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손님들이 밤새 얼마나 떨었을까요! 얼어버린 다리를 한참을 주물러야 겨우 몸을 움직일 수 있다고 합니다. 덜덜 떨면서 식사하시는 애처로운 모습을 봅니다.

얇은 셔츠를 입고 덜덜 떨면서 잠바 하나 얻을 수 있는지 물어봅니다.

어제는 새 민들레 식구로 두 분이 왔습니다. 

두 사람은 연세가 예순 초반입니다. 수원역에서 노숙을 합니다. 민들레희망지원센터에 와서 책을 읽고 독후감 발표를 하고 받는 돈으로 겨우겨우 살아갑니다. 

한 사람은 8개월 전에 민들레진료소에서 엑스레이 검사를 한 후에 결핵이 진행 중인 것을 발견해서 민들레국수집 근처 여인숙에서 여섯 달이나 지내면서 약을 먹고 완치가 되었습니다. 그러고 나서도 노숙생활을 벗어나지 못하고 또 다시 수원역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이 분은 귀가 거의 들리지 않아서 대화를 나누기가 참으로 어렵숩니다.

또 한 분은 함께 수원에서 노숙을 하면서 친구처럼 지내는 분인데 이분도 얼마 전에 결핵이 진행되고 있는 것 같다는 보건소의 연락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어제 새 민들레 식구로 받아들였습니다. 수원역 사물함에 물건을 맡겨놓았는데 찾을 돈이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찾을 돈을 드렸더니 밤늦게 도착해서 첫밤을 지냈습니다.

참으로 오랜만에 잠을 푹 자봤다고 합니다.

전기장판이 몇 개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두꺼운 이불도 몇 채 있으면 참 좋겠습니다.

동네에 집을 몇 채나 소유하고 계신 할아버지가 있습니다. 고물수집을 하십니다. 악착같이 파지를 줍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술을 잘 얻어드시지만 절대 당신이 사는 법이 없습니다. 정말 돈 한 푼에 발발 떱니다. 그런 어르신께서 민들레국수집에 식사하러 오십니다. 그러다가 동네의 진짜 가난한 분에게 걸렸습니다. 창피를 당하신 후에는 국수집에 오시지 않습니다.

민들레국수집에는 간혹 부부 같은 분이 식사하러 오십니다. 그중에 밤에는 따로 떨어져 있다가 낮 동안에만 함께 지내는 분이 있습니다. 남자 분은 하인천역 근처에서 노숙을 합니다. 여자 분은 조그만 교회에서 밤을 지냅니다. 그리고 낮에는 함께 만나서 민들레국수집으로 와서 식사를 하고 공원에서 지내다가 밤에는 헤어집니다.

동인천역 근처에서 쪽방을 얻어 사는 59세 아저씨입니다. 자녀들이 있어서 기초생활수급자가 될 수는 없는 모양입니다. 그래서 전철에서 신문을 주워서 겨우겨우 지내다가 주민센터의 도움을 받게 되었습니다. 장애 2급이어서 한 달에 15만원 지원을 받습니다. 방세 11만원을 내면 4만 원이 남는데 전기료와 수도료 등 공과금을 내면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오늘도 신문을 주었는데 장애 2급의 몸으로 다니니 많이 모을 수가 없습니다. 겨우 고물상에 가져다 팔았더니 천이백 원을 받았답니다. 그러면서 쌀을 조금 얻을 수 있는지 물어봅니다. 쌀 10킬로그람 1포를 드렸더니 좋아합니다. 쌀 떨어질 즈음이면 또 오시라고 했더니 몇 번이나 고맙다고 합니다.

작년에 미국에서 오신 고마운 분께서 어느 수녀님을 통해서 좋은 칭낭을 백 개나 보내주셨습니다. 지난 겨울에 칭낭 팔십여 개를 나눠드렸습니다. 스무 개 쯤 남았습니다. 침낭 찾는 분이 있어서 나눠드렸습니다. 그랬더니 칭낭이 필요하다는 분들이 줄을 섭니다. 서울 어디에서도 침낭을 나눠주는 곳이 없답니다. 안타깝게도 우리도 침낭이 떨어져 버렸습니다. 그래서 잠바나 셔츠나 목도리를 드리고 있습니다.

 

 

                                -민들레국수집, 민들레소식 10/31 시월의 마지막날-에서 옮겨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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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작은 소리, 더 작은 소리


           지금 당신이 있는 장소에는
           숱한 소리와 목소리들이 웅성거리고 있어.
           그 속에서 가장 작은 소리에 귀를 기울여봐.
           그 작은 소리가 확실히 들린다면 이번에는
           그보다 더 작은 소리를 찾아내는 거야.
           그 소리가 또 확실하게 들린다면
           그보다 더 작은 소리를 찾아내고,
           그 소리에 귀를 기울여. 그렇게
           천천히 당신 앞으로 침묵을 끌어내봐.
           어부가 그물을 당기듯이.

