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서광 이야기 범우문고 192
귀스타브 플로베르 지음, 이민정 옮김 / 범우사 / 2004년 2월
평점 :
품절


이 남자는 헌책방 이외에는 도무지 관심이 없어서

다른 사람과는 거의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그는 말없는 사람이고 꿈꾸는 사람이며 음울한 사람이고 슬픔에 잠겨 있는 사람이었다.

 

 

1. 줄거리 。。。。。。。

 

     세 편의 단편소설이 실려 있는 책이다.

     첫 번째 ‘시지스몬의 유산’은 라이벌 사이였던 두 명의 애서광 중 한 명이 죽자, 그 유산인 책들을 손에 넣고자 하는 나머지 한 사람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유상상속인인 라이벌의 사촌여동생과 결혼을 제의할 생각을 하는 엽기적인 발상이 흥미롭다.

     두 번째 ‘애서광 이야기’는 이 책의 메인 저자로 이름을 올린 구스타브 플로베르의 작품으로, 이 책의 타이틀이기도 하다. 세상에 단 한 권밖에 없다는 책을 갖기 위해 불이 난 집에서 그 책을 훔쳐 나온 주인공은 결국 방화혐의로 법정에 서게 된다. 하지만 그의 변호사는 똑같은 책이 더 있다며 그 책이 그의 집에 있다는 사실이 곧 그가 범인이라는 증거는 아니라고 말하는데...

     세 번째 ‘보이지 않는 수집품’은 한 골동품 수집상이 오래전부터 거래해왔던 한 노인의 집에 찾아갔다가 겪게 되는 꽤나 감동적인 이야기다.





 

2. 감상평 。。。。。。。

 

     이 짧은 단편소설집에는 광적인 애착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풍자적으로 그려지고 있다. 그들의 일생에서 책보다 귀중한 것은 없었다. 책을 위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에게 청혼을 하고, 죽음을 무릅쓰고 불이 난 집 안으로 들어가는가 하면, 엄청난 돈도 아깝지 않게 써 버린다.

     무엇인가에 미칠 정도로 빠진다는 것은 무서운 일이다. 종종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그와 같은 행동은 결국 집착으로 드러나고 마는 일이 허다하기 때문이다. 책에 대한 사랑도 예외일 수는 없다. 자신이 가진 전 재산을 팔아서라도 한 권밖에 없는 책을 사고자 애쓰는 그들의 모습은 보통 사람들에게는 사뭇 무섭게도 비춰진다.(나도 나름대로 책을 좋아한다는 사람이지만 여기 나온 인물들은 좀 심하다.,ㅋㅋ)

 

     책마저 돈으로 환치되는 모습은 자본주의의 현실을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한 느낌을 준다. 책이 지식과 감동을 전해주는 도구이기 때문에 귀중하게 여기는 사람은 교양인이다. 하지만 그것이 축재의 수단으로 사용되기 때문에 귀중하게 여기는 사람이라면 그는 천박한 장사치일 뿐이다. 비자금을 숨기기 위해 수 억짜리 미술품들을 사 모았다던 모 대그룹의 회장님처럼 말이다.(이게 독서광과 애서광의 차이라고 할까?)

     책이 귀중한 것은 그 안에 담겨 있는 내용 때문이지 책 자체 때문은 아니다. 책은 읽힐 때 귀해지는 것이다. 책 자체를 골동품의 하나로 여기고, 비싼 책들로 가득 찬 책장이 곧 자신의 지적 세계의 부유함이라고 착각을 하는 사람들이야 아예 읽지 않으니 좋은지 나쁜지도 모르겠지만. 물론 딱 하나의 예외라면 책 자체에 어떤 추억이 담겨 있을 경우 정도?(소중한 사람에게 선물을 받았다던가..)

 

     이 책에 실려 있는 세 개의 작품의 작가들 모두 그다지 화려한 수식어들을 사용하지 않으면서(덕분에 쓸데없이 이야기가 길어지지 않았다), 주제를 향해 빠른 속도로 접근해 가는 글솜씨를 보여준다.(글이 짧다는 건 큰 미덕이다. 요새는 그래야 읽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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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로부터 무시를 당한다는 것은,

 그 '누군가'의 의식 속에서

나의 존재가 제거되었다는 뜻이다.



