공작을 키우고 있는 기이한 그들을 본다. 그리고 단순히 못생겼다는 말로는 표현이 안 되는 엄청나게 못생겼다는그들의 아기를 보고 와서는 어떻게 마음이 바뀌었는지 잭과 프랜은 아이를 갖는다. 아이가 생기면서 부부는 소원해지고 둘 사이를 차지하는 것은 TV뿐이라고 넋두리를 한다. 이른바 그들의 낙원이 사라졌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카버는 에세이에서 아이들이 생기면서 더욱 힘들어졌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는데 이 작품으로 재현시킨 것으로 보인다.


 <>은 아내 아일린이 칼라일의 직장 동료와 새 삶을 시작하겠다고 집을 떠나면서 인생의 새로운 국면에 처한 칼라일의 이야기가 나온다. 당장 아이들을 돌봐야 하기 때문에 시터를 구해야 하는데 난감하기 짝이 없다. 집을 떠난 아내의 도움으로 세 번째 시터로 웹스터 부인이 와서 아이들과 가정이 겨우 안정되었는데 그만두게 되었다는 사정을 듣게 된다. 아내에 대한 미련과 애증으로 갈피를 잡지 못한 칼라일은 열병을 얻게 되고 웹스터 할머니의 간호로 낫게 되는데 떠나는 할머니에게 그동안의 이야기를 털어놓으면서 집 떠난 아내를 완전히 놓아줄 수 있다고 마음의 매듭을 짓는다. 자신에게는 일어나리라고 생각지 못했던 얼룩 일수도 있는 그것도 삶의 일부라고 인정한 것이다.


 <굴레>는 부동산 임대업과 미용실을 겸업하는 화자가 나온다. 이 화자도 <>의 웹스터 할머니처럼 이야기를 들어주는 역할을 한다. 한때 미네소타 농장주였던 홀리츠 가족이 그들이 탄 자동차만을 건진 채 이사를 온다. 베티는 무직인 남편 홀리츠와 두 아들의 생계를 위해 분할근무제 식당에서 일하는데, 어느 날 머리 관리를 받으러 왔다가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점점 나아져가고 희망에 차 있었는데 경주마를 사는 홀리츠로 인해 삶은 버거워졌고, 놀랍게도 자신은 두 번째 아내이며 친아들도 아닌데 친아들처럼 사랑하고 있다는 말까지. 주변 사람들과 좀 친해져서 같이 어울리다가 어쩌면 치기 어린 장난으로 홀리츠가 머리를 다치고 그들은 떠나게 된다. 검은 가죽의 낡은 말굴레만 놓고서. 빠뜨린 것인지 일부러 놓고 간 것인지는 모른다. 어쩌면 베티는 이런 힘듦의 굴레를 벗어나고 싶지는 않았을까. 그런데 베티는 이런 삶 속에서도 불평불만도 없이 이 가족을 떠나지도 않았다.


재갈은 무겁고 차갑다. 이빨 사이에 이런 걸 차게 된다면 금방 많은 것을 알게 되리라. 재갈이 당겨지는 느낌이 들 때가 바로 그때라는 걸. 지금 어딘가로 가고 있는 중이라는 걸.(P284)


 재갈이 물려졌다는 것은 삶의 고통을 이야기하는 것일 게다. 살아있으니까 그런 고통도 감수해야 하는 것이라고. 벗어나기 위한 굴레가 아닌 그것을 이겨내려고 하고 거기서 도망치지 않는 베티는 아마도 자신의 삶을 사랑할 줄 아는 여자는 아니었을까. 레이먼드 카버의 굴레와 삶에 대한 깊은 통찰에 감동이 진하게 몰려온다.


