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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은 뒷자리로 통근버스 좌석 분리
부산 D조선업체 보름여 시행‥'시대착오적' 비난
 
 
연합  
 






부산의 한 조선업체가 통근버스의 앞자리는 정규직 사원에게, 뒷자리는 비정규직 사원에게 각각 배정해 '시대착오적인 조치'라는 비난을 사고 있다.

부산의 D조선은 지난해 12월 18일부터 45인승 통근버스의 앞자리(1~23번)는 정규직원이, 뒷자리(24~45번)는 협력업체 직원이 각각 앉도록 하는 좌석 지정제를 시행하고 있다고 3일 밝혔다.

이는 다수를 차지하는 비정규직 사원이 일찍 출근해 주로 앞자리를 차지하는 데다 때로는 서서 가야 하는 정규직 사원들이 불만을 제기해 취해진 조치라고 사 측은 설명했다.

이 회사 통근버스는 이전에는 정규직, 비정규직에 관계없이 먼저 타는 사람이 빈자리 가운데 원하는 곳에 앉았으나 정규직 사원들의 불만이 터져 나오면서 이로 인한 마찰이 끊이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부산민중연대 최지웅 정책국장은 "사회적으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을 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 이 마당에 비정규직에 대해 통근버스를 타는 것조차 차별하는 것은 명백한 인권문제"라면서 "조속히 시정돼야 한다"라고 말했다.

D조선은 직원 400여명에 연 매출액 2천억원이 넘는 중견 조선업체로 코스닥에 등록돼 있다.

(부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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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강마에와 사랑에 빠졌어요” [2008.11.14 제735호]
 
[레드 기획] ‘마우스필’의 해체를 애도하며 <베토벤 바이러스>의 홍진아·홍자람 작가를 만나다
 
 
 
구둘래


 
 

11월6일 일산 문화방송 드림홀에서는 한 이름 없는 오케스트라의 공연이 있었다. ‘마우스필’이라고 했다. 30년 활에서 손을 뗀 ‘똥덩어리’와 카바레 연주자와 종양으로 귀가 멀어져가는 암환자와 25살이 되어서야 천재성을 발견한 전직 경찰이 연주한다고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들 앞에 인순이가 나서 노래를 불렀다. 제목은 <거위의 꿈>. 킹 목사 이후에, 오바마 이전에 인순이의 것으로 여겨졌던 말, “난 꿈이 있어요”라는 노랫말로 시작하는 노래다. 그리고 이 마우스필 ‘똥덩어리들’의 노래다. 이것을 끝으로 마우스필은 해체를 한다.

<베토벤 바이러스>(문화방송, 수·목 밤 9시55분)가 11월12일 18회로 끝난다. <베토벤 바이러스>는 대작 <바람의 나라>(한국방송)와 기대작 <바람의 화원>(SBS) 두 바람을 잠재우고는 바이러스성 질병을 유포했다. 전국에 마침 독감이 돌았다. 뒤뚱거리는 ‘덕’의 꿈에 시청자가 열광했다. 인기 드라마의 ‘운명’, 팡파르 속에 이별이 2주 연기되긴 했다. 한 부는 아랍에미리트와의 축구 경기로 결방되고, 13일에는 ‘스페셜편’이 편성돼 있으니 결과적으로는 2회 더 늘었다. <거위의 꿈>을 연주하는 마우스필의 공연은 18회 중반을 장식할 예정이다.


 
 


» 홍진아(왼쪽)씨는 낙천적이고 홍자람씨는 염세적이라고 한다. 언니는 번뜩이는 구성력을 가졌고 동생은 부감으로 보는 눈을 가졌다. 두 작가가 집필실에서 PD가 요구한 수정 사항을 의논하고 있다. <한겨레21> 박승화 기자
 
 
 

홍진아(41)·홍자람(38) 자매를 공연 전날 만났다. 인터뷰는 저녁에 촬영 예정인 17회 수정을 해야 하는, 밥 먹을 짬도 없는 ‘바쁜 시간’을 비집고 이루어졌다. 시간을 밤톨같이 써야 하기에 전날 인터뷰 질문지를 보냈더니, 묵언 수행을 끝내고 터진 방언처럼 긴 답변이 왔다. 실제 대면한 작가들 역시 웃고 맞장구치고 떠들썩하고 유쾌했다. “대본만 쓰다 보니 수다에 굶주렸나 봅니다.” 답변 편지 역시 대본 집필 때처럼 홍진아씨가 초고를 마련하고 홍자람씨가 덧붙이고 홍진아씨가 정리해 보냈다. 홍자람씨는 “이번 작품은 거의 언니의 작품”이라며 편지에 답을 하거나 인터뷰를 할 때 극도로 사양했다. 둘의 성격이 많이 다르다고 하는데, 인터뷰 질문과 답변은 드라마 극본처럼 뭉뚱그려 적었다.


-‘클래식 드라마’라는 용감한 결정을 했다.

=클래식을 ‘테마’가 아니라 소재로 삼았다. 하고 싶은 얘기가 먼저 있었고, 구도를 잡았고, 등장인물을 잡았다. 이걸 한 그릇에 모두 담아서 버무려야 하는데 어떤 그릇이 좋을까. 우주인 선발대회라는 그릇도 나왔고 야구, 일반 회사 등 별별 그릇이 등장했다. 그러다 오케스트라를 떠올렸다. 여러 사람들의 사는 얘기고, 그들이 부딪히면서 이뤄가는 뭔가, 오케스트라가 가장 적합했다. 더 적합한 게 있었다면 주저 없이 다른 그릇을 택했을 거다. ‘용감’이라는 건 시청률 때문인가. 잘 나올 거라고도 생각 안 했지만 클래식이라서 걸림돌이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사람들을 보면, 나조차도 클래식을 들으면 좋다. 다만 가까이하기 너무 먼 존재인데,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는 저 먼 곳에 있는 클래식을 어떻게 가깝게 그리느냐였다.

‘용감’이란 건 <노다메 칸타빌레> 때문도 있다. 방영 전 ‘클래식’이라는 소재만으로 ‘의심스러운’ 눈초리가 겨눠졌다. 제작진은 소재를 결정한 뒤 “앗, 노다메” 하고 깨달았다고 한다. 그러고는 이 드라마를 5번 정도 보았다. 완전히 숙지해서 피해가기 위해서였다. 외전도 보고 노다메 원작 만화까지 구해 봤다. “실제로 정말 우리에게 필요한 장면인데도 그쪽에서 먼저 나왔서 버린 에피소드도 많다.” 예를 들어 초보 연주자들이 지휘를 보지 않는 것에 대한 에피소드는, 인턴이 정맥주사를 놓으려고 잡으면서 힘들어하는 에피소드처럼 보편적이지만 집어넣지 않았다. 음악도 피하려고 했다. <노다메 칸타빌레>에 나온 곡 목록을 뽑아놓고 선곡할 때마다 피해갔다. 딱 하나 겹치는 건 <윌리엄텔 서곡>이다. 이 곡은 <노다메 칸타빌레> 외전에서 치아키 지휘콩쿠르 몽타주 장면에서 몇 초 나온단다.






-클래식에 원래 관심이 많았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사전 취재를 많이 했겠다.

=원래 클래식에 관심이 별로 없었다. 보통 사람들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다만 어렸을 때부터 피아노를 쳐서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들을 칠 정도는 되니까 악보나 악상, 클래식 용어들에 대해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는 정도? 직접 연주하는 음악이 얼마나 삶을 풍요롭게 하는지를 느끼고 있다는 정도? 대본 쓰면서도 막히면 피아노를 쳤다. 스트레스 풀기에는 정말 최고다. 취재는 두어 달 열심히 했다. 한 달 정도는 이곳저곳 돌아다니면서 연습 장면을 보고, 서희태 선생님(음악감독)과 단원들을 만나 얘기를 듣고 보는 ‘실루엣 취재’였다. 이후에는 서적과 음악을 들고팠다. 그리고 여주인공 설정이 바이올린 연주자라, 바이올린 강습을 받았다. 그러면서 같이 잡기 시작한 기획, 시놉시스 등에 필요한 것들은 끊임없이 메모를 해나갔다. 그게 쌓여 전체를 구성하는 에피소드들이 됐다. 그때 발견한 것들이 <넬라 판타지아>(클래식 곡은 아니지만 음악의 진정성을 영화 <미션>에서의 장면 하나로 보여주기엔 가장 좋았다), <합창교향곡>, 스메타나의 <나의 생애> 중 4악장(루미 귀 관련), 타악기 연주자 이블린 글레니 같은 얘기들이다. 훨씬 더 재미있는 게 많았지만 드라마에 맞지 않아 못 써먹었다. 하지만 꼭 짚고 넘어갈 게, 이 드라마를 하는 이유는 ‘클래식’이란 소재를 통해 ‘인간의 보편성’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태릉선수촌>도 그랬다. <태릉선수촌>에 있는 네 명의 선수들을 통해 그들만이 겪는 특수한 얘기가 아니라, 옆집 형이나 내가 겪을 수 있는 평범한 고민을 끄집어내려고 했다. 그게 아니라면 안다리 기술을 어떻게 습득하고 완성해내느냐만 가지고 세 편이 나올 수도 있었을 거다.

