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선 자리에서 꽃을 피우세요 - 와타나베 가즈코 수녀의 힐링에세이!
와타나베 가즈코 지음, 홍성민 옮김 / 작은씨앗 / 2012년 11월
평점 :
품절


`꽃을 피운다는 것은 어쩔 수 없어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웃는 얼굴로 주위 사람도 행복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한 해를 보내며 눈 속에 핀 꽃처럼 작고 나직하지만 향기로운 뜻을 만나며, 기쁘고 평화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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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그인

 

                             윤성택

 

 

   로그인된 나무에 새순이 돋고

   아이디로 꾹꾹 입력된 꽃이 핀다

   그러므로 계절이라는 사이트에

   들어설 때부터 커뮤니티는 시작된다

 

   시간의 약관에 동의한 나는

   태어나 로그인된 방문자, 이리저리

                                         흔적을 남길때마다 기억이 스크랩된다

                                         누군가 잠시 나를 떠올리기라도 하면

                                         카운터가 올라간다

                                         간혹 내가 접속하고 싶은 사람,

                                         서로 언약한 적 없어도

                                         그의 패스워드를 이해해야 한다

                                         결정적으로 일치해야 다음 단계로 이동할 수 있다

 

                                         보는 이가 많아질 수록 꽃은

                                         절정의 트래픽을 갖는다 뿌리의 한계용량으로

                                         페이지를 표시할 수 없는 이파리가

                                         미끄러지듯 낙하한다

                                         변경이 필요한 오류는 바람이다

 

                                         로그인을 했다가 로그아웃하면

                                         육안으로 보이는 곳에서도 나는 없다

                                         내가 사실로 존재하는 것은

                                         경계에 접속한 순간뿐이다

                                         어디에도 있는 나를

                                         어디에도 없게 하는 로그아웃,

                                         나는 태연하게 다른 곳으로 로그인된다

 

                                                                  -윤성택 詩集, <리트머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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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2-12-11 10:03   좋아요 0 | URL
마지막 문장이 좋네요. 나는 태연하게 다른 곳으로 로그인된다. 로그인한다,라고 하지 않고 된다, 그것도 태연하게,라고 했으니..

appletreeje 2012-12-11 12:20   좋아요 0 | URL
시간의 약관에 동의한 나는
태어나 로그인된 방문자, 에서도 좀 마음이 기울었어요.
아마 2008년인가 읽었었는데 벌써 4년이 지났군요.
오늘도, 우리 태연하게 다른곳으로 로그인되고 있나요?
컨디션님, 좋은 날 되시기를~~^^
 

 

어느새 12월입니다.

엄청 추운 날입니다. 우리 손님들이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걱정이 되는 날씨입니다.

고마운 분들 덕분에 김장도 무사히 마쳤습니다. 특히 여성 감정평가사 모임에 감사드립니다. 김장비용을 도와주시고 또 그 추운 수요일에 김장을 거들어주시기까지 하셨습니다. 고맙습니다.

민들레의 집에 새 식구가 오셨습니다. 

세 살 때 어머니가 집을 나가시고 여섯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고아가 되었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 1학기를 다닌 것이 학교 생활의 전부입니다. 그래서 겨우 이름 석자를 씁니다. '확인용'이라는 글자가 너무 어려워 '학인용'이라고 썼습니다. 

남해안 어느 섬에서 머슴살이를 했습니다. 열세 살 때 처음으로 배를 탔습니다. 엄청 얻어맞았다고 합니다. 서른 즈음에 어떤 여자를 만나 동거를 했는데 돈 막 쓰다가 도망가버렸답니다. 카드 빚 막아주느라 죽을 고생을 했답니다. 그러다가 다리를 다쳤답니다. 아프니까 술을 마시고 그러면서 악순환이 되어 이제는 거의 고관절을 쓰지 못합니다. 엑스레이를 찍고 진단 결과 인공 고관절 수술을 해야만 다리를 움직일 수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민들레의 집으로 주소 이전을 하고 주민센터에 기초생활수급 신청을 했습니다. 며칠 동안 잠을 편히 자는 것이 제일 좋다고 합니다. 이제 기초생활수급권자가 되면 병원에서 수술할 수 있는 길을 찾아봐야겠습니다.

