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르샤흐 - 잉크 얼룩으로 사람의 마음을 읽다
데이미언 설스 지음, 김정아 옮김 / 갈마바람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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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렬한 인상의 어디선가 본 듯한 배우를 닮은 헤르만 로르샤흐가 나온 책 표지가 시선을 사로잡아서 기대감에 읽고 싶었다. 어릴 적 물감을 종이에 짜서 반을 접었다 폈을 때 완전한 대칭을 이루는 그림을 보며 신기했던 기억이 있다. 바로 그 데칼코마니 기법의 잉크 얼룩으로 심리검사를 고안해낸 정신과 의사이자 예술에도 조예가 깊었던 로르샤흐의 평전을 만났다. 그 잉크 얼룩 카드 10장은 지금도 남아서 검사에 활용되고 있는데 로르샤흐에 대해 다룬 전기는 한 권도 없었다고 한다. 1954년 앙리 엘렌버거가 간략한 정보만으로 펴낸 40쪽 짜리 전기 형식 논문이 전부였으며 그후 로르샤흐를 다룬 모든 이야기는 엘렌버거의 글을 근거로 삼았다고 한다. 이렇다보니 로르샤흐에 대한 평가가 왜곡된 경우도 있었던 모양이다. 그가 태어난 스위스에서부터 시작하여 세계 곳곳을 둘러보며 그와 관계한 사람들을 만나고 편지 자료 등 수많은 자료를 통해서 그를 재해석하는 과정에서 로르샤흐는 다시 태어난 듯 생생한 드라마틱한 그의 생애를 알 수 있었다.

 

 1884년 스위스 취리히에서 태어난 헤르만 로르샤흐는 화가인 아버지 울리히와 따뜻하고 활기찬 성품을 지닌 어머니 필리피네의 사랑 속에서 자랐다. 12세에 어머니가 당뇨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아버지는 이모 레기나와 재혼을 하지만 오래 살지 못하고 병을 앓다가 세상을 떠난다. 그때부터 헤르만과 아나 파울 세 남매는 새엄마 레기나와 불협화음을 일으킨다. 이때 고등학생인 헤르만은 레기나와 대화를 통해서 남을 사랑할 만한 사람이 못 된다는 것을 이해하고 동생들에게 새어머니에게 날을 세우지 말라고 타이른다. 일찍부터 사람의 마음을 읽어내는 섬세함이 있었던 듯하다. 여동생 아나에게 있어 아버지와 어머니의 존재였던 헤르만은 일찍 철이 들었고 아픈 아버지를 보면서도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떠올리며 정신병원에서 일하는 의사가 되기로 마음먹는다. 인간의 영혼은 세상에서 더없이 흥미로운 존재라고 생각했고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일은 아픈 영혼을 치유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톨스토이주의자의 강렬한 마음과 트레구보 같은 러시아인에게 느낀 호감 때문이었다.

 

 저는 러시아 사람들을, () 상반된 요소가 뒤섞인 러시아 사람들의 정신과 진심 어린 감정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 그토록 쾌활하면서도 슬플 때 울부짖을 줄 알다니, 질투가 나도록 러시아 사람들이 부럽습니다. () 그리스와 로마 사람처럼 세상을 보고 빚어낼 줄 아는 능력, 독일 사람처럼 세상을 느낄 줄 아는 능력, 이런 능력들이 한 번이라도 하나로 합쳐질 수 있을까요?(P75) 

 

 이것은 대문호 톨스토이에게 쓴 편지라고 한다. 이렇게 풍부하고 현실감 있는 자료는 이 책을 읽는 재미를 배가시켜준다. 얼마나 러시아를 사랑했으면. 아내도 여섯 살이나 연상인 러시아인인 올가와 결혼을 하게 된다. 그런데 감성적인 그에 비하면 올가는 화가가 나면 무엇이든 내던지며 격렬한 반응을 보여서 로르샤흐도 올가를 무서워했다고 한다. 사랑하면서도 무서워했다니.

 

 사람들에 대한 낯가림이 있었지만 여러 언어를 배우고 특히 러시아어는 유창할 정도로 학업성적은 거의 상위권을 차지했다. 자연을 사랑했으며 인간의 마음을 읽고 싶었다는 로르샤흐에 대한 생애를 읽으면서 경외감이 일었다. 지금도 잊을 만하면 뉴스 기사에서 접하게 되는 조현병 환자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왔다. 병원에서 일을 하면서 그들과 생활하면서 검사를 통해서 대화를 하는 사례가 많이 나와서 직업에 대한 투철한 사명감이나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읽는 내내 흥미로웠던 것은 20세기의 위대한 위인들이 총집합한 것처럼 20세기의 역사적 상황을 알 수 있었다는 것이다. 심리학의 거장 카를 융, 프로이트를 비롯하여 톨스토이, 헤켈, 레닌, 아인슈타인, 슈바이처 등과 사람이었다는 것이 놀라웠다. 사상 처음이자 유일무이한 로르샤흐 평전이라는 이 책을 만난 덕분인 것 같다.

 

 당시 의료계는 과학과 인문학 사이의 경계가 생긴다. 심리학의 목표를 과학의 눈으로 정의해야 할지, 개인과 그 개인의 고통을 인문학의 눈으로 더 깊이 이해해야 할지 고민하는 중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로르샤흐가 학생이었을 때는 이러한 상황이 바뀌기 시작한다. 프로이트는 이미 무의식과 성 충동이 서로 이어져 있다는 이론을 수립한 상태였다. 심리학의 고전이라고 할 수 있는, 1899년에 출간된 꿈의 해석이 출판 후 6년 동안 고작 351권이 팔렸다는 흥미로운 이야기도 나온다. 또 카를 융이 블로일러의 조수로 들어가 일을 했는데 계급간의 갈등으로 인한 반목으로 융이 스승인 블로일러를 지워버렸기 때문에 오늘날 블로일러를 모르게 되었다는 일화가 흥미로웠다. 더 성공하고 싶은 인간의 욕망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는 생각에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융과 프로이트, 블로일러를 심리학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는데 여기서 블로일러가 배제된 것처럼 로르샤흐도 그랬다. 로르샤흐와 블로일러의 공통점을 언급한 것이 흥미로웠다. 둘 다 사회적인 배경이 대단하지 않았고, 심각한 정신 질환으로 고통받는 이에게 따뜻한 관심을 보였고, 다른 동료들에게 없는, 자기만의 길을 찾을 때도 남을 존중하고 남에게서 배울 줄 아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렇게 따뜻한 인품과 일에 대한 열정을 갖고 잉크 얼룩 실험을 거듭하고 출판사를 설득하는 우여곡절을 통해서 1921심리 진단이 출판된다. 그가 고안해 낸 잉크 얼룩은 오늘날에도 똑같이 쓰인다고 한다. 수십 년 동안 논쟁이 이어지고 있지만 오늘날 로르샤흐 검사는 미국 법원에서 증거로 인정되고 의료보험 회사에서 검사 비용을 환급할 수 있는 검사가 되었다. 광고계 스포츠계는 물론 영화 예술계로 확산되어 로르샤흐 검사라는 말로 은유되는 것이다. 이것은 로르샤흐 검사 자체가 잉크 얼룩에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 정해져 있지 않고 수검자가 있는 그대로 느끼는 그대로 말하는 그 특성을 패러디한 문화현상으로 자리 잡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왼쪽은 카드 3번의 초안. 오른쪽은 카드 3번의 초안(위)과 최종본(아래)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갈 수 있었던 로르샤흐가 37세라는 젊은 나이에 맹장 파열에 따른 복막염으로 수술대에서 죽음을 맞은 일은 정말 비극이라고 밖에 달리 표현할 수 없었다.

