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해리 세트 - 전2권
공지영 지음 / 해냄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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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작품을 읽으면서도, 읽은 후에도 계속 머릿속에 맴도는 문장이 있었다. “지옥은 타인이다고 했던 사르트르의 말과 지옥은 텅 비어 있다. 모든 악마들이 여기에 다 모여 있기 때문이다.”고 했던 셰익스피어의 말이다. 최근에 읽었던 책인데 이 문장을 발견하고 어쩌면 이렇게 절묘하게 표현했을까, 반박할 여지가 없었다. 살아있는 한 타인과 관계맺음을 떠나서는 살 수 없다. 알게 모르게 크고 작은 상처를 주고받으며 살아간다. 지금 여기, 우리가 숨 쉬고 살아가는 이 세상이 지옥이라는 말이다. 이 작품에서 벌어지는 상황이 딱 그랬다.


 사건이 일어나는 지역의 배경은 상상속 안개의 도시 무진이다. 안개에 대한 느낌은 그리 유쾌하지는 않다. 시야를 제한하고 모든 것을 덮어버리는 안개는 두렵다. 여기서도 그런 느낌이다. 철저히 숨겨서 은폐하려는 권력자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이미지로 작용한다.


 인터넷 신문사에 다니는 한이나는 대장암 수술을 앞둔 엄마를 간병하기 위해 고향 무진으로 내려온다. 열일곱 살에 도망치듯 떠났던 안개의 마을 무진에. 그리고 엄마의 죽을 사러 내려가던 길에 피켓을 들고 서 있는 여자와 마주친다. 절박하고 슬픔이 어린 그 여자의 눈빛을 외면하지 못하고 들어준 이야기를 시작으로 사건은 걷잡을 수 없이 불거지기 시작한다. 대학을 다니던 딸이 갑자기 성당을 다니더니 장애인 봉사 활동을 하다가 어느 날 여윈 몰골에 임신한 몸으로 나타났고 목을 매고 자살을 했다고. 그 사건의 배후에는 백진우 신부와 이해리가 있었다. 해리가 신부의 애인이고 돈은 모두 해리에게 간다는 소문이 무성하다는 말을 해준다.


 이나는 잊고 싶었던 기억, 아니 결코 잊을 수 없는 어두운 기억을 끄집어내기에 이른다. 그리고 고향 친구 이해리의 얼굴. 속옷 가게 아저씨에게 자신의 속옷 색깔을 스스럼없이 얘기하며 깔깔거리던 해리. 해리의 그런 모습이 너무 부끄러워서 어울려 다니기 싫었던 기억. 천사의 날개, 엔젤스 윙이라는 장애인 센터를 운영하고, 백 신부는 필요한 돈과 일할 사람을 해리의 장애인 시설에 보낸다는데... SNS를 통해 뿌리를 내린 그들의 영향력은 대단했다. 헐벗고 가녀린 모습의 사진을 올려놓고 동정을 호소하면 구호의 성금이 산처럼 쌓인다. 남편이 죽고 낳은 아이 하나와 입양한 두 아이를 키우며 오로지 장애인들만을 위해서 살아간다는 해리의 모습이 무척 행복해 보인다. 더구나 한국의 마더 데레사라는 평을 받고 있다는데 해리의 참모습은 과연 어느 것이 진실일까.


 이즈음에 타이거스 클럽 총재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는 해리의 동영상이 급물살을 타고 전파된다. 사실을 증명하기에는 알쏭달쏭한 정황임에도 불구하고 이것으로 삼천만 원의 합의금을 받아낸다. 리포터의 요청도 없었는데 이십 년 된 자신의 지갑을 꺼내 보이는 해리의 모습이 낯설고 어떤 가식마저 느끼게 한다. 장애인만을 위해서 이 돈을 사용할 거라는 해리의 말에 열광하는 사람들. 뛰어난 명배우도 어쩌다 실수를 보이듯이 해리의 태도에서 미심쩍은 태도를 감지한다.