 마지막의 <대성당>은 소외 계층의 약자 중에 약자라 할 수 있는 맹인이 나온다. 눈이 안 보인다고 해서 진실을 못 보는 것은 아니고 환한 눈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모두가 진실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정성을 다해 들으려 하지 않고 진실을 보려는 진심 없이는 진정한 소통은 요원할 것이다. 여러 단편 속의 인물들은 우리 자신일 수도 있고 어쩌면 외면하고 싶은 이웃일지도 모른다. 다행히도 우리는 문학을 통해서 점점 좋은 사람이 되어 가는 건 아닐까 위안이 생긴다

 

이 사람아, 다 괜찮네.” 그 맹인이 말했다. “난 좋아, 자네가 뭘 보든지 상관없어. 나는 항상 뭔가를 배우니까. 배움에는 끝이 없는 법이니까. 오늘밤에도 내가 뭘 좀 배운다고 해서 나쁠 건 없겠지. 내겐 귀가 있으니까.” 그가 말했다.(P303~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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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양장) - 개정판 새움 세계문학
알베르 카뮈 지음, 이정서 옮김 / 새움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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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 작품을 고1때 읽었으니 기억은 그리 세세하게 남아있지 않다. 첫 문장 오늘, 엄마가 죽었다로 시작하는 간결하면서도 전혀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이 문장은 오랜만에 접했어도 그 강렬함은 여전했다. 비교적 짧은 이야기로 알고 있었는데, 책을 받고 보니 분량이 상당했다. 역시나 번역 문제를 제기한 작품이어서인지 번역의 문제로 반론을 제기하는 역자 노트가 작품 내용보다 더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었다.


 소위 고전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작품들을 우리는 거의 번역본으로 읽는다. 고전 외에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번역서들을 접한다. 원서로 읽을 수 있는 재능을 부여받았다면 모를까, 번역서를 만나면서 우리는 가끔 잘 안 읽히는 책을 읽으면서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 그러한 부류의 책은 기억에 오래 남지도 않는다. 한 나라의 언어에는 그들의 역사, 문화, 풍습, 그들의 생활까지도 모두 내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어떻게 해석하고 번역하느냐에 따라 작품의 등장인물의 성격이 달라지고 내용 전체를 뒤흔들 수 있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된 책읽기였다. 원래 작품을 쓴 작가의 의도나 이야기가 알게 모르게 번역의 과정에서 왜곡 될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사실 리뷰를 쓰면서도 조심스럽기는 하다. 번역으로 수십 년을 살아온 이 분야의 대가라고 할 수 있는 분들도 이렇게 도마 위에 올라 분쟁을 하는구나 싶다. 그런 상황에서 서로 오류를 인정하고 수정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겠다는 생각이다. 어쨌든 나는 단지 독자로서 이 작품을 읽고 냉정한 판단을 할 수밖에 없다.


 여기서는 주로 김화영 번역가의 번역본을 비교하는 문장이 주로 차지했다. 등장인물들의 대사가 확실히 거칠다는 느낌이 들었다. 없는 접속사나 말을 끼워 넣었다거나 하는 오류를 범한 것을 낱낱이 지적한다. 프랑스어에 전혀 문외한인 나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지면을 할애하여 예를 든 문장들이 사실이라면 작품을 번역하는 역자에 따라 느낌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은 확실한 것 같다.


그는 피가 나도록 여자를 때렸다. 그전에는 그 여자를 때린 일은 없었다는 것이다. “손찌검은 했지만 말하자면 살살 했던 셈이지요. 그러면 그년은 소리를 지르곤 했지요. 나는 덧문을 닫아 버렸고, 결국엔 늘 마찬가지로 끝나 버리곤 했어요. 그렇지만 이번엔 본격적이었습니다. 그런데 나로서는 그년에게 벌을 속 시원하게 다 주지 못했거든요.”(김화영 역 민음사 P39~40)

그는 피가 날 정도로 때렸다. 전에는, 여자를 때리지 않았다. “내가 그 여자를 때린 건, 말하자면 다정함의 표현이었소. 그 여자가 조그맣게 소리를 질러 댔고 나는 덧문을 닫아 버리면 그것으로 항상 끝나는 일이었지. 그러나 이번엔 진짜였고. 그래도 나로서는 그 여자를 충분히 벌하지 못했다고 생각해요.”(본문 P52~53)

(※ 프랑스어 원문도 실려 있지만 여기서는 생략했다.)


