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더 (양장 특별판)
R. J. 팔라시오 지음, 천미나 옮김 / 책콩(책과콩나무) / 2017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이번에 읽은 <원더>라는 책은 영화를 먼저 알게 되었단다. 몇 년 전에 개봉한 영화인데, 그때 예고편을 보고 나서 너희들이 좀 더 커서 함께 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지. 그리고 그 영화의 원작소설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시간을 빠르게 흐르고, 아빠가 몇 년 전에 생각했던, 너희들과 함께 영화 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어. 그래서 너희들과 영화를 같이 보기 전에 먼저 원작 소설을 읽어 보았단다.

하악 안면 이골증이라는 얼굴 기형으로 태어난 어기스트. 얼굴이 거의 반쪽이 뭉개져 있었고, , , , 귀가 제 위치에 있지 않았어. 어려서부터 크고 작은 수술을 수십 번을 했지만, 여전히 남들에게 얼굴을 보여주기에는 많은 용기가 필요했단다. 마치 심한 화상을 입어 녹아 내린듯한 얼굴. 그래도 어기스트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엄마, 아빠, 누나가 있어서 씩씩하게 자라날 수 있었단다. 하지만 자신의 얼굴이 평범하지 않은 것을 알고 있는 어기스트는 항상 우주인 헬멧을 쓰고 다녔어. 자신의 얼굴을 가려줄 수 있으니까 말이야. 그리고 어기스트가 가장 좋아하는 날은 할로윈이었어. 가면으로 얼굴을 모두 가릴 수 있으니까 말이야.

엄마가 홈스쿨링으로 어기스트를 어렸을 때부터 가르쳤는데, 중학교에 가게 되면서 일반 학교 진학을 하기로 했단다. 어기스트가 하기로 한 것은 아니고 엄마가 그렇게 결정을 했어. 분명 어려운 결정이지만, 언젠가는 한번은 넘어야 할 고개라고 생각했어.


1.

다행히 가려고 하는 중학교의 교장선생님이 너무 착한 분이셨어. 그리고 입학 전에 교장선생님을 미리 만나러 가봤을 때, 교장선생님은 친구들을 소개시켜주었단다. , 줄리언, 살럿. 늘 그렇듯 그들의 시선이 평범하지는 않았단다. 그들의 어색한 학교 소개를 받았지만, 학교에 다니고 싶은 마음은 생기지 않았단다. 이제 본격적인 학교 생활 시작. 쉽지 않은 생활이었단다. 잭이 친절하게 대해주었지만, 점심은 늘 혼자 먹어야 했단다. 그런 어기스트에게 진심 어린 마음으로 점심을 같이 먹자고 한 친구가 있으니 서머였단다. 잭과 서머 이외 다른 친구들은 어기스트를 다들 멀리했단다. 심지어 어기스트를 만지면 전염된다는 이야기까지 퍼졌어. 그런 소문들을 들었지만, 어기스트는 참고 학교에 다녔단다.

할로윈 데이. 원래 준비하려고 했던 스타워즈 가면이 없어서, 작년에 썼던 스크림 유령 가면을 쓰고 학교에 갔단다. 그런데그런데잭이 다른 친구들과 이야기하면서, 어기스트처럼 생겼다면 자살하겠다는 심한 말을 했단다. 잭은 스크림 유령 가면을 쓴 이가 어기스트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어. 분명 스타워즈 가면을 쓰고 온다고 했으니까 말이야. 유일한 친구라고 생각했던 잭의 속마음을 알게 된 어기스트는, 심한 배신감에 충격을 먹고 곧바로 집으로 와서 침대에 누워 울었단다. 어기스트가 가장 좋아하는 사탕 받으러 가는 일도 하지 않았어.

어기스트의 누나 비아. 참 착하고 예쁜 누나란다. 집은 모두 어기스트를 중심으로 돌아갔단다. 비아는 자신의 집을 조그마한 우주라고 생각했어. 어기스트는 태양이고, 나머지 엄마, 아빠, 자신은 그 태양을 도는 행성이라고 생각했어. 부모님들이 자신을 챙겨주는 것은 적다 보니 어렸을 때부터 혼자서 척척 잘해냈단다. 그런 점에 불만도 있고 힘들기도 했지만, 비아는 밝게 잘 자랐단다. 그런 비아에게는 가족들뿐만 아니라 절친 미란다도 있었어. 미란다는 어기스트에게도 참 잘해주었고, 어기스트의 우주인 헬멧을 선물한 사람도 바로 미란다였단다. 그런데 한 가족 같은 미란다가 여름방학을 지나고 나서 비아를 멀리했단다.  멋을 부리는 다른 친구들과 친하게 지내면서 그들처럼 화장도 하고 그랬단다. 비아는 그런가 보다 하고, 미란다와 멀리 지냈단다. 할로윈 이후 학교를 가지 않으려고 하는 어기스트비아는 어기스트의 이야기를 듣고, 어기스트를 잘 설득해서 학교에 다시 가게 했단다.


