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개의 경우,

인간은 다른 사람에게 비춰질 자신의 모습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어느 누가 우스운 꼴, 추한 꼴의 자신을 보여주고 싶겠는가.

단지 외모 뿐만이 아니다.

다른 사람에게 비춰질 그 사람의 성격일 수도 있고,

다른 사람에게 비춰질 그 사람의 재산이 될 수도 있다.

아무튼 어떤 경우이든 간에,

인간은 다른 사람에게 멋있는 모습을 보여주기를 원한다.







당연히 자신의 추한 모습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려고 하는 사람은 없다.

언제나 자신의 모습을 살핀다.

사람들이 하루종일 거울을 보는 횟수를 살펴보라.

그러면, 인간들이 얼마나 다른사람에게 비춰질 자신의 모습에

관심이 많은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우리 학교 근처에 있는 지하철 역에는 큰 전신 거울이 있다.

언젠가 무심코 거울 앞을 지나가는 사람들을 본 적이 있는데, 

속으로 한 참을 웃었던 기억이 난다.

적어도 80% 이상의 사람들이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거울에 자신의 얼굴이나 옷 차림을 비춰보았던 것이다. ^^








사실, 거울을 보는 행위 자체가 

자신에게 직접적인 유익을 주는 것은 별로 없다.

어떤 사람이 단지 자신에게 보이기 위해서 멋진 외향을 꾸미겠는가.





그리스 신화에는 나르시스라는 인물이 나온다.

너무나도 아름다웠던 남자인데,

어느날 자신의 모습이 물에 비친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세상에 이렇게 멋있는 사람이 살고 있는가 하고 말이다.

그 후로는 식음을 전폐하고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하루종일 바라보다가,

마침내는 좀 더 그 모습을 가까이 보려고 하다가 물에 빠져서 죽었다고 한다.

자아도취를 의미하는 '나르시즘'이라는 단어는 바로 이 일화에서 나온 것이다.








혹시라도 이 나르시스와 같은 사람이 있다면 예외가 되겠지만,

사람들이 자신의 모습을 거울에 비춰보는 이유는

다른 이들에게 비춰질 자신의 모습을 가꾸기 위해서라고 해도

크게 사실과 어긋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인간은 추해지는 것일까?

그토록 다른 사람에게 비춰질 자신의 모습에 신경을 쓰는 존재가

왜 추한 모습을 보이게 되는 것일까?

경험상, 그리고 역사상의 수많은 인물들에 관해 살펴보건대,

분명히 인간이 추해질 때가 있다.








왜?

내가 보기에 그 이유는 간단하다.

눈이 멀었기 때문이다.

어떤 이유에서든지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는 눈이 가려졌을 때,

인간은 추해지게 된다.

(이 말은 시각장애인들을 비하하고자 하는 목적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아리라 믿는다.)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없게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자신이 얼마나 추한 모습으로 일그러지고 있는지를

미처 깨닫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당연히 자신의 모습을 개선하고자 하는 의지를 갖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눈이 가려진 사람은 자신의 모습을 일깨워주는

다른 사람의 경고조차 알아채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 수록 그 정도는 점점 심해진다.






그렇다면 인간의 눈을 가리는 것들에는 무엇이 있을까?

이 부분에 관해서는 사람마다 다양한 요인들을 들고 나올 수 있다.







사랑을 받고자 하는 한 사람을 생각해 보자.

상대방도 그 사람을 사랑한다면 큰 문제가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상대방이 그 사람을 사랑하지 않을 때,

혹은 더 많은 사랑을 받고자 하는 욕구가 생기게 되었을 때,

그 정도가 심해져감에 따라 그 사람의 눈도 서서히 가려져 간다.

그 때부터는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심히 딱한 모습으로 변해가는 것이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일부는 스토커가 되어서 상대방을 괴롭히기까지 한다.








이와는 반대의 경우도 있다.

어떤 사람을 너무도 미워할 경우,

그 사람을 공격하기 위한 생각이 앞선 나머지 눈이 멀어버리는 경우가 있다.

이럴 경우, 제 3자가 보기에는 너무도 뻔하게 얽어매려는 시도임을 알아챌 수 있지만,

정작 자신은 모를 수가 있다.

자기 자신을 볼 수 있는 눈이 가려져버리기 때문이다.

그 밖에 자신의 명예나 지위, 위엄을 유지하기 위한 열심도 눈을 가릴 수 있으며,

돈이나 보상받고자 하는 욕심들도 우리의 귀를 막을 수 있다.






이런 사람은 대개 막무가내로 행동하는 경향이 있으며,

자신을 제지하려는 어떠한 시도도,

적이라고 단정시켜버리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렇게 적으로 선포된 존재는, 복수의 표적이 되어버린다.








추해짐이 단지 그 사람 하나만의 문제라면

그냥 그렇게 넘어가면 된다.

하지만 대개는 그렇게 쉬운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함께 하는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 수가 있는 것이다.

단지 그 사람 혼자만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어떤 자동차 운전자가 눈을 가린채로 운전을 한다고 생각해 보라.

비단 그 사람 자신 뿐만 아니라

같은 도로에서 함께 운전하고 있는 다른 운전자들에게도

심각한 위협이 되는 것이다.

무엇인가 때문에 눈이 가리워진 사람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렇게 눈이 먼 사람들은 함께 살아가는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줄 수 있고,

공동체 전체에 악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다분하다.








