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판본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 1774년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디자인 더스토리 초판본 시리즈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허승진 옮김 / 더스토리 / 2022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3대 시성 중의 한 사람이고 독일 문학의 거장인 괴테의 자전적 소설이라는 이 작품은 그가 스물다섯 살에 단 14주 만에 완성했다고 한다. 이 작품을 발표한 직후 전 세계에 자신의 명성을 알리게 되었다. 그리고 베르테르 신드롬이 생길 정도로 큰 인기를 얻었으며, 베르테르가 입었던 파란 연미복에 노란 조끼를 젊은이들이 따라 입었으며 2천 건에 가까운 모방자살이 발생하기도 했다는 건 유명한 일화다. 청년 괴테의 질풍노도와 같은 사랑의 열병을 앓던 그의 육성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듯했다. 자전적인 소설이라고 하지만 모든 점에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괴테의 친구인 예루잘렘이 친구의 부인에게 연정을 품었다가 자살했다는 충격적인 얘기와 법무실습을 함께 했던 동료의 약혼녀 샤를 로테에게 사랑에 빠졌던 자신의 체험을 조합하여 작품으로 형상화 시킨 것으로 보인다.

 



소설은 편지글 형식으로 되어있다. 가장 친한 친구 빌헬름에게 쓴 편지로 177154일자 이야기로 시작한다. 멀리 떠나와서 잘 지내고 있다. 어머니께서 맡긴 일을 잘 처리하고 있고 곧 소식을 전해드리겠다는 말을 전해달라고 부탁한다. 자신이 있는 그곳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경탄하며 묘사를 하고 있어서 눈앞에 선하게 이미지가 떠오른다. 편지들은 짤막짤막하다. 행복한 마음으로 인생을 즐기고 있으며 주변의 모든 것들이 낙원처럼 느껴진단다. 친구가 책을 보내준다고 했던 것에 대해 제발 괴롭히지 말아달라고 한다. 자신에게 필요한 것은 자장가라고. 끓어오르는 혈기를 잠재우려면 자장가가 필요하다고 한다. 천재 작가도 책이 물릴 때가 있다니.

 



살고 있는 곳이 어디인지 구체적으로 알려주지 않고 왜 집을 떠났는지 밝히고 있지는 않다.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 그들의 가족 이야기 같은 시시콜콜한 이야기며, 본 풍경들을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청년시절 괴테는 감정이 풍부하고 열정적이라는 것, 그리고 권위적이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 당시만 해도 귀족과 평민 계급이 뚜렷했을 텐데 평민들과도 대화를 나누고 도와주거나 아이들에게 아주 인기있는 청년이었으며, 다정다감한 성품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다가 공직자 S의 초대를 받아 무도회에 갔다가 베르테르의 인생은 조금씩 바뀌기 시작한다. 춤 파트너 일행과 마차를 타고 무도회장으로 가는 길에 샤를 로테라는 여인을 태우고 가게 되었는데, 베르테르가 걷잡을 수 없는 사랑의 포로가 될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 춤 파트너의 고모가 사랑에 빠질지도 모르니 조심하라면서 이미 약혼을 했다고 알려준다. 그때까지만 해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건만 아니나 다를까, 첫 만남에서 그녀의 자태, 그녀의 목소리, 그녀의 행동에 온통 사로잡히게 된다. 아름다운 외모는 기본이고, 언변이 뛰어나고 책을 좋아하고,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게임을 주도하거나 춤추는 것, 어린 동생들을 다정다감하게 돌보는 세세한 마음까지 어느 것 하나 흠을 발견할 수가 없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그녀에게 빠져든다.

 



늘 로테와 로테의 동생들과 어울리면서 자연스럽게 그녀를 더욱 사랑하게 된다. 그렇다고 대놓고 구애를 하는 건 아니다. 어느 날은 그녀와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고이고 눈길을 받고 싶어서 안달이 난다. 마치 어린아이 같이 되어가는 자신의 모습을 친구에게 털어놓는 부분은 그 천진함에 또 웃음 짓게 한다. 우연히 그녀와 손가락이 스치고 서로의 발이 닿기만 하면 온몸의 혈관이 요동을 쳤고 이야기에 열중하다가 입김을 닿을 듯 할 때면 벼락이라도 맞은 듯 쓰러질 것 같다고 묘사하고 있다.