무시는 인격적인 살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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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미치게 하는 방법이라..

제목이 좀 선정적(?)이다.

저으기 걱정을 했지만,

몇 사람에게 물어본 결과 괜찮다는 이야기가 많아서,

용기를 얻어 글을 쓰기로 해 본다. ^^;






남극탐험을 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큰 위협이 되는 것들이 세 가지가 있다.

하나는 블리자드(귀에 익숙한 사람들도 있을 듯. ㅋ)라고 하는 것으로,

맹렬한 눈보라를 말한다.

눈보라니 만큼 당연히 차가운 바람.

속도도 상당히 빨라서 초속 14m를 가볍게 돌파한다.

일단 블리자드가 심해지기 시작하면, 앞도 보이지 않기 때문에

탐험을 중지하고 서둘러 텐트를 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나마 텐트 안에서 편히 쉴 수도 없다.

자칫 잘못하면 텐트가 순식간에 눈으로 덮혀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눈 자체의 무게도 엄청나다.

계속 눈을 치워내지 않으면 텐트가 무너지는 것도 잠시.






두 번째로 위험한 것은 크랙, 혹은 크레바스이다.

이것은 본래 같은 현상인데,

크랙보다 크레바스가 훨씬 규모가 큰 것을 가리킨다.

크랙은, 한 마디로 얼음의 균열이다.

약 30m 정도 까지의 균열을 크랙이라고 부르고,

그 이상의 것을 크레바스라고 하는데,

그런 크랙, 혹은 크레바스만 있다면 돌아가면 되지만,

대개는 그 위에 살짝 눈이 덮혀있다는 것이 문제다.

탐험을 하던 사람이 그 위를 걸어서 넘어가려고 하면

심각한 위험에 빠지게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

극지방에서는 물에 젖는 것 만큼 위험한 것이 없다.

영하 10도, 20도는 가볍게 넘어버리는 극지방이니만큼,

물에 젖는 다는 것은 몸이 얼어서 생명에 지장까지도 줄 수 있는 심각한 사태이다.

혹시라도 물에 젖게 되면, 바로 새 옷으로 갈아입어야만 한다.






세 번째로 위험한 것은 화이트아웃(Whiteout)이라고 불리는 현상이다.

남극은 온통 흰 색으로만 가득차 있기 때문에,

어느 순간 그림자나 물체간의 대비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서

거리감각을 잃어버리게 되는 경우가 발생한다.

바로 이 현상이 화이트아웃이다.








일단 이 화이트아웃이 발생하게 되면,

전후좌우, 상하가 온통 구별이 되지 않는다.

단지 중력에 의해 내 발이 붙어 있는 곳이 아래일 가능성이 높고,

내 눈이 바라보고 있는 쪽이 앞 쪽일 것이라는 짐작만 가능할 뿐이다.

인간의 가장 기초적인 감각 중 하나인 시각을 믿을 수 없게 되고,

내가 보는 것이 올바로 보는 것인가 하는 착각에 빠지게 된다.

이 현상은 사람 뿐만 아니라 새들도 겪는 것으로,

화이트아웃이 발생할 경우에는 많은 새들이 얼음벽에 부딛혀 부상을 입기도 한다.





전후좌우를 구별할 수 없는 상태,

내가 보는 것조차 신뢰할 수 없는 상태,

바로 여기서 사람은 서서히 미쳐가게 된다.

전문가들이 아니라면 이런 화이트아웃을 직접 겪을 경우

매우 심한 공황상태에 빠지게 될 가능성이 높다.

(물론 전문가들도 아니면서 남극탐험을 나설 각오를 하는 것은, 그 자체로도 정신에 문제가 있을지도.. ㅡㅡ;)






수형자들에게 있어서 가장 무서운 형벌은

소위 '먹방'이라고 불리는 곳에 들어가는 것이다.

