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날 단장(斷章)

         2

        어두운 겨울날 얼음은
        그 얼음장의 두께만큼 나를 사랑하고
        그사랑은 오랫동안 나를 버려두었다.
        때로 누웠다가 일어나
        겨울저녁 하얀 입김을 날리며 문을 열 때면
        갑자기 내입김 속에 들어오는 조그만 얼굴
        얼굴을 가리는 조그만 두 손.
        나는 알겠다. 언제부터인가
        육체의 쓴맛이 머리칼을 곱게 빗고 흙내음을 맡으며
        얼마나 오랜 나날을 닫힌 문 속에 있었는가를.
        나는 여기 있다, 미친듯이 혼자 서서 웃으며
        내 여기 있다, 네 조그만 손등에 두 눈을 대고
        네 뒤에 내리는 설경(雪景)에
        외로울 만치 두근대는 손을 내민다.


                                    -황동규詩, 겨울날 단장(斷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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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선 자리에서 꽃을 피우세요 - 와타나베 가즈코 수녀의 힐링에세이!
와타나베 가즈코 지음, 홍성민 옮김 / 작은씨앗 / 2012년 11월
평점 :
품절


`꽃을 피운다는 것은 어쩔 수 없어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웃는 얼굴로 주위 사람도 행복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한 해를 보내며 눈 속에 핀 꽃처럼 작고 나직하지만 향기로운 뜻을 만나며, 기쁘고 평화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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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그인

 

                             윤성택

 

 

   로그인된 나무에 새순이 돋고

   아이디로 꾹꾹 입력된 꽃이 핀다

   그러므로 계절이라는 사이트에

   들어설 때부터 커뮤니티는 시작된다

 

   시간의 약관에 동의한 나는

   태어나 로그인된 방문자, 이리저리

                                         흔적을 남길때마다 기억이 스크랩된다

                                         누군가 잠시 나를 떠올리기라도 하면

                                         카운터가 올라간다

                                         간혹 내가 접속하고 싶은 사람,

                                         서로 언약한 적 없어도

                                         그의 패스워드를 이해해야 한다

                                         결정적으로 일치해야 다음 단계로 이동할 수 있다

 

                                         보는 이가 많아질 수록 꽃은

                                         절정의 트래픽을 갖는다 뿌리의 한계용량으로

                                         페이지를 표시할 수 없는 이파리가

                                         미끄러지듯 낙하한다

                                         변경이 필요한 오류는 바람이다

 

                                         로그인을 했다가 로그아웃하면

                                         육안으로 보이는 곳에서도 나는 없다

                                         내가 사실로 존재하는 것은

                                         경계에 접속한 순간뿐이다

                                         어디에도 있는 나를

                                         어디에도 없게 하는 로그아웃,

                                         나는 태연하게 다른 곳으로 로그인된다

 

                                                                  -윤성택 詩集, <리트머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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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2-12-11 10:03   좋아요 0 | URL
마지막 문장이 좋네요. 나는 태연하게 다른 곳으로 로그인된다. 로그인한다,라고 하지 않고 된다, 그것도 태연하게,라고 했으니..

appletreeje 2012-12-11 12:20   좋아요 0 | URL
시간의 약관에 동의한 나는
태어나 로그인된 방문자, 에서도 좀 마음이 기울었어요.
아마 2008년인가 읽었었는데 벌써 4년이 지났군요.
오늘도, 우리 태연하게 다른곳으로 로그인되고 있나요?
컨디션님, 좋은 날 되시기를~~^^
 

 

어느새 12월입니다.

엄청 추운 날입니다. 우리 손님들이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걱정이 되는 날씨입니다.

고마운 분들 덕분에 김장도 무사히 마쳤습니다. 특히 여성 감정평가사 모임에 감사드립니다. 김장비용을 도와주시고 또 그 추운 수요일에 김장을 거들어주시기까지 하셨습니다. 고맙습니다.

민들레의 집에 새 식구가 오셨습니다. 

세 살 때 어머니가 집을 나가시고 여섯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고아가 되었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 1학기를 다닌 것이 학교 생활의 전부입니다. 그래서 겨우 이름 석자를 씁니다. '확인용'이라는 글자가 너무 어려워 '학인용'이라고 썼습니다. 