 



로테를 향한 베르테르의 격정적인 사랑의 열병은 점입가경으로 커져만 간다.

로테를 만나지 못했던 어느 날은 하인을 시켜 로테에게 다녀오라고 시킨다. 햇빛을 받은 야광석이 그 빛을 흡수해서 밤에도 빛을 발하듯이, 로테의 시선이 머물렀던 하인의 얼굴과 뺨, 윗옷의 단추, 외투의 깃에 닿았던 그 모든 것을 성스럽고 소중하게 여기며 행복해 한다. 이런 사랑을 어떤 여인인들 받고 싶지 않을까. 이 얘기를 전하며 만약에 사랑이 없다면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마음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묻는다.

 


 

그토록 로테를 사랑하면서도 다시는 찾아가지 않겠다고 다짐을 하면서도 자기도 모르게 로테에게 가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처음엔 로테는 베르테르가 그녀를 사랑하는 만큼 베르테르에 대한 그녀의 사랑은 깊지 않은 것 같았다. 약혼자가 있었으니까 아무래도 우정 정도로 여겼던 것 같다. 아니면 그런 마음을 억누르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반면, 베르테르는 어린 시절 할머니에게 들었던 자석산 이야기처럼 로테에게 빨려드는 것이었다. 그러던 중 알베르트가 돌아왔다. 누구에게든 평판이 좋은 그를 대면할 자신이 없었다. 아니 그것보다 알베르트에게 로테를 빼앗긴 상실감에 사로잡힌다.

 

 


그럼에도 그들과 우정을 나누어 간다. 겉으로는 우정이었지만 상당히 마음으로는 힘들었을 것 같다. 사랑하는 사람을 당당하게 사랑하지 못하는 심정이라니. 이들은 베르테르에게 알리지 않고 결혼식을 했는데 서운한 마음에도 자주 왕래하며 어울린다. 자살에 대해 서로 논쟁을 벌이기도 한다. 자살을 나약함의 표현일 뿐이라고 말하는 알베르트에게 강하게 반박한다. 인간의 본성에는 한계가 있어서 기쁨, 슬픔, 고통 등 어느 정도까지는 견딜 수 있겠지만 한계를 넘어서면 파멸해버릴 수밖에 없다고. 그러니 강하고 약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고통을 정신적 육체적으로 어느 선까지 견딜 수 있느냐하는 문제라고 말이다. 아마도 로테를 향해 치닫는 격정적인 사랑에서 자신의 괴로움을 피력하고 있는 것 같았다.

 



너무나 유명한 작품이라 자세하게 언급하지 않아도 대략의 이야기는 알고 있을 것이다. 결국은 여행을 떠나겠다고 하면서 권총을 빌려달라고 했고, 로테가 건네주었다는 그 총으로 자살하게 되는 비극의 최후다. 처음엔 무덤덤한 듯 보이는 로테에게 빠져드는 베르테르가 좀 안쓰러워 보였다. 하지만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의 눈빛이나 태도에 민감하지 않은 여자가 어디 있겠는가. 돌아가신 어머니의 유언으로 알베르트와 결혼하게 되었다. 서로 사랑하고 존경하는 사이였지만 문학적인 공감대에서는 오히려 베르테르와 더욱 찰떡궁합이었다. 베르테르가 낭송해주는 오시안을 듣다가 로테는 폭포수처럼 눈물을 흘리며 감동을 하고 두 사람의 마음은 동시에 통한다. 그리고 그들의 운명에서 자신들의 슬픈 운명을 간파하게 된다.

 



아마도 어머니가 정해준 운명이라서 거스르지 못하고 알베르트를 선택한 건 아닐까. 알베르트도 충분히 훌륭한 남자였지만 베르테르에게 향하는 마음을 뿌리치려고 노력했던 듯하다. 사랑하는 여인과 함께 할 수 없다면 죽음을 택하는 게 낫다는 중세 시대의 사랑, 너무나 고전적인 사랑이 지금 이 시대에 얼마만큼 공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 작품이 나온지 250년 가까이 흐른 지금 사랑에 대한 의미와 관념은 많이 달라졌다, 로테에 대한 베르테르의 사랑은 아무런 조건 없는 순수한 사랑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청년 세대는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기성세대들에게는 지난날 사랑의 의미와 추억을 되새기며 읽어본다면 충분한 재미와 감동을 선사해 줄 것이다.

