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미술사 (반양장)
E.H.곰브리치 지음, 백승길 외 옮김 / 예경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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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미술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하더라도 곰브리치의 서양 미술사는 막상 책의 두께가 독자들의 마음을 무겁게 짖누른다. 많은 독자들에게 곰브리치의 힘에 압도당하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는 책이다. 그러나 서양 미술에 정녕 관심을 가진 독자에게라면 필독서요 그 가치를 논하기 힘들만큼 훌륭한 책이라 정평이 나있는 양질의 도서이기도 하다. 

교양 철학 시간의 어느 교수님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인간과 동물의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가?"라고. 수강생들의 대답은 각기 다를 뿐 아니라 흥미로운 답변들이 쏟아졌다. 교수님은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은 넥타이를 맨다거나 술을 마신다거나 결정적으로 인간은 철학을 한다는 것이 차이점이라 생각하신다고 했다. 

이는 분명히 일리가 있는 구별법이다. 인간은 철학을 하므로 동물과 구별된다. 그러나 이 외에도 추가할 수 있는 항목이 있다면 인간은 예술을 한다는 점을 보태고 싶다. 

인간은 예술을 한다는 점에서 동물과 구별된다. 맞는 말이다. 이 명제를 다르게 표현해본다면 '예술을 하지 않는 인간은 인간이 아니라 동물이다'라고 앞서가고 싶은 생각은 없다. '명제를 역으로 할 때 반드시 정답을 낼 수 있어야 한다'는 명제는 동양인인 나에게는 true가 아니다. 꼭 철학을 해야만, 예술을 해야만 인간이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학문적인 차원의 견해 일 뿐이다. 우리는 일상에서 늘 철학을 하고 있다는 것 또한 타당한 명제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매사에 결정을 해야하는 순간이 오고 그 결정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자신만의 철학, 혹은 가치관임을 부인할 수 없다.. 결국 학문적인 사유와 철학을 하지 않는다손 치더라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인생 철학이 자신의 판단에 준거가 되어준다는 것은 지당한 말씀. 그렇다면 예술은 어떠한가.  

예술은 일생을 두고 알지 못해도 좋다. 예슬과 접하지 않는다고해서 인간이 아닌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그러나 예술은 인간적인 삶을 한층 더 풍요롭게 한다는 것 또한 틀림이 없는 사실이다. 풍요로운 인생은 재산이 많다고 일궈 낼 수 있는 성질의 것도 아니요 배만 부른 인생을 풍요롭다고 말할 수는 결코 없는 일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소크라테스는 왜 배부른 돼지보다는 배고픈 인간이기를 소망했던가. 

 비록 배는 고플지언정 정신적 풍요로움의 가치를 인생의 중요한 부분으로 생각했다는 것이다. 예술 역시 그와 다를 바가 없다. 설사 부유한 인생은 아닐지라도 자신의 풍요로운 삶을 위해 예술과 거리를 가까이 두는 것이 풍요로운 인생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음악도 예외는 아니다. 

어느 한 대학생은 학교에서 서양 미술사를 수강해야 하는 입장이었다고 한다. 서양 미술사는 그 학생에게는 매우 비호감 과목에 해당한다고 한다. 스트레스가 이만 저만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어쩌면 그 학생은 서양 미술사 강의를 통하여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를 도서관에서 만날 수도 있다. 싫어하는 과목의 학점을 위해서 곰브리치를 만나 그의 저술을 따라 읽어간다면 아마도 그 학생의 인생은 달라질지도 모른다. 우연은 때로 생각지도 않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대학생 시절은 분야를 구별하지 않고 접해도 좋은 시기이다. 입맞에 맞는 편식을 할 시기는 절대로 아니다. 다양하고 많은 분야를 접하고 그 가치를 알며 조금 더 깊이 나아간다면 인생은 그렇지 않았을 때보다 더욱 풍요로워질 것이다. 

