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나를 삶으로부터 추방했습니다.
그러면 나를 이제 죽음으로부터 추방하시겠습니까?
어쩌면 인간은 그런 희망을 가질 자격조차 없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회한의 샘 또한 말라붙었습니까? - P104

만약 죄악이 더는 정화를 불러오지 못한다면죄악이 무슨 소용입니까?
육체는 한때 자신이 아주 강력했다는 것을거의 기억하지 못합니다.
영혼 또한 지치고 황폐해졌습니다.
하느님, 우리의 허약함을 살펴보소서.
우리는 확신을 원합니다. - P105

보통의 시인 같았더라면 개인적 슬픔과 공포를 늘어놓은 시가 되었을 경계를 웅가레티는 명상의 힘과 통찰을 통하여 홀쩍 뛰어넘는다. 웅가레티 시는 자아를 뛰어넘는 사물로서 우뚝 선다.  - P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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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초Veglia
치마 콰트로, 1915년 12월 23일

하룻밤 내내
학살당한 동료 병사
옆에 웅크리고 있었다.
그의 위협적인 입은
보름달 쪽으로 돌아가 있었고 - P99

퉁퉁 부어오른 손은
내 침묵 안으로 들어온다
나는 사랑이 가득한
편지를 썼다.
그처럼 삶에 꼭 매달린
적이 없었다"

주세페 웅가레티의 시 - P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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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의 정체성을 정면에서 파악하려고 애쓴다. 부정, 신성 모독, 아이러니가 경건한 신앙의 태도를 대신한다. 그는 정의의 형태들을 모방한다. 성경 구절들은 왜곡되고 전도되어 구절들끼리 서로 모순을 일으킨다. 그렇게 함으로써 첼란은 절망의 근원, 모든 사물에 깃든 부재에 다가간다. 첼란의 <부정의 신학>에 대해 많은 말이 있어 왔다. 그것은 시편Psalm」의 첫 연에 잘 표현되어 있다.

아무도 다시는 흙과 진흙으로 우리를 빚지 않는다.
아무도 우리의 먼지를 논하지 않는다.
아무도,

우리는 그대를 찬미한다. 아무도 아닌 자여그대를 위해 우리는활짝 피어나려 한다.
그대를향하여. - P95

아무것도 아닌 것,
우리는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 그러하며,
앞으로도 그러하리라, 활짝 피어나며아무것도 아닌 것,
아무도 아닌 자의 장미. - P96

 결국 첼란의 절망은 너무커져서 감당할 수 없는 것이 되었고, 그리하여 세상은 첼란에게 더는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아무것도 남지 않았으므로 더는 할 말이 없게 되었다.


당신은 나의 죽음,
모든 것이 나로부터 떨어져 나갈 때
나는 당신을 붙들 수 있으리라. - P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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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시는 이미 알려진 세상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발견하는 과정이다. 그러한 글쓰기 행위는 첼란에게 있어개인적 모험을 요구한다. 첼란은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삶을 정립하고 이 세상에 우뚝 서기 위해 시를 썼다고 할수 있다. 바로 이런 절박한 필요의 느낌이 독자들에게 강하게호소한다. 첼란 시는 문학적 유물 이상의 것이다. 그것은 살아남기 위한 수단이다.
- P90

첼란의 시들은 직접적인 해설을 거부한다. 그의 시는 A에서B로 움직이거나 단어에서 단어로 건너뛰는 직선적 진행을 하지 않는다. 그의 시는 조밀한 의미로 짜인 복잡한 그물망으로서 모습을 드러낸다. 여러 언어로 이루어진 말장난, 간접적인신상 발언, 의도적으로 잘못한 인용, 괴상한 신조어, 이런 것들이 첼란 시를 묶어 주는 힘줄이다. 그의 시를 순서대로 따라간다거나 모든 단계의 국면전환을 그대로 읽어 내기란 불가능하다. 그의 시를 읽을 때는 텍스트를 꼼꼼히 읽기보다 시 전체의 어조나 의도를 따라가는 편이 낫다.  - P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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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마감 - 일본 유명 작가들의 마감분투기 작가 시리즈 1
다자이 오사무 외 지음, 안은미 옮김 / 정은문고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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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유명 작가들의 마감 분투기다. 무엇보다 나쓰메 소세키라는 이름이 반가워서 구입한 책이다. 어쩌다 보니 몇 달이나 걸려 읽었다. 작가들의 습관, 성격 등 내밀한 이야기나 에피소드를 흥미롭게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다자이 오사무, 나쓰메 소세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다니자키 준이치로 등 유명한 작가는 물론 처음 알게 된 작가들도 수두룩하다. 이야기는 1장 쓸 수 없다 2장 그래도 써야 한다 3장 이렇게 글 쓰며 산다. 4장 편집자는 괴로워4가지로 구성되어 있다. 소제목만 보아도 글을 써서 먹고사는 작가들의 고뇌가 고스란히 전해져 오는 듯하다. 그리고 부러움 약간과 위로까지도.

