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구아르와 책방 할아버지
마르크 로제 지음, 윤미연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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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소재로 쓰인 이야기는 언제나 따뜻함과 희망을 느끼게 한다. 저자 마르크 로제는 지금까지 약 27년 동안 대중 낭독가로서 프랑스 전역의 서점과 도서관 등을 순회하며 낭독회를 열었으며 직업적인 낭독가로서 세계 곳곳을 누비며책과 함께하는 프랑스 일주등 여행기를 다수 썼고 이 작품은 그의 첫 소설이라고 한다. 요즘처럼 급변하는 디지털 세상에도 책을 읽어주는 아날로그적 감성이 느껴지는 낭독가가 존재한다는 게 신기했다. 더구나 소외계층에 속할 수 있는 병약한 노인들이 사는 수레국화라는 요양원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라는 것도. 오랫동안 낭독가로서의 경험을 살려 책과 사람을 매개로 소통의 장을 열어주는 그레구아르를 통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작가의 생각도 조금은 엿볼 수 있었다. 책을 읽어주는 낭독자로서의 그레구아르와 소통하고 변화되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흐뭇한 미소를 짓게 했다. 흔한 교훈적인 이야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좀 엉뚱 발랄한 사건과 문체를 도입한 덕분에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작품 속 화자는 이제 열여덟 살 청년인 그레구아르다. ‘바칼로레아에 통과하지 못한 그레구아르가 나무를 좋아한다고 하니, 진로상담 선생님은 바칼로레아를 준비해서 산림청에 들어가라는 말을 들었다며 어처구니가 없어 한다. 엄마의 조언으로 용케 시청 녹지과에 일자리를 얻게 되는데 금세 넌더리가 나서 나오게 된다. 이번에는 시청 사회복지과 부책임자인 테롱 씨를 알고 있는 엄마의 백으로 수레국화요양원에서 일을 하게 되었는데. 온갖 허드렛일을 맡아 하는 잡역꾼 취급을 하며 스스로도 우습게 느껴진다. 그러는 중 주방에 사람이 비어 대신 그 자리를 메우러 갔다가 28호실의 피키에 할아버지를 만나고 낭독가가 되는데. 책과 담을 쌓고 살았던 그레구아르였기 때문에, 사람의 일은 참으로 알 수 없다는 말에 더욱 공감했고 그레구아르가 어떻게 변화될지 궁금해 하며 몰입할 수 있었다.

 

  처음 만난 할아버지와 비좁은 방이 온통 책으로 둘러싸인 모습을 보고 그레구아르는 놀라는 눈치다. 삼천 권의 책으로 빼곡한데도 갖고 오지 못한 이만 칠천 권의 책 때문에 환상통을 느낀다는 할아버지의 말을 듣지만, 한 권의 책도 없는 그레구아르가 그의 뼈아픈 통증을 이해할 리 만무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레구아르를 할아버지 방으로 가도록 끌어당기는 어떤 힘을 스스로도 느낀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사방으로 천장까지 빼곡한 책만 보아도 배부른 듯 입가에 미소가 지어질 것이다. 그레구아르는 의식적으로 만지거나 펼쳐보지도 않고 조심에 조심을 한다. 할아버지도 책 얘기는 뻥긋도 하지 않는데, 서로 기 싸움이라도 벌이는 듯 긴장되는 분위기와 뻔한 속셈에 웃음이 났다. ‘바칼로레아에 떨어졌다고 해서 그런 눈치도 없는 그레구아르는 아니다.

 

피키에 씨, 당신은 책을 읽지 않는 하루는 헛되다는 말씀을 자주 하시는데요, 제가 피키에 씨를 알게 된 이후로 책 읽으시는 모습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걸요.”

……” (P24)

 

  학창시절의 트라우마 때문에 책을 받아들이는 것이 힘들지만 그레구아르는 자기도 모르게 책에 매료되어 간다. 하지만 궁금한 걸 참지 못하고 무뚝뚝하고 시건방진 목소리로 이렇게 묻자, 할아버지는 한참 만에 이제는 손이 떨리고 눈에 녹내장이 와서 읽을 수 없고 남은 건 음악뿐이라고 한다. 순간 너무 당황하고 부끄러운 마음에 가슴이 미어지는 그레구아르다. 이틀 후 할아버지에게 사과를 하며 한 시간씩 책을 읽어드리겠다고 제안을 한다. 자기도 주방에서 일을 한 시간 덜 할 수 있으니 서로 좋은 일 아니냐고. 원장 마송 부인은 가뜩이나 직원도 모자라는 판에 이건 특혜라며 마지못해 허락하는데... 이리하여 그레구아르는 책을 읽어주는 낭독가가 된다. 무엇보다도 주방 일에서 한 시간 동안 해방이 된다는 기쁨이 더 크다.

 

  드디어 책을 읽어주기로 약속 한 날이 되어 할아버지 앞에 앉았는데 중압감이 밀려오고 중학교 수업시간에 혼났던 기억이 떠오른다. 처음 할아버지가 내민 책은 호밀밭의 파수꾼이다. 오랜만에 책을 든 그레구아르는 처음에 버벅거리지만 이내 주인공에게 동화된다. 두려움, 불안, 부끄러움 등을 느끼면서도 결국은 감동을 받고 금세 한 시간이 지났음을 알고 스스로 대견함을 느낀다. 책을 읽어주기 시작한지 한 달 정도 되었을까, 여름 휴가철이 되면서 갑작스레 세탁장에서 일을 하게 되는데... 온갖 냄새나는 옷가지를 수거하고 세탁해서 가져다주는 일이 지옥같이 느껴질 만큼 힘든데, 세탁장 책임자 다니엘에게 가혹행위를 당하면서도 잘도 참는다. 책을 읽어주는 것을 질투를 하는지 먹물 선생이라고 비아냥거리는 것은 기본이고 그렇게 월급을 받는다고 분풀이를 한다. 젊은 그레구아르가 어떻게 이런 일을 하면서 뛰쳐나가지 않았는지 신기할 정도로 잘도 참아 냈다.

