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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 네이버 블로그 Chan's Screen  ]]] 



그 남에게 들려준 얘기는 대단한 것이 아닌, 누구나 해줄 수 있는 말이다.  그 남이 자신의 여친에게 잘못한 일이 있어 일이 이렇게 되었다고 하여 다음의 이야기로 시작했다.   


1) 사과는 눈을 보면서 하는 거란다


그 男에게 말해준 것 중 하나는 영화의 한 장면이었다.  바로 'Letters to Juliet'이 라는 영화이다. 기억을 잊어 검색을 해봤다. 2010년 수입 개봉한 영화이고, 관객수는 58만명이다. 그 해에 개봉한 영화 원빈과 김새론양의 "아저씨"가 관객수 617만명을 기록했다고 한다. '아저씨'에 비하면 죽을 쒀도 제대로 쑨 영화다. 이 영화의 대한민국 당해 년도 관객수는 10위 안에 들지 못했다. 로열티를 회수는 했는지 모르겠다.
(아...!  갑자기 원빈의 진짜 감동적인 대사가 다시 떠오른다. 눈을 부르릅 무섭게 뜨고, 어금니를 있는 힘껏 긴장시키며, 이를 악물고 원빈이 분노에 사무친 표정으로 저음의 포효를 내뱉는다 " 나 전당포한돠!!!!! 금니빨 빼고 싹다 씹어먹어주께에ㅡ!!!!!!!!!!!!!!!!!"  사실은 "모조리 씹어 먹어줄게" 이다 ) 


대한민국에서의 흥행은 별로였고, 그리 임팩트가 있는 성격의 영화도 아니어서 이 영화를 좋아하는 분들이 몇이나 계실지는 모르겠다. 나는 할머니 역으로 출연한 '바네사 레드그레이브 Vanessa Redgrave'의 팬이라고는 말하지 못하겠지만 좋아하게 되었다.

이 영화와 레드그레이브를  좋아하게 되는 동기를 부여해주는 장면이 하나 있다. 나의 기억 속에 각인된 정말로, 정말로 멋진 장면 말이다.

젊은 남자 주인공 '찰리'는 어쩌다가는 젊은 여자 주인공인 '소피'의 마음에 생채기를 내버린다. 스토리가 늘 그러하듯, 찰리는 소피에게 사과하고 싶어한다. 아래의 대본에서 보듯이 사과하는 입장에 있는 찰리의 태도가 영 어색하고 시원찮다. (어쩌면 이런 남자가 진짜일 수 있다. 선수는 절대로 이런 아마추어같은 모습을 보이지 않으니 말이다. 매사 능숙하고 이벤트 하는 남자 조심...) 그러자 갑갑했던지 이를 보다못한 할머니 클레어의 즉석 사과법 한 수 지도 들어가신다.


"사과는 정중히, 그리고 눈을 보면서 하는거란다. 진심을 담아서, 그리고 뉘우치는 마음으로", 영화 letters to Juliet 에서 할머니 클레어는 자신의 손자 찰리에게 이렇게 지도하신다. 우리말 해석을 내 멋대로 이렇게 하기는 했지만 대본을 들여다보면 다음과 같이 써있다.


영화 속의 클레어는 " in the eyes, truly,  with contrition and sincerity 눈을 보면서, 그리고 진심으로 뉘우치면서" 라고 아주 부드러운 톤으로, 동시에 마치 훌륭한 교육자 상을 백만 번은 받았을 법한 초등학교 선생님이 학생들을 지도할 때 보여주는 우아하고도 소신있는 목소리로 또박또박 말한다. 영화에서 클레어는 분명히 "truly" 라고 말하지만 위 대본에는 없다. 클레어의 애드립인지 아니면 다운로드 받은 대본이 빼먹은 것인지 나로서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그 "truly"가 주는 레드그레이브의 딕션은 순간의 장면과 아주 잘 어울렸고, 지도의 순간을 훨씬 더 빛나게 했다고 생각한다. 할머니의 지도력 있는 이 장면은 클레어라는 어른의 존재 이유를 증명해준다. 나는 이 뭉클한 장면을 선명하고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그런 일이 생기지 않는 것이 좋겠지만 행여 사과를 할 일이 발생한다면 늘 클레어의 말을 기억했다, "사과는 눈을 보면서 하는 거란다.".



2) 사랑은 감정이다!!


또 물론 스토커를 말하려는 것이 아닌 줄은 다 아시리라 믿는다. 또한 집착을 말하려는 것도 아닌 줄은 다 아시리라 믿는다. 사실 이 말은 하나마나한 말이지만, 영화에서 할머니는 손자에게 사랑은 감정이라는 것을 가르치고 있는 중이다.

용서를 구해야하는 입장에 처한 사람이 취해야할 태도가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느냐는 모든 관계의 핵심일 수 있다.
화가 나있거나 마음의 상처를 입은 상대에게 아무리 이성적인 접근을 시도한다 한들 소용이 없다. 이성적인 접근은 애초에 코드 자체가 다른 것이다. 이해를 요하는 상황에서 오해가 발생한 경우 이성적인 설득이 주효할 것이지만, 마음을 얻어야하는 상황에 알맞는 코드는 감정이다. 감성과 이성은 애초에 파동 자체가 다른 성질의 것이다. 기분이 나쁘면 매사 일이 틀어지니 말이다. 사실 남녀의 관계는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이다.
 



3) 사랑은 시간이다!!


사랑은 시간과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 또는 그녀가 나를 위해 얼마의 돈을 쓰느냐도 하나의 척도가 될 수는 있겠다. 그러나 시간은 돈과 바꿀 수 없고, 그 무엇과도 교환할 수 없는 가치를 가졌다. 그 귀하디 귀한 시간을 아낌없이 나와 함께하고 싶어하는 사람은 분명 사랑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돈으로 시간을 사려는 사람은 사랑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또한 그러므로 한 겨울 나를 위해 뜨개질한 한 켤레의 벙어리 장갑은 바로 사랑의 증표가 될 수 있다. 자식 또한 마찬가지다. 돈으로 키운 자식과 시간으로 키운 자식은 분명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한다. 시간으로 키운 자식은 나이가 들어 그 시간을 부모에게 되돌려주려고 노력한다. 반면 돈으로 키운 자식은 그럴 가능성이 거의 없다. 결국 자녀의 불효를 한탄할 가능성이 높다.


