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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출근을 하지 않고 쉬는 날이 더 바쁜 것은 설마 저만 그런 것이 아닐테지요... 차라리 출근하는 평일이 더 쉬운 분들이 또 계시리라 믿으며....
여하튼, 어제 부처님께서 오신 덕분에 오늘 모처럼 하루는 쉬어볼까 합니다. 휴식은 온 종일 음악과 책을 번갈아 곁에 두는 것으로. 


오랫 만에 악성 베토벤께서 남긴 피아노 협주곡 5번을 열었다. 그리고 다음의 두 연주를 번갈아 들으며 하루를 보낼 예정이다. 삼천포지만, 고전 음악이 대중성을 확보하지 못하는 치명적인 단점 중 하나는 시간에 있다. 너무 길다. 대중성에 시간은 거대한 벽과도 같다. 애호가들은 시간 가는 줄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적응이 쉽지 않은 것이 문제이다. 사실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은 결코 긴 편에 속한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럼에도 최소 40분은 써야한다. 이것은 알라딘하며 고전 음악 포스팅을 제대로 할 수 없는 문제이기도 하다.  늘 아쉬운 이유이기도 하면서...



[[[ 사진 출처 ㅡ 위 사진은 별점 비교를 위해 동호회 '고클래식' 의 '명곡감상 비교'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로그인을 하지 않아도 접근이 가능합니다. 고전 음악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매우 유익한 정보들을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위 음반의 별점은 고전 음악의 어느 절정 고수께서 표시한 내용입니다. 그 고수께서는 당시 지메르만의 연주에 별점을 4개 주었지만, 마음속으로는 별을 하나 더 살짝 얹었을지도 모릅니다.]]] 




1. 피아노 제르킨(Rudlof Serkin), 지휘 부르노 발터 (Bruno Walter), 뉴욕필(New York Philharmonic)  1941


뚜껑을 열어 걸면, 하루 종일 돌리게 되는 연주들이 있다. 내게는 위 연주가 그들에 속하는 연주인듯 하다.  좋은 연주라는 말은 무척 진부한 표현이겠고, 제르킨의 연주는 때로 전혀 다른 두 사람이 각각 왼 손과 오른 손을 따로 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물론 그 둘은 둘이면서 하나이기도 하다. 다른 음반에서는 이런 느낌을 쉽게 발견하기 어렵다. 이 효과는 제르킨의 피아노가 주는 느낌일까 베토벤이 곡에 불어넣은 효과일까. 어느 쪽이든 제르킨은 정녕 위대한 피아니스트이다.



놀라운 것은 최소한 1940년 이전에 만들어진 피아노의 음이 이토록 좋단 말인가? 하는 감탄을 자아내게 된다. 당시의 녹음 기술이 모노인 점을 감안 할때, 피아노 제작 능력과 제르킨의 연주 능력 모두에게 큰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피아노는 단연 돗보이는데, 이는 협연의 질을 평가한 것이 아니라 음질만을 평가한 것이다. 이는 또한 오케스트라의 연주 소리가 당시 녹음의 조건을 충분히 반영하고 있는 점을 참고하여 내린 결론이기도 하다.


어째거나 제르킨의 연주에 협연하는 부르노 발터는 자신이 왜 거장인지를 이 음반에서 또렷하게 각인시킨다. 녹음 조건을 뺀다면 관현악은 협연으로서, 연주 자체로서 흠결을 전혀 남기지 않았다. 협연은 탄탄하고 짱짱하며 일사 분란하다. 피아노와의 조합은 말할 것도 없다. 청자에게 피아노와 협연은 둘이지만 하나라는 일체감을 선사한다. 최고 난이도에 조절된 기품있는 연주이고 리허설 과정은 또 어땠을지,경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Concerto' 는 바로 이런 것, 이라는 사전적 정의를 구현해낸 연주가 바로 제르킨과 발터의 것 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하여 이 연주는 오성(五星)의 빛나는 견장을 받을 자격이 있다!!




2. 피아노 크리스티안 지메르만(Krystian Zimerman), 지휘 레너드 번스타인(Leonard Bernstein), 빈필(Wiener Philharmoniker) 1989


[[[ 사실 서로를 꼭 쳐다볼 필요는 없지만 연주 중 지메르만은 종종 번스타인을 바라본다. 노장에 대한 경의일 것으로 생각한다. 지메르만은 속으로 생각할 것이다. 형님의 협연이 너무나도 좋구나... 라고. 연주가 끝나고 번스타인은 지메르만을 한동안 포옹한다. 끌어안고 놔주질 않는다. 연주의 만족도를 보여주는 장면이면서 지메르만에 대한 애정과 경의를 보여주는 장면일 것이다. ]]]  


거의 대부분 존재하는 연주들이 매우 훌륭하지만 기호도에 따른 또 다른, 눈에 띄는 음반이 하나 더 있다. 지메르만과 번스타인의 연주이다. 물론 박하우스(Wilhelm Backhaus)와 슈미트 이세르슈테트(Hans Schumidt Isserstedt)의 1956년 연주는 왜 언급을 안하냐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박하우스 선생의 2악장은 내가 원하는 템포보다 빨라서 탈락^^ (팬들께는 죄소옹~)



1악장 ㅡ 초반, 피아노 도입에서 지메르만의 손가락이 아직은 살짝 덜풀린듯한 음을 낸다. 그러나 곧 그의 손가락에 신기(神氣)가 들어간다. 베토벤께서 주제를 뚜렷하게 제시했다. 생각보다 많은 것을 제시해준다. 피아노가 물러가면, 번스타인과 빈필은 자신들이 어떤 존재인지를 제대로 확인시켜 준다. 백발의 할아버지인데 번스타인 어르신 너무 귀여우심. 피아노가 호른과 독대하는 1악장의 끝 부분은 정녕 언어로 표현할 길이 없다.



