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막대한 부를 쌓았다느니 굉장한 저택을 지었다느니 땅과 집을 사고팔아 돈을 벌었다느니, 갖가지 소문이 세간에 떠도는 모양이지만 다 거짓말이다. 엄청난 재산을 모았다면 이런더러운 집에서 살 턱이 없다. 땅과 집을 어떤 경로로 사들이는지조차 알지 못한다. 이 집도 내 집이 아니다. 셋집이다. 매달집세를 내고 있다. 세상의 소문이란 게 무책임하기 짝이 없다. - P145

가장 많이 팔린 책은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로 기존 국판본외에 요사이 따로 작게 인쇄한 문고본이 나왔다. 양쪽을 합쳐35판을 찍었고 부수는 초판이 2천 부, 재판부터는 거의 1천 부였다. 무엇보다 이 35판은 상권이 그렇다는 얘기고 중권과 하권은 훨씬 판수가 적다. 여하튼 얼마의 인세를 받는 탓에 내가책을 팔아 돈을 벌어들인다고 알려진 셈이다.
- P145

더 밝은 집이 좋다. 더 깨끗한 집에서 살고 싶다. 서재 벽은군데군데 떨어져 나갔고 천장은 빗물이 새서 얼룩이 졌다. 상당히 지저분하지만 천장을 올려다보는 사람은 그다지 없으니까이대로 놔둘 생각이다. 무엇보다 다다미가 안 깔린 마루가 문제다. 널빤지 사이사이로 바람이 들어와 겨울이면 추워서 견딜수가 없다. 채광 상태도 나쁘다. 여기에 앉아 읽고 쓰는 일이 괴로워도 신경 쓰기 시작하면 끝이 없기에 개의치 않으려 한다.
얼마 전 어떤 사람이 천장을 도배할 종이를 보내준다고 했지만거절했다. 특별히 내가 이런 집을 좋아해서 이렇게 어둡고 더러운 집에 사는 것은 아니다. 어쩔 수 없이 살 뿐이다. - P148

햇빛 쏟아지는 미닫이창 아래서 쓰면 가장 좋지만, 이 집에는 그런 장소가 없으므로 종종 양지바른 툇마루에 책상을 꺼내 놓고 머리에 햇빛을 흠뻑 받으며 펜을 든다. 너무 더우면 밀짚모자를 쓰기도 한다. 이렇게 하면 글이 잘 써진다. 결국 밝은곳이 제일이다.
- P151

밤새워 일하면 아무래도 좋은 글이 나오지 않는다. 밤이 깊어갈수록 ‘아아‘ 하고 지쳐버리니. 하지만 낮에는 내 손님뿐만아니라 가족들 손님도 찾아온다. 반찬 만들기, 속옷 세탁 등등도무지 편한 생활이 아니다. 때론 나이 먹은 식모를 둘까 싶다 - P161

가도 지금의 식모아이는 열세 살 때 들어와서 3년 동안 잘 지내왔기에 뭔가 불편한 점이 있더라도 이게 가장 행복한 길이지싶다. 무엇보다 식모를 두다니! 『마농 레스코, 어딘가에도 한구절이 나오지만, 벼락출세한 나로서는 부끄러울 만큼 감사한일이다. 게다가 3년이나 있었다.
- P162

때론 먼지 털듯 매서운 악평을 들으면 괴롭기 그지없다. 남보다 갑절로 자극에 약한나는 넋이 홀라당 나가서 썩은 생선처럼 이삼일 이불을 덮어쓰고 자버린다. 작품이 좋지 않아서다, 자신이 제일 잘 알기에 한동안 갈 길을 잃는다. 하지만 다시 책상 앞에 앉아 아등바등 뭔가를 쓰기 시작한다. 나에게 종교가 있다면, 그저 꾸준히 쓰는 - P162

것이다. 그 삼매경에 빠져 있는 기분이다. 좋아하는 말은 아니지만 나는 결국 ‘만년 문학소녀‘다.
- P163

‘맑은 물처럼 아무 맛이 없는 글을 쓰고 싶다. 지금 내 글은손짓이나 거짓말이나 꾸밈새가 도드라진다. 괴롭다. 힘이 모자라는지도 모른다. 공부가 부족한 탓인지도 모른다. 툇마루에서햇볕을 쬐는 듯한 생활이 문제인지도 모른다. 남성 작가들에게 대항할 수는 없을지라도 적어도 한 단계 더 발돋움하고 싶다. 무로 사이세이 씨의 요즘 왕성한 창작은 놀랐기만 하다. 다케다 린타로 씨도 상당히 활력이 넘친다. 훌륭하고 존경스럽다.
다들 긴 역사를 가졌건만 용케 지치지 않는구나. 그 괴로움이어떨지 상상해본다. 나는 고작 7, 8년의 역사다. 그것도 스스로춤추는 이야기라 쓴맛으로 가득하다. 맑은 물처럼 아무 맛이없는 글을 쓰는 것은 이제부터라고 반성해본다.
- P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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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 2022-10-25 10: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