소피는 곧 결혼하기로 약속한 약혼남과 여행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나 이 약혼남은 사업에 몰두하느라 소피와 시간을 함께하지 못한다. 함께 여행을 와서는 따로 논다고? 이 男은 함께있어도 상대방을 외롭게 만드는 스타일의 男이었다. 영화니까 그러는 거겠지만 말이다.  반면, 할머니 클레어는 과거에 자신의 마음을 내어준 남성을 50년간 잊지 못하고 있었다. 그것은 클레어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상대방 男도 그랬다. 그들은 정녕 서로를 사랑했던 것이다.


한 쪽은 함께있어도 시간을 공유하지 못하는 커플이고, 다른 한 쪽은 아주 아주 오래도록 떨어져 있지만 시간을 함께 하고 싶은 사람들이다. 이 영화는 이런한 시간의 대조법을 잘 활용했다. 男과 女의 사랑에 관한 영화라서 결말이 훤이 보이고, 뻔한 영화라서 뻔할 뻔짜, 누구라도 짐작이 가지는 영화이지만 그래도 재밋고 진지한 것은 이성이 아니라 감성에 닿아있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이성(理性)의 중요성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나는 삶의 8할은 감정이 차지한다고 보는 입장이다.


에릭 프롬은 철학자이지만 '사랑의 기술'은 '태도'의 중요성과 '훈련'을 강조한다. 나아가 에릭 프롬은 사랑을 '사랑 받는 사람의 성장과 행복에 대한 능동적 관심'으로 규정한다. 사실 이 모든 것들은 감정에 관여하는 것들이다. 그에의하면 감정도 훈련을 해야할 필요가 있다. 에릭 프롬은 감정을 세련되게 표현하는 방법을 익히라고 권하고 있는 것이다.
에릭 프롬은 사랑은 둘이 하나가 되는 것이지만 동시에 둘로 남아있다는 역설이 성립한다고 말한다. 그 연결 코드는 단연 감정이 아니겠는가.



카네기는 말한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라'. 쉽게 말해 일을 성사시키려면 상대방의 마음을 얻으라는 조언이다.


카네기가 말하는 기본은 '논쟁하지 마라, 비난 하지 마라, 칭찬 하라'이다. 한마디로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게 해서 이로울게 하나도 없다는 뜻이다. 그는 논쟁에서 이기려면 논쟁하지 말라고 한다. 상대방의 이름을 기억하고 상대방에게 말을 많이 하게하라고 조언한다. 실제로 논쟁의 승자가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는 경우는 드물다. 카네기의 이 모든 조언들은 상대방의 감정을 고려한 조언들이다.

카네기의 결론은 이것이다. 진심으로 찬사를 보내고 아낌없이 칭찬하라!!


얼마 전 나는 한장의 청첩장을 받았다. 그 男과 그 女가 상암동에서 결혼을 한다는 소식이다. 서로 사랑하여 혼인을 하게되었으니 정말 축하할 일이다. 두 사람의  행복을 진심으로 빈다.  




사실, 혼인을 할 정도의 인연은 따로 있다. 인연이 없는 상대와는 아무리 노력을 해도 뜻을 이룰 수 없고, 인연이 있다면 누가 뭐래도, 또 어떤 일이 닥쳐와도 결국 뜻을 이루게 되어있다.  이런 점에서 내가 그 男의 결혼에 기여한 바는 없다고 보는 것이 맞다. 아무리 내가 나선들, 인연이 아니면 결코 이루어지지 않았을테니 말이다. 그렇기는 하지만 독서는 열심히 합시다요~! 
 

마지막으로,  그 男과 헤어져 돌아서면서 아차 하고 후회한 책이 떠올랐다.  함께 주었으면 훨씬 더 좋았을걸 후회 했던 것이다. 그 책은 바로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였다. ㅠ 더이상 책을 주지 않아도 될듯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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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6-05-19 2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눈을 바라보며 말하기가 쉽지 않죠. 사과도 사랑도 눈을 바라보고 해야 하는데 말입니다. ㅎㅎ

차트랑 2026-05-20 08:26   좋아요 0 | URL
아이구야~
생각해보니, 눈을 바라보며 말하기가 쉽지 않아보이는군요~ ㅠ

오늘은 비가 오시네요.
좋은 하루 되십시요 잉크냄내님~!!


firefox 2026-05-20 0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 잘봤습니다. 건강은 회복하셨는지 궁금하네요. 언제나 건강하고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차트랑 2026-05-20 08:37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firefox님,
저의 건강을 염려해주셔서 고맙습니다.
현재는 회복한 상태입니다.

건강한 신체를 가졌다는 것은 정녕 홍복입니다.
firefox님도 늘 평안하시고,
건강하십시요~!!
 


[[[ 주문 날짜를 확인하니 2025. 08. 14 일로 되어있다 ]]]




지난 해 7월 중순 무더운 어느 여름 날, 뜻밖의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주신 분은 30대 초반의 아들을 둔 어머니였다. 사연인 즉, 아들 커플의 결혼 얘기가 오간 후, 어떤 이유로 女가 마음의 결정을 하지 못하고 혼란스러워하고 있다는 것이다. 해서 사주 상담을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나는 사실대로 말했다. '아쉽게도 저는 명리를 업으로 하지 않으며 만족할 만한 답을 드릴 수도 없으니, 다른 전문가를 찾아보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고 정중하게 전화를 마무리했다.