[[[ Musikverein Wien 1989년 실황이다. 늘 아쉬웠던 점은 화질이었다. 마스터링(mastering)을 다시한 깔끔한 영상이 새롭게 올라와 있다. 정말 고맙고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 



가장 특징적이고 눈에 띄는 순간, 아니, 귀가 번쩍 뜨이는 순간은 1, 3악장에서 현악기 파트와의 협조력이 빛나는 순간이다. 피아노와 현의 피치카토(Pizzicato 줄여서 Pizz.)가 여백을 채우며 서로 들고나는 순간이 진정 예술의 극치이다. 튕기듯 휘어져 서로 달라붙는다. 경(經)과 위(緯)가 함께 비단을 짠다. 탄력있고 눈부신 비단을 완성했다. 입으면 사람의 체형에 맞게 움직여주는 원단이 있다. 이들의 연주는 바로 그 느낌이다. 이런 느낌은 다른 연주에서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악기들이 서로 이를 물고 들며 나는 순간, 이처럼 긴밀하고 품위있으며 쫀득한 연주를 완성하는 음반은 이뿐인가 하노라. 어찌 오성의 빛나는 견장을 마다할 것인가.



2 악장ㅡ 흔히 피아노 협주곡 중 가장 아름다운 아다지오라고들 한다. 깊은 슬픔, 이루 말할 수 없는  회한, 한없는 포근함, 부드러운 따듯함. 상처와 치유, 이 모든 것들을 버무려낸 것일까. 슬픔과 기쁨을 구별할 수가 없다. 동시에 전해오기 때문이다. 정녕 아름답다... 2악장 역시 최고로 눈이 부신 연주이다. 


3악장 ㅡ 곡의 마무리면서 연주의 끝이기도 하다. 그 감탄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3악장은 감상 평을 남긴 애호가들이 이미 모두 말을 다했다. 당당하며 완벽하다. 2악장의 유곡(幽谷)에 깃든 불사조가 죽음의 재에서 부활하듯 재탄생하며 일어선다. (지메르만) 이것이 나의 피아노다!! 


지메르만과 번스타인의 협연을 듣기 전에는 제르킨과 발터의 연주가 주는 아쉬움을 발견할 수 없다. 그만큼 제르킨과 발터의 연주는 훌륭하고 빼어나다. 지메르만과 번스타인의 연주를 들은 후에 베토벤의 황제는 지메르만과 번스타인이 기준이된다. 물론 음악은 기호이므로 모든 선택은 존중받아 마땅하다. 사실 나는 모든 연주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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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26-05-25 11: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임윤찬이 연주한 것을 들은 후론 그것만 듣고 있네요.
누가 연주를 했든, 하던 일 멈추고 듣게 되는 곡이지요.

차트랑 2026-05-25 12:43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hnine님,
저도 임윤찬, 홍석원, 광주 심포니, 2022, DG반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두분께서 명연를 남기셨지요?
말씀해주신대로 어느 분의 연주이든 정말 좋은 곡입니다.

음악을 좋아하시는 분 인줄은 짐작으로 알고 있었는데,
말씀을 들으니
더욱 반갑습니다 hnine님
좋은 휴일 되십시요~!












마힐 2026-05-25 16: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제가 사는 곳은 오늘 비가 옵니다. 차트랑님의 멋진 글 속에 베토벤의 피아노 소리가 저절로 보이는 경지를 마주하게 되는 것 같아 신기할 따름입니다. ^^ 비오는 날, 차트랑님의 좋은 글, 좋은 음악 소개 감사 드립니다.

차트랑 2026-05-25 16:57   좋아요 1 | URL
안녕하세요 마힐님,
평소 써주신 좋은 글 잘 읽고있어 이 자리를 빌어 감사드립니다.

비가 내리는 날,
베토벤 피협5번의 또랑 또랑한 스타인웨이 소리가
더 또렷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비가 내리면 2악장은 정녕 최고의 분위기를 낼듯 싶습니다.
좋은 오후 되십시요 마힐님~!!

잉크냄새 2026-05-25 21: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클래식은 제게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 입니다.
팝과 통기타 선율 정도가 당신이라 부를 수 있군요. ㅎㅎ

차트랑 2026-05-26 06:47   좋아요 1 | URL
안녕하세요 밍크냄새님,
와주셔서 고맙습니다 ~

사실 취향이라는 것이 있으니까요.

저는 소설에 취향이 없었거든요.
무협지가 최고의 소설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봐요.
무협지로 알라딘 하는 분을 아직 못봤습니다.

이제 소설을 읽어볼까 생각중이고,
나름 계획을 세웠답니다.
현재 목록의 책들을 마치고나면
출발~ 도스도옙스키 !! 이런 계획입니다.

취향도 가변하는 것이니
언젠가는 고전음악이 좋아질지 모르는 일인듯 합니다~

좋은 하루 되십시요 잉크냄새님~!
 



[[[ 이미지 출처 - 네이버 블로그 Chan's Screen  ]]] 



그 남에게 들려준 얘기는 대단한 것이 아닌, 누구나 해줄 수 있는 말이다.  그 남이 자신의 여친에게 잘못한 일이 있어 일이 이렇게 되었다고 하여 다음의 이야기로 시작했다.   


1) 사과는 눈을 보면서 하는 거란다


그 男에게 말해준 것 중 하나는 영화의 한 장면이었다.  바로 'Letters to Juliet'이 라는 영화이다. 기억을 잊어 검색을 해봤다. 2010년 수입 개봉한 영화이고, 관객수는 58만명이다. 그 해에 개봉한 영화 원빈과 김새론양의 "아저씨"가 관객수 617만명을 기록했다고 한다. '아저씨'에 비하면 죽을 쒀도 제대로 쑨 영화다. 이 영화의 대한민국 당해 년도 관객수는 10위 안에 들지 못했다. 로열티를 회수는 했는지 모르겠다.
(아...!  갑자기 원빈의 진짜 감동적인 대사가 다시 떠오른다. 눈을 부르릅 무섭게 뜨고, 어금니를 있는 힘껏 긴장시키며, 이를 악물고 원빈이 분노에 사무친 표정으로 저음의 포효를 내뱉는다 " 나 전당포한돠!!!!! 금니빨 빼고 싹다 씹어먹어주께에ㅡ!!!!!!!!!!!!!!!!!"  사실은 "모조리 씹어 먹어줄게" 이다 ) 


대한민국에서의 흥행은 별로였고, 그리 임팩트가 있는 성격의 영화도 아니어서 이 영화를 좋아하는 분들이 몇이나 계실지는 모르겠다. 나는 할머니 역으로 출연한 '바네사 레드그레이브 Vanessa Redgrave'의 팬이라고는 말하지 못하겠지만 좋아하게 되었다.