 



계속 편지형식의 글이 이어지다가 후반부에 뜬금없이 편집자가 독자에게라는 페이지가 온다. 처음엔 이 작품 편집자의 목소리를 넣은 건가 했다. 그런데, 답장이 없는 편지글 형식의 소설 내용상 전달할 수 없는 사건들을 보고한다는 의미로 문학 표현 기법으로 설정한 것이라고 한다. 너무 참신하지 않은가. 로테에게 쓴 편지를 알려주는데 베르테르의 죽음이 임박했고 죽음에 대한 비장한 각오를 엿볼 수 있었다. 그만큼 더욱 긴장감을 자아내고 몰입감을 높여준다. 스물다섯 살이라는 나이에 이런 작품을 쓸 수 있었다니. 괴테의 천재성을 새삼 짐작할 수 있었다. 아직 괴테의 작품을 만나지 못했다면 이 작품부터 권하고 싶다. 청년 괴테의 순수한 마음과 생각을 마주한 듯 친숙한 느낌이 들 것이다. 더구나 1774년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디자인이라는 점도 소장 각이다. 질풍노도와 같은 베르테르의 사랑 고백을 들었으니, 다음엔 60년이나 걸려서 나왔다는 파우스트를 도전해봐야겠다.

 





126

 

어디를 가든 그녀의 모습이 나를 따라다닌다네. 잠들어 있거나 깨어 있거나 그녀의 모습은 내 영혼을 온통 사로잡는다네! 두 눈을 감으면 여기, 마음의 눈이 눈을 뜨는 머릿속에 그녀의 검은 눈동자가 어른거린다네. 바로 여기에! 그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군. 내가 눈을 감는 순간 그녀의 모습이 나타난다네. 마치 바다처럼, 심연과도 같은 그녀의 눈동자는 내 앞에, 내 안에 자리를 잡고 나의 머릿속을 가득 채워 버린다네.(P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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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2-08-05 14:1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앙드레 지드의 <좁은문>만큼이나 답답하기도 했는데 이들의 순수한 열정만큼은
오랜 세월이 지나도 바래지 않을것 같아요^^*

모나리자 2022-08-06 14:23   좋아요 1 | URL
네, 그래서 고전문학은 오늘날에도 빛을 발하는 것 같아요.
더위에 건강에 유의하시고 즐거운 시간 보내세요. 미미님.^^

새파랑 2022-08-05 19:3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역시 괴테는 베르테르의 슬픔 아닌가요? 그런데 전 괴테 작품윽 베르테르밖에 안읽어봤네요 ㅋ 파우스트 어려워 보이더라구요😅

모나리자 2022-08-06 14:24   좋아요 2 | URL
네, 저도 파우스트 아주 오래 전에 조금 본적 있어요.ㅎ
역시 만만치 않을 거예요. 문학동네 2권짜리 갖고 있는데 한번 들춰봐야겠어요.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새파랑님.^^
 

"인간의 본성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기쁨, 슬픔, 고통, 모두어느 정도까지는 견딜 수 있지만 그 한계를 넘어서면 파멸해버리고 말죠. 이건 사람이 약하다. 강하다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고통을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어느 한계까지 견딜 수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 P82

빌헬름, 불행히도 활동적이었던 나는 지금 나태해졌다네.
무작정 빈둥거리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딱히 뭔가를 열심히 하는 것도 아닐세. 상상력도 사라지고 자연에 대한 감정도 메마른 지 오래라네. 그리고 책이라면 이제 아주 진저리가나 스스로를 잃어 간다는 것은 모든 걸 상실하는 것이겠지. 자네에게 맹세컨대, 가끔 나는 날품팔이가 되었으면 좋겠다고생각하네. 그렇게 되서 아침에 눈을 뜬다면 오직 그날 히대한 기대나 희망, 열망이라도 가질 수 있지 않겠나. - P94