나는 좋은 팔자를 타고나지 못했다. 어린 시절부터 늘 목숨이 위태로웠다. 슈베르트나 멘델스존, 모자르트의 명을 애도하며 하염없이 슬퍼하고 있지만 현대 의학이 아니었다면 나는 슈베르트 형님과 같은 나이에 이미 세상을 등졌을 것이다. 당시 나의 상태는 4시간의 수술과 20cm 이상의 복부 절개를 피할 수 없었다. 낭만주의 시대에 태어났더라면 나는 딱 30년 살고 죽은 목숨이었다. 

명(命)이란 대체 무엇인가. 명리 술사들이 내게 하는 말들이 어김없이 들어 맞았다. 좋은건 모르겠지만 불길한 것들은 죄다 비켜가지 못했다. 어느 명리의 대가는 말했다, "그냥 넘어가는 법은 없습니다!!". 불길한 일은 반드시 짚고 넘어간다는 말이었다. 나는 명리에 무언가가 있나보다 싶었다. 병든 몸을 치료하면서 명리를 공부하게 된 동기였다. 병든지가 오래인만큼 적지 않은 세월 공부를 했다. 그러나 공부를 하면 할수록 내게 명리는 더 어렵게 느껴졌다. 


까짓거 고전을 죄다 독파하면 무슨 수가 안나겠나 싶었고, 차례로 도장을 깨듯 호기있게 하나 둘씩 고전을 독파해갔다. 그러나 실상은 나의 예상과는 전혀 달랐다. 고전들의 독파는 결코 명리의 끝이 아니었다. 본게임 전 워밍업, 겨우 예열에 불과했던 것이다. 비록 열공은 했으나 이렇게 어려운 명리를 친구따라 강남가듯 공부했으니 오히려 천만 다행이구나 싶은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작정하고 덤볐더라면 좌절한 끝에 실망이 대단히 컷을 테니까. 고전들을 죄다 독파하면 태권도 2단쯤 되는 무지렁이나 다름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데는 꽤나 많은 세월을 필요로 했다. 솜씨 있는 스트리트 파이터를 만나면 쌍코피 터지는 어리버리한 태권도 2단이 바로 나의 모습일 것이다.



그런데 정확히 한 달 후 8월 중순 어느 날, 같은 분께서 다시 전화를 주셨다. 자녀의 상황에 개선의 여지가 없어 답답하다며 (나의) 사정은 알겠지만 꼭 좀 뵙고싶다는 것이었다. 일이 난처하게 되었다. 사정을 알렸는데도 한달을 고민하시다가 다시 전화를 주셨으니, 이 번에는 거절하기가 쉽지 않겠구나...싶었다.

그래서 고민 끝에 '자녀분의 사주가 아닌, 선배로서 인생 상담은 해드릴 수 있는데 괜찮으시겠냐'고 물었다. 다행스럽게도 전화를 주신 분은 그래도 좋다고 답했다.


혼인을 하려는 당사자들의 일지(日支)를 형(刑)할 경우, 일이 뜻대로 이루지지 않는다. 조건 전제가 충족될 경우, 일지를 충(沖)해줘야 되려 혼인이 성사되기도 한다. 이런 면에서 차라리 상충은 깔끔하다. 반면 형(刑)은 물고 뜯고 비트는 형국이라 그 모양새가 깔끔하지가 못하다. 그리하여 충(沖)보다 형(刑)에서 더 골치 아픈 상황이 벌어진다. (민 형사의 소송도 형(刑)에서 발생한다). 심지어 청첩장을 돌리고 난 후에도 일이 틀어지는 경우를 직접 보았다. 혼인을 앞둔 당사자들의 일지 형은 그러므로 고약한 것이다. 또한 천간(天干)에서 男은 재(財)를, 女는 관(官)을 때려내거나 합거할 경우 일이 뜻대로 되다가도 중간에 어김없이 일이 틀어지고 만다.

여하튼 시간과 장소를 정하고, 위기의 男에게 줄 2권의 책을 알라딘에 주문했다. 준비한 책은 에릭 프롬이 쓴 ' 사랑의 기술' 그리고 그 유명한  '데일 카네기 인간관계론'이었다.


시대가 눈부시게 나아갈수록 독서 지수는 오히려 퇴보한다. 누군가 역사는 진보한다고 말했지만 '진보한다'는 술어가 왠지 어색하다. 진보하는 시대는 개인에게 더 많은 량의 정보를 처리하도록 요구한다. 처리해야할 정보 량이 더 많아졌음에도 시대는 시간을 더 재촉한다. 정보 처리 부담이 커졌지만 시간은 되려 더 촉박하다는 딜레마에 빠진다. 진보하지만 이러한 불합리한 시대에 살아가는 젊은이들은 책보다 빠르고 손쉽게 정보를 습득할 수 있는 매체를 선호할 수 밖에 없다. 더불어 이 시대는 빠르고 정확한 정보를 원하는 사람에게 그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긍정적 환경을 제공해 주고 있다. 때로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가끔 나는 그 진위를 몰라 허우적이기도 하지만.



시대가 초래해온 또다른 문제는 '정보의 쪼개기'이다. 처리해야할 정보가 많아져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다다르면 이를 쪼갤 수 밖에 없다. 그 결과 정보와 지식은 수직성을 띈다. 수직성의 문제는 상호 소통의 어려움을 야기시키는데 있다. 수직성이 가지는 특성은 벽이다. 스스로를 그 안에 가두려한다. 전문성을 댓가로 희생된 확장성의 상실은 소통의 장애물로서 기능을 하는 것이다. 소통 장애는 곧 공감력의 상실과 등가물이 된다. 인류가 겪는 진보의 딜레마이다. 이런 환경 속에 처한 현생 인류가 어찌 전쟁을 피해갈 수 있겠는가.