모나리자 2022-10-26 09:47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서곡님.^^
오늘도 편안하고 행복한 시간 보내세요.^^
 

일전에 마지막 시집 『어제오시기를』, 『무로 사이세이 작품집』 열두 권, 자필 하이쿠집 『원야집』이 출간됐다. 거의 문학가의 삶에 매듭을 지은 것이나 다름없다. 세 살 적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는 말이 있다. 어린 문학 애송이도 여기까지 성장하고 보니 인간은 어쨌든 살아야 한다는 것, 뭐든지 마음껏 배워두는 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또 글러먹은 인간을 못쓰겠다고 내동댕이치더라도 그가 혼자서 걸어가는 길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 어찌 됐든 간에 그 녀석도 어딘가에 다다른다.
좋든 나쁘든 목적지는 당사자에게 맡겨야 한다. - P91

나는 글 쓰는 게 좋은 걸까.

뭔가 쓰려고 마음먹는 순간, 예전 체력이 슬슬 돌아옴을 느낀다. 이제 써볼까 할 때는 약을 먹거나 주사를 맞을 때보다 확실히 병이 뒤로 저만치 물러나는 것 같다. 조금씩 건강해지는기분이다. 음식을 먹으면 맛이 바로 느껴지는 원리와 같다. 병이란 만만치 않은 상대다. 인간은 병과 싸우는 동안 그 어느 피폐한 시기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빼앗긴다.
이렇게 간단하게나마 작품과 이력을 나열한 나의 문학사를써봤다. 내게 제4차 문학사는 더는 있을 수 없다. 만약 있다면그다지 길지 않은 차분한 작품을 뚜벅뚜벅 쓰지 않을까. 그런작은 작품조차 더욱 연마하려는 자신을 발견하는 날을 오늘의즐거움으로 삼아야겠다. 야심 없고 또 소망 없는 나야말로 미래의 나이리라. - P92

내가 가난한 가장 큰 이유는 글 쓰는 속도가 느리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원고를 재촉하는 편집자들에게 늘 호소하는데,
그 정도가 얼마나 심한지 진심으로 이해하는 사람은 함께 사는 가족뿐이다. 편집자들은 적당히 흘려듣는 것 같아 억울하기 짝이 없다. 사실 일을 철저히 하지 않으면 직성이 안 풀린다거나 아주 고심해서 문장을 다듬는다거나 하는 점을 간판으로내세우는 게 싫어서 나도 주저리주저리 설명하지 않는다. - P117

가끔 어떤 대목이 잘 풀리지 않으면, 그 자리에서 섰다가 앉았다가 마셨다가 피웠다가를 점점 더 자주 되풀이한다. 담배를한 대 피우고 나서 5분이나 10분 가만히 원고를 노려보고, 그래도 안 되면 이번에는 차를 마시고 또 노려본다. 그래도 안 풀리면 소변보러 나갔다가 내친김에 정원까지 걸어 다닌 뒤 돌아와 또다시 원고에 매달린다.  - P117

내가 굼뜨지 않다면, 지금 온 힘을 다해 쓰는 하루치 원고를오전 중에 다 쓴다면 오후 반나절은 유유자적하며 지낼 수 있을 테고 따로 ‘노는 시간‘을 만들 필요가 없으리라. 사실 많은작가가 날마다 잽싸게 일정한 양을 일한 후 산책을 하고 독서를 하고 친구를 만나고 잡무를 처리한다. 사람에 따라서는 한달 걸릴 일을 일주일 또는 열흘 사이에 다부지게 해치운 뒤 남은 기간 느긋하게 생활하는 방식을 취하기도 한다. - P119

지금 나는 육지의 인어』라는 신문소설을 쓰고 있다. 대체로작가의 일 가운데 신문소설만큼 뼈가 휘도록 힘겨운 일은 없다. 작가 지옥 중 신문소설 지옥이야말로 가장 괴롭다. 『진주부인』을 쓸 때는 기력이 왕성했던 덕분인지 이토록 고달프지 않았건만, 이번에는 문득 푸념을 늘어놓고 싶을 정도다. - P121