이 드라마는 전문직 드라마가 아니다. 감독님과 같이 잡았던 원칙도 있다. 스토리상, 드라마의 표현상 절대적으로 필요한데 오케스트라, 클래식이라는 리얼리티에 비춰볼 때 부딪히는 부분이 있다. 그럴 땐 스토리, 드라마의 표현을 따르자는 것이다. 10회 <합창교향곡>에서 갑자기 합창단이 쏟아져나오는 장면이 바로 그렇다. 원곡에서 성악 파트는 중간에 남자 솔로부터 시작한다. 그렇게 쏟아져나오면서 갑자기 전체 합창이 터진다는 건 편곡을 하지 않는 이상 불가능하다. 일부 시청자가 말도 안 되는 장면이라고 말하는 게 맞다. 그렇지만 원곡처럼 남자 솔로부터 가면 그 장면의 감동은 반감됐을 거다. 반감 정도가 아니라 전혀 없었을 거다.

드라마가 방영된 뒤에는 <노다메 칸타빌레> 얘기는 쑥 들어갔다. 음대의 ‘전문가’와 ‘핸디캡도 가벼운 똥덩어리’라는 설정부터가 판이했다. 무엇보다 큰 차별성은 톡톡 튀는 캐릭터의 탄생이다. 궁상 떠는 인생들은 실패만 하다가 매달릴 하나를 찾았다. 이들은 마조히스트임이 분명하다. 넘었다 싶으면 막아서는 벽을 웃으면서 넘는다. 그리고 한 명의 사디스트가 있다. 한국 드라마 사상 가장 악질, 독종, 철면피, 안하무인, 콤플렉스 덩어리, 고집불통. 누구와 마주하든 3초 만에 얼굴을 붉히게 하는 재주를 지녔고, 심한 말을 했으면 ‘아차’ 하는 대신 더 심한 말을 한다. 그리고 시청자는 마조히스트임이 분명하다. 그런 그를 사랑했다. 배우 김명민은 눈썹을 밀고 파마를 하고 목소리를 바꿨다. 그렇게 탄생한 강마에는 오른팔을 접고 고개를 빳빳이 들고 먼지 한 가닥 묻지 않게 걷는다.



 
 


» <베토벤 바이러스>
 
 
 


-강마에, 김명민에 대한 찬사가 이어지고 있다. <하얀 거탑>에 이어서 연기의 ‘마에스트로’에 올랐다는 평이다. 강마에라는 캐릭터를 만들어낼 때와 이후 연기를 보면서 어땠는지.

=처음부터 김명민씨를 염두에 뒀다. 이재규 감독이 김명민씨 캐스팅됐다면서 ‘야호~!’ 문자를 보냈고, 나도 방에서 ‘야호~!’ 하며 방방 뛰었다. 김명민씨와 저는 아직껏 일면식도 없다. 대본 쓰느라 바쁘기도 했고, 감독님을 믿고 맡기기도 했다(홍 자매는 촬영장은 물론이고 외출도 거의 못했다). 어느 날 거실에서 커피를 타고 있었는데, 웬 목소리 하나가 귀에 와 꽂혔다. 어, 저건 강마에 목소린데 하고 뒤돌아보니, 내가 대본 속에 써놨던, 분명히 내 마음속에만 있었던 강마에가 떡하니 TV에 나와 있었다. 그때 드라마 예고로 본 게 강마에로 변신한 김명민씨와의 첫 대면이었다. 이제껏 십 몇 년간 드라마를 하면서 그렇게 첫 등장부터 내 느낌과 일체감을 보인 캐릭터와 연기자는 처음이었다. 꼭 김명민씨가 우리 맘속에 들어와서 샅샅이 다 뒤져보고 나간 거 같았다. 그렇지 아니고서야 어떻게 우리 강마에와 똑같을 수 있겠나.

그 뒤 몇 편의 드라마에서 강마에 연기를 모니터하고 나서는, 김명민씨 지문 쓰는 방식도 바꿨다. 원래 지문을 행동지문과 심리지문을 같이 쓰는 스타일인데, 김명민씨 관련 지문에서는 행동지문을 필요한 것만 남기고 다 없애고 심리지문을 강화했다. 본인의 느낌대로 맘껏 놀게, 펼치게 하고 싶었다. “이 장면에서 이러저러한 심리이니 맘껏 본인의 역량을 발휘해주세요”라는 거였다. 그게 작가가 최고의 연기를 보여주는 배우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의 응원이었다.

-강마에의 캐릭터를 어떻게 만들어내게 됐나. 독선과 아집의 인물로 보이지만, 사실은 순정만화의 전형적인 주인공형으로 보인다. 모르는 척하면서 감싸주고 모든 것을 다 아는.

=미국 드라마 <하우스>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극단적으로 캐릭터를 밀어붙이는 힘에 놀랐다. 원래 캐릭터물에 관심이 많았는데 더더욱 불이 붙었다. 그래서 일단 삐딱한 독설가의 실루엣을 그렸다. 그 어렴풋한 실루엣이 어떤 사람일까, 비망록을 만들었다. 작가마다 캐릭터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다 다를 텐데, 나는 조각을 한다고 생각한다. 즉, 어떤 캐릭터의 실루엣, 느낌에 강렬히 끌렸을 때는, 이미 내 안에 그가 있다고 생각한다. 아직 구체화하지 못했을 뿐이다. 그때 그를 끌어내는 방법은, 그가 자라오면서 겪었던 일들을 비망록 형식으로 만들어보는 거다. 어디서 태어났을까, 부모는 누굴까, 가난할까 부자일까, 어렸을 때 부모를 가장 크게 놀랜 일은 어떤 걸까, 얘가 처음으로 기억하는 강렬한 장면은 뭘까 등등. 그러다 보면 내 안에서 그 사람의 손발이, 무릎이, 팔꿈치가, 가슴이, 심장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내 안의 또 다른 나와 대면하는, 정말 신기하고도 재밌고 짜릿한 작업 중 하나다.

몇십 장의 비망록 중 드라마에 반영된 것도 있지만, 거의 대부분은 밑그림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해서 다듬어진 강마에는 <하우스>의 독설은 닮았지만, 40대 한국 남자답게 훨씬 권위적이고 보수적이다. 훨씬 순수한 구석도 있고, 다층적이며, 돌아가신 우리 아빠와도 참 많이 닮았다(작가의 아버지는 <먼동> 등을 쓴 소설가 홍성원씨다. 올 드라마를 집필 중 5월1일 암으로 돌아가셨다). 우리 주위 친척들은 전화 걸어서 말한다. 형부가, 형님이, 삼촌이 TV에 강마에로 나왔다고. 아빠가 50% 모델이라는 건 우리와 PD만 아는 건데, 참 신기한 경험이다.

-강마에는 사랑에 정말 어울리지 않는 인물이다. 멋있어서 푹 빠지다가도 퍼뜩퍼뜩 정신 차리라는 소리가 강마에의 목소리로 들려오는 듯하다. 러브스토리 라인을 짜나가기가 힘들진 않았나.