2.

할로윈 이후 어기스트는 학교에 다시 나갔지만, 잭을 멀리했단다. 잭은 어기스트가 왜 그러는지 당연히 몰랐고. 어기스트는 서머도 멀리 하려고 했어. 왜냐하면 서머도 일부로 친한 척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거든. 서머는 그런 거 아니고 진심으로 친하고 싶어서 같이 하는 것이라며 이야기를 하고 어기스트도 그 말을 믿었단다. 이제 어기스트의 학교 친구는 서머뿐다른 아이들의 시선이 따가운데도 서머는 어기스트와 친하게 지냈단다.

잭의 이야기를 들어볼까? 어기스트를 처음 만났을 때는 일부러 친한 척 한 것이 맞지만, 어기스트와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하다 보니, 어기스트는 똑똑하고 유머감각도 있는 재미있는 친구였어. 그래서 그와 함께 하는 것이 좋았는데, 할로윈 이후 자신을 멀리해서 답답했단다. 잭은 서머에게 그 이유를 아냐고 물어봤는데, 서머는 유령이라는 힌트를 주었단다. 잭이 처음에는 그게 무슨 소리인지 못 알아듣다가 나중에 깨닫고 후회를 했단다. 줄리안을 비롯한 다른 친구들이 잭과 친하게 지내는 것을 싫어하니까, 왕따 당할 것을 걱정해서 우발적으로 어기스트 흉을 보게 된 것이었거든. 이것이 모두 줄리안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또 줄리안이 어기스트를 놀리는 말을 해서 홧김에 줄리안을 주먹으로 날렸단다.

이 일로 잭은 정학을 먹었지만, 자신의 진심한 마음으로 다시 어기스트에게 이야기하고 용서를 구했단다. 어기시트는 잭의 용서를 받아주고 다시 친구가 되었단다. 이제 잭과 어기스트는 서로 집을 왕래하면서 공부도 같이 하고 놀기도 같이 놀았단다. 둘이 함께 한 과학 프로젝트에서도 입상을 하기도 했단다. 그리고 점점 어기스트와 친하게 지내려는 친구들이 하나둘 늘어났단다. 어기스트의 진짜 모습을 보게 된 것이지.

….

수련회를 갔단다. 23. 처음으로 부모님과 헤어져 친구들과 잠을 자야 하는 어기스트. 그곳에서 어기스트와 잭이 상급학년 형들과 싸움이 붙었는데, 다른 친구들이 도와주어 그 형들을 몰아낼 수 있었단다. 싸우면서 더 친해진다고 하잖니, 다른 친구들도 어기스트와 절친이 되었단다. 친한 친구들이 많이 생기니 어기스트도 학교 다니는 것이 재미있었단다.


3.

잠깐 어기스트의 누나 비아와 미란다의 잃어버린 우정을 다시 찾은 이야기를 해줄게. 사실은 시간이 지나면서 미란다가 다시 비아와 친해지고 싶어했어. 하지만 멀어진 마음을 다시 가까이하기는 쉽지 않았지. 미란다가 비아를 멀리했던 것은 비아가 싫어서가 아니고, 화목한 비아의 식구들에 비해, 자신의 식구는 엄마와 아빠와 헤어져서 잠시 심술이 났던 거였어.

비아와 미란다 모두 연극동호회에 가입을 해서 미란다는 연극의 주연을, 비아는 스태프로 참여하게 되었는데, 비아는 스태프 이외에 여자 주인공의 대역 역할도 했어. 여자 주인공이 무슨 일이 생겨서 연극을 못할 경우 대신 주연을 맡는 역할 말이야. 연극 첫날비아의 식구들이 연극을 보러 온 것을 보고, 비아에게 기회를 주고 싶었어. 그래서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선생님한테 연극을 못하겠다고 했단다. 그래서 미란다가 연극의 주인공 역할을 하고, 아주 성공적으로 잘 마무리를 했단다. 그리고 이 일로 서로 서먹했던 감정을 모두 풀어내고 다시 절친이 되었고 말이야

일년이 금방 지나고 어기스트는 중학교의 첫 일년을 마칠 시간이었어. 종업식 행사의 주인공은 어기스트였단다. 어기스틑 다른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었다면서, 상을 받게 되었거든. 그렇게 모든 이들을 미소 짓게 하고 소설은 끝이 났단다.

….

이 영화와 소설이 비록 실화는 아니지만, 우리 주변에는 어기스트와 같이 본의 아니게 기형을 가지고 살아가는 이들이 있단다. 그런 이들이 소설 속 어기스트처럼 잘 풀리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이란다. 그들이 평범한 사람들과 함께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 되어야 하는데, 우리 사회는 늘 편견을 가지고 있으니 말이야. 아빠도 전혀 없다고는 이야기할 수 없구나. 노력을 해야겠지.

