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의 밤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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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도치 않게도 <7년의 밤>을 읽으며 떠오른 건 넬레 노이하우스의 <백설공주에게 죽음을>이란 책이었다. <7년의 밤> 속 서원이, 7년전 그날 밤의 일로, 믿기지 않은 아버지가 살인자인 이유로 어딘가에도 정착하지 못하고, 누군가를 믿지도 못하고 절벽위에서 아슬아슬하게 살아가고 있었다면, <백설공주에게 죽음을>에서는 10년전밤 자신의 기억엔 남아있지 않은 일로 토비아스가 형을 사는 동안 마을사람들의 분노에 의해 토비아스의 가족들이 고통을 받고, 출소를 한 이후에도 끊임없이 살인자와 살인자의 가족이라는 이유로 괴롭힘을 당하며 삶 아닌 삶을 간신히 이어가고 있었다. 서원과 토비아스는 "살인자의 아들"과 "살인자"라는 명백한 신분차이는 있지만, 그들이 겪는 고통은 별다를 게 없었다. 

아버지의 잘못임에도, 아니 자신은 여전히 믿지 못하는 아버지의 범죄행위로, 친척들에게 버림을 받고, 겨우 자신의 지켜주는 아저씨를 만나 근근히 삶을 지탱해가는 것을 악의적인 누군가의 횡포로 떠돌수밖에 없는 서원이나 자신이 기억하지도 못하는 일에 대해 모든 증거가 자신에게 불리하다는 이유로 그 죄값을 치뤘음에도 여전히 차가운 시선의 마을사람들에게 냉대를 받으며, 폭행까지 당하게 되는 토비아스의 고통은 말로 상상할 수 없을 정도였을 것이다. 다만, 책 속 그들의 모습을 보며 안타까워하며,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고통받는 현실에 분개하다가도 나 역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살인자의 가족이나 살인자가 내 주변에서 산다고 한다면 그들에게 호의적인 시선을 보내진 못할 것 같기에 서원과 토비아스가 정착하지 못하도록 만든 사람들을 이해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조용히 살려는 그들을 자신의 손아귀에 올려둔 채 가만히 두지 않는 그 누군가에게 더욱 분개하며, 누가 그들을 뒤흔들고 있는지, 그 이유가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 <7년의 밤>도, <백설공주에게 죽음을>도 모두 쉬지 않고 읽게 되었던 것 같다. 특히, 그저 살인자의 아들이었던 서원을 가만두지 않으며, 12살의 어린 서원의 마음속에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사형집행자라는 지위를 안겨준 그 인간에 대해 분노하며, 500여페이지에 달하는 이야기를 순식간에 읽어내려갔다. 

읽는 내내 서원이 한없이 불쌍해진 건, 아마도 서원의 가족인 아버지 "최현수"라는 인간과 어머니인 "은주"의 끝없는 갈등과 나약한 모습때문이었다. 돈에 목숨을 거는 엄마의 모습이, 그녀의 과거에 의해 정당화될 수도 있었겠지만 주변사람들을 질리게 만드는 집착의 모습에 치가 떨렸고, 그런 아내의 집착과 잔소리에도 술을 마시고, 그에 더해 살인행위와도 같은 음주운전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남편의 모습에 어이가 없을 뿐이었다. 그러다 서원을 7년 동안의 캄캄한 밤속에 가두게된 일이 일어나고야 말았다. 자신은 한 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운전대를 잡았겠지만 그로 인해 한 아이가 죽었고, 그 일이 모든 일의 계기가 되고야 말았다. 