동양의 것이든 서양의 것이든 미술을 알고 지내다보면 그 이름도 유명한 예술가들의 전시회에 가는 것이 그 얼마나 부질없는 짖인지 깨닫게된다. 작품 하나만으로도 몇 권의 책으로 저술 될 수 있는 가치를 가진 예술품들을 단지 몇 분만에 휙~ 돌아보는 것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물론 사전에 철저한 연구와 공부가 전제된 관람의 경우라면 상황은 달라진다. 자신이 그토록 감동하며 읽고 그 의미를 부여한 그림을 직접 자신의 눈으로 감상한다면 말로는 다 못할 감동을 선물 받을 것이다. 그러나 수십만이 다녀갔다는 전시회에서 과연 이러한 감상이 그 얼마나 있었을 것인가. 대부분 그렇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그저 그 유명하다는 작가의 작품을 한 번 구경했다는 정도에 그치는 것이 일반적인 관람 문화인 것이 현실임을 부인할 수는 없다. 어느 분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렇다면 작품을 잘 알지는 못하더라도 큐레이터의 설명을 듣는 것도 의미가 없냐고 물으신다. 큐레이터의 작품에 대한 설명을 듣는 것은 물론 유익한 일이다. 모르는 것보다는 훨씬 나은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는 한 가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큐레이터의 요약 설명이 가지는 문제는 마치 장편 소설의 요약본을 앍는 것과 같은 것이다. 직접 읽지 않은 소설의 요약은 물론 모르는 것보다는 나은 일이다. 그러나 그 작품이 주는 감동과 가치를 깨닫기에는 부족함이 많다. 작품의 요약본으로 작품을 이해했다고 보기에는 어려움이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예를 들어 윌리엄 골딩의 파리대왕에 대한 줄거리와 감상을 이미 읽은 누군가에게 전해들었다고 하자. 파리대왕은 수학여행을 떠난 학생들의 배가 좌초되어 무인도에 상륙하면서 발생하는 인간의 본성과 추악함을  적나나하게 보여주는 책이라는 설명을 들어서 알게되겠지만 그 소설이 가지는 구성과 작품성을 감지하기는 이미 어려움이 있다. 작가의 문체가 주는 질감도 느끼지 못할 것이고 각 주인공들의 갈등과 해법에서 오는 그들만의 인간성과 가치관을 발경하기란 요원하기만 하다. 작품을 읽지 않은 것은 읽지 않은 것이다.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작가가 소설을 통해서 전달하려고 하는 핵심을 놓치기 쉽다.  

극한의 상황에서 보여주는 인간의 추악함과 야수적인 본성을 가진 젊은이들은 어른들이 구원을 해줄 수 있는 여지가 있음을 전달하는 소설이라는 점을 알게되었다고 하자. 그러나 작가의 작품을 직접 읽어본 사람은 저자의 심오한 목소리에 한 발 더 깊이 나아 갈 수가 있다. 윌리엄 골딩이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이러하다. 어린 청소년들의 탈선과 비행 그리고 그들의 위험한  상황을 어른들이 구원해줄 수 있지만 과연 실제로 이러한 본능을 여과없이 보여주고 있는 현실 세계에서의 기성새대를 과연 누가 구원할 수 있단 말인가? 라는 궁극의 의문을 던지고 있고 그에 대한 인류의 자성을 촉구하는 강력한 미시지를 담고 있은 소설이 바로 파리대왕이라는 것을 느끼기에는 부족함이 있지 않을까. 이러한 현상이 바로 작품을 연구하고 공부하며 감상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확연한 차이점이다.     

예술은 그 작품을 이해하고 공감하며 감동을 받는 것이 핵심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작품에 관한 가능한 많은 것을 알면 더 좋다. 작품 관련 역사를 아는 것도 당연히 이에 해당한다. 작품을 읽지 않은 상태로는 자신의 정신적 풍요로움을 기르는데 어려움이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이다. 비록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기는 하지만.... 