나는 아침에만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다. 신문소설은 한 회당 원고지 네 매면 충분하니 금세 쓸 듯해도 펜을 들기 전에 이미 두세 시간 허비한다. 다 쓰고 나면 일이 고된 만큼 두세 시간 넋이 나간다. 결국 하루에 활동하는 시간을 전부 신문소설에 뺏겨버리니 다른 일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특히 펜이 막다른 벽에 부딪혔을 때의 괴로움이란, 뼈를 깎아내는 것처럼 견디기 힘들다. - P121

도무지 시간이 없어 독서를 못 하니 곤란하다. 신문소설을쓰는 동안은 바빠서 당연히 책을 읽지 못하고, 겨우 다 쓰고 나면 이번에는 그때까지 손대지 않고 내버려 둔 서양 잡지 서너종과 일본 잡지 그리고 외국에서 주문해 받은 책이 쌓여 있다.
그것도 읽어 보고 싶은데, 고새 젊은 친구들이 자신이 쓴 작품을 들고 와서 읽어봐달라, 비평해달라 조른다. 또 편지가 오면답장을 쓰거나 손님이 오면 응대를 하느라 바쁘기 그지없다.
남들은 집에만 틀어박혀 있으니까 필시 한가하리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웬걸, 그렇지도 않다. 학교에 나갈 때가 지금보다 손님이 적고 훨씬 여유로웠다. 여하튼 이런 식이면 어쩔수 없기에 사이사이 틈을 봐서 독서하려고 애쓰건만 별로 읽지못해서 난감하다. - P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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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 작년 여름부터 신경쇠약 기미가 보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다. 나는 축농증 탓인가 했다. 자꾸 콧물이 나고 구역질이 일어서 엎드리면 목구멍으로 넘어왔다. 일어나 있을 때는 끊임없이 코를 풀어야 했다. 자연히 사고력과 집중력이 떨어졌다.
죽을힘을 다해 원고지 삼천 매 남짓한 장편소설에 몰두하자고각오한 것도 이 육체의 악조건을 극복하고 싶다. 아니 극복해 - P83

보이겠다는 의지에서 비롯됐다. 이 노력이 무리수였지 싶다. 삼백 매나 오백 매라면 또 모를까, 삼천매넘는 작품이 하루아침에 써질 리 만무하다. 당연히 체력을 적잖이 더욱더 소모하지않을 수 없었다.
  - P84

나는 악착같이 일과 싸웠다. 산만하고 느슨해진 주의력을 높이려고 각성제를 다량 복용하고 억지로 책상 앞에 앉아 버렸다. 그러자 이번에는 잠이 오지 않았다. 더는 술만으론 소용없어 수면제를 써야 했다. 내가 먹은 수면제는 정량의 열 배쯤이었다. 그 정도가 아니면 이미 잠들지 못하는 상태였다.
- P84

짜증만 안 나면 글은 죽죽 써진다. 때때로 글자 쓰는 시간이성가시기도 하다. 쓰다 막히면 손에 집히는 대로 책상 위 책을펼쳐본다. 대개 두세 장 읽는 사이 다시 쓸 수 있게끔 된다. 책은 뭐든지 괜찮다. 어릴 적부터 사전 읽는 버릇이 있어서 『딕슨영숙어사전』따위를 읽곤 한다. 다만 지우는 일도 글쓰기에 들어가니까, 완성한 원고 매수와 작업 시간의 비율로 따지면 오히려 속도는 느린 편에 속한다. 지울 때는 별 미련 없이 지워버린다. 그래도 아직 덜 지운 감이 들지만. - P88

다 쓰고 나면 언제나 녹초가 된다. 쓰는 일만큼은 이제 당분간 거절하자고 마음먹는다. 하지만 일주일쯤 아무것도 안 쓰고있으면 적적해서 견딜 수 없다. 뭔가 쓰고 싶다. 그리하여 또 앞의 순서를 되풀이한다. 이래서는 죽을 때까지 천벌을 받을 성싶다. - P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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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무 수행이란 보통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해야 한다. 왜 사는가. 어째서 글을 쓰는가. 그것은 의무를 수행하기 위함입니다. 라고 지금의 나는 대답할 수밖에 없다. 돈을 위해 쓰는 것은 아니다. 쾌락을 위해 사는 것도 아니다. 요전 날에 들길을혼자 걷다가 문득 생각했다. "사랑이란 결국 의무를 수행하는일이 아닐까." - P75

