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히 저기 있는 것을 알고 있으나 가까이 가면 갈수록 멀어지는 세계에 살고 있는 고통"이라는 김현 선생의 일기의 한 귀절은 어젯밤에 꾼 악몽처럼 생생하다. 그렇지만 우리는 농담스럽게 이 세계를 통과하기를 바랐다. 농담은 우리의 허브였다.
물론 다른 방법도 있다. "서로 핏속의 염분이 비슷하다는" (<동지(冬至)> 당신을 향하여 시를 쓰는 방법이다. "나는 좋지 않은 세상에서/ 당신의 슬픔을 생각한다// 좋지 않은 세상에서/ 당신의 슬픔을 생각하는 것은// 땅이 집을 잃어가고/ 집이 사람을 잃어가는 일처럼/ 아득하"(<슬픔은 자랑이 될 수 있다>)지만 말이다. 이것은 농담으로 겨우 받아들일 수 있는 세계를 지탱하는 한 방법이다. (P.120 )
덧붙이는 글
이 글은 박준 시집을 해설하기 위해 쓰여진 글이 아니었다. 나는 다른 시인의 시들을 해설할 수 없다. 다만 읽고 느낄 수만 있다. 그의 시를 찬찬히 살필 눈 밝은 분들이 어디엔가 있을 것이다. 다만 나는 그의 시집을 열렬히 동반하며 그가 시를 쓰던 몇몇 순간을 호명했을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준아! 첫 시집, 축하한다. 얼마나 길은 멀까, 다음 시집이 나올 때까지는. 파울 첼란이 독일에서 첫번째 시집 <양귀비와 기억>을 내고 난 뒤 두번째 시집 <문지방에서 문지방으로>를 준비하면서 미래의 부인 지젤에게 보낸 편지 한 구절 인용하면서 이 글, 마친다.
"나는 많이 읽고 있어요, 언젠가 당신을 위하여 새 책을 쓰기 위하여. 저의 첫 시집이 독립된 삶을 살려고 하는 것보다 이것은 더 급한 일처럼 보입니다."(강조, 인용자)
결국, 우리의 시들은 어딘가에 있는 당신과 사물과 그것을 담고 점점 짧아져가는 세계 속에서 탄생하고 시인으로부터도 마침내 독립할 것이기 때문에.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로. (P.142 )
발문, -이번 생의 장례를 미리 지내며 시인은 시를 쓰네 허수경 (시인)-에서
내 몸의 피들이 나에게서 달아나려 할 때, 피톤치드 항균매트, 라는 글자가 쓰인 요의 수치를 2로 맞추고 그 긴급수혈된 온기를 깔고 또 한 권의 시집을 읽는다.
박 준의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옷보다 못이 많았다'를 읽으며 <김선우의 사물들>의 '못이 많았던 그때 그 집'을 조금 생각하고, '희망소비자가격'의 봉지에 '정(情)'이 적혀진 초코파이를 읽다가 어느 해인가 이 '정(情)'이 적힌 초코파이의 모형집 시리즈를 모아, 마을을 만들기 위해 아는 친구들마다 초코파이 한 상자씩을 얻어 그 모형만 빼낸 후 다시 남은 초코파이는 돌려 주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나에게 '시'란, 마을을 이루기 위한 '집'이 아닌가 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