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바꾸는 매일의 안부 - 틀을 깨는 존재 가치에 대한 질문
윤준호 지음 / 북스고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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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사람을 사귈 때는 그 사람의 단점을 먼저 찾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장점을 바라보고, 그 장점을 인정해 주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는 이유도 그 사람이 특별히 대단하기보다 그 사람 안에 빛나고 있는 작은 빛 하나를 내가 먼저 발견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25-)



사람도, 만남도, 공동체도 마찬가지입니다. 진심과 성실함, 따듯함과 배려가 잇는 곳에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모이게 되어 있습니다.

저는 우리가 그런 도리 桃李의 자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27-)



공자 역시 벗을 가려 사귈 것을 강조했습니다. 정직한 사람, 산살한 사람, 견문이 넓은 사람과 함께하면 우리 삶에 유익한 벗이 되지만 아첨하는 사람, 겉으로만 부드러운 체하는 사람, 빈말을 일삼는 사람과 어울리면 결국 마음이 고되고 허탈해지는 관계가 된다고 이야기합니다. (-66-)



내가 머무는 자리가 내 마음을 더 단단하게 하는 곳인지, 아니면 조금씩 닳아 없어지는 곳인지 가만하 느껴 보시길 바랍니다. 조용히 더 좋은 자리로 향해 갈 때 그 용기 있는 선택이 당신의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78-)



'감사하다'라는 말에는 '있기 어려운 일이 내게 와 주었다'라는 뜻이 담겨 있다고 합니다.그래서 감사는 단순한 예의가 아니라, 매우 소중한 것에 대한 마음의 표현이라고 합니다. 주위에 좋은 사람들이 많다는 것. 그 사실은 인생에서 감사한 일 중 하나입니다. (-93-)



살면서 명심해야하는 단 한가지,좋은 인연을 만들고, 나쁜 인연과 멀리하는 것이다. 내 인생에서,사람은 가장 변하기 힘든 존재이며,습관을 바꾸거나, 성향과 기질을 바꾸는 것이 매우 힘들다. 하지만,가랑비에 옷젖듯 자신을 습관을 바꿔 나가면,조금씩 달라지는 모습이 생기고,자신의 운명이 좋은 흐름으로 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책 『삶을 바꾸는 매일의 안부』은 나보다 더 오랜 세월을 견뎌온 인생 선배가 쓴 지혜의 구루라고 말할 수 잇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선을 지키고,좋은 생각을 가지고, 경계를 잘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무엇보다도 내 주변에 어떤 사람이 있는지에 따라서,내 삶이 바뀔 수 있으며,그들의 삶을 보면서,자극받는다.무엇보다도 마흔 이후에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어떻게 살것이며,어떤 것을 비울 것인가 생각할 필요가 있다. 때로는 과감하게 나에게 해로운 인연을 끊는 것이 좋다. 가족도 여기에 포함한다. 미적거려서, 내 인생 전체를 흔들어버리는 것은 최악의 선택이 될 수 있다. 더 나아가,사람과 사람 사이에 예의를 갖추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바로 내 운명을 좋은 운명으로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타인이 나를 용서하기 전에 내가 타인을 용서하라고 한다. 용서에는 용기라 필요하고, 상처받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처음이 어렵지만, 자주 하다 보면 익숙해지며,그것이 자신에게 다사 돌아온다는 점이다. 살면서 사과하지 못하고 살아온 이들, 원망하고,불평불만이 일상적인 사람,신뢰를 잃어버린 이들이 다시 자신의 운명을 바꾸고, 더 나은 인생을 살아가며,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책 『삶을 바꾸는 매일의 안부』에서 얻을 수 있다.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하지만,그 실수를 어떻게 대하고,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는지에 따라서, 타인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질 수 있고, 내 주변에 사람이 모일 수 있고, 때로는 멀어질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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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아이돌 다산어린이문학
이송현 지음, 오삼이 그림 / 다산어린이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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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가을에 있을 예술중학교 입시를 준비하기 위해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무용 연습에만 몰두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알지도 못하는 할머니의 수발을 들라고 하다니! 엄마한테 몇 번이나 따졌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한결같았다.