인문학과의 거리는 더욱 멀어지고, '아름다운 추억' 혹은 '멋진 낭만'도 이제는 사라졌다. '추억'과 '낭만'을 좀더 세련되게 표현한 용어는 '사회성' 이다. 추억과 낭만은 반드시 타자를 포함하기 때문이다. '타자가 함께한다'는 것의 의미는 '사회적'이라는 의미와 대등하다. 그러므로 추억과 낭만은 사회성의 등가물이다. 


이럴 경우 누군가 대신 사회성, 즉 인문학을 전달해줘야한다. 상실의 시대에 인문학 강의가 인기있게 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시대는 인간에게 물질의 풍요를 가져다 주지만 인간의 가슴 속에서 그만큼의 무엇인가를 앗아간다. 스스로도 자신의 가슴 속에서 무엇인가가 점점 사라져가고 있음을 느낀다. 그리고 가슴속 허해져 텅 빈 공간을 다시 채우고 싶어한다. 이는 풍요로움이 가져오는 일종의 갈증이다. 바닷물을 마실수록 목이 더 타들어가듯 말이다.


이러한 일련의 상황들은 깊은 사유 공간을 제공하지 못하는 치명적인 시대 환경을 제공한다. 이는 특히 인간관계에서 부정적으로 작용하기에 매우 적합한 조건이다. 상호 교류와 심리적 혹은 내적 관계를 올올이 저해하는 환경이기 때문이다. 관계에서의 공감능력은 점차 퇴화해 왔다. 시대가 발달할 수록 더더욱 필요한 것은 이성이 아니라 감성이다. 특히 상호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감성지수 말이다. 


어째든 난관을 만난 男과 그 어머니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원인 제공자는 바로 이 男이었다. 어떤 사건을 계기로 男은 女에게 진정성을 의심받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 男에게, "그렇다면 천만 다행입니다" 했더니, 그 男 왈, " 아, 왜요?" 했다. "왜기는요, 내가 잘못했으니 내 잘못을 내가 바로잡으면 되므로 다행이라는 것이지요. 잘못이 상대방의 것이라면 그것을 내 뜻대로 바로잡을 수 있겠습니까?" 했다. 그 男은 기연미연하는 듯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이 男의 이런 반응으로 보아 이 男은 아직 女와의 문제를 진정으로 해결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듯 보였다. 아니, 어쩌면 방법을 모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 어머니께 말씀 드렸다. "자녀분의 문제는 어렵지 않게 풀어낼 수가 있겠습니다", 라고.
 
순간, 그 男과 어머니의 두 눈이 똥그래졌다. "정말요?" 그래서 "네, 물론입니다" 했다. "이제부터는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한가지만 갖춘다면 조만간 해결 할 수 있겠습니다." 했다. "그게 뭔가요?" 갑자기 두 사람의 얼굴에 화색이 돌면서 바로 질문이 들어왔다. "제 말씀을 잘 들으셔야 합니다. 아주 어렵기도 하지만 또 아주 쉽기도 합니다" 이렇게 말해 놓고 말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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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6-05-13 20: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적절하게 잘 끊으시는군요. ㅎㅎ

차트랑 2026-05-14 08:15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잉크냄새님,
제가 간혹 넘버를 붙여 알라딘을 합니다만
사실 이번에는 끊으려고 끊은 것은 아니랍니다.
출근도 못하고 나흘 째 누워있다가 알라딘하는데, 다 쓰기에는기력이 모자라는군요.
컴 앞에 잠시 앉았더니 힘이드네요 ㅠ.
하는 수 없이 글을 나누게 된것입니다.

저의 출근은 오후 1시 입니다만
오늘 아침 상태를 보니 쉽지 않을듯 하네요ㅠ
건강한 신체는 정녕 홍복입니다!!


건강하십시요 잉크냄새님~
(혼자일랑 가지를 마시구요^^)

추신ㅡ좋은 하루 되십시요 잉크냄새님~
 


19세기를 빛낸 펠릭스 멘델스존은 정말 멋지고 훌륭한 음악가였다. 사실, 작곡 외에 독일 음악사에 남긴 업적만으로도 그는 후배 인사들에게 돈수백배 존경받아 마땅한 인물이었다. 실제로 그는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칭송 받았다. 또, 음악에만 재능이 있었냐 하면 그렇지가 않았다. 문학과 미술에도 재능이 있었다. 그가 남긴 역사가 이를 반증한다. 신(神)은 예술가들에게 다양한 재능을 한꺼번에 몰아주시곤 한다. 아... 신에게 그 어떤 재능도 부여 받지 못한 나의 슬픔이여...!! 이거 너무 불공평한거 아닌가요?


 

음악의 아버지 바흐 선생의 곡을 들어보지 못한 분들은 꽤 있겠지만,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다들 멘델스존 형님의 곡을 알게 모르게 들어봤다고 장담할 수 있다. 실황이나 드라마에서 신부가 입장할 때 나오는 결혼 행진곡은 바로오~~~!! 멘델스존 형님께서 쓰신 곡이지 말입니다.



멘델스존 형님은 다수의 유명한 음악가들과는 달리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큰 부자였고 은행장이었다고 한다. 멘델스존의 친형님 되시는 분도 사설 은행을 운영했다고 하니, 한마디로 제대로 금수저였다. (친형님 되시는 분도 박애정신을 가진 분이었다고 책에 써있다) 멘델스존 형님은 1809년 생으로 초기 낭만파의 인물이다. 낭만주의는 1789년 프랑스 혁명과 산업혁명이 불러온 시대의 변화와 관련이 깊다.




즉, 왕실, 귀족, 상류층들의 소비물로 인식되던 클래식칼 음악이 시대의 변화에 따라 중산층의 소비물로 이동했던 것이다. 베토벤이 위대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어마어마한 곡을 썼다는 자체로도 위대한 음악가이지만, 베토벤은 음악 소비의 방향성을 귀족과 상류층에서 대중에게로 향하도록 물꼬의 방향을 틀어 잡았다. 대중에게 낭만 음악의 문을 열어준 장본인이 바로 악성

베토벤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고전 음악의 대중성 확보는 베토벤을 기점으로 한다. 베토벤이 위대한 것은, 들리지 않는 귀로 그토록 훌륭한 음악을 작곡해서가 아니다. 음악사를 바꾼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바흐 선생은 분명 음악의 아버지이다. 그리고 친애하고 경애하는 베토벤 선생은 이런 점에서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정녕 악성(樂聖)이다.