=힘들다. 시놉시스에선 훨씬 멜로 진도를 뺐는데, 실제 대본에서 빨리 빼지 못한 것도 그런 면이 컸다. 참 재미있는 게 똑같이 대본을 쓰는 건데도 방송이 시작되고 나면, 드라마는 자기만의 생명력을 갖게 된다. 대본, 연출, 연기 세 가지가 맞물려서 유기체가 탄생되는 느낌이다. 제4의 동력이 생기면서 자기가 굴러간다. 근데 시놉시스 잡아놨다고 억지로 밀어붙이는 스타일도 아니고, 피드백 속에서 내 안의 강마에가 멜로에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그놈이 움직이는 대로 내버려뒀다. 단, 너무 심하게 거부한다 싶으면 엉덩이를 찰싹 쳐서 내몬 적도 있긴 하다. 아주 조금씩 가다 보니 멜로가 더 짜릿해지는 면도 있는 것 같다. 마약 가루 솔솔 뿌리는 느낌도 들고,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정신 차리라는 목소리, 나도 듣는다.

-직접 캐릭터를 만들어낸 작가도 사랑에 빠진다는 건가. 피그말리온이다.


=멋있다. 내가 쓴 대사를 할 때면 멋있거나 하진 않다. 그런데 대사할 때 나오는 ‘섹시함’은 내가 글로 만들어주는 게 아니다. 사실 ‘섹시하게 쳐다본다’고 하더라도 섹시해지지도 않고. 지문에는 ‘섹시하게’가 하나도 없는데 섹시하다. 강마에의 나이가 40살이다. 사랑에 빠지는 여자애가 20대 팔팔한 애다. 이 여자가 사랑하게 해야 하는데, 강마에의 섹시함 때문에 사랑에 빠졌다.

-이름이 같은 강건우 대 강건우의 대결이 재밌다.

=강건우 대 강건우는 기획 의도 2, 3번을 다툴 정도로 중요하게 초반부터 생각했던 거다. 그래서 이름도 동명이인으로 만들었다. 살리에르와 모차르트의 대립보다는 40대와 20대의 대립, 애증을 먼저 생각했다. 완고하고 보수적인, 그러나 연륜이나 명예, 안정적인 면에서 앞서나가는 40대와 가진 것은 없으나 젊음만으로 아름다운, 패기, 도전 등이 너무나 싱그러운 20대. 그 둘의 애증. 모차르트와 살리에르는 어떻게 보면 그 애증을 더욱 구체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덧붙인 설정 비슷하다.

왜 저 구도가 끌렸을까, 생각해봤는데 아버지와 아들 관계의 미묘함에 끌렸던 것 같다. 언젠가 역사의 뒤편으로 밀려날 아버지, 그리고 그 밑에서 무한한 애정은 있으나 언젠가 넘어서고 말 거야라는 생물학적 라이벌 의식을 가진 아들, 그 아들을 지지하고 원하면서도 위협을 느끼는,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견제를 하고 후회를 하는 아버지 등. 짜릿하지 않은가. 그 끊임없는 모순된 심리 사이의 갈등, 애정의 스파크가 끌렸다. 서로 견제하는 욕구만큼이나 둘 사이에 깔린 애정도 관심이 많다.



 
 


» <베토벤 바이러스>에서 리더는 없다. 서로 사랑하고 사랑받고 배신하고 배신당하며 영향을 주고 받는다. ‘바이러스’의 전염 경로는 인과관계를 따르지 않는다. 18회 희망콘서트 촬영현장의 배우들. 옆에 있는 프로들의 몸짓과 표정을 거의 똑같이 맞춰낸다. 한겨레 정용일 기자
 
 
 


두 작가는 <신세대 보고서: 어른들은 몰라요> <나> <학교3> <반올림> 등 중·고등학생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성장 드라마를 주로 집필했다. 한 회에 한 에피소드가 들어가는 ‘에피소드 드라마’는 남남북녀의 비극을 그린 2부작 <신 견우직녀>(2003)에도 이어졌다. 2005년 발표된 두 개의 작품 <떨리는 가슴-바람> <태릉선수촌>은 그들의 가능성을 한껏 보여준 드라마다. 42살 남자와 20대의 깔끔한 ‘바람’ 이야기인 <떨리는 가슴-바람>은 봄바람처럼 설레었고, <태릉선수촌>은 풋풋한 감성이 즐거웠다. 그러고 보면 <떨리는 가슴-바람>에는 움직이지 않을 것 같은 사랑을 설득해내던 고뇌가, <태릉선수촌>에서는 꿈을 좇아 달리는 젊은이들이, 그리고 천재와 노력파의 대결이 <베토벤 바이러스>의 전주곡처럼 울린다. 이재규 PD(38)는 데뷔작으로 <다모>를, 다음 작품으로 〈패션70s〉를 한 ‘무서운’ PD다. 작품의 성격은 다 다르지만, 데뷔작부터 지금까지 몸을 혹사시키는 작품이었다. 작품마다 대규모 군중신이 많았다.


-이재규 PD와의 첫 작업이다. 시작 전 인터뷰에서 이재규 PD가 “예전에는 설득한다 80, 설득당한다가 20이었는데 지금은 50 대 50”이라고 했다.

=같이 하는 작업에 대해선 99% 만족이다. 기획 단계에서부터 즐거웠다. 싸운 적이 기억에 거의 없다. 아이디어가 퐁퐁 샘솟는 분이라 얘기를 하면서 참 즐거웠다. 서로 흥분하고 목소리 커지면서 좋아하며 박수쳤던 일이 많았다. 작가들을 이야기 속에서 마구 뛰놀게 해주었다(홍자람 작가: 맨 처음 봤을 때 쌍둥이가 만난 줄 알았다).

3회 <넬라 판타지아> 신이나 8회 루미가 물에 빠졌을 때 수중 현악4중주 신은 이게 되려나 걱정했던 장면이다. 제작비와 효율 얘기를 먼저 꺼내면서 이런 식으로까지 할 필요가 있겠느냐, 우려할 만한 신들이었다. 그렇게 한 번, 두 번 제약이 들어오면 작가는 자기 검열에 걸리기 시작한다. 상상력이 위축된다. 그런데 이재규 감독은 그런 게 없었다. “너무 좋네요, 가요” 하고는 정말 그렇게 만들어냈다. 이런 식으로 믿어주면 신이 나서 더욱 좋은, 감정을 한방에 그림으로 보여줄 수 있는 신들을 고민하게 된다.

-보통 전문직 드라마를 표방하더라도 처음에는 열심히 보여주는 듯하다가 나중에는 사랑 이야기로 빠진다. 하지만 <베토벤 바이러스>는 계속해서 대규모 공연신이 나오고, 음악적인 갈등이 이후에도 이어졌다.

=감독이 독해서 그렇다. 9~10회를 썼을 때(10회에서 11회 이어지는 대규모 공연신이 있다) 앓는 소리가 주변에서 들렸다. 공연신이 아니라 오케스트라 연습신도 하루 종일 찍어야 한다. 30초 나가는 분량을 그렇게 해야 한다. 제작진이 죽어 넘어가기 때문에 연습신 좀 줄여주세요, 제발 부탁드립니다 하는 말을 여러 번 들었다. 하지만 감독은 한 번도 그런 소리를 하지 않았다. 촬영 스케줄을 보니까 판단이 되긴 하더라. 나중에 갈수록 디테일이 떨어지는 장면도 있긴 하지만 방송사에서도 이재규 아니었다면 못 찍었다고 그런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공이 많이 들어가는, 판타지 기법을 적극적으로 도입했다.

=<넬라 판타지아>신도 그렇고 수중신도 그렇고 판타지 장면이 많다. 이것이 ‘게이트키핑’ 역할을 하리라고 생각했다(<넬라 판타지아>신은 강마에가 단원들을 연주를 통해 바람 부는 들판으로 데려간 장면, 수중 신은 두루미가 물에 빠졌을 때 본 수중 현악연주). 싸우기 시작하는데 얼굴을 사정없이 일그러뜨리면, 아 이건 오버해서 싸우는 극이구나라는 느낌을 주듯이 이건 ‘전문 드라마’가 아니다라는 것을 알려주는 장면들이다. 그렇게 깔고 간 건데, 그 장면을 좋아하면서도 다른 장면에서는 판타지의 여지를 전혀 두지 않는 점이 의아스러웠다. 처음 하면서 겪는 시행착오다. 회의를 느껴본 적은 거의 없지만, 새로운 길을 간 건데, 이런 것 하라면 안 하고 싶다. 조용히 따라가고 싶다. 나는 왜 다른 걸 해서 욕을 듣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인터넷을 떠도는 ‘똥·덩·어·리’ UCC, 연말 연기상 소감문 패러디, 갑작스럽게 불어닥친 클래식 인기, 사무실 곳곳에 울리는 드라마 주제가…. 발빠른 시청자는 적극적으로 <베토벤 바이러스>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팬들의 ‘환호’가 부담스럽지는 않나.