요즘은 베로니카와 함께 꿈을 꿉니다. 

고마운 분께서 인천 시청 근처에 있는 어느 빌라 반지하 방을 2년 무상으로 쓸 수 있도록 빌려주셨습니다. 방 두칸짜리 도시가스가 되는 아담한 방입니다. 이제 내일 모레쯤 벽지를 바르고 전기선과 전등을 교체하고 텔레비전과 냉장고, 세탁기 등 살림살이를 마련하면 세 분의 VIP 손님들께 선물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느 분을 초대하면 좋을까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작은 방에 한 분, 큰 방에 두 분이 오손도손 살 수 있게 해 드리면 참 좋겠습니다. 멋진 성탄 선물이 될 것입니다.

민들레의 집 식구들이 사는 집들 중에는 다섯 집이 석유 보일러를 씁니다. 아주 조금씩 기름을 넣어드렸습니다. 제발 아껴서 아껴서 쓰라고 당부를 했습니다.

천주교 인천교구 상3동 성당의 사회복지분과에서 민들레국수집에 옷을 보내주셨습니다. 덕분에 필리핀 빠야따스에 성탄절 선물을 보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이들 여름 옷이 많아서 3일이나 4일쯤 필리핀으로 화물을 보내면 성탄 전에 빠야따스 아이들에게 선물로 나눠줄 수 있을 것입니다. 고맙습니다.

민들레 가게에 두터운 겨울 잠바가 많이 필요합니다. 그 많던 옷들이 우리 손님들께로 갔습니다. 패딩잠바! 

민들레희망지원센터에서는 매일 오륙십 분의 우리 손님들이 책을 읽고 독후감 발표를 하십니다. 서울에서 오시는 분들은 전철에서도 책을 읽는 분들이 많습니다. 

멋집니다. 비록 노숙을 하면서 식사하러 인천에 오고 가기 위해 전철을 탔지만 책을 읽는 우리 손님들!   

12월 22일에는 우리 VIP 손님들을 위한 작은 음악회가 열립니다. 

부평 모짜르트 카페에서,

쥴리어드 출신이신 중앙대 음대 교수이신 분께서 동료 고수님들과 함께 멋진 클래식 성악을 선물해 주십니다.

맛있는 도시락과 간식 그리고 성탄 선물이 준비될 것입니다.

어르신들을 위한 민들레국수집을 곧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간단하게 리모델링 하고 식당 열 준비를 한 다음에 예행연습으로 운영하다가 2013년 4월 1일 만우절에 민들레국수집 10주년을 기념해서 정식으로 문을 열 예정입니다. 

 

                                        -민들레 국수집, 민들레소식, 12/1 겨울초입-에서 옮겨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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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폭풍우 치는 날에도 편히 잠자는 사나이 


        한 사내가 농장에서 
        일자리를 찾고 있었습니다. 
        그는 농장에 찾아가 새로운 주인에게 추천장을
        건넸어요. 거기에는 이렇게만 쓰여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폭풍우가 치는 날에도 잠을 잡니다." 
        농장 주인은 일손 구하는 일이 급했기 때문에 
        사내를 그 자리에서 고용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밤, 
        갑자기 사나운 폭풍우가 마을에 몰아쳤습니다.
        거센 비바람 소리에 깜짝 놀란 농장 주인은 
        침대에서 일어나 밖으로 뛰어나갔습니다. 
        그는 사내를 불렀지만, 사내는 깊이 잠들어 있어서 
        주인은 급히 외양간으로 달려갔습니다. 놀랍게도 
        가축들은 넉넉한 여물 옆에서 안전하게 자고 
        있었습니다. 그는 밀밭으로 뛰어나갔습니다. 
        밀 짚단들은 단단히 묶인 채 방수 천에 덮여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곡물 창고로 달려갔습니다.
        문들에는 빗장이 걸려 있었고, 곡물들은 비 한 방울 
        맞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제야 주인은 "이 사람은 
        폭풍우가 치는 날에도 잠을 잡니다."라는 
        말의 의미를 깨달았습니다. 