 

책읽기는 신성한 것이다. 나는 이를 악물고 꾹 참는다. 그러면 매번 효과를 보는데, 소리 내어 책을 읽는 동안 나를 옭아매고 있던 모든 매듭들이 조금씩 조금씩 풀린다.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길 때마다 그 폭군이 나에게 가하는 그 모든 모욕들이 하나하나 지워진다. 낭독이 끝날 때쯤이면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고 화가 모두 사라진다. ‘수레국화와 나와 다니 사이에 얽힌 문제들로부터 아주 멀리 떨어져 있다. 몰입하면서 나는 모든 걸 잊는다. 낭독을 마치는 순간, 나는 망각으로부터 현실로 돌아온다. 씻기고 정화된 채로 행복한 현실로.’(P44~45)

 

책은 우리를 타자에게로 인도하는 길이란다. 그리고 나 자신보다 더 나와 가까운 타자는 없기 때문에, 나 자신과 만나기 위해 책을 읽는 거야. 그러니까 책을 읽는다는 건 하나의 타자인 자기 자신을 향해 가는 행위와도 같은 거지. 설령 그저 심심해서, 시간을 때우기 위해 책을 읽는다 해도 마찬가지야.”(P53)

 

  다니에게 받은 정신적 상처를 치유 받은 듯해서 다행이었다. 그레구아르는 세탁장의 악몽을 할아버지에게 모두 털어놓고 할아버지는 자신이 동성애자였다는 것부터 시작하여 지금까지 살아왔던 자신의 내력을 이야기한다. 두 사람의 변화되어 가는 모습을 보는 것도 놀라웠다. 심했던 파킨슨병의 증상이 어느새 눈에 띌 정도로 좋아졌다. 그저 소리 내어 책을 읽는 것으로 시작했던 그레구아르는 이전과 달리 새로 태어나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된다. 책을 읽어준다는 소문을 듣고 할머니들도 그레구아르에게 부탁을 해 온다. 이제는 오전에는 주방 일을 하고 오후에게 홀에 모인 사람들에게 책을 읽어주게 된다. 책을 읽어주는 사람을 향해 기대감을 갖고 시선을 집중하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을까. 이것이 현실의 요양원의 풍경이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을 날만을 기다리는 사람들처럼 무기력한 사람들의 표정이 아니라, 현재를 즐겁게 살아가고 죽음이 그렇게 두려운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지 않을까.

 

  할아버지는 그레구아르를 단순한 낭독자로 놔두지 않는다. 마치 운동선수를 가르치는 코치처럼 조언을 한다. 공유하고 싶은 좋은 레퍼토리를 선택하는 것, 장르나 주제 등을 정해서 프로그램을 만들고 적절하게 요소를 배합시키도록 코치를 한다. 또 낭독회가 끝나면 청중들의 반응이 어땠는지 철저히 모니터링을 한다. 그레구아르의 낭독 실력은 날로 업그레이드되고 청중들은 행복해 한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여기서 만족하지 않는다. 똑똑한 발음을 하기 위해서는 운동선수처럼 근육을 키워야 한다며 운하에서 수영을 하면서 호흡을 늘리라고 하는데... 추운 겨울에 수영이라니.

 

  처음에는 내키지 않았지만 그레구아르는 훈련의 중요성을 깨닫고 열심이다. 얼마 남지 않은 셀레스틴 모렐 부인을 위해 책을 읽어주면서 눈앞에서 죽어가는 모습도 본다. 처음 겪는 슬픔과 고통속에서도 책의 마지막 구절까지 다 들려줄 수 있도록 살아있기를 바란다. 하지만 떠나는 사람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책을 읽어주는 것 밖에는 없다. 요양원이 아니었다면 그레구아르가 이런 경험을 할 수 있었을까. 다양한 삶의 이력을 가진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고 죽음도 배운다. 그러면서 그레구아르의 정신세계도 조금은 성장하지 않았을까. 그런가 하면 할아버지의 기상천외한 생각으로 화장실 변기를 이용해서 방송을 하여 요양원의 모든 사람들이 낭독을 듣게 한 것은 정말 엉뚱했다. 불법이라며 길길이 뛰는 마송부인과 대적하면서도 어떻게든 수레국화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려는 할아버지의 노력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을 하며 행복해 한다.

 

나는 얼마 못 가 죽을 거야.”

……

내 시신은 화장해달라고 부탁해놨다. 그리고 기왕 하는 거,

내 책들과 자료들도 함께 불태워달라고 했어.”

…… 나는 어째서 이 감옥 같은 곳에 들어올 수밖에 없는 신세가 되기 전에 내 집에서 생을 끝낼 용기를 내지 못했을까. 뭐가 그리 두려웠던 건지. 이제 난 준비가 되어 있어.”(P217~218)

 

  책방 할아버지는 이제 떠날 준비를 하려는 것 같다. 자신의 분신처럼 여기던 책을 불태워 달라고 부탁했다니... 어쩌면 분신이었으니 더욱 함께 가고 싶었을까, 마음이 숙연해졌다.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자주 하면서 마지막 부탁을 들어달라고 한다. 그 부탁은 퐁트브로 수도원에 가서 아름다운 조각상 여인 알리에노르 다키텐을 찾아가 장 주네의 장미의 기적을 읽어주라는 것이다. 250킬로미터 쯤 떨어진 곳으로 걸어서 열흘이나 걸리는 곳이다. 그레구아르는 할아버지의 마지막 미션을 완수 할 것인가. 엉뚱한 부탁이 아닌가 싶으면서도 기꺼이 이 도보 여행을 시작하는 그레구아르의 마음은 할아버지와 헤어진다는 것에 불안함을 느낀다.