이 책을 읽고 나서, 너희들과 이 영화를 함께 봤잖니소설도 좋고 영화도 좋았구나. 너희들도 재미있었다고 하니 다행이고너희들에게 아빠가 물어봤잖아. 주변에 어기스트 같은 친구가 있으면 어떻게 할 것 같아? 솔직한 너희들이 지금은 바로 답을 못했지. 처음부터 그런 편견을 버리기를 쉽지 않고, 처음부터 진심 어린 속마음을 알 수는 없을 거야. 이런 소설과 영화를 통해 그런 상황을 생각해보는 기회도 되고 말이야. 그런 점에서도 괜찮은 소설이었구나.


PS:

책의 첫 문장 : 나는 내가 평범한 열 살 소년이 아님을 잘 알고 있다.

책의 끝 문장 : 너는 기적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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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21-02-26 00: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영화도 좋았는데 책도 읽고 싶어지네요^^

bookholic 2021-02-26 00:58   좋아요 0 | URL
네, 책으로 다시한번 감동을~~~^^ 즐거운 금요일 되세요~~
 














(28)

인격이 형성되는 시기에 이런 시설에서 12년을 보낸다면 그 아이는 어떤 어른으로 자라게 될까? 똑 같은 옷, 똑 같은 식판, 똑 같은 음식, 똑 같은 교실에 익숙한 채로 자라다 보니 자신과 조금과 달라도 이상한 사람 취급하고 왕따를 시킨다. 이런 공간에서 자라난 사람은 나와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을 인정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평생 양계장에서 키워 놓고는 닭을 어느 날 갑자기 닭장에서 꺼내 독수리처럼 하늘을 날아 보라고 한다면 어떻겠는가? 양계장 같은 학교에서 12년 동안 커 온 아이들에게 졸업한 다음에 창업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닭으로 키우고 독수리처럼 날라고 하는 격이다.


(51)

다양한 형태와 높이의 천장과 다양한 모양의 교실 평면도 필요하다. 우리 아이들의 학교는 대형 건물보다는 스머프 마을 같은 느낌이 나야 한다. 운동장 주변의 담장을 허물고 가까이에 가게를 두어 주변의 감시를 통해 안전한 운동장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방과 후 시민들이 운동장을 광장처럼 사용하고 마을 주민 전체가 아이들을 키우는 학교가 되어야 한다. 대한민국의 학교 건축이 바뀌지 않는다면, 우리의 학교는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고 도전 정신이 없고 전체의 일부가 되고 싶어 하는 국민만 양산할 것이다.


(83)

현대사회의 특징들은 TV 방송 매체에서 잘 드러난다. 왜냐하면 방송은 많은 사람이 보기 때문이다. 방송은 대중이 원하는 것을 반영한다. 대중의 요구는 곧 그 시대의 정신이다. 그래서 방송 프로그램에는 시대정신이 반영된다. 건축도 마찬가지다. 건축은 인간이 하는 일 중에서 가장 큰돈이 들어가는 일이다. 최초의 디자인이 건축되어 한 명의 건축가의 머리에서 나올지 몰라도 적어도 그 디자인이 건축되어 우리 눈에 보이려면 공사비 대출을 해 주는 은행, 건축주, 시공자, 허가권자들의 동의가 필요하다. 방송과 마찬가지로 건축물도 여러 명의 공통의 가치관이 반영되어 지어지기 때문에 시대정신을 반영한다. 그렇기 때문에 만약 우리가 사는 도시가 아름답지 않다면 그것은 어느 한 사람의 잘못이 아니다. 그 안에 사는 많은 사람의 건축적 이해와 가치관의 수준이 반영된 것이다. 좋은 도시에 살고 싶은가? 나부터 좋은 가치관을 갖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158)

건축 리모델링은 재즈와 같다. 이름 모르는 과거의 어떤 건축가가 수십 년 전에 디자인한 건물 위해 현재의 건축가가 이어서 연주하는 것이 리모델링이다. 앞선 사람이 펼쳐 놓은 기본 멜로디가 있기 때문에 완전히 다른 음을 펼치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렇다고 막연히 과거의 것을 따라만 가서도 안 된다. 제약 가운데서 자신의 개성을 펼쳐야 한다. 파리 오르세 미술관을 리모델링한 건축가는 백 년 전에 지어진 기차역의 구조에 덧대어 아름다운 미술관을 건축했다. 기차가 다니는 곳은 조각품 전시장으로 거듭났다. 군데군데 무거운 쇠로 만들어진 철길에서 모티브를 따온 디테일들도 보인다. 이 공간을 보면 두 명의 건축가의 연주하는 아름답게 조화를 이룬 재즈 음악이 들리는 듯하다.