남해안 어느 섬에서 머슴살이를 했습니다. 열세 살 때 처음으로 배를 탔습니다. 엄청 얻어맞았다고 합니다. 서른 즈음에 어떤 여자를 만나 동거를 했는데 돈 막 쓰다가 도망가버렸답니다. 카드 빚 막아주느라 죽을 고생을 했답니다. 그러다가 다리를 다쳤답니다. 아프니까 술을 마시고 그러면서 악순환이 되어 이제는 거의 고관절을 쓰지 못합니다. 엑스레이를 찍고 진단 결과 인공 고관절 수술을 해야만 다리를 움직일 수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민들레의 집으로 주소 이전을 하고 주민센터에 기초생활수급 신청을 했습니다. 며칠 동안 잠을 편히 자는 것이 제일 좋다고 합니다. 이제 기초생활수급권자가 되면 병원에서 수술할 수 있는 길을 찾아봐야겠습니다.

요즘은 베로니카와 함께 꿈을 꿉니다. 

고마운 분께서 인천 시청 근처에 있는 어느 빌라 반지하 방을 2년 무상으로 쓸 수 있도록 빌려주셨습니다. 방 두칸짜리 도시가스가 되는 아담한 방입니다. 이제 내일 모레쯤 벽지를 바르고 전기선과 전등을 교체하고 텔레비전과 냉장고, 세탁기 등 살림살이를 마련하면 세 분의 VIP 손님들께 선물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느 분을 초대하면 좋을까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작은 방에 한 분, 큰 방에 두 분이 오손도손 살 수 있게 해 드리면 참 좋겠습니다. 멋진 성탄 선물이 될 것입니다.

민들레의 집 식구들이 사는 집들 중에는 다섯 집이 석유 보일러를 씁니다. 아주 조금씩 기름을 넣어드렸습니다. 제발 아껴서 아껴서 쓰라고 당부를 했습니다.

천주교 인천교구 상3동 성당의 사회복지분과에서 민들레국수집에 옷을 보내주셨습니다. 덕분에 필리핀 빠야따스에 성탄절 선물을 보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이들 여름 옷이 많아서 3일이나 4일쯤 필리핀으로 화물을 보내면 성탄 전에 빠야따스 아이들에게 선물로 나눠줄 수 있을 것입니다. 고맙습니다.

민들레 가게에 두터운 겨울 잠바가 많이 필요합니다. 그 많던 옷들이 우리 손님들께로 갔습니다. 패딩잠바! 

민들레희망지원센터에서는 매일 오륙십 분의 우리 손님들이 책을 읽고 독후감 발표를 하십니다. 서울에서 오시는 분들은 전철에서도 책을 읽는 분들이 많습니다. 

멋집니다. 비록 노숙을 하면서 식사하러 인천에 오고 가기 위해 전철을 탔지만 책을 읽는 우리 손님들!   

12월 22일에는 우리 VIP 손님들을 위한 작은 음악회가 열립니다. 

부평 모짜르트 카페에서,

쥴리어드 출신이신 중앙대 음대 교수이신 분께서 동료 고수님들과 함께 멋진 클래식 성악을 선물해 주십니다.

맛있는 도시락과 간식 그리고 성탄 선물이 준비될 것입니다.

어르신들을 위한 민들레국수집을 곧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간단하게 리모델링 하고 식당 열 준비를 한 다음에 예행연습으로 운영하다가 2013년 4월 1일 만우절에 민들레국수집 10주년을 기념해서 정식으로 문을 열 예정입니다. 

 

                                        -민들레 국수집, 민들레소식, 12/1 겨울초입-에서 옮겨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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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폭풍우 치는 날에도 편히 잠자는 사나이 


        한 사내가 농장에서 
        일자리를 찾고 있었습니다. 
        그는 농장에 찾아가 새로운 주인에게 추천장을
        건넸어요. 거기에는 이렇게만 쓰여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폭풍우가 치는 날에도 잠을 잡니다." 
        농장 주인은 일손 구하는 일이 급했기 때문에 
        사내를 그 자리에서 고용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밤, 
        갑자기 사나운 폭풍우가 마을에 몰아쳤습니다.
        거센 비바람 소리에 깜짝 놀란 농장 주인은 
        침대에서 일어나 밖으로 뛰어나갔습니다. 
        그는 사내를 불렀지만, 사내는 깊이 잠들어 있어서 
        주인은 급히 외양간으로 달려갔습니다. 놀랍게도 
        가축들은 넉넉한 여물 옆에서 안전하게 자고 
        있었습니다. 그는 밀밭으로 뛰어나갔습니다. 
        밀 짚단들은 단단히 묶인 채 방수 천에 덮여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곡물 창고로 달려갔습니다.
        문들에는 빗장이 걸려 있었고, 곡물들은 비 한 방울 
        맞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제야 주인은 "이 사람은 
        폭풍우가 치는 날에도 잠을 잡니다."라는 
        말의 의미를 깨달았습니다. 


        - 미치 앨봄의《8년의 동행》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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