……

  기드 모파상을 비롯하여 수많은 작가와 작품의 향연을 보는 듯했다. 책과 담을 쌓고 살았던 그레구아르가 처음에는 자신을 위해 책을 읽었지만 나중에는 수레국화 요양원의 모든 사람들을 위한 낭독자가 된다. 할아버지의 조각상에게 책을 읽어주라는 마지막 부탁이 처음엔 의아했었다. 조각상에게 책을 읽어주라니. 곰곰이 생각해보니... 장 주네는 한때 감옥이기도 했던 그 수도원에서 작품을 썼다고 한다. 그의 빛나는 문장들을 숭배했기 때문에 그 장소를 찾아가고 거기서 보았던 아름다운 조각상과의 조우 등 젊은 날의 감동을 다시 확인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애 마지막 여정을 돌아보는 여정이었던 것이다.  비록 직접 가지 못하지만 그레구아르와의 공유를 통해서 교감을 나누기로 한 것이다. 결국 그레구아르 혼자서 갔지만 혼자가 아니었다. 걷지 못하는 할아버지의 발이 되고 마음속에는 할아버지와 함께 했던 시간과 가르침으로 가득 찼으니까. 생소했던 작가와 작품을 알게 된 것도 좋았다.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는 장 주네가 궁금해졌다. 책과 사람을 공유하는 이야기는 미지의 또 다른 작가와 닿을 수 있도록 건너가는 다리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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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아씨들
루이자 메이 올콧 지음, 최지현 옮김 / arte(아르테)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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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이자 메이 올컷의작은 아씨들은 워낙 유명해서 언젠가 읽어본 적이 있지 않나 하는 착각마저 들게 한다. 예전에 중고생이었을 때 명화극장으로 흘려보던 기억이 있지만 책으로 읽고 나니 전혀 새로운 느낌이 들었다. 올컷의 작품으로 처음 만나는 작품이다. 요전에 작가와 예술가들의 루틴 이야기를 모아 놓은예술하는 습관에서 루이자 메이 올컷의 이야기를 알게 되었다. 올컷은 작품을 쓸 때 광적으로 몰입하며 쓰는 타입이었는데 그럴 때면 며칠 밤낮을 먹지도 자지도 않고 썼다고 한다. 지금까지도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이 작품은 아동서의 잠재적 수익성을 포착한 편집자와 아버지를 즐겁게 해주려고 썼다 한다. 전혀 영감을 느끼지 못한 이 작품이 잘 팔리는 바람에 재정적으로 독립해 전업 작가가 될 수 있었다는 점도 재미있는 아이러니다.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어린 시절부터 바느질, 가사노동, 가정교사 일을 해 왔다고 하는데 이 작품 자매들 이야기 속에 그 힘겨운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메그, , 베스, 에이미 네 자매는 성격도 전혀 다르고 좋아하는 것도 다른데 서로를 끔찍이 사랑하는 형제애는 흐뭇한 미소를 짓게 했다. 각자 다른 개성과 성격 때문에 아웅다웅 싸울 때가 있지만 돌아서면 후회하고 서로 용서하는 모습이 천생 사랑으로 똘똘 뭉친 가족이었다. 그 따뜻한 사랑으로 힘든 일이 닥칠 때마다 이겨냈으리라.

 

  이 소설의 배경은 미국 남북전쟁(1861~65)의 시기로 작품이 시작되는 때는 186112월 크리스마스를 앞둔 시점부터다. 아이들에게 있어 크리스마스란 산타 할아버지의 선물을 떠올리지 않고는 상상할 수 없다. 각자 갖고 싶은 선물과 가난 타령으로 시작하는 네 자매의 이야기에 마음이 짠해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전쟁터에 나가신 아버지를 생각하며 군대에서 고생하는 사람들도 있으니 이번 크리스마스는 선물 없이 보내자는 엄마의 말을 떠올린다. 그렇다고 아쉬운 마음이 사라질까. 이제 겨우 십대인 소녀들인데. 가난한 형편 때문에 아이들은 메그는 가정교사를 조는 마치 할머니를 돌보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버는 모양인데 조는 자기가 보내는 시간이 얼마나 힘든지 하소연한다. 베스는 해나와 집안 정리 정돈을 하거나 설거지를 하는 일이 최악이고 에이미는 학교에서 힘들었던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이 제일 힘들다고 푸념을 한다. 이 자매들의 모습이 우습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면서 이들 앞에 또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까 몰입하며 읽어나갔다.

 

  크리스마스가 되자 어머니는 이웃에 새로 태어난 아기와 가난한 여자가 있는데 자신들이 먹을 아침 식사를 그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주는 건 어떠냐고 제안을 한다. 배고픔을 참고 기다렸던 참이라 힘들지만 잠시 주저하다가 선뜻 따른다. 이들에게 엄마는 거의 우상 같은 존재였으니. 배고픈 아이들을 두고도 더 힘든 이웃을 위해 자선을 베풀려는 엄마의 마음도 거기에 호응하는 아이들도 대단했다. 이들의 선행은 하인 해나에 의해 이웃집 로런스 할아버지에게 알려지고 여태까지 본 적이 없는 훌륭한 성찬으로 저녁식사를 보상받게 된다.

 

   이 작품을 읽는 재미는 조가 이웃 부잣집의 로런스 할아버지의 손자 로리를 알게 되고 친해지는 장면을 만나면서 더욱 배가된다. 부모님 모두 돌아가시고 할아버지와 외롭게 살아가던 로리에게 이웃집 마치부인과 네 딸들의 살아가는 모습이 마냥 부럽기만 하다. 털털한 성격에 모험을 좋아하는 조는 눈 내리는 어느 날 오후 눈길을 쓸다가 위엄 있는 궁전을 연상케 하는 로런스 할아버지의 집안이 궁금해지기 시작한다. 무도회장의 커튼 뒤에 숨었다가 우연히 알게 된 로리를 떠올리며 어떻게 하면 친구가 될 수 있을까 궁리한다. 눈뭉치를 창에 던져 로리가 창문을 열게 하더니 드디어 궁전에 입성하게 되는데 참으로 조다운 방식이 아닐 수 없다. 책이야기, 어머니와 즐겁게 보내는 자매들의 모습을 본의 아니게 내려다보면서 부러웠다는 이야기를 하는 로리의 말을 들으며 로리의 외로움을 알게 된다. 가난하지만 자신은 사랑하는 가족과 얼마나 행복한지 깨닫게 된 조는 로리에게 그 사랑을 나누어 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데. 말괄량이 기질과 대담한 성격인 조는 손자를 사랑하지만 고지식한 면이 있는 로런스 할아버지의 굳건한 마음도 녹여버리고 만다. 외로웠던 로리도 점점 밝아지고 숨겨있던 장난기가 발동하면서 재미있는 추억을 만들어나간다.