(222)

건축가 지오 폰티는 계단은 두 개의 다른 공간을 연결해 주는 멋진 건축 요소라고 말했다. 계단을 올라가면 걷기만 할 뿐인데 우리의 키가 자라나는 듯한 체험을 하게 된다. 반대로 내려갈 때는 줄어드는 체험도 하게 된다. 계단 위에서는 우리의 눈높이가 계속 바뀌는데, 눈높이의 변화는 큰 차이를 만들어 낸다. <죽은 시인의 사회>라는 영화 속 주인공 키팅 선생님은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책상 위에 올라가라고 요청한다. 작지만 수십 센티미터 커지는 그 시점의 변화가 엄청난 생각의 변화를 가져온다. 일상에서 그 변화를 체험할 수 있는 곳이 계단이다. 어린아이들은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재미있어하는데 어쩌면 키가 작은 아이가 어른보다 커지는 체험을 할 수 있는 곳이 계단이어서일지도 모른다.


(294)

홍대 앞의 인기는 강남 못지않다. 사람들은 종로의 익선동과 부산 감천마을도 좋아한다. 이들은 강남을 흉내 내지 않는다. 자신만의 고유한 가치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홍대 앞은 젊은이들을 위한 공간적 특징을 가지고 있고, 익선동은 아파트 단지 대신 마당과 골목길을 가지고 있다. 신도시가 똑 같은 강남 방식으로 양산되면 지역별로 줄 세우기가 될 뿐이다. 후발 주자일수록 나만의 길을 찾아야 한다. 지금처럼 정치가들과 부동산 업자들이 강남만 따라 하게 두지 말고 재능 있는 건축가들을 제대로 고용해서 지역성이 드러나는 도시를 만들어야 한다. 진주는 진주다운 도시가 되고, 속초는 속초다운 도시가 될 때 우리는 더 이상 앞선 지역을 잡아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것이다. 다양성을 만들어 내는 개발, 그것이 진정한 지방정치고 지역 균형 개발이다.


(297)

영화 <블랙 팬서>는 겉으로는 블록버스터 히어로물이지만 스토리를 들여다보면 많은 사회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도시의 소외된 계층에 대한 이야기와 사회의 잠재적 위험이 만들어지는 방식 등 현재 미국 사회를 비판하고 자성하는 목소리가 담긴 영화다. 그중에서도 건축가인 필자의 마음에 가장 남는 이야기는 벽과 다리에 대한 이야기다. 영화 속 주인공은 마지막에 현명한 자는 다리를 놓고, 어리석은 자는 벽을 쌓는다라고 말한다. 멕시코와 미국의 국경에 벽을 세우고 있는 트럼프한테 들으라고 하는 소리 같다.


(302-303)

이처럼 2층 양옥집은 보일러의 보급과 함께 생겨났다. 얼마 후 철근콘크리트와 보일러를 합쳐서 만든 아파트가 나타났다. 당시 아파트는 12층까지도 지어졌다. 고층 아파트가 부동산의 빅뱅을 일으킨 것이다. 역사 이래 하늘 아래 빈 공간은 누구의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건축 업자가 고층 건물을 지으면서 공중에다가 없던 부동산 자산을 만든 것이다. 조선 시대 경제 계급은 극소수의 지주와 대다수의 소작농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제한된 땅덩어리에 살던 우리에게 부동산은 일부 부유층의 소유였을 뿐이다. 그런데 아파트로 인해 부동산이 늘어났고 직장에서 일해서 아파트를 사면 누구나 부동산을 소유한 지주가 될 수 있는 새로운 세상이 되었다. 경제의 파이가 커지고 중산층이라는 계층이 생겼고, 근대화가 시작됐다. 모든 것은 보일러에서 시작됐다.


(370)

제대로 설계된 공간은 갈등을 줄이고 그 안의 사람들을 더 화목하게 하고, 건물 안의 사람과 건물 주변의 사람 사이도 화목하게 하고, 사람과 자연 사이도 더 화목하게 한다. 좋은 건축은 화목하게 하는 건축이다. 물론 건축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하지만 갈등을 조금이라도 더 해소하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이 세상에는 화목하게 만드는 건축이 더 많이 필요하다. 그러나 건축은 건축가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많은 사람이 힘을 합쳐야 하나의 건축물이 완성될 수 있다. 세상을 더 화목하게 하는 건축물을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건축을 조금씩 더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세상과 우리를 둘러싼 환경을 제대로 읽어 낼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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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저널 그날 조선 편 3 - 연산군에서 선조까지 역사저널 그날 조선편 3
역사저널 그날 제작팀 지음, 신병주 감수 / 민음사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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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역사저널 그날 시리즈 세 번째 책을 읽었단다. 텔레비전 방송 프로그램 형식을 그대로 책으로 엮어서 읽기 편한 시리즈란다. 아빠가 어렸을 때 역사를 안 좋아했고, 나중에 커서 좋아하게 되었다고 이야기를 했잖아. 너희들은 어렸을 때부터 역사를 좋아했으면 했는데, 아빠의 아이들이 맞는 것 같구나. 슬쩍 역사 관련 책들을 사다 두었는데, 안 읽는 것 같구나.