"인생 길게 봐.앞으로 무용 계속하려면 필요한 게 얼마나 많은데, 이번 여름에 엄마가 꼭 승진해서 우리 다정이 확실하게 밀어줄게.," (-15-)



차해강은 식혜에 손도 대지 않은 나를 보더니 알아서 캔을 따주었다. 경쾌한 소리가 나며 뚜껑이 열렸다. 차해강이 내 손에 식혜를 쥐여주었다. 내가 한입도 대지 않고 식혜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자 차해강이 대신 마셨다. 숨도 쉬지 않고 달게 마시더니 날 보고 눈썹을 씰룩거리며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17-)



최고의 한국 무용수가 되는 길을 쉽지 않다., 남들이 먹는 대로 똑같이 먹으면 살이 찔 테고 , 그럼 손끝 발긑 놀림이 주요한 한국 무용에서 아름다운 동작을 만들어 내기가 불가능해질 것이다. (-35-)



"내가 스윗보이즈 때문에 한국에 왔잖아."

음료수를 계산하며 할머니는 편의점 사장님한테 냉장고에 붙어 있는 스윗보이즈 포스터를 줄 수 있냐고 물었다.어디서 왔냐는 사장님의 질문에 할머니가 대답했다.

"하와이."

내 손에서 그릭 요거트가 미그러졌다. (-39-)



청소년 소설 『할머니의 아이돌』은 여름방학을 맞이하여, 엄마가 다정이에게 부여한 미션, 하와이 할머니를 여름방학기간동안 수발을 들라는 미션이었다. 그 미션은 예술중하교 를 준비하는 다정이에게는 번거로운 일이었고,귀찮은 일이기도 하다. 왜 하필 엄마는 할일 많은 여름방학에 낯설고 어떤 사람인지 모르는 하와이 할머니를 왜 챙기라고 하는 것인지 의아하기만하다.



다정이 엄마의 의도는 다정이을 위해서였다.하와이 할머니는 한국에 온 이유가, 아이돌 덕후로서, 스윗보이즈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공연도 보고, 포스터,굿즈도 챙기고 있었다. 예순이지만, 무엇보다도 아이들을 좋아하고, 아이돌 문화에 빠지는 것은 10대 청소년 못지 않았다. 그러나 아이돌 덕후로서,여러가지 제약이 존재한다. 무엇보다도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의 공연 티켓을 구하기가 매우 힘들다는 점이다. 다정이는 바로 그런 것을 해결해주기 위해서, 엄마의 요구사항을 들어줄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아이돌을 좋아하는 하와이 할머니와, 한국 무용을 시작하고 있는 다정이의 모습, 서로 독특하고, 묘한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남들이 알지 못하는 숨겨진 사연도 존재한다. 다정이는 조금씩 하와이 할머니와 지내면서, 그것을 알게 된다. 다정이와 가까운 친구 차해강의 모슴 속에서,우리는 다정하지 않는 다정이의 모습과 다정한 모습으로 하와이 할머니를 대하는 차해강의 모습이 서로 비교가 되고 있었다. 사람마다 각자 살아온 경험이 다르며,그 경험에 따라서, 어떤 사람을 대하는 방식도 차이가 날 수 잇다. 효율성을 중시하는 사람도 있고, 사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잇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는 각자 판단할 문제이지, 하나는 맞고 하나는 틀리다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는 것을 소설 『할머니의 아이돌』 을 통해서,느끼고, 성찰하게 되었다. 다정이가 조금씩 진짜 예술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고, 조금식 성장하는 모습이 그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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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필사 - 별과 바람 그리고 나를 힐링하는 시간
윤동주 지음 / 북카라반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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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 윤동주는 1917년 12월30일, 독립운동의 성지 북간도 명동촌에서 윤영석과 김용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첫 아이를 잃고 ,8년 만에 태어났으며,윤동주의 어릴 적 이름 아호는 해환이었다.어려서, 부모님의 영향를 받아서, 기독교인으로서 세례를 받았던 윤동주의 시에서는 기독교적인 심상이 잘 드러나고 있었다. 1925년 명동소학교에 입학하였던 윤동주는 어려서부터 엉뚱하고, 마음이 여리고, 눈물 많고, 어진 소년이었다. 고종사촌 송몽규, 외사촌 김정우, 문성근의 아버지 문인환 목사와 함께 막역한 친구지간이었으며, 몽규는 용정의 은진 중학교에 입학하였으며, 그 당시 송몽규와 문인환 목사는 중학교에 입학한 이후에서 함께 지냈다.1935년 9월 숭실중학교에 편입하였고, 송몽규와 문익환은 서로 떨어져 지냈다.