 

  네 자매들의 이야기를 에피소드 형식을 곁들여 그려내고 있는데 이웃집 로리와 연결되면서 더욱 따뜻하고 풍성한 이야기가 된다. 피아노를 배우려고 엄청 노력했지만 음악수업도 받을 수 없었고 좋은 피아노가 없어서 조율도 되지 않은 낡은 피아노 앞에서 눈물을 뚝뚝 흘리던 베스에게 피아노 선물이 생긴다. 에이미는 한창 학교에서 유행하는 라임을 메그 언니가 주는 돈으로 사게 되어 의기양양해진다. 지금까지 베스를 놀리고 무시하던 친구들도 온통 에이미에게 관심을 쏟는데, 당했던 설움을 베스는 잊을 수가 없다. 하지만 지나친 자만심은 복수심에 불탄 친구에 의해 추락하는데... 제니가 선생님께 고자질한 바람에 아까운 라임을 창밖으로 버려야 했고 교단에 서서 벌을 받게 된다. 집에 와서 언니들에게 분노를 하소연하는 장면 또한 웃음 없이는 읽을 수 없다. 에이미는 조,메그 언니들이 자기를 떼놓고 비밀스럽게 외출하는 것에 화가 나서 조가 쓰던 원고 책을 불태워버리는 만행(?)을 벌이는 바람에 갈등 상황이 생긴다. 화가 나면 그 사람이 가장 아끼는 것을 공격하게 마련인가. 그래도 그렇지 너무 심하지 않았나 싶어 웃겼다. 로리와 조가 스케이트를 타러 가는데 에이미는 또 졸졸 따라 나갔다가 얕은 얼음물에 빠지고 만다. 이 사건으로 조는 자신의 못된 성질머리를 고칠 수 있도록 도와달라며 울면서 엄마와 이야기를 하고 에이미와도 화해하게 된다. 또 메그는 애니 모팻의 초대로 여행을 떠났다가 상처를 받고 와서 화려하지 않아도 엄마와 동생들이 함께 살고 있는 집이 좋은 곳이라고 말한다.

 

  전쟁터에 나간 아버지가 위중하다는 전보를 받고 어머니가 안 계신 사이에 성홍열에 걸린 베스가 사경을 헤매는 안타까운 사건이 생기기도 한다. 또 로리의 가정교사인 브룩 선생이 메그를 좋아하게 되었는데 로리의 장난편지가 메그에게 상처를 입히기도 한다. 언니를 빼앗길 것 같은 불안함에 브룩 선생을 좋아하지 않았으면 하는 조의 마음을 엿보는 것도 참 귀여웠다. 부자와 결혼하기를 원하는 마치 할머니를 노여움에 빠뜨리면서도 사랑하는 남자를 선택한 메그의 용기도 놀라웠다. 화려한 것을 꿈꾸던 메그의 성숙한 마음을 엿보았다고 할까. 결국 사랑의 힘으로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더욱 소중한 가족과 이웃이라는 것을 느낀다

……

좋은 친구였던 로리와 조는 연인으로 발전할 수 있을까. 조는 어엿한 작가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까. 뒷이야기가 너무 궁금해진다...

 

  한 울타리에서 살아가는 가족에게 마냥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서로 갈등하다가도 화해를 하고 새로운 친구와 환경을 경험하고 나서 가난하지만 집이 좋고 가족이 제일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런 마음의 변화에는 어머니의 교훈적인 훈화가 많이 작용하기도 한 것 같다. 그래서 당시는 물론 지금까지도 인기를 끌고 있는 작품이 아닐까 생각했다. 착하게 살자는 교훈적인 내용이 많이 강조된 듯한 이 이야기가 엄청난 시대의 변화를 겪은 지금 얼마나 공감을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점점 혼자가 많아지는 이 시대에 올망졸망 함께 자랐던 어린 시절의 형제자매를 떠올리며 마음이 따뜻해졌다. 로런스가의 사람들과 친구가 되어 정을 나누는 모습도 이웃과 소원한 채 살아가는 요즘이어서 그런지 정답고 따뜻함이 느껴졌다. 이제 영화로 그 실감나는 장면들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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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러스먼트 게임
이노우에 유미코 지음, 김해용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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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드 <런치의 여왕><하얀 거탑>을 정말 재미있게 본 적이 있는데 그 작가의 작품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무조건 읽어도 실망하는 일이 없을 거라는 기대감을 갖고 읽어나갔다.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주인공급의 생생한 인물 묘사를 통해서 아키쓰 역은 누구, 마코토역은 아, 그 배우가 어울리겠군, 상상해 보는 재미도 있었다. 전에 본 일드가 생각났다. 금융권을 소재로 한 이야기인데 남녀 콤비 직원이 의뢰를 받고 은행의 부조리한 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해당 점포를 방문하고 조사를 통해 원인을 밝혀내고 징계를 하는 내용이었다. 조직 사회는 수직관계의 특성상 편파적인 상황을 낳고 여러 가지 부조리가 발생하기 마련이다. 부하직원들은 억울해도 그런 상황을 떠안게 되는데 실제로도 그런 시스템이 있다면 직장생활 할 만하지 않을까 했었다. 두 콤비의 역할이 악당을 혼내주는 도깨비 방망이라도 되는 것처럼 후련함을 느꼈던 기억이다.


  이 작품도 직장 내에서 일어나는 각종 괴롭힘 문제를 다룬 이야기다. ‘파워하라라는 원래 단어 ‘Power Harassment’(パワ?ハラスメント)의 줄임말이다. 실제로 이런 전담 부서가 설치된 회사가 있을까. 직장 내에서 일어날 수 있는 성희롱, 성차별, 근무조건, 승진 등을 둘러싼 온갖 억울한 일도 많을 것이다. 부조리한 면을 줄이고 서로 열린 마음으로 의사소통할 수 면 살맛나는 일터가 되지 않을까. 아마도 좀처럼 그런 일이 없으니 이런 이야기가 나오고 대리만족으로 위안을 삼거나 선순환의 이미지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도쿄에서도 먼 지방 도야마 추오점 점장으로 근무하던 아키쓰는 이례적인 인사 발령 전화를 받는다. 마루오 홀딩스 도쿄 본사 컴플라이언스실 실장으로. 이 갑작스런 발령은 마루오 슈퍼에서 오랫동안 사랑받던 완전 안심크림빵에서 1엔짜리 동전이 나온 사건이 터졌기 때문인데,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아키쓰는 명령을 받고 움직일 뿐이다. 7년 전 부하직원에게 파워하라를 했다는 이유로 좌천된 자신이, 도쿄 본사에 그것도 사내 해러스먼트를 다루는 실장으로 임명되다니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어쨌든 이 사건부터 해서 하나씩 해결해 나가는 것이 실장의 임무다. 더구나 기존 슈퍼와는 다른 고차원의 시나가와 점 오픈을 3일 앞둔 시점에 벌어진 사건에 사장을 포함한 임원진들의 분위기는 긴박한 상황이다.