        - 미치 앨봄의《8년의 동행》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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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각은 지문처럼 천차만별이지만 김이가 간절하게 원하는 맛은 분명했다. 그것은 화통하게 혀를 볶는 맛, 미친 짐승처럼 길길이 날뛰는 맛, 울다 지쳐 혼절할 것 같은 맛, 뒷덜미를 찌르는 바늘 같고 심장을 관통하는 총알 같은 맛, 붉은 피를 머금은 맛, 목구멍을 태우며 배 속으로 쿵 떨어지는 맛, 8월의 태양같은 맛, 심장이 두방망이질하는 맛, 영혼이 셀로판지처럼 얇디얇게 분리되는 맛, 쓰라린 칼침 같은 맛,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지독한 맛, 마약처럼 중독성이 강해 먹고 또 먹고 싶어지는 맛, 그것은 교군의 맛. (30쪽)

 

 

 

 

 -<이딴 얘기 받아서 적어서 뭐하려고>, (교군 이덕은 여사 채록본)-

 

 

 누군가를 위해 장시간 조리하면서 고된 줄을 모른다면 미친 야망이나 사랑, 둘 중 하나다.

 먹는 입을 사랑하지 않는 요리사는 없다. 궁극의 맛이란, 입이 겪은 황홀경이 만들어낸 감정의 찌꺼기다. (7쪽)

 

 

 세상의 그 많은 고추는 새가 퍼트렸다. 고추는 제멋대로 스스로를 맵게 해 동물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했으나 새들은 매운 맛을 즐겼다. 즐겼다기보다는 미각이 둔한 탓이라 해야 옳겠지만, 남미 고추가 전 세계로 퍼지게 된 이유는 새들의 부지런함과 자극을 즐기는 사람의 혀 덕분이다. (17쪽)

 

 

 매운 맛이 연속으로 들어오면 우리의 몸은 화상을 입었다고 착각해 비상이 걸린다. 맵게 먹을수록 피부재생 물질이 대량으로 분비되어 점차 곱고 예뻐진다. 미용목적으로 섭취하려면 아주 맵게 연속으로 먹어야 한다. 중간에 포기하면 소용이 없다. 아무리 설명해도 내 얼굴을 보며 효과 없겠다고 낙심들을 하는데 각자 형편따라 나아지는 것이지 눈코입의 모양까지 바뀌진 않는다. (35쪽)

 

 

 김치가 붉은색 일색이 된 다음부터 사람들 성격이 화끈해졌다. 당신이 가까운 사람과 격하게 싸웠거나 누군가가 죽이게 싶게 밉고, 술기운을 빌려 벌거벗거나 덩실덩실 춤과 노래를 즐겼다면 핏속에 흐르는 매운 기운이 동했기 때문이다. (49쪽)

 

 

 요즘 사람들은 순채 맛을 모른다. 순채는 얼음을 삶듯 끓는 물에 데쳐 그대로 먹거나 식초나 된장으로 무쳐 먹는다. 매끄러운 식감과 은은한 향을 어찌 말로 할 수 있을까. 젊은 애들에게 설명을 하려 드니 무슨 음식과 비슷하냐고 물었다. 막막했다.  잃은 것이 어디 그뿐이랴. 지난 세월에 옛것을 놓치고 요즘 사람들의 새것이 낯설어 오도 가도 못하는 이 내 마음. 망각은 귀한 것만 쥐고 떠나고 사소한 원망만 내 동무가 되었다. (82쪽)

 

 

 작은 고추는 맵다. 큰 고추도 맵다. 가뭄을 견딘 고추도 꽤나 맵다.

