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분음표 기준 3박을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분들은 잠시 고민에 빠지곤 한다. 고민 끝에, 4분음표 기준 3박과 같다, 라고 가르치는 경우가 있다. 8분음표는 4분음표와 기준이 다르기는 하지만 3박 이라는 공통 분모가 있을 때, 분명하게 가르마를 타기가 애매하다. 마디 안에 3박을 넣은 데다가, 셈 여림도 강ㅡ약ㅡ약으로 같으니 맞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나 4분음을 1박으로 한다면 8분음은 0.5박으로 보는 것이 이해하기가 더 쉽다. 달리 말해 4분음표를 기준한 3박은 왈츠에서 자주 사용하고 있듯이 8분의 3박 보다 약간 무겁고 두텁게 간다. 3박자를 모두 분명하게 짚고 가는 것이다. 반면 8분음표를 기준한 3박의 호흡은 가볍고 경쾌하게 간다. 속도가 약간 더 빠른 만큼, 음이 주는 느낌도 가뿐하고 경쾌한 것이다. 메트로놈을 시전하면 느낌 바로 오는데...


아래는 베르디 선생이 쓴 오페라 '리골레토 Rigoletto'의 한 장면으로 그 유명한 노래 '여자의 마음 La Donna è Mobile' 이다. 이는  강ㅡ약ㅡ약, 8분음표 기준 3박의 전형적인 노래이다. 악보를 보면 8분음표의 3박임이 한눈에 바로 들어온다. 고로 리듬을 타기도 쉬운 노래이다 (성악가가 아닌 것이 문제이지만 ㅠ).  경쾌하고 가벼우며 호흡도 짧다. 워낙 널리 알려진 곡인지라 바로 이해가 갈 것이다.







라ㅡ돈ㅡ나에 모ㅡ비ㅡ레 / 꽐ㅡ피우ㅡ마알, 벤ㅡㅡ 또

시ㅡ간ㅡ좀   내 ㅡ주ㅡ오 / 갈ㅡ데ㅡ가,  있ㅡㅡ소 

강ㅡ약ㅡ약   강ㅡ약ㅡ약 /  강ㅡ약ㅡ약, 강ㅡ약ㅡ약

템포가 경쾌 상쾌 가뿐 가뿐하다.


그런데.......!!!
오늘의 주인공은 이 곡이 아니다.
오늘의 주인공 슈베르트의 곡, '그대는 나의 안식 Du Bist Die Ruh' 를 들어보면 얘기가 확 달라진다. 슈베르트는 독일 시인 프리드리히 뤼케르트( Friedrich Rückert)의 시에 곡을 입혔는데, 이 곡을 솔로와 피아노 만을 위한 곡으로 썼다. 여기까지는 색다를 것이 없다. 8분음표를 기준한 3박의 곡이 분명하니 말이다.

 색다른 점은 슈베르트가 명시한 지시어이다. 슈베르트는 8분의 3박을 사용한 곡에 더하여, 랑잠 (Langsam 느리게), 피아니씨모(Pianissimo = pp =앗주 부드럽게) 라고 지시어를 명시한 것이다. (8분의 3박을 잡아놓고서 이러시니... 하...어렵내...) 이리하여 노래는 전 ㅡ혀 다른 느낌을 준다.

슈베르트는 의도적으로 피아노의 선율을 앗주 평범하고 단조롭게 썼다. 피아노가 노래보다 더 튀는 상황을 조금도 허용하지 않은 것이다. 피아노는 레가티시모( Legatissimo 가장 부드럽게 음을 이어서) 로 가야한다. 반주는 살얼음판 위를 걷듯 조심조심 연주하되 음을 끊어지지 않게 연주하라는 얘기다. 반주자는 오른 쪽 페달을 잘 써야할것이다. 달튼 볼드윈(Dalton Baldwin)은 슈베르트의 이 지시어를 너무나도 잘 해냈다. 둘의 조합이라면 따질 것도 없다. 까딱 한끗만 튀어도 슈베르트 선생님께 야단 맞을 것 같지만, 사실 슈베르트 선생님은 성격상 아무 말씀 안하실 분이다.



이 두 가지(지시어와 단순 피아노 선율)의 효과가 가져오는 결과는 어떠한 것인가.

솔로에게 모든 책임을 죄다 넘겨버린 꼴이 되었다. 삑사리나면 솔로가 독박을 쓰는 구조인 것이다. 살금 살금 걷는 피아노가 삑사리 낼게 뭐가 있겠는가. 설사 피아노가 삑사리를 낸다 한들 청자들이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살금거리는데 뭐...


슈베르트는 주변을 단순화시키고, 렌즈의 포커스를 노래에 맞추어 돗보이도록 한 것인데, 이것이 솔로에게는 되려 부담이다.

그리하여 노래를 부르기가 훨씬 더 어려워졌고, 솔로는 우아하면서도 부드러우며, 그대의 안식을 고스란히 느끼도록 완급 조절이 잘된 완벽한 호흡으로 곡을 리드해야 한다. 슈베르트는 솔로에게, '레가토(legato)를 처음부터 퍼펙트하게 해내라'고 지시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 그리하여 이 노래는 호흡과 발음이 생명이다. 이 순간 작곡가 슈베르트 형님이 甲이 된다. 솔로 乙은 묵묵히 선생님의 지시어를 이행할 뿐. 


