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가 사라진다]월 수입 39만원… 무료 급식소서 끼니 때워
김주현기자 amicus@kyunghyang.com
ㆍ(2) 한계상황에 내몰린 쪽방촌 일용직 근로자 윤창식씨
동이 트기에는 한참 이른 시간인 지난달 28일 새벽 3시30분. 서울 영등포역 광장을 둘러보는 일용직 근로자 윤창식씨(39)에게 어둠 속에서 불쑥 “어이, 순찰 도냐”라며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일자리를 얻기 위해 새벽 인력시장을 찾아가는 이웃 형이다. 윤씨는 “일 나가세요”라고 반갑게 맞았지만 이웃 형이 조금 있다 힘없이 발길을 되돌릴 것을 알고 있다.
서울 영등포역 인근 쪽방촌에서 생활하고 있는 일용직 근로자 윤창식씨(39)가 지난달 28일 방범 근무를 하기 위해 집을 나서고 있다. <김기남 기자>
지난해 말부터 막노동 일자리가 끊겨 새벽 인력시장에 15명이 나가면 11~12명은 그냥 돌아온다. 영등포역 광장에도 술기운을 빌려 추위를 버티는 일용직 노동자가 수두룩하다.
수도권 지역의 일자리가 줄어 요즘에는 수원이나 경기도 인근에서 막차를 타고 영등포역으로 와 새벽 인력시장을 찾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날품’을 파는 일용직 근로자가 이동시간까지 합쳐 15시간가량 일하고 받는 일당은 6만5000원이다.
일당에서 10%를 알선료로 떼고, 차비로 5000원을 건네면 남는 돈은 5만원 정도다. 쪽방에서 하룻밤을 자는 데는 1만원이 든다. 돈을 조금이라도 아끼려 목욕탕에 8000원 내고, 하룻밤을 잔 뒤 아침을 해결할라치면 1만2000원을 써야 한다. 남은 3만8000원을 갖고 며칠을 살아야 한다. 방값 아까운 일용직 노동자들은 영등포역 앞을 떠돌다 노숙하기 일쑤다.
윤씨가 아는 선배는 새벽에 일용직 노동자들을 실어 나르는 일을 했는데 경기 불황으로 일자리가 줄자 결국 차를 팔았다. 일용직 노동자들이 교통비 5000원을 내지 못할 정도로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윤씨는 현재 실직한 상태다.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그는 직원이 15명인 이삿짐센터에서 일했다. 그러나 경제위기 여파로 일감이 줄어들더니 지난해 추석 이후부터는 아예 일거리가 없어졌다. 직원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윤씨는 지난해 11월부터 노숙자쉼터에서 소개한 야간 방범순찰을 하고 있다. 윤씨는 밤 11시부터 아침 7시까지 영등포역 주위를 돌며 취객들의 동사(凍死)를 예방하는 일을 하고 있다.
지난달 16일 서울 종로구 쪽방촌에서 생활하고 있는 한 남성이 자신의 방에 들어가기 위해 걸어가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윤씨가 받는 월급은 39만원이다. 월세 21만원을 내고, 남는 18만원으로 한 달을 버텨야 한다. 끼니는 무료급식소에서 해결하고, 휴대전화는 요금 미납으로 사용정지된 지 오래다. 이삿짐센터에서 한 달에 60만~70만원을 벌던 일은 옛일이 돼 버렸다. 윤씨가 일을 마치는 오전 7시가 되면 사람들은 광야교회 앞으로 모여든다. 영등포구 쪽방상담소에서 무료급식을 하기 때문이다.
쪽방상담소의 무료급식이라도 마음이 편한 게 아니다. 아침 7시20분 급식시간이 되면 밤새 소주로 언 몸을 녹이던 노숙자나 좁은 방에서 밤을 새운 쪽방 사람들이 비좁은 골목길을 빼곡하게 메우며 3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줄을 선다. 인근 다른 무료급식소가 쉬는 날이면 한꺼번에 400명이 넘게 몰릴 때도 있다. 이따금 순찰을 도는 경찰이 급식을 받기 위해 줄을 선 사람들을 불심검문하기도 한다. 범죄자들이 노숙자 사이에 숨어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김형옥 쪽방상담소장은 “평소 무료급식 인원이 하루 1000명 정도였는데 요즘은 1200명가량 찾는다”고 말했다. 숙식을 제공하는 상담소에 들어갈 수 없느냐고 문의하는 사람들도 예년에 비해 3~4배 늘어났다. 일거리가 없어 쪽방에서도 밀려난 사람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윤씨가 영등포역 인근 쪽방촌을 처음 찾은 것은 1998년 외환위기 때였다. 방산업체에서 일하다 허리를 다쳐 그만둔 윤씨는 쪽방촌에 정착했다. 노숙자들은 쪽방촌을 ‘절망촌’으로 부르기도 한다. 3.3㎡(1평)도 안되는 쪽방 800여개가 붙어 있는 이곳에는 실직가장, 독거노인, 장애인 등 600여명이 살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 이후 경기침체 여파로 일용직 일자리마저 사라지면서 쪽방촌 사람들이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일거리는 서울시가 제공하는 공공근로 사업이 유일하다. 김형옥 쪽방상담소장은 “서울시가 제공하는 공공근로 사업은 대부분 단기간에 그쳐 일용직 노동자들에게 안정적으로 일자리를 보장하는 데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연간 1000여명에게 제공했던 공공근로 일자리를 최근에는 1500명으로 늘리기 위해 추경예산을 편성한 상태다. 시의회 의결을 거쳐 시행되지만 노숙자나 일용직 근로자를 만족시키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서울시 공공근로 사업 관계자는 “새벽 인력시장에 나가면 1주일에 2~3일은 일자리를 구했던 사람들이 지난해 10월부터는 1주일에 하루 일거리를 찾으면 다행일 정도”라며 “노숙하다 자활했던 사람들이 최근에는 다시 노숙자가 돼 공공근로 일거리를 찾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노숙자나 일용직 근로자에게 취업을 알선하는 공무원들도 경기 침체를 실감하고 있다. 구인업체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영등포구청 취업정보팀 관계자는 “보통 하루 12~15개 업체가 구인신청을 해와 노숙자 등에게 일거리를 알선했는데 지난해 10월 이후에는 한 곳도 신청하지 않는 날이 많다”며 “예전에는 구직상담을 하루 20~30건씩 했는데 요즘에는 50~100건으로 늘었다”고 말했다.
<김주현기자 amic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