이 가련한 인간! 정말 바보가 따로 없구나! 왜 스스로를 속이려 하는가? 끝없이 미쳐 날뛰는 이 걱정은 도대체 무어란말인가!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로테를 향한 기도뿐이네. - P93

두 사람은 가로수 길을 따라 걸어갔고, 나는 그 자리에 선채로 달빛 속에 멀어져 가는 그들을 조용히 지켜보았네. 그러고서 나는 땅바닥에 몸을 내던지고 실컷 울었다네. 그러다가다시 벌떡 일어나 테라스로 뛰어가 그 위로 올라갔네. 저 아래키 큰 보리수 그늘 밑으로 그녀의 흰옷이 은빛으로 반짝이며정원 문 쪽으로 향하는 것을 보았네. 나는 두 팔을 뻗어 보았어. 하지만 그녀의 모습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네. - P103

오늘 나는 그녀와 함께 앉아 있었네. 나는 그저 앉아 있었고,
그녀는 피아노를 연주했지. 여러 곡을, 그것도 자신의 모든 감정을 담아 아주 표현력 넘치게 말일세! 전부를 말이야! 자네가 원하는 감정까지도 말일세! 그녀의 어린 여동생은 내 무릎에 앉아서 인형의 옷을 입혀 주고 있었네. 순간 내 눈에 눈물이 고여 버렸어. 그래서 고개를 약간 수그렸지. 그러자 그녀의결혼반지가 눈에 띄었고 눈물이 솟구치더군. - P175

다. 아아, 당신과 나는 대체 어떤 인연으로 맺어진 것일까요!
당신을 처음 본 순간부터 나는 당신에게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이 리본도 나와 함께 묻어 주길 바랍니다. 내 생일에 당신이 선물해 주었지요. 내가 얼마나 소중하게 당신과 관련된것을 모았는지 모릅니다. 아아, 그때는 그 길이 이렇게 막다른 곳에 이를 줄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아무 걱정하지마세요! 부탁입니다. 부디 진정하길 바랍니다!
총알은 이미 장전해 두었습니다. 지금 막 시계가 12시를 알리고 있습니다. 자, 이제 시간이 되었습니다. 로테! 로테! 잘있어요! 안녕! - P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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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의 말대로 한다면 그 청년은 쓸모 있는 젊은이가 될거고, 나 역시 그 청년을 관리로 등용하도록 모든 영주에게 추천할 것이네. 다만 그의 사랑은 그걸로 끝이지. 그가 만약 예술가라면 그의 예술 역시 끝날 테지. 오, 나의 친구여! 천재성이홍수처럼 터져 나와 자네의 영혼을 뒤흔드는 일이 어째서 이토록 드문지 아는가? 사랑하는 친구여, 그건 천재성의 강가 양쪽에 점잔 떠는 신사들이 살고 있기 때문이네. 그들은 자기네여름 별장이며 튤립 화단, 채소밭이 망가질까 염려해서 제방을 쌓고 수로를 내서 닥쳐올 위험에 미리 대비하지. - P24

우리는 춤을 추는 즐거움에 대한 이야기로 화제를 옮겼네.
"춤에 대한 지나친 열정이 잘못이라 하더라도, 고백하건대춤보다 즐거운 것은 없어요. 걱정으로 가득할 때 음도 잘 맞지않는 제 피아노 앞에 앉아 서투른 솜씨로 대무곡(對舞曲)을 연주하고 나면 기분이 풀리곤 하거든요."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나는 그녀의 검은 눈동자에 빠져 뚫어져라 쳐다보았네. 내 영혼은 그녀의 싱그러운 입술과 상기된 볼에 완전히 사로잡혔다네. 그녀의 멋진 언변에 넋이 나가그녀가 하는 말의 표현들을 제대로 알아듣지도 못했지. 뭐 자네는 나를 잘 아니까. 굳이 말하지 않아도 짐작할 걸세.  - P37