 밑줄 친 부분은 그 여자를 뜻하는 프랑스어 ‘Elle’를 그렇게 번역하여 등장인물 레몽을 파렴치범이나 양아치의 부류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역자가 임의로 옮긴 번역의 예라고 하는데 작가가 맨 처음 쓴 인물의 성격과는 정 반대로 바뀔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머니의 장례식을 치른 뫼르소는 어느 일요일, 이웃과 함께 보내다가 레몽을 다치게 한 아랍인과 마주치게 되고... 그가 겨누는 칼에 대응하여 그를 권총으로 쏘아 죽이게 된다.


그 타는 듯한 칼날은 속눈썹을 파고들어 아픈 두 눈을 후벼 팠다. 모든 것이 휘청거린 건 바로 그때였다. 바다로부터 무겁고 뜨거운 입김이 실려 왔다. 온 하늘이 활짝 열리며 비 오듯 불을 뿜어 대는 것 같았다. 나는 온몸이 긴장했고, 손으로 권총을 힘 있게 그러쥐었다. 방아쇠가 당겨졌다. 나는 권총 손잡이의 매끈한 배를 느꼈다. 그리고 거기에서, 날카롭고 귀청이 터질 듯한 소음과 함께 그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나는 땀과 햇볕을 떨쳐 버렸다. 나는 내가 한낮의 균형을, 스스로 행복감을 느꼈던 해변의 그 예외적인 침묵을 깨뜨려 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고는 미동도 하지 않는 몸뚱이에 네 발을 더 쏘아 댔고 탄환은 흔적도 없이 박혀 버렸다. 그것은 불행의 문을 두드리는 네 번의 짧은 노크 같은 것이었다.’(P88~89)


 아, ‘불행의 문을 두드리는 네 번의 짧은 노크라니 간결한 이 문장이 함축하고 있는 고난은 얼마나 큰 것인가.

정당방위라고 할 수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재판의 과정은 뫼르소에게 유리하게 돌아가지 않는다. 햇볕 때문에 그를 죽였다는 것으로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는데, 오랫동안 쌓아온 고정관념이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생각게 한다.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울지 않았다는 이유, 무덤덤한 성격은 어쩌면 사전에 범행을 계획했을 수도 있다, 벌을 받아 마땅한 악한이다, 라는 쪽으로 힘을 실어줄 수도 있겠다. 그리 살갑지 않은 성격이지만 거짓말을 싫어하고 자신의 안위를 위해 주변 사람들이나 관계 맺은 사람들에게 굽신 거릴 줄 모른다. 어느 정도로 거짓말을 싫어하냐 하면 마음에 있는 여자 마리가 그와 결혼하고 싶다고 하면서 자기를 사랑하느냐고 그에게 묻는데, 사랑하지는 않지만 당신이 원한다면 결혼해 줄 수도 있다고 한다. 어찌 보면 융통성이 없다고 해야 할까. 자신에게 충실하다고 해야 할까. 좋은 게 좋은 거라고 하면 묻어가지 못하는 사람 뫼르소는 그렇게 이방인취급을 받으며 죽을 날을 기다린다. ‘모든 것을 다시 살아 볼 준비가 됐다고 느꼈, ‘세상의 부드러운 무관심에 처음으로 마음을 열었지만 사형을 언도 받은 사람치고는 너무 담담하다. 사형집행일에는 덜 외롭게 많은 구경꾼들이 와서 증오의 함성으로 맞이해 주길 바라기까지 하면서.