아빠가 역사 이야기를 재미있게 해주면 좋겠지만, 그럴 능력도 안 되고역사 이야기를 재미있게 알려주는 유튜브를 찾아봐야 하나그래도, 지루하더라도, 역사책 읽고 나서 아빠는 너희들에게 역사책 이야기를 해보련다.

이번 역사저널 그날 3권은 조선시대 연산군부터 선조시대까지의 이야기란다. 연산군이라고 하면 조선시대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역사 통틀어 최고의 폭군이라고 할 수 있지. 너희들도 이제 학교에서 역사를 배우면 알게 될 거야. 무오사화, 갑사사화로 많은 신하들을 내치고, 직언을 하면 죽여버리니, 누가 왕에게 제대로 된 조언이나 충언을 하겠는가. 듣기 좋은 말만 하겠지. 직언을 하는 신하가 없고, 나라꼴이 말이 아니다 보니, 보다 못한 내관 김처선이 직언을 했는데, 그 또한 살아남을 리 있겠니, 비참하게 죽고 말았어. 연산군은 김처선을 죽이고 그의 이름인 이라는 글자를 쓰지 못하게 했다는구나. 허허, 그 흔한 성씨인 을 빼 준 배려에 감사해야 하나.

그와 반대로 김자원이라는 내관은 온갖 감언이설을 하여 연산군의 총애를 받고 온갖 권력을 갖게 되었다고 하는구나. 연산군의 영혼의 파트너라고 하면 장녹수라는, 역시 악명 높은 이가 있단다. 궁궐 안에 모든 신하들이 그를 멀리하고, 가끔 보면 듣기 좋은 말만 하고쿠데타가 안 일어나면 이상한 일이었단다. 신하들이 합심하여 쿠데타, 그러니까 반정을 일으켰는데, 너무 쉽게 연산군을 몰아내고 정권을 잡을 수 있었단다. 연산군의 측근과 간신들, 그리고 장녹수는 처형 당하고, 연산군은 강화도 위쪽 교동도로 유배를 보냈단다. 유배를 간 지 두 달 만에 역질로 죽고 말았단다. 그의 나이 새파란 서른 하나.


1.

연산군을 몰아낸 반정을 역사적으로 중종반정이라고 한단다. 왜냐하면 연산군이 몰아내고 왕이 된 사람이 중종이니까 말이야. 그런데 정작 중종은 반정이 일어나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고 하는구나. 신하들이 연산군을 몰아내서 중종을 왕위에 얹혀 놓은 거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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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중종반정은 명분은 있었으나, 준비는 부족했던 사건이었다. 연산군을 몰아내는 데는 성공했으나 준비된 왕이 없었고, 중종 스스로도 왕이 될 거라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하다가 갑자기 왕이 되었기 때문에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존재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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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위에 오른다고 모두 좋은 일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란다. 왕위에 오르자마자 그의 부인이었던 단경왕후는 폐위당했단다. 단경왕후가 연산군의 측근이자 연산군의 처남인 신유근의 딸이기 때문이었어. 어떤 심정이었을까. 왕이 된 자신의 아내를 폐위시키는데 아무 말도 못한 왕. 다음 부인도 신하들이 정해주었어. 장경왕후가 왕비가 되었어. 장경왕후는 8년이 지난 뒤 아이를 낳았는데, 장경왕후는 산후열로 죽고 말았다고 하는구나. 불쌍한 중종그 이후 다시 왕비를 뽑았는데, 이번에는 간택으로 왕비를 뽑았다고 하는구나. 사극을 보다 보면 간혹 왕비 후보를 뽑아 고르는 간택이 가끔 나오는데, 이 때가 조선시대 최초의 간택이라고 하는구나. 그렇게 간택된 왕비가 문정왕후 윤씨란다. 문정왕후는 나중에 명종때 수렴청정을 하면서 권력을 독차지하여 여인천하를 이룬 인물로 유명하단다.

….

앞서 이야기했지만 준비도 없이 왕이 된 중종그래도 권력을 잡기 위해 방법을 찾아야겠지. 주위에는 온갖 공신들의 압력에 기를 펴지 못할 때 그가 손잡은 이가 신진세력의 대표주자 조광조였단다. 아빠도 예전에 조광조에 대한 책을 읽은 적이 있는데, 조광조라는 인물은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왕을 잘못 만나서 안타까운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단다.