 

 로르샤흐 사후 잉크 얼룩 검사는 미국의 정신과 의사이자 정신분석가 데이비드 모더카이 레비에 의해 처음으로 널리 알려진다. 영국에서는 완전히 외면받고 있지만 일본에서는 아직도 인기 있는 심리검사라고 했다. 로르샤흐 검사를 추종자 중 가장 영향력이 컸던 사람은 사무엘 j 벡과 브루노 클로퍼였다. 벡은 평생동안 잉크 얼룩 검사를 연구한다. 클로퍼는 가족과 독일을 떠나 카를 융의 보증을 받아 스위스에 입국허가를 받아 취리히 정신기법연구소에서 로르샤흐 검사 일을 수행하다가 미국 컬럼비아 대학교에 조수 자격으로 일을 시작한다. 바로 로르샤흐 검사에 관심있는 대학원생과 교직원에게 검사를 가르치는 일이었다. 이 두 추종자는 사이가 좋지 않아 대립을 하곤 했는데 어느 편에 서지 않고 비판을 하면서 지금의 로르샤흐 검사가 되기까지 발전시킨 초기의 개척자의 양심으로 불리는 사람은 마거리트 헤르츠다.

 

 헤르츠는 몇 년 동안 케이스 웨스턴 리저브 대학교의 브러시 재단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며 여러 인종과 다양한 집단을 대상으로 로르샤흐 검사 기록을 3천 건 이상 갖게 된다. 그것이 책으로 출판되었다면 미국의 로르샤흐 검사 역사를 바꾸었을 텐데 브러시 재단의 연구가 취소되는 바람에 폐기하게 되는데 실수로 소각되는 불상사가 일어나게 된다. 재앙이나 다름없는 이 사건으로 인해 아까운 로르샤흐의 귀중한 자료를 잃은 것이다.

 

 헤르만 로르샤흐가 세상을 떠난지 17년 뒤에는 잉크 얼룩 검사는 심리학과 문화 전반에서 최고의 투사법이자 현대의 성격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거듭나기에 이른다. 다행인 것은 심리학자 에르네스트 G. 샤흐텔(Ernest G. Schachtel(1903~1975)에 의해 로르샤흐의 철학을

가장 근접하게 계승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샤흐텔은 클로퍼가 쓴 저서 로르샤흐 기법전체 인간 경험과 유리되어 있다고 비판하면서 잉크 얼룩 실험의 진정한 목표는 인간 심리를 더 깊이 이해하는 것이고 로르샤흐는 이 목표를 한 번도 잊지 않았다고 설파했다. 오늘날에는 MMPI에 밀렸지만 그것이 등장하기 전까지 미국에서는 수십 년 동안 가장 많이 활용된 성격 검사였다고 한다.

 

 심리학계의 선구자들 가운데 로르샤흐만이 시각을 중요시 하였고 시각심리학을 만들어냈다는 것을 알았다. 이는 친가와 외가 양쪽에서 물려받은 미술적 재능에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평생 지각이 마음과 몸, 세상이 교차하는 지점이라고 믿었다. 사람마다 보는 시간이 어떻게 다른지 알고 싶어했다. 이 책을 통해 심리학의 역사적 배경과 20세기의 역사적 상황까지 돌아볼 수 있어서 유익한 시간이었다. 완벽하게 이해했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이 평전을 통해 로르샤흐에 대해 알게 된 것이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헤르만 로르샤흐라는 인물을 통해 그가 읽어내고 싶었던 인간의 마음이란 얼마나 오묘하고 변화무쌍한 것인지도 조금은 짐작할 수 있었다. 그 열정어린 삶이 좀 더 오래 지속되었다면 그 영향력이 좀 강하게 남았을 수도 있었을 텐데.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심리학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읽어야 할 책이라고 생각한다.

 

 

 

 

 

 

**번역카페에서 제공받은 책으로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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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중과 함께 읽는 나쓰메 소세키 이와나미 시리즈(이와나미문고) 6
강상중 지음, 김수희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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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가 소세키에 대해 뭔가를 말하는 것은 참으로 식은땀이 날 일입니다. 하지만 소세키에 대한 제 각별한 마음만은 다른 누구에게도 절대 지지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소세키를 읽을 때마다 새로운 발견을 하며 저는 그것을 인생의 큰 양식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멋대로 소세키를 인생의 스승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P8)

 

 

 일본을 대표하는 국민작가이기 때문에 소세키(漱石) 연구자들이 무척 많으며 작품을 다룬 책과 논문이 수없이 많은데 강상중 저자는 자신이 소세키(漱石)에 대해 논하는 것을 식은땀이 날 일이라며 겸손해 한다. 이 책은 이렇게 인생의 스승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나쓰메 소세키의 주요 작품에 대한 매력을 알려주는 책이다.

 

 강상중 저자가 소세키(漱石)에 깊이 빠져든 계기는 중학교 시절 친구 두 명과 가출하여 도쿄를 돌아보고 돌아온 후 산시로를 읽고 깜짝 놀라는데서 시작된다. 대학생이 되어 도쿄로 떠나 산시로가 느낀 경험을 중학생 강상중이 느꼈던 것과 완벽하게 일치했다는 것이다. 원래 그 작가가 좋아지는 데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작품의 주인공이 느낀 감정이나 경험에 대한 공감일 것이다. 저자는 구마모토에서 태어났는데 소세키(漱石)도 구마모토에 있는 제5고등학교에 강사의 삶을 살며 43개월 동안이나 체재했다고 한다. 이곳을 배경으로 쓰인 작품이 풀베개, 이백십일이다. 그럼에도 10년 후, 1년 정도 머물었던 마쓰야마를 배경으로 쓴 도련님이 유명한 작품이 되었는데, 그에 비하면 더 오래 머물었던 구마모토는 많이 주목을 받지 못했다고 아쉬워한다. 어쨌든 대문호가 자기가 태어난 곳에서 한 동안 살았다는 흔적만으로도 가슴 설렐 일이 아닐까.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전기 3부작인 산시로, , 그 후마음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먼저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의 작품읽기가 시작된다. 내가 맨 처음 이 작품으로 나쓰메 소세키를 만났다. 이 작품으로 박람강기(博覽强記)한 모습 즉, 번뜩이는 재담이나 독자적인 조어방식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고 한다. 그는 패러디, 해학, 소탈함 등 뭐든지 감당할 수 있는 작가라는 거다. 요즘 읽고 있는 갱부에서도 그런 유머가 느껴졌었다. 반면, 어둡고 날카로운 일면도 볼 수 있는데 당시 사회에 대한 통렬한 비판을 유머를 섞어가며 거침없이 뱉어낼 줄 아는 다면성이 있다고 했다.