 물이 흐르지 않는 구덩이는 언젠가는 썩기 마련이고 악취의 진동이 퍼져가기 마련이다. 갑질을 당하고 권력을 가진 자의 기세에 눌린 억울함은 하나씩 고개를 들기 시작한다. 얼마나 억울했을까. 최별라는 목숨 걸고 빼왔다는 백 신부의 통장내역을 복사한 자료를 내민다. 조사해보니 가관이다. 이리저리 돈세탁을 하고 부동산을 사는 등 무성했던 소문이 하나씩 사실로 드러난다. 사실을 확인했지만 불법 자료를 기사화 할 수 없는 상황에다 거대한 천주교를, 무진 교구를 상대로 어떻게 싸운단 말인가. 뉴스텐의 팀장은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일명 도가니사건에서 일익을 담당했던 인권센터의 서유진을 소개해준다. 2의 최별라가 하나씩 나타나기 시작한다. 양식업자 정성일의 증언이다. 남자들에게 봉침을 놓는 이야기, 심지어 장애 어린이들에게까지 성의 노리개로 삼았다는 정황은 어떻게 사람이 인두겁을 쓰고 그런 행동을 할 수 있을까 기가 막힐 뿐이다. 이뿐만 아니다. 채수연은 자기 집과 남편을 빼앗긴 억울함을 하소연한다. 도대체 끝이 어디인지 보이지 않는다. 거짓말은 거짓말을 낳는다고 했던가. 이나는 혼란스럽기 그지없다. 이 증언들이 어떻게 한 사람의 것일 수가 있을까.


 한번 봇물이 터지기 시작하면 막을 수가 없다. 이수미는 페이스북에 찬양 댓글과 십일조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장애인 센터에서 쫓겨나고 도리어 고소를 당한다. 여기서 또 놀라운 사실, 신부 잘렸다는 백진우는 그 센터장으로 와 있다는데... 이건 뭐 전관예우도 아니고, 정말 우스운 코미디가 아닐 수가 없다. 마치 비즈니스의 달인을 보는 듯하다. 경찰, 검찰을 떡 주무르듯 한다는 이해리의 권력의 끝은 어디까지일까. 숭고해야 할 성직자는 거기에 한 술 더 떠서 이해리의 책사 노릇을 한다. 게다가 자격이 안 되는 이해리를 센터를 운영할 수 있도록 허가해 준 사실을 발견했다고 하는데, 꼬리에 꼬리를 물고 드러나는 거짓말들 어디서부터 잘못 되었는지 헤아릴 수가 없다.


이 사람들이 제일 좋아하는 사람들 부류가 있어요. 흔히 상식적으로사고하고 늘 좋은 쪽으로 좋게생각하는 사람들, 이게 이들의 토양이에요. 이게 이 사람들 먹이예요. 그래서 상식을 가지고 사는 우리 같은 사람들은 당해내기가 힘들어요. 그러니까 일반적인 생각을 가지고 대하면 절대 안 돼요. 아무리 작은 하나라도 다 의심해야 해요. 그래서 싸움이 정말 힘들어요.”(1P246)

 

 선한 끝은 있어도 악한 끝은 없다고 했던가. 놀랍고도 석연치 않은 반전이 일어난다. 이것은 또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결국 권력을 가진 더 강한 자에게 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 약자일까. 인권의 사각지대라고 할 수 있는 장애인들의 핍박당하는 삶이 안타까웠다. 가시화되었던 사건들은 유야무야되고 꼬리를 감추고 어느새 원점으로 돌아간다. 침묵과 무관심은 부정부패의 온상이 되고 당연한 관례처럼 굳혀진다. 여기서는 종교단체를 둘러싼 이야기가 주로 다루었지만 어느 조직에서든지 일어날 만한 일이 아닐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주변을 돌아보며 더불어 살아가자고 외치며 경종을 울리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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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 / 구운몽 문학과지성 소설 명작선 1
최인훈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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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생시절부터 들어온 유명한 작품임에도 이제야 읽게 되었다. 고인의 추모를 계기로 리뷰대회를 열어주신 관계자들께 감사한 마음이다. 제목으로 보아서는 시위 현장의 모습과 광장에서의 민중의 역사를 다룬 이야기인가 했었는데, 읽어가면서 깨닫게 된 광장은 인간의 삶의 터전, 바로 그것이었다. 이 작품을 통해서 당시 처한 상황에서 이명준이 겪어야 했던 운명적인 개인사와 국가에 대한 이데올로기와 사랑, 자유를 둘러싼 환경에서 그 고통과 갈망이 얼마나 컸는지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이는 바로 당시 사회의 어떤 이의 아들이었고 오빠였으며, 이웃의 고통이기도 했을 것이다.