부유한 집안 덕분일까, 멘델스존 형님은 진보적 성향을 가진 낭만주의 음악가들과는 약간 다르게 보수적인 성향이 있었다. 그의 작곡은 고전주의 형식을 지켰으며 낭만주의의 향기를 입혀버렸다. 즉, 낭만주의의 향기를 풍기면서 고전주의의 맛을 가진 묘한 음악을 시전하신 것이다. 그 결과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멘델스존 형님은 안정감을 가진 낭만주의 음악을 낳게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의 음악은 주로 밝은 편이었다. 역사가들은 그가 "전통과 개혁 사이에 균형잡힌 해결책을 찾아냈다." (중앙일보사 音樂의 遺産 5권 p.107) 라고 쓰고 있다. 





[[[ 괴테는 어린 멘델스존을 천재라 칭했다. 그의 재능을 일찌기 알아봐준 사람 중 하나가 요한 볼프강 폰 괴테였던 것이다. 과연 멘델스존 형님이 '한여름 밤의 꿈' 의 'Overture 서곡'을 완성한 시점은 1826년 이라고하니 형님의 나이 불과 17세였다. (나머지는 그 후 오랜 시간에 걸쳐 완성했다)

17세의 멘델스존 형님께서 셰익스 피어가 쓴 희곡 '한여름 밤의 꿈'을 읽고 영감을 얻어 곡을 썼다고 전한다. 그는 문학 소년이었고 독서는 이토록 그 파급 효과가 지대하다. 지극히 위험한 것이 독서이기도 하지만, 알고보면 대한민국 커플들의 결혼 행진곡에 독서가 긍정적 영향력을 행사했던 것이다. ]]]




[[[ 위 왼 쪽 ㅡ 12세의 멘델스존 (칼 베가스 유채 스케치 1821년)

12세의 멘델스존은 가르침을 받던  첼터의 안내로 괴테를 방문했다. 1749년생 괴테는 멘델스존 보다 60세가 더 많았다. 당시 멘델스존은 72세의 괴테 어르신을 접견한 것이었다. 괴테는 멘델스존을 무척 마음에 들어했다. 괴테가 어린 소년에게 말했다. "나는 사울이고 너는 다윗이다." (음악의 유산 5권 p. 108) 


괴테 어르신은 향년 82세, 1832년에 돌아가셨다. 모자르트, 슈베르트, 슈만, 쇼팽 등이 괴테 어르신 만큼 살았더라면 어땠을까. 이렇게 나의 마음이 아프지는 않았을 것이다.


8년 후 멘델스존이 영국을 방문했을 때  그의 초상화를 그려준 '대커리'라는 화가는 "내가 지금껏 보아온 중에서 가장 잘생긴 얼굴"(음악의 유산 p.107) 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 말씀, 믿어도 되나요 대커리 선생? 


위 오른 쪽 ㅡ 부인인 세실 멘델스존 (에두아르투 마그누스의 유화, 1873년)

결혼 전에 그린 그림이라고 한다. 세실 멘델스존은 "재능있는 예술가로서 지적이며 아름답고 매력적이고 생각이 깊었다" (음악의 유산 5권 p.115) 라고 써있으며 "아주 행복한 결혼 생활"을 했다고 전한다. ]]]

 


멘델스존이 낭만주의 음악 환경에서 보수적인 모습을 보인 것이 전부는 결코 아니다. 여유가 있는 집안인 만큼 경제적인 난관에 처한 음악가들을 위해 애써준 분이 또한 멘델스존 형님이시다. 자신이 가진 것을 아낌없이 나눌 줄 아는 정말 멋진 분이었다. 그의 혜택을 받은 음악가들은 셀수도 없지만 로베르트 슈만과 쇼팽을 포함한다 (멘델스존보다 한 살 아래였던 슈만형과 쇼팽형은 1810년생으로 동갑이다). 두분께 얼마나 큰 힘이 되었을까. 찐 보수는 이런 보수이다. 기득권을 지키기위해 배타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이 아닌, 널리 타자를, 그리고 사회를 이롭게 하는 보수가 진정한 보수인 것이다. 



독일 음악을 한층 더 고양시키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은 인물이 또한 멘델스존 형님이다. 그는 바흐 선생과 헨델 선생을 현대에 인식되는 인물로 역사에 남도록 애써준 장본인이었다. 바흐와 헨델 선생을 연구하여 세상에 알린 사람이 바로 멘델스존 형님이었던 것이다. 멘델스존 형님이 아니었더라도 그 누군가는 해냈을 일이겠지만 직접 해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하겠다. 멘델스존의 노력으로 바흐 선생은 서양 음악사에서 새롭게 태어났다. 어느 전설적인 고전음악 큐레이터는 말했다, '머나먼 여정을 떠났다가 다시 바흐로 회귀하는 것이 고전음악'이라고. 서양음악은 바흐로 시작해 바흐로 끝을 맺는다는 뜻이다. 위대한 바흐의 존재와 멘델스존 형님의 관계가 그러했다.