          - 후지와라 신야의《황천의 개》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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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좀 전에 일을 하고 있는데, 벨이 딩동댕동, 딩동댕동 막 울려서 나갔다.

 

 문을 여니 친구들이 들이 닥치며 "어휴~괜찮구나."해서 "왜?" 했더니 사연인즉,

목요일 밤부터 전화를 했는데 받지를 않고 어제도 그랬고. 처음에는 못 받았구나 하다가 아니,

설령 전화를 못 받았더라도 부재중 표시보고 전화가 올텐데 뭔일이 생긴건 아닌가 걱정하다가

오늘 또 걸었더니 역시 안 받아서 친구들과 연락해서 집으로 왔다는 것이다.

 

 그들이 그 짧은 시간에 논의한 얘기는 입원을 했나, 아니면 해외로 나갔나 그래도 전화를 안 받을 리는 없는데? 경찰에 신고해야 되는 것 아냐? 분분하다가 집으로 왔다는 사연.

 

 어제부터 왠지 걸려오는 전화가 없었지만 별로 의식하지 않았고 오늘 확인하니 휴대폰이 고장난 것 같아 서비스센터를 오후에 갔는데 업무시간이 끝났다며 월요일에 오라해서 나는 또 맘 편하게  '그래, 간만에 아무 연락도 안 받고 조용한 나만의 시간을 보내야지~~" 내심 그 상황을 즐기기까지 했는데, 한편에서는 별의별 추측과 걱정과 염려를 했던 것이다. 아뿔싸. 황당하긴 했지만 그래도 벗들의 사랑을 새삼 깨달을 수 있었던 행복한 주말밤이다.

 

  새삼, 휴대폰이 소통의 대리자가 돼버린 시대를 생각하고, 그 물건이 먹통이 되어 연락이 안되자 한밤중에 집으로까지 찾아온 친구들의 사랑을 확인하며, TV는 없어도 집전화라도 다시 달아야 할까 하는 의문을 가지며 괜시리 실실 웃는 중이다. 에그~~메신저라도 하지~~^^

 

  "땡큐~땡큐~땡큐!!"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에 대한 관심과 마음임을 확인한 정말 감사한 밤이다.

 

  다음주에는 아무리 시간이 없더라도 이곳 저곳에서 보내온 책들을 들고 친구들에게 '사랑의 인사'를 하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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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 안에서 살던 천년의 세월 동안 내 이름은 평화였다.엄마가 평화야, 라고 부르면 바다가 출렁이고 하늘이 춤췄다. 나는 온몸으로 내 이름을 느꼈다. 평화는 눈과 귀를 통하지 않고도 세상을 이해했다. 평화는 동물과, 꽃과, 별과, 바람과도 대화했지만 사람과는 아무것도 나눌 수 없었다. 사람들은 평화를 원하는 척만 할 뿐 그것을 진정으로 갈구하지 않았다. 나는 알았다. 사람들의 눈에 드러나는 순간 갈기갈기 찢겨질 나를. 갈기갈기 찢은 후 다시 온전한 나를 갈구할 그들의 기만을. 나는 그안의 평화로만 남고 싶었다. 떠나고 싶지 않았다. 파괴당하고 싶지 않았으며, 돌이킬 수 없는 그들의 욕망에 놀아나고 싶지 않았다.

 내 이름은 평화였다.

 오직 이름으로만 존재하는 평화를 나는 그 안에서 다 이해했다. (P.106~107)

 

 

 

 내가 진짜엄마를 찾는 이유는 진짜엄마가 그리워서도, 진짜엄마가 필요해서도 아니다. 가짜를 가짜라고 확신하기 위해서, 이유는 그뿐이다. 진짜를 찾아내야 가짜를 가짜라고 말할 수 있으니까. 세상이 온통 가짜뿐이라면, 가짜가 가짜임을 증명할 수가 없지 않나. 가짜가 진짜인 척해도 뭐라 할 말이 없는 거다. 그러니까 나는 꼭 진짜를 찾아내야 한다. 찾아내서 진짜인 척하는 가짜들을 진짜 가짜로 만들어 버릴 테다.