곰브리치는 서양의 미술에 관심을 가진 독자에게 만족을 주는 책이다. 물론 이에 버금가는 또 다른 저자의 책이 없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서양 미술사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이 가장 선호하며 그치를 인정받고 있는 책임에는 분명하다는 것이 글의 취지일 뿐이다. 곰브리치의 서양 미술사는 독자들의 인생을 더더욱 풍요롭게하는데 크게 공헌해 줄 필독서가 아닌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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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보는 사주 이야기 - 이정호 선생의 사주 이야기
이정호 지음 / 한겨레출판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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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리학을 접한다는 것은 결코 수월한 일이 아니다. 생활 주변의 환경이 명리학과 무관하다면 특히나 그러하다. 간명학에 대한 대중들의 견해차이가 크고 미신으로 치부하기 일쑤인 사회적 풍토가 큰 몫을 하기 때문이다. 

명리학의 근원을 찾아가다보면 성리학과 마주하게된다. 성리학에서 발원한 명리는 생활의 발견을 연구하고 참고하는 명리와 순수학문적인 성리학으로 갈라졌고 근간은 같으나 성리학은 성리학은 양지에서 빛을 보았고 명리학은 터부시되는 음지로 숨어버렸다. 

 심지어는 명리학을 미신으로 치부하며 자신의 노력과 소신으로 인생을 살아가는데 저해되는 요인으로 터부시되기에 이르른다. 그러나 근원이 같은 두가지 중 명리학은 터부시되고 성리학은 떳떳한 학문이 되었다는 것은 시대의 산물이자 이이러니이다.  

새롭게 보는 사주이야기는 초보자들이 이해하기 매우 쉽도록 했다는 점에서 그 이점이 있다. 그러나 저자는 명리에 대해서 상당한 연구와 진척이 있어보이지만 책의 내용에서는 상당부분 명리의 학문적 성과를 애써 깍아내리는 느낌이든다. 

형충파해의 작용을 애써 부인하려는 태도가 역력하다. 더우기 육효의 괘가 주는 의미를 애써 깍아내리고 있다. 이는 두가지로 이해할 수 있다. 하나는 저자가 육효에 대해서 자신이 없거나 알고는 있지만 독자에게 괘의 의미를 지나치게 강조하지 않으려는 의도이거나... 독자로서 느낀 점은 저자의 육효에 관한 풀이가 충분히 연구되지 않았다는 쪽이다. 육효의 정확성을 무시하는 저자의 태도로 보아 추측할 뿐이지만 말이다. 

여하튼 형충파해의 작용에 대한 저자의 견해는 의도적으로 그 영향력을 애써 감추려한다는 느낌이 짖다. 그러나 연구가 깊이를 더해갈 수록 형충파해의 작용이 그 얼마나 크게 작용하는지를 경험한 분들이라면 저자와 견해를 분명히 달리할 것이다. 

좋은 점이라면 오행이 명리에서 작용하는 이치를 매우 쉽게 서술했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초보입문자들에게 장점과 단점을 모두 던져주는 책이라하겠다. 그러므로 취할 것은 취하고 버릴 것은 버리는 지혜를 발휘하며 읽어야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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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정쟁 5 - 시파와 벽파 - 사도세자의 눈물
신봉승 지음 / 동방미디어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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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론을 등에 업고 임금이 된 영조에게는 아킬레스건과 같은 것이 두가지 있었다. 하나는 모친이 궁녀의 세숫물을 떠다 바치는 신분인 무수리 출신으로 당시 비천한 신분이었다는 점이고 또 다른 하나는 경종의 독살 사건이었다. 

이 두 가지 아킬레스건은 영조가 죽는 그날까지 영조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사실상 택군되어 경종이 버젓이 살아있음에도 불구하고 세제로 책봉되도록 경종에게 압박을 가한 것이 노론이었던 것이다. 경종은 노론들의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하는 수 없이 연잉군을 세제로 책봉할 수 밖에 없었다. 다른 때 같았으면 역모로 모두 죽음을 면치 못할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경종 곁에는 이렇다할 인물이 없었던 것이다. 소수의 남인들이 이를 경계했으나 사실상 남인들은 권력의 밖에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태였다. 