이 영화와 레드그레이브를  좋아하게 되는 동기를 부여해주는 장면이 하나 있다. 나의 기억 속에 각인된 정말로, 정말로 멋진 장면 말이다.

젊은 남자 주인공 '찰리'는 어쩌다가는 젊은 여자 주인공인 '소피'의 마음에 생채기를 내버린다. 스토리가 늘 그러하듯, 찰리는 소피에게 사과하고 싶어한다. 아래의 대본에서 보듯이 사과하는 입장에 있는 찰리의 태도가 영 어색하고 시원찮다. (어쩌면 이런 남자가 진짜일 수 있다. 선수는 절대로 이런 아마추어같은 모습을 보이지 않으니 말이다. 매사 능숙하고 이벤트 하는 남자 조심...) 그러자 갑갑했던지 이를 보다못한 할머니 클레어의 즉석 사과법 한 수 지도 들어가신다.


"사과는 정중히, 그리고 눈을 보면서 하는거란다. 진심을 담아서, 그리고 뉘우치는 마음으로", 영화 letters to Juliet 에서 할머니 클레어는 자신의 손자 찰리에게 이렇게 지도하신다. 우리말 해석을 내 멋대로 이렇게 하기는 했지만 대본을 들여다보면 다음과 같이 써있다.


영화 속의 클레어는 " in the eyes, truly,  with contrition and sincerity 눈을 보면서, 그리고 진심으로 뉘우치면서" 라고 아주 부드러운 톤으로, 동시에 마치 훌륭한 교육자 상을 백만 번은 받았을 법한 초등학교 선생님이 학생들을 지도할 때 보여주는 우아하고도 소신있는 목소리로 또박또박 말한다. 영화에서 클레어는 분명히 "truly" 라고 말하지만 위 대본에는 없다. 클레어의 애드립인지 아니면 다운로드 받은 대본이 빼먹은 것인지 나로서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그 "truly"가 주는 레드그레이브의 딕션은 순간의 장면과 아주 잘 어울렸고, 지도의 순간을 훨씬 더 빛나게 했다고 생각한다. 할머니의 지도력 있는 이 장면은 클레어라는 어른의 존재 이유를 증명해준다. 나는 이 뭉클한 장면을 선명하고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그런 일이 생기지 않는 것이 좋겠지만 행여 사과를 할 일이 발생한다면 늘 클레어의 말을 기억했다, "사과는 눈을 보면서 하는 거란다.".



2) 사랑은 감정이다!!


또 물론 스토커를 말하려는 것이 아닌 줄은 다 아시리라 믿는다. 또한 집착을 말하려는 것도 아닌 줄은 다 아시리라 믿는다. 사실 이 말은 하나마나한 말이지만, 영화에서 할머니는 손자에게 사랑은 감정이라는 것을 가르치고 있는 중이다.

용서를 구해야하는 입장에 처한 사람이 취해야할 태도가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느냐는 모든 관계의 핵심일 수 있다.
화가 나있거나 마음의 상처를 입은 상대에게 아무리 이성적인 접근을 시도한다 한들 소용이 없다. 이성적인 접근은 애초에 코드 자체가 다른 것이다. 이해를 요하는 상황에서 오해가 발생한 경우 이성적인 설득이 주효할 것이지만, 마음을 얻어야하는 상황에 알맞는 코드는 감정이다. 감성과 이성은 애초에 파동 자체가 다른 성질의 것이다. 기분이 나쁘면 매사 일이 틀어지니 말이다. 사실 남녀의 관계는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이다.
 



3) 사랑은 시간이다!!


사랑은 시간과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 또는 그녀가 나를 위해 얼마의 돈을 쓰느냐도 하나의 척도가 될 수는 있겠다. 그러나 시간은 돈과 바꿀 수 없고, 그 무엇과도 교환할 수 없는 가치를 가졌다. 그 귀하디 귀한 시간을 아낌없이 나와 함께하고 싶어하는 사람은 분명 사랑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돈으로 시간을 사려는 사람은 사랑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또한 그러므로 한 겨울 나를 위해 뜨개질한 한 켤레의 벙어리 장갑은 바로 사랑의 증표가 될 수 있다. 자식 또한 마찬가지다. 돈으로 키운 자식과 시간으로 키운 자식은 분명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한다. 시간으로 키운 자식은 나이가 들어 그 시간을 부모에게 되돌려주려고 노력한다. 반면 돈으로 키운 자식은 그럴 가능성이 거의 없다. 결국 자녀의 불효를 한탄할 가능성이 높다.


소피는 곧 결혼하기로 약속한 약혼남과 여행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나 이 약혼남은 사업에 몰두하느라 소피와 시간을 함께하지 못한다. 함께 여행을 와서는 따로 논다고? 이 男은 함께있어도 상대방을 외롭게 만드는 스타일의 男이었다. 영화니까 그러는 거겠지만 말이다.  반면, 할머니 클레어는 과거에 자신의 마음을 내어준 남성을 50년간 잊지 못하고 있었다. 그것은 클레어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상대방 男도 그랬다. 그들은 정녕 서로를 사랑했던 것이다.