=그전에는 이런 걸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다. 우리는 지금까지 이해할 만한 사람, 보고 싶은 사람만 보는 드라마를 했다. 이번 작품도 별로 기대가 없었다. 그런데 1회부터 서서히 시청자가 열광해줘서 두근거렸다. 그리고 5회부터 같은 시간대 1위를 하면서 놀라운 일들이 벌어졌다. 그러면서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시청자를 만났다. 어떤 사람은 멜로만 보고, 어떤 사람은 악단만 보고, 어떤 사람은 악기만 본다. 리뷰에 활이 떴다, 손가락이 안 맞았다는 등 연주에 대한 이야기만 있다.

그리고 시청자가 열광하는 강마에와 싸우는 기분이었다. 9~10회 나오고 나서 감독의 첫 마디가 “어떡하죠?”였고 답변이 “큰일났죠?”였다. 강마에가 점점 신격화·영웅화돼가고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우매한 민중을 강력한 지도자가 새 세상으로 이끈다, 라는 기획 의도와 정반대인, 절대 가서는 안 될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보탠 것이 질투다. 어떤 장면에서도 강마에의 편이 되어 있는 시청자에게, 욕 엄청 먹겠다 하면서도 그렇게 갔다. 다른 드라마는 캐릭터 띄우기에 여념이 없는데, 우리는 중반에 ‘박살을 내자’는 식이었다. 이게 뭐하는 짓이냐 자문자답하면서도 나중에 후회하지 않으려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좀 있다 ‘강마에 리더십’ 책 나올 분위기다.

=강마에는 좋은 리더가 아니다. 나쁜 사람이다. 나쁜 면을 강조해서 보여줬는데 사람들이 열광한다. 그 부분에 목말랐나 싶은 생각도 들면서 겁이 더럭 나기도 한다. 그는 독재자다. 말 안 해주고 나만 따라와라고 한다. 자기 합리화의 달인이다. 모순 많고, 말 안 되는 것이 아주 많다. 그런데 그런 것 집으면 지금은 작가가 역적 되는 분위기다.

<거위의 꿈>도 팬들 사이에서 논란이 된 곡이다. 오케스트라의 마지막 곡이 대중가요라는 이유로. 이 곡은 지난해 기획 과정에서 내정되었던 곡인데 최근 묘하게 겹치는 일이 일어났다. 가수 인순이씨가 예술의전당에서 대중가수의 콘서트를 허락해달라고 청원했지만 클래식계의 높은 벽에 부딪혔다. 유인촌 장관은 “예술의전당은 원 목적대로 오페라와 발레를 중심으로 공연을 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대중들의 ‘대중가요’가 클래식에 합류하는 데 대한 거부감은 비슷한 맥락에서 나온 것이리라. 이 선입견을 깨부수는 데 강마에의 설득력이 마지막으로 발휘된다. 18회 강마에는 손수 ‘거위의 꿈’ 지휘를 맡는다. “일관성 없이, 말도 안 되게 자기 중심으로 해석”(홍 자매)하며 지휘봉을 잡는 이 장면은 강마에가 초반 신랄하게 내쏟았던 귀족/천민의 분류를 스스로 허무는 것이다. 그리고 이 부분에서 <베토벤 바이러스>의 흐름은, 강마에가 이끈 것이 아니라 강마에가 오케스트라의 ‘똥덩어리들’ 쪽으로 이동했음이 명확해진다.


-그래도 행복한 경험이었겠다.

=시청자와 같이 만든 느낌이 든다. 제작도 그렇지만 방영 이후에도 여러 가지로 같이 간다. ‘똥덩어리’ 등의 동영상 제작은 홍보비도 받지 않는데 어찌 그리 열심이신지. 지금은 고민이 많이 된다. 끝나면 드는 시원섭섭이 아니라 착잡이다.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이 남은 느낌이다. 복기를 잘해봐야 되겠다. 지금은 방어벽이 있어서 이야기들이 곱게 안 들리는데 마음의 안정을 찾고 강한 마음으로 복기를 하면, 골방에 갇혔을 때는 맞았던 것 같아, 하는 생각이 든다.


홍 자매는 이후 ‘독립’하여 작품을 쓸지도 모르겠다고 말한다. “혹시나 이번을 끝으로 각자의 작업을 하게 되면 사람들이 사이가 나빠졌다고 말할지 모르겠어요. 우리가 피터지게 싸우긴 했지만 사이가 나빠진 건 절대로 아니에요.”

홍 자매가 ‘칩거’하는 김포의 아파트에는 두 개의 집필실이 있다. 아파트의 양쪽 끝이다. 각자는 틀어박혀 전화로 혹은 급할 때는 방문을 두드려서 방문한다. “이게 뭐야” 하다가도 너무 좋은 장면이 만들어지면 복도 중간에서 딱 마주쳐 손을 맞잡고 환호한다. 새벽을 잊은 ‘큰 목소리’ 둘이 생방송됐으니 아파트 주민들이 꽤나 괴로웠을 거라고 한다. 바로 그곳이 ‘바이러스’의 발상지였다. 주민들도 행복했을 것이다. 2008년 9월10일부터 11월13일까지.



 





[홍 자매가 뽑은 명장면] 쓴 사람이 입을 떡 벌렸습니다


 
 


» 토벤이 기절했을 때 강마에가 보여준 느낌
 
 
 

2회: 토벤이 기절했을 때 강마에가 보여준 느낌

쓰면서 참 망설였던 신입니다. 그런데 정말로 슬퍼하는 강마에의 모습에 전율이 일어서 망설였던 제가 다 죄송할 정도였어요. 특히 전화 걸러 가면서 강마에가 자신의 양팔을 감싸는데, 동생과 보면서 입을 떡 벌렸습니다. 지문에 그런 거 없었거든요. 근데 정말 그 순간이라면, 정말 저런 상황에서의 강마에라면 저렇게 할 것이다라는 생각이 팍 들었습니다.


 
 


» 정희연 리베르탱고 솔로
 
 
 

5회: 정희연 리베르탱고 솔로

제가 쓴 드라마를 볼 땐 되게 냉정해지는 입장이라 감동 같은 걸 거의 받지 못하는데, 이때는 저도 정말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송옥숙 선생님의 힘이라 생각합니다.


 
 


» 혁권의 딸인 보라와 대사를 주고받으며 내려오는 층계신
 
 
 

5회: 혁권의 딸인 보라와 대사를 주고받으며 내려오는 층계신

혁권은 직장 이사 때문에 공연 참석을 포기합니다. 근데 또 공연이 걱정돼서 이사도 제대로 못하고 안절부절못하죠. 그런 그의 미묘함을 보라가 천진난만하게 찔러주는 신입니다. 보라 연기도 좋았고, 혁권 역의 정석용씨도 타의 추종을 불허했습니다. 옆에서 “그만해 보라야”라며 말리는 부인 역 황영희씨도 정말 좋았고요, 풀숏으로 아리아리하게 감정을 건드려주신 감독님 연출도 예술.


 
 


» 치매 문제로 지휘자실에서 대립하는 갑용 vs 강마에
 
 
 

8회: 치매 문제로 지휘자실에서 대립하는 갑용 vs 강마에

주먹이 오간 것도 아닌데, 서로 조근조근 말하는 것뿐인데, 보면서 숨이 막혔습니다. 진정한 연기 내공이란 이런 것이구나, 절로 고개가 숙여졌어요. 특히 치욕을 감내하고 앉아 있던 갑용의 백숏은, 그 순간 감정에 관한 백 마디 대사보다 더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 사과를 결심하는 강마에 & 울어주는 루미
 
 
 

9회: 사과를 결심하는 강마에 & 울어주는 루미

개인적으로 어떻게 연기를 하실까 가장 많이 기대했던 장면입니다. 이때 강마에 심리의 복잡함이 장난이 아니거든요. 그냥 심리로 그치는 게 아니라 여러 개의 감정이 뒤섞여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기도 했고요. 보면서 역시 했습니다. 더 이상 말이 필요 없었습니다.


