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비행기도 없고, 전함도 없어요. 제대로 된 병사들은 대부분 죽었고요. 신형 특수 폭탄 하나에 히로시마가 순식간에 사라졌습니다. 우리도 머지않아 만주에서 추방되든지 또는 죽어서, 중국은 다시 중국인의 것으로 돌아가겠지요. 이미 많은 중국인들을 죽였어요. 더 이상 시체의 수를 늘려봐야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나 명령은 명령이죠.  - P377

그러나 그것이 우연의 일치든 아니든, 시나몬의 이야기에서 ‘태엽 감는 새‘라는 존재는 큰 힘을 갖고 있었다. 사람들은 특별한 사람에게만 들리는 새소리의 인도를 따라, 피하기 어려운 파멸로 향했다. 수의가 시종일관 느꼈던 것처럼,
인간의 자유의지 따위는 무력했다. 그들은 테이블에 놓인,
등에 달린 태엽을 감아 움직이는 인형처럼 선택의 여지가없는 일에 종사했고, 선택의 여지가 없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새소리가 들리는 범위 안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참혹하게 훼손되고, 상실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죽어 갔다. 그들은 테이블 가에서 그대로 밑으로 떨어져 갔다.
- P391

나와 시나몬의 할아버지에 해당하는 이름 없는 수의 사이에는, 기묘한 공통점이 몇 가지 존재한다. 우리는 몇 가지를 공유하고 있기도 하다. 얼굴에 난 파란 멍과 반점, 야구 방망이, 태엽 감는 새 소리. 그리고 시나몬의 이야기에등장하는 중위에게서 나는 마미야 중위를 떠올렸다.  - P392

 네 가족은 옛날이야기의 그 후에는 모두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하는 결말의 뒷이야기처럼 정말 정말 행복하게 살았어요. 적어도 우리 집에 비하면열 배는 행복해 보였습니다. 그리고 간혹 밖에서 얼굴이 마주치는 두 딸도 느낌이 좋은 사람이었어요. 나는 그런 자매가 집에 있으면 참 좋겠다고 생각하곤 했죠. 아무튼 언제나웃음소리가 그치지 않는, 개도 함께 웃지 않을까 싶은, 그런분위기의 집이었답니다.
- P398

그 집은 미야와키 씨네가 떠나가자 동시에 ‘미야와키 씨 같은 사람 모르는데.‘ 하는 식으로 시치미를 딱 뗀 표정이었습니다. 적어도 내게는그렇게 보였어요. 마치 은혜를 모르는 멍청한 개 같았어요.
아무튼 그 집은 미야와키 씨네가 떠나가자, 미야와키 씨 가족의 행복함과는 무관한 ‘그 자체로서의 빈집으로 싹 변하고 말았던 거죠. 난 그건 좀 아니지 않나 싶었어요. 집도 그때는 미야와키 씨 가족과 함께 즐거움을 누렸을 테니까요.
청소도 정성스럽게 해 주었고, 애당초 미야와키 씨가 지은집이잖아요. 안 그래요? 집이란 게 전혀 믿을 게 못 되네요.

- P399

시나몬의 일상적이면서도 극적인 그런 등장과 함께 나의 하루가명확하게 시작되었다. 나는 생활의 그 일정한 패턴에 마치 사람이 인력이나 기압에 익숙해지듯이 익숙해지고 말았다. 시나몬의 그 빈틈없는 규칙성에는 그저 기계적이라는 말에 그치지 않는 그 이상의 무언가, 나를 위무하고 격려해 주는 온기 같은 것이 있었다. 

- P403

마미야 중위, 이나라에서 살아남는 길은 딱 한 가지야. 바로 상상하지 않는 것이지, 상상하는 러시아인은 반드시 파멸하고 말아. 나도 물론 상상하지 않지. 내 일은 다른 사람을 상상하게 하는 거야. 그게 내 밥벌이지, 자네도 그 점을 잘 기억해 두는게 좋을 거야. 적어도 여기 있는 한, 무슨 상상이 하고 싶어지면 내 얼굴을 떠올리라고, 그리고 이러면 안 된다. 상상은목숨을 거둬 가는 일이라고 생각해.  - P4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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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모나리자 > 지복의 성자

1년 전에 쓴 리뷰라고 북플이 친절하게 알려 주네요.ㅎ
작품 중반에 이르도록 정말 어렵게 읽었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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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시나몬의 책상 앞에 앉아, 키보드에 손가락을 올려놓았다. 나는 구미코와 대화할 때의 감촉을 아직 기억하고있었다. 그때 나와 구미코가 컴퓨터 통신으로 나눈 대화를와타야 노보루는 틀림없이 모니터했을 것이다.  - P324

 나는 창가에 앉아 나뭇가지 너머로 보이는 겨울의 구름 낀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문득 넛메그가 말했던 ‘어딘가 멀리에서뻗어 나온 긴 손을 떠올렸다.  - P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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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매일 아침 그의 얼굴을 볼 때마다, 늘 마음속으로 감탄하게 된다. 아니, 감동에 가슴이 뭉클해진다고해도 좋을 정도다. 저렇게 완벽하고 멋진 외양 속에 과연 어떤 실체가 존재할 수 있을까 하고,
- P207

 내 얼굴을 보면시나몬은 얼굴 전체로 싱긋 미소 짓는다. 멋진 미소다. 마치울창한 숲속을 오랜 시간 산책하다가, 갑자기 밝고 탁 트인공터와 맞닥뜨렸을 때 같은 미소다. 