인간은 광장에 나서지 않고는 살지 못한다. 표범의 가죽으로 만든 징이 울리는 원시인의 광장으로부터 한 사회에 살면서 끝내 동료인 줄도 모르고 생활하는 현대적 산업 구조의 미궁에 이르기까지 시대와 공간을 달리하는 수많은 광장이 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인간은 밀실로 물러서지 않고는 살지 못하는 동물이다. 혈거인의 동굴로부터 정신병원의 격리실에 이르기까지 시대와 공간을 달리하는 수많은 밀실이 있다.

                                                    (중략)

어떤 경로로 광장에 이르렀건 그 경로는 문제될 것이 없다. 다만 그 길을 얼마나 열심히 보고 얼마나 열심히 사랑했느냐에 있다. 광장의 대중의 밀실이며 밀실은 개인의 광장이다.’(P18, 1961년판 서문)


 광장과 밀실의 대조를 들어가며 끌어가는 이 이야기는 우리 삶의 과정을 그대로 보여준다. 거친 삶의 현장인 광장과 아늑함을 느끼는 밀실에서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우리의 삶을 이루는 과정일 터이다. 오래전 쓰인 작품이지만 오늘날도 여전히 분단국가인 상황에서 남북이산가족으로 남아 있는 이들의 심정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의의 월북으로 인해 이명준은 서에 불려가 고문을 당하고 사실이 아닌 것을 고백하도록 강요당한다. 권력의 힘으로 짜 맞춘 그들의 밀실에서 피투성이가 된 몰골로 내보내진다. 밝은 대낮에 민중에게 보여도 아무 상관없다는 처사다. 법률의 혜택도 이명준 에게는 미치지 않는다. 뭇 시선 또한 놀라움으로 커졌다가 제자리로 돌아갈 뿐이다. 이러한 일이 지금은 없을까 싶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는 그대로 재현되고 있을 것이다. 팽배한 무관심은 비리를 저지르도록 부추긴다.


 두어 번의 부름 후에 이명준의 마음 저 밑에서는 알 수 없는 불안함의 파문이 인다.

자 보람 있는 삶이 끝내 자네 것이 된 거야. 갈빗대가 버그러지도록 벅찬 불안에 살 수 있게 되지 않았나. 하루의 시간이 어두운 무서움으로 짙게 칠해진, 알차게 익은 시간이란 말일세. 자네가 그렇게 조르던 바람이 아닌가. 이제 심심하단 말은 말게.’

스스로 두려운 불안을 어떻게 이겨낼까 몸부림친다. 어머니마저 돌아가시고 의지할 혈육도 없이 맞닥뜨린 상황이 섬뜩해진다. 이미 추악한 탐욕과 배신, 살인이 난무하는 한국 정치의 광장에 신물을 느끼던 이명준은 월북을 결심하게 된다.


 새로운 세계는 어땠을까. 월북 후에 바라 본 만주벌판의 붉은 저녁노을은 활활 타오르건만 정작 자신은 심장의 두근거림을 잊은 지 오래다. 그래도 일말의 기대감은 있었겠지. 하지만, 만주의 저녁노을과 달리 잿빛 공화국을 마주대한다. 마주하는 사람들은 모두 맥 빠진 얼굴들이다. 자신은 최대한 죽이고 당 선전부의 뜻을 살려야 한다. 새로운 삶을 다짐하고 늦은 시간가지 공부를 하면 노력했지만 자신이 생각했던 것과 다른 현실에 허탈감을 감추지 못한다.