한 쪽은 함께있어도 시간을 공유하지 못하는 커플이고, 다른 한 쪽은 아주 아주 오래도록 떨어져 있지만 시간을 함께 하고 싶은 사람들이다. 이 영화는 이런한 시간의 대조법을 잘 활용했다. 男과 女의 사랑에 관한 영화라서 결말이 훤이 보이고, 뻔한 영화라서 뻔할 뻔짜, 누구라도 짐작이 가지는 영화이지만 그래도 재밋고 진지한 것은 이성이 아니라 감성에 닿아있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이성(理性)의 중요성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나는 삶의 8할은 감정이 차지한다고 보는 입장이다.


에릭 프롬은 철학자이지만 '사랑의 기술'은 '태도'의 중요성과 '훈련'을 강조한다. 나아가 에릭 프롬은 사랑을 '사랑 받는 사람의 성장과 행복에 대한 능동적 관심'으로 규정한다. 사실 이 모든 것들은 감정에 관여하는 것들이다. 그에의하면 감정도 훈련을 해야할 필요가 있다. 에릭 프롬은 감정을 세련되게 표현하는 방법을 익히라고 권하고 있는 것이다.
에릭 프롬은 사랑은 둘이 하나가 되는 것이지만 동시에 둘로 남아있다는 역설이 성립한다고 말한다. 그 연결 코드는 단연 감정이 아니겠는가.



카네기는 말한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라'. 쉽게 말해 일을 성사시키려면 상대방의 마음을 얻으라는 조언이다.


카네기가 말하는 기본은 '논쟁하지 마라, 비난 하지 마라, 칭찬 하라'이다. 한마디로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게 해서 이로울게 하나도 없다는 뜻이다. 그는 논쟁에서 이기려면 논쟁하지 말라고 한다. 상대방의 이름을 기억하고 상대방에게 말을 많이 하게하라고 조언한다. 실제로 논쟁의 승자가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는 경우는 드물다. 카네기의 이 모든 조언들은 상대방의 감정을 고려한 조언들이다.

카네기의 결론은 이것이다. 진심으로 찬사를 보내고 아낌없이 칭찬하라!!


얼마 전 나는 한장의 청첩장을 받았다. 그 男과 그 女가 상암동에서 결혼을 한다는 소식이다. 서로 사랑하여 혼인을 하게되었으니 정말 축하할 일이다. 두 사람의  행복을 진심으로 빈다.  




사실, 혼인을 할 정도의 인연은 따로 있다. 인연이 없는 상대와는 아무리 노력을 해도 뜻을 이룰 수 없고, 인연이 있다면 누가 뭐래도, 또 어떤 일이 닥쳐와도 결국 뜻을 이루게 되어있다.  이런 점에서 내가 그 男의 결혼에 기여한 바는 없다고 보는 것이 맞다. 아무리 내가 나선들, 인연이 아니면 결코 이루어지지 않았을테니 말이다. 그렇기는 하지만 독서는 열심히 합시다요~! 
 

마지막으로,  그 男과 헤어져 돌아서면서 아차 하고 후회한 책이 떠올랐다.  함께 주었으면 훨씬 더 좋았을걸 후회 했던 것이다. 그 책은 바로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였다. ㅠ 더이상 책을 주지 않아도 될듯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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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6-05-19 2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눈을 바라보며 말하기가 쉽지 않죠. 사과도 사랑도 눈을 바라보고 해야 하는데 말입니다. ㅎㅎ

차트랑 2026-05-20 08:26   좋아요 0 | URL
아이구야~
생각해보니, 눈을 바라보며 말하기가 쉽지 않아보이는군요~ ㅠ

오늘은 비가 오시네요.
좋은 하루 되십시요 잉크냄내님~!!


firefox 2026-05-20 0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 잘봤습니다. 건강은 회복하셨는지 궁금하네요. 언제나 건강하고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차트랑 2026-05-20 08:37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firefox님,
저의 건강을 염려해주셔서 고맙습니다.
현재는 회복한 상태입니다.

건강한 신체를 가졌다는 것은 정녕 홍복입니다.
firefox님도 늘 평안하시고,
건강하십시요~!!
 


[[[ 주문 날짜를 확인하니 2025. 08. 14 일로 되어있다 ]]]




지난 해 7월 중순 무더운 어느 여름 날, 뜻밖의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주신 분은 30대 초반의 아들을 둔 어머니였다. 사연인 즉, 아들 커플의 결혼 얘기가 오간 후, 어떤 이유로 女가 마음의 결정을 하지 못하고 혼란스러워하고 있다는 것이다. 해서 사주 상담을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나는 사실대로 말했다. '아쉽게도 저는 명리를 업으로 하지 않으며 만족할 만한 답을 드릴 수도 없으니, 다른 전문가를 찾아보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고 정중하게 전화를 마무리했다.


나는 좋은 팔자를 타고나지 못했다. 어린 시절부터 늘 목숨이 위태로웠다. 슈베르트나 멘델스존, 모자르트의 명을 애도하며 하염없이 슬퍼하고 있지만 현대 의학이 아니었다면 나는 슈베르트 형님과 같은 나이에 이미 세상을 등졌을 것이다. 당시 나의 상태는 4시간의 수술과 20cm 이상의 복부 절개를 피할 수 없었다. 낭만주의 시대에 태어났더라면 나는 딱 30년 살고 죽은 목숨이었다. 

명(命)이란 대체 무엇인가. 명리 술사들이 내게 하는 말들이 어김없이 들어 맞았다. 좋은건 모르겠지만 불길한 것들은 죄다 비켜가지 못했다. 어느 명리의 대가는 말했다, "그냥 넘어가는 법은 없습니다!!". 불길한 일은 반드시 짚고 넘어간다는 말이었다. 나는 명리에 무언가가 있나보다 싶었다. 병든 몸을 치료하면서 명리를 공부하게 된 동기였다. 병든지가 오래인만큼 적지 않은 세월 공부를 했다. 그러나 공부를 하면 할수록 내게 명리는 더 어렵게 느껴졌다. 