- P208

 그의 우아하고 적확한 손놀림은 제 모습에서벗어난 사물까지 원래 모습으로 돌려놓는다. 만약 내가 시험 삼아 선반 위의 탁상시계를 2센티미터 왼쪽으로 밀어 동았다면, 그는 보나마나 다음 날 아침에 그것을 2센티미터 오른쪽으로 옮겨 놓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시나몬의 행동에 강박적인 인상은 없다. 자연스럽고 올바른 일인 것처럼 보인다. 시나몬의 머릿속에는 이 세계의 - 적어도 여기에 존재하는 하나의 작은 세계 그래야 마땅한 양식이 선명하게 새겨저 있고, 그걸 유 - P214

지하는 것은 그에게 호흡과 마찬가지로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시나몬은 어떤 사물이나 상황이 원래 형태로돌아가고 싶어 하는 내적인 격한 욕망에 시달릴 때, 슬쩍 손을 내밀어 줄 뿐인지도 모른다.
- P215

부엌 의자에 앉아 커피 잔을 테이블에 내려놓고, 시나몬의 손이 아름답게 정돈한 방 안을 돌아본다. 마치 거대하고 입체적인 정물화처럼 보인다.  - P215

악의 선율이 귀에 들러붙어 있다. 바흐의 <음악의 헌정>이다. 그 선율은 천장이 높은 로비에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남아 있는 것처럼 내 머릿속에 남아 있다. 하지만 마침내 침묵이 내려온다. 마치 알을 까는 벌레처럼 나의 뇌 사이의 주름에 파고든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는 눈을 떴다가 다시 감는다. 암흑이 뒤섞이고, 그리고 나는 조금씩 자신이라는 그릇을 떠나간다.

늘 그랬던 것처럼,
- P220

하지만 그런데도, 그런데도 말이죠. 자신이 이렇게 일의일부가 되었다는 사실이 조금도 기분 나쁘지 않아요. 위화감 같은 것도 딱히 없고요. 나는 오히려 개미처럼 한눈 한번 팔지 않고 일하는 걸 통해서 ‘진정한 나 자신에 다가가고 있는 기분마저 들어요. 뭐랄까, 설명을 잘 못하겠는데, 자신에 대해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반대로 자신의 중심에 다가가고 있는 듯한 면이 있어요. 내가 좀 이상하다.‘라고 한건 그런 뜻이에요.
- P222

태엽 감는 새 아저씨, 나는 이렇게 생각해요. 그 멍은 아저씨에게 뭔가 중요한 것을 줄지도 몰라요. 하지만 그건 또뭔가를 아저씨에게서 빼앗아 갈 거예요. 뭔가를 준 대가처럼요. 그리고 모두가 그런 식으로 아저씨에게서 빼앗아 가면, 그러다 태엽 감는 새 아저씨는 다 소진되지 않을까요.  - P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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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3-18 10: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는 매일 아침 그의 얼굴을 볼 때마다, 늘 마음속으로 감탄하게 된다.] 이문장을 읽으면서 몇일전 하루키옹이 자신이 진행하는 라디오에서 항상 거울 볼때마다 예전에는 생긴거에 불만이 많았는데 이제는 머리숱이 먼저 더 걱정된다고 ㅋㅋㅋ 평생 함께 한 얼굴에 주름이 생기는것과 머리숱이 작아지는게 마음이 젤 아프데요 ^.^

모나리자 2021-03-18 14:36   좋아요 1 | URL
네에..ㅎ 누구나 세월을 보내면서 공감하게 되는 내용이겠죠? ㅋ
‘지금‘이 제일 젊을 때라는 말 있잖아요. 오늘, 지금을 행복하고
즐겁다는 마음으로 살아야겠어요.
우리 누구나 20대 때에도 그런 생각 못했을 거예요.
화장 안해도 눈부신 나이였는데.ㅎㅎ

오늘도 파이팅이요~스콧님~~^-^!
 



지금까지는 이혼을 강요했지만 그러지 않겠다는 겁니다. 그래서 말인데요, 만약 오카다 씨가 구미코 씨에게 연락하고싶은 일이 있으면, 나를 통로로 사용해도 좋습니다. 요컨대국교 회복이라고 할까요,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일일이 부딪치지 않는 게 어떻겠느나 하는 겁니다. 이게 첫 번째 용건입니다.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 P193

비는 밤새 소리 없이 내리다, 이른 아침, 사위가 밝아 올무렵에 꺼져 가듯 그쳤다. 그러나 그 기묘한 사내의 끈끈한 기척과 그가 피웠던 필터 없는 담배 냄새는, 습기와 함께 오도록 집 안에 남아 있었다.
- P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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