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군의 맛
명지현 지음 / 현대문학 / 2012년 10월
평점 :
품절


`화기火氣를 품고 탄생한 치명적인 맛은 세상 모든 이야기를 자신의 식재료로 사용할 수 있다.` 독毒한 요리사를 통한 인생과 맛의 탁월한 묘사에 감탄을 하다. 작가의 다음 작품을 벌써부터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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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도 이제 기와불사를 하기로 했다

 

                                                                      이정록

 

 

 

                 금강산 관광기념으로 깨진 기왓장 쪼가리를 숨겨오다 북

                측 출입국사무소 컴퓨터 화면에 딱 걸렸다 부동자세로 심

                사를 기다린다  한국평화포럼이란 거창한 이름을 지고 와

                서 이게 뭔 꼬락서닌가 콩당콩당 분단 반세기보다도 길다

 

                "시인이십네까?"  "네"  "뉘기보다도 조국산천을 사랑해

                야 할 시인 동무께서 이래도 되는 겁네까?"  "잘못했습니

                다" "어찌 북측을 남측으로 옮겨가려 하십네까?" "생각이

                짧았습니다"  "어데서 주웠습네까?"   "신계사 앞입니다"

                "요거이 조국통일의 과업을 수행하다가 산화한 귀한 거이

                아닙네까"  "몰라봤습니다"   "있던 자리에 고대로 갖다놓

                아야 되지 않겠습네까?"  "제가 말입니까?"  "그럼 누가 합

                네까?"   "일행과 같이 출국해야 하는데요"   "그럼 그쪽 사

                정을 백천번 살펴서 우리 측에서 갖다놓겠습네다"   "정말

                고맙습니다"   "아닙네다 통일되면 시인 동무께서 갖다 놓

                을 수도 있겠디만, 고사이 잃어버릴 수도 있지 않겠습네

                까?  그럼 잘 가시라요"

 

                한국전쟁 때 불탔다는 신계사, 그 기왓장 쪼가리가 아니

                었다면 어찌 북측 동무의 높고 귀한 말씀을 들을 수 있었

                으리요 나도 이제 기와불사를 해야겠다, 쓰다듬고 쓰다듬

                는 가슴속 작은 지붕 조국산천에 오체투지 하고 있던 불사

                한 채

 

                                                            -이정록 詩集, <정말>- 에서

 

 

 

    시간이 왈칵, 흐르고 있다.

  며칠 집을 비우고 돌아가는 길 먹이를 기다리고 있는

  가축들 생각에 끄급한 마음처럼, 오늘도 쌓여 있는 일들을

  생각하다 시인의 詩 한 편으로 마음을 덥히는 중이다. 어느

  하나라도 그냥 스쳐가는 게 없는 사람들의 말과 말 속의 의미와

  때론 다정하기도 한 마음의 품새속에 잠시 편안하다.

   이번 주말에는 모처럼 시간을 내어 좋은 친구들과 두물머리,

  수종사 '뜰앞의 잣나무'에 가 우리도 기와 한 장씩 올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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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늦은 아침으로, 어제 저녁 들어오는 길에 사온 롯데마트의 의정부부대찌개를 끓이고 역시 30% 할인을 한 메추리알장조림과 친구에게 얻어 온 아직 숨이 죽지 않은 김장김치의 짭조름함과 서해안 김으로 간단히 더운 밥을 해먹고 뭔가 허전해 치즈가 알알이 박힌 원통모양의 식빵을 뜯어서 뜨거운 커피와 먹으며 도서관에서 빌려 온 최갑수의 포토에세이, '당분간은 나를 위해서만'을 막간을 이용해 읽는다. 부담 없는 시간에 헐렁한 실내복처럼 편안하게, 가끔은 이런 대책 없는 시간이 좋다.

 

 

  젖은 양말이 마르는 사이, 맥주 한 병을 시켜 마시고, 바흐의

 

  김빠진 맥주를 마저 비우고 집으로 간다.

  잠시 산보 나왔다고 생각하기에는 인생이 너무 길다.