까짓거 고전을 죄다 독파하면 무슨 수가 안나겠나 싶었고, 차례로 도장을 깨듯 호기있게 하나 둘씩 고전을 독파해갔다. 그러나 실상은 나의 예상과는 전혀 달랐다. 고전들의 독파는 결코 명리의 끝이 아니었다. 본게임 전 워밍업, 겨우 예열에 불과했던 것이다. 비록 열공은 했으나 이렇게 어려운 명리를 친구따라 강남가듯 공부했으니 오히려 천만 다행이구나 싶은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작정하고 덤볐더라면 좌절한 끝에 실망이 대단히 컷을 테니까. 고전들을 죄다 독파하면 태권도 2단쯤 되는 무지렁이나 다름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데는 꽤나 많은 세월을 필요로 했다. 솜씨 있는 스트리트 파이터를 만나면 쌍코피 터지는 어리버리한 태권도 2단이 바로 나의 모습일 것이다.



그런데 정확히 한 달 후 8월 중순 어느 날, 같은 분께서 다시 전화를 주셨다. 자녀의 상황에 개선의 여지가 없어 답답하다며 (나의) 사정은 알겠지만 꼭 좀 뵙고싶다는 것이었다. 일이 난처하게 되었다. 사정을 알렸는데도 한달을 고민하시다가 다시 전화를 주셨으니, 이 번에는 거절하기가 쉽지 않겠구나...싶었다.

그래서 고민 끝에 '자녀분의 사주가 아닌, 선배로서 인생 상담은 해드릴 수 있는데 괜찮으시겠냐'고 물었다. 다행스럽게도 전화를 주신 분은 그래도 좋다고 답했다.


혼인을 하려는 당사자들의 일지(日支)를 형(刑)할 경우, 일이 뜻대로 이루지지 않는다. 조건 전제가 충족될 경우, 일지를 충(沖)해줘야 되려 혼인이 성사되기도 한다. 이런 면에서 차라리 상충은 깔끔하다. 반면 형(刑)은 물고 뜯고 비트는 형국이라 그 모양새가 깔끔하지가 못하다. 그리하여 충(沖)보다 형(刑)에서 더 골치 아픈 상황이 벌어진다. (민 형사의 소송도 형(刑)에서 발생한다). 심지어 청첩장을 돌리고 난 후에도 일이 틀어지는 경우를 직접 보았다. 혼인을 앞둔 당사자들의 일지 형은 그러므로 고약한 것이다. 또한 천간(天干)에서 男은 재(財)를, 女는 관(官)을 때려내거나 합거할 경우 일이 뜻대로 되다가도 중간에 어김없이 일이 틀어지고 만다.

여하튼 시간과 장소를 정하고, 위기의 男에게 줄 2권의 책을 알라딘에 주문했다. 준비한 책은 에릭 프롬이 쓴 ' 사랑의 기술' 그리고 그 유명한  '데일 카네기 인간관계론'이었다.


시대가 눈부시게 나아갈수록 독서 지수는 오히려 퇴보한다. 누군가 역사는 진보한다고 말했지만 '진보한다'는 술어가 왠지 어색하다. 진보하는 시대는 개인에게 더 많은 량의 정보를 처리하도록 요구한다. 처리해야할 정보 량이 더 많아졌음에도 시대는 시간을 더 재촉한다. 정보 처리 부담이 커졌지만 시간은 되려 더 촉박하다는 딜레마에 빠진다. 진보하지만 이러한 불합리한 시대에 살아가는 젊은이들은 책보다 빠르고 손쉽게 정보를 습득할 수 있는 매체를 선호할 수 밖에 없다. 더불어 이 시대는 빠르고 정확한 정보를 원하는 사람에게 그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긍정적 환경을 제공해 주고 있다. 때로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가끔 나는 그 진위를 몰라 허우적이기도 하지만.



시대가 초래해온 또다른 문제는 '정보의 쪼개기'이다. 처리해야할 정보가 많아져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다다르면 이를 쪼갤 수 밖에 없다. 그 결과 정보와 지식은 수직성을 띈다. 수직성의 문제는 상호 소통의 어려움을 야기시키는데 있다. 수직성이 가지는 특성은 벽이다. 스스로를 그 안에 가두려한다. 전문성을 댓가로 희생된 확장성의 상실은 소통의 장애물로서 기능을 하는 것이다. 소통 장애는 곧 공감력의 상실과 등가물이 된다. 인류가 겪는 진보의 딜레마이다. 이런 환경 속에 처한 현생 인류가 어찌 전쟁을 피해갈 수 있겠는가.


인문학과의 거리는 더욱 멀어지고, '아름다운 추억' 혹은 '멋진 낭만'도 이제는 사라졌다. '추억'과 '낭만'을 좀더 세련되게 표현한 용어는 '사회성' 이다. 추억과 낭만은 반드시 타자를 포함하기 때문이다. '타자가 함께한다'는 것의 의미는 '사회적'이라는 의미와 대등하다. 그러므로 추억과 낭만은 사회성의 등가물이다. 


이럴 경우 누군가 대신 사회성, 즉 인문학을 전달해줘야한다. 상실의 시대에 인문학 강의가 인기있게 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시대는 인간에게 물질의 풍요를 가져다 주지만 인간의 가슴 속에서 그만큼의 무엇인가를 앗아간다. 스스로도 자신의 가슴 속에서 무엇인가가 점점 사라져가고 있음을 느낀다. 그리고 가슴속 허해져 텅 빈 공간을 다시 채우고 싶어한다. 이는 풍요로움이 가져오는 일종의 갈증이다. 바닷물을 마실수록 목이 더 타들어가듯 말이다.


이러한 일련의 상황들은 깊은 사유 공간을 제공하지 못하는 치명적인 시대 환경을 제공한다. 이는 특히 인간관계에서 부정적으로 작용하기에 매우 적합한 조건이다. 상호 교류와 심리적 혹은 내적 관계를 올올이 저해하는 환경이기 때문이다. 관계에서의 공감능력은 점차 퇴화해 왔다. 시대가 발달할 수록 더더욱 필요한 것은 이성이 아니라 감성이다. 특히 상호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감성지수 말이다. 