 

그는 독일의 가장 오래된 음악원의 설립자이자 원장이었으며 교수였다. 게반트 하우스 오케스트라의 지휘를 맡았던 그는 라이프지히 컨서버토리(Leifzig Consrvatory)를 몸소 설립했다. 슈만과 그의 아내 클라라도 이 학교의 교수직을 역임하며 힘을 보탰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이던가. 브람스는 이런 교육의 혜택을 가장 많이 받은 인물 중 한 사람 이었다. 그 후 더 확장된 라이프치히 음악학교의 이름을 '펠릭스 멘델스존 바르톨디 '로 바꾸어 부르고 있다. (멘델스존의 풀네임은 Jacob Ludwig Felix Mendelssohn Bartholdy 이다) 이 예술대학의 이름에서 멘델스존 형님께서 어떤 일을 해내셨는지 잘 알수 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보수인가! 멘델스존 선생께서는 보수의 정의를 몸소 실현하며 살다간 분이다. 대한민국의 보수라고 칭하는 자들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이 학교는 독일의 내로라하는 연주가들은 물론 수많은 지휘자등을 배출했다. 셀수도 없는 예술가들은 멘델스존 선생의 노고와 베품의 은덕을 입지 않은 경우가 거의 없었다. 말하면 뭐하노 푸르트뱅글러, 지극히 경애하는 쿠르트 마주어, 체코의 심리학 야나첵, 도덕주의자 브르노 발터, 색체의 마법사 리카르도 샤이 등등은 너무나도 잘 알려진 인물들이며, 멘델스존의 커다란 노고와 지대한 헌신으로부터 나온 인물들이다. 




[[[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 2악장 안단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바협 2악장으로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그의 성격에 대한 험담들이 있지만 2악장을 들어보면 생각이 완전 달라진다. 감정의 절제미를 완성시킨 곡이 바로 바협 2악장이니 말이다. 포스팅한 분의 해설이 있어 업로드 해본다. ]]]



성격은 한성깔 했다고 전해지지만 누나와의 서신교환 내용을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은듯 하다. 어째거나 팬이 있으면 안티도 있는 법, 멘덜스존 형님은 아주 쿨한 성격을 가졌던듯 싶다. 그는 자신의 재물을 어떻게 써야할지를 알았던 인물이었고, 써야할 곳에 화끈하게 쓰신 분이다. '천재'란 '하늘이 내린 사람'이란 뜻이다. 멘델스존 형님이야말로 진정한 천재였던 것이다. 하늘이 천재를 내릴 때에는 자신만의 영달을 위한 삶을 살아가라고 내리는 것이 아니다. 하늘이 준 그 재능을 세상에 펼쳐, 널리 널리 이익이 되게 하라는 뜻으로 내리는 인물이 천재인 것이다. 과연 멘델스존 선생이야말로 하늘이 내린 진정한 천재였다. 천재라고 다 같은 천재가 아니다. 진정한 천재는 이렇듯 따로 있는 것이다.




그는 작곡, 연구, 음악원 운영, 인재 발굴, 순회 공연등으로 잠시도 쉴 틈이 없었다. 음악사에 길이 빛낼 일을 하느라 너무나도 바쁘게 살았다. 그는 어느 한 순간도 헛되게 보내지 않았다. 그렇게 그는 자신을 혹사시켰으며, 자신의 건강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 결국 형님께서는 과로가 쌓이고 쌓여 병을 얻게 되었다. 이럴 땐 좀 쉬셔야하는데, 순회 공연 일정을 소화했다. 결국 선생께서는 영국 고연을 마치고 돌아온 후 뇌졸중으로 그만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그의 나이 향년 38세, 1847년의 일 이었다. 아... 이 또한 얼마나 안타까운 일이던가. 하늘은 진정한 천재를 낳고도 어찌 이리도 박정하시단 말인가.



그는 생전에 죽음을 이렇게 표현했다고 한다, "음악이 계속 존재하면서도 더이상 슬픔이나 이별이 없는 곳"이라고. 로베르트 슈만은 커다란 슬픔속에서 친 형님과도 같았던 멘델스존을 운구했다. 두 사람은 서로 든든하고 믿음직했으며 참으로 멋진 관계였던 것이다.


모자르트 향년 35세, 슈베르트 향년 31세, 슈만 향년 46세, 쇼팽 향년 39세 그리고 멘델스존 향년 38세.
대체 이게 어찌된 일이란 말인가...!! 할일이 너무나도 많았던 분들을 그렇게 빨리 데려가시다니! 신이시여, 이토록 귀한 분들을, 정녕 그러셔도 되는건가요? (오늘 따라 신에게 불만이 많다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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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6-05-06 18: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말 고급진 낭만주의 작곡가라고 생각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다만 그의 보석 같은 현악사중주와 현악팔중주가 빠진 것이 조금 아쉽습니다.

차트랑 2026-05-06 22:12   좋아요 1 | URL
저의 서재를 찾아주셔서 고맙습니다 Falstaff님.

제가 종종 언급하는 ‘태권도 2단론‘이 있습니다.
고전음악에 관해서 Falstaff 님께서 태권도 9단이라고 한다면
저는 겨우 2단에 해당한다고 볼수 있습니다.
본디 고수들은 강호에 있되 은둔하지만 2단 짜리들은 꼭 티를 냅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임자를 만나 쌍코피가 터지고 말죠^^

멘델스존 형님의 현악곡을 첨가했더라면 훨씬더 좋았겠지만
제가 그러지 못한 것은 아직 뭔가를 제대로 모르는 2단쯤 되기때문입니다.

이점 너른 양해를 구합니다 Falstaff님.

기온이 좋은 밤입니다.
좋은 밤 되십시요~



니르바나 2026-05-09 13: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멘델스존, 용모만큼 아름다운 음악 인생을 사셨군요.
다만 미인박명은 여성에만 해당되는 옛말인줄 알았는데 38세로 저세상으로 돌아가신 일은
지금 생각해봐도 인간적으로나, 음악적으로나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었네요.
저 개인적인 취향으로 가을에는 브람스 음악을 많이 듣지만
봄을 여는 음악으론 단연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입니다.
그리고 5개의 교향곡도 듣기 좋습니다.
물론 현악 중주곡들도 아름답구요.
차트랑님, 즐거운 주말 시간 보내세요.^^

차트랑 2026-05-09 18:51   좋아요 1 | URL
안녕하세요 니르바나님,
말씀해주신대로 아낌없이 나누는 삶을 살다간 멘델스존의 죽음은
여러면에서 참으로 아쉬움이 큽니다.