 하지만 만약에, 만약에 말이다. 세상에 진짜란 게 하나도 없다면, 그러니까 온통 가짜뿐이라면 어쩌지? 그럼 세상에 진짜는 오직 나뿐인가? 정말 그럴 수도 있을까? 나는 진짜가 맞나? 내가 진짜임은 누가 확인해주지? 내가 진짜를 찾아 헤매듯, 세상의 어떤 진짜는 나를 찾아 헤매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니까 나는 꼭 진짜를 찾아야 한다. 내가 진짜임을 학인하기 위해서라도.(P.111~112)

 

 

 행복하기만 한 건 아니었다. 내가 숨 쉬던 우주는 온통 까매서, 가끔 그 어둠에 치를 떨기도 했다. 시간도 공간도 내 안의 모든 감각도 소용없던 그때, 막막한 어둠에 짓눌려 구해달라고, 그 무엇도 흉내내지 못할 간절함을 품기도 했지만 나를 구할 것 또한 어둠뿐이었다. 암흑의 본질은 고독이었다. 나는 모든 구멍을 열고 내게 스미는 암흑을 응시하고 응시했다. 응시하는 그 곳에는 또 다른 내가 있었다. 기시감 같은 반짝임, 반짝이는 나를 보는 것 또한 나와 암흑뿐이었다.

 내 앞에 나타난 나는 지나치게 흔한 세계.

 그것만이 전부였던 그 시절.

 나는 반짝이는 나를 봤다. 내 불행의 시발점. 모든 행복의 이면.((P.161~162)

 

 

  한참을 자고 일어나도 밤

  뜬눈으로 지새워도 밤

  천을 천 번씩 세는 내내 밤이다가

  아주 잠깐씩 환해질때가 있었어.

 

  그때 당신은 무얼 하고 있었을까. (P.223)

 

 

  진짜엄마란 대체 뭐지? 나는 왜 그것을 찾지? 거리를 헤매며 많은 사람을 보면 볼수록, 나는 그 이유를 서서히 잃어갔다. 알맹이 없는 목적을 품고 걷는 길은 고되고 무의미했지만, 나는 끝없이 걸었다. 누군가가 너는 왜 이 거리를 떠돌고 있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그저 지금까지 걸어왔기 때문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하지만 아무도 내게 그런 질문은 하지 않았다. (P,243)

 

 

 나의 진짜엄마는.

 거리를 떠돌며 내가 정했던 진짜엄마의 조건은 모두 껍데기고 포장이며 환상이고 거짓말이다. 나의 진짜엄마는 어떤 얼굴이라도 가질 수 있으며 그래서 결국, 어떤 얼굴이라도 상관없는 그런 사람이다. 맞는 대신 때리는 자이고 때리는 게 번거로우면 죽여 없앨 수도 있다. 그 모든게 귀찮을땐 외면한다. 상관없는 척한다. 그 뿐이다. 오직 중요한 건 자신의 생존이다. 불행이나 행복 따위엔 관심도 없다. 이제야 알겠다. 그런 사람을 찾기는 너무나 쉽고, 너무 쉽기 때문에 나는 여태 못 찾고 있었다. 너무 흔하니까, 어디에나 있으니까.

 거울을 보면 그 속에도 있다. (P.274)

 

 

 엘리베이터 문이 닫힌다.

 손바닥만 한 사진이 있었다. 그 속엔 젊은 아빠 엄마가 있다. 하얀색 원피스를 입은 엄마는 아빠의 팔짱을 끼고 천사처럼 웃는다. 아빠의 얼굴엔 부끄러움과 만족감이 사이좋게 내려앉았다. 맑고 밝고 향기로운 봄날, 그 속엔 나도 있다. 엄마 배 속에서 작은 손으로 두 눈을 가리고 입을 하나로 모은 나.  평화야, 엄마가 배에 손을 얹고 나를 부른다.

 찰칵,

 카메라도 나도 사이좋게 윙크.

 

 그속에서나는 평화였다. (P. 295)

 

 

  천년의 세월 중 내가 들었던 가장 달콤한 말은,

  사랑하는 우리 아가.

  내가 보았던 가장 아름다운 것은,

  엄마의 자그맣고 부지런한 심장.

  가장 황홀했던 건,

  아빠가 엄마 안에 들어와 우리 셋이 완전한 하나가 되던 느낌.

  그 안에서 짐작했던 최고의 행복은,

  당신이 나를 안고

  내 눈을 보며

  내 이름을 불러주는 그 순간. (P.296)

 

 

                                     

              / 최진영 장편소설,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한겨레출판.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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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있는 영광'


역설적이게도
인간은 혼자 있을 때
타인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다.
고독은 자기 자신을 만나게 하고
타인 역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하며
그들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다는 것
또한 깨닫게 한다.

 

 

- 윌리엄 파워스의《속도에서 깊이로 : 철학자가 스마트폰을 버리고
월든 숲으로 간 이유》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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