 

 영국 유학시절을 경험으로 쓴 단편도 몇 가지가 짤막하게 언급되고 있다소세키는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는 것도 많이 알려져 있다. 지인들에게 보낸 엽서에 그림을 그려서 보낸 사진도 소개되고 있다. 나체화를 좋아했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영국 유학시절에는 스코틀랜드 출신자들과 교류를 많이 했다고 한다. 칼라일의 서적도 가까이 했고 그의 기념관을 방문하기도 했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쓴 것이칼라일 박물관이다.나는 고양이로소이다는 칼라일의 의상철학을 훌륭하게 패러디한 작품이라고 한다. 이건 처음 알았다. 조금 어려운 책이라고 하는데 언젠가 읽어보고 싶다.

 

 3부작에 나오는 주인공 산시로, 다이스케, 소스케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사랑, 실존적 불안, 문명비판과 시사문제, 메이지의 부패를 다루고 있다. 특히 소세키의 작품에서는 연애가 간통이라는 테마로 그려지고 있는 부분이 많은데 남녀의 에로틱한 장면은 일절 나오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생각해보니 정말 그랬다. 아마 그렇지 않았다면 나도 별로 나쓰메 소세키를 좋아하지 않았을 것 같다. 강상중 저자는 이를 두고 나이를 먹어가면서 깨달은 건데 여기에는 매우 계산된 에로스의 장치가 삽입되어 있다고 말하고 있다.산시로,그 후,으로 이어지면서 주인공들의 사랑도 점차 깊어진 것을 알 수 있다. 다음에 이 순서대로 다시 읽어보고 싶다.

 

 강상중 저자는 마음을 고등학교 1학년 때 읽었는데 그때는 작품 속의 선생님의 유서에 토로한 외로움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2학년 때 다시 읽었을 때는 무척 마음이 흔들렸고 깊은 감동을 받았다고 했다. 나도 두 번 읽었는데 여기서 이야기하는 작품 해석은 정말 새롭게 다가왔다. 선생님의 친구 K가 죽은 것은 실연의 의미로만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K와 선생님 사이에 하숙집 딸이었던 선생님의 아내가 둘 사이에 들어와서 두 사람의 우정이 깨져버렸다는 해석이다. 그래서 K가 자살을 했다는 것으로 해석한다. 여기에는 도플갱어 이야기를 언급하고 있었는데, 도플갱어란 한쪽 편을 잃어버리면 나머지 한쪽이 머지않아 죽을 운명이라고 한다. K가 죽자 선생님도 그 뒤를 따른 것을 보면 섬뜩하게 맞아떨어지는 이야기다. 항상 죽음의 그림자를 의식했다는 소세키(漱石)의 생각을 이 작품에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나는 과거의 하 사건을 계기로 사람을 믿지 않게 되었네. 그래서 실은 자네도 예외는 아니라네. 하지만 아무래도 자네만큼은 의심하고 싶지 않네. 자넨 내가 의심하기에는 너무 단순한 사람인 것 같아서. 나는 죽기 전까지 이 세상에 단 한 명이라도 좋으니 마음 놓고 흉금을 터놓을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자네가 그 단 한 사람이 될 수 있겠는가? 자네는 진정 뼛속 깊숙이까지 진심을 다하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만약 제 생명이 진정한 것이라면 제가 드리는 말씀도 진심입니다.”(P113)마음

 

 

 ‘에게 보낸 편지에서 유서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피붙이가 아닌 남에게 마음을 털어놓았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선생님이라고 불러준 제자 같은 와 교류를 하면서 인간에 대한 정이 싹텄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의 생명을 언급하며 부모와 조상에 한정시키지 않고 인간이라는 ()’로서 계속 이어져 있는 관계이기 때문에 생명을 줄 수 있다는 희망이기도 할까. 그렇게 마음과 마음이 이어져간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선생님은 자신의 생명, 자신의 마음이 안에서 계속 살아가리라 확신했기 때문에 자신의 모든 이야기를 에게 남겼다고 본다. 결국, 마음을 읽는다는 것은 소세키가 말하는 영혼의 상속에 대한 이야기라는 결론에 이른다. ‘영혼의 상속이란 말에 왠지 따뜻해졌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두 번 읽은 마음』이지만, 이전과 달리 새로운 시각으로 읽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전에 느끼지 못했던 새로움을 발견하려면 읽고 또 읽어야 하리라.

 

 

 

마사오카 시키가 소세키(漱石)에게 보냈다는 엽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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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세 - 바로 지금, 나 자신으로 살기 위하여 클래식 클라우드 22
정여울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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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작가의 생애와 작품을 한 권의 책으로 만날 수 있는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가 나올 때마다 좋아하거나 관심 있는 작가가 나오면 기대감으로 설렌다. 헤세의 작품은 내가 고교 때 많이 읽었고 지난 4수레바퀴 아래서를 읽은 여운이 남아있어서 기대되었다. 정여울 작가를 이 책으로 처음 만났다. 헤세와 그의 작품 속에 나오는 주인공들에 대한 애정이 진하게 느껴졌다. ‘글을 쓸 때마다 매일 조금 더 나은 자신이 되기를 꿈꾸는 글쟁이라는 작가 소개와 이 책의 부제 바로 지금, 나 자신으로 살기 위하여라는 문장을 보면서 헤세와 그의 작품이 정여울 작가로 이어지는 어떤 영혼의 교류가 느껴졌기에 더욱 궁금했다. 헤세와 함께 걸어온 지난 10년 여정에서 배운 마음의 기록이라고 했다. 저서로는 제3회 전숙희문학상을 수상한 산문집 마음의 서재, 심리 치유 에세이 나를 돌보지 않는 나에게, 내가 사랑한 유럽 TOP10,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등 다수 있으며 KBS1라디오 <백은하의 영화관, 정여울의 도서관>을 진행하고 있다.

