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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부수 해설 ㅣ 동양문화총서 4
이충구 엮음 / 전통문화연구회 / 1998년 9월
평점 :
품절
세계는 다양한 언어를 가지고 있다. 세계의 언어에는 3,000-7,000개 정도 종류가 있다고 하니 생각보다 훨씬 많은 언어가 있다고 생각된다. 유엔은 1980년에 7424개의 언어가 있다는 보고를 했지만 현재는 6800여개로 줄어들었다고 한다. 사멸된 언어의 사용자가 그만큼 감소했다는 의미일 것이다.
가장 널리 사용하기로는 영어이고, 중국어 사용자 또한 중국인의 인구수와 같으니 어마어마하다 하겠다. 세계적인 국제 대회의 공식 사용언어는 대개 영어, 프랑스어 그리고 개최국 언어등 3가지를 공식 언어로 사용하는데 서울 올림픽도 이에 준했다. 물론 이는 IOC의 규정이고 행사의 취지와 목적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는 있다.
여하튼 세계 속에 존재하는 언어의 목적은 소통일 것이다. 상대방과 의사를 주고받는 쌍방의 소통이라는 점에서 그 목적은 같다. 그러나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이 있다면 나는 단연 한글을 꼽고 싶다. 가장 널리 퍼져있는 영어와 비교할 때 그 표현의 방법은 셀 수 없이 많은 것이 우리 언어이고 아름다운 표현의 다양성도 단연 으뜸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런데 그 의미가 심오하기로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언어가 있으니 바로 한자이다. 한자는 배우기에 가장 까다로운 글자 중 하나에 속한다. 물론 아랍어등과 더불어 한글도 외국인들이 익히는데 무척 애를 먹는 언어에 속한다. 한자는 알파벳을 사용하는 인도유럽어족과는 달리 상형문자라고 한다. 형상을 보고 만들어낸 글자라는 것인데 이 글자가 전달하는 의미는 매우 심오하다.
예를 들어 법 (法) 이라는 글자는 물수 변(水)에 그칠 거(去) 를 합해 놓은 글자이다. 물水은 중력에 의하여 아래로 흐르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즉 자연의 이리를 담은 한 글자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되 장애물이 있으면 돌아갈 줄 안다. 가는 길이 굽어있으면 그 굽은 길을 따라간다. 그렇게 물이 점점 한 지점으로 모여들어 작은 내를 이루고 큰 강을 이루다가는 드 넓은 바다를 이룬다.
바다에 이르러서는 그 바다로 흘러들어오는 모든 것을 거부하지 않는다. 그 무엇이든 포용하고 관용의 덕목을 가진다. 처음에는 마치 타에 의하여 돌아돌아 회피 하는 듯 부정적인 측면으로 바라 볼 수도 있지만 결토 쟁투하지 않는 본연의 성질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아 긍정적인 해석을 얼마든지 가능하게 한다. 분명 부드러움이 강함을 능히 제압하지 않던가.
그러한 물水의 자연법에 해당하는 본성에 '그친다'라는 의미릐 거去를 첨가한 것이 법法이다.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다가 그치는 곳은 어디인가. 바로 그 물을 수용할 수 있는 그릇을 만났을 때이다. 작은 그릇은 작은 량의 물을 담고 있으며 큰 그릇은 큰 물을 담을 수 있다. 흔히 큰 그릇이 되는 의미는 많은 물을 담을 수 있는 사람이 되라는 말로 이해하면 될 듯 싶다. 자연의 본성을 가진 물을 많이 담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 됨됨이를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아래로 흐르면서 그칠 곳이 있으면 그치고 머물다가는 증발하기도 한다. 불은 그 속성이 부드러워 잘 간수하지 않으면 증발해버리기도 한다. 조건이 맞지 않으면 날아가는 새와도 같다.
이렇듯 법法 자는 자연의 본성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글자이다. 모든 사회는 그 사회에 알맞는 법을 가지고 있다. 이를 위반하면 죄인되어 법의 구속력이 작용한다. 그렇다면 법은 인간을 구속하는 수단으로만 볼것인가.
위에서 물 수와 그치다 거의 으미로 알아봤듯이 물이 자연의 법칙에 따라 흐르고 그치는 가장 자연스러운 이치를 가진 글자를 왜 법이라고 하는 것일까.
바로 인간이 따라야 할 도덕적, 사회적 책임이기 때문은 아닐까.. 인간이 자연의 법칙에 순응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동양 철학의 본질이기도 하다.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자연의 모든 것은 행복을 추구하기 위하여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철학을 가진 서구와는 그래서 거리가 너무나 멀게만 느껴진다. 동양 사상은 자연의 섭리를 곧 도道 라고 했다. 이른바 '신(God)'이라 했다. 동양인에게 신은 곧 하늘이요 그 이치 자체이다. 그리하여 하늘님이라는 말은 이리하여 생긴 것일 게다.
나아가 법과 도가 만나 법도法道라는 두 글자를 만들어 낸다. 도道는 쉬운 말로 '길'이다. 즉, 인간이 살아갈 때 따르는 길이다. 자동차만 길을 따라 가는 것은 아니다. 우리 인간도 올바른 길을 따라가야 한다는 뜻일 게다.
그렇다면 우리가 '도를 닦는다'라는 의미는 무엇일까. 쉽게 인간이 가야할 올바른 길을 낸다는 뜻일게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인간으로서 나아가야 할 길이 따로 있는 것이다. 그것이 정도正道 인 것이다. 올바른 길이다. 도를 닦기 위해서는 수신이 필요하다. 수신은 자기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단련하고 수양하며 하늘님인 '신'의 뜻을 거스르지 않는 인간이 되기 위한 과정이다. 수신은 곧 인간이 살아가면서 행해야할 올바른 행위를 일걸음이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자연의 이치를 따르려 한다면 애써 평화라는 말을 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법이라는 한 글자 속에는 들어있는 심오함은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지만 일일이 모두 거론하기가 쉽지 않다. 이렇듯 한 글자 속에 세상의 이치를 담을 수 있는 것이 바호 한자이다. 이러한 한자를 공부하는 일 또한 좋은 일이며 법에 따르는 일일 것이다.
한자의 특징 하나는 부수가 있다는 점이다. 부수를 알면 한자가 보인다 라는 말은 이런 의미이다. 한자 공부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그 유익함은 말할 핑요도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