이토록 대면하기 어려운 이 노래를 가장 만족스럽게 부른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
나로서는 단연 제라르 수제(Gerard Souzay)이다. 이 곡에 관한한 그 잘난 이안 보스트리지도 안된다. (테너에게는 잘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곡이지만 사실 이안보스트리지는 정말 잘 해냈다. 제라르 수제형님을 돗보이게 하려고 한 말이니 패쓰~! 물론 사적인 기준이므로 다양한 견해를 수렴합니다) 





피셔 디스카우(Fischer Dieskau)도 정말 빼어난 레코딩을 남겼기에 이 곡의 전설이나 다름이 없다. 그리고 또 다른 바리톤 브린 터펠(Bryn Terfel)과 마티아스 괴르네(Matthias Goerne)가 아주 좋은 녹음을 남겼다. (이 노래에 관한한 여성 보컬들의 레코딩은 패스한다. 왜냐면, 정말 희안하게도 이 곡을 여성 보컬이 부르면 슈베르트에게서 느낄 수 있는 그 특유의 맛이 안나요 아놔~ ㅠ) 


제라르 수제(1918~2004)는 프랑스 태생의 바리톤이다. 프랑스 가곡의 스페셜리스트인 그는 프랑스 가곡에 관한한 제 1인자로 불린다. 누군가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도 말한다. 그러나 뭐 프랑스인이 프랑스 가곡을 잘 부르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니겠는가. 프랑스인이 미성의 유려함으로 슈베르트의 독일 리트를 정녕 아름답게 빛내고 있을 때가 놀라운 것이지 말입니다. 프랑스어 가곡의 목숨줄이 리듬과 뉘앙스에 있다면, 독일 리트의 목숨줄은 딕션에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라르 수제는 이 두 가지를 모두 퍼펙트하게 해낸 인물이다. 


화려하지 않으며 부드럽고 절제된 발성, 지극히 세련된 독일어 강세 조절의 마술사가 표현해내는 딕션, 그의 리트 딕션은 독일어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다. 그리하여 제라르 수제의 보컬은 심금을 파르르 울리는 마성과도 같다. 독일 리트를 이토록 격조있게 부른 외국인이 또 있을까. 동시대의 또 다른 독일 산맥 바리톤 피셔 디스카우가 몇 살 위의 제라르 수제 형님이 부르는 리트를 최고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던 이유이다.

슈베르트 형님이 제라르 수제의 노래를 들을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해 했을까... 아니, 내곡이 이런 곡이란 말인가? 하며 전율했을지도 모른다.

생각만해도 가슴 저미어 시려 온다.
아...나의 경애하는 슈베르트여...!!!


Bryn Terfel도 이 멋진 노래의 레코딩을 남겼는데, 아주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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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가로의 결혼 2막












The Very Best of Lucia Popp(위의 왼쪽 음반)은 루치아 퐆의 정수가 담긴 음반이다.


Song To The Moon

Solveig's Song

Solveig's Cradle Somg 등은 한 번 들으면 잊을 수 없는 노래들이다.

사적인 생각이지만 해당 곡의 역사를 쓴 노래라고 생각하고 있다.  

물론 그 외에도 어느 곡 하나 실망스러운 것이 없다.

루치아 퐆은 정녕 벨칸토의 교과서이자 대가이다. 



(Rosina)


Porgi, amor, qualche ristoro,

사랑의 신이시여,
제게 위로를 주소서

Al mio duolo, a'miei sospir!

저의 고통, 저의 탄식을 생각하시어

O mi rendi il mio tesoro,

저에게 저의 보물(남편의 마음)을 되돌려주소서,

O mi lascia almen morir.

신이시여, 그러지 않으시려거든 차라리,
저를 죽게하소서.

(번역은 내맘대로)





중년의 백작부인 로시나가 괴로워하며 사랑의 신에게 노래한다. 
노래는 간절하며 여인의 짖은 슬픔이 배어있다.
남편인 알마비바가 젊은 여인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있기때문이다.
이 노래는 그러므로 로시나의 복잡한 감정을 표현해야 한다. 
실망, 슬픔, 간절함, 배신감, 갈망, 이 모든 것을 느낄 수 있도록...


루치아 퐆 (Lucia Popp)의 노래는 이음새가 없다. 노래의 마디가 느껴질 듯도 한데도 말이다. 벨칸토(Bel Canto)는 횡경막을 이용한 복식 호흡을 쓴다고 한다. 레가토(Legato)는 필수인데 루치아 폽은 벨칸토의 정통 교과서를 시전하고 있다. 듣고 들어도 또 듣고 싶어지는 이유가 될듯하다.  이런 면에서 대한민국의 박혜상은 루치아 퐆의 향기를 담은 소프라노이다. 조만간 루치아 퐆과 어깨를 나란히 하시길....

(Legato ㅡ고저음을 오가며 소리가 끊어지지 않게 부르되 부드러우면서도 탄력있는 음을 내야 함. 마디의 이음새를 느낄 수 없도록...)


위 형식의 노래를 카바티나(Cavatina) 라고 한다. 카바티나는 독창으로 2절 없이, 즉 가사와 음을 반복하지 않고, 짧게 처리하는 특징을 가진다.

노래의 속도는 느리고, 매우 서정적인 감정을 표현한다. 카바티나는 변주가 없어 짧은 덕분에 듣고 나면 아쉬움을 뒤에 남겨두고 가는 묘한 매력을 가진 노래이다.

카바티나는 아리아라고는 하지만 아리아의 형님뻘이라고 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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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6-04-06 16: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페라 좀 들은 올드팬들은 아무래도 (칼라스는 제쳐두고요) 빅토리아 데 로스 앙헬레스와 루치아 폽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겠습니다. 오랜만에 수산나가 아닌 알마비바 백작부인을 폽의 음성으로 들어서 반가웠습니다. 덕분에 오늘 모차르트 한 번 걸어야겠습니다.

차트랑 2026-04-06 17:53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Falstaff 님,
저의 서재를 찾아주셔서 고맙습니다.

더구나 고전음악과 가까운 분이셔서 더더욱 반갑습니다.

평소 쓰신 글에서 고전음악의 느낌을 거의 느낄 수 없어 고전음악과 무관한 분인줄 알았습니다.
이렇게 모자르트를 걸어주실 분인줄은 미처 몰라뵈었군요.
저도 모자르트를 종일 걸어놓고 있었지 뭡니까요.