 제일 혹독하게 매운 고추는 겁에 질린 고추다. 궁지로 몰지 마라, 사람 독해진다.( 136쪽)

 

 

 어떤 사람이 고추씨만 먹고 살았다. 먹을 게 없어 알알이 고추씨를 꼭꼭 씹어 먹고 고추씨 똥을 고스란히 쌌다. 먹은 것을 그대로 내보내 섭취할 영양이 없었음에도 그는 삐쩍 마른 몸으로 오래 살았다. 사람에게는 먹는 행위 자체가 먹을거리가 된다. (162쪽)

 

 

 일체개고 一切皆苦, 모든 것이 고통이다. 우리에겐 고통을 쾌락으로 바꾸는 구조가 있다. 실제는 엄청나게 고통스러워도 쾌락이라는 단꿈을 꾼다. 그래서 지난 일은 꿈과 같고 꿈은 곧 현실이 된다. (189쪽)

 

 

 매운맛과 짠맛은 가난뱅이들이 주로 즐기는 품격 없고 저속한 맛이다. 삶이란 원래 고상하지 않다. 활활 타는 매운 동력이 없다면 이 험한 세상 무슨 재미로 살까.( 311쪽)

 

 

 술은 조절이 가능하지만 매운 맛은 물리칠 도리가 없어 모두가 평등해진다. 혀에 불이 붙어 펄펄 뛰다가 눈물을 질금질금 흘리다 보면 말끔하고 반들반들한 학식과 지위의 껍질이 깨지고 사람이 튀어나온다.

 나는 사람에게만 사람대접을 한다. 사람은 온데간데없고 껍질이 떵떵거리는 세상, 누구나 제 껍질을 근사하게 만들려 아귀다툼하는 세상이라 내 음식이 점점 매워진다.  (99쪽)

 

 

  교군의 집장에는 모두 아홉가지의 고추가 들어간다.

달거나 쓴 놈, 뒤끝이 고약한 놈, 신맛과 단맛, 시큼하거나 얇은 고추, 텁텁하거나 맹한 놈, 알차게 단단한 놈, 이것도 저것도 아닌 놈, 모두모두 필요하다. 쓰임 없는 인간이 있던가.(117쪽)

                                                               

 

 비만은 과식만이 원인이 아니다. 두려움이 큰 탓이다. 이걸 먹으면 살이 찔거야, 먹지 말아야 해, 걱정하는 순간 네 입에 들어간 음식은 너의 주문대로 결과를 만든다. 맛난 음식을 몹쓸 지방덩어리로 대하지 말고 영적으로 숭배하라. 먹기 전에 그것들을 응시하면서 네가 나의 건강이 되어주고, 나의 수명, 나의 기쁨과 나의 성품이 되어줄 것을 주문하라. 그러하면 음식은 너를 사랑하고 너를 만들어낸다. (148쪽)

 

 

 땅에 뿌리박은 것들은 김치가 되려고 세상에 나온다. 뭐든 김치이다. 본디 겨울작물인 배추는 영하의 날씨를 사흘간 견딘 놈이 진짜배기다. 얼어죽지 않으려 스스로 수분을 내보내고 당을 만들어내 모양은 시들시들해도 맛이 기가 막히다. 고초를 겪어 본 놈의 인생처럼 특별한 감칠 맛이 도는 것이다. 김치란 갖은 푸성귀를 뽑아 절이고 무쳐 담아 놓으면 알아서 익지 않던가.

 혁명이란 숨 죽인 뒤에 일어난다. 한풀 죽었다가 살아날 때 제맛이 드는 법이니 너희도 힘들다고 포기하지 마라. 풋인생이 익느라 힘든 것이다. (209쪽)

 

 

 흔히 일본 요리라 알려진 '회'는 조선의 저서 <산림경제>에 저술되어 있다.