중종은 조광조와 함께 개혁을 하려고 하는 듯했지만, 오래가지 못하고 조광조에 변심하고 훈구파의 모함까지 더해져서 조광조를 반역의 누명을 씌어 죽여 버렸단다. 조광조가 너무 왕을 다그치면서 개혁을 주장해서 중종이 등을 돌렸다는 이야기도 했는데, 원래 종중이 그런 사람이었다고 하는구나. 반정공신을 몰아내기 위해 조광조를 이용했고, 조광조를 몰아내려고 훈구파의 심정과 왕실의 경빈 박씨를 이용했고, 심정과 경빈 박씨를 몰아내기 위해 김안로를 이용하고, 김안로를 몰아내기 위해 양연이라는 사람을 몰아내고 말이야. 어떤 이가 우스개로 중종의 법칙이라는 말까지 했단다. 중종반정으로 준비 안된 상태로 왕위에 올라서, 왕 자리를 존속하기 위한 그만의 비법이었는지도 모르겠구나. 아무튼 그는 조선 왕들 중에 다섯째로 오랜 기간인 38년 동안 왕을 했단다.


2.

이번 시대에 몇몇 인물에 대한 이야기도 해주었단다. 먼저, 명종 때의 의적 임꺽정. 임꺽정이 유명해진 것은 아마 홍명희의 소설 때문일 거야. 그 이후 영화와 드라마로 만들어지고 말이야. 백정이었던 임꺽정은 왜 의적이 되었을까. 당시 평민과 천민에 대한 수탈이 무척 심했단다. 일하면 일할수록 더 가난해지고 빚이 늘어나고 시절이었어. 조정에서는 알아봐주지도 않고그의 반란은 결국 실패했지만, 조선 민중의 힘을 볼 수 있었단다.

이번에는 양반 한 분을 이야기해줄게. 국어책에 자주 등장하는 시인이자 문인으로 알려진 정철. 예전에 이미 다른 책들에서 정철의 본모습을 알게 된 다음부터 그에 대한 이미지가 완전히 안 좋아져서, 정철 하면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단다. 이 책에서도 노회한 정치인으로써 정철을 이야기하고 있단다. 정여립이라는 사람이 역모를 꾸몄다고 하면서 관련된 사람을 죽이게 되는데, 이를 주도한 것이 정철이었고, 무려 3~4년 동안 이어졌으며, 죽은 사람만 1000여명에 다다른다고 하는구나. 이를 기축옥사라고 하는데, 실제로는 정여립이 역모를 꾸미지는 않은 것 같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이야기란다. 정철이 속해 있던 서인이 권력을 잡는데 정여립을 이용했던 것이고, 이 사건의 배후에는 당시 왕이었던 선조가 있었다고 하는구나. 정치인으로써 정철은돌직구를 날리기도 하는 신조 있는 정치인이면서, 자신의 세력을 위해 감투를 쓰고 무리한 수사까지 하는 인물이었단다. 앞서 이야기한 정여립 사건도 이런 의도에서 시작한 것이고, 진실도 밝혀내지 못하고 반대파만 신나게 처단한 사건이었던 거야. 그렇다고 그의 말년도 좋은 것만은 아니었단다. 기축옥사로 서인들과 함께 권력을 잡았지만, 선조의 세자 책봉 당시 선조와 다른 의견을 내 놓았다가, 좌의정 딱지 떼이고 좌천된 뒤 유배까지 떠나게 되었다고 하는구나. 임진왜란이 일어난 지 1년 뒤 술병으로 죽었다고 하니, 그 또한 허망한 인생이로구나. 문학적 재능으로 글이나 열심히 썼다면 더 좋았을 것을

….

이문건이라는 사람이 있단다. 이 사람은 위인은 아니야. 그런데 그가 남긴 독특한 기록이 있어 소개되었단다. 손자의 육아일기 <양아록>을 쓴 거야. 예나 지금이나 손자를 바라보는 할아버지의 마음은 얼마나 행복하겠니. 그런 마음을 갓난아기 때부터 손자에 대한 글을 쓴 이문건. 나중에 십대가 된 뒤에는 손자와 갈등을 담기도 했는데, 역시 기록이라는 것은 위대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것 같구나.

또다른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사람 한 명 더 소개해 줄게. 조주삼이라는 사람이란다. 이 사람은 83살에 과거 시험을 붙었다고 하는구나. 과거 시험이 어렵다는 것은 알았지만, 83살이라니그의 불굴의 의지와 83살에 과거에 붙었을 당시 그의 느낌을 상상해 보았단다. 얼마나 기쁘고 짜릿했을까. 조주삼이라는 분의 이야기를 하면서 조선시대 과거 제도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 그 시험제도가 상당히 복잡하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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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

단순 명쾌하게 조선의 과거 시험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문과는 크게 대과와 소과로 나뉩니다. 소과는 다시 진사시와 생원시로 나뉘는데요. 진사시와 생원시에는 초시와 복시가 있고, 합격자는 진사시, 생원시 각각 100명씩 총 200명입니다. 이렇게 소과에 합격하고 나면 대과를 볼 수 있습니다. 대과에는 초시, 복시, 전시 3단계가 있는데요. 초시와 복시는 각각 초장과 중장, 종장 3단계의 시험을 보게 됩니다. 초시에서 240명을 선발을 하고, 그중 33명을 복시에서 뽑습니다. 여기서 뽑힌 33명은 마지막 절차인 전시, 즉 왕 앞에서 보는 시험을 통해 최종 순위를 결정하게 됩니다. 이 모든 단계를 거치고 나서야 비로소 관직에 나갈 수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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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과에 합격을 하면 성균관에 들어가게 되는데, 성균관에서 공부를 하게 되면 대과에 시험 보게 되는데 대과는 오늘날 5급 공무원이라고 생각하면 된단다. 성균관은 한 달에 2일 휴일을 주곤 하는데 그때 유생들은 반촌이라는 곳에서 놀곤 했는데, 그 반촌이 오늘날 대학로에 위치하고 있다고 하니대학로가 현재 그 자리에 생긴 이유가 반촌이었나 싶더구나.