어찌보면 살인자인 "최현수"는 아들 최서원에게는 한없이 인자하고, 한없는 사랑을 주는 그런 사람일지는 몰라도 지독히도 자신을 단속하지 못하는, 수수밭속 우물에서 벗어나지 못한 영혼이었다. 만약 아내인 은주가 날카롭게 맞서는게 아닌, 좀더 이해를 해주었더라면, 아니 자신 스스로가 어두운 우물속에서 벗어나도록 노력을 했더라면, 7년전 밤 그날의 일이 달라지지는 않았을까? 그나마도 이런 생각이 든건 이야기의 끝에서 사건의 진실에 대해 알게되어서였다. 자신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위해, 마지막 판세를 읽어내려 노력하며 자신의 아들을 살리려 노력한 아버지의 마음에 나도 모르는 사이, 나약하게만 보였던 최현수를 그나마도 이해하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반면, 이 모든 이야기의 중심이고, 7년의 밤을 만든 원인자인 세령의 아버지인 "오영제"라는 인간은 어떻게 봐도 변할 것 같지 않은 그런 인간이기에 만약에라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최현수가 "사랑하는 아들"을 위했다면, 오영제는 "내 것"을 위해 싸우며, 자신의 소유물인 자신의 딸을 교정이라는 이름으로 끔찍하게 폭행하며, 돈으로 무마하고, 자신의 것인 아내를 어떻게 괴롭힐지를 끊임없이 생각하던 구제불능의 인간이었기에, 모든 미움이 결국 그에게만 쏠리게 된 것도 같다.. 만약 최현수가 사건이 일어나던 날 밤 술을 마시지 않았더라면, 아니 그의 마음 속에 용팔이가 살지 않았더라면, 아니 은주가 자신의 남편을 그 곳에 보내지 않았더라면, 아니 아저씨 승환이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섰더라면, 서원은 7년간의 어두움을 겪지 않았을텐데..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갔지만 그래도 지금이나마 그 어둠속에서 서서히 벗어나기 시작한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되는 것일까? 

읽는 내내 책을 손에서 내려놓을 수도 없었지만, 스릴감 넘치고 뒤끝없는 개운함을 남기는 비현실적인 단순한 살인자찾기 식의 책이 아닌 살인자를 이해하고, 그 살인자의 가족의 삶에 안쓰러움을 느끼게 만들면서도 인간의 악함을 느끼게만드는 현실적인 느낌의 비현실적인 이야기였기에 여전히 찝찝한 느낌을 남겨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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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 중 누군가 그녀를 죽였다 현대문학 가가형사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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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둘 중 누군가 그녀를 죽였다>를 읽었을 때에 느낀 느낌은 "정말 통속적인 이야기, 별다른 매력없는 이야기, 흥미진진하지 못한 이야기, 매력적이지 못한 가가형사"였다. 그래서인지 다른 책들에 비해 인상이 옅기도 했고, 다시 읽으면서도 이런 책을 읽었었나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읽고 나서의 느낌은 이전과는 정반대였다. 동생의 죽음을 자살이 아닌 타살이라 믿으면서도, 다른 경찰들에겐 자살이라 믿게만들고 자신이 직접 범인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소노코의 오빠 이즈미 야스마사는 여전히 멋있었고, 그의 행적을 순간순간 짐작해내는 가가형사의 날카로움에 혀를 내두를 수 밖에 없었다.  

예전에 이 책을 읽을 때쯤엔 히가시노 게이고가 사회적 이슈를 다루었던 책들을 한참 읽다가 그와는 다르게"한 여자와 한 남자가 사랑에 빠지고, 사랑에 빠진 여자는 자신의 친한 친구에게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를 보여주었는데.. 그게 불행의 시작이었고, 결국 자신의 친구와 애인이 사랑에 빠져버렸다는 "친구의 친구를 사랑했네~"식의 통속적 주제"를 다룬 것에 불평했던 것과는 달리 오랜만에 읽으면서 느낀 점은 이렇게 뻔한 이야기를 마지막장을 읽을 때까지 초조하게 만드는 히가시노 게이고야 말로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사람이 아닌 운동기계였지만 결국은 여자였고, 엄마였던 한 여성의 이야기를 그린 <아름다운 흉기>나 뉘우치지않는 미성년자 범죄인들을 향한 <방황하는 칼날>, 성정체성에 대한 <아내를 사랑한 여자>와 같이 사회의 어두운 문제를 다루지 않더라도, 충분히 주변에 있을만한 소재를 가지고도, 누군가는 단순히 지나쳐갈 수도 있는 현장의 모습에서 조그만한 단서들을 바탕으로 범인을 찾고, 그 범인들을 향해 직접 처벌하려는 자와 그 자를 막기위해 조작된 증거속에서 진짜 단서를 찾아 뒤쫓는 형사의 모습을 통해 300여장의 서스펜스를 그린 히가시노 게이고는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 작가였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특정한 주인공이 나오지 않더라도 매번 만족하지만, 특히나 애거서 크리스티의 에르퀼 푸아로와 미스마플양에 버금가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가가형사와 조교수 유가와의 활약상을 그린 책들을 보면 더욱 흥분되는 것도 그만큼 인간적이면서도, 진실을 추구하는 냉철한 모습을 가감없이 그려내서이지 않나 싶다. 

