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기 2, 남들은 그렇게 말했다 -1
황순원의 소나기처럼 그날은
그렇게 비가 억수로 쏟아진 것은 아닙니다.
모처럼
기억조차 나지 않는 몇 년 만인지
나는 먼 길을 떠나는 행인이 되어
아직은 어린, 콩콩 뛰는 가슴을 짖 누르며
엄마의 손을 잡고
읍내에서 가장 높다하는 백화산아래
나즈막히 자리 잡은 이모댁에 나들이 갑니다.
몇날 며칠을 기다렸던가요.
이 날이 오기를..
딱히 어딜 가려한다기 보다는
다만
집을 떠나
버스를 타고
먼 어느 곳으로 가게 된다는 기대감과
아무래도 전기가 들어오는
그 도회지는 왠지 마냥 호기심을 불러일으켜
또 가보고 싶던 곳..
그 곳이 늘 그리웠는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고등학생인 형의
모자 한 가운데서 반짝이는
누런 색갈의 글씨를 잊지 못하는지도 모릅니다.
태워줄 버스가 딱히 언제 올거라는 것 보다는
버스 정거장 옆,
그 구멍가게의 한 입에 넣기가 힘든 누깔사탕과
멋진 야수 모습의 해태가 그려져 있는
흰 종이 껍질속의 하얀 껌가락 하나.
굳이 말하지 않아도
껌 한가락을 작은 내 손에 쥐어주실
나의 어머니.
왜냐면
시장에 가시는 어머니를 따라
버스정류장 앞 구멍가게 앞에서
땅바닦에 데굴데굴 굴러가며 떼쓰고 울먹이며 따라가는 날은
꼭 껌 한가락을 얻어가지고 왔으니까요.
그러나 오늘 나는
땅바닥을 뒹굴며 따라온 것이 아니라
당당하게
태워줄 버스가 나에게 기약을 하지는 않았지만
분명 나는 갈 곳을 찾아
여기에 와 있습니다.
이런 날은
평소보다 들에 핀 꽃들이
유난히도 이쁩니다.
가을 녘이니..
밥풀을 두어개 입에 물고 있는 꽃며느리 밥풀은
세상에서 가장 이쁜 분홍입니다.
부드러운 달뿌리풀은 종아리를 간지럽히고
하얀 자신의 꽃잎 속에 푸르름을 머금은 해국은 그 빛이 참 예지만
마음을 시리게도 합니다.
갈대, 억새풀, 실새풀은 보기에도 아마도 영원한 기억을 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위를 스치듯 지나치곤 하는
고추잠자리, 나 만큼이나 장난꾸러기입니다.
“너희는 어대 갈데가 없나, 왜 자꾸 나만 따라오는 건데?”
소리도 질러봅니다.
그 끝이 보이지 않는 푸른 바다도 보입니다.
저 먼 곳엔 누가 살고 있을까요.
고무신을 벗어
귓가에 대면
찡-- 하고 귀를 간지르는 그 소리는
도대체 무슨 소리일까요.
아마도 세상이 돌아가는 소리겠지요.
드디어 버스가 오면
실실 실소를 머금으며
참을수 없는 기쁨이 나의 얼굴에서 터져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