<번역문장의 비교 예>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양로원으로부터 전보를 한 통 받았다. ‘모친 사망, 명일 장례식. 근조(謹弔).’ 그것만으로써는 아무런 뜻이 없다. 아마 어제였는지도 모르겠다.(김화영 역 민음사 P9)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인지도, 모르겠다. 양로원으로부터 전보 한 통을 받았다. ‘모친 사망, 내일 장례식. 삼가 애도함.’ 그것만으로는 알 수 없었다. 아마 어제였을 것이다.’(본문 P17)


잔은 그 녀석을 붙잡으려고 하질 않았다고요.”하고 여자가 소리소리 지르고 있었다. “, 그래?” 하고 사내는 말했다. “당신이 나오면 그 녀석을 꼭 붙잡을 거라고 말했지만, 그래도 붙잡으려들지를 않았어요.”(김화영 역)

잔이 그를 돌볼 수 없대요.” 그녀는 목청을 다하여 소리쳤다. “그래, 그래.” 남자가 말했다. “내가 그 여자에게 당신이 나오면 다시 그를 돌볼 거라고 했지만, 그 여자는 그것을 원치 않는대요.”(본문 P107)


나는, 그것도 또한 나를 사건으로부터 제쳐 놓고 나를 무시해버리는 것이고, 어떤 의미로는 그가 나 대신의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때 나는 벌써 그 법정에서 아득히 멀어져 있는 느낌이었다.’(김화영 역 P116)

나는 그것이 나를 이 사건에서 더욱 멀어지게 하고, 나를 제로로 만들어 버리고, 어떤 의미에서는 나를 대체시킨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미 나는 그 법정으로부터 아주 멀리 떨어져 있다는 느낌이 든다.’(본문 P144)


 책을 읽다보면, 특히 번역서의 경우 정말 잘 읽히지 않는 책이 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내가 이해력이 부족한 건가 하다가도 번역이 매끄럽지 않다고 탓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번역이 그리 쉬운 게 아니라는 것을 다시금 느낀다. 역자는 여기서 이렇게 당부한다. 번역서를 읽으면서 이해가 안 된다면 자신을 의심하기에 앞서, 역자의 권위에 우선 주눅 들지 말고 그가 번역을 잘못 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 번쯤 해볼 수 있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앞으로도 이러한 논쟁은 수없이 벌어지리라고 생각한다. 해당 업계에서는 불편한 감정이 있겠지만 이를 계기로 더 좋은 작품을 만들어내는 디딤돌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품게 되었다.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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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과 편견 더디 세계문학 8
제인 오스틴 지음, 이정아 옮김 / 더디(더디퍼런스) / 2018년 5월
평점 :
품절


 이 작품이 나온 지 200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작품이다. 무엇이 그토록 사랑받는 비결이 되었을까. 자료에 의하면 제인오스틴은 한 번도 결혼한 적이 없다. 한 번은 남자 쪽 집안의 반대로 무산되었고, 또 한 번은 청혼은 받았으나 사랑 없는 결혼에 회의를 느껴서 거절했다. 그러니 어쩌면 연애다운 연애도 못했다고 추측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 작품은 연애와 결혼 이야기다. 아마도 자신의 소망을 작품에 쏟아 부은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빛나는 사랑의 결실의 과정을 보여주고 흥미를 돋우며 독자를 참여시킨다. 그저 흔한 사랑 이야기에 오만편견이 빚어내고 엮어내는 이야기를 읽어나가다 보면 나도 모르게 미소를 흘리거나 웃음 짓게 된다. 인물들의 개성 있는 성격과 위트와 풍자 섞인 대화의 자연스런 조화에 이야기 속으로 몰입하게 된다.