 
 


» 강마에에게 미묘한 예의 바름의 벽을 쌓기 시작하는 건우
 
 
 

11회: 강마에에게 미묘한 예의 바름의 벽을 쌓기 시작하는 건우

처음으로 건우와 강마에 사이에 금이 가기 시작하는 장면입니다. 그것도 쫙이 아니라 보일 듯 말 듯, 찌지직도 아니고 스윽. 아주 예의 바른 대화 속에, 표정을 드러내는 것도 아니고 안 드러내는 것도 아니게, 목소리도 딱딱하지 않으면서 딱딱하게. 말로 써놔도 저게 말이야 싶을 정도인데, 연기자 입장에서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쓰면서도 참 미안했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한마디로, 장근석씨 브라보~!



 
 


» 자신을 버리고 갑용을 감싸안으려는 이든의 백숏
 
 
 

13회: 자신을 버리고 갑용을 감싸안으려는 이든의 백숏

갑용의 점점 심해져가는 치매, 결국 갑용은 이든을 자신의 딸로 착각합니다. 이든은 난 딸이 아니라고 계속 버티죠. 그러다 결국 할아버지를 위해 딸로 행세하러 가기 전, 잠깐 하늘을 보는 백숏입니다. 이건 대본에도 전혀 없는 감독님의 연출입니다. 자신을 버리기 전, 잠깐 하늘을 바라보며 마음을 가다듬는 이든의 심정이 가슴 뻐근하게 느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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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이중국적을 품은 사람들 [2009.01.02 제742호]
 
[레드 기획] 영혼이 자유로워지는 나라 밖 안식처, 세 남녀의 일본·타이·티베트 이야기
 
 
 
신윤동욱


 
 

제2의 고향이 나를 당기네


여행은 사람을 바꾼다. 국경을 넘어선 여행에서 자신의 몸에 딱 맞는 영토를 발견하는 이들도 있다. 어딘가 우연히 갔다가 그곳에서 자신이 그리던 문화나 자유를 발견하는 이들이 적잖다. 타이로 가는 게이들, 인도나 티베트의 정신문화에 심취한 이들이 그렇다. 나아가 누군가는 그곳에서 새로운 인생을 꿈꾼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그래서 몸은 여기에 두었으나 마음은 그곳을 향하는 이들이 적잖다.

그들은 지금 여기에 부재한 것을 말한다. 그들의 꿈을 보면 그들의 자유를 채워주지 못하는 한국의 현실이 보인다. 그들이 그곳에 ‘당기는’ 이유는 그들이 원하는 자유의 공기가 이곳엔 없기 때문이 아닐까. 한 해는 일하고 한 해는 여행을 다니는 ‘족’도 생겼다는 뉴스가 나오는 시대다. 개발시대의 부모에게 서울이 제2의 고향이었다면, 글로벌 시대엔 뉴욕이나 도쿄 혹은 방콕이나 라싸를 제2의 고향으로 꿈꾸는 사람들이 생기는 것도 이상한 현상은 아니다. 그들의 꿈이 충분히 현실적이진 않을 수 있지만, 그들의 희망엔 무시하기 어려운 진심이 서려 있다. 다른 세계를 꿈꾸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 제2의 고향이 나를 당기네. 한겨레 남종영 기자
 
 
 



자유를 찾아서 자유 대한을 뜨는 사람들이 있다. 일본에서 진정한 휴식을 맛본다는 사람, 타이에서 마침내 자신이 된다는 게이(남성동성애자), 티베트에서 영혼의 안식을 얻는 사람이 그들이다. 심지어 그들의 일부는 ‘비록’ 몸은 한국에 있지만, 마음은 그곳에 있다고 느낀다. 하지만 요즘엔 환율 폭등으로 근심도 생겼다. 이렇게 자신이 태어난 땅이 아닌 곳에서 제2의 고향 혹은 마음의 안식처를 찾은 사람들. 그들의 이야기를 뒤집으면 한국에 없는 자유가 보인다.






“비밀인데, 일본에 또 다녀왔어”


“이건 아무한테도 하지 않은 이야긴데….” 최지윤(34)씨가 망설이며 말문을 열었다. 최씨는 10월에 2박3일 ‘남몰래’ 일본을 다녀왔다. 요즘같이 환율이, 더구나 엔화 가치가 폭등한 시절에 ‘또’ 일본에 다녀왔다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그에겐 일본 여행은 단순한 쾌락이 아니라 중요한 ‘존재의 이유’다. 이렇게 1년에 두세 번 일본에 다녀오지 않으면 심지어 ‘왜 사나’ 싶은 생각이 든다. 마침 환율이 오르기 전에 샀다가 남은 엔화도 있었다. 그래서 짧은 일정이지만 마음먹고 다녀왔다. 어느새 4~5년. 한 해에 두세 번씩 나가보니 어느새 10번 넘게 일본행 비행기를 탔다. 남들은 다른 곳도 가라고 하지만, 그에게 일본은 가장 편하고 여전히 그리운 곳이다.

딱히 일본에 관심이 있지는 않았다. 일본의 지인이 ‘제발’ 한번 오라고 해서 그러면 가보지 하며 처음 발을 디뎠다. 도쿄는 시큰둥했는데 도쿄 주변의 도시에 짧은 여행을 가면서 그는 일본에 ‘꽂혔다’. 사찰과 온천이 있는 니코는 산책하기에도 무척 좋은 도시였다. 사람들이 일본에 왜 가냐고 물으면 그는 항상 답한다. “요양하러.” 대개의 한국인들처럼 그도 직장생활을 하면서 일에 치이고 사람에 지친다. 그래서 그가 원하는 여행은 편안히 심신을 쉬다고 오는 요양. 그는 “전화가 되지 않는 곳이 좋다”고 말한다. 그래서 국내가 아니라 해외다. 하지만 그가 얻는 휴가는 한 번에 길어야 일주일. 비행 시간을 따져서 요양 갈 만한 곳은 중국과 일본, 멀어야 동남아. 하지만 너무 시끄럽거나 고생스러운 곳은 피하고 싶다. 게다가 대도시보다는 소도시가 좋다. 시골을 선호하는 그에게 일본은 안성맞춤의 환경이다. 불편하지 않은 교통, 적당한 가격에 맛있는 음식, 깔끔하고 볼 만한 주변 경관, 일본의 소도시엔 그것이 ‘패키지’로 있었다. 중국은 아직도 시골로 가려면 교통이 편치가 않고, 동남아는 너무 관광지화돼 있어서 꺼려졌다.

 
 


» 일본의 사찰과 온천은 조용한 휴식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편안함을 맛보게 한다. 눈이 내리는 한적한 일본 풍경. REUTERS/ ISSEI KATO
 
 
 

그는 안다. 일본의 소도시에 내리면 역광장에 반드시 여행자 안내소가 있다는 것을. 그래서 시골로 가면 미리 숙소를 예약할 방법도, 필요도 없다. 역에 내려 안내소에 적당한 가격의 숙소를 물어서 찾아가면 그만이다. 지방이라 숙박비도 저렴하다. 소박한 숙소에 머물며 대개는 자전거를 빌려서 도시를 천천히 돌아다닌다. 그렇게 다니다 길을 물으면 아예 목적지까지 안내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렇게 친구도 생긴다. 가끔은 그렇게 사귄 친구가 한국에 오면 이번엔 그가 길잡이가 된다. 서로에게 요긴한 여행 정보를 제공하는 품앗이도 자연스레 이어진다. 이렇게 다니면 비용도 크게 들지 않았다. 그는 농담 삼아 “일본에 애인 예닐곱은 있다”며 “시골로 갈수록 사람을 만나는 기회는 더 많이 생긴다”고 말했다.