 



글을 쓰다 보면, 그것이 서평이든 원고든 술술 써질 때도 있지만 막힐 때도 있다. 유명 작가들은 어떨까. 보통 독자가 생각하기에는 아무런 고민 없이 술술 쓸 것 같은 작가들도 그런 고뇌가 있다는 것에 묘한 재미와 위로를 받는 느낌이었다. 홀로 있는 시간이 많고 혼자 써야 하는 것이 글이다. 여러 감정에 둘러싸여 마치 날씨처럼 변화무쌍한 하루하루를 견디며 어떻게 글쓰는 삶을 살아가는 걸까.

 



빗소리를 들으면 이상하게 마음은 쓸쓸해도 생각을 정리하는 데는 제법 도움이 된다. 비가 많이 내리는 곳에서 태어난 탓인지 나는 비라는 녀석이 좋아서 미치겠다. 여름비, 겨울비, 봄비, 어느 계절에 내리는 비라도 저마다의 정취가 마치 포근한 솜처럼 기분 좋게 머리를 에워싼다. 그래서 비가 오는 날에는 보통 때보다 두 배 정도 글이 잘 써진다. 아니, 뭔가 쓰지 않고는 못 배긴다.’(p31, 호조 다미오의 <쓰지 못한 원고 중>)

 



그래도 잘 써지고 쓰지 않고는 못 배기는 그런 날이 있다는 건 작가에게도 행복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항상 그런 날만 있겠는가.

 



쓸 수 없는 날에는 아무리 해도 글이 써지지 않는다. 나는 집 이곳저곳을 돌아다닌다.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화장실 안이다. 아니, 볼일도 없는데 여긴 뭐 하러 들어왔지. 밖으로 나오다 이번에는 격자문에 머리를 내리친다. “으음, 으음소리가 절로 나온다. 이따위 글을 써봤자 뭐가 된단 말인가. 그저 노동의 기록에 지나지 않는 것을(p43, 요코리쓰 리이치의 <쓸 수 없는 원고> )

 



그럼에도 써야 하는 것이 작가의 삶이겠지. 기쿠치 간은 신문소설을 쓰던 중의 고통에 대해서 말한다. 그는 신문소설만큼 뼈가 휘도록 힘겨운 일은 없다면서 작가 지옥 중 신문소설 지옥이 가장 괴롭다며 푸념을 늘어놓는다.

 



나는 아침에만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다. 신문소설은 한 회당 원고지 네 매면 충분하니 금세 쓸 듯해도 펜을 들기 전에 이미 두세 시간 허비한다. 다 쓰고 나면 일이 고된 만큼 두세 시간 넋이 나간다. 결국 하루에 활동하는 시간을 전부 신문소설에 뺏겨버리니 다른 일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특히 펜이 막다른 벽에 부딪혔을 때의 괴로움이란, 뼈를 깎아내는 것처럼 견디기 힘들다.‘(p121)

 



작가들이 이럴진대. 묘한 위로가 되지 않는가. 벽에 부딪혀보고 결국엔 샘솟는 아이디어가 떠오르고 그렇게 환희를 느끼며 글쓰기도 이어가는 것이 아닐까. 그런 시간을 견디고 즐기다 보면 글쓰기는 늘게 되어있다. 그럴 거라는 희망을 가져 보자.

 



나쓰메 소세키 또한 신문소설을 연재하며 데뷔했으니 할 말이 많을 듯하다. 역시나 신문소설을 쓰는 동안은 바빠서 책을 읽지 못한다고 하소연을 했다.

 



정말이지

하루에 책을 읽을

시간이 얼마 안 된다.”(p122)

 



소세키는 문인의 생활을 언급하기도 했다. 당대 유명한 스타 작가였으니 막대한 부를 쌓았다느니 굉장한 저택을 지었다느니 온갖 소문이 떠돌았다고 한다. 엄청난 재산을 모았다면 이렇게 더러운 집에 살 턱이 있겠느냐, 이 집도 내 집이 아니라 셋집이다, 라면서 소세키는 반박을 한다. 그러면서 더 밝은 집이 좋다며 속내를 털어놓는다.

 



햇빛 쏟아지는 미닫이창 아래서 쓰면 가장 좋지만, 이 집에는 그런 장소가 없으므로 종종 양지바른 툇마루에 책상을 꺼내 놓고 머리에 햇빛을 흠뻑 받으며 펜을 든다. 너무 더우면 밀짚모자를 쓰기도 한다. 이렇게 하면 글이 잘 써진다. 결국 밝은 곳이 제일이다.‘(p151)

 



평생 독서를 하고 원고와 씨름하는 작가들의 눈은 피로를 넘어 혹사당할 것 같다. 밝은 곳을 선호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지 싶다. 원고 쓰기에 몰두하며 툇마루에 앉아있는 소세키의 모습이 그려진다.