만약 당신이 이런 사람을 만난다면,

조심해서 운전할 수 밖에 없다고 조언해 주고 싶을 뿐이다.

눈을 가리고 운전하는 사람을 앞에서 막아선다거나,

이리 저리로 운전하라고 옆에서 명령하는 것은

더 큰 사고를 유발할 뿐이다.

가장 최선의 방법은 그 사람의 눈을 가린 것을 제거하는 것이지만,

그리 쉽지 않은 방법이기 때문이다.

일단 차가 멈추기라도 해야 눈을 가린 것에 손을 대지 않겠는가.





차선의 방법으로, 방어운전을 하는 수밖에 없다.

일단은 직접적인 접촉을 피하면서, 피해가는 것이 좋다.

물론 그 사람이 지나치게 이탈된 코스로 달려간다면,

경적을 울려서 한 번쯤 제지하는 것도 괜찮다.

하지만 당장 손을 뻗쳐서 운전대를 잡고 세우려고는 지 말기 바란다.

어쩌면 당신을 사고를 유발하려고 하는 적대자의 손으로

착각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또 한 가지,

당신 자신이 그렇게 눈이 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당신마저 눈이 먼다면,

이젠 정말 큰 일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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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례문이 불에 타 사라졌다.

몇 백년이나 된 문화재가 그렇게 쉽게 파괴되는 걸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건 당연.

 



하지만 최근 일련의 모습들은 뜨끔한 마음이 들게 만든다.

'민족의 자존심이 무너졌다'고 떠들어 대고,

그 앞에서는 연일 제삿상이 차려져 수 많은 사람이 절을 한다.

삼보일배를 하며 주위를 도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통곡을 하며 몸부림을 치는 사람들도 보인다.

불을 지른 사람은 반역자 취급을 받고,

덩달아 노숙자들까지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다.

오늘도 하루종일 사람들이 꽃을 가져와 그 앞에 두고 있다.

마치 사람이 죽은 것처럼.

 


 

무생물의 인격화.

그리고 사실 그 인격화의 대상은 국가, 혹은 국가정신.

참 무서운 전체주의, 국가주의의 모습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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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를 본 칭기즈칸이 말했다.
 

"고양이를 어디에다 쓰지? 털도 못 쓰고, 젖도 못짜는데 말이야."

 

 

어쩌면 요즘 사람들은


단지 화사함을 위해
 

지나치게 많은 고양이들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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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의 내용을 직접적으로 가리키는 사진은 아닙니다..;;


 

 배구 경기 중계를 보다가ㅡ

'비디오 판정'이라는 게 나왔다.

 

 

 

그런데 정말 놀랍게도!!!

비디오 판정을 담당하는 사람들은 나이가 퍽이나 들어보이는게 아닌가.

사실 비디오 판정이란 게

심판이 눈으로 정확히 보지 못한 것을

영상을 이용해 정확히 판단하려고 만든 것.

그렇다면 얼마나 영상을 정확히 분석할 수 있느냐가 관건일 것이다.

 

 

 

그러면 비디오 전문가나,

적어도 눈이 좋은 젊은이들에게 맡기는 게 맞지 않을까?

물론 오랜 배구계 생활을 통해 '노련함'이 쌓일수도 있다고 하지만,

어차피 그 '노련함'으로 판결이 어려운 사안을 커버하기 위해 만든 제도라면

아예 더욱 철저하게 하는 게 낫다.

 

 

 

선수들이 항의를 하니까 기분 나쁘다는 표정으로 노려보던

비디오 판정관의 얼굴이 잊혀지지 않는다.

아니나 다를까?

당연히(?) 영상과는 반대로 항의하는 선수들에게 불리한 판정이 나왔다.

 

 

 

뻔히 보이는 것조차 제대로 판단을 내리지 못하는 건ㅡ

비디오 판정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눈이 나쁘던지,

그것도 아니면

일에서까지 자기 기분을 앞세울 정도로 고집만 부리는

자기통제가 안 되는 사람이라는 걸 보여주는 것일 터.

 

 

 

연장자 대우도 좋고,

경력자 예우도 좋은데,

꼭 이런 식으로 한 자리씩 안겨주는 게 능사일까?

그 노련함과 완숙함, 경력과 공로를

좀 더 멋지게 사용할 수는 없는 걸까.

 

 

 

어디 스포츠계 뿐일까.

우리 사회 전반에는 여전히 단지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장(長) 자리를 하나씩 차지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은가.

물론 나이가 많다는 건 충분히 공경을 받아야 하는 이유가 되지만,

'단지'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한 자리씩 가져가는 건

조직을 경직시키고,

원칙과 질서를 무너뜨리기도 하며,

종종 정말 일하려고 하는 사람의 의욕을 꺾을 뿐이다.

 

 

 

논공행상 식의 자리 나눠주기가 아니라

연장자 예우 격의 처분이 아니라

정말 일할 줄 아는 사람이,

그리고 그 조직을 위해 헌신할 준비가 될 사람이,

조금 더 바란다면,

다른 사람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일 하는 자리에 앉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럼 참 멋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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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로부터 무시를 당한다는 것은,

 그 '누군가'의 의식 속에서

나의 존재가 제거되었다는 뜻이다.



무시는 인격적인 살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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