흡사, 다른 탐정소설, 탐정만화가 마지막 장에 "범인은 바로 당신"이라고 외치며, 범인의 트릭을 밝혀내는 것과는 달리 끝까지 범인의 이름을 써주지 않는 이야기의 스타일도 책에 계속 집중하게 만드는 요인이 아니었나 싶다. 이전에 읽을 때엔 다른 탐정소설을 읽을 때처럼 범인이야 끝에 알려주겠지라는 생각으로 단서들을 눈여겨보지 않아 결국 누가 범인인지 결국 못알아챘던 것 같은데.. 이번엔 그래도 단서들을 기억하고, 친절한 봉인해설을 통해 간신히 범인을 알아차렸다. 아니 알아차린 것 같다고 해야 하나? 범인인 것 같긴 한데 그래도 결국 명확히 범인의 이름이 써있는 것은 아니니 여전히 추측에 불과하니 말이다.. 스스로 범인에 대해 생각해보게 만든다는 점에서, 통속적인 주제를 가지고도 흥미진진하게 그렸다는 점에서 <내가 그를 죽였다>와 더불어 정말 매력있는 이야기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그래도 마지막에,, 범인의 이름만이라도 써주었음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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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아트리스와 버질
얀 마텔 지음, 강주헌 옮김 / 작가정신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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얀마텔의 전작 <파이이야기>에 반해 그의 다른 책을 읽어보려 시도했지만 결국 시도에만 그치고 말았다. <파이이야기>는 정말 예전에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몇몇 장면이 여전히 눈에 아른거림에도 불구하고 <헬싱키 로카마티오 일가 이면의 사실들>은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단 한장면도 기억나지 않다보니 그 이후 얀마텔의 다른 이야기 <셀프>는 읽으려는 시도조차도 하지 않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래도 정말 오랜만에 그의 신작이 나왔다고 하고, <파이이야기>에서처럼 동물이 나온다고 하니 살짝 기대를 하며 읽게되었다. 

<베아트리스와 버질>이란 제목과는 관계없는 듯한 이야기의 첫머리는 성공한 한 작가가, 나치와 유대인에 대해, 여전히 수많은 책으로 나오고 있고 드문드문이지만 끊임없이 새로운 사실이 하나씩 드러나고 있는 홀로코스트에 대해 한면에서 읽기 시작하면 소설이고, 다른 한면에서 읽기 시작하면 논픽션으로 홀로코스트를 다루고자 했던 시도와 그 시도의 실패로 훌쩍 다른 곳으로 떠나 다른 곳에서 정착을 하기까지의 이야기는 과연 어떤 이야기가 계속될지 눈길을 사로잡기엔 충분했다. 그리고 주제 역시 명확하달까? 아예 이야기의 첫머리에 헨리가 쓰고자 했던 것이 "홀로코스트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라는 것을 명시하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헨리에게 도착한 의문의 희곡에서 베아트리스, 버질이라는 이름이 등장하지만 오히려 얀 마텔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에 점점 모르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집착처럼 희곡을 쓰고, 자신의 작업을 신중히 하면서도 주변사람들의 미움을 받으며, 뭔가 사연이 있는 노인이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그래도 왠지 모르게 마음이 갔던 노인이었다.. 그래서 헨리가 그를 만나고 그의 희곡을 들으러 끊임없이 찾아가는 모습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고, 그의 집착마저도 그냥 받아들일 수 있었는데 이야기의 끝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내가 문장과 문장사이의 의미를 놓쳤을 수도 있고, 얀마텔이 베아트리스와 버질의 희곡을 통해 말하고자 한 바를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을 수도 있고, 결국 이 이야기자체에 동화되지못한 채 수박 겉핡기로 읽은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게 이 책의 문제라는 생각도 들었다.. <파이이야기>에서 살아남기 위해 망망대해를 헤맨 파이와는 달리, 시간이 머물러 있는 장소에서 그저 담담히 이야기가 이야기가 진행되다보니 이야기에 푹빠지지 못한 점도 있고, 주제자체가 무거운 주제임에도 너무 색다른 방식으로 접근하다보니 주제에 푹 빠지지 못하게 된 것도 같았다.. 그래서 <베아트리스와 버질>은 <파이이야기>에서처럼 매력도 느끼지 못했고, 이해하고 싶었지만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오랜만에 읽은 얀 마텔의 책인만큼 재미와 의미를 모두 느꼈으면 좋았을텐데.. 정말 아쉬움이 많이 남는 책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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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베일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37
서머셋 모옴 지음, 황소연 옮김 / 민음사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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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루 처음 시작한 책이 서머싯 몸의 <인생의 베일>이었다. 고갱의 이야기를 그린 <달과 6펜스>에 반해버려 서머싯 몸의 책이라면 재미는 담보되었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런 믿음덕택에 잠시 미뤄두게 되는 책이기도 했다. 어차피 언젠가는 읽을 책이니 아는 작가보단 모르는 작가의 책을 먼저 읽자라는 생각이 들게만드니 말이다.. 그래서 항상 서머싯 몸의 책은 장바구니에 담겼다가도 금새 지워지는 책이었다. 하지만 <인생의 굴레에서>처럼 2권짜리 책도 아니고, <면도날>이라는 책처럼 전혀 끌리지 않는 제목도 도 아닌 <인생의 베일>은 요전번 책을 살때에 간신히 장바구니에서 살아남아 내가 가진 몇권 안되는 민음사세계문학전집 책들 위에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언젠가 내가 읽어주길 바라면서.. 