  죄를 솎아내고 나면 우리에겐 아무것도 남는 게 없다.

  바흐는 이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던 거야.

  그래서 장엄하게 슬펐던 거야. (p. 41)

 

  이미 늙어버린 얼굴로 찬란한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간단 말이냐. (p.43)

 

 

 짧은 휴식의 시간이 끝났다.

 오늘도 마감을 앞두고 해야만 할 일들이 많구나.

 토요일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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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2-12-01 13:32   좋아요 0 | URL
님, 인용하신 문구 중 한 문장이 콕 들어오네요.
죄를 솎아내고나면 우리에겐 아무것도 남는 게 없다.
마감이라니 해야할 바쁜 일이 있나 봐요. 행복한 주말 보내며 마무리 잘 하시길요.^^
오늘이 12월의 첫날이라 왠지 느낌이 달라요.^^

appletreeje 2012-12-02 23:23   좋아요 0 | URL
또 주말밤이 저물었습니다.
오늘도 좋은 날이셨겠지요?~~
프레이야님의 응원 덕분에 마무리 잘 했답니다. 감사드려요~~
향기로운 밤 되십시요.
 

 

    가정식 백반

     -주역 시편.1

 

 

     나비에겐 골육이 없고 
     작약꽃에겐 위와 쓸개가 없다. 
     골육과 위와 쓸개를 가진 
     나는 새삼스럽게 깨닫는다. 
     나비에겐 나비의 하루가 있고 
     모란꽃에겐 모란꽃의 근심이 있을 테다. 

     눈 내린 이른 겨울 아침 
     소년과 소녀들은 
     아직 잠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햇살로 물든 금빛 침상에서 
     소년과 소녀들이 꾸는 꿈들 때문에 
     이토록 세상이 빛난다. 
     어른인 나는 어른의 눈으로 세계를 바라보며 
     초저녁 신성들을 풀지 못한 채 
     이렇게 마른 나무 등걸로 살아서는 
     안 된다고 후회를 씹어본다. 

     눈길을 걸어서 식당으로 가는 길, 
     가정식 백반을 파는 식당은 은하의 저쪽에 있다. 
     청양고추 하나를 된장에 푹, 찍어 먹는 
     눈보라 치는 이 아침, 
     가정식 백반 일인분을 먹는 
     내게는 가정식 백반의 근심과 기쁨들이 
     한꺼번에 몰려온다. 

 

                                        -장석주 시집, <오랫동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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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2-12-01 13:31   좋아요 0 | URL
아, 이 시집 표지느낌부터 참 좋아요.^^
담아갈게요.^^

appletreeje 2012-12-02 23:27   좋아요 0 | URL
저도 표지느낌부터 좋았던 시집이었어요~~^^
저녁미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목의 어느 식당의 유리코팅에 '가정식 백반'이라 적혀있는
글자를 보니 또 이 시가 생각났었지요. 지극히 사적인 느낌~~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나다니. 나야말로 불운하구나.!" 천만에. 그렇게 말할 것이 아니라 이렇게 말하라.
"나는 이런 일을 당했는 데도 고통을 겪지 않았고, 현재의 불운에도 망가지지 않고 미래의 고통도 두렵지가 않으니, 나야말로 행운아로구나!"
그런 일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지만 그런 일을 당하고도 고통을 겪지 않는 것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이것은 불운이 아니다. 오히려 이것을 용감하게 참고 견디는 것은 행운인 것이다." (본문 68~69쪽)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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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30 19: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12-01 00: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12-12-01 13:47   좋아요 0 | URL
"나는 이런 일을 당했는 데도 고통을 겪지 않았고, 현재의 불운에도 망가지지 않고 미래의 고통도 두렵지가 않으니, 나야말로 행운아로구나!"

이 문장 마음에 가져갈게요. 힘이 됩니다!! 고마워요^^

appletreeje 2012-12-02 23:32   좋아요 0 | URL
언제 읽어도 제게도 힘이 되고 무한한 긍정의 세계로 이끄는 귀절입니다~~
언제나 좋은 날 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