어느 모임에서나, 판에 박은 말과 앞뒤가 있을 뿐이었다. 신명이 아니고 신명 난 흉내였다. 혁명이 아니고 혁명의 흉내였다. 흥이 아니고 흥이 난 흉내였다. 믿음이 아니고 믿음의 소문뿐이었다. 월북한 지 반년이 지난 이듬해 봄, 명준은 호랑이굴에 스스로 걸어 들어온 저를 저주하면서, 이제 나는 무얼 해야 하나?’(P124)


 누구를 위한 당이고 국가인가. 인민들은 당에게 끌려 다니기만 하지 아무런 감정이 없는 존재다. 굿만 보고 무관심 일색인 그들은 당의 노리개가 될 뿐이라고 아버지에게 외치지만 그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실체 없는 두 사상은 언제나 권력을 가진 자들의 배를 불려주었다. 인민들은 힘없는 나약한 존재다. 그것도 살기 위해,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시키는 대로 따라야 하는 민중의 삶은 얼마나 가여운가.


 남녁도 북녘도 명준이 의지하고 살만한 광장은 없었다. 당에서 자신의 주장을 피력하지만, 날선 시선을 느끼며 값진 요령을 깨닫는다. 옛날 S서에서 취조를 받고 느꼈던 마음의 방문이 부서지는 소리. 두 번이나 거부당하는 삶의 광장. 전쟁은 끝났지만 두 체제의 믿음을 잃어버린 지 오래, 그것은 이명준으로 하여금 중립국으로 가는 인도 배 타고르호를 타도록 만든다.


 윤애의 반쪽 사랑에 비하면 은혜는 온전한 사랑이었다. 대중의 광장에서 상처받은 마음을 은혜와의 사랑으로 치유할 수 있었다. 자신들의 밀실이었던 동굴에서 사랑을 나누면서 살아있다는 의미를 부여했다. 어쩌면 마지막 남은 삶의 의미였을 수도 있는 은혜의 죽음을 알고 얼마나 황망했을까. 그것이 그를 푸른 심연의 광장으로 뛰어들게 했을까. 어디서도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삶, 그곳에서는 자유를 마음껏 향유하고 있을까. 여기서도 저기서도 원하는 삶은 이룰 수 없었다. 혁명으로 세상을 바꾸고 싶었지만 한 개인의 힘은 약했다. 이미 짜여진 사회조직을 바꿀 만큼 힘을 실어주지도 못했다. 어쩌면 시대의 아픔일 수도 있다. 자신이 태어난 나라를 뿌리치고 제3국만을 고집했던 이명준의 저 안의 고여 있던, 자유를 향한 갈망이 안타까웠다.


 시대는 달라졌지만 이 작품을 읽고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에 있어 광장과 밀실의 의미는 무엇일까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민중이 이어가는 삶이 곧 역사가 된다. 대중의 광장보다는 심해의 밀실을 택했지만 그를 나약하다고 탓할 수는 없다. 개인을 발붙이게 할 수 없는 국가의 이념이 그렇게 만들지 않았을까. 올바른 민주주의 광장에서, 모두가 행복하게 살 수는 없겠지만 전보다 조금씩 나아가는 건강한 광장을 꿈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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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판 아르센 뤼팽 전집 1 결정판 아르센 뤼팽 전집 1
모리스 르블랑 지음, 성귀수 옮김 / arte(아르테)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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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더위 속에서 내심 기대하고 있던 뤼팽 이야기였다. 열권이나 되는 전집 중 1권을 갖게 되었다. 역시나 결정판이라서 그런지 꽤나 방대한 분량에 놀랐다. 모리스 르블랑이 35년에 걸친 모험담과 오리지널 삽화까지 빠짐없이 수록한 세계 최초의 결정판 전집이라고 한다. 도둑이 그냥 도둑이 아닌 역사상 가장 매혹적인 도둑이라니! 역자 성귀수의 16년에 걸친 치열하고 집요한 도전의 결과물이다. 오랜 세월을 아르센 뤼팽과 함께 한 작가인 만큼 역자 또한 그에 버금가는 환상의 짝꿍이 아닐까 싶다.