그리고 오늘 드디어 나를 유혹하는 목적을 달성하고야 말았다. 오랜만에 펭귄클래식 책이 아닌 민음사세계문학전집을 읽어보자는 마음도 들었고, "에드워드 노튼"이 찍은 영화의 원작이라고도 하고, 내가 믿는 작가 중에 하나 있는 서머싯 몸의 책이기도 하다보니 손쉽게 읽을 책으로 채택되었다!! 사실,, 최근 읽고 있던 책들이 프란츠 카프카의 <성>과 로베르토 아를트의 <7인의 미치광이>, 나쓰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인데 하나같이 두껍고, 우울하거나 비꼰다거나 하다보니 세권다 진도가 잘 안나가 다들 반틈씩만 읽고는 손에 잡히질 않고 있다보니 조금은 경쾌한 느낌의 책을 읽고싶던 바람도 컸나보다.. 그래서 한 여자가 무도회에서 자신을 편안하게 살게 만들어줄 남자를 찾고, 동생이 약혼을 하니 불안함을 느껴 자신을 좋아하는 잘 모르는 남자와 결혼을 하고, 그 사람을 쫓아 홍콩에 가서 불같은 사랑을 하는 이야기가 빠르게 진행되던 <인생의 베일>은 고전답지 않게 쉽게 읽혀 좋다는 생각이 들정도였다. 

분명 <인생의 베일> 속에서 키티 페인도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불같은 사랑의 끝의 씁쓸함을 맛보며 한치앞도 모르는 인생 속에서 그 순간이 지난 후에야 그 선택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게 인생이라는 심오한 의미를 지닌 이야기이기도 했지만, 그보단 서머싯 몸의 부드럽게 이어지는 서술과 키티 페인과 월터 페인의 어긋난 모습에 더욱 안타까움을 느끼게 하는 책이었다.. 분명 책뒤의 줄거리를 읽을 때만 해도, 월터페인과 키티 페인이 두 사람의 시련을 극복하는 줄로만 알았는데!!! 콜레라가 창궐한 중국의 도시에서 서로에 대해 이해하고, 서로르 감싸게 되는 그런 이야기인줄로만 알았는데 어느 순간 월터 페인이 죽음으로써 너무나도 큰 상실감을 맛보게 되었다.. 

분명 월터 페인과 키티 페인이 위기를 극복하고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를 사랑하게 된다는 이야기로 흘렀다면 너무나도 뻔한 이야기가 되었을 거라는 건 알겠고, 아무리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사랑한다해도 서로에게 커다란 상처를 주었다보니 회복할 수 없는 것이 더욱 현실적이라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자신들의 인생에 있어 서로의 의미를 몰랐던 부부가 서로에 대해 이해하며, 그럼으로써 인생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어도됐는데.. 서로를 이해해나가려는 순간 키티와 월터가 서로 다른 선택을 하게 만든 서머싯 몸이 야속하게만 느껴졌다..   