우드란 커플과 더불어 우리 두 쌍만이 익숙하게 춤을 추었네.
내 평생 그렇게 신나게 춤춰본적이 없네. 그 순간 나는 사람이 아닌 듯했어. 더없이 사랑스러운 여인을 품에 안고 주변이안 보일 정도로 번개처럼 이곳저곳을 누비며춤추다니 말이야. 그리고 빌헬름, 솔직히 말해서 내가 사랑하고 늘 함께하고싶은 이 소녀가 나 이외의 다른 남자와 왈츠를 추는 일은 절대없게 하리라 굳게 맹세했다네. 설혹 내가 그 때문에 목숨을 잃는다 해도 말이지. 자네는 이런 나를 이해할 수 있겠지! - P40

나는 사람들이 서로를간섭하며 좋은 날들을 망치는 모습을 보는 게 정말이지 괴롭다네. 그것도 인생의 한창 좋은 시절 모든 기쁨을 받아들여도모자랄 젊은 친구들이, 그 짧은 전성기를 다툼과 언쟁으로 허비해 버리다니. 나중에 그들이 자신들의 어리석음을 깨달았을때는 이미 소중한 순간들을 보상받는 게 불가능해진 후라네. - P53

"결코 그렇지 않아요. 스스로와 이웃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 죄악이듯 우울도 죄악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서로를 행복하게 해주지 못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죄악이라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하물며 우리 각자가 누려야 할 기쁨까지빼앗는 상황이라면 두말할 나위가 없지 않겠습니까? 우울증을 앓는 사람 중에 남들에게 티내지 않고 홀로 견디면서 주변의 평온함을 깨뜨리지 않을 사람이 있다면 과연 그게 누구인지 저도 알고 싶군요. 우울이란 스스로에 대한 불만이 아니겠습니까? 이런 불만은 어리석은 허영심에서 연유한 질투심과도 연결되어 있죠.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해 주지도 못하면서그들의 행복한 모습을 보면 못 견디는 것과 같은 거죠."
ך - P56

나는 로테의 눈을 찾고 있었는데, 아아, 그녀의 시선은 다른 이들을 향하는 게 아닌가! 오로지 그 눈만을 찾는 나에게는, 나에게는, 우두커니 홀로 선 나에게는 단 한 번도 오지 않았네. 내마음은 몇 번이고 그녀에게 안녕이라는 인사를 건넸지만 그녀는 나를 바라보지 않았어. 마차는 결국 떠났고 어느새 내 눈에는 눈물이 고였네. 떠나가는 마차를 하염없이 바라보는데, 로테의 머리 장식이 마차문 밖으로 보였네. 그때 그녀가 뒤를 돌아보더군. 혹시 나를 보려고 했던 걸까? 친구여, 이 불확실함속에서 난 안절부절못하고 있다네. 유일한 위안이라면 그녀가날 뒤돌아본 것일지도 모른다는 거네. 좋은 밤 되게 나야말로정말 어린애 같지 않은가! - P61

아아, 우연히 내 손가락이 그녀의 손가락을 스치고 식탁 아래서 우리의 발이 닿기라도 하면 내 온몸의 혈관은 요동친다네! 마치 불에 데기라도 한 듯, 손발을 재빨리 움츠리지만 알수 없는 힘에 이끌려 또다시 나를 앞으로 잡아끈다네. 모든 감각들이 현기증을 느끼는 것 같다네. 오! 그런 작은 친근감의행위가 날 얼마나 괴롭히는지 그녀의 순수하고 천진한 영혼은알지 못한다네. 그녀는 이야기를 하면서 한 손을 내 손 위에올려놓기도 하는데, 이야기에 열중하느라 내게 몸을 밀착하기도 해서 부드러운 그녀의 입김이 내 입술에 닿기라도 할 때면,
정말이지 벼락이라도 맞은 듯 쓰러질 것 같다네. 빌헬름! 만약언젠가 내가 이 천국을, 이 신뢰를 얻게 되는 날이 온다면! 자네는 내 말뜻을 이해할 걸세. 아니, 내 마음은 그렇게 타락하지않았네. 의지가 약한 것뿐이네! 단지 의지가 약할 뿐이야! 하지만 이렇게 여린 것이 타락 아니겠는가?
그녀는 내게 성스러운 존재네.  - P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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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로서는 선 하나도 못 긋고 있어. 하지만 난 지금처럼 내가 위대한 화가라고 느낀 적이 없네. 내 주변을 둘러싼 아름다운 계곡에서 안개가 피어오르고, 높이 솟은 해가 울창한 숲 위를 맴도는데, 몇 가닥 빛줄기만이 그 안의 성스러운땅에 새어 들어. 그러면 난 졸졸 흐르는 시냇가의 무성한 풀밭에 몸을 던져 파묻히지. 그렇게 땅에 누우면 이름 모를 온갖풀들이 보여, 그 풀숲에서 무수히 많은 곤충과 날벌레들이 움직이고 윙윙대는 작은 세계를 보고 들을 때, 나는 우리 인간을 당신과 닮은 모습으로 창조하신 신의 존재를 느끼네.  - P13