 작품의 구성은 맨 처음 모르스 르블랑의 추리소설론이 나오고 아르센 뤼팽의 친구들 협회회장 에르베 르샤 씨의 우정어린 편지가 이어진다. 괴도신사 뤼팽의 조국인 프랑스에서조차 이러한 시도가 없었는데 아르테 출판사와 역자의 노력으로 결정판 전집을 낸 것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 ‘역자의 말에서는 저자의 작품을 하나도 빠짐없이 집대성하여 전집으로 내기까지의 과정, 대략의 작품들과 미발표 원고 <아르센 뤼팽의 마지막 사랑>을 입수하기까지의 감회와 뿌듯함이 행간에 가득하다.


 아르센 뤼팽과 나는 역자 성귀수와 아르센 뤼팽의 대화로 이루어져있는데 16년 동안 함께 하면서 일어났던 애환의 에피소드와 교감이 그 작품과 주인공에 대한 애정이 확연하게 엿보인다.

또 잘 몰랐던 작가 모리스 르블랑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35년이나 긴 세월 동안 어떻게 한 주인공에 대한 이야기를 쓸 수 있었을까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모리스 르블랑은 세븐 하트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 뭐가 좋아서 나는 그의 전담 연대기 작가가 되었는가? 왜 다른 사람이 아니고, 하필 나란 말인가? 사실 그 대답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한마디로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단순한 우연의 소산이니까. 그저 우연히 그가 지나가는 길 위에 내가 서 있었다고나 할까? 우연의 장난으로 나는 그의 가장 기묘하고도 신비스러운 모험들 중 하나에 휘말려 들어간 것이고. 우연 때문에 그가 놀라운 솜씨로 연출한 복잡한 드라마에 출연한 것이다.’(P45)


 사실 모리스 르블랑은 대중적 장르인 추리소설보다 정통 순수문학인 심리주의 소설에 꿈을 둔 문학인이었다고 한다. 같은 고향인 루앙에서 태어난 위대한 소설가 플로베르를 흠모하여 어려서부터 작가의 꿈을 키웠고, 모파상과 졸라, 공쿠를 형제를 무작정 따라나설 정도로 순수했던 문학열을 간직한 청년이었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이즈음에 작품을 발표하면서 평단으로부터는 좋은 평을 얻었음에도 대중적인 인기는 끌지 못했다. 이것도 어쩌면 장르문학으로 눈을 돌리는 계기가 되었고 부와 명성을 가져다주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까.


 어떻게 해서 아르센 뤼팽은 탄생하게 되었을까.

그 당시 영국의 셜록 홈스를 부러워했던 월간지 <주세투>의 편집장 피에르 라피트를 만나 아르센 뤼팽 체포되다가 발표되기에 이른다. 추리소설 역사상 가장 매력적인 도둑 아르센 뤼팽인 만큼 그의 기본 프로필과 심층 프로필이 나와 있다. 변신술은 물론 신기(神技)에 가까운 능력을 가졌고 자신의 어두운 내면을 들여다볼 줄 아는 매우 복잡한 개성의 소유자라고 하니 역시 보통 도둑과는 다른 면모가 느껴진다.