현재 나는 의무를 위해 살고 있다. 의무가 내 생명을 지탱해주고 있다. 한 개인의 본능으로는 죽어도 좋다. 죽든 살든, 병들든 그다지 차이는 없다. 하지만 의무는 나를 죽지 않게 한다.
의무는 내게 노력을 명한다. 쉼 없이 더, 더 노력하라고 명한다.
나는 비틀비틀 일어나서 싸운다. 지고 있을 수만은 없다. 단순하다. - P76

"또 못썼어요?"
아내가 묻는다.
"안 돼, 안 돼."
"속 썩이네요."
"오늘 밤, 할 거야. 오늘 밤이야말로…………29이렇게 말하고는 양지바른 툇마루를 걷거나 정원의 나무 사이를 거닌다. 팔짱을 끼고 끊임없이 흥이 샘솟기를 기다리면서.
T 잡지의 편집자가 오는 것이 무섭다. 틀림없이 찾아온다.
그리고 기어코 원고를 손에 넣지 않는 한 가만두지 않겠다는기색을 한껏 내보일 텐데…………. 당신은 빨리 쓰니까요, 이런 말에도 여러가지 복잡한 기분이 교차한다. 쓴다, 하찮은 글을 쓴다. 그것이 세상에 나온다. 비평된다. 이 생각만 하면 몸도 마음도 구석의 구석의 구석으로 내몰리는 기분이다. - P77

다시 책상 앞에 앉아본다. 역시나 안 써진다. 끝내는 펜과 종이를 보는 일조차 고통스럽다. 펜과 종이와 내 마음 사이에 악마가 사는 듯하다. 아내는 걱정이 되는지 슬며시 엿보러 온다.
내가 알면 화를 낼 테니까 들키지 않도록 몰래. 그리고 펜을 쥐고 앉은 모습을 보고 안심하며 자리를 뜬다. - P81

그런데 갑자기 한밤중에 흥이 솟는다. 나는 홀로 일어나 펜을 잡는다. 펜이 손과 마음과 함께 달린다. 그 기쁨! 그 강함!
또 그 즐거움! 순식간에 두장, 세 장, 네 장, 다섯 장을 써 내려간다. 아까 괴로운 직업이라고 말한 푸념은 어느새 잊어버린다.
옛날 문하생 시절로 마음이 되돌아가 있다. 어두운 램프 아래서 머리카락을 길게 기른 채 글쓰기에 몰두하던………. 문단도 없고 T 군도 없고 세간도 없다. 그저 펜과 종이와 내 마음이 함께움직일 뿐이다. - P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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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마에스를 만나보자

마이클 마에스(Michael Maes)는 20년 전에 염증이 환자의 정서적, 인지적문제를 치료하는 데 결정적인 요소임을 밝혀낸 정신과의사다. 그는 장투과성으로 인한 뇌 안의 염증을 만성피로증후군, 요즘 병명으로는 전신성활동불내성질환(Systemic Exertion Intoterance Dineate. SEID)과 연관시킨 최초의인물이다.
- P86

날마다 밀가루 음식을 잔뜩 먹는다면, 예컨대 아침에는 토스트, 점심에는 샌드위치, 저녁에는 파스타를 먹는다면, 엑소르핀이 다량으로 생성되고 쉴 새 없이 아편제수용체를 자극하게 된다. 매일 매끼 밀가루를섭취하다 보면 아편제수용체가 둔해져서 약효가 떨어지고 만다. 그러면수용체가 더 이상 원활히 작동하지 않고, 내성이 생길 것이다. 결국 우 - P89

리는 동일한 좋은 기분을 맛보기 위해 더 많은 밀가루 음식을 먹으려 들것이다. 이것이 중독성 행위다.
오늘날 우울증이 우리 사회에 만연한 이유가 이해될 것이다. 우울증에 걸린 일부 사람들은 평생 동안 빵을 먹으면서 아편제수용체를 손상시켜왔다. 오늘날 미국은 세계에서 인도와 중국에 이어 세번째로 우울장애가 많이 발생하는 국가다. 미국정신질환자연맹(National Alliance on MentalIlness)에 따르면, 미국 성인 5명 중 1명이 매년 일종의 정신 질환을 경험한다.  - P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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