좋은 오후 되시기바랍니다 Falstaff!


니르바나 2026-04-10 0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차트랑님,
오래 전에 EMI에서 The Very Best of~로 이름붙인 성악가들의 음반이 나왔었지요.
좋은 음반들이 나와서 저도 몇장 구입해서 들은 적이 있습니다.
루치아 포프의 음반은 따로 구입한 적이 없지만 차트랑님의 소개를 보니 궁금하네요.
카바티나(Cavatina)는 존 윌리엄스의 기타 연주곡 제목으로만 알고 있습니다. ㅎㅎ

차트랑 2026-04-10 10: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니르바나님,
사실 저는 루치아 퐆을 편애하고 있어 공정성을 잃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음반 구매는 쉽지 않은듯 하지만
유투브에서 어렵지않게 들을 수 있으니 몇 곡 들어보셔도
좋지않을까 생각합니다.
이음새 없이 부르는 루치아 퐆의 노래를 사랑하게 되실듯요^^

말씀해주신 카바티나는 카바티나에 충실한 곡인듯 합니다.
듣기에 아주 편안하고 좋으네요.
언제들어도 좋은 곡이 명곡이 아닐까 생각하는데
들어보니 말씀해주신 카바티나가 딱 그렇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좋은 하루 되십시요 니르바나님~!!




 


우리의 가곡 '산노을'은 유경환(1936~2007) 선생의 詩에 박판길(1929~1998) 선생이 曲을 입혔다고 한다.

 '산노을'은 가곡으로서는 보기 드문 4분의 5박을 특징으로 한다. 5박은 흔히 '강ㅡ약ㅡ약, 중강ㅡ약' 혹은 '강ㅡ약, 중강ㅡ약ㅡ약'의 셈여림을 쓴다. 셈여림을 3ㅡ2, 2ㅡ3 중 어느 것을 쓰든 첫 음은 강하게 들어간다. 그리하여 첫 소절 '먼~ 산을' 의 '먼'의 음을 강하게 시작했다. 


4/4, 3/4 박은 대부분 익숙한 박자인데다가 부르기에도 까다롭지 않기 때문에 노래방에서도 인기가 있는 박 일 것이다. 반면, 5박은 4박보다 리듬을 타기가 훨씬 까다로운 편이다. 불규칙한 강세, 2박과 3박의 결합으로 음에 경쾌한 효과를 내기도 하지만, 불규칙함이 혼재하기에 긴장감이 필요한 음악을 작곡할 때 곧잘 4분의 5박을 사용한다. 그리하여 4분의 5박은 좀더 자유로운 현대음악에 더 적합하며 재즈, 영화음악, 뮤지컬에서 흔히 사용한다.



다시 말해 4분의 5박은 그 특성상 가곡에서  발견하기가 쉽지 않은 구조인 것이 맞다. 그럼에도 박판길 선생은 우리 가곡 '산노을'에 5/4 박을 사용했다. 그리하여 5/4박의 특성을 살려내고 싶었는가 싶지만, 박판길 선생은 악보에 이렇게 썼다, "Lento melancoliamente, 느리고 우울하게" 라고. 하... 왠지, 무언가 앞뒤가 서로 잘 조합된 것 같지가 않다. 5/4 본연의 경쾌함을 지워낸 지시어이니 말이다.


글은 작가 맘대로 쓰는 것이 맞고, 작곡은 작곡가 맘대로 쓰는 것이 맞지만, 산노을의 경우는 마냥 쉽지가 않다. 본디 경쾌 스타일이자 재즈 풍의 박 에다가 서정성을 담아내서는 멜랑꼴리 삘을 표현하여 노래하라는 매우 복잡한 주문을 했으니 말이다. 가곡은 레가토(Legato 고ㆍ저음을 끊어지지 않고 유려하게 연결하는 보컬 사용법) 처리를 필수로 해야 하기 때문에 곡의 호흡 처리가 난해하다. 이리하여 '산노을'이 충분히 어려워졌다.




그런데 작곡가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한 발 더 앞으로 나갔다. 음표들의 낙차 폭을 크게 썼다. 저음과 고음의 간극이 크다. 5/4 박 살림, 서정성과 멜랑꼴리, 레가토로 큰 낙차의 고저 넘나들기, '산노을'은 이렇게 3중고의 노래가 되어버렸다.  
나아가 작곡가 박판길 선생은 가곡의 첫 마디를 놉게 잡았고 서서히 음표의 위치를 2 옥타브까지 끌어올렸다. 테너로 하여금 2옥타브  '파ㆍ 솔'의 마성을 시전하도록 곡을 쓴 것이다. 바로 아래 악보에 색칠한 부분이다.


[[[ 산노을의 가장 가장 높은 음이 있는 부분 ]]]

 

왔 던 봉 우 리 물 러 서 (고)

파 파 파 솔 파 미 파 미      
     




이 곡을 부르는 테너는 'High C' 에 도달하는 능력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래야만 2옥타브 '파'와 '솔'을 무리 없이 넘길 수 있을 것이다. High C는 남성 테너의 꼭대기가 다름 없는 높이다. '3옥타브 도 C5' 또는 '4옥타브 도 C6'의 음역대이니 말이다. 결국 '산노을'은 4중의 파고를 넘어야 한다. 이는 '산노을'의 감상 포인트가 4가지 이상은 된다는 말도 된다. 사실 3옥타브를 넘나드는 것은 성악을 전공하신 분들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일일 것 이지만, 일반인인 나로서는 너무나도 대단하게 보일 뿐 이다.  
 