결국 경종은 의문을 남긴채 죽음을 맞이한다. 연잉군이 임금이 되다. 영조는 임금도 갈아치울 수 있는 노론의 힘을 두려워했다. 그리하여 고심끝에 탕평책을 들고 나선 것이다. 비천한 무수리 출신의 자신을 임금의 자리에 앉힌 노론과 경종 독살설은 영조로하여금 군주로서의 힘을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중 사도세자가 태어났다. 영조는 사도세자를 극진히 사랑했다. 자신의 뒤를 이을 군주감으로 손색이 없을 정도로 사도세자는 명석했다. 그러나 세자가 자라면서 경종의 죽음에 대한 의문을 갖기 시작한다. 이는 영조와 노론이 바라던 바가 아니었다. 가뜩이나 아킬레스건은 경종 독살설에 시달리던 영조에게는 치명적이었다.  

사도세자는 경종의 독살설을 믿는 모양이었다. 동시에 노론의 택군에 의하여 자신의 아버지가 임금이 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사도세자는 그리하여 가증스럽고 위험한 노론을 경계하기 시작한다. 이른바 소론쪽으로 기울게되는 결정적 계기가 된 것이다. 

한편 영조는 소론 편을 들며 자신의 약점을 꿰뚫고있는 사도세자를 용서할 수가 없었다. 노론에서도 사도세자를 죽이고 싶어했다. 결국 영조와 노론에 의하여 사도세자는 뒤주에 갇혀 사망하게 이르른다. 이른바 임오화변이 그것이다. 

같은 노론 중에서도 사도세자의 죽음을 당연하다고 주장하는 쪽이 벽파, 임오화변을 안타깝게 생각하는 쪽이 시파, 이렇게 또 양분된다. 사도세자의 빈은 골수까지 노론  출신으로 자신의 아버지가 사위를 죽이는데 침묵으로 동조한다.  흔히 사도세자의 정신 병력이 도가 지나쳐 세자가 죽음에 이르를 수 밖에 없었다는 혜경궁의 주장은 대부분 날조된 것이다. 한중록은 자신의 가문인 풍산홍씨의 멸문을 막기위한 일종의 체스쳐였다.  

장헌세자가 자신의 정신병 때문에 죽었다면 정조는 왜 임오의리를 내세워 관련자들을 숙청했을까. 이는 아버지 장헌세자의 죽음을 억울하며 모략에 의한 것임을 입증하는 하나의 강력한 증거이다. 사위를 죽은 홍인한은 정조에게는 외할아버지이다. 그런 외할아버지및 관련 홍씨 집안을 거의 씨가 마르도록 처단한 것이 정조의 조치였다. 임오의리는 바로 시파의 힘이 커졌다는 뜻이기도하다. 

노론 벽파는 정조를 죽이기위해 살수를 보내기도했다. 세상에나 임금을 죽이기 위해 신하들의 무리가 살수를 보냈다는 이야기는 동서고금 그 어느곳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경우가 아니던가. 그만큼 노론의 힘이 강성했고 임금의 힘이 약했던 군약신강의 대표적인 나라가 조선이었던 것이다. 드라마에 등장했던 전흥문이라는 힘잘쓰는 인물은 노론의 홍계희가 그의 아들들을 포함시켜 계획한 정조 암살단의 대표적 인물이었다.  

정조는 고독했다. 주변에는 온통 노론세력 뿐, 자신을 위해 일할 인물들이 부족했다. 그러나 채제공과 같은 명 재상이 있어 그나마 위로가 되었다. 정조는 노론 벽파의 끊임없는 위협을 받으며 정치를 펴 나갔다. 조선에 마지막 희망의 불씨가 살아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대 개혁의 단행을 앞두고 정조는 또다시 의문사한다. 

그리하여 정조가 일생을 통해 일궈놓은 조선의  마지막 희망의 불씨가 꺼져버렸다. 노론의 골수 대표 정순왕후는 정조의 모든 개혁을 뒤집어 놓는다. 영조 최대의 실수가 바로 정순왕후를 비로 들인 것이거나 골수 노론인 정순왕후를 정조가 처단하지 않은 것이거나.... 

