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일까? 마담Q가 드디어 8박9일의 미서부여행을 떠났다.

 

 오늘 아침에도 그녀의 문자에 건너가 팩에 든 김들을 다 꺼내버리고 전장김들로 넣어주었고, 짐바브웨 동전과 터키 동전과 일본 동전과 쿼터로 된 동전들 속에서 사용할 동전들을 골라 주고, 혹시 과식이나 소화불량에 대비해 알로에환도 넣어 주고, 블랙모자와 비행기에서 신을 슬리퍼를 챙겨주고, 커피와 호박고구마를 먹으며 그녀의 명랑쾌활한 여행을 빌며 차문까지 닫아주고 안녕,을 고하고 집으로 돌아오니 이상한 해방감에...마치 휴가를 낸 듯한 경쾌함과 자유까지 느끼며 훌훌 웃는다.

 

 왜? 왜??  참 스트레스를  암암리에 많이 받았나 보다, 그녀와의 친교.

 

 이상하게 인간관계에 인색한 자신임에도 마담Q와의 친교는 마치, '적과의 동침' 같다고나 할까.

 시도 때도 없는 호출에 귀찮고 짜증도 나지만  무리없이 응해주고(하지만 저녁 이후에는, 내 작업에 몰두한다.) 그녀의 이야기를 경청하며 때론 추임새도 날려주고, 단체문자도 대신 보내주고, 무엇인가 욕심내는 나의 것들도 아낌없이 내어주고 때론 유치원생보다 못한 그녀의 이기적이고 못된 본성에 대해 돌아서며 분노도 하고 경멸도 하지만..아..이상하게도..그럭저럭 잘 지내는 풍경이란. 희한한 일인 것이다. 이 현상은.

 

 그래도 아주 가끔씩 보여주는 천진난만함이랄까, 자신의 본능에 그렇게 충실하고 열정적인 사람을 처음 본 신기함이랄까, 경제적인 면으론 자신뿐 아니라 타인의 손실조차도 분노하는 투철한 경제관에 감탄해서일까,  무엇이든지 간에 자신에게 오는 것들은 200% 활용하는 발전성의 모습때문일까 아니면 아침마다 간이화단의 풀과 꽃들을 정성껏 잘 가꿔서 일까, 혹은 노래와 춤을 미치게 잘 추어서일까. 여하튼..이렇게.. 나와 정말 이상 야릇한 관계를 맺고 사는 나의 이웃, 마담Q

.

 그녀를 떠난 후에, 더 이상의 시간할애는 없을 것이다.

 

 어제부터 읽기 시작한 요 네스뵈의 '레오파드'를 다시 펼치며 해리 홀레의 매력속에 빠져야겠다. 왠지 '스노우맨'보단 긴장감이 떨어지는 듯은 하지만. 그리곤 플랜 린치의 '참행복의 비밀'과  앤소니 드 멜로신부의 '사랑으로 가는 길''(행복하기란 얼마나 쉬운가'가 더 좋았던 것 같고.)을 읽고  마스노 슌묘의 '스님의 청소법'도 읽어야 하며, 오후에 도착할 최진영의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과  정용준의 소설, 고은 선생님의 '마치 잔칫날처럼'을 읽어야 할 것이다.

 

 참, 원초적인 홀가분함이다. 마치 마감에 파일전송을 한 것처럼.

 

 그런데 왠지 그녀가 보고 싶을 것 같다~^^.  So l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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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어갈 곳


모두에게는
쉬어갈 곳이 필요합니다.
어느 한 시간, 푹 젖어 있는 마음을 말리거나
세상의 어지러운 속도를 잠시 꼭 잡아매 두기
위해서는 그래야 합니다. 하루를 정리하는
어느 시간의 모퉁이에서 잠시만이라도
앉아 있을 수 있다면 그곳은
천국이겠지요.
천국 별거 있나요.