  한편 마코토는 전임 실장 구리하라가 심근경색으로 쓰러져서 2주 동안이나 공석인 중에 최강의 상사를 보내주겠다는 마루오 사장의 말을 듣고 왠지 불안한 마음이 되는데. 와키타 상무의 파견 비서 미나코로부터 미리 아키쓰의 명함을 건네받은 마코토는 깜짝 놀란다. ‘최강의 실장이라는 상사가 지방의 점장이었다니. 대면 장면도 참 웃겼다. 마코토에게 선배라는 호칭을 붙이며 너스레를 떠는 아키쓰를 보고 새초롬해지는데... 이 둘은 최강의 콤비가 될 수 있을까. 여기에 법률 고문으로 야자와 변호사가 함께 하게 되는데, 처음엔 모래알처럼 따로 노는 듯 불안해 보였지만 차츰 마음을 열고 호흡을 맞추어가는 모습에 흐뭇한 미소가 떠올랐다.


  첫 번 째 크림 빵 사건은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우선 피해자 오가와 마이의 집에 가서 얘기를 듣고 빵을 사간 렌마점을 들러본다. 아키쓰는 벌써 탐정의 촉수가 느껴진다. 마이와의 대화 내용을 녹음했다고 하니 변호사 야자와는 허락을 구하지 않고 멋대로 녹음했다며 따를 수 없다고 한다. 하지만 7년 전 부하직원의 배신으로 좌천당하고 쓴맛 단맛 다 겪어본 아키쓰가 이런 일로 주춤하지 않는다. 예전 점포개발부에서 날렸던 추진력이나 판단력이 다시 돌아온 듯하다. 렌마점에서 방범 카메라 영상을 확보해서 분석해 보니 44초의 영상이 잘린 것을 알아낸다. 비밀은 그 44초에 있을 텐데...


  왜 하필 1엔짜리 동전이었을까.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렌마점에서 일하는 주임 사사베는 아버지 친구 마루오 사장의 연줄로 입사했는데 본사에서 쫓겨나 잔뜩 위축되어서 일도 변변히 못하고 파트타이머들에게 짐짝 취급을 받다 주의를 준 모토 점장에게 원한을 품고 이런 짓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자신의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 불특정인이 큰 피해를 입을 수도 있는 행동을 서슴없이 하다니 무서운 세상이다. 1엔짜리 동전은 뢴트겐에 찍히지 않는 경우가 있어 생명에 위협이 될 수 있다며 사사베의 잘못을 사정없이 추궁한다.


왜 점장님이 1엔짜리 동전을 주우라고 했는지 아십니까? 그건 당신을 포기하지 않고 기회를 주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기억해두세요. 잘못을 저지른 사람에게 주의 한 번 주지 않는 것을 방치라고 합니다. 그게 훨씬 더 잔혹하고 무자비한 파워하라입니다.”(P70)


, 이런 말을 하는 아키쓰, 정말 멋졌다

잘못을 보고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것이야말로 얼마나 큰 폭력인가.


  사건의 전말을 밝혀냈지만 이것을 어떻게 공개할 것인가가 문제다. 결국은 짜인 각본대로 엄중히 조사를 했지만 어떤 경로로 이물질이 혼입되었는지 판명되지 않았고 제조된 빵을 전부 회수하도록 지시했다는 것으로 공표한다. 물론 사사베의 잘못도 묻힌 거나 다름없다. 진실을 그대로 밝혔을 때 회사에 어떤 영향을 미칠 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진실을 밝히는 일에서 이익의 여부를 먼저 따지게 되는 상황에서는 씁쓸한 기분이 되었다. 언제나 약자의 손해보다 강자의 이익이 중시되는 사회가 아닌가.


  또 이어지는 시나가와 점 오픈을 코앞에 둔 시점에 파트타이머 18명이 전부 그만두겠다는 사건, 상품개발부 도쿠나가의 블랙육아 사건, 수도권 개발부장 히데미의 집단 따돌림의 사건을 하나하나 해결한다. 여기엔 아키쓰 실장의 시원시원한 성격과 탐정 기질의 촉수가 발휘되고 있다. 눈치가 빠르고 추리력이 단연 돋보였다. 컴플라이언스실 특성 상 사원 메일을 볼 수 있다는 비밀을 마코토가 말하자, ‘1엔짜리 동전을 키워드로 검색하는 부분은 기발했다. 자신의 과거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솔직함과 치밀함도 엿보였다. 미리 식당 할인권을 뿌려놓고 개발부원의 회식장소 옆방에 자리잡고 우연을 가장하여 현장을 덮치는 장면은 정말 압권이었다. 아키쓰의 일 처리 방식에 불만이던 마코토와 변호사 야자와도 감탄사를 내두르게 된다.


  마지막에는 도쿄 쓰키지의 마루오 슈퍼에서 벌어진 카스하라 사건이다. 상품을 가지고 이러쿵저러쿵 트집을 잡으며 난폭한 행동을 하는 소비자를 말한다. 현장에 가서 잘 무마시킨 아키쓰는 그 즈음에 이 일에 대한 회의를 느낀다. 와키타 상무의 파워하라를 조사하라는 사장의 밀명도 떠올리며 거절할까 생각도 하지만 그것이 빌미가 되어 다시 좌천당할지도 모른다는 불안 등... 그러다가 아키쓰가 납치되는 사건이 벌어진다. 아키쓰의 휴대폰으로 123억 엔을 내놓으라는 문자 메시지가 도착하며 회사는 발칵 뒤집어진다. 암호 같은 숫자 123은 무엇을 뜻하는가. 과연 아키쓰는 살아 돌아올 수 있을까.