 

 정여울 작가는 헤세의 생애를 여행자, 방랑자, 안내자, 탐구자, 예술가, 아웃사이더, 구도자로서의 시기와 그 무렵 쓴 작품을 자신만의 해석으로 생생하게 들려준다. 오래전에 읽은 싯다르타, 데미안』 『크눌프등의 이야기가 새록새록 떠올랐고 주인공들의 음성이 귓가에 들리는 듯했다. 누구나 처음 어떤 작가를 만나게 된 계기가 있을 것이다. 정여울 작가는 10대 시절부터 10년을 바쳤던 우정이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정신적으로 많은 고통을 받았다고 한다. 많은 작품 활동으로 탄탄대로를 걸었을 것만 같았던 작가가 부모님의 빚을 11년이나 갚았고 박사학위를 땄음에도 교수가 되지 못한 뼈아픈 트라우마를 지니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힘들었던 시기를 살면서 헤세의 문학에 많은 의지를 했구나 싶었다.

 

 헤세는 자전적인 그의 작품을 통해서 원만한 교유관계를 유지하지 못했고 퇴학을 당하는 등 부침이 있던 청소년 시절을 겪었던 과정을 볼 때 자신의 상처와 동일시하며 많은 위안과 치유를 받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만큼 이야기를 풀어내기까지 얼마나 헤세의 작품을 읽고 또 읽었을까. 전에 어떤 책에서 책을 읽는 동안에 아무리 큰 슬픔이라도 치유 받지 못하는 슬픔이란 없다는 말을 접한 적이 있다. 작품을 읽어나가면서 상처를 치유하고 자신의 내면에서 새 살이 올라오는 기쁨을 느꼈다면 정신적 지주처럼 여겨지던 작가의 흔적을 찾아 떠나는 여행은 자연스런 수순일 것이다. 길치에 내성적인 성격이지만 도시도 아닌 시골을 찾아 떠나는 여행임에도, 주변 사람들이 그렇게 말렸음에도 용기 있게 발을 내딛었던 것은 작품에서 받은 상처의 치유 덕분에 용기를 낼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면의 황금으로 풀어가는 수레바퀴 아래서가 인상적이었다. 지난 4월에 읽고 참 마음이 아린 작품이었는데.

 

 ‘내면의 황금이란 이루지 못한 꿈이나 표현하지 못한 감정만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인생 전체를 좌우하는 정신의 뇌관’(P56)으로 심리학자 로버트 존슨(Rovert A. Johnson)은 각자가 지닌 내면의 황금은 혼자서 다루기에는 너무도 무겁고 힘든 대상이기 때문에 반드시 그것을 함께 나눌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다. 현대인이 쉽게 피로와 우울을 느끼는 이유 중 하나는 이런 내면의 황금을 공유할 사람을 찾기가 어려워서라고 했다. 아이들에게는 부모가 그런 역할을 해주고 부부에게는 서로가 그런 역할을 해 줄 수 있어야 하는데 바쁜 일상과 스트레스를 달고 사는 현대인들이 내면의 황금을 갈고 닦기에는 괴리가 있다는 것이다.

 

 나약하고 예민한 감수성을 가진 한스를 지켜줄 만한 어른이 없었다. 구둣방 아저씨 클라이크와 신학교 교장 선생이 있었지만. 구둣방 아저씨는 힘이 없었고 교장은 하일너를 친구로 사귀는 것을 싫어해서 만류하지 않았는가. 한스가 기댈만한 지혜로운 교사가 있었거나 부모가 사랑으로 품어 줄 만한 인격의 소유자였다면 하일너에게 자신의 내면의 황금을 몽땅 맡겨 버리지 않았을 거라는 말이다. 결국 하일너와의 우정도 산산조각 나버리자 의지할 곳을 찾지 못하고 급기야는 비극적인 결말에 이르고 만다.

 

 헤세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좋아하는 소설가라고 한다. 왜 그렇게 헤세에게 열광하는 것일까. 아마도 그의 작품의 주인공에 대한 대리만족이 아닐까 한다. 일상에 매여 살아가는 우리로서는 그의 방랑자로 순례자로 거리낌 없이 떠나는 여행을 무척 부러워하는 마음이 아닐까 싶다. 방랑자로서 작품 크눌프, 페터 카멘친트와 종교적 초월을 꿈꾸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싯다르타, 종교와 예술 사이에서 갈등하는 주인공의 모험을 그린 나르치스 골드문트순례자가 주인공으로 나온다. 여기서 페터 카멘친트는 헤세의 청소년기 체험을 구체적으로 담고 있는 흥미진진한 성장소설이며 첫 장편소설로 단번에 독자의 사랑을 받은 작품이라고 한다.

 

 헤세의 작품세계는 데미안이전과 이후로 나뉘는데 데미안탐구자로서 이정표와 같은 셀프를 찾는 에고의 험난한 투쟁을 그린 이야기다. 헤세가 자신의 심리치료 경험을 작품으로 빚어낸 작품으로 싱클레어라는 작중인물 속의 이름으로 펴냈을 때 가장 먼저 알아본 사람이 카를 구스타프 융이었다고 한다. 정말 오래전에 읽었는데 다시 읽으면 어떻게 다가올지 궁금하다. 정여울 작가는 모범생으로 오래 살아왔고 부모님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 자신의 행복인 줄 알았다고 한다. 좋은 학교에 들어가고 안정적인 사회인이 되면 더 행복해지는 줄 알았는데 서른 즈음에 자기 안에서 한 번도 행복한 적이 없었다는 목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내면에서 더욱 선명한 셀프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이끌어준 책이 바로 데미안이었다고 한다.

  

 헤세가 작가의 꿈을 키운 독일을 거쳐 궁극의 안식처 스위스까지 정여울 작가의 여정을 따라가는 여행을 마쳤다. 작가가 헤세의 작품으로부터 무엇을 치유 받았는지 무척 궁금했었다. 사람은 저마다 크고 작은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헤세가 분신처럼 들어있는 작품 이야기와 함께 처음 만난 정여울 작가와도 조금은 친숙해진 느낌이다. 앞으로 만날 헤세의 작품과 정여울 작가의 작품이 기대된다. 그래서 마음에 남는 문장들을 모아 보았다.