- 이병률의《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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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25 10: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10-25 17: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김수환 추기경의 친전 -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 주세요
차동엽 지음 / 위즈앤비즈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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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오는데 칠십 년 걸렸다.` 하신 김수환 추기경님의 친전. 엄중한 존재의 사명 앞에 진지함과 진정성을 잃고, 검색은 있어도 사색은 없는 이 시대에 `가을편지`로 오신 추기경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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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탕 선녀님 그림책이 참 좋아 7
백희나 지음 / 책읽는곰 / 201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오늘같이 비가 추적추적내리고 기온이 뚝 떨어진 날엔, 문득 목욕탕엘 가고 싶다.

 

 내게 '목욕탕'이란 단어는 오래된 사진첩의 흑백사진과도 같다. 어린날의 추억같은.

 

 오전에 어디에서 백희나의 '장수탕 선녀님'책을 보내주었다. 상자를 여니 거기에는 아, 아주 으스스한 할머니가 요구르트를 황홀한 표정으로 빨고 있었다.

 

 '목욕합니다'란 빨간 입간판이 서 있는 어스름한 풍경속의 사진이 나오고  ' 우리 동네에는...아주아주 오래된 목욕탕이 있다.'란 말을 시작으로 이 그림책은 시작된다.

 

 큰 길가에 새로 생긴 스파에는 불가마도 있고, 얼음방도 있고 게임방도 있다는데 엄마는 덕지를 데리고 오늘도 장수탕으로 간다.

 그 곳에서 덕지는 가장 좋아하는 냉탕에 들어가 '풍덩풍덩' '어푸어푸' '꾸르륵' 신나게 노는데 어떤 이상한 할머니가 나타나 자기는 날개옷을 잃어버린 선녀라며 덕지랑 냉탕에서 함께 즐겁게 논다. 그리고 사람들이 먹고 있는 요구르트를 가리키며 저게 무엇이냐고 맛있게들 먹고 있구나, 묻자 덕지는 뜨거운 탕에 들어가 꾹 참고 때를 불리고 눈물이 나려는 걸 꾹꾹 참고 엄마에게 때를 밀고 드디어 엄마가 하나 사준 요구르트를 선녀할머니에게 드린다.

 목이 조금 말랐지만 참을 만했고 다음에 또 할머니랑 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집으로 온다.

 그런데 냉탕에서 놀았던 탓인지 콧물도 나고 머리도 지끈지끈 한밤중에 잠이 깨어 목구멍이 따끔따끔 온몸이 후끈후끈 너무 아파..하는데 그때 할머니가 나타나 "덕지야, 요구릉 고맙다. 얼른 나아라"하며 이마에 손을 대주시고 아 ...시원해 하며 잠든 덕지는 다음날 아침, 거짓말처럼 감기가 싹 나아서 "고마워요, 선녀할머니!" 하며 이 그림책은 끝난다.

 

 솔직히 말하면 짧은 이 내용에 클레이 점토로 만들어진 그림들도 예쁘진 않았다. 아 아기들을 위한 그림책이라 단순하구나, 하며 아주 짧은 시간에 후르륵 읽고 이 책 역시 지난번 '구름빵'이나 '달 샤베트'처럼 꼬맹이들이 있는 지인에게 보낼 생각이었다. 그런데 일을 하고 있는데도 자꾸 그 예쁘지도 않은 그림책의 장면들이 자꾸만 내 마음의 방에 들어와 살아 나더군. 그리곤 아주 어렸을때의 뿌연 김서린 목욕탕에 갔던 추억들이 몽실몽실 떠올라..그 아득하고도 따뜻했던 유년의 기억들로 마음이 단풍처럼 물들어 갔다.

 

 요즘 아이들은 아마 대부분이 이런 장수탕같은 목욕탕엔 잘 안 가봤을 것 같다. 우리집 아이들도 아파트에서 태어나 집의 욕실에서 샤워를 하고 사우나는 찜질방 갔을때나 가니 말이다.

 그리고 나도 대중탕을 좋아하지 않아서인지 어쩌다 아주 드물게나 사우나에 간다.