아주 많은 성악가 분들께서 이 멋진 곡 '산노을'을 아주 잘 불렀다. 유투브에서 무료로 이 곡을 듣는다는 것이 미안할 정도로 많은 분들의 다양한 버전을 찾아 노래를 들을 수 있다. 개인적으로 가장 많이 듣는 버전은 신영조 선생과 박세원 선생이 부른 버전이다. 이 노래의 어려운 요구 사항들을 아주 잘 수렴한 많은 곡들 중 2가지 버전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토록 멋진 우리 가곡의 시대가 저물었다. 전언에 의하면 대한민국의 음악 대학교에서 대접을 받지 못하여 사장되가고 있다고 한다. 어쩐지 음반을 찾기가 어렵다. 원하는 음반을 얻으려면 중고를 구입해야 하는 실정이다. 우리 가곡을 정녕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 마음이 몹시 아프다....



아~, 박판길 선생이여, 난해하지만 어찌 이리도 멋진 가곡을 만드셨습니까. 그리고 이 난해한 곡을 또 어찌 이리도 잘 부르신단 말입니까.

1943년생 신영조 선생은 지난 23년에
1949년생 박세원 선생은 지난 24년에

이토록 아름다운 레코딩을 남기고 세상을 등지셨다고 합니다.

두 분의 명복을 빕니다.


PS ㅡ High D(3 옥타브 레 D5)는 여성의 영역으로 보는 것이 맞고, High E는 인간의 영역이라기 보다는 현악기의 영역이며 돌고래의 영역이라고 보는 것이 맞지 싶다. (가공의 능력을 보여주는 소프라노가 있기는 하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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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6-03-27 20: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성악에 대하여 거의 백치 수준의, 노래는 노래다 정도의 개념으로 여쭈어봅니다.

우리 가곡이 음대에서 사장되어 가고 있다고 하셨는데 테너나 소프라노 하신 분들은 가곡의 영역을 병행하지 못하는 건가요? 서양 가곡이나 한국 가곡이나 성악의 범주가 같은 거 아닌가요?

차트랑 2026-03-27 22:38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잉크냄새님,
한때는 우리 가곡을 TV에서 자주 들을 수 있었는데요.
음대 교수님들께서 우리 가곡 음반을 내기도 하는등 우리 가곡을 많이 불렀습니다.

그러다가는 어느 순간 음대에서 가곡 과목을 폐지했다더군요.
덩달아 가곡 작곡 또는 가곡 연주회 등이 사라지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저도 이유를 모르고 있다가 최근 고전음악 9단 되시는 선배님께서 알려주셔서 알게된 사실입니다.
가곡을 사랑하는 저로서는 이 현실이 몹시 아쉽습니다 ㅠ

말씀하신대로 서양 가곡과 우리 가곡은 같은 것입니다만 우리 가곡을 약간 홀대하는 느낌 있습니다 ㅠ


좋은 밤 되십시요 잉크냄새님~



그레이스 2026-03-28 09: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작곡 전공이신가요?
산노을 들어봐야겠어요.
high D,E
꿈도 못꾸는 영역이네요.

차트랑 2026-03-28 11:10   좋아요 1 | URL
안녕하세요 그레이스님,
저의 서재를 찾아주셔서 고맙습니다.

제가 작곡 전공이라면 얼마나 좋을까요~!!
지금 이 순간에도 곡을 쓰고 있을겁니다요.
매 순간이 행복할듯요~

너무나 안타깝게도
저는 단순한 음악 듣기 애호가에 불과하답니다.
저의 불행이지요 ㅠ

다음 생에는
곡을 쓰는 피아니스트로 태어나던지,
지휘자로 태어나고 싶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요 그레이스님~!!





2026-03-30 01: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6-03-30 09: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조선 유학에 호감을 가진 사람은 아니다. 중국의 사서(四書)와 조선 유학을 등가물로 바라보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여기서 유학은 주자학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원전 사서를 뜻한다. 공맹이 가르친 유학과 주자학 그리고 조선 유학은 질적으로 서로 아주 많이 다르다고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유학의 학문적 순수함이 조선으로 들어와 심하게 오염되었다고 생각하는 일인이다. 특히 조선 후기에 이르러 집권 세력의 유학론은 유학이기를 스스로 거부했다고 본다. 


유학(주자학)은 고려 말에 들어왔지만 이 땅에 조선이 들어서며 그 꽃을 피우기 시작했는데 기점은 '불씨잡변'이라 할 수 있다. 불교가 국교였던 불교의 나라 고려는 당시 모든 것이 썩어 있었다. 고려 말 관료들의 부패가 극에 달했다. 문벌 귀족과 권문 세족들의 사고가 썩어있었던 것이다. 그들이 보살펴야 할 백성들의 삶은 너무 나도 고단했다. 



백성들을 수탈하여 이익을 추구하는 이익집단이 바로 관료들이었고 기득권이었다. 당시의 '토지 제도'와 '수취 제도'는 백성들을 굶주림과 죽음으로 내몰았다. 교과서는 고려 후기의 이 상황을 '권문 세족의 토지 겸병과 수취 체제의 문란은 백성들의 삶을 곤궁하게 했다' 라고 적고 있다. 교과서가 이렇게 표현할 정도면 고려의 기득권들이 백성들을 수탈한 결과 백성들이 실제로 굶어 죽게 했다는 뜻이다. 