 

<마음에 남는 문장들>

 

 꿈을 이루기 위해 가장 필요한 마음 자세는 무엇일까. 많은 사람이 인정해주지 않더라도, 나만의 꿈을 향해 조금씩 다가가는 삶을 살기 위해 우리에게는 무엇이 필요할까. 나는 그것이 외로울 용기가난할 용기라고 생각했다. 타인이 나를 인정해주지 않고 이해해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오는 외로움, 그리고 남다른 꿈을 오직 힘으로 실현하기까지 필연적으로 견뎌야 할 가난, 그 두 가지는 인간이 꿈을 이루는 과정에서 가장 먼저 부딪히는 장벽이기 때문이다.(P13~P14)

 

 때로는 삶이 우리에게 너무도 가혹하고 불친절하게 느껴지고, 나이 듦이 무작정 두려워지는 순간이 많지만, 나는 헤세로부터 흐르는 시간을 내 편으로 만드는 방법을 배웠다. 그 방법은 바로 문학과 예술과 자연을 항상 물처럼 공기처럼 내 곁에 두는 진지하고도 풍요로운 삶을 사는 것이다. (P15)

 

 ‘우리 자신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혼자서도 광야의 벌판에서 견딜 수 있는 용기를 지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헤세는 이렇게 말한다. 용기는 이성을 필요로 하지만, 용기 자체가 이성의 산물은 아니라고, 용기는 이성보다 훨씬 깊은 곳에 우러나오는 것이라고.(P87)

 

 나는 그 훨씬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용기를 기르는 일 가운데 하나가 바로 문학과 예술, 철학을 포기하지 않는 일이라고 믿는다. 문학, 예술, 철학에 관심을 두는 것은 타인의 삶에 항상 관심을 기울여야만 가능하다. 타인의 삶에 귀 기울임으로써 우리는 마음의 주파수를 항상 나 자신에게만 맞춰놓는 나르시시즘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렇게 끊임없는 타인과의 관계 맺음이 바로 삶 속에서 나다움을 찾아가는 길이다.'(P87)

 

 마음 챙김도 오답노트를 닮았다. 나를 진정으로 성장시키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더 높은 존재로 이끌어가는 힘은, 오직 내가 나의 그림자와 싸울 때만 나타난다. 나의 상처와 나의 콤플렉스와 나의 트라우마와 싸울 때만 우리는 좀 더 나은 존재가 될 수 있다.(P139)

 

 ‘개성화한다는 것은 자신의 블리스가 있는 자리에 자기 자신을 존재하게 하는 것이다. 포기하지 않고, 도전을 피하지 않고, 내 아픔을 바라보는 것이다. 아픔을 똑바로 바라보면 그렇게 아프지 않다. 아픔을 똑바로 보지 않기 때문에 더 아픈 것이다. 아픔을 주시하다 보면 내가 왜 아픈지 깨닫게 되고 두 번째 화살을 막을 용기도 생긴다.’(142)

 

 ‘내가 나의 가장 소중한 친구가 되어 결국 고통에 빠진 나 자신을 스스로 구원하는 이야기, 내가 나의 멘토가 되고, 내가 나의 스승이 되어 그 누구도 나를 다치게 할 수 없는 존재가 되는 것, 그것이 데미안이다.’(P149)

 

 

 이 클래식 클라우드 헤세편을 읽으면서 정여울 작가가 얼마나 분투하면서 살았는지 조금이나마 들여다볼 수 있었다. 현실을 사는 우리는 인간관계 속에서 남들에게 좋은 사람이고 싶다. 그렇기 때문에 관계 속의 나에게 충실하다보면 내면의 소리를 듣지 못하고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지나치게 에고가 팽창된 상태를 에고 인플레이션이라고 한단다. 본연의 자신으로- , 개성화하기 위해 투쟁을 해야 하는데 - 살아야 행복할 수 있는데 안락한 사회화의 길에 만족해버린다는 거다. 콤플렉스와 트라우마는 그 그림자를 제대로 인식했을 때 자기 인식의 진정한 관문이 열리며, 자신의 상처가 무엇인지 알고 그 핵심을 꿰뚫어 보는 사람이야말로 회복탄력성이 높은 사람이라고 했다. 또 블리스(bliss)는 내 안의 진정한 멘토이며 에고의 모든 욕심을 잊게 하고 오직 셀프의 기쁨에 집중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많은 상처와 고통을 글로 고백할 때마다 그 상처로부터 해방되었단다. 글쓰기가 주는 치유를 경험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헤세의 고향 칼프에 있는 헤세의 동상.

 

 

 오랫동안 헤세의 작품과 함께하고 그의 발자취를 따라간 여정을 보낸 정여울 작가와 함께 하면서 헤세의 작품에 한걸음 가까이 갈 수 있었다. 아직 읽지 못한 작품을 읽을 때 좋은 길잡이가 되리라 생각했다. 물론 하나하나의 작품이 저마다 다른 느낌으로 다가올 것이다. 문학은 독자에게 어떤 역할을 하는 것인지 생각해 보았다. 작가 자신의 경험과 허구를 조합하여 빚어진 예술품이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독자들은 그 작품을 읽으면서 자신이 경험했던 일에 투영하거나 동일시하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헤세와 그의 작품을 좋아하는 독자나 관심 있는 독자라면 흥미롭게 읽을 수 있겠다. 또한 정여울 작가가 내면의 상처와 고통을 치유하며 본연의 나 자신으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듣는 과정에서 많은 용기와 힘을 얻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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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양장)
빅터 프랭클 지음, 이시형 옮김 / 청아출판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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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6월에 읽고 두 번째로 읽게 되었다. 당시에도 먹먹한 감동과 함께 이런 일이 같은 인간에 의해 벌어졌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충격적으로 다가왔었다. 절체절명의 순간을 맞고 그것이 일상이 되어버린 수용소의 삶을 간접적으로 들여다보면서 나만 힘든 것처럼 여겼던 태도가 부끄럽게 느껴졌었다. 그때 좀 힘든 상황이었는데 이 책을 읽고 나서 내가 겪는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았고 큰 힘을 얻었던 것 같다. 전에도 이시형 박사의 번역으로 읽었는데 이 책 또한 그분의 번역으로 만나서 반가웠다. 까만 표지에 뚜렷한 금박의 디자인의 대비가 마치 죽음을 뚫고 나온 승리의 월계관처럼 느껴져서 마음에 들었다.

 

 책의 내용은 첫째 강제수용소에서의 체험, 둘째 로고테라피의 기본 개념, 셋째 비극 속에서의 낙관 세 가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이 책은 저자가 익명으로 출판하려던 것을 친구의 권고로 초판이 출판되기 직전에 속표지에 이름이 들어감으로써 세상에 알려졌다고 한다. 어떤 명성을 원했던 것이 아니라, 독자에게 어떤 비참한 상황에서도 삶이 잠재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구체적인 예를 통해 전달하려는 목적으로 이 책을 썼다고 했다.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려는 순수한 의도로 나왔고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읽히고 있다는 것도 다행한 일이다. 인생을 살면서 여러 힘겨운 상황에 놓였을 때 삶의 해답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일 것이다.