예약하지 않아도 이벤트가 생긴다. 그는 관광상품이 아닌 지역행사를 즐기는데, 언젠가 오사카 인근에서 동네 캐럴 대회를 보았다. 식당 주인, 노인들이 나와서 캐럴을 부르는 동네잔치였다. 오키나와에선 시골 마을회관을 지나다 미군기지 반대 펼침막을 보았다. 평소 평화운동에 관심이 있는 그는 들어가 사정을 물었다. 주민이 자료도 보여주고 집회도 알려줬다. 마침 집회 장소 주변에 괜찮은 식당도 있어서 점심도 먹을 겸 집회에 들렀다. 나중엔 주민들끼리 가는 전쟁 희생자를 위한 추모공원 버스여행도 함께 다녔다. 가끔은 괜찮은 문화행사도 ‘건진다’. 2008년 경기도 일산에서 ‘뻑적지근하게’ 열렸던 모딜리아니 전시회를 그는 2007년 일본 홋카이도의 소도시 미술관에서 보았다. 그래도 그곳이 지겨워질 때면? 여행의 끝자락에 다음 여행지를 물색하러 다닌다.

갈수록 일본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문득 로또 당첨이 되면 뭘 할까 상상하다가 일본에서 소수민족 연구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 열도를 떠돌며 보았던 소수민족이 인상에 남아서다. 그래서 요즘은 기회가 닿을 때마다 관련 자료도 모은다. 그는 날마다 오르는 엔화를 보면서 한숨을 짓지만 “다른 지출을 줄여도 아마도 가겠죠”라고 말한다. 참, 그가 일본에서 편안한 이유는 또 있다. 일본은 여전히 흡연자 천국이다. 신칸센 기차 안에도 흡연칸이 따로 있을 정도다. ‘젊은 여자’가 담배를 피운다고 이상하게 쳐다보는 이상한 시선도 없다. 생김새가 비슷하니 외국인 티가 나서 부담스런 시선을 받을 일도 적다. 그렇게 그는 일본에서 여성으로 자유를 얻는다.


 
 


» 게이 업소가 밀집한 방콕의 실롬 거리에서 열린 게이 퍼레이드. EPA/ NARONG SANGNAK
 
 
 

방콕의 매연과 습기까지 그리워


“방콕 공항에 내리면 나는 매캐한 매연과 훅 끼치는 습기가 내게는 자유의 공기지.” 그렇게 말하는 프리랜서 디자이너 정진수(39)씨의 눈에는 그리움이 어렸다. 타이는 아시아에서 성소수자에게 가장 개방적인 나라로 꼽힌다. 비교적 동성애에 관용적인 불교문화에 관광산업 육성이란 현실이 더해져 성소수자 여행자도 편하게 여행을 즐기는 나라다. 아시아에서 가장 유명한 트랜스젠더 쇼가 성업 중이고, 최근엔 고등학교에 성소수자 전용 화장실이 생겼다고 한다. 정씨는 방콕을 “게이 디즈니랜드”라고 부른다. 게이바, 클럽 등 동성애자를 위한 유흥시설이 업종별로 즐비하다. 더구나 방콕은 언제나 여행자로 넘쳐나 클럽은 밤이면 밤마다 붐빈다. 정씨는 “한국에는 주말에만 있는 것들이 그곳에는 날마다 있다”고 말한다. 동성애자 업소가 밀집한 지역인 실롬 거리에서 낮에도 다른 동성애자를 보는 일은 다반사다. 손을 잡고 다니는 게이 커플도 이따금 보인다. 그는 가끔 게이 전용 호텔에 머무는데, 거기서 일하는 직원도 게이다. 마음만 먹으면 거기선 오직 게이만 만나고 살 수 있다. 그러니 이성애 사회에 포위돼 지내다, 더구나 동성애 억압이 심한 한국에 살다가 그곳에 가면 그는 마침내 자유를 얻는다. 그에게 방콕은 자유의 땅이고, 공항의 매연은 자유의 향기다.

이렇게 그에게 방콕의 실롬은 물리적 거리는 멀지만 익숙한 동네다. 벌써 10번 넘게 거기서 지냈다. 한 해에 서너 번씩 한 번에 일주일가량을 머물렀으니, 지난 서너 해 동안 한 해에 서너 주를 그곳에서 살았다. 이제는 익숙한 동네라 아무런 준비 없이 가서 아무 생각 없이 지내다 온다. 가끔 한국에서 오래 보지 못했던 친구를 그곳에서 만나기도 한다. 그처럼 ‘자유’를 찾아 그곳에 오는 친구들이 적잖기 때문이다. 한국 게이 사이트 여행 메뉴엔 방콕 정보가 빼곡하고, 타이 여행을 함께할 친구를 찾는다는 글도 자주 올라온다. 나아가 방콕에 정착해 사는 한국인 게이도 갈수록 늘고 있다.

요즈음 타이의 정치 불안이 그에겐 남의 나라 얘기가 아니다. 시위대 사이에 충돌이 있는 기간에 여행을 가도 좋은지, 클럽은 여는지, 방콕의 사정이 그의 생활에 직접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가끔은 타이인 친구들을 생각하면 타이 정치의 비극이 정말로 슬프다. 그래서 타이 정치가 어떻게 될지 궁금해 타이 영자신문 사이트까지 찾아가 뉴스를 본다. 또 여유가 된다면 조기 은퇴해서 타이에 살고 싶다는 생각도 한다. 그래서 한때는 타이어 학원도 다녔다. 서너 해 전에는 방콕의 유명한 마사지 학교에서 일주일 동안 타이 마사지 강습을 듣고 자격증도 땄다. 이렇게 타이는 그에게 단순한 여행지가 아니다. 한국에 돌아올 즈음엔 필수품도 챙기는데, 타이에서 파는 코코아향 샴푸다. 아침마다 그 샴푸로 머리를 감으며 고향의 냄새를 몸에 묻히고, 향수를 달랜다. 방콕은 그가 선택한 고향이다.


‘티베트의 친구’로서 두고 볼 순 없지

 
 


» 안정배씨는 다른 세계를 꿈꾸는 이들에게 티베트는 “상징적인 희망”이라고 말했다. <한겨레21> 윤운식 기자
 
 
 


타이 너머에서 영혼의 땅을 발견한 이들도 있다. ‘티베트의 친구들’(thinktibet.cyworld.com)에서 활동하는 대학생 안정배(27)씨는 “나에게 여행지는 티베트와 티베트 아닌 나라로 나뉜다”고 말했다. 그만큼 티베트에서 받은 감동이 크고 애정이 깊다. 안씨는 2006년 유라시아 횡단여행을 하면서 4개월을 티베트에서 보냈다. 그는 “티베트의 자연은 나에게 실존의 질문을 던지게 했다”고 말했다. 서울에선 건물에 가려 100m 앞도 보기 힘들지만 티베트에선 가도 가도 설산과 황무지, 오직 자연만 보였다. 사람이 없는 오롯한 자연은 실존의 의미를 되묻게 했다. 자연과 어울려 사는 사람들 모습은 더욱 깊은 감동을 주었다. 흑집에 사는 티베트 시골 사람들은 야크와 양 몇 마리를 키우며 의식주를 해결하고 있었다. 주식은 야크 육포, 연료는 야크 배설물, 옷은 양털로 만드는 단순한 삶이다. 그는 “이렇게 인간이 많이 갖지 않아도 잘 살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지역공동체 운동을 꿈꾸는 그는 그렇게 티베트의 오래된 미래에서 공동체의 가능성을 발견했다. 그는 “사람들이 물질적으로 낙후했다고 생각하는 티베트에서 오히려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는 용기를 얻었다”고 말했다.