  우여곡절 끝에 기지를 발휘하여 살아 돌아오는데, 그 장면도 몰입하며 읽을 수 있었다. 정말 인기 있는 드라마 작가의 내공이 느껴졌다. 와키타 상무가 왜 자신을 배신했는지 그 궁금증이 비로소 풀린다. 납치사건의 내막에도 자신의 욕심을 채우려는 권력자의 검은 마음이 여지없이 드러난다. 결국 하나의 괴롭힘은 또 하나의 괴롭힘을 낳고 서로 게임을 벌이는 형국의 이야기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관계 속에서 경쟁을 통해 살아남아야 하는 이면에서 어쩌면 피할 수 없는 삶의 단면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어쩌면 인간은 본능적으로 서로 상처를 주고받는 존재이지 않을까. 공감할 수 있는 소재여서 재미있게 읽었다. 관련 드라마를 찾아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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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너를 생각해 아르테 미스터리 2
후지마루 지음, 김수지 옮김 / arte(아르테)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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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녁노을을 바라보는 소녀와 그 옆에 고양이 한 마리는 누구를 기다리는 걸까. 로맨틱한 이야기와 환타지 같은 이야기가 펼쳐질 것 같아 기대감을 안고 읽어나갔다. 처음 만나게 된 작가 후지마루는 201712월 일본에서 처음 출간된 두 번째 소설너는 기억 못하겠지만으로 감성 미스터리라는 새로운 장르에 도전하여 1년이 채 지나기도 전에 큰 인기를 끌었고 이 작품 또한 감성 미스터리로 마녀가 등장하는 이야기다. 요즘 시대에 마녀가 등장하는 이야기라니. 지금까지 기억으로는 마녀의 이미지라면 온통 까만색 옷차림에 매부리코의 깡마른 할머니가 떠오른다. 그런데 이 이야기의 주인공 시즈쿠는 새파랗게 젊고 예쁜 여자 대학생이다. 감성 미스터리 소설이라는데 왠지 내게는 코미디처럼 재미있는 부분도 느껴졌다. 뜻밖에 재미있게 읽은 소설이다.


  도쿄에 있는 사립 대학교 문학부 2학년에 재학 중인 시즈쿠는 가리는 것도 많다. 좋아하는 말은 합리주의이고 싫어하는 말은 근성, 열혈, 연대 책임 등. 상처받을까봐 두려워 친구도 사귀지 않는다. 연애도 마찬가지다. 불같이 사랑을 하고 결혼해서 살다보면 황혼이혼을 하게 되고 결국엔 3차 세계대전을 초래하게 될 거라는 황당한 자기만의 이론을 내세우며 혼자가 얼마나 좋은지 구구절절 설명한다. 이렇게 철저히 남과 엮이는 것보다는 혼자서 지내는 것을 좋아한다. ‘현실을 냉정하게 바라보고 그에 잘 적응하는 사토리 세대라는 것을 은근히 즐기는 분위기다. 남들이 모르는 시즈쿠의 비밀은 헤이세이 시대의 마지막 마녀라는 것이다.


  어느 날, 산 속 할머니 집에 살 때 소꿉친구였던 소타가 10년 만에 찾아온다. 그렇게 오랜 세월이 지났어도 시즈쿠는 단박에 소타를 알아보았다. 아홉 살 때 마녀 일을 같이 하기로 했던 약속을 지키러 왔다는 것이다. 일도 하지 않는 백수 같은데 자기 집에서 빌붙으려고 하나 싶어 자꾸만 질문을 퍼붓지만 소타는 적당히 얼버무리며 확실한 건 시즈쿠를 행복하게 하는 것이 자기의 일이라고 한다. 시즈쿠는 이 시대에 마녀가 무슨 필요가 있느냐고 투덜대지만 소타는 분명히 의미가 있으니까 이어져 내려오는 것이고 사람을 돕는 것이야말로 마녀의 사명!”이라며 소타는 설득하기에 이른다.


  마녀 일을 어떻게 하는 건가 궁금했는데 마녀에게 대대로 내려오는 마도구가 있단다. 할머니에게 물려받은 마도구를 시즈쿠가 물려받았는데 아직까지 한 번도 써 본적은 없다. 마도구에는 몇 가지 규칙이 있는데 당대의 마녀만 쓸 수 있고, 자신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를 위해서 써야 하고, 저마다 고유의 능력을 지니고 있으며 한 번씩밖에 쓸 수 없다. 호조 가문에 전해 내려오는 마도구는 여섯 가지다. 순간 이동을 할 수 있는 알하드의 지팡이, 서로의 영혼을 바꿀 수 있는 나자르의 쌍둥이 반지, 쓰면 투명해지는 능력이 있는 류넷의 검은 모자,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는 아메르시브의 모래시계, 시뷰레의 예언서, 하늘을 날 수 있는 가루다의 깃털 이렇게 여섯 가지다.


  마녀 일에 시큰둥하던 시즈쿠는 적극적으로 도우려하는 소타 덕분에 조금씩 흥미를 느낀다. 외롭게 혼자서 살다가 옛날 소꿉친구가 좋긴 좋은 모양이다. 소타가 옛날 산 속 집에 가보자고 한다. 순간이동에 성공하여 순식간에 산 속으로 온 두 친구는 어렸을 때 추억으로 돌아간다. ‘마녀는 어느 시대든 사람들에게 행복을 배달해 주는 존재라고 했던 할머니의 음성이 들리는 듯하다. 소타는 시즈쿠가 잊고 있던 별 자유 연구를 하자던 10년 전 약속을 지키기 위해 여기로 오자고 했단다. 뭐든지 내기를 해서 100승을 먼저 하는 사람 소원 들어주기 등 어렸을 때 놀던 기억을 떠올리면서 마음이 따뜻해진다. 그러다가 갑자기 물난리가 나는 바람에 돌아가신 할머니를 떠올리며 울컥하고 만다. 그렇게 붙어 지내던 소타도 없이 얼마나 무서운 몇 날 며칠을 보냈는지. 그날 어디로 사라진 거냐고 물었더니, 소타는 자기도 그때 물살에 휩쓸리고 정신차려보니 몸은 커져 있고 그때부터 쭉 기억이 없단다. 10년의 기억이 몽땅 없어지다니. 이렇게 정체를 모르는 사람과 이대로 지내도 괜찮은 걸까 마음속에서는 의문이 떠나지 않는다. 소타는 시즈쿠를 돕는 게 자신의 사명이자 자신이 누구인지 알 수 있는 단서가 될 거라고 한다. 시즈쿠의 마음은 소타의 말에 조금씩 변하기 시작한다.


  새침한 시즈쿠는 마녀 일에 관심 없는 척 하면서도 좋은 마녀가 되겠다는 다짐을 한다. 마도구를 깨끗이 닦아두거나 벽에 훌륭한 마녀가 되겠다는 목표를 써 붙여 놓았는데 소타에게 들키고는 놀림감이 된다. 결국 혼자서는 못하지만 소타가 도와준다면 자신 있을 것 같은 생각에 힘을 얻게 된다.