어째든 난관을 만난 男과 그 어머니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원인 제공자는 바로 이 男이었다. 어떤 사건을 계기로 男은 女에게 진정성을 의심받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 男에게, "그렇다면 천만 다행입니다" 했더니, 그 男 왈, " 아, 왜요?" 했다. "왜기는요, 내가 잘못했으니 내 잘못을 내가 바로잡으면 되므로 다행이라는 것이지요. 잘못이 상대방의 것이라면 그것을 내 뜻대로 바로잡을 수 있겠습니까?" 했다. 그 男은 기연미연하는 듯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이 男의 이런 반응으로 보아 이 男은 아직 女와의 문제를 진정으로 해결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듯 보였다. 아니, 어쩌면 방법을 모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 어머니께 말씀 드렸다. "자녀분의 문제는 어렵지 않게 풀어낼 수가 있겠습니다", 라고.
 
순간, 그 男과 어머니의 두 눈이 똥그래졌다. "정말요?" 그래서 "네, 물론입니다" 했다. "이제부터는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한가지만 갖춘다면 조만간 해결 할 수 있겠습니다." 했다. "그게 뭔가요?" 갑자기 두 사람의 얼굴에 화색이 돌면서 바로 질문이 들어왔다. "제 말씀을 잘 들으셔야 합니다. 아주 어렵기도 하지만 또 아주 쉽기도 합니다" 이렇게 말해 놓고 말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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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6-05-13 20: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적절하게 잘 끊으시는군요. ㅎㅎ

차트랑 2026-05-14 08:15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잉크냄새님,
제가 간혹 넘버를 붙여 알라딘을 합니다만
사실 이번에는 끊으려고 끊은 것은 아니랍니다.
출근도 못하고 나흘 째 누워있다가 알라딘하는데, 다 쓰기에는기력이 모자라는군요.
컴 앞에 잠시 앉았더니 힘이드네요 ㅠ.
하는 수 없이 글을 나누게 된것입니다.

저의 출근은 오후 1시 입니다만
오늘 아침 상태를 보니 쉽지 않을듯 하네요ㅠ
건강한 신체는 정녕 홍복입니다!!


건강하십시요 잉크냄새님~
(혼자일랑 가지를 마시구요^^)

추신ㅡ좋은 하루 되십시요 잉크냄새님~
 


19세기를 빛낸 펠릭스 멘델스존은 정말 멋지고 훌륭한 음악가였다. 사실, 작곡 외에 독일 음악사에 남긴 업적만으로도 그는 후배 인사들에게 돈수백배 존경받아 마땅한 인물이었다. 실제로 그는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칭송 받았다. 또, 음악에만 재능이 있었냐 하면 그렇지가 않았다. 문학과 미술에도 재능이 있었다. 그가 남긴 역사가 이를 반증한다. 신(神)은 예술가들에게 다양한 재능을 한꺼번에 몰아주시곤 한다. 아... 신에게 그 어떤 재능도 부여 받지 못한 나의 슬픔이여...!! 이거 너무 불공평한거 아닌가요?


 

음악의 아버지 바흐 선생의 곡을 들어보지 못한 분들은 꽤 있겠지만,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다들 멘델스존 형님의 곡을 알게 모르게 들어봤다고 장담할 수 있다. 실황이나 드라마에서 신부가 입장할 때 나오는 결혼 행진곡은 바로오~~~!! 멘델스존 형님께서 쓰신 곡이지 말입니다.



멘델스존 형님은 다수의 유명한 음악가들과는 달리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큰 부자였고 은행장이었다고 한다. 멘델스존의 친형님 되시는 분도 사설 은행을 운영했다고 하니, 한마디로 제대로 금수저였다. (친형님 되시는 분도 박애정신을 가진 분이었다고 책에 써있다) 멘델스존 형님은 1809년 생으로 초기 낭만파의 인물이다. 낭만주의는 1789년 프랑스 혁명과 산업혁명이 불러온 시대의 변화와 관련이 깊다.




즉, 왕실, 귀족, 상류층들의 소비물로 인식되던 클래식칼 음악이 시대의 변화에 따라 중산층의 소비물로 이동했던 것이다. 베토벤이 위대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어마어마한 곡을 썼다는 자체로도 위대한 음악가이지만, 베토벤은 음악 소비의 방향성을 귀족과 상류층에서 대중에게로 향하도록 물꼬의 방향을 틀어 잡았다. 대중에게 낭만 음악의 문을 열어준 장본인이 바로 악성

베토벤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고전 음악의 대중성 확보는 베토벤을 기점으로 한다. 베토벤이 위대한 것은, 들리지 않는 귀로 그토록 훌륭한 음악을 작곡해서가 아니다. 음악사를 바꾼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바흐 선생은 분명 음악의 아버지이다. 그리고 친애하고 경애하는 베토벤 선생은 이런 점에서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정녕 악성(樂聖)이다.


부유한 집안 덕분일까, 멘델스존 형님은 진보적 성향을 가진 낭만주의 음악가들과는 약간 다르게 보수적인 성향이 있었다. 그의 작곡은 고전주의 형식을 지켰으며 낭만주의의 향기를 입혀버렸다. 즉, 낭만주의의 향기를 풍기면서 고전주의의 맛을 가진 묘한 음악을 시전하신 것이다. 그 결과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멘델스존 형님은 안정감을 가진 낭만주의 음악을 낳게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의 음악은 주로 밝은 편이었다. 역사가들은 그가 "전통과 개혁 사이에 균형잡힌 해결책을 찾아냈다." (중앙일보사 音樂의 遺産 5권 p.107) 라고 쓰고 있다. 