진정 백성을 위해 변화를 단행했던 조선의 임금 중에는 대왕 세종과 영정조가 고작이다. 그러한 영정조의 개혁은 조선의 마지막 불씨나 다름없는 성과였지만 그 모든 불씨들 노론들은 짖밟아 꺼버렸다.  

시파와 벽파는 고독했던 장헌세자에 대한 의견의 차지가 가져온 결과였다. 결국 정권을 잡아 권력을 장악하려는 노론들의 입장 차이었던 것이다. 백성을 위해 군신이 힘을 모아도 모자랄 판에 그럴 겨를이 없었던 것이 조선이었고 백성들만 새우등 터지던 시대가 조선이었다. 안타까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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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정쟁 3 - 남인과 북인 - 아버지와 아들
신봉승 지음 / 동방미디어 / 200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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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희대의 반항아 정여립이 반란을 주도했다는 보고가 접수됐다. 이는 물론 치밀하게 조작된 정치적 음모였다. 서인이 동인을 정치적으로 제거하려는 음모였던 것이다. 서인 정철은 정여립 모반사건을 담당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역모와 관련되었다고 여겨지는 조선의 백성 1000여명을 죽음으로 다스린다. 

정철의 가사는 교과서에서도 배우는 문학작품을 남긴 장본인이지만 그 성정은 불과 같은 인물이었다. 기축옥사를 담당하면서 너무나도 죄없는 사람들을 희생시켰다. 동인들은 그러한 정철에게 복수의 칼날을 갈게된다. 이른바 세자 건저문제로 정철을 앞세워 그를 함정으로 몰아 넣은 것이다.  

이상해는 동인었다. 그런 이산해는 정철에게 접근하여 정철의 경계심을 흔들어 놓은다음 선조에게 세자 건저 문제를 올리자는 의견을 내놓고는 병을 핑계로 참석하지 않는다. 정철이 누구던가. 한 성질하는 인물인 그는 이산해의 함정이라는 것을 파악하지 못하고 광해군을 세자로 책봉하자는 건저문제를 선조에게 고하게된다. 

광해군을 곱지않게 생각하던 선조는 불같이 화를 내며 정철을 현장에서 파직시킨다. 때를 놓칠세라 동인들은 정철을 죽음으로 다스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갔다. 서인은 정철을 정법하자고 강력하게 주장한 쪽이 이산해를 중심으로 뭉친 일당과 죽일 필요까지야 있느냐며 온건한 노선을 택한 서애 유성룡을 중심으로 한 일파인로 갈라진다.  이렇게 갈라진 서인들의 분열세포가 바로 인산해를 중심으로 한 북인이고 유성룡을 중심으로 한 남인인 것이다. 

때는 선조대로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직전이었다.  왜는 조선을 넘보기위해 철저한 준비를 해오고 있었으나 조선은 정치적인 밥그릇 싸움을 하느라고 이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당쟁은 조선을 전쟁이라는 비극의 상황으로 몰아가게 된 것이다. 

성호 이익이 언급하고 있듯이 조선의 당쟁은 밥그릇 싸움이었다. 자신들의 밥그릇만 채운다면 상대방을 죽이는 짓도 서슴치 않았던 조선의 위정자들의 모습을 여과없이 보여주는 행위가 바로 옥사이며 환국인 것이다. 