불교 또한 기득권을 등에 업고 백성들의 고된 삶을 외면했다. 사찰도 썩을 대로 썩어 있었던 것이다. 즉, 성스러워야 할 불교가 썩어있었고, 붓다의 아름다운 말씀과 실천은 지워져 있었다. 그리하여 철저하게 뿌리까지 부패한 나라 고려, 이러한 고려를 죽는 그 순간까지 지키려 했던 만고의 충신 '포은'을 나는 용서할 수가 없다. 충신이란 주군이 아니라 백성을 위해 죽어야만 진정한 충신인 것이다. 성웅 이순신 장군이 진정한 충신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리하여 내게 '목은'과 '포은'은 기득권을 지키려 한 인물이며, 죽어 마땅한 만고의 충신 일 뿐이다. ('목은'과 '포은'을 존경하는 분들께는 미안합니다만, 사관이 다르면 어쩔 수 없습니다 ㅠ)



그렇게 썩은 불국(佛國) 고려의 시대가 가고, 1392년 새로운 나라 조선이 개국했다. 조선이 개국을 했지만 백성들은 조선의 백성들이 아니라 고려의 백성들 그대로 였다. 엄밀한 의미에서 국호만 바뀐 것이다. 백성들이 살아가는 터전이 바뀐 것도 아니요 생활 방식이 바뀐 것도 아니다. 사실, 백성들의 입장에서는 삶의 질적 변화가 없다면 모든 역사적인 사건들은 중요한 의미를 갖지 못한다. 누가 왕이 되었던, 국호가 무엇이던 백성들은 권력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을 뿐더러 생활 역시 아무런 변화가 없기 때문이다. 되려 정권 교체기에 백성들이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더 클 뿐이다.



조선의 백성들은 정권의 교체와는 무관하게 수백 년 동안 그렇게 해왔듯 붓다의 말씀을 따르고 절에 나갔으며 불교 행사에 참여했다. 즉 조선 백성들의 문화와 사유는 고려 시대의 그것과 동일한 것이었다. 



기존의 패러다임에 변화를 주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 인지를 신랄하게 꼬집은 사람은 '토마스 쿤'이다. 그는 '과학 혁명의 구조'에서 모든 꼰대들이 죄다 죽은 다음에나 패러다임에 변화를 줄 수 있다고 썼다. 패러다임을 변화시킨다는 것이 그토록 어려운 것이다. 토마스 쿤의 지적은 기득권의 꼰대들이 얼마나 징그럽도록 집요한 기득권 인지를 묘사하는 하나의 예일 뿐이다. 

또한 조광조의 죽음은 '훈구'를 상대로한 '위훈 삭제'가 원인이기도 하겠지만 '소격서'의 폐지라는 결정타가 뒤를 이었기 때문이다. 소격서는 도교식 기복을 담당했던 주요 관청이었다. 나아가, 오죽했으면 억불 숭유를 천명하고도 세종은 한글을 널리 알리고 정권의 정통성을 드러내기 위해 저술을 명한 책이 '월인청강지곡' 과 '석보상절'이었겠는가. 불교는 그만큼 백성들의 뼛속 깊이 자리잡은 일종의 헤게모니였던 것이다. 결국 그런 백성들에게 세종이 다가가는 유일한 방법은 유교가 아닌 조선이 금지했던 불교일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헤게모니의 변화는 이토록 어려운 것이다.



사실 새로운 집단이나 국가가 과거의 헤게모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정치를 하기가 매우 어려워진다. 조선의 신하들이 불교를 탄압하도록 왕에게 끊임없는 압박을 가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과거와의 이념적 단절과 새로운 헤게모니의 도입이 빠르면 빠를 수록 사회가 안정감을 찾고 격변에서 멀어질 수 있다. 나아가 사회의 안정은 지배 세력의 안정을 뜻하기도 한다.


다시 말해 새로운 나라 조선에서 고려 시대의 생활 방식과 이념을  변화 대체하지 않는다면 권력의 공백을 고스란히 겪어야 한다. 이는 지도자의 권위를 상실시킬 뿐 아니라 권력을 불안하게 하고 사회를 불안하게 하는 주 원인이 된다. 사회 혹은 국가가 방향성을 잃는다면 국가 질서가 표류하게 된다. 일이 이렇게 되면 최악의 국가가 되는 것은 시간 문제이다. 결국 치안도 국방도 모두 무너지는 불행한 결과를 초래하고 만다. 




[[[ 이념적 헤게모니의 공백 ]]] 


낡은 것은 죽어가는데도 새로운 것은 아직 탄생하지 않았다는 사실 속에 위기가 존재한다. 바로 이 공백 기간이야말로 다양한 병적 징후들이 출현하는 때다.ㅡ안토니오 그람시



'옥중 수고'라 불리는 저술에서 안토니오 그람시는 권력의 교체기를 이념적 방향을 새롭게 잡아 나아가야 할 시기라고 봤다. 이를 두고  '이념적 헤게모니의 공백'이라고도 하고, '그람시의 공백'이라고도 한다. 어느 사회든 기존의 권력이 무너지면 이를 대체하는 새로운 이념이 그 사회를 이끌어야 한다. 적절한 시점에서 적절한 이데올로기가 방향을 제시해주어야만 사회가 안정을 찾을 수 있다. 그 공백이 길어지면 정치 사회적인 불안 요인들이 발생한다. 예를 들면 파시즘의 탄생, 군부 쿠데타, 독재자의 등장, 군소 권력들 간의 충돌, 내전 등이다. 그러므로 권력의 공백 기간이 길어지면 사회는 급격하게 불안해진다.




삼봉 선생은 1398년, 태조 7년에 '불씨 잡변'을 썼다. 조선이 개국하고 7년 째가 되던 해인 것이다. 수백년 간 고려를 지배해온 불교 이념들을 조목조목 따져가며 태클을 걸었다. 이론적으로 처절하게 비판했던 것이다. 삼봉은 불교의 윤회설을 시작으로 인과 응보설, 심성론, 자비론, 지옥론, 선학론(禪學論)등을 철저하게 공격했다. 정삼봉이 살았던 시대를 고려해보면 이론에 능통한 삼봉은 사냥개 블러드 하운드나 다름이 없었다. 사실 삼봉의 이러한 시선은 현대인들에게도 여전히 해당하는 문제 제기 라는 점이 흥미롭다. 그런데 더욱 흥미로운 것은 이 책의 저술 시기이다. 저술 시기로 보아 조선 개국의 주역인 삼봉은 '그람시의 공백'을 미처 생각지 못했던 듯 하다. 저술이 개국 후 7년이 지난 시점이니 말이다.