[[[ 괴테는 어린 멘델스존을 천재라 칭했다. 그의 재능을 일찌기 알아봐준 사람 중 하나가 요한 볼프강 폰 괴테였던 것이다. 과연 멘델스존 형님이 '한여름 밤의 꿈' 의 'Overture 서곡'을 완성한 시점은 1826년 이라고하니 형님의 나이 불과 17세였다. (나머지는 그 후 오랜 시간에 걸쳐 완성했다)

17세의 멘델스존 형님께서 셰익스 피어가 쓴 희곡 '한여름 밤의 꿈'을 읽고 영감을 얻어 곡을 썼다고 전한다. 그는 문학 소년이었고 독서는 이토록 그 파급 효과가 지대하다. 지극히 위험한 것이 독서이기도 하지만, 알고보면 대한민국 커플들의 결혼 행진곡에 독서가 긍정적 영향력을 행사했던 것이다. ]]]




[[[ 위 왼 쪽 ㅡ 12세의 멘델스존 (칼 베가스 유채 스케치 1821년)

12세의 멘델스존은 가르침을 받던  첼터의 안내로 괴테를 방문했다. 1749년생 괴테는 멘델스존 보다 60세가 더 많았다. 당시 멘델스존은 72세의 괴테 어르신을 접견한 것이었다. 괴테는 멘델스존을 무척 마음에 들어했다. 괴테가 어린 소년에게 말했다. "나는 사울이고 너는 다윗이다." (음악의 유산 5권 p. 108) 


괴테 어르신은 향년 82세, 1832년에 돌아가셨다. 모자르트, 슈베르트, 슈만, 쇼팽 등이 괴테 어르신 만큼 살았더라면 어땠을까. 이렇게 나의 마음이 아프지는 않았을 것이다.


8년 후 멘델스존이 영국을 방문했을 때  그의 초상화를 그려준 '대커리'라는 화가는 "내가 지금껏 보아온 중에서 가장 잘생긴 얼굴"(음악의 유산 p.107) 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 말씀, 믿어도 되나요 대커리 선생? 


위 오른 쪽 ㅡ 부인인 세실 멘델스존 (에두아르투 마그누스의 유화, 1873년)

결혼 전에 그린 그림이라고 한다. 세실 멘델스존은 "재능있는 예술가로서 지적이며 아름답고 매력적이고 생각이 깊었다" (음악의 유산 5권 p.115) 라고 써있으며 "아주 행복한 결혼 생활"을 했다고 전한다. ]]]

 


멘델스존이 낭만주의 음악 환경에서 보수적인 모습을 보인 것이 전부는 결코 아니다. 여유가 있는 집안인 만큼 경제적인 난관에 처한 음악가들을 위해 애써준 분이 또한 멘델스존 형님이시다. 자신이 가진 것을 아낌없이 나눌 줄 아는 정말 멋진 분이었다. 그의 혜택을 받은 음악가들은 셀수도 없지만 로베르트 슈만과 쇼팽을 포함한다 (멘델스존보다 한 살 아래였던 슈만형과 쇼팽형은 1810년생으로 동갑이다). 두분께 얼마나 큰 힘이 되었을까. 찐 보수는 이런 보수이다. 기득권을 지키기위해 배타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이 아닌, 널리 타자를, 그리고 사회를 이롭게 하는 보수가 진정한 보수인 것이다. 



독일 음악을 한층 더 고양시키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은 인물이 또한 멘델스존 형님이다. 그는 바흐 선생과 헨델 선생을 현대에 인식되는 인물로 역사에 남도록 애써준 장본인이었다. 바흐와 헨델 선생을 연구하여 세상에 알린 사람이 바로 멘델스존 형님이었던 것이다. 멘델스존 형님이 아니었더라도 그 누군가는 해냈을 일이겠지만 직접 해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하겠다. 멘델스존의 노력으로 바흐 선생은 서양 음악사에서 새롭게 태어났다. 어느 전설적인 고전음악 큐레이터는 말했다, '머나먼 여정을 떠났다가 다시 바흐로 회귀하는 것이 고전음악'이라고. 서양음악은 바흐로 시작해 바흐로 끝을 맺는다는 뜻이다. 위대한 바흐의 존재와 멘델스존 형님의 관계가 그러했다.



 

그는 독일의 가장 오래된 음악원의 설립자이자 원장이었으며 교수였다. 게반트 하우스 오케스트라의 지휘를 맡았던 그는 라이프지히 컨서버토리(Leifzig Consrvatory)를 몸소 설립했다. 슈만과 그의 아내 클라라도 이 학교의 교수직을 역임하며 힘을 보탰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이던가. 브람스는 이런 교육의 혜택을 가장 많이 받은 인물 중 한 사람 이었다. 그 후 더 확장된 라이프치히 음악학교의 이름을 '펠릭스 멘델스존 바르톨디 '로 바꾸어 부르고 있다. (멘델스존의 풀네임은 Jacob Ludwig Felix Mendelssohn Bartholdy 이다) 이 예술대학의 이름에서 멘델스존 형님께서 어떤 일을 해내셨는지 잘 알수 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보수인가! 멘델스존 선생께서는 보수의 정의를 몸소 실현하며 살다간 분이다. 대한민국의 보수라고 칭하는 자들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이 학교는 독일의 내로라하는 연주가들은 물론 수많은 지휘자등을 배출했다. 셀수도 없는 예술가들은 멘델스존 선생의 노고와 베품의 은덕을 입지 않은 경우가 거의 없었다. 말하면 뭐하노 푸르트뱅글러, 지극히 경애하는 쿠르트 마주어, 체코의 심리학 야나첵, 도덕주의자 브르노 발터, 색체의 마법사 리카르도 샤이 등등은 너무나도 잘 알려진 인물들이며, 멘델스존의 커다란 노고와 지대한 헌신으로부터 나온 인물들이다. 