경애하는 마음으로 멘델스존 선생의 음악을 들으며
그의 삶과 생각과 박애의 아름다움을 가까이 하고 싶군요.

말씀해주신 교향곡과 현악 중주곡들을
잘 들어보겠습니다.
편안한 주말 저녁 되십시요 니르바나님~!


 


혹여 제목이 거창하여 클릭 후 실망하신 분이 계시다면 죄송합니다.

오늘의 날씨는 마치 Vincent 를 닮아 뒷 동산에 오르내리며 

들은 노래 중 하나 입니다.






 2001년 데뷔 앨범인데 완성도가 가장 높다고 느낀 음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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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6-05-03 11: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Starry, starry night~~~ 를 어찌 잊을 수 있을까요?

차트랑 2026-05-03 12:28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잉크냄새님,
독서는 참으로 영향력이 지대한듯 합니다.
돈 맥클린은 고흐 선생의 일대기를 읽고
이토록 멋진 곡을 써서 불렀고,
멘델스존은 셱스피어의 희극을 읽고 ‘한 여름 밤의 꿈‘을 작곡했으니 말입니다.

아, 박기서 선생은 김구 선생의 자서전을 읽은 후
정의봉을 들고가서는 안두희를 단죄했다고 하니,
독서의 힘은 참으로 ...

다음 포스팅은 존경하는 멘델스존 형님에 관한 것입니다^^
좋은 하루 되십시요 잉크냄새님~


 




[[[ 노래는 독일 노래이지만 국내산 성악으로 들어본다. 사적으로 슈만의 Widmung은 황현한으로 끝! 저 팔뚝 보소!! 가사는 맨 애래에... ]]] 



슈만은 라이프치히 대학의 법학과에 들어갔지만 음악을 향한 그의 뜨거운 가슴은 그를 피아노로 이끌었다. 타고난 재능을 가졌다는 것은 본디 그런 것이다. 숨길 수도 없고 숨겨서도 안된다. 자신이 가진 것을 드러내지 못하면 말라 비틀어지다가는 결국 죽고 만다. 조선에서 가장 불행했던 여성 중 하나였던 세기의 천재 난설헌이 그랬다. 



슈만이 스승을 찾아 들어간 곳이 클라라네 집이었다. 클라라의 아버지를 음악의 스승으로 삼고 내제자가 되었다. 한마디로 클라라네 집에서 먹고 자면서 음악을 배웠던 것이다.



하숙생이 하숙집 주인의 딸과 정분이 났다는 스토리는 대한민국에서 흔히 있었던는 일인데, 독일도 예외는 아니었던듯 싶다. 밥해주던 하숙집 안주인이 장모님 되시는 대한민국 사위님들이 적지 않았다. 독일도 대한민국과 크게 다르지 않을 줄이야...



슈만이 하숙 생활을 시작하던 시점의 클라라는 어린 나이였다. 처음에는 어린 클라라가 슈만의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슈만은 밖으로 나가 연애를 화려하게 했던듯 싶다. 젊은 슈만이 그 나이에 사랑의 단맛과 쓴맛을 모두 알아버렸으니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부터인가 슈만은 아직은 한참 어린 클라라와 사랑에 빠지기 시작했다. 아마도 클라라가 14세가 된 시점일 것이다. 클라라도 슈만을 아주 좋아했던듯 싶다. 참고로 슈만은 클라라보다 9살이 더 많았다. 그러니까 당시 슈만의 나이 25세, 클라라의 나이 14세인데 슈만은 결혼을 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클라라의 부친께서 올커니 했을리 만무했다. 




[[[ 클라라는 남편 슈만이 리스트와 교류하는 것을 싫어했다고 한다. 클라라는 자신이 나름 정통 피아니즘을 이어가고 있다는 자긍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클라라에게 리스트의 예술 행위는 전위 예술처럼 느껴졌다. 누군가 처럼 클라라도 전위 예술은 불온하다고 생각했던듯 싶다. 그런 리스트가 슈만의 곡 '헌정'을 편곡하여 피아노가 독주를 할 수있도록 했다. 클라라가 싫어했던 리스트 덕분에 수도 없는 피아니스트들이 슈만의 곡 '헌정'을 피아노로 연주하고 있다.


역시 국내산 피아니스트 손열음이다. 아...손열음의 모자르트 피아노 협주곡은 손열음을 대가의 반열에 올려놓는 명연주라고 본다. 모자르트를 정타로 쳐내는 손열음의 연주는 정녕 감동적이다. ]]]



동양이나 서양이나 젊은 시기의 사랑은 결코 쉽게 다스릴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동서양의 사랑법에는 뚜렷한 스타일 차이가 있기는 하다. 동양은 서서히 군불을 때듯 하다가는 앓는 가슴 못이기고는 끝내 덜커덕 비극적인 상황을 맞이하곤 한다.


양산백과 축영대의 사랑은 참으로 은근했지만 아름답고 뜨겁기로는 로미오와 줄리엣 저리가라 였다. '장교애련(長橋哀戀)'은 겉으로는 은근한듯 보이지만 사실 알고보면 그 안쪽은 섭씨 구백만로 뜨겁던 그들의 사랑이 만들어낸 애틋한 고사성어이다. 동양의 젊은 사랑은 이렇게 서양에는 없는 고사성어도 만들어낸다.  

반면 서양은 빠르고 화끈하며 화려하게 꽃피우다 비극을 맞이하는 스타일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이 그랬다. 물론 '로미오와 줄리엣' 자체가 서양의 고사성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동양이든 서양이든 그 나이의 사랑 그 뜨거움을 온도계로 측정해보면 그 안 쪽은 족히 섭씨 구백만도의 정렬이 불타오른다. 