마지막으로 승정원일기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 간단히 이야기하고 마칠게. 승정원일기는 유네스코 기록 유산으로 등재되었는데, 조선 초부터 승정원에서 기록한 일지란다. 조선 초의 기록은 전쟁으로 사라지고, 지금 남아 있는 것은 인조 때부터의 기록인데 그 양이 어마어마하다고 하는구나. 3243권으로 되어 있고, 24250여만 글자로 되어 있대. 번역을 시작한지 20여년이 되었는데, 아직 진척율이 10%라고 하는구나. 인력이 충원되더라도 앞으로 100년은 넘게 걸린다고 하니, 대단한 기록물이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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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참, 한가지만 더 이야기할게. 나중에 너희들이 역사 공부를 하다 보면, 육십갑자로 된 역사적 사건을 많이 접하게 될 거야. 그때 대략적인 년도를 추측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이 있어 발췌해 보았단다. 아빠도 꼭 기억하고 있어야겠구나. 10간이고 숫자가 10개이니까 생각하면 쉽게 생각할 수 있었던 내용인데 미처 몰랐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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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

연도의 끝자리 수 쉽게 외우는 법

10

연도

4

5

6

7

8

9

0

1

2

3

*10간의 ()’으로 시작되는 해는 갑신정변(1884), 갑오개혁(1894)처럼 끝자리 수가 4이다. ‘’,  도 이렇게 외우면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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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책의 첫 문장 :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라는 잠언의 한 구절은 중요한 진실을 짚었다고 생각한다.

책의 끝 문장 : <승정원일기>가 완역되면 그런 인상도 좀 바뀌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생기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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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1-02-21 00: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철. 아이들이 관동별곡땜에 치를 떨지요 ㅎㅎ 양아록은 만화책으로도 나와있는데 할아버지의 손주에 대한 사랑과 교육열은 시대를 초월하는것 같아요 아이들이 만화다 보니 재미있게 읽더군요 *^^*

bookholic 2021-02-21 13:58   좋아요 1 | URL
정철이 문학에만 전념했으면 큰일 날 뻔했네요..^^
아, 만화로 된 양아록은 한번 읽어봐야겠네요~!!!
 














(47)

세상은 좋은 곳이지요. 마릴라 아주머니? 린드 아주머니는 세상엔 별로 좋은 일이 없다고 하셨어요. 기분 좋은 일을 찾으려고 할 때마다 실망만 하게 된다고, 기대와 다르다고 말이에요. 맞는 말인지도 몰라요. 하지만 거기에는 좋은 점도 있어요. 나쁜 일도 예상했던 것과는 다르게 훨씬 좋게 바뀔 수도 있으니까요.


(224)

난 네가 대학에 갔으면 좋겠구나. . 하지만 못 간다고 해도 속상해하지는 마라. 어디에 있든 우리는 우리의 삶을 만들어 가니까. 대학은 그걸 좀 더 쉽게 해줄 뿐이지. 무엇을 얻는지가 아니라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지에 따라서 넓어지기도 하고 좁아지기도 하지. 인생의 풍요로움과 충만함에 온 마음을 여는 법만 배운다면 인생은 풍요롭고 충만할 거야. 여기에서…. 그 어디에서도.


(255)

제가 그런 면이 좀 지나치다는 건 알아요. 뭔가 좋은 일이 생길 거라고 생각하면 기대감에 차올라서 하늘로 훨훨 날아가거든요. 하지만 그러다 쿵 소리를 내며 땅으로 떨어져 버려요. 하지만 마릴라 아주머니, 하늘을 나는 동안만큼은 정말로 멋진걸요. 저녁노을 위로 날아오르는 기분이에요. 그래서 쿵 떨어져도 괜찮을 정도예요.


(277)

가장 즐거운 날은 굉장하거나 근사하거나 신나는 일이 생기는 날이 아니라 목걸이를 만들 듯 소박하고 작은 즐거움들이 하나하나 조용히 이어지는 날이라고 생각해요.