[[[ 불씨 잡변의 목차이다. 심봉은 불교의 이념을 조목 조목 따져가며 심판대 위에 올렸다. ]]]

  


만약 헤게모니의 공백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미리 알고 있었더라면 삼봉 선생은 이 중요한 불씨 잡변을 개국 이전에 준비했어야 했다. 아니면 적어도 7년 씩 이나 걸리지는 말았어야 했다. 그는 일찌기 고려를 끝내고 조선을 열기로 작정한 개혁가였고 조선의 모든 설계자 였으니 말이다. 저술 시기로 보아 새로운 헤게모니의 필요성을 개국 이후에 느꼈던 것으로 보는 것은 개인적인 생각일 뿐이지만 그람시는 사유를 했고, 이를 실천한 사람은 정삼봉이었던 것이다. 어째거나 내게 진정한 개혁가는 조정암이라기 보다는 정삼봉 선생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모르겠지만 후학들의 노력으로 유학을 대변하는 '관혼상제'가 빠르게 조선에 자리잡았다. 유학의 헤게모니가 조선에 안착한 것이다. 이는 삼봉 선생이 불씨잡변으로 불교의 이념을 무너트리고 유학이 자리 잡도록 방향을 잡아준 덕분일 것이다. 또한 조선 백성들의 유연한 사고가 기여한 바가 크다고 보는 입장이다. 불교, 기독교, 도교, 전통 신앙이 함께 잘 어우러지는 사회가 조선이었다. 현재도 마찬가지다. 이런 사회, 아니 이런 국가가 또 없다. 다양한 종교의 자유를 허용하되 종교간의 갈등이 없는 나라, 신의 이름으로 전쟁을 해본 역사가 없는 나라, 바로 조선이 그랬다. 오히려 나라를 구할 때는 모든 종교가 힘을 합쳐 하나가 된 나라. 3.1 기미 독립 선언은 그렇게 모든 종교 단체가 힘을 모아 완성된 것이었다. 이는 오로지 백성들의 너그러운 마음과 여유에서 오는 관대함의 발로 일 것이다. 타자를 존중하는 그 아름다움 말이다. 거룩한 대한민국 국민들이여, 정녕코 만세!!


사실 삼봉은 불교를 공격하려고 의도한 것 이라기보다는 국가의 안정을 도모하기 위해 불씨 잡변을 저술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 방편으로 고려의 이념이었던 불교에 태클을 걸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경기 중 손흥민에게 태클을 거는 것은 손흥민이 미워서가 아니라 경기이기 때문이다. 사적으로는 얼마든지 친구가 아니겠는가. 나는 붓다를 경애하고 존경하며 마음의 스승으로 삼고 있지만, 고려의 썩어버린 현실을 개탄하며 백성들과 국가를 위한 충정어린 마음으로 불씨 잡변을 쓴 정삼봉에게 경의를 표하는 바이다. 삼봉의 드높은 정신이여, 경탄합니다! 


관혼상제는 다들 아시다시피 관례, 혼례, 상례, 제례를 뜻한다. 유학은 관혼상제로 시작하여 그것으로 끝을 맺는다. 이중에서 가장 먼저 사라진 것은 '관례'이다. 현대는 '제례' 마저도 거의 사라져가는 시대이다. 현재 제대로 살아있는 유학의 상징물은 '혼례'와 '상례'이다. 상례도 이제는 그 절차를 점점 간소화하는 추세이고 혼례도 그 규모를 작게 가지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다. 과거에 행했던 약혼도 사라졌고, 예물, 예단, 혼수 등의 내용들도 거의 사라졌다. 스몰웨딩의 풍토가 곧 자리를 대체할 듯 하다. 이는 시대의 요구에 응하는 자연스러운 헤게모니 현상이다.


나아가 과거의 국제 경제 이념의 흐름을 간단하게 살펴보면, 중세의 '중상주의' 이념이 애덤 스미스의 탄생과 더불어 '자유 시장 경제'로, 이는 대공항으로 끝을 맺고 새로운 '보호무역' 혹은 케인즈의 탄생으로 생겨난 '정부 개입 또는 뉴딜' 이라는 이념에 자리를 내주었다가, 다시 '신자유주의', 그리고 1995년 WTO의 출현으로 '세계화' 라는 헤게모니의 변천사를 써냈다. '세계화'는 미국에게 막대한 부채를 일으키는 치명적인 결과를 낳았고 현재는 그 종말에 이르렀다. 문제는  '세계화'를 대체할 헤게모니의 공백 상태라는 점이다. 그람시가 말했던 그 '공백' 말이다. 


또한 현재는 금융 자본주의에 회의를 느끼기 시작한 시대이다. 새로운 헤게모니의 출현을 요구한 것은 아마도 2008 미국발 금융위기가 그 시작점 일 것이다. 엄밀한 의미에서 탈중앙화의 거대 물결이 밀려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대다수는 이를 외면하는 듯 보인다. 지폐는 사라지고, 보이지 않는 화폐가 등장한지 오래다. 현금을 언제 써봤는지, 은행에는 언제 가봤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조만간 은행의 각 지점들이 거리에서 사라질 것이다. 또한 AI 시대가 이미 도래했고 그 추세는 가파르게 상승할 것이다. 어쩌면 곧 코인과 토큰의 시대를 맞이할 지도 모른다. 