두 번째 티베트 방문에선 티베트 공동체가 파괴되고 있다는 불안을 느꼈다. 2007년 10월 다시 찾은 티베트는 한 해 만의 방문이란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개발돼 있었다. 중국과 티베트를 잇는 철도 개통과 베이징올림픽을 앞두고 벌어진 한족 집중 이주의 여파로 티베트 공동체가 더욱 빠르게 무너지고 있었다. 게다가 티베트의 중심인 포탈라궁에는 오성홍기가 휘날리고 있었다. 그는 “티베트가 대면한 상대가 엄청나다는 사실이 절절히 와 닿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어진 2008년 3월 티베트 봉기와 진압. 그는 “수식어가 아니라 말 그대로 친구가 지금 아파서 구급차에 실려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어서 ‘티베트의 친구들’을 만들고 티베트 학살을 알리는 일에 나섰다. 그는 “티베트 망명정부가 있는 인도의 다람살라에는 지금도 티베트에서 망명해오는 청년들이 많이 있다”며 “인도에서 생활 기반이 없는 이들을 위한 자립운동이 있는데, 기회가 닿으면 함께하고 싶다”고 말했다. 한국과 티베트를 잇는 청년 공동체 운동을 꿈꾸는 그의 마음에 국경은 없다.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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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파 진출 막힐라’…중앙, 연일 MBC 때리기
‘불신임안’ 등 김형오 의장에 노골적 배신감 토로
지난 보름간 문화방송 보도 비판만 29건 쏟아내
 
 
한겨레 이문영 기자
 








 

» 전북언론노조협의회와 시민단체 회원들이 5일 오후 전북 전주 경원동 한나라당 전북도당 당사 앞에서 현 정권의 언론장악 음모를 규탄하고 ‘엠비 악법’ 철회를 요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전주/뉴시스
 
중앙은 <조선>과 <동아>보다 훨씬 강경한 언어로 직권상정에 부정적인 김형오 국회의장을 몰아붙이고 있다. 중앙은 3일치 신문에서 ‘피 한 방울 안 묻히려는 김형오 의장…우리가 잘못 뽑은 듯’ ‘한나라 김 의장 불신임안 거론’ ‘직권 상정이니 뭐니 말만…이회창도 김형오 의장 비판’ 등의 기사로 김 의장을 정면 겨냥했다. 5일치 사설(‘민주당 국회 본회의장 농성 풀어야’)도 “(모든 질서회복 조치를 취할 것이란) 자신의 약속을 지키려면 말 그대로 모든 조치를 강구했어야 했으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정말 기가 막힌다”며 김 의장에게 배신감을 토로했다.

문화방송 보도와 노조 파업을 비판하는 것도 도가 지나치다. 지난달 19일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의 ‘정명’ 발언 이후 시작된 조·중·동의 문화방송 집중 비판에서도 중앙은 선두를 달린다. 지난달 20일부터 5일치 신문까지 문화방송을 비판한 조선·동아 기사는 각각 16건과 20건인데 비해, 중앙일보 기사는 29건에 이른다. 문화방송이 ‘뉴스데스크’와 ‘뉴스 후’ 등을 통해 중앙을 향해 포문을 연 지난달 31일 이후론 매일 3~5꼭지씩의 비판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김승수 전북대 교수는 “중앙일보의 국회의장 비판은 오랫동안 욕심을 부려온 지상파 방송 진출과 관련돼 있는 것 같다. 방송 진출이 가능하려면 김 의장을 압박해서라도 방송법 개정안을 통과시켜야 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중앙일보는 재벌과 거대신문의 지상파방송 진출을 가능케 한 한나라당 방송법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가장 의욕적으로 방송사업에 뛰어들 신문사로 예상돼 왔다. 과거 <동양방송>(TBC)을 되찾겠다는 의지가 강한 삼성과 분산 출자해 지상파에 진입하거나, 보도·종합편성 채널을 만들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중앙의 지상파방송 진출 의지는 홍석현 회장의 올 신년사에서도 잘 드러난다. 홍 회장은 “2009년은 우리 제이앰넷(JMnet·중앙미디어네트워크)의 앞날에 분수령이 될 의미있는 한 해가 될 것이다. …신문·방송·인터넷 등 미디어 영역간의 장벽과 국가 간의 장벽이 사라지는 것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라며 ‘멀티미디어와 글로벌 마인드’를 주문했다.

이미 중앙일보는 케이블을 중심으로 방송사업을 꾸준히 확대하고 있다. 자회사인 ‘중앙방송’을 설립해 ‘큐(Q) 채널’ ‘제이(J)골프’ ‘카툰네트워크 채널’ 등을 운영해왔고, 2006년 7월 미국 거대 미디어그룹 타임 워너와 합작법인 ‘카툰네트워크 코리아’를 만들었다. 2007년 2월엔 자회사 일간스포츠가 드라마 전문제작사 ‘에이스토리’의 지분 16.6%를 인수해 1대 주주로 등극했다. 남은 것은 지상파방송이나 보도·종합편성 채널로의 사업 확장이다.

강상현 연세대 교수는 “중앙은 자신의 이해관계 뿐 아니라 어떤 재벌보다 지상파 진출에 큰 열망을 가진 삼성의 이해관계까지 대변하다 보니 유독 눈에 띄는 보도 행태를 보이고 있다”며 “중앙일보가 엠비시 보도를 ‘자사이기주의’라고 비판하는 것은 자신에게 고스란히 되돌아오는 부메랑임을 깨달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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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박근령-박지만, 육영재단 분쟁 2라운드

2009 01/06   위클리경향 807호

수조 원 개발이익 노린 재산싸움 점입가경
공익법인 취지 무색… 수십 억대 적자 운영




육영재단을 둘러싼 박정희 자녀들의 재산 싸움이 점입가경이다. 경영 부실화 명분으로 박근혜 전 이사장을 몰아냈던 박근령·박지만 남매가 2라운드를 펼치는 중. 박지만 측근 인사들의 맹공에 박근령 전 이사장이 수성하는 모양새다. <권호욱 기자>

2007년 12월 초 어느 날 밤, 서울 광진구 능동 육영재단 어린이회관 주변에 검은 양복 차림의 괴청년이 여기저기 포진했다. 법령에 어긋난 운영을 시정하라는 교육청의 지시를 따르지 않았다는 사유로 이사장 승인이 취소되자 이에 불복해 소송을 냈던 박근령 전 육영재단 이사장. 하지만 항소심에서도 패소하자 박 전 이사장과 측근은 대법원 확정 판결이 있을 때까지 이사장직이 유효하다면서 이사장실에 머물며 재단 운영에 개입, 사무국 직원들과 운영권을 두고 마찰을 빚어왔으며 이 과정에서 각종 신고와 고발이 난무했다. 이날도 양측은 사설경호원들을 동원해 용접기로 출입문을 막느니, 소화전으로 이를 끄느니 하며 이사장실 확보 싸움을 전개했다.

양측의 대치가 거듭되고 관할 광진경찰서가 양측의 충돌을 막기 위해 수십 차례 출동한 끝에 그달 11일, 결국 박근령 전 이사장은 어린이회관 이사장실을 떠나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다. 지난해 5월 박근령 육영재단 이사장에 대한 이사장 승인 취소 처분은 정당하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오면서 육영재단 사태는 진정되는 모양새를 띠었다.

‘3억5천만원’ 차용증으로 박지만 역공
그러나 박 전 이사장은 지난해 11월 1일부터 재단 사무실에 다시 출근하고 있다. 이사장이 아닌 사무국장 직함으로 업무를 보고 있는 상태. 이유는 동생인 박지만 EG 회장의 측근 인사들이 속속 육영재단 경영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으로, 재단 운영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하고 있는 것이다. 육영재단을 둘러싼 박정희 전 대통령 자녀들의 분쟁이 ‘2라운드’에 돌입한 것이다.

서울동부지법은 11월 13일 육영재단 임시이사 9명을 선임했다. 이번 9명의 임시이사를 보면 전원이 박지만씨가 추천한 인물로, 누나인 박 전 이사장이 추천한 9명과 재단 사무국에서 추천한 9명 중 한 명도 선임되지 못했다. 임시이사장은 DJ정부 시절 교육부 차관을 지내고 이후 한경대 총장을 역임한 이원우 안양대 석좌교수가 맡았다.

하지만 12월 23일 어린이회관 3층에서 열린 첫 임시이사회에서 박 회장 측 인사를 사무국장에 앉히려고 하자 노조 측이 강력하게 반발하면서 회의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최재영 육영재단 노조위원장은 “1년을 끌던 분쟁이 겨우 수습 국면에 왔는데 또다시 분쟁의 한 당사자가 사무국장으로 부임하는 것을 반대한다”고 밝혔다.

박근령 전 이사장과 재단 측도 반발하고 있다. 1990년대 육영재단을 둘러싼 ‘박근혜-박근령의 난’ 이후 또다시 ‘박근령-박지만’의 대립이 부각되면서 경영 정상화는 물 건너가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한때 소송을 벌였던 재단 사무국 직원들은 지금은 박 전 이사장을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있는 분위기. 어차피 박정희 전 대통령 일가 중 하나가 재단을 맡을 것이라면 박근령 전 이사장이 적임자라는 판단에서다.