 

 다섯 명의 딸을 둔 시골 소지주인 베넷 씨 부부를 둘러싼 베넷 가를 배경으로 경쾌하고 생동감 있게 펼쳐진다. 예나 지금이나 과년한 딸이 있다 보면 혼사 문제에 신경을 곤두서게 하는 것은 세상의 이치인 것 같다. 작품이 쓰인 시대만 해도 여성들에게, 특히 재산이 없는 여성들에게는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한 마디로 결혼은 최선의 생계대책이었던 것이다. 아마도 지금의 청춘 여성들이 듣는다면 어이없어 할지도 모른다. 특히나 베넷 씨의 집은 아들이 없는 관계로 한정 상속이라는 문제를 코앞에 두고 있어서 더욱 골칫거리가 된다. 즉 가장인 베넷 씨가 죽고 나면 콜린스라는 친척에게 재산이 다 넘어가게 된다는 상황이다. 부인의 미모에 반해 결혼한 베넷 씨는 이해력이 부족한 아내와 정신적 교감 같은 건 일찌감치 포기한 채 무미건조하게 살고 있다. 그러다보니 서재에 틀어박혀 지내거나 냉소와 조롱이 유일한 낙이다. 베넷 부인 또한 남편에게 큰 기대 없이 딸들을 결혼시키는 것이 삶의 유일한 목표이며 수다 떨기와 마실 다니는 일에 열심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딸들의 결혼에 목을 매는 베넷 부인의 심정을 이해할 만도 하다.


 오랫동안 비어 있던 네더필드 파크에 연수입이 4,5천 파운드나 된다는 잘생긴 미혼 남자 빙리가 사륜마차를 타고 왔다고 소문이 돌면서 베넷 부인의 신경은 온통 거기에 쏠린다. 당사자의 생각은 아랑곳하지 않고 부자인 이 남자를 사위 삼고 싶은 마음에 남편에게 빙리를 꼭 만나고 오라고 성화다. 얼마 후에는 무도회가 열리고 빙리의 친구 다아시가 들어오자 연수입이 1만 파운드라는 소문이 쫙 퍼지면서 사람들의 관심이 모두 그에게 쏠린다. 키 크고 멋진 외모에 재산이 많은 젊은이가 나타났으니 자연스러운 반응이겠지. 어떻게 하면 딸을 그런 사람과 결혼 시킬 수 있을까 궁리하느라고 바쁘다. 시대는 변했어도 백만 탄 왕자는 뭇 사람들의 로망이라는 것.


 빙리와 다아시는 첫인상으로 인해 호불호로 갈리게 된다. 첫인상이란 한번 굳어지면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다고 하듯이, 다아시의 말수가 적은 것도 불리하게 작용한다. 빙리는 유쾌한 표정에 소탈한 태도로 사람들의 단번에 호감을 불러일으키는데, 다아시는 빙리보다 현명함은 한 수 위였지만, 내성적인 성격이 거만하고 까다롭게 비친다. 이렇게 정반대의 성격임에도 끈끈한 친구사이인 이들에게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다. 다아시는 그 특유의 오만함으로 모두에게 미움을 받고, 빙리와 큰 딸 제인의 사랑은 점점 싹터 가는데... 갑자기 빙리와 다아시 일행이 런던으로 떠났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이어 엘리자베스가 콜린스 씨의 청혼을 단칼에 거절하면서 두 딸을 결혼시키려던 베넷 부인의 희망은 물 건너간다.


엘리자베스, 넌 이제 불행한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됐구나. 오늘 이후로 너는 부모 중 한 사람과 남남이 되어야 한단다. 네가 콜린스 씨와 결혼을 하지 않으면 네 어머니가 다시는 너를 안 볼 테고 , 네가 그 사람과 결혼하면 내가 다시는 너를 안 볼 테니까.”(P157)

베넷 부인의 실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상황임에도 베넷 씨는 이런 말로 독자를 웃기고 엘리자베스는 속으로 쾌재를 부른다. 이런 유머와 풍자가 작품 전반에 포진되어 있어 있다.


있는 힘을 다해봤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도저히 안 될 것 같습니다. 제 감정을 억누를 수가 없습니다. 제가 당신을 얼마나 열렬히 찬미하고 사랑하는지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P258)

처음엔 엘리자베스의 웃음이 헤프다는 둥 시큰둥했던 다아시는 자신도 모르게 엘리자베스에게 빠져든다. 물론 당찬 엘리자베스가 눈치 채지 못하게. 그러다가 외삼촌 가드너 부부를 따라 여행길에 나섰다가 켄트에서 여러 번 다아시와 마주치게 되고, 어느 날 다아시는 엘리자베스에게 고백하기에 이른다. 다아시에 대한 편견으로 가득한 엘리자베스는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어떤 여성이 이런 고백을 듣고 심장이 콩닥콩닥 뛰지 않겠는가. 자신에 대한 애정 어린 찬사가 싫진 않지만, 묵은 감정이 있어서 받아들이지 못하는데...