이미 대한민국 무역 결재 금액의 10%가 스테이블 코인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실제 수치는 추정치보다 늘 높기 마련이다. 추정치가 맞다 하더라도 최소 국내 무역량의 10%는 이미 탈중앙화 되었다는 뜻이다. 자국 통화가 불안한 국가들일수록 스테이블 코인 의존도는 훨씬 더 높아진다. 탈중앙화의 비율이 높다는 뜻이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대한민국은 아직 자국 통화가 힘을 발휘하고 있기에 오히려 새로운 헤게모니에 둔감한 듯 보인다. 과연 대한민국의 통화가 언제까지 그 생명을 이어갈지 모르겠다. 이미 카운트 다운에 들어간 것은 아닐까...
 


 알렉스 카프의 '기술 공화국 선언'은 이 모든 것을 명확하게 장담하고 있다. 기존의 모든 질서와 이데올로기는 변화해야 할 시점을 맞이한 것이다. (알렉스 카프의 주장이 옳다거나 그르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개인 적으로는 알렉스 카프의 주장은 매우 위험하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그의 견해와 주장에 결단코 찬성 할 수 없다.) 세계는 아직 새로운 방향이 온전하게 그리고 명확하게 설정되지 않은 상태이다. 아직은 권력 헤게모니의 공백기인 것이다. 



현재, 전 세계가 매우 불안해 하고 있다. 안정성이 현저하게 떨어진 상태인 것이다. 그리하여 트럼프가 새로운 파시즘을 휘두르고 있다. 힘 있는 깡패가 설쳐대는 이유는 치안이 불안하다는 증거이자 헤게모니의 공백기라는 증거이기도 하다. 트럼프라는 깡패로 인해 전 세계가 모두 피해를 입고 있다. 전 세계의 질서가 불안하며 새로운 질서 유지를 위한 공백을 메꾸어줄 그 무엇인가를 요망하는 세계, 지금이 딱 그 시점은 아닐까 한다. 과연 새로운 권력 헤게모니는 어떤 형태의 것이 될 것인가.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야 할 시기가 아주 가까이 닥쳐온듯 한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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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6-03-23 14: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유교는 고려말에 유입된것이 아니라 삼국시대(고구려-소수림왕 태학 백제-근초고왕 박사제도 신라-통일후 국학)에 유입되었습니다.고려말에 유입된것은 유교의 한 부류인 주자학으로 충렬왕때 안향이 최초 도입하고 조선시대까지 주욱 이어졌지요.조선시대 불교는 사대부들이 탄압을 주장했지만 적어도 인종때까지 왕실에서 귿건히 믿었기에 조선왕조내내 사라지지 않은 것이지요.

차트랑 2026-03-23 15:13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카스피님,
저의 서재를 찾아주시고,
오류를 찾아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평소 카스피님의 해박한 지식과 정보력에 경의를 표하고 있었습니다.
오늘은 그런 덕을 제가 입게되었습니다.

다시 한 번 오류를 정정할 기회를 주셔서 깊이 감사드립니다.
바로 시정조치하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덜렁이라 실수가 잦습니다.
이점 기억해주시고 혹여 또 다른 오류를 발견하시면
오늘처럼 알려주시기를 당부드립니다.

감사의 말씀을 드리며
화창한 날 좋은 하루 되십시요 카스피님~

그리고 자주 찾아주시면 더욱 고맙겠습니다!!

차트랑 2026-03-23 15:13   좋아요 0 | URL
수정을 막 완료했습니다.
오류를 수정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점,
다시 한 번 더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카스피님~!!

카스피 2026-03-24 00:26   좋아요 0 | URL
별말씀을요,항상 좋은 글 올려 주셔서 잘 보고 있습니다^^
 


서양 음악 용어인 '세레나데 Serenade' 혹은 '녹턴 Nocturne'이라는 말을 모르는 분들은 없을 것이다. 우리에게는 익숙한 용어이지 싶다. 


'세레나데'는 우리 시간 기준으로 술시, 즉 저녁 7~9시 사이에 가정에서 연주하던 음악으로 우리 나라는 이를 소야곡(小夜曲)이라고 번역했다. 세레나데의 근원지인 이탈리아에서는 밤이 깃든 시간에 마음에 드는 이성의 집 창문 아래에서 노래를 불러 자신의 마음을 전달했는데, 이를 'Serenata' 라고 했다고 한다. 이탈리아에서는 창문 아래의 연가 였겠지만 이것이 독일, 프랑스 등으로 전이되면서 저녁 시간에 식구들이나 지인들이 함께 모여 음악을 연주하며 즐기는 형태로 확대되었다. 요즘 같으면 퇴근하면서 동료들과 포차에서 한 잔 하고 귀가하던지, 가족과 외식을 할 수도 있는 일이겠지만, 당시에는 그런 환경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잠들기 전 저녁에 시간을 보내는 방법 중 하나가 음악을 함께 즐기는 것이었다. 






[[[ 테너 황현한이 노래를 아주 잘 표현했다는 생각이 든다. 아주 마음에 든다 ]]]      



식구들끼리 혹은 지인들끼리의 연주이고, 초저녁의 소야곡인 만큼 약간은 조용하고 아주 심각하거나 무겁지 않은 음악이 주를 이루었다. 낭만적 이면서도 부드러운 음악의 형태였던 것이다. 저녁이 오고 조용한 어둠이 깔리면 이 곳 저 곳에서 아름답고 부드러우며 사랑스런 노래와 음악이 흘러나왔다. 세레나데의 시간이 온 것이다.

독일의 세레나데로는 슈베르트의  슈텐헨(Ständchen)이 아주 널리 알려져 있다. 




[[[ 대중 가수 나나무스꾸리도 이 노래를 불렀다. ]]]   


이 곡은 슈베르트가 1828년 작곡한 '백조의 노래' 라는 가곡집의 4번째 곡이다. 그런데 1828년은 슈베르트가 바로 세상을 등진 해였다. 이 곡을 쓸 때는 이미 그의 병이 깊어진 후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이 노래의 슬픔은 자신의 죽음을 예견한 데서 오는 것 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내게도 이 곡이 주는 애절함과 깊은 슬픔을 생각하면, 단지 사랑하는 이성에게 주는 곡이라고만 생각할 수는 없는 이유이다. 