 1권에는 괴도신사 아르센 뤼팽, 뤼팽 대 홈스의 대결, 아르센 뤼팽 4막극이 들어있다. 양장본의 튼튼해 보이는 장정도 무척 마음에 든다. 차근차근 하나씩 읽을 생각을 하니 무척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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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이크 다운
B. A. 패리스 지음, 이수영 옮김 / arte(아르테)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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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패리스의 전작 <비하인드 도어>를 재미있게 읽었기에 책을 받기 전부터 <브레이크 다운>이 정말 기대되었다. 역시 대단한 몰입력이 있는 소설이다. 여러 개의 복선을 깔아 헷갈리게 하면서 몰입을 하게 하는 힘이 있다. 두 명 중 하나가 범인일 거야, 꼭 맞춰야지라는 생각을 하며 읽어나갔다. 거의 끝부분에서 완전히 빗나간 추측에 허를 찌른 기분이다. 처음엔 캐시의 심각한 건망증과 살인사건과 무슨 관계가 있기에 이렇게 조금은 지루한 듯 캐시의 상황을 길게 늘어놓는 것일까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한 사람의 약점일 수도 있는 감추고 싶었던 건망증이 노출되면서 소박한 일상을 잃어가고 범죄에 이용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심리 스릴러이다.


 교사인 캐시가 어느 날 동료들과 회식을 마치고 돌아가던 길, 천둥번개를 동반한 폭우를 뚫고 블랙워터 숲길을 통과한다. 거기로 오면 절대 안 된다는 남편 매튜의 말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무서우니까 빨리 집에 가려고 지름길을 택한 것이 캐시의 앞날을 완전히 바꾸어 놓는다. 엄청난 폭우 속, 정차돼 있는 차 안에서 밖을 내다보고 있는 여자를 보게 되지만, 급박한 상황도 아닌 것 같고 도움을 요청하는 것 같지도 않아서 무서운 마음에 그냥 지나친다. 그 다음날 한 여자가 잔혹하게 살해된 채 발견했다는 뉴스가 들려오고... 바로 캐시가 지나쳐 온 그 장소이다.


 일면식이 없던 사람이라면 모를까 알았던 사람이라면 문제는 달라진다. 친한 친구 레이철의 초대로 사내 회식에 갔다가 알게 되어 친구가 된 제인 월터스가 피해 당사자라는 것을 알고 캐시는 경악을 금치 못한다. 이때부터 밀려오는 죄책감 때문에 정신은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다. 더구나 가볍지 않은 건망증까지 있는 그녀가 아닌가.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까. 자신은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 힘든 고백까지 하며 캐시를 끔찍이 여기는 남편이 있어서? 반면 캐시는 친정엄마가 44세에 조기 치매 진단을 받았다는 사실을 숨긴 것을 미안해한다.


 웬일인지 수사에는 별로 진전이 없어 보인다. 살인자를 찾았다는 소식은 없고 캐시는 힘겨운 날의 연속이다. 살인사건에 대한 수사의 장면보다는 캐시의 심경이 변화되어가는 정황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듯하다. 살인사건과 어떤 연관이 있는 걸까. 캐시의 심각한 건망증은 매튜는 물론 레이철에게도 들통 날 만큼 심해진다. 친구 수지의 생일 선물을 사기로 하고 돈을 받았는데 그 돈도 어디 있는지 모르며 무슨 선물이었는지 기억이 없다. 매튜의 출장도 기억에 없다. 달력에 표시된 캐시의 글씨체는 변명할 여지가 없다. 이제는 말 없는 전화까지 걸려 와서 캐시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는다. 외딴집에 방범장치도 없는 것이 마음에 걸려 경비 업체를 불러 시스템 설치를 한다. 하지만 무엇 하나 정상적이지도 않고 기억에 없는 일들이 벌어진다. 주문하지 않은 유모차가 배달되질 않나 살인사건에 사용된 것과 똑같은 커다란 칼이 주방에 보였다가 사라지기도 한다. 당신이 헛것을 본 거라고. 의사의 상담이 필요하다고. 약을 복용하게 되면서 더욱 더 큰 무기력에 빠진다. 방학이 다 끝 나가는데 학교도 못 나가게 된다.