  첫 번 째 의뢰인이 생겼다. 좋아하는 남자가 생겼는데 고백을 할 수가 없어서 고민이라는 미우라를 위해 미팅 모임을 열고 나자르의 쌍둥이 반지를 이용해서 두 사람의 영혼을 바뀌게 해서 미팅 장소에서 상대남 미즈타와 연결을 시켜 주려고 하지만 상황을 보아하니 잘못 짚은 것 같다. 남자 보는 눈이 없었다며 미우라는 상처를 받는데... 적극적으로 미우라를 위해 싸워 주고 마녀재판을 해서 미즈타를 혼줄을 낸다. 결국 미우라를 위해 사랑 고백을 받아내진 못하고 창피한 마음이 되어 후회하는데... 뒷수습을 능숙하게 해 준 소타 덕분에 잘 마무리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자신을 위해 싸워준 시즈쿠에게 고마워하는 미우라가 친구를 선언한다


  적극적으로 시즈쿠를 도와주는 소타가 있어서 마음 든든해하면서도 자신과 같이 부족한 사람이 마녀로서 다른 사람을 도와주어도 되는 것인지 의문이 생긴다.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했던 기억 일에만 몰두하던 부모님께 대들고 가출했던 기억을 떠올라 괴롭다. 유일한 친구였던 고양이가 갑자기 사라졌던 기억도. 어느 날, 여동생이 자기에게 오빠라고 부르지 않는다며 여동생과 사이좋은 관계로 바꿔달라는 의뢰인 히카와를 만나기도 한다. 고민 같지도 않은 것을 고민이라고 하느냐 하면서 징역 10년을 선포 한다. 정말 포복절도하게 하는 선언이다. 하지만 자세한 내막을 알고 나서 감동하는 시즈쿠.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이러쿵저러쿵하며 또 사고를 쳤다며 자책한다. 할머니가 들려주던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떠오른다.


아기들은 그 어떤 소중한 장난감이라도 주세요하고 하면 순순히 준단다. 그리고 기분 좋다는 듯 웃어. 고맙다는 말 한마디에 말이야. 이게 사람이 가진 마법이란다. 신이 주신, 둘도 없는 마법이지.”(P163)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모두 마법사란다. 마도구를 쓰지는 못하더라도 마음이 있는 한 다들 마법사야. 마음은 때때로 마법을 능가하지. 마음이야말로 진정한 마법이야. 마음이 행복을 느낄 때, 그 사람 주변에는 행복의 꽃이 피어난단다. 그건 무척이나 멋진 일이지. 사람은 모두가 누군가의 마법사야. 시즈쿠도 분명히 마법사를 만나게 될 거야."(P164)



여자도 마찬가지야. 어떤 사람이든 시간이 흐르면 변해. , 가장 좋지 않은 건 아무것도 안 하는 거야. 아무것도 안 하면 점점 망가지거든. 몸부림치고 발버둥 쳐야 사람은 좋아질 수 있어. 시즈쿠는 지금 한창 그러고 있는 중이고.”


이 시간은 절대 도망가지 않아. 최강의 마법을 얻기 위한 소양 같은 거야. 이 산에서 갈고 닦아서 강해진 얼굴을 엄마 아빠에게 보여주면 돼. 앞으로 살다 보면 괴로운 일, 슬픈 일, 온갖 일을 겪을 거야. 그걸 다 극복할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미소를 가꾸는 연습을 하는 거야. 그렇게 손에 넣은 미소를 보면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단다. 행복해진 사람이 다른 사람을 구하고, 그 사람이 또 다른 사람을 구하고 시즈쿠의 미소에는 그런 힘이 있어. 그게 사람이 지닌 최강의 마법이지.”(P233)


  소타가 빌붙을까봐 걱정하던 시즈쿠는 어디로 가고 이제 둘이는 영원히 함께 있기를 바라며 행복해하던 어느 날, 시즈쿠에게 할머니라 부르며 고즈에가 갑자기 나타난다. 미래에서 온 할머니의 손녀인데 집에서 가출했단다. 얼마나 말을 잘하는지 고집불통인데다 돌아가래도 절대 안 간단다. 이제 소타와 친해져서 행복한 시간을 가지게 되었는데 방해꾼이 나타나다니 시즈쿠는 미칠 지경이다. 자꾸만 불만이 쌓이게 되고 서로 말다툼하다가 고즈에는 집을 나가 버린다. 그때 옛날 할머니가 돌아가시던 날처럼 폭풍우는 들이닥치는데...


  고즈에를 구할 수 있을까. 물론 마녀니까 그 힘으로 구할 수는 있겠지. 하지만 마도구는 한번 밖에 쓸 수 없고 일정 시간이 지나면 효능이 소멸된다. 시즈쿠는 또 한번 후회하며 고즈에를 찾으러 폭풍우 속으로 뛰쳐나가는데... 정체가 미심쩍은 소타는 누구였을까.


아까도 말했지만 지금이 딱 좋아. 특별히 나를 희생하는 게 아니야. 마도구의 힘이 끝나는 순간이 정령이 떠날 때야. 불로불사의 몸이 되지 못한 나는 마도구와 마녀의 힘으로 이 세상에 머무를 수 있었어. 네 얼굴을 보면서 작별 인사를 하고 싶었지만 그런 호사는 바라지 않을게. 여기가 나의 종착점이야. 이 무대를 마지막으로 난 떠나는 거야. 시즈쿠, 고마웠어. 지금까지 옆에 있어줘서.”(P327)