박지만씨가 법원에 임시이사진을 추천할 수 있는 자격은 재단 채권인이기 때문. 1990년대 초반 이사직을 수행한 것 외에 그동안 육영재단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던 박지만씨가 재단 측에 빌려준 3억4200만 원에 대한 차용증을 앞세워 임시이사회를 추천해 만들고 재단을 통째로 먹으려 한다는 게 노조의 주장이다. 차용증에 따르면 2008년 2월 29일 4200만 원과 4월 24일 3억 원을 어린이회관 관장 이름으로 빌린 것으로 되어 있다. 하지만 차용증 어디에도 빌려준 사람은 기명돼 있지 않다. 당시 재단을 장악했던 사무국장과 관장이 개인적으로 써준 차용증에 불과하다는 주장이다.

육영재단을 둘러싼 세 남매의 분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1969년 4월 고 육영수 여사가 어린이복지사업을 벌일 목적으로 세운 이후 1982년 큰딸인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이사장을 맡았지만 방만한 경영 등을 이유로 측근 인사의 사퇴를 요구하는 재단 안팎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쫓기듯 물러났다. 당시 문제의 측근으로 지목된 최모씨는 2007년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 과정에서 박 전 대표의 ‘아킬레스건’으로 재등장하기도 했다.

세 남매 간의 물고 물리는 재산 싸움
문제는 재단을 둘러싼 분쟁의 핵심에 ‘재산’이 있다는 것이다. 어린이회관의 면적은 약 13만2000㎡(4만 평). 인근에 있는 건국대 야구장을 주상복합으로 개발하면서 남긴 5000억 원보다 큰 개발 차익이 나올 것이라는 게 주변 부동산업계의 판단이다. 3.3㎡당 최저 2500만 원을 잡아도 1조 원의 수익이 남는다는 게 노조 측 설명. 하지만 이는 상당히 보수적인 계산이고 3.3㎡당 8000만 원으로 계산해 3조 원이 넘는다는 게 부동산업자들의 분석이다.


2008년 12월 육영재단 이사장 자리를 놓고 박근령 전 이사장과 사무국 직원들이 충돌하고 있는 와중에 고 육영수 여사의 영정이 바닥에 뒹굴고 있다. <조득진 기자>

재단 측 한 인사는 “임시이사회가 꾸려진 이후 벌써 서편 운동장 1만3200㎡에 대해 실측이 들어갔다”면서 “이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의결기관이 필요한데 이번에 꾸린 임시이사회가 바로 그것”이라고 주장했다. 세종대와 건국대 사이, 게다가 지하철역까지 끼고 있는 이곳은 길 건너편 낙후한 로데오거리를 대체할 수 있어 크게 주목받고 있다.

현재 누나 박근령씨와 동생 박지만씨 양측이 서로 제기한 소송만 폭행, 출입금지가처분신청, 통장 가압류 등 20여 건에 달한다. 근령씨 측은 최근 임시이사등기금지가처분 신청, 이사장승인취소처분에 대한취소청구, 위헌제청신청서 등을 법원에 낸 상태다. 이에 대해 동생 지만씨 측은 “말려들지 않겠다”는 분위기다. EG 측 한 관계자는 “법적으로 결정난 일을 가족 간 분쟁으로 비쳐지게 하려는 목적”이라며 “육영재단 정관은 사무국장을 이사장이 선임하도록 규정하고 있어 박 전 이사장의 사무국장직은 근거가 없다”고 주장했다.

설립 취지 맞는 경영 정상화 필요
육영재단에 대한, 구체적으로 누나 근령씨에 대한 동생 지만씨의 공격은 여러 수로 읽힌다. 그중 근령씨가 최근 신동욱 백석문화대 교수와 결혼하는 과정에서 틀어졌다는 분석이다. 측근에 따르면 큰 누나인 박근혜 전 대표가 정치권에서 승승장구할 때 둘째 박근령과 막내 박지만 사이는 돈독했다고 한다. 무대에 오르지 못하고 막 뒤에 있는 두 사람으로서는 동병상련의 정이 있었던 것. 하지만 이번 결혼건을 두고 반대한 누나에 대해 반감이 커졌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결국 근혜씨와 지만씨는 근령씨 결혼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박근혜 전 대표의 입장에서는 10여 년 전만 해도 박지만 회장이 자신의 이미지에 해를 끼쳤다면 최근엔 박근령 전 이사장이 발목을 잡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육영재단 직원은 성동교육청이 지만씨가 추천한 인사들에게 편파적 자세를 보여 이번 법원의 임시이사 선임에 영향을 미쳤다고 의심하고 있다. 육영재단 관계자와 노조 측은 “공무원은 공정한 업무를 수행할 의무가 있는데 성동교육청은 그렇지 않았다”면서 “9년째 감사를 하고 있지만 무엇 하나 제대로 만들어놓지 못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박용권 성동교육청 평생교육과 과장은 “그동안 인허가 과정 등 민원 발생시 교육청이 조사하고 이에 대해 이행을 지도했지만 재단 측이 이에 반발해 이후 취소와 소송이 이어진 것”이라며 “이사 선임의 권한은 법원이나 이해 관계자의 문제지 우리 소관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성동교육청에 확인한 결과, 지만씨는 법원에 의해 임시이사가 확정되고 나서 교육청을 찾은 일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교육청 측은 ‘사전 교감설’에 대해선 강력 부인했다. 이원우 신임 이사장 또한 “이사장하던 분이 사무국장으로 업무를 수행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면서 “나는 박지만 회장과 어떤 관계도 없다”고 밝혔다.

사실 지금까지 육영재단을 둘러싼 박정희 전 대통령 자녀들의 분쟁에 대해 여론은 호기심어린 눈길과 남매들에 대한 질타를 보냈을 뿐, 육영재단이 어떤 자금을 기반으로 세워졌는지, 이후 남매들이 이사장 자리를 넘겨주고 받으며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지, 그들이 육영재단을 소유하는 것이 맞는 일인지 정색을 하고 들여다본 적은 없다. 어느 정권도 박정희를 추모하는 세력의 반발을 사고 싶지 않았고, 손에 피를 묻히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때문에 명실공히 이 재산을 국고로 환수해 원래 목적에 맞게 써야 한다는 주장이 고개를 들고 있다.

세 남매의 분쟁으로 육영재단은 매년 70억 원의 적자를 보고 있다. 분쟁이 일어난 2001년부터 시설에 대한 투자와 새로운 사업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답보 상태에 빠져 있다. 어린이회관 과학관에 한참 구식인 286컴퓨터를 전시해놓고 있을 정도고, 일부 임대사업을 제외하곤 회관을 찾는 사람도 거의 없다.

박정희가 남긴 슬픈 유산 ‘육영재단’. 70~80년대 어려운 시기, 국민의 세금으로 지은 이곳이 이젠 그 자녀들의 재산 싸움터로 변질됐다. ‘밝게 뛰놀자’는 현판이 걸린 어린이회관은, 그러나 그 어느 공간보다 을씨년스럽다.



육영재단 관련 일지

1969. 4. 재단법인 육영재단 설립
1970. 7. 어린이회관 준공개관(남산)
1974. 10. 새 어린이회관 부지 3만1238평 사용 허가(서울시)
1974. 10. 새 어린이회관 기공식 거행(현대건설)
1975. 10. 새 어린이회관 준공, 개관 (현 위치)
1976. 12. 서울시로부터 어린이회관 부지 매입(3만1238평)
1982. 10. 박근혜 이사장 취임
1990. 12. 박근령 이사장 취임(박지만 이사 1990~1994)
1994. 6. 서울동부교육청, 육영재단 편법 운영 조사 착수
2001. 12. 성동교육청, 박근령 이사장 취임 취소
2002. 5. 박근령 이사장, 취임 취소 관련 소송 패소
2004. 7. 헌법재판소 위헌 결정, 박근령 이사장 복귀
2004. 12. 성동교육청, 박근령 이사장 취임 재취소
2007. 1. 성동교육청, 육영재단 이사진 7명 취임 취소
2007. 6. 서울고법, 박근령 이사장 해임 정당 판결
2008. 5. 대법원, 박근령 이사장 해임 정당 판결
2008. 11. 박근령 전 이사장 사무국장으로 출근 시작
2008. 11. 서울동부지법, 박지만 추천 임시이사 9명 선임

<조득진 기자>

<조득진 기자 chodj2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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