 어디서부터 잘못 되었을까. 엄마처럼 될까봐 두려웠는데 캐시가 그런 상황이다. 세탁기 작동하는 것을 잊어버린다. 그런데도 아무 문제없다는 매튜에게 화가 난다. 엉망이 된 일상이 얼마나 흘렀을까. 어느 날 극심한 두통을 느끼며 깨어난 캐시는 뭔가 끔찍한 문제가 생겼음을 깨닫는다. 다행히도 캐시는 이제부터는 맞서야겠다고 마음먹는다. 제인의 남편 알렉스를 만나 힘든 고통의 상황을 털어 마음의 짐을 덜고 힌트를 얻을 수 있었던 점도 결과적으로 아주 잘 한 일이다. 한나를 찾아가고, 경비업체에 들르고 아기용품점, 학교 등을 찾아다니면서 궁금했던 일을 알아내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 두려운 고통 속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도움을 요청하는 과정에서 사건의 전말을 모두 알게 되는 물증을 얻기에 이른다. 모든 혼란과 고통스런 상황이 깨끗이 풀린다. 정말 기가 막힌다. 인간의 비양심과 추악함이 결합하여 한 사람의 행복한 일상을 빼앗으려고 했다. 무기력에서 빠져나와 정면 돌파를 선택한 것은 아마도 캐시의 놀라운 직감력이 아니었을까.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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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2 고양이 시리즈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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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권이 테러, 전쟁으로 신음하는 인간들에 대한 의아심을 품고 탐구가 이어졌다면 2권은 그보다 상황이 악화된 페스트를 퍼뜨리고 도시를 장악한 쥐들과의 전쟁을 실감나게 보여준다. 파리 시내는 이제 테러와 전쟁을 넘어 설상가상으로 페스트의 공포에 휩싸여 있다. 전 세계 대도시는 물론 중소 도시까지 페스트가 침투한 상황이다. 피타고라스로 인하여 이전보다 의식의 혁명이 일어난 바스테트는 어떻게 활약하게 될까. 무엇이든 떼로 뭉치면 엄청난 힘을 발휘한다. 그 작은 쥐라도 수 백, 수 천, 수 만, 수십 만 마리가 모이면 공포심을 조장하게 된다. 예전에도 그런 영화를 보면서 끔찍한 두려움을 느끼곤 했다. 가상의 상황이지만 만약 그런 장면이 현실이 된다면?


 피타고라스의 집사인 소피가 죽고 바스테트의 아들 안젤로가 보이지 않는다. 집사인 나탈리도. 피타고라스는 바스테트에 목걸이에 달려있는 GPS 추적 장치로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소피에게 고양이의 방식으로 영혼의 송별식을 치러주고, 그동안의 고마움을 표하고 멋진 환생을 빌어주었다고 말하는 피타고라스. 바스테트는 인간의 영혼과 소통이 가능한 그를 보면 감탄한다. 비결이 뭐냐고? 인터넷 덕분에 인간의 세계를 이해한다면서 피타고라스는 다음 생엔 인간으로 태어나고 싶다고 말한다.


인간의 손을 갖고 싶어. 그 손끝에서 책이 나오고 정교한 기계가 만들어지고 예술이 탄생하잖아. 인간처럼 웃어 보고 싶기도 해. 웃을 때의 느낌을 알고 싶어. 우리 고양이들은 항상 너무 진지하잖아. 뭐든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가끔은 인간처럼 냉소를 지어 보고 싶어. 자기 냉소를 통해 뭐든 상대화해서 바라볼 수 있는 인간이 부러워.”(p12)

인간의 한 사람으로서 자부심을 가져도 되겠다. 그렇게 인간이기를 부러워하는 종이 있다. 만물의 영장인 만큼 이제 다른 종간의 화합과 조화를 통해서 이 지구를 좀 더 살기 좋게 가꾸는 일에 힘써야 할 시점이 온 것을 시사한다. 바스테트의 눈에 어쩌면 신비에 싸여있던 피타고라스는 자신의 출생의 비밀도 털어놓는다. 실험용 고양이 사육장에서 태어났다고. 엄마 아빠가 누구인지도 모르며 사랑을 받아본 적도 없으며 좁은 케이지 안에 갇혀 정해진 시간에 특수 배합 사료를 먹으며 인간들에게 하나의 물건에 불과한 <CC-683>의 이름으로 존재했다는.