[[[ 로스트로포비치의 제자이자 장한나의 스승, 첼로의 거장 미샤마이스키도 연주를 했다 ]]]


너무나도 아깝고 아까운 이여!
그리고, 사랑하는 슈베르트여, 안녕!


Shubert Ständchen


(가사와 해석은 인터넷에서 가져왔습니다)


Leise flehen meine Lieder
Durch die Nacht zu Dir;
In den stillen Hain hernieder,
Liebchen, komm’ zu mir!
나의 노래가 밤을 가로질러 당신에게 조용히 간청합니다.
고요한 숲 아래로 내려와 주세요, 

사랑하는 이여, 내게 와 주세요!



Flüsternd schlanke Wipfel rauschen
In des Mondes Licht;
Des Verräters feindlich Lauschen
Fürchte, Holde, nicht.
속삭이며 가느다란 나뭇가지가 달빛 속에서 살랑거립니다.
배신자의 적대적인 엿듣기를 두려워하지 마세요, 사랑하는 이여.



Hörst du die Nachtigallen schlagen?
Ah! sie flehen Dich,
Mit der Töne süssen Klagen
Flehen sie für mich.

밤꾀꼬리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들리나요?
아! 그들은 달콤한 탄식의 소리로 당신께 간청합니다.
그들은 나를 위해 간청합니다.


Sie verstehn des Busens Sehnen,
Kennen Liebesschmerz,
Rühren mit den Silbertönen
Jedes weiche Herz.
그들은 갈망하는 마음을 이해하고 

사랑의 고통을 아는 모든 부드러운 마음을 

은빛 같은 소리로 흔들어 깨웁니다.


Lass auch Dir die Brust bewegen,
Liebchen, höre mich!
Bebend harr’ ich Dir entgegen!
Komm’, beglücke mich!
당신의 가슴도 움직이게 하세요, 

사랑하는 이여, 제 말을 들어 주세요!
떨림 속에 그대를 기다리고 있어요.
어서 와요, 나를 기쁘게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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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26-03-18 05: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고등학교때 음악 실기 시험곡이라 더 기억에 남아요. 독일어로 외워서 불러야 했거든요 ㅠㅠ
피아노 연주 버전도 있는 것은 알았는데 첼로 연주곡도 있는지는 몰랐네요.

차트랑 2026-03-18 09:54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hnine님,
저의 서재를 찾아주셔서 고맙습니다.

선생님께서 슈베르르를 많이 사랑하셨던 것은 아닐까요...
이토록 아름다운 곡을 실기 시험곡으로 부르셨다니,
오.... 좋군요~!


저는 이 곡을 들을때마다
겨우 31세의 나이로 세상을 등진 슈베르트가 떠올라
늘 속이 상한답니다.
5월에 발표하고 11월에 사망했으니
유작이나 다름이 없어 더욱 그렇습니다.

비가 내리는군요.
좋은 하루 되십시요 hnine님.



2026-03-21 10: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6-03-21 10: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니르바나 2026-03-21 17: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차트랑님,

황현한 테너가 부르는 슈베르트의 세레나데 오랜만에 들으니 정말 좋네요.
학창 시절 음악시간에 선생님이 반주하시던 피아노 소리가 생각납니다.
제가 전에 페이퍼에서 언급했던 아이유 보다 좋아하는 가수 박인희씨가
무척이나 좋아하던 그리스 가수, 나나무스꾸리의 슈베르트 세레나데도 감동적이구요.
저도 최근에 가곡 듣기에 마음이 가서 베토벤, 브람스, 슈베트르 가곡과 함께
슈만의 <여인의 사랑과 생애> 음반을 집중적으로 반복해서 듣고 있습니다.
다만 국내 음반으론 메조소프라노 이아경의 음반 한장 뿐이어서 많이 아쉽더군요.
올려주신 슈베르트의 세레나데를 듣다보니 사랑의 감정이 몽글몽글 되살아나는 것 같습니다.
차트랑님 잘 들었습니다.^^

차트랑 2026-03-21 19:36   좋아요 1 | URL
니르바나님 안녕하세요.

가곡을 좋아하는 분들이 얼마나 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니르바나님은 제가 아는 극 소수 중 한 분이십니다.
국내 가곡과 독일 가곡을 특히 좋아하여 자주 듣는답니다. 국내 가곡의 시대가 저물어 무척 안타깝습니다.

그리고
다석 유영모선생님을 마음의 스승님으로 삼으시고 글을 읽고 깊이 감동했습니다.
길지 않은 글이었지만
그 마음을 온전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니르바나님 글로인해 다석선생님을 제대로 알고싶어졌습니다.
깊이 감사드립니다.

좋은 저녁 되십시요 니르바나님.



니르바나 2026-03-21 22: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차트랑님이 궁금해 하신 방송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HxQwG3yoec&t=71s

차트랑 2026-03-21 22:10   좋아요 1 | URL
고맙습니다 니르바나님,
잘 시청하도록 하겠습니다.

편안한 밤 되십시요~

차트랑 2026-03-22 08:26   좋아요 1 | URL
니르바나님,
알려주신 덕분에 영상을 모두 잘 봤습니다.
당주도 당주이지만
역시 풍월 최는 고전음악 전설의 큐레이터로군요.
풍월 최가 있은 후 풍월당이 있는듯요.
풍월 최가 새롭게 탄생시킬 풍월당이 기대됩니다.

LP 3천장이 물건너 주인을 찾아 왔다는 소식은
아주 의미심장하게 들리는군요.
풍월당이 어떤식으로든 오래 지속될것이라는 사인 같아서요.

니르바나님의 휴식 공간이 되어줄 것 같기도합니다.

좋은 하루 되십시요 니르바나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