 

1984년판에 부친 서문에 나온 이야기가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성공을 목표로 삼지 말라. 성공을 목표로 삼고, 그것을 표적으로 하면 할수록 그것으로부터 더욱더 멀어질 뿐이다. 성공은 행복과 마찬가지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찾아오는 것이다. 행복은 반드시 찾아오게 되어 있으며, 성공도 마찬가지이다. 그것에 무관심함으로써 저절로 찾아오도록 해야 한다. 나는 여러분이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 소리에 따라 확실하게 행동할 것을 권한다. 그러면 언젠가는, 얘기하건대 언젠가는! 정말로 성공이 찾아온 것을 보게 될 날이 올 것이다. 왜냐하면 여러분이 성공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잊어버리고 있었기 때문이다.”(P9~P10) 

 

 저자가 평소 학생들에게 자주 해 준 이야기라고 한다. 이 책이 의도치 않게 베스트셀러가 된 데서 얻은 교훈과 연결 지어 이야기하고 있었다. 로고테라피의 기본 개념에서 나오는 역설 의도(paradoxical intention)’와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지나친 주의 집중이 오히려 원하는 일을 불가능하게 한다는 것이다. 성공을 목표로 삼고 그것만을 목표로 나아가는 것보다는 그 과정에 충실하자는 메시지가 담겨 있는 것 같았다. 결과에 연연하지 말고 과정을 충실히 즐기다 보면 성공은 모르는 사이에 찾아온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처럼.

 

1. 강제 수용소에서의 체험

 

 수용소에서의 체험 이야기는 너무나 실감나게 묘사하고 있어서 오히려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뼈만 앙상하게 남은 사람이 흙이 잔뜩 묻은 신발을 들고 들어와 그것을 베개 삼아 잠을 잘 잤다는 사람 이야기, 이를 닦을 수 없는 수용소의 규칙 때문에 심각한 비타민 결핍증에 시달리고 있었지만 잇몸은 그 어느 때보다 건강했다는 사례를 들어 인간이 얼마나 환경에 대한 적응력이 강한지 이야기한다. 또 죽음으로의 선발을 피해가려고 일할 능력이 있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노력하는 장면이 나온다. 고된 육체노동을 할 수 없게 된 사람들은 회교도로 취급되어 가스실로 보내지면 죽음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면도를 하고 똑바로 서서 걸어야 하는 등 최대한 건강하게 보여야 한다. 어디서든 연기가 필요한 걸까, 웃으면 안 되는데 웃음이 났다.

 

 삶과 죽음의 갈림길이었던 장교의 손짓의 의미를 알게 된 이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 다음에는 혐오감이 찾아오고 무감각이라는 감정에 도달한다. 괴롭힘을 당하고 죽어가거나 죽은 것을 너무나 일상적으로 보게 되면서 더 이상 감정의 동요를 일으키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반전처럼 다른 감정을 이야기하는 장면이 있었다. 아우슈비츠에서 바바리아 수용소로 이송되는 도중 찬란한 석양빛을 바라보며 아름다운 풍경에 감탄을 하거나 수용소 안에서 행해지는 예술 행위가 그것이다. 더 놀라운 것은 유머가 있다는 이야기였다. 건축 공사장에서 일을 빨리하라고 고함을 질러대거나 콩알을 더 먹기 위해서 '밑바닥에서 퍼' 달라는 말을 패러디하는 방식으로 유머를 이야기하며 견디고 있었다. 다른 수용소로 이동해서는 동료 한 사람을 찾기 위해서 밤을 꼬박 새우고 이튿날 아침까지 꽁꽁 언 채 비를 맞으며 서 있어야 했지만 그 수용소에는 굴뚝이 없고 아우슈비츠가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 있었다는 이유로 행복감을 맛보기도 한다. 그렇게 도저히 살 수 없을 것 같은 수용소의 일상을 살면서도 삶의 의미를 부여잡고 있었던 것이다.

 

시련은 운명과 죽음처럼 우리 삶의 빼놓을 수 없는 한 부분이다. 시련과 죽음 없이 인간의 삶은 완성될 수 없다.’(P110)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에 갇힌 느낌이었을 것 같다. 아무리 시련이 한 사람의 인생을 단련시킨다는 말도 있지만. 수감자의 머릿속에서는 어떤 생각이 부유하고 있을까, 엿볼 수 있는 부분이 생생하게 표현되어 있었다. 물론 저자의 체험이다. 찢어진 신발 때문에 발에 심한 종기가 생겨서 극심한 통증을 걸으며 절뚝거리며 걸어간다. 살을 에는 듯한 바람이 사정없이 내리치지만 오늘 저녁에는 무엇을 먹게 될까, 그것을 빵과 바꾸어 먹을까, 끊어진 신발 끈을 대신할 철사를 어디서 구할까, 밖으로 나가지 않고 수용소 안에서 일할 수 있도록 나를 도와주는 카포는 없을까, 그 카포와 잘 사귀려면 어떻게 할까. 이런 하찮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너무 역겹게 느껴졌다고 한다.

 

 이 때 빅터 프랭클은 불이 환하게 켜진 따뜻하고 쾌적한 강의실 강단에 서 있고, 청중들이 푹신한 의자에 앉아 자신의 강의를 경청하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기 시작하면서 현실의 상황과 고통을 이기는데 성공했다고 한다. 바로 미래에 대한 기대가 삶의 의지를 불러일으킨다는 이야기다. 미래에 대한 믿음의 상실이 죽음으로 이어진 사례도 이야기한다.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상황도 견딜 수 있다.(P123) 

 

 니체의 말이다. 이 말은 비단 수용소의 절체절명의 상황뿐만 아니라 우리의 현실에서도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 미래에 대한 믿음과 희망이 하루하루를 살아가게 하는 힘인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어떻게든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다가 해방의 자유를 맞이했는데도 환희의 기쁨을 맛보지 못했다는 부분은 정말 안타까웠다. 살아남기 위한 목표 한 가지에 열중하다가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을 잊어버린 것이다. 천천히 기쁨을 느끼는 능력을 다시 배워야 했다. 또 자유를 얻은 후에도 애타게 만남을 기대하며 상상했던 가족의 상실로 또 한 번 좌절하게 된다. 가족을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용기를 주었는데 그 사람이 존재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 슬픔은 얼마나 컸을까.

  

2. 로고테라피의 기본 개념

 

 로고테라피는 환자가 이루어야 할 미래의 의미에 초점을 맞추는 것을 기본 개념으로 하며 환자 스스로 삶의 의미를 찾도록 도와주는 것을 과제로 삼는다고 한다.