[[[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 2악장 안단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바협 2악장으로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그의 성격에 대한 험담들이 있지만 2악장을 들어보면 생각이 완전 달라진다. 감정의 절제미를 완성시킨 곡이 바로 바협 2악장이니 말이다. 포스팅한 분의 해설이 있어 업로드 해본다. ]]]



성격은 한성깔 했다고 전해지지만 누나와의 서신교환 내용을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은듯 하다. 어째거나 팬이 있으면 안티도 있는 법, 멘덜스존 형님은 아주 쿨한 성격을 가졌던듯 싶다. 그는 자신의 재물을 어떻게 써야할지를 알았던 인물이었고, 써야할 곳에 화끈하게 쓰신 분이다. '천재'란 '하늘이 내린 사람'이란 뜻이다. 멘델스존 형님이야말로 진정한 천재였던 것이다. 하늘이 천재를 내릴 때에는 자신만의 영달을 위한 삶을 살아가라고 내리는 것이 아니다. 하늘이 준 그 재능을 세상에 펼쳐, 널리 널리 이익이 되게 하라는 뜻으로 내리는 인물이 천재인 것이다. 과연 멘델스존 선생이야말로 하늘이 내린 진정한 천재였다. 천재라고 다 같은 천재가 아니다. 진정한 천재는 이렇듯 따로 있는 것이다.




그는 작곡, 연구, 음악원 운영, 인재 발굴, 순회 공연등으로 잠시도 쉴 틈이 없었다. 음악사에 길이 빛낼 일을 하느라 너무나도 바쁘게 살았다. 그는 어느 한 순간도 헛되게 보내지 않았다. 그렇게 그는 자신을 혹사시켰으며, 자신의 건강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 결국 형님께서는 과로가 쌓이고 쌓여 병을 얻게 되었다. 이럴 땐 좀 쉬셔야하는데, 순회 공연 일정을 소화했다. 결국 선생께서는 영국 고연을 마치고 돌아온 후 뇌졸중으로 그만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그의 나이 향년 38세, 1847년의 일 이었다. 아... 이 또한 얼마나 안타까운 일이던가. 하늘은 진정한 천재를 낳고도 어찌 이리도 박정하시단 말인가.



그는 생전에 죽음을 이렇게 표현했다고 한다, "음악이 계속 존재하면서도 더이상 슬픔이나 이별이 없는 곳"이라고. 로베르트 슈만은 커다란 슬픔속에서 친 형님과도 같았던 멘델스존을 운구했다. 두 사람은 서로 든든하고 믿음직했으며 참으로 멋진 관계였던 것이다.


모자르트 향년 35세, 슈베르트 향년 31세, 슈만 향년 46세, 쇼팽 향년 39세 그리고 멘델스존 향년 38세.
대체 이게 어찌된 일이란 말인가...!! 할일이 너무나도 많았던 분들을 그렇게 빨리 데려가시다니! 신이시여, 이토록 귀한 분들을, 정녕 그러셔도 되는건가요? (오늘 따라 신에게 불만이 많다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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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6-05-06 18: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말 고급진 낭만주의 작곡가라고 생각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다만 그의 보석 같은 현악사중주와 현악팔중주가 빠진 것이 조금 아쉽습니다.

차트랑 2026-05-06 22:12   좋아요 1 | URL
저의 서재를 찾아주셔서 고맙습니다 Falstaff님.

제가 종종 언급하는 ‘태권도 2단론‘이 있습니다.
고전음악에 관해서 Falstaff 님께서 태권도 9단이라고 한다면
저는 겨우 2단에 해당한다고 볼수 있습니다.
본디 고수들은 강호에 있되 은둔하지만 2단 짜리들은 꼭 티를 냅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임자를 만나 쌍코피가 터지고 말죠^^

멘델스존 형님의 현악곡을 첨가했더라면 훨씬더 좋았겠지만
제가 그러지 못한 것은 아직 뭔가를 제대로 모르는 2단쯤 되기때문입니다.

이점 너른 양해를 구합니다 Falstaff님.

기온이 좋은 밤입니다.
좋은 밤 되십시요~



니르바나 2026-05-09 13: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멘델스존, 용모만큼 아름다운 음악 인생을 사셨군요.
다만 미인박명은 여성에만 해당되는 옛말인줄 알았는데 38세로 저세상으로 돌아가신 일은
지금 생각해봐도 인간적으로나, 음악적으로나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었네요.
저 개인적인 취향으로 가을에는 브람스 음악을 많이 듣지만
봄을 여는 음악으론 단연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입니다.
그리고 5개의 교향곡도 듣기 좋습니다.
물론 현악 중주곡들도 아름답구요.
차트랑님, 즐거운 주말 시간 보내세요.^^

차트랑 2026-05-09 18:51   좋아요 1 | URL
안녕하세요 니르바나님,
말씀해주신대로 아낌없이 나누는 삶을 살다간 멘델스존의 죽음은
여러면에서 참으로 아쉬움이 큽니다.

경애하는 마음으로 멘델스존 선생의 음악을 들으며
그의 삶과 생각과 박애의 아름다움을 가까이 하고 싶군요.

말씀해주신 교향곡과 현악 중주곡들을
잘 들어보겠습니다.
편안한 주말 저녁 되십시요 니르바나님~!


 


혹여 제목이 거창하여 클릭 후 실망하신 분이 계시다면 죄송합니다.

오늘의 날씨는 마치 Vincent 를 닮아 뒷 동산에 오르내리며 

들은 노래 중 하나 입니다.






 2001년 데뷔 앨범인데 완성도가 가장 높다고 느낀 음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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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6-05-03 11: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Starry, starry night~~~ 를 어찌 잊을 수 있을까요?

차트랑 2026-05-03 12:28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잉크냄새님,
독서는 참으로 영향력이 지대한듯 합니다.
돈 맥클린은 고흐 선생의 일대기를 읽고
이토록 멋진 곡을 써서 불렀고,
멘델스존은 셱스피어의 희극을 읽고 ‘한 여름 밤의 꿈‘을 작곡했으니 말입니다.

아, 박기서 선생은 김구 선생의 자서전을 읽은 후
정의봉을 들고가서는 안두희를 단죄했다고 하니,
독서의 힘은 참으로 ...

다음 포스팅은 존경하는 멘델스존 형님에 관한 것입니다^^
좋은 하루 되십시요 잉크냄새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