 과학실험으로 이름으로 수많은 동물들이 인간들에게 사육 당한다. 그러면서도 인간들은 동물의 입장 같은 건 생각할 여유는 없었을 것이다. 각종 실험에 의해 고문을 당하는 고양이와 동물의 심정을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말 못하는 동물이지만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생각해보면 이렇겠구나 싶다.


 안젤로와 나탈리를 찾아가는 길에서 페스트의 공포와 마주친다. 인간 세계에 깊은 혜안이 있는 피타고라스가 이런 상황을 보고만 있을 리 만무하다. 피타고라스는 역사적으로 과학자들이 수난을 당했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고양이 군대를 결성하여 페스트를 퍼뜨리는 쥐들에게서 도시를 되찾아오자고 발언을 한다. 두려움을 가진 채 이 상황이 끝나기를 마냥 기다리거나 스스로 운명을 개척하는 것, 두 가지 중 선택을 해야 한다. 인간과 고양이로 결성된 군대와 쥐들의 대결을 계획했지만, 소통의 문제가 남아있다.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것인가, 라는 말이 떠오른다. 고양이가 어떻게 인간과 소통을 통해서 군대를 결성하느냐 문제이다.


 피타고라스는 제 3의 눈으로 열심히 정보를 탐색한다. 점점 서로의 사랑의 감정을 공유하게 된 바스테트도 나름대로 열심히 돕는다. 사자 한니발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이런 일련의 과정은 그야말로 문제해결의 과정이다. 아무리 위기에 처해도 죽으라는 법은 없나보다. 피타고라스의 뜻에 동조한 열 마리의 고양이가 식량을 확보하기 위해 엘리제궁으로 향하는 길. 대열은 어느새 백 여 마리로 늘어나 있고 샹젤리제 전투는 승리의 환호성으로 젖어든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다. 점점 불어나는 압도적인 쥐들의 수를 막아낼 방법이 없다. 더구나 인터넷이 안 되는 바람에 제 3의 눈의 힘을 발휘할 수가 없다. 일단은 하수구도 없고 지하철도 다니지 않아 쥐들로부터 안전한 시뉴섬으로 군대를 이동시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탈리의 도움이 필요하다는데... 나탈리는 또 어디서 찾을까. 모험의 연속이다.


 인간과의 소통을 꿈꾸던 바스테트는 어떻게 집사의 도움을 이끌어낼까. 꿈을 통해 파트리샤를 만나 고양이들만이 갖고 있는 정보를 인간들에게 전달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한다. 언어가 아닌 꿈의 소통이라니 신기하기만 하다. 피타고라스를 통해 의식의 혁명을 경험하고 그를 넘어서는 성장을 하는 바스테트를 보면서 역시 세상은 교과서에서 다룬 원칙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간절하면 이루어진다는 기적도 엿볼 수 있었으며 상호 보완적인 인간과 동물의 관계가 경이롭게 느껴진다. 이 작품 말고도 고양이를 다룬 작품이 꽤 있었다. 고양이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에게 영감을 주는 존재임은 틀림없는 것 같다. 다양한 소통의 부재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인간관계는 물론 다른 종의 세계에도 관심의 여지를 주는 멋진 작품이다.


나는 어떤 동물종도 다른 종에게 이래라저래라 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지구는 어떤 한 종의 소유가 아니에요. 동물이든 식물이든 모든 생명체가 똑같이 지구의 주인이죠. 어떤 종도 스스로 다른 종보다 <우월>하다고 여길 권리는 없어요. 인간도 고양이도 마찬가지죠.” (p157)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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