어차피 똑같이 감옥인데 그것이 무슨 차이가 있겠느냐고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죄를 저질렀다고 가둬두는 곳이 교도소라면,

그 안에서 또 잘못을 저질렀다고 가두는 곳이 먹방이다.

감옥 속의 감옥, 그 곳이 바로 먹방인 것이다.






왜 먹방이라는 곳이 그토록 무서울까.

이미 감옥에 갇혀서 살고 있는 사람에게,

자리 하나를 옮긴다고 해서 뭐가 그렇게 심각한 위협이 될까?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선 먹방이라는 곳이 어떤 곳인지를 알아야 한다.






먹방은 우선 외부와의 일체의 연결이 단절되는 곳이다.

다른 재소자들이 있는 곳과도 완전히 분리가 되어서,

다른 사람의 목소리 조차 듣기 어려운 곳이 바로 먹방이다.

보통 감옥 내에서 '사고'를 치는 사람들이 들어가는 곳으로,

편지를 주고받는 것도, 면회를 하는 것도 금지되어 있다.

밖과 연결시켜주는 것은 고작 가로, 세로가 25 X 20 cm 정도 되는 작은 식구통(식사를 넣어주는 통) 밖에 없다.

그 곳에서 하루종일을 몸조차 쭉 펼수 없는 채로 보내는 것이다.






몸이 불편한 것은 둘째다.

가장 무서운 것은 혼자 고립되어 있다는 느낌이다.

자신의 것 이외의 어떠한 소리도 들을 수 없다.

보이는 것은 온통 깜깜한 어두움 뿐이다.

교도소가 자유에 대한 형벌이라면, 먹방은 감각에 대한 형벌이다.






자신의 감각기관이 별 쓸모가 없어졌다는 것을 알았을 때,

인간은 서서히 감각기관을 사용하기를 포기해버린다.

더불어 외부의 자극(자극이라는 것이 없으니..)에도 반응을 할 수 없게 된다.

그와는 반대급부로 한없이 내부로 파고들어가게 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어지간히 정신력이 강한 사람이 아니라면,

얼마가지 못해 매우 무력한 상태로 변해버린다.

심리상태는 매우 불안정하게 변하고,

극도의 공포감에 휩싸이는 일도 있다.

결국 자신을 그 곳에 집어 넣은 사람들의 지시에 고분고분히 따르게 된다.
(물론, 예외도 있다..)






요컨대,

인간의 감각을 무력화 될 때,

인간은 한없이 약해진다.

정신력도 서서히 소진되어 버리고,

말 그대로 서서히 미쳐간다.






정신병원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하얀 집'이다.

영화나 책 등에서 드러나는 정신병원의 이미지는,

온통 하얀색으로 도배가 되어 있는 방이다.

실제로도 크게 다를 바가 없는 것 같다.






왜 흰 색으로 만들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환자의 정서를 안정시키기 위한 색깔이라는 설명이 널리 퍼져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온통 흰 색으로 도배를 한 곳에 사람이 있으면, 정신이 안정될까?

마치 앞에서 설명한 화이트아웃을 접하는 기분은 아닐까?

그것도 잠시만 참으면 사라질 것이라는 기대조차 할 수 없는 곳이다.

환자의 감각 중 시각은 이미 그 기능을 필요로 하지 않게 된다.






그 것 뿐인가.

환자는 억압복을 입는다.

억압복은 소매가 아주 긴 옷으로, 그 긴 소매를 몸 뒤로 돌려서 단단히 고정시키는 곳이다.

억압복을 입는 순간 환자는 두 팔을 사용할 수 없게 되고,

그것은 두 손으로 느낄 수 있는,

촉각을 상실하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부는 혀를 깨물어 자해를 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작은 공이 붙어 있는 마스크를 씌우기까지 한다.

구속복을 입는 것 만으로도 사람을 미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정신병원에서는 환자의 안정을 돕는다는 이유로,

일체의 소음을 없앤다.

청각의 상실이다.