  처음 접하는 감성 미스터리에 시즈쿠의 코믹한 대사의 조합이 너무 재밌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 후반부의 사건으로 인해 밝혀지는 반전으로 참 안타까운 마음이 되기도 했다. 내가 행복해야 주변 사람들에게 행복한 마음을 전파시킬 수 있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되는 이야기였다. 지금 옆에 있는 사람들을 잘 챙기고 함께하는 시간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되새겨 주었다. 가끔 생각하고 기억해 줄 사람이 옆에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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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마 펭귄클래식 156
제인 오스틴 지음, 류경희 옮김, 피오나 스태퍼드 해설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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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작품이 1815년에 나왔으니 무려 이백 년이 넘은 작품이다. 19세기 초 영국인들의 일상생활을 적확하게 묘사한 작품이라는 찬사와 사건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동시에 받은 작품이기도 하다. 이웃 사람들의 교류, 연인들의 사랑이 피어나는 무도회, 귀족 계급의 생활상, 가난한 소시민들의 지난한 삶도 세밀하게 표현하고 있다. 이야기의 주제는 결혼과 사랑이라는 평범하면서도 영원히 지속되는 인류 공통의 소재를 다루고 있다. 평생 결혼을 하지 않고 독신으로 살다 짧은 생을 마감한 오스틴이 어떻게 이토록 흥미로운 작품을 썼을까 경외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에마가 다섯 살 때부터 함께 살면서 16년이나 가르침을 주고 돌보아 주었던 테일러 선생이 결혼식을 하던 날 에마는 큰 슬픔에 빠진다. 친구 같았던 선생님, 어머니의 빈자리를 채워주었던 따뜻한 성품의 선생님의 부재는 허전함을 금할 수 없다. 그나마 자신이 중매해서 성사된 결혼이었다는 것에 위안을 삼는다. 딸들을 끔찍이 사랑하는 따뜻한 아버지가 있어서 다행이었을까. 아무리 그래도 젊은 아가씨의 얘기 상대로는 부족하다.

 

 어느 날, 하트필드에 기숙학교의 교장인 고더드 부인이 데리고 온 해리엇 스미스에게 흠뻑 빠진다. 누군가의 사생아라고도 했다. 이해력과 분별력이 좀 부족하지만 순수하고 예쁜 모습이 마음에 들어 금세 친구가 된다. 열일곱 살의 해리엇을 자주 집으로 초대하고 산책도 하며 잠시도 떨어질 수 없는 단짝이 된다. 그렇다고 테일러 선생의 빈자리를 채울 수는 없지만 에마는 친동생을 챙기듯이 해리엇을 보살피려 한다. 끓는 냄비처럼 갑자기 친해진 두 아가씨를 보며 나이틀리 씨는 걱정스런 마음을 웨스턴 부인(테일러 선생)에 털어놓는데... 이 둘은 끝까지 좋은 친구로 남을까. 해리엇을 불러들인 것을 에마는 후회하지 않을까.

 

 해리엇은 농부인 마틴의 가족과 친하게 지내다가 급기야는 마틴에게 청혼을 받는다. 에마는 두근두근 들떠있는 해리엇을 조종하여 그 청혼을 거절하게 한다. 훌륭한 사람들에게 소개해 주고 너의 모든 것을 향상시켜 줄 테니. 부유한데다 친절한 엘턴 목사에게 적격자라며 다리를 놓아 주려고 한다. 하지만 사람의 인연이 어찌 마음대로 되는 것인가. 통찰력 깊은 나이틀리 씨는 엘턴이 매우 잘 생기고 인기가 많은 사람이지만 행동은 무척 타산적인 사람이니 조심해야 한다고 반대하지만 에마는 밀어붙인다.

 

 결국 뜻대로 되지 않고 엉뚱하게도 엘턴은 에마에게 격렬한 사랑 고백을 하여 당황하게 하는데... 해리엇은 마음의 상처를 받게 되고 에마는 자신이 저지른 실수를 깊이 뉘우치게 된다.

 

 

나는 사랑에 빠져본 적이 한 번도 없어.

그런 것은 내 방식도 아니고 내 성격에도 안 맞아.

앞으로도 그런 일을 할 것 같지는 않아.”

-본문 중-

 

 자신은 절대로 결혼을 안 하겠다면서 다른 남녀의 인연을 맺어주는 중매가 취미라니 웃음이 난다. 결혼은 사랑하는 가족을 갈라놓기 때문에 어리석은 짓이라는 아버지의 영향을 받은 걸까. 그래도 그렇지. 사랑하는 딸이 좋은 남자를 만나서 결혼을 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좋을 텐데. 우드하우스 씨의 마음속을 알 수가 없다. 과연 에마의 연인은 있을까. 누구일까.

 

 전에 읽었던오만과 편견이나설득에 비하면 특이한 사건도 없이 밋밋한 흐름이 계속되다가, 후반부에 이르면 그것을 보상이라도 하듯이 여러 개의 복선을 터트리며 놀라운 반전을 선사한다.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조합의 커플들을 만들어낸다. 깜빡 속았다는 것이 바로 이런 거겠지. 물론 아무런 갈등 없는 것은 아니다. 오해나 후회를 낳기도 했던 과정이 말끔히 정리되어 당사자는 물론 주변 사람들의 따뜻한 공감과 축복의 덕담을 듣는다. 읽는 동안 이야기에 빠져 현실을 잊게 했다. 이것이 바로 제인 오스틴의 매력이 아닐까. 깊이 간직하고 있던 마음, 누군가에게 들킬까봐 꽁꽁 숨기고 있던 마음을 드디어 풀어놓는다. 만약 그 주인공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어쩔 뻔 했을까. 그 느낌은 뭐라고 해야 할까. 마치 내가 황홀한 프로포즈를 받은 것처럼 짜릿하다! 공포소설도 아닌데 심장이 쫄깃하다. 이쯤 해서 아직 읽지 못한 독자들을 위해 더 이상의 언급은 피하려 한다. 직접 읽어보시면서 만끽하시길!

 

             퍼온 사진: 제인 오스틴이 글을 썼다는 테이블(제인 오스틴 하우스 소재)

 

 아버지 죽음으로 형편이 곤란해져 지인의 집을 전전하기도 했지만 창작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는 그녀. 어느 책에선가는 작은 상을 펴놓고 글을 썼다는 얘기를 읽은 적이 있다. 셰익스피어에 버금가는 명성을 누리고 있는 작가가 그렇게 소박한 공간에서 글을 썼다니. 평생을 독신으로 외롭게 살았지만 작품 속에서나마 자신이 꿈꾸던 사랑을 이야기로 풀어내지 않았을까. 외롭고 힘든 삶을 견뎌냈을 텐데도 이야기는 유쾌하고 위트가 넘친다. 부유하고 안정된 생활 속에서도 항상 걱정을 달고 사는 에마의 아빠 우드하우스, 예절바른 신사, 에마의 형부 나이틀리, 젊은 연인들, 수다쟁이 베이츠 부인 등 등장인물들이 금방이라도 톡 튀어나올 듯 생생하게 느껴진다. 이웃 사람들을 사랑하고 삶에 대한 지극한 애정이 있었기에 오래도록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을 남기지 않았을까. 고로 여전히 제인 오스틴의 작품은 사랑받아 마땅하다...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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