 

'궁극적으로 인간은 자기 삶의 의미가 무엇이냐를 물어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이런 질문을 던지고 있는 사람이 바로 자기라는 것을 인식해야만 한다. 그 자신의 삶에 책임을 짐으로써만 삶의 질문에 대답할 수 있다는 말이다. 오로지 책임감을 갖는 것을 통해서만 삶에 응답할 수 있다. 따라서 로고테라피에서는 책임감을 인간 존재의 본질로 본다.’(P163~P164)

 

인생을 두 번째로 살고 있는 것처럼 살아라. 그리고 지금 당신이 막 하려고 하는 행동이 첫 번째 인생에서 이미 그릇되게 했던 바로 그 행동이라고 생각하라.’(P164) 

 

 ‘로고테라피(Logotherapy)’의미를 뜻하는 그리스어 로고스(Logos)’를 말하며 빈 제3정신 의학파로 부르는 이론이다. 인간 존재의 의미는 물론, 그 의미를 찾아 나가는 인간 의지에 초점을 맞춘 이론으로, 로고테라피 이론에서는 인간이 자신의 삶에서 어떤 의미를 찾고자 하는 노력을 인간의 원초적 동력으로 보고 있다. 어떤 가르침도 아니고 설교도 아니며 비유하자면 화가라기보다는 안과 의사가 하는 일에 가깝다고 했다. 화가가 자기 눈에 비친 세상을 우리에게 전하는 것이라면, 안과의사는 우리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게 해 주려는 것과 같은 노력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누구에 의존해서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기 인생에 책임감을 갖고 삶에 적극적으로 임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인생을 두 번째로 살고 있는 것처럼 살라는 말에 정신이 번쩍 깨는 느낌이다. 유한한 삶을 낭비하지 말고 덤으로 얻은 시간이라 생각하고 지금에 충실하라는 메시지로 여겨진다. 살면서 후회를 줄일 수 있는 진지한 삶의 방식이라고 생각되었다.

  

로고테라피를 활용하여 어떻게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1. 무엇인가를 창조하거나 어떤 일을 함으로써

2. 어떤 일을 경험하거나 어떤 사람을 만남으로써

3. 피할 수 없는 시련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기로 결정함으로써(P166)

 

 이렇게 세 가지 방식으로 찾을 수 있다고 했다. 일을 하거나 어떤 경험을 하고 어떤 사람을 만나는 것,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시련을 통해서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했다. 빅터 프랭클은 아우슈비츠에 도착하고 나서 정신적인 자식같은 원고를 잃는 고통을 당해야 했는데 물려받은 다른 수감자의 외투 속에서 찢어진 히브리 기도책 <셰마 이스라엘(Shema Yisrael)> 한 장을 발견하고 살라는 의미의 신의 계시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이를 볼 때 삶의 의미를 찾는 과정은 자신의 상황을 정확히 들여다보는 것과 무엇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는가가 중요하다는 걸 상기하게 된다. 또 할 일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 더 잘 살아 남았고 어느 정도 긴장 상태에 있을 때 정신적으로 건강하다고 했다. 이런 긴장은 정신적으로 잘 존재하기(well-being) 위해서도 필수불가결한 것이라고.

 

3. 비극 속에서의 낙관

 

 이 내용은 19836, 서독 레겐스부르크 대학에서 열린 제3회 로고테라피 세계 대회에서 발표한 내용으로 쓴 것이라 한다. 여기서 말하는 세 가지의 비극적인 요소는 인간의 삶을 제한 할 수 있는 고통, , 죽음을 의미한다. 이 모든 비극을 맞이한 상황에서 yes’라고 대답할 수 있는 것, 이런 상황에서도 삶의 의미가 있다고 인지하는 것을 전제한다. 중요한 것은 낙관적인 생각이 명령이나 지시로 생기는 것이 아니고 자신의 삶에 책임감을 가지고 임했을 때 저절로 우러나오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로고테라피가 오늘날 미국 문화가 지니고 있는 건전하지 못한 성향을 근절시키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오늘날 미국에는 자신의 시련을 자랑스러워하거나 부끄럽게 여기지 않고, 그것을 품위 있는 것으로 만들 기회를 거의 갖지 못한 치유 불가능한 환자들이 많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불행할 뿐만 아니라 자신이 불행하다는 사실을 부끄러워하고 있다.”(P209) 

 

 에디트 바이스코프 요엘슨은 로고테라피에 대한 희망을 위와 같이 피력했다고 한다. 베트남전 전쟁 포로생활로 엄청난 고문과 지병 등으로 스트레스을 겪었음에도 성장에 도움이 되는 체험이었다는 연구 사례와 다이빙을 하다가 사고를 당해 목 아래 부분이 마비된 제리 롱의 사례를 보더라도 시련 속에서도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반드시 시련이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삶의 의미를 찾았다는데 주목해야 할 것이다.

 

 빅터 프랭클은 아우슈비츠 이후 인간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게 되었고 히로시마 이후 무엇이 위험한지 알게 되었으니 경계심을 가져야 한다고 이야기를 맺고 있다. 네 군데나 전전해야 했던 절체절명의 강제 수용소 체험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생각해 보는 것도 의미 있을 것이다. 힘든 시간을 보내는 독자가 있다면 일독을 권하고 싶다. 크다고 느꼈던 자신의 고통이 깃털처럼 가벼워질 것이다.

 

 

'시련을 당하는 중에도 자신이 이 세상에서 유일한 단 한 사람이라는 사실에 감사해야 한다. 어느 누구도 그를 시련으로부터 구해 낼 수 없고, 대신 고통을 짊어질 수도 없다. 그가 자신의 짐을 짊어지는 방식을 결정하는 것은 그에게만 주어진 독자적인 기회이다.'(P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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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스 사이언스 - 프랑켄슈타인에서 AI까지, 과학과 대중문화의 매혹적 만남 서가명강 시리즈 2
홍성욱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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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서울대 학생들이 듣는 인기 강의 서가 명강시리즈 중 두 번째 책이다. 저자는 홍성욱의 STS, 과학을 경청하다, 그림으로 보는 과학의 숨은 역사, 인간의 얼굴을 한 과학등 다수의 저서가 있으며 다양한 매체로 소통하는 과학기술학자다. ‘과학기술학’(Science and Technology Studies)이라는 용어가 좀 생소하게 느껴졌다. STS는 과학기술과 사회의 상호작용을 규명하는 학문이라고 한다. 사회가 과학기술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그 내용과 방향을 어떻게 바꾸는지 반대로 과학기술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분석한다는 것이다.