내가 있는 곳으로 내 책들을 보내준다고 했던가? 이보게 제발 그것들로 날 괴롭히지 말아 주게. 난 더 이상 그 누구의 안내도, 그 어떤 격려나 자극도 원하지 않네. 나의 가슴은 이미충분히 스스로 요동치고 있어. 오히려 내게 필요한 건 자장가인데 마침 지금 읽고 있는 호메로스의 시에 아주 만족한다네.
끓어오르는 혈기를 잠재우려고 나는 얼마나 자주 자장가를 불러야 했던가.  - P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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惱む力 (集英社新書 444C) (新書)
姜 尙中 / 集英社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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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하는 힘- 강상중




몇 해 전 일본여행을 갔다가 사온 이 책을 이제야 읽었다. 강상중 저자는 영원한 디아스포라를 자처하는 일본에서 비판적 지식인이자 나쓰메 소세키의 광팬이기도 하다. 나의 최애 작가 나쓰메 소세키를 좋아한다는 공통점 하나로 관심작가가 되었다. 재일 한국인이라는 자신의 처지에서 청춘 시절 항상 정체성의 고민을 해왔다고 한다. 그 번민의 청춘시절 옆에서 속삭이듯 말을 걸어 주었던 이들이 나쓰메 소세키와 막스 베버였다고 한다. 그런 만큼 나쓰메 소세키의 작품을 언급하는 내용이 아주 많이 나와서 반가웠다. 여기서 다루고 있는 고민들은 누구나 한번쯤 고민했을 법한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다. 나는 누구인가?, 돈이 세계의 전부인가?, 제대로 안다는 것은 무엇일까?, 청춘은 아름운가?, 믿는 사람은 구원받을 수 있을까?, 무엇을 위해 일을 하는가? 등 죽음, 늙음에 대한 이야기까지 9가지 이야기가 들어있다.

 



서문에서 어머니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80평생 고민의 바다처럼 많은 고민을 안고 사셨던 어머니. 그래도 전통과 신앙심이 있어서 어쩌면 행복했는지도 모른다고 했다.

고민하고 고뇌하는 것은 그저 행복하지 못하고 불운한 것이냐고 물으며 문호 나쓰메 소세키와 사회학자 막스 베버에서 실마리를 찾아보자고 말한다. ‘고민하는 것사는것이며, ‘고민하는 힘살아가는 힘이라고도 했다.

 



그리고 현대의 특징인 글로벌리제이션에 대해서 언급한다. 인터넷을 시작으로 디지털 기술 발달로 인해 경제, 정치, 사상, 문화, 오락까지도 경계가 사라졌다. 다음으로는 자유의 확대를 언급한다. 인터넷으로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으며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지만 행복감을 느낀다는 사람은 볼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런 것 같다. 세상은 그 어느때보다 풍요로워졌지만 아직도 전쟁이 벌어지고 있으며 불안의 요소는 더욱 늘어난 세상이다.