의존적인 한 여성이 자신을 찾기 위해, 자립심을 갖으려 노력을 하고, 누군가의 도움이 되려 노력을 하며, 결국 여전히 의존적인 자신의 모습에 다시 한번 일어서기 위해 자신의 가족을 찾는 모습을 통해, 키티 페인의 변화된 모습을 통해 인생을 보여준게 사실이지만, 그래도 지독한 일벌레에 키티를 사랑한 자신을 경멸하던 월터 또한 자신의 인생을 찾았으면 좋았을 것을..해석에서 남자는 여자보다 상처를 더 쉽게 받고, 그걸 이겨내지 못한다는 말을 한 것처럼 월터는 키티보다 자신의 자존심을 극복하지 못한 채, 안타까운 선택을 했다는 것에 안쓰러울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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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길동전 펭귄클래식 13
허균 지음, 정하영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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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날도 궃고, 기분도 우울해 그냥 하루종일 책을 읽고, 리뷰를 쓰고 있다.. 원래대로라면 개강하기전 예습이라도 해야된다며 전공서적에 허우적거리고 있어야 하는게 정상인데, 책으로 스트레스를 풀던 버릇에 의해 어차피 공부가 안되는 기분이라면 그냥 오늘 하루만은 책으로 그동안의 스트레스나 풀자싶어 간단한 이야기위주로 읽고 있다.. 그렇게 오늘 하루 읽은 책이 <홍길동전>, <목요일이었던 남자>, <인생의 베일>이다. 몇권의 책을 읽고 있는 중이었긴 하지만, 그냥 새 책을 읽자 싶어 그동안 궁금해하던 책 3권을 손에 잡고 닥치는데로 읽은 결과 오늘이 다가기도 전에 목표량을 다 읽어버리고야 말았다. 

솔직히 <목요일이었던 남자>나 <인생의 베일>이야 새롭게 읽는 책이지만 <홍길동전>이야 많은 사람들이 줄거리를 아는 얘기고 나 역시 수도없이 줄거리를 듣고, 짧게나마 국어시간에 배운 적이 있는 이야기다 보니, 더욱이 2가지 버전으로 읽어도 100페이지정도 밖에 안되다보니 정말 부담없이 읽을 수가 있는 책이었다.. 그래도!! 부담없이 읽은 것에 비해 2가지 버전으로 비교해가며 읽다보니 사뭇다른 느낌의 경판과 완판의 이야기에 또다른 재미를 느낄 수가 있었다. 한두줄로 좋은 태몽을 꾸었다고 표현하던 경판과는 달리 온갖 미사어구를 사용하여 멋진 태몽을 꾸었다고 표현한 완판은 기본줄거리야 똑같지만, 홍길동의 아버지이름을 언급하느냐 그냥 아무개라고 하느냐, 홍길동의 형의 이름이 인형이냐 길현이냐라는 차이와 홍길동의 부인이 2명이냐 3명이냐라는 것, 8인의 길동이가 아버지의 입에 넣은 약이 1개냐 2개냐라는 차이 등등 아주 사소한 부분의 차이와 간결하게 표현했느냐 한문을 잔뜩 사용하여 문장을 화려하게 꾸몄느냐 정도의 차이가 있었다. 

그렇다 보니 같은 이야기에 다른 느낌이 들게 하는 이야기였다. 허균이 처참하게 처벌받고 난후, 금서로 취급되어 몇백년을 구전으로만 내려오다보니 각 지역마다 차이가 발생했고, 홍길동전이라는 이야기자체도 허균이 지은이니 아니니 하는 논란도 있다지만, 그래도 홍길동전은 우리나라의 멋진 고전이 아닐 수가 없다. 기록이라곤 외규장각도서와 같이 왕의 일과나 국정에 대한 기록이 대부분이고 소설이라곤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우리나라에서,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처럼 조선시대의 신분제와 사회의 모습에 대한 불만을 가졌던 허균이 홍길동의 이상사회의 건설이라는 모습으로 불만을 표출한 소설이있다는 사실에 정말 뿌듯함을 느끼게 해주는 책이었다..  

어떤 수업시간이었나 어느 책에선가 "결국 홍길동 역시 이상사회를 건설한 후에 자신이 왕으로 그 나라를 다스리는 것을 보면 허균 역시 유교사회의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이 명백히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도 그 한계이다"라고 한 것을 본적도 있지만 그래도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한" 신분제의 부당함과 그런 세상에서 벗어나 하나의 이상국가를 건설하려고 꿈을 꾼 것만으로도 허균은 그 당시의 깨어있는 사람 중의 한 명이었다는 점은 명확하지 않나 싶다..그리고 허균이 썼든 안썼든, 국문으로 썼든 한문으로 썼든 그냥 "홍길동전"이라는 이야기만으로 충분히 기념비적인 책이 아닐까 싶다.. 이런 멋진 이야기를 우리나라 펭귄클래식에서만이 아니라 펭귄클래식의 원고장 영국 및 미국을 포함한 전세계의 펭귄클래식에서 만났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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