 언젠가 '어머니전'이란 프로그램을 다운받아 보니까  백희나의 어머니는 아이들을 목욕탕에 데리고 가면 세 딸을 한명 한명 때를 밀어 줄때마다 구연동화를 한 편씩 해주며 목욕을 시켰다는 말이 나온다. 그 때의 목욕탕에 대한 좋았던 추억이 남아서 이 '장수탕 선녀님'을 만들었다 하고.

 내게는 어렸을때 엄마나 집에서 가정교사겸 도우미를 했던 혜숙언니와 눈앞이 안보이게 김이 서리고 사람들 목소리가 붕붕 울렸던 목욕탕엘 가서 때를 밀고 목욕이 끝나면 벌꿀구론산인가도 먹고 딸기우유도 먹고, 어느땐가는 동대문운동장 옆에 사는 친구네 동네목욕탕엘 여럿이 갔는데. 지금도 믿지 못하겠는게 여럿이 갔으니 목욕비를 깎아 달라고 해서 그 돈으로 떡뽁이를 사 먹은 기억이 난다. 참 그때는 그런 어처구니 없는 아이들의 생떼를 들어 준 마음 좋은 주인도 있었나보다.

 

 아마 이 책은 어린이들도 좋아하겠지만 어른들도 더 좋아할 수 있는 그림책인 것 같다.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같이, 유년의 추억을 떠올리며 그 따뜻했던 기억을 되살려 보며 미소지을 수 있는 타임캡슐같은 정겨운 그림책이기 때문이다. 나도 목욕탕에 가서 뜨거운 물속에 몸을 푹 담그고 냉탕쪽을 바라보며 선녀 할머니가 어디 계신가, 몰래몰래 찾아 보고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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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22 17: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10-22 19: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해피북 2016-05-20 01:01   좋아요 0 | URL
ㅎㅎㅎ 이 책을 읽으셨대서 서둘러 검색해서 들어왔어요^^
어쩜 이렇게 비슷한 추억을 담고 계시던지요, 글을 읽으며 큭큭거리기도 했고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어요. 특히 다음 세대의 아이들은 목욕탕을 잘 모를거라는 생각 저도 했는데요. 훗날 아이가 저보고 `목욕탕이 뭐야`라고 물어서 가르쳐주면 `이런 야만인들!`이라고 하지 않을까 하는 상상도 했어요. 어떻게 옷을 홀딱 벗고 함께 씻을 수 있냐면서요 ㅎㅎㅎ 상상이 너무 지나쳤을까요 ㅎ 무튼 저두 애플님 덕분에 즐거운 상상을 더하는 밤이었습니다. 그럼 꿀밤되세용^~^

appletreeje 2016-05-20 08:56   좋아요 0 | URL
ㅎㅎㅎ 정말 이 책은 아주 오랫적의 추억을 아롱다롱 한방에 불러 오는
재미난 그림책이죠~ 요즘 아이들은 정말 상상도 못할~ㅋㅋ
해피북님의 리뷰 덕분에 어젯밤과 지금도 또 뭔가 추억 돋습니다.^^
올해는 , 장수탕 선녀님의 막냇 동생 뻘쯤 돼 보이는 선녀님이 <이상한 엄마>로
오셔서 요즘 아이들인 호호와의 하루를 따듯하게 보내다 쓩~가셨죵~~
백희나 님의 그림책들은 언제 봐도 참 좋아요~
해피북님, 오늘도 날씨가 무척 덥다 하네요.
시원한 아이스 커피 드시며, 즐겁고 좋은 하루 보내시길요~~~^-^
 
동대문운동장 - 아파하지 않는 사람들을 위하여
김은식 글, 박준수 사진 / 브레인스토어 / 2012년 10월
평점 :
절판


추억이나 기억은 현금이 되지 못한다. 그러나 현재의 시간은 과거가 있기 때문에 존재하리라. 동대문운동장의 상징성과 시대적 함의를 탐구하고, 단절된 기억의 상처를 치유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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