 



오늘날과 달리 옛날에는 모든 물자가 귀하던 시절에 직접 원고지에 손으로 써야 하는 수고도 상당했을 것 같다. 작가들의 삶의 배경을 보면 가난 속에서 글을 쓸 수밖에 없었던 작가들이 대부분이다. 밥벌이로서의 글쓰기는 어떤 중압감이 항상 따라다녔을 것 같다. 행간에 그들의 무거운 마음이 오롯이 전해져왔다.

 



맨 나중 이야기는 편집자로서 고뇌를 얘기하는 작가들이 나온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부터 다니자키 준이치의 글을 싣고 있다. 이 중 편집자와 밀당을 했던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이야기는 웃음을 자아냈다.

 



하지만 도저히 쓸 수 없다고 딱 잘라 말하는데도 편집자는 거절당할 것을 각오하고 찾아왔는지 좀처럼 뜻을 굽히지 않았다. 가령 원고지 세 장이든 다섯 장이든 좋으니 써달라고 매달렸다. 전혀 물러날 기색이 아니었다. 아쿠타가와가 세 장 쓸 정도면 열 장 쓰겠지만 지금 재료도 없고 시간도 없어서 아무리 해도 쓸 수 없다고 거절하자 편집자는 그럼 한 장이든 두 장이든 좋으니 써달라고 애원했다. 이에 아쿠타가와가 원고지 두 장으로는 소설이 되지 않는다고 대답하자 편집자는 원래 당신 소설은 짧으니 두 장이라도 제법 괜찮은 소설이 된다. 오히려 재미있는 소설이 나올지도 모른다며 포기하지 않았다.‘(p233, 무로 사이세의 <아쿠타가와의 원고> )

 



어느 쪽도 양보하지 않는다. 승패를 장담할 수 없는 줄다리기를 보는 듯하다.

이 밀당을 지켜보았던 무로 사이세이의 말은 폭소를 자아내게 했다.

 



얼핏 작가가 윗사람으로 보이지만,

작가가 무서워하는 사람 가운데

한 명이 편집자다.”

-무로 사이세이-(p237)

 



그런가 하면 편집자가 되어 자부심을 갖고 열심히 일하겠다는 각오와 기쁨으로 충만한 <편집 여담>을 얘기하는 마키노 신이치도 있다. 짧은 편지글 형식의 글인데 그 일부를 소개해 보겠다.

 



7월에 입사하여 잡지 소녀』『소년을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제 마음은 지금 기쁨으로 충만합니다. 그건 독자라는 많은 친구를 얻었기 때문입니다. 정원에 핀 꽃들이 미소 짓는 것처럼 보일 만큼 싱그러운 마음으로 재미있게 일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일이 그렇게 술술 풀릴 리가 없지요. (중략) 다만 언젠가는 노력의 결과가 진주가 되어 여러분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날이 꼭 오리라고 굳게 믿을 따름입니다. 미래는 깁니다. 편집자로 활동하며 예술을 쌓아 올릴 작정입니다.’(p251, <입사의 변> )

 



정원에 핀 꽃들이 미소 짓는 것처럼여겨질 만큼 자신이 하는 일을 사랑하고 결국엔 예술로 승화시키겠다는 각오에 흐뭇한 미소가 떠오른다. 결국, 글쓰기는 좋아서 하든 해야 해서 하든 작가는 작품으로 만들어 낸다. 독자는 그것을 즐길 뿐이다. 작품 너머의 내밀한 작가들을 엿볼 수 있는 것이 이 책의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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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2-12-02 12: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모나리자님도 작가의 대열에 합류하셔서 이 책이 더 의미가 있으신거 같아요 ^^

좋아하는 글쓰기도 직업이 되면 힘들거같아요 ㅋ

모나리자 2022-12-04 17:44   좋아요 3 | URL
네, 지금보다는 더 열악한 시절에 작가들의 분투하는 모습에 더욱 열정을 느낄 수 있었지요. 언제나 작가들과 편집자의 관계, 분위기는 흥미로운 것 같아요.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게 되면 어떤 일이든 부담감이 있는 건 사실인가봐요.
그래서 즐기는 자세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요즘 많이 춥지요. 건강에 유의하시고 따뜻한 12월 보내세요. 새파랑님.^^

2023-01-06 16: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1-06 23: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니데이 2023-01-06 23: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따뜻한 주말 보내세요.^^

모나리자 2023-01-06 23:57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서니데이님.^^
평안하고 따뜻한 주말 보내세요.^^

thkang1001 2023-01-07 11: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모나리자님! 이달의 당선작 선정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항상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감사합니다!

모나리자 2023-01-10 07:28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thkang1001님.^^
새해도 하루하루가 금세 지나가네요.
올해도 건강하시고 좋은 일 가득하시길 바랄게요. 감사합니다.^^

thkang1001 2023-01-10 10:3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모나리자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