 그 책에는 생선회에 곁들이는 겨자장과 날생선과 숙회의 조리방식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우리 것이라 알고 있는 것도 남의 것일 수 있으며 남의 것도 충분히 우리 것이다. 내 입에 들어오면 내 배에 든 것이나 원래 내 것도 남에게 단숨에 넘어간다는 말이다.

 그래서 너는 나고 나는 너다라는 것만 인정하면 삶은 참 쉽다. (231쪽)

 

 

 원효대사의 해골바가지 이야기를 나도 겪었다. 어린 시절 춘궁기에 닷새를 굶자 세상의 모든 냄새가 향기롭게 요동쳤다. 한밤중 냄새에 홀려 눈 쌓인 숲으로 들어갔다. 꽁꽁 언 발은 감각도 없었다. 어떻게 그 눈을 헤치고 들어가 고사리순과 버섯과 무를 파냈는지 기억에 없다. 파릇파릇한 나물을 품에 넣어가지고 와 나물죽을 끓여 사당패 할멈과 나눠 먹었다. 다음날 다시 찾아 갔으나 그곳은 벌목하고 남은 허허벌판에 바로 앞은 개울이었다. 이후 열흘에 걸쳐 뒤졌으나 그 숲을 찾을 수 없었다. (242쪽)

 

 

 우리는 모두 한 반죽에서 파생되었다. 손으로 뚝뚝 떼여 뜨거운 국물에 던져지는 수제비를 보라.

 어떤 놈은 무심결에 잘났고 어떤 놈은 대책없이 못났다.

 우리의 인생, 이 복닥거리는 냄비 안은 얼마나 비좁은가.

 저 잘났다고 뽐내봐야 대개 우연의 힘이다. (286쪽)

 

 

  1593년 중무장한 일본의 십만 대군에 포위당한 진주성 사람들은 마지막을 직감했다.

  성안 모든 식량을 한데 모아 국을 끓이고 비빔밥을 만들어 나누어 먹었다.

  처절한 싸움 끝에 일본군에게 도륙당해 전원이 사망했다.

  힘들 때는 함께 모여 밥을 비비고 국을 끓여 먹으며 고난을 이겨내는 방식,

  우리는 그렇다. (297쪽)

 

 

 

 

 이것은 어둠의 맛이다. 징그럽고 칙칙한 덩어리가 세월의 작용으로 삭으면 처음과는 아주 다른 맛의 권력을 지니게 된다. 그대로는 독이기에 밀도를 희석하고 분량을 조절해 드문드문 섭취하면 몸에 작용하지만 한꺼번에 많이 먹었다가는 죽는다. 집장은 사람의 혀를 홀려 걷잡을 수 없는 식탐을 이끌어내는 맛의 전령이다. 사람의 혀는 중독되고 몸에서 이는 저항과 고통을 쾌락으로 환치시키는 것이다. (294~295쪽)

 

 

 김이는 찰박한 배추를 손으로 쭉 찢었다. 노르스름한 고운 결마다 매콤한 단맛이 물결처럼 일렁거렸다. 눈 쌓인 산골, 투명한 얼음을 이고 졸졸 흐르는 냇물을 손으로 떠 마시는 기분, 사방에 하얀 눈이 소복하고 촉촉한 공기가 가슴으로 들어 오는 그런 개운함. 뭐라 말할 수 없는 깊은 향기가 코끝을 톡 쐈다. 김이와 가지 두 사람은 번갈아가면서 대접째 국물을 훌훌 들이마셨다. 아, 맵고 시원하다. (363쪽)

 

 

 

 

 치욕과 고통에 젖은 정한을 언문으로 쏟아내는 저 '한풀이'가 <교군의 맛>이라는 소설이 담고 있는 성격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불행의 근원이 자신이라는 아이러니, 흩어진 자의 언어로 기록될 수 밖에 없는 운명이 모두 교군의 삼대에 스며들었다. 스파이스 로드.

 "이 세상은 커다란 식재료 창고가 아닌가. 세상의 모든 것이 요리가 된다."(<이로니, 이디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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