 



나쓰메 소세키를 흔히 국민작가라거나 메이지의 문호라고 하지만, 국민작가라는 형용은 그다지 맞지 않다고 했다. 아이 때부터 소세키를 아주 좋아했지만 그러한 눈을 가지게 된 건 대학에 들어가 정치학을 공부하고 나서부터란다. 막스 베버가 서양근대문명의 원리를 [합리화]에 두었다면 소세키가 그리고 있는 세계와 같이 문명이 진행되는 만큼, 인간은 구제하기 어려워지고 고립되어 가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한다. 이 두 사람이 살던 19세기 말부터 20세기에 걸쳐 있으며 우리는 21세기를 살고 있는데, 그 백 년이 끼워진 2개의 세기말은 여러 의미에서 닮았다고 한다. 막스 베버가 언급한 유뇌론적 세계를 말하면서 그가 예상한 일이 현실이 되었다고 한다. 오만하고 인간중심적이며 맥락이 없는 정보의 홍수, 자연의 영위와 관계없는 제멋대로인 인간의 뇌가 자의적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컴퓨터로 세상 일을 듣고, 쇼핑하고, 때를 구분할 수는 현실을 산다. 여기에 생명유지장치로 죽지 않게 만든다면, 이것이 바로 유뇌론적 세계라는 것이다. 결국, 인간은 무엇을 알아야 할 것인가라는 문제는 어떤 사회가 바람직한 사회인가 하는 물음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저자는 20세 때부터 나는 도대체 누구인가, 에 대한 질문을 끊임없이 이어졌다고 한다.

한국인이면서 타국에서 살아가면서 자아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던 저자의 청년시절의 고뇌를 고스란히 알 수 있었다. 그러면서 자아자기중심적인 것은 엄밀히 다르다고 했다. ‘자아가 비대화되면 칭칭 얽어매어져 거기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고 한다. 또 우울이나 히키코모리와 같은 마음의 병을 얻을수도 있다. 이럴 때는 소세키의 소설을 읽어보라고 한다. 소세키는 자아의 문제를 철저하게 심혈을 기울여 생애에 걸쳐 그것만을 계속 썼다고.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고 말했던 데카르트를 언급하며 자아와 타자의 관계를 말한다. [자기와 타자와의 연결회로를 어떻게 만들어야, 공통의 세계상을 형성할 수 있을까]라는 것이 철학자들에게 근본 테마가 되었고 이것이 많은 사람들을 고민하게 된 것은 19세기 무렵부터였고, 일본에서는 메이지유신 이후부터라고 했다.

 



개인의 자유를 베이스로 개인주의가 발달하고 분리된 자아는 스스로를 확립하려고 하고 지켜려는 과정에서 점점 비대화 될 수 있다. 그래서 [사회 해체]를 초래하고 [사회 해체]라는 위기는 자아의 비대화를 초래하는 악순환이 계속된다고 말한다. 개인의 마음속을 꿰뚫고 있는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그후][마음]을 언급하며 풀어놓는다. 자이니치로서 아이덴티티에 대한 문제에 사로잡혀있던 저자의 고민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구할 수 있을까, 무엇을 위해 태어났을까, 나에게 있어 세계는 어떤 것일까 등 끊임없이 이어지늠 마음속의 질문에 고민하던 시기 [마음]은 깊은 생각을 하게 한 각별한 작품이라고 말한다. 자아에 너무 빠지게 되면 인간관계가 어려워지고 도움을 요청할 수도 없는 지경이 될수도 있다고. 백 년 전의 흔히 [지식인]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신경 쇠약]을 앓고 있었고, 나쓰메 소세키 소설의 키워드였다. 지금은 누구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병이라고 한다. 베버도 신경병원 입원한 적이 있다고 한다. 또 철학자 야스퍼스의 말도 인용하고 있다. [자신의 성]을 구축하려고 하는 사람은 반드시 파멸한다고. 왜냐하면, 자아란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성립되기 때문이다. 사람이란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도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세키의 [마음]을 언급하면서 착실함’(성실함)으로 고민하고 착실하게 타자와 마주 대하는 자세야말로 어떤 돌파구를 찾을 수 있지 않느냐고 묻는다.