일이 이지경인데 슈만의 눈에 뵈는게 있겠는가. 그럴수록 부모 혹은 주변 환경의 반대는 그만큼 더 거센 것이 이치이다. 이를 알게된 클라라의 아버지는 노발대발했다. 내 사위가 될 생각일랑 꿈도 꾸지 말라며 반대했던 것이다.



반대 이유를 들어보면

1. 우선 슈만은 모아놓은 돈이 거의 없었다. 절대로 딸 책임 못질 것 같았다. 


2. 엄마 없이 애지중지 키운 외동 딸 클라라는 나이는 어렸지만 천재적인 피아니스트로 성장할 것이 뻔했다. 한마디로 장래 촉망되는 인재였던 것이다. 9살에 신동 소리를 들었으니 말 다했지 말입니다. 슈만에게 시집보내기엔 너무 아깝다고 판단한듯 하다. 실제로 그들이 결혼을 하고 난 후에 슈만은 클라라의 남편으로 인식되었을 정도였다. 물론 결과론적인 말이지만 당시의 슈만은 아직 긁지 않은 복권이었던 셈이지만... 



3. 반면 슈만은 피아노를 배우던 중 오른 쪽 손가락을 다쳤는데, 피아노에 관한한 영구 장애 상태여서 연주가로서의 미래가 어두웠지 말입니다.



4. 내심 중요한 반대의 주요 이유일 지도 모르겠다. 슈만형님은 나이는 비록 젊었지만 남녀 관계에서 모범적인 행동을 보여주지 못했던듯 싶다. 심지어 홍등가 출입을 자기 집드나들듯 했던 모양이지 말입니다.



결국 클라라의 아버지는 미성년자 유괴죄로 슈만을 고소하는 사태에 이르게 된다. 한 쪽이 쎄게 나오면 그만한 강도로 반작용을 일으키는 것이 모든 것의 이치이다. 슈만도 질세라 결혼 반대죄로 클라라의 아버지를 맞고소했다. 슈만이 이렇게 쎄게 받아치자 클라라의 아버지는 잘못된 선택을 해버린다. 슈만이 알콜 중독자라는 주장을 해버린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가짜 뉴스가 문제이다. 가짜 뉴스는 시간이 지나면서 진위가 드러나게 되어있다. 이러면 상황이 불리해진다. 결국 법원은 슈만의 손을 들어줬다. 클라라가 법정 연령인 성인이 되면 부모의 허락없이 혼인이 가능하다는 판결을 내놓는다.

그리하여 그들은 결혼을 했다. 그 해는 지금으로부터 거의 200년 쯤 거슬러 올라가는 1840년 이었다.



슈만은 클라라와 결혼 하기 전 날, 그녀에게 연가곡 하나를 헌정한다. 프리드리히 뤼케르트의 시에 곡을 입힌 것이다. 제목은 Widmung(헌정)이다.



가사는 아래와 같다

Du meine Seele, du mein Herz,
Du meine Wonn’, o du mein Schmerz,
Du meine Welt, in der ich lebe,
Mein Himmel du, darein ich schwebe,
O du mein Grab, in das hinab
Ich ewig meinen Kummer gab!


당신은 나의 영혼, 나의 심장입니다
당신은 나의 기쁨, 오 당신은 나의 고통입니다
당신은 내가 사는 세상입니다
당신은 내가 날아다니는 하늘입니다
오 당신은 내가 내려갈 무덤입니다
그 안에 나는 영원히 나의 슬픔을 묻어버릴 것입니다 (내맘대로 의역)


Du bist die Ruh, du bist der Frieden,
Du bist vom Himmel mir beschieden.
Dass du mich liebst, macht mich mir wert,
Dein Blick hat mich vor mir verklärt,
Du hebst mich liebend über mich,
Mein guter Geist, mein bess’res Ich!


당신은 나의 안식, 나의 평화입니다
당신은 하늘이 내게 보내준 사람이지요
당신이 나를 사랑해준다는 사실이 나를 가치있게 합니다
당신의 눈길은 나를 더 아름답게 만들어요
당신은 나스스로 더욱 사랑하게 합니다
나의 영혼을 드높이고 더 나은 내가 되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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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6-04-27 20: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결혼 반대죄로 고소가 가능한 세월도 있었군요!!!

차트랑 2026-04-28 07:31   좋아요 1 | URL
그러게요~
생각해보니 아주 흥미로운 시대였던듯 하네요!

오늘도 좋은 하루 되십시요 잉크냄새님~

니르바나 2026-04-29 13: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고로 부모가 사랑을 뜯어 말리면 가만두면 떨어질 애들도 더 들러붙게 마련이지요.
청개구리 심정이라고나 할까요.
그러고보니 클래식 음악 역사에 클라라 아버지가 큰일을 하셨네요.
클라라 아버지가 슈만을 들들 볶아서 슈만은 그 동력으로 좋은 클래식 음악을 만든 셈이니까요.
그나저나 유명 예술가곡을 많이 작곡한 슈베르트나 슈만이나 인생 팔자가 왜 그렇게 사나웠을까요.
아무리 생각해도 좀 불쌍해 보입니다.
두 분에게 다음 생이 있다면 복 많이 받으시기를 빌어봅니다.^^

차트랑 2026-04-29 16:57   좋아요 1 | URL
안녕하세요 니르바나님,
말씀을 듣고보니 ‘청개구리 심정론‘을 간과할 수가 없겠습니다.
구백만도 짜리 러브 스토리에는 늘 강력한 반대가 있었거나
이루어지기 힘든 조건들이 가로막고 있었던듯 하네요.

슈베르트와 슈만의 삶은 너무나도 안타까워 마음을 아프게합니다.
그래서인지 애틋한 마음으로 그들을 사랑하게 되는군요...

저도 두분께서 복을 많이 받는 다음 생이 되기를 빌어드리는
한 사람이고 싶습니다...

좋은 오후 되십시요 니르바나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