 

1부 대중문화와 과학의 크로스

2부 세상과 과학의 크로스

3부 인간과 과학의 크로스

4부 인문학과 과학의 크로스


 크게 네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문학작품이나 영화 등을 통해 나타난 과학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서 이해하기 쉬웠다. 각 장의 주제를 보더라도 과학은 우리와 동떨어지지 않으며 일상의 문화 속 어디에나 스며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고전이 된 프랑켄슈타인을 언급하면서 그동안의 과학자의 이미지가 미쳤거나 괴짜로 굳어지게 된 사례를 이야기한다.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자신의 피조물을 만들어내고 결국에는 그 피조물로 인해 곤란을 당하게 되는 이야기다. 새로운 지식을 발견한 대가로 고통을 당하는 현대판 프로메테우스라는 평을 받기도 했으며 차후 과학자의 이미지로 굳는데 일조하기도 한다. 이 작품은 수많은 작품이나 영화에 정형화된 모습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신의 영역에 도전한 인간이 자신의 피조물, 즉 지식을 얻은 후에 어떻게 사용 하였는가 등 인간의 책임감이 중요하다는 것을 들고 있다.

 

 2부에서는 인공지능과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해 변화되는 사회의 모습을 여러 작품으로 이야기한다. 과학과 문명이 발달한다는 것은 분명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 결과 일어날 수 있는 변화를 보면 그다지 환영할 수만은 없는 것이 일자리가 사라지면서 사회의 불평등을 야기하고 세상을 양극화 시킬 수 있다는 문제가 있다. 누구나 인간다운 삶을 살고 싶어 한다.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에 나오는 세상은 과학기술의 발달이 아니어도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여기서는 인간에게 필요한 자질로 덕()을 내세운다. 반면 100년 후에 나온 프랜시스 베이컨의 새로운 아틀란티스에서는 과학기술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어서 흥미를 끌었다


 이렇게 유토피아를 향한 작품은 꾸준히 나오는데 1888년 미국에서 출간된 에드워드 벨라미의 뒤를 돌아보면서에 이르면 이런 시스템이야말로 유토피아가 아닐까 싶었다. 빈부가 없기 때문에 사회적, 정치적 갈등이 없고 범죄가 없는 세상이다. 하지만 그런 미래상을 이야기하니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는 사람들의 핀잔 속에서 잠에서 깨어나며 소설은 끝난다는 이야기다. 이런 유토피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거대한 시스템이 작동되어야 하는데 이것이야 말로 디스토피아적 사회로 진입하게 되는 것이고 역사에서 볼 수 있는 전체주의와 닮은 모습이라고 했다. 1984, 멋진 신세계에서 이야기하는 디스토피아를 피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생각을 해야 하고, 지금껏 어떤 길을 밟아서 여기에 왔는지, 즉 우리의 과거 역사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로써 자신이 누구인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가 속한 세상이 미래에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는지에 대한 통찰을 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또 우리의 풍성한 언어를 지키고 언어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말이 마음에 와 닿았다.

 

 3부에서는 과학의 혁명의 시대에 인공지능이나 로봇의 역할과 그에 따른 인간관계의 변화를 이야기한다. 크리스퍼(CRISPR)유전자 가위로 이해하면 되는데 유전자에서 원하는 부분을 잘라낼 수 있는 기술을 말한다. 병을 유발하는 특정 유전자를 잘라서 비활성화 하면 그 병의 진행을 멈추게 하는 것이다. 이런 기술이 발전하게 된 계기는 바이러스와 박테리아 연구에서 기인했다고 한다. 박테리아는 처음 공격한 바이러스의 DNA조각을 기억하고 있다가 나중에 똑같은 것이 공격하면 그 바이러스의 DNA조각을 잘라버린다는 것을 알게 되어 그 기술적 방안을 고안해 냈다고 한다.

 

 사이보그 인간과 로봇이 등장하는 영화로 보여주는 미래의 모습은 좀 두렵기도 했다. 인간과 초지능의 중요한 차이를 말하는 부분에서 섬뜩함이 느껴졌다. 인간이 중요하게 여기는 사랑, 명예, 우정, 행복 등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쩌면 당연하지 않을까. 인간처럼 진화를 거친 것이 아니라 기계로 만들어진 것이기에 말이다. 하지만 사이보그의 고전이 된 영화 <블레이드 러너>의 예를 보면 자신을 죽이려는 사람을 살려주고 인간다운 죽음의 순간을 맞이하는 것으로 나온다. 4년으로 설정된 수명을 연장하고 싶어 했지만 이루어지지 않았다. 목적 달성을 한 후에는 그냥 아무런 죄책감 없이 버려도 되는 것인가, 인간의 이기심은 아닐까 생각되었다. 여러 영화 속의 과학과 만나면서 과학을 소재로 한 영화에 관심이 생겼다.

 

 마지막 4부는 인문학 속에 들어있는 과학의 이야기다. 전기, 전차, 활동사진 등이 들어오면서 작품에 많은 소재로 쓰인 것을 알 수 있다. 무정, 경성 유람기, 술 권하는 사회등 여러 작품이 언급되고 있다. 처음엔 어두운 밤을 밝히는 신기한 것으로 묘사되다가 나중에는 개인과 사회에 비싼 대가를 요구한다는 생각이 나타나며 그렇지 않아도 힘든 식민지 일상의 불편함이 문학적 상상력과 감수성으로 묘사된다. 보통 과학은 사실에 근거를 두면서 다소 차가운 느낌이었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과학에도 상상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루트번스타인의 생각의 탄생에서는 노벨상 수상자를 연구한 이야기의 사례를 언급하고 있다. 노벨상 수상 과학자들 중에는 사진, 음악, 미술, 공예, 작가 등 거의 대부분이 한 가지 예술에 준 전문가적으로 깊게 몰입했던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창의적인 과학자일수록 예술을 병행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보여 주며 이는 과학이 상상력을 필요로 하는 활동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고 했다.

 

푸른 구슬이라는 지구의 모습을 담은 사진 <블루 마블>을 보면서 환경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완전히 바꾸게 했다고 한다. 멀리 떨어져 보면 우주 속에 작은 점 같다는 지구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아웅다웅 살고 있다는 것이다.

 

과학과 인문학의 결합은 나를 둘러싼 조건들을 이해하고, 그런 조건들 속에서, 또 그런 조건들을 이겨내고 극복하는 적극적인 삶을 위해서 필수적인 일이다.’(P345)

 

 문학 작품과 영화 등 다양한 문화 속에 들어 있는 과학이야기를 읽으면서 과학은 결코 어려운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각 장마다 궁금한 내용에 대한 QA가 있는데 마지막에 나온 부분이 기억에 남는다. 대중문화로 과학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주의할 점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영화나 문학에 나오는 내용을 사실이냐 아니냐에 가치를 두는 것보다는 여기서 무엇을 전하려는 것인가, 그 메시지를 파악하며 고민하는 것이 훨씬 의미 있다는 것이다. 다가오는 시대의 변화가 두렵기도 하지만 이렇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과 과학의 연결점을 이야기하는 책들이 자주 나오고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관심을 갖고 공부하는 자세는 우리에게 필요한 몫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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