(물론, 위에서 말한 것은 중증환자들에게 사용되는 방법이다. 모든 정신질환자들이 위와 같은 상태에 있는 것은 아니며, 반드시 감금상태가 되는 것도 아니다. 자칫 정신병원 자 체에 대한 오해를 할 소지가 있어서 밝힌다. 정신질환은 뇌에 발생된 병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옳으며, 이것은 위나 근육 등에 생긴 병과 마찬가지로 취급 되어야 한다. 따라서 약물치료와 함께 특정한 심리적 치료를 병행하면서 치료작업을 하는 것이 보통이다.)




정신병원이 얼마나 큰 효과를 가질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모든 감각을 자극하지 않으려고만 한다면,

오히려 역효과가 나타날 가능성이 더 높다.

아무런 자극을 받지 않는 것 만으로도,

인간은 미쳐버릴 수 있다.






인간이 아무런 자극을 받지 않는 상태가 오래 지속된다면,

본능적으로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하얀 방 안에 아무런 소리도 없이 혼자 있다고 생각해보라.

또는 쥐죽은 듯 적막하고 깜깜한 빈 강의실에 혼자 남아 있다고 상상해 보라.





공포 영화에서 가장 무섭고 긴장되는 순간은,

귀신이나 살인마가 스크린에 비췰 때가 아니라

그들이 나타나기 직전의 적막함이 스크린을 가득 채울 때이다.






아무것도 느낄 수 없다는 그것 하나만으로도 인간은 심각한 정신적 혼란에 빠진다.






그렇다면,

그 반대진술도 가능하다.

인간이 미치지 않으려면, 외부의 자극을 받아야 한다는 말 말이다.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등의 오감을 통한 자극들은,

때로 우리 인간들을 고통스럽게 한다.

가시에 찔리고, 시끄러운 소음에 인상을 찌뿌리고,

짜고 쓴 맛, 신 맛을 보기도 하고, 온갖 벌레에 물리기도 한다.

정신적인 자극들도 때로 인간들을 힘들게 만든다.

갑자기 생긴 수많은 일들, 그로 인한 스트레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소중한 대상의 상실 등은

인간을 자살로까지 모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그런지,

오늘날 사람들은 누구나 평안, 안식을 갈구한다.

힘든일 하나 없는 그런 삶,

자신을 어렵게 만드는 사람 하나 없는 삶,

내가 원하는대로 모두 술술 풀려가는 그런 삶을 원하는 것이다.






과연 그런 평안이 우리를 만족시킬 수 있을까?

우리를 힘들게 만드는 어떠한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때,

우리의 삶은 행복해질까?







어쩌면, 우리를 힘들고 어렵게 만드는 그 수많은 일들은,

우리를 미치지 않도록 만드는 고마운 이유들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현재의 어려움에 대해 너무 비관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아직도 당신의 사고력이 정상적으로 기능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찢기고, 긁히고, 찔리면서 고통을 받고 있다는 것은

당신의 촉감이 아직은 정상이라는 반증이다.

시끄러운 소리가 귀를 막게 만든다면,

아직 당신의 귀가 붙어있고, 제대로 기능을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리타분한 말 같지만,

당신의 상황은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다!!

우선 이 글을 지금까지 읽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당신의 시각과 사고력은 어느정도 기능을 다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당신이 꿈꾸는 절대 평화로운 유토피아는 이 땅에 존재하지 않는다.

끊임없이 사람들과 부딛히고, 각종 위험이 우리를 위협한다.

바로 그런 곳이 이 세상이다.

또, 만약 그러한 외부적인 자극이 전혀 없다면

당신은 정말 미쳐버리고 말지도 모른다.





현재 당신을 괴롭히는 모든 종류의 어려움들에 대해 감사하라.

하나님께서 당신이 미쳐버리지 않도록,

끊임없이 자극하고 계신다는 것을 기억하라고 말한다면,

좀 지나친 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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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론이 뭐야? - 개정판
사토 가츠히코 지음, 김선규 감수 / 비타민북 / 2006년 8월
평점 :
절판


어쩐지 대충대충이며 애매한 것 투성이이고,

 우리들이 믿어왔던 ‘질서정연한 자연’과는 정반대입니다.