 

 

 

돈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표면적으로 돈 이야기를 하는 것을 품위가 없다고 여기는 풍조를 언급한다. 그래서 보통의 문학에는 돈을 소재로 한 문학이 그다지 없는데 소세키의 작품에는 자주 등장하는 점을 예로 든다. 마음』『그후』『명암등에서 돈 때문에 마음졸이거나 부모에게 기대어 살아가는 고등유민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백년 전이나 지금이나 우리의 삶에서는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가 아닌가. 모든 것이 변하지만 만은 불변의 가치를 가진 일종의 기호로서 존재한다는 말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는 왜 일을 하는 걸까. 돈이 많다면 누구나 일하지 않은 삶을 꿈꾸지 않을까. 그후의 다이스케가 빵을 먹기 위해일하는 것을 경멸했지만 친구의 아내인 미치요를 좋아하다가 결국 노동의 현장으로 나가게 된다. 그저 흔히 볼 수 있는 삼각관계의 연애소설이 아니라 우리는 현실을 벗어나서는 살 수 없다는 깨달음을 주는 이야기라고 한다. 그러면서 덧붙이는 이야기가 소세키가 자기에게 내리는 복수극이 아닐까 생각했다고 한다. 지성인으로써 학문의 세계에서 놀고 싶었을 테지만 현실이 따라주지 않아서 교사가 될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는 흥미로운 해석까지. 결국 우리가 일을 하게 된 것은 교육제도의 목적에서 생긴 산물이라고 한다. 중요한 것은 사회속에서 타자에게 배려를 받기를 원하고,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기 위해일을 한다고 말한다. 깊이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닌가.

 



새 출발을 시작하는 봄은 저자에게 아주 힘든 계절이지만, 나쓰메 소세키의 산시로는 언제나 그리운 소설이라고 한다. 청년 시절 자신의 판박이처럼 여겼다고 한다. 지금 청춘들은 나와 세상에 대한 질문보다는 성공을 위한 스팩을 쌓느라고 열을 올리는 모습이 너무 삭막하다고 한다. 서툴고 미숙하지만 순수한 마음으로 뭔가를 찾아 방황하는 산시로의 모습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 젊은 사람들은 더 크게 고민하고 계속 고민해서 뻔뻔해졌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새로운 파괴력이 세상을 바뀌게 한다고. 광팬답게 나쓰메 소세키의 작품을 다른 시선으로 분석하고 있어서 흥미로웠다. 다시읽기를 하면 어떻게 다가올지 기대된다. 그리고 막스 베버의 책을 만나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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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2-08-02 10: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강상중 이분 소세키 찐팬이군요~!! 저도 소세키 작품을 읽으면서나는 누구인가? 라는 생각을 했던거 같아요 ㅋ 역시 일본어 원서 읽기는 모나리자님~!!

모나리자 2022-08-02 19:23   좋아요 1 | URL
네, 정말 찐팬이시지요. 나쓰메 소세키가 구마모토에서 교사 생활을 한 적도 있고
강상중 저자는 구마모토에서 태어났고 이런저런 공통점이 있어서 더욱
애착을 느끼는 듯합니다.
감사합니다~새파랑님. 8월에도 화이팅입니다.^^

그레이스 2022-08-02 11: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원서로 읽으셨군요! 강상중님의 나쓰메 소세키 작품에 대한 감상은 공감하는 부분도 그렇지 못한 부분도 있네요^^ 한번 읽어보고 싶단 생각이 듭니다. 이런 자세한 설명 너무 감사합니다.

모나리자 2022-08-02 19:24   좋아요 1 | URL
네, 책을 읽는 독자마다 상황이나 경험 등이 모두 다르니까 공감하는 정도도
달라지리라는 건 분명하겠지요. 번역본이 나온지도 상당히 오래되었어요.
한국에서도 많은 팬을 지닌 작가분입니다.
감사해요. 그레이스님, 편안한 저녁 시간 보내세요.^^

scott 2022-08-03 00: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구마모토!
하루키옹도 직접 찾아 갔을 만큼
소세키 작품을 좋아 하죠!
강상중 교수님
최근 에세이(아내와 시골로 낙향 한후 텃밭 가꾸며)도
좋았습니다 ^^

모나리자 2022-08-08 11:29   좋아요 1 | URL
그치요~
대작가들 한 자리에 모여 토론하는 모습 보면 얼마나 황홀할까요!
아쉽네요.ㅎ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스콧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