 

오만편견에서 벗어나야 비로소 사랑은 시작된다.

제목에 충실한 이 작품의 이야기는 주로 다아시의 오만과 그에 대한 엘리자베스의 심각한 편견이 풀리는 과정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그 후 서서히 사랑하는 감정이 생기고 다아시의 열렬한 사랑에 대한 감동과 고마움을 느끼는 엘리자베스의 환희가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리고 주변 인물의 결혼의 사례를 보여주는데 현실감 있는 이야기라 공감하게 된다.


 콜린스 씨의 청혼을 엘리자베스가 거절하자 이웃에 있는 그녀의 친한 친구 샬럿은 성직자의 지위와 재산이 있는 콜린스 씨의 청혼을 받아들여 결혼을 한다. 가난 대비책을 잘 찾은 셈이다. 사랑 없는 결혼이지만 어쩌면 실질적인 이득 면에서 계산한 것이다. 뭐라고 탓할 수 있겠는가. 선택의 여지가 없던 당시의 여성들의 지위를 보면. 또 하나의 커플은 베넷 가의 막내 딸 리디아와 위컴의 결혼이다. 이 경우는 정상적인 과정을 밟은 것이 아니라, 사랑의 도주를 통해서 가족들의 마음을 실컷 졸이게 하고 마을의 비웃음을 사게 한 철딱서니 없는 행위가 다행히 결혼으로 이어진 결과였다. 이 커플들의 대비로 다아시와 엘리자베스의 사랑 이야기는 더욱 빛을 발휘 한다.


 첫인상의 편견을 깨는 인물들의 사례도 참 재미있었다.(이 작품의 원래 제목은 첫인상이었다 한다.) 다아시가 내성적인 것이 오만함으로 보였다면 위컴의 경우는 어떤가. 위컴 이야말로 훤칠한 미남에 좋은 평판의 소유자였다. 그런데 알고 보니 완전히 반전이다. 역시 겪어보고 그 내막을 알지 못하면 겉모습이 그의 전부가 되는 항간의 편견 또한 유감없이 깨준다. 또 쾌활하고 친절한 빙리는 소심한 성격 때문에 결정적인 행동을 친구에게 의지하는 나약한 면이 있다. 이렇게 저마다 사람은 단점을 가진 완벽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람들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단점을 발견하고 조금씩 성장하는 바람직한 모습이 보여서 읽으면서도 흐뭇해진다.


 확실히 엘리자베스의 톡톡 튀는 재기 발랄함은 그 시절의 여성상과는 달리 두드러진다. 그 오만했던 다아시가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는 사랑스런 캐릭터다. 귀족층이라는 권력자의 오만함으로 똘똘 뭉쳐있는 캐서린 영부인 앞에서도 전혀 주눅 들지 않고 논리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당당하게 말하는 부분은 얼마나 후련하던지. 그 당돌함에 영부인도 혀를 내두른다. 귀족과 서민의 신분이라는 격차를 뛰어넘은 신데렐라 같은 사랑이라고 할까. 제인 오스틴은 작품 속에서나마 그 소망을 이룬 것은 아닐까. 티격태격하며 오해를 불러일으켰지만, 오해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점점 성숙해지는 예쁜 젊은 연인들의 모습이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따로 노는 것 같지만 불행 앞에서는 한 마음이 되는 베넷 부부와 가족 이야기, 특히 제인과 엘리자베스의 진한 자매간의 사랑은 오늘날엔 희귀할 만큼 느껴져서 보기 좋았다.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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