그것이 자연의 진정한 모습이라고 양자론을 구축한 학자들은 생각했습니다.

양자론은 물질이나 자연이 단순히 하나의 상태로 정해지지 않고 굉장히 애매한 것을,

그리고 애매함이야말로 자연의 본질인 것을 우리들에게 나타내는 것입니다.

 

 

1. 줄거리 。。。。。。。

 

     제목대로 양자론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쓴 책이다. 저자는 빛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알아내기 위한 인류의 시도(1장)가 어떻게 양자에까지 이르렀는지, 역사적 순서에 따라 차분하게 설명해주고 있다.(2-3장) 이어서 양자론에 담긴 함의들(4장)을 설명한 뒤, 그에 대한 반대 주장들과 반대에 대한 한 가지 대답인 다 세계 이론에 대해 서술한다.(5장) 마지막 장(6장)에서는 양자론이 현대의 기술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 이어진다.


  
     ‘과학 청소년을 위한 알기 쉬운’이라는 첨가구가 덧붙여진 물리학 이론서이다. 대충 고등학교 수준에 맞춘 내용인가 싶어서 빼어 들었는데(고등학교까지는 다들 비슷한 걸 배우니까), 다행히 기대했던 정도다. 아무래도 전공과 꽤나 거리가 있는 분야이기에 처음 시작으로는 이정도가 알맞지 않을까 싶어서 말이다. 그럼 왜 전공과 상관도 없는 책을 읽으려 하느냐고? 뭐.. 교양으로? ^^

 

2. 감상평 。。。。。。。

 

 

     청소년들을 주 타깃으로 한 책이라 그런지 필요 이상으로 어려운 수식들은 많지 않았다.(그래도 어려운 식들은 꽤나 보였다..;;) 또, 그다지 세련되지는 않았지만 본문의 이해를 돕는 적절한 일러스트들이 있어 책장을 넘기는 데 큰 힘이 됐다.

 

     양자론이란 꽤나 흥미로운 분야다. 파동이면서 동시에 입자이기도 한 양자의 성질은 고전물리학의 엄격성을 단번에 무너뜨리고 있으니 말이다. 그 파괴력도 파괴력이지만, 정작 양자를 연구하는 학자들조차 양자가 가지고 있는 그 모순적인 두 가지 성질을 어떻게 조화 시킬 수 있을지 어려워하고 있는 모습을 보는 것도 흥미롭다.(결국 관찰되는 것만 가지고 말하자, 나머지는 잘 모르겠다고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넘어가니..)
 

     파동인 동시에 입자인 존재 → 하나인 동시에 셋인 존재, 내재적인 동시에 초월적인 존재, 그 안에 내가 있고 내 안에 그가 있는 관계.. 퍽이나 재미있는 기독교적 적용이 아닐까? 물론 모든 물리학의 궁극적 목표인 ‘대통일이론’이 유물론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그에 맞추어 추구되고 있다는 점은 조심스럽게 접근하도록 만든다.

 

     책의 전반에 걸쳐 드러나는 오타의 문제는 심각할 정도다. 종종 중요한 개념에서조차 O, X가 바뀌는 식이니.(그래서 이 책의 개정판이 그토록 빨리 나왔나보다.) 또, 우리나라 물리학에서 사용되는 용어들에 일본식 한자 표현이 정말 많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물리학에 관심이 있는 중고등학생들에게 좋을 것 같은 책이다. 나처럼 교양으로 대충이라도 훑어보고 싶은 사람에게도 그렇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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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바쁜 하루였다.

근데 너무 바빴는지 사고를 쳐버렸다.

 

동네 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한 권 잃어버렸다... ㅜㅜ

도서관 회원증 뒷면을 보니까

분실 시에는 똑같은 책을 사다줘야 한다고....;;;

 

추운데 세 시간을 돌아다녔더니 머리도 띵하고...

 

이래저래 머리 아픈 날이다.

 

난 누굴 닮아서 이렇게 자주 깜빡깜빡 하는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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