(461)

그 순간 앤은 이상하게 가슴이 떨렸고 처음으로 길버트의 시선에 흔들려 창백한 얼굴이 장밋빛으로 물들었다. 마치 지금까지 마음속 깊은 곳에 드리워져 있던 베일이 걷히고 뜻밖의 감정과 진실이 드러난 것 같았다. 어쩌면 낭만적인 사랑은 백마 탄 기사님처럼 화려하고 조용하게 다가오는지도 몰랐다. 그리고 사랑은 예상치 못했을 때 빛처럼 나타나 시와 음악이 있는 책장을 넘겨 버리고 평범한 산문처럼 나타날지도 모른다. 마치 초록색 꽃망울이 황금빛을 띠는 장미꽃으로 바뀌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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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나중에 알아볼 것들을 생각하는 일도 근사하지 않나요? 살아 있다는 게 기쁘게 느껴지거든요. 세상엔 재미있는 일이 참 많아요. 우리가 모든 걸 다 안다면 사는 재미가 반으로 줄어들 거예요. 안 그래요? 그러면 상상의 나래를 펼칠 일도 없겠죠? 그런데 제가 말이 너무 많나요? 모두들 그렇게 말해요. 제가 입을 다물고 있는 게 좋으세요? 아저씨가 그렇다면 조용히 할게요. 전 마음만 먹으면 아무리 어려워도 그만둘 수 있거든요.


(62)

이런 아침에는 세상이 온통 사랑스럽지 않나요? 시냇물의 웃음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와요. 시냇물이 얼마나 유쾌한지 아세요? 언제나 웃고 있어요. 겨울철에도 얼음 밑에서 웃는 소리가 들려요. 초록 지붕 집 근처에 시내가 있어서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어차피 여기서 살지도 못할 건데 무슨 상관이냐 싶으시겠지만, 그렇지 않아요. 다시는 보지 못한다 해도 전 초록 지붕 집에 시내가 있었다는 사실을 항상 기억할 거예요. 만약 없었다면 그곳에 시내가 꼭 있어야 하는데, 하는 아쉬움이 늘 따라다닐지 모르거든요. 전 오늘 아침엔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져 있지 않아요. 아침엔 절대 그럴 수가 없어요. 아침이 있다는 건 정말 멋진 일 아니에요? 하지만 지금은 무척 슬퍼요. 방금 전까지만 해도 아주머니가 바라시던 아이는 바로 저이고, 여기서 언제까지나 살게 되었다는 상상을 하고 있었거든요. 그런 상상을 하는 동안에는 큰 위로가 됐어요. 하지만 상상의 가장 나쁜 점은 깨어날 때 마음이 아프다는 거예요.


(168)

어머, 어떤 일이든 기대하는 데 그 즐거움의 반이 있는 걸요. 혹시 일이 잘못된다 해도 기대하는 동안의 기쁨은 누구도 뺏을 수 없는 거예요. 물론 린드 아주머니는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사람은 실망할 일도 없으니 다행이다라고 말씀하셨지만, 전 실망하는 것보다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쪽이 더 나쁘다고 생각해요.


(397)

전 초록 지붕 집에 온 뒤부터 실수를 많이 저질렀는데, 그 실수들은 하나같이 저의 큰 단점들을 고치게 해줬어요. 자수정 브로치 사건으로 제 것이 아닌 물건에는 손을 대지 않게 됐고요. 유령의 숲 일은 상상에 너무 빠져 드는 버릇을 고치게 해줬어요. 진통제 케이크 사건으로, 요리할 때 신중하지 못한 습관을 버리게 됐고요. 염색 사건을 겪으면서는 허영심이 없어졌어요. 이젠 더 이상 머리나 코에 대해 생각하지 않아요. 적어도 거의 하지 않는다고 볼 수 있죠. 그리고 오늘 실수는 지나치게 낭만을 찾는 습관을 고쳐 줄 거예요.


(428)

지난 한 해 동안 다들 열심히 잘해 주었어요. 여러분은 즐겁고 신나게 방학을 보낼 자격이 있어요. 밖에서 마음껏 뛰어 놀면서 다음 학년을 위한 건강과 활기와 포부를 가득 채우도록 하세요.


(472)

글쎄, 난 다이아몬드가 없어 평생 위안받지 못하더라도 나 아닌 다른 사람이 되긴 싫어. 난 진주 목걸이를 한 초록 지붕 집의 앤으로 충분히 만족해. 분홍 드레스를 입은 부인의 보석 못지않게 이 목걸이에 담긴 매슈 아저씨의 소중한 사랑을 난 알고 있으니까.


(475)

전 조금도 변하지 않았어요. 정말이에요. 그저 쓸모없는 가지를 잘라 내고 새 가지를 뻗었을 뿐이에요. 초록 지붕 집에 있는 진짜 제 모습은 한결같아요. 제가 어디를 가든 겉모습이 어떻게 변하든 전 조금도 달라지지 않아요. 마음속엔 항상 어린 앤이 있어서 마릴라 아주머니와 매슈 아저씨와 정겨운 초록 지붕 집을 날마다 더욱더 사랑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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