서로 권력과 밥그릇 싸움을 하며 새우등 터지는 것은 백성이다. 백성들이 무슨 죄가 있는가. 나라에 세금을 내며 잘좀 돌봐달라는 입장에 있는 쪽이 백성아니던가. 그러나 백성들의 그런 바램은 중요치 않았다.  국왕도 위정자들도 그 어느 누구도 마음쓰지 않았던 것이 조선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와중에도 율곡이이가 있고 유성룡이 있었으며 남명 김육과 남명 조식 그리고 윤휴등이 있었다. 온 마음을 다해 백성을 위해 살다간 이들이 있으니 그나마 조선 백성들에게 위로가 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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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정쟁 4 - 노론과 소론 - 예학의 분쟁
신봉승 지음 / 동방미디어 / 200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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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론과 소론은 같은 서인이라는 모체에서 분열한 세포이다. 노소론의 분열 시기는 숙종대의 일로 부지불식간에 사문 난적이 출현하게 된 것이다. 동서인의 쟁투가 주자학이라는 같은 뿌리를 가진 무리들간의 쟁투 였다면 노소론의 분열은 주자학을 신봉하던 노장 세력과 주자학에 도전장을 내민 소장 세력간의 쟁투였다.  그러나 이는 표면적인 이유에 불과한 것이다. 

결정적인 사건은 남인에 대한 처벌을 놓고 강경하게 대처하자는 쪽이 노론이요 어느 정도 온정의 손길이 필요하지 않느냐의 입장이 소론인 것이다. 숙종대의 시대는 당쟁으로 인하여 국정이 매우  혼란스럽던 시기였다. 권력을 중심으로 선회하는 당파간의 음모와 술수가 난무하고 상대방에 대한 살육을  서슴없이 자행하던 시기였던 것이다.

예송에 관한 치열한 투쟁은 서인과 남인들이 서로를 살륙하는 정치적 양상을 띈다. 서인은 2차 예송 논쟁에서 승리한 남인들을 대상으로 복수극을 벌여 결국 남인의 영수였던 허적을 죽임으로서 남인을 축출하고 서인들이 정권을 장악하는 사건이 발생하는데 이를 경신환국이라 한다. 서인 김석주는 허적의 서자 허견이 역모를 꾀했다고 사주하여 고변케함으로서 일대의 파란을 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이참에 남인을 대대적으로 숙청하여 남인의 씨를 말리자는 쪽이 노론이요 죄없는 사람까지 죽여서야 되겠느냐는 쪽이 바로 소론인 것이다.  

이 때 억울하게도 윤휴마저 사사되는 불상사가 발생하게된다. 윤휴는 서인의 영수 송시열에게 사문 난적으로 찍혀 결국 죽음에 이르르게되는데 윤휴는 끊임없이 북벌을 주장하며 군사력을 양성하고 백성들의 안전된 생활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취지의 상소를 끊임없이 올려 송시열의 마음을 매우 불쾌하게 했다. 더구나 송시열과 노론들이 고집하는 주자의 편집광적인 태도를 비난했다. 이러한 태도의 윤휴가 자신에게 사상적인 도전을 하는 것으로 간주한 송시열은 결국 윤휴를 이참에 죽여버리는 것이다. 

노론과 소론의 정치적 갈등은 경종의 독살 의혹과 더불어 더욱 악화되는데 영조를 등업고 정국을 장악한 노론이 소론을 지지하는 사도세자를 죽이는 지경까지 이르른다. 정조는 그러한 노론과 아버지를 죽음에 이르게한 장본인들을 숙청하게된다. 그러나 정조가 사망하자 노론이었던 정순왕후는 영정조가 그토록 애써 일궈낸 조선의 바른정치 형태를 되돌려 조선의 미래에 회복할 수 없는 치명타를 입히게된다. 

후기 조선은 노소론의 권력 다툼으로 점철된 피의 역사이다. 오로지 권력과 이익을 위해 타자를 용서하지 않고 죽음으로 처단하는 조선을 비극으로 몰아갔다. 이것이 바로 노소론의 정체인 것이다.  

조선의 역사는 그렇다 치자. 문제는 노론의 후예들이 대한민국의 역사와 정치를 왜곡하고 있다는 점이 문제이다. 노론의 후예들은 일제 강점기에 대대적으로 일본으로 유학을 갔고 일제의 역사관을 가져왔다. 일제사관이 중고등부의 국사책에 기록되고 그 일제사관이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주입되어 왔다는 사실이 더 큰 문제라 할 수 있다.  

노소론은 조선의 역사와 함께 사라진 것이 아니다. 현재까지 노론의 영향력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우리의 현실이 암울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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