윤동주 필사』에서는 ㄹ민족시인 윤동주늬 내면을 이해할 수 있다. 아주 온순하고 다정하였돈 윤동주는 고집이 있었고, 연희전문학교 문과대에 입학하였다. 조선어 강의와 역사를 배우면서,민족의식을 고취하였다. 그는 자신의 시를 통해서, 나라를 잃은 설움과 어두운 시절을 민족 저항시로 써왔으며, 일제는 1939년 민족말살정책으로 창씨개명을 시행하였다. 자신의 고통과 슬픔에 대해서, 마음을 시로 승화하였고, '별헤는 밤'이 탄생되었다. 추억과 쓸쓸함 동경에 대해서, 써왔으며, 첫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써왔으나, 주변 사람들의 반대로 , 첫 시집을 출간하지 못했다.한글을 쓸 수 없는 일제 시대의 암울한 시대적인 아픔을 읽을 수 있었으며, 1943년 7월 여름방학 때 일본 특고경찰이 갑자기 들이닥치면서, 조선의 독립과 민족운화 수호를 선동했다는 이유로 '조선독립운공선동죄'로 징역 2년형을 선고받았고, 1945년 2월16일 새벽 갑자기 세상을 떠나고 만다. 1945년 3월 7일 송몽규도 사망하였다.



1948년 1월, 후배 정병욱이 가지고 있었던 필사본과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던 윤동주의 31편의 시를 모아서, 윤동주 시후, 유고시집으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탄생되었다. 영원한 청년 시인 윤동주, 한글을 사랑한 소년, 언어가 말살될 수 있다는 생각에 여기저기 흩어진 한글로 쓰여진 것을 모으다가 후쿠오카 형무소에 갇혀 버린 윤동주는 1945년 광복을 앞두고 세상을 떠나고 만다. 그가 쓴 『서시』 는 저항시인 윤동주의 발자취가 있으며,살아서 한 점 부끄럼 없이 살겠다는 의지와 성찰 참회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겠다는 그의 강한 의지가 대한민국 민족의식 고취로 이어졌으며, 그가 세상을 떠난 지 80년이 지난 지금도 그를 기리고 함께 아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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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유 - 비움은 자유다, 새롭게 정리한 개정증보판
김세중 지음 / 스타북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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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할 때는 그 행복에 매달리지 말고,

불행할 때는 이를 피하려 하지 말라.

다만 그대로 받아들이며,

맑은 정신으로 자신의 삶을 지켜보라.

법정스님의 수행의 궁극적 지향을 '풍부한 소유'가 아닌' 풍성한 존재'에 두었다. (-8-)



우리는 필요에 의해 물건을 갖지만, 때로는 그 물건 때문에 마음이 쓰인다. 무엇인가를 갖는다는 것은 다른 무엇인가에 앍매인다는 뜻이다.많이 갖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많이 얽혀 있다는 말이다. (-10-)



우리는 숲속에서 고독하게 살고 있다.숲속에 나뒹구는 나뭇조각같이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우리를 부러워한다. 지옥에 떨어진 이들이 천상에 사는 이들을 부러워하듯. (-48-)



밥을 먹을 때 잘못 잡으면 손바닥을 상하듯이

수행자의 행실이 그릇되면 지옥으로 끌려 들어간다.화살을 바르게 잡으면 손바닥을 상하지 않듯이 수행자의 행실이 바르면 열반이 가까이 있다. (-63-)



연기를 보는 자는 법을 보고, 법을 보는 자는 연기를 본다.그리고 연기를 보는 자는 부처님을 본다. (-102-)



객기 부려 만용하지 말고, 허약하며 비겁하지 말며, 지혜롭게 중도의 길을 가라.이것이 지혜로운 이의 모습이다. 사나우면 남들이 꺼려하고, 나약하면 남이 업신여기나니, 사나움과 나약함을 버려 중도를 지켜라. (-104-)



항상 참회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 참회하는 마음은 모든 장엄 중에서 으뜸이 되나라.참회하는 마음은 쇠갈고리와 같아서 능히 인간의 잘못된 마음을 억제하나니,무든 선남선녀들은 항상 참회하는 마음을 잊지 말아야 하느니라. (-126-)



지혜로운 사람 없는 곳에 모임은 없고, 법 아닌 말을 하는 이는 지혜롭지 않네. 탐욕, 성냄, 어리석음을 모두 끊으면 그는 지혜로운 사람이니라. (-210-)



2010년 3월 11일 일적한 법정스님은, 자신이 창언한 길상사에서 열반에 들었다. 법정 스님은 자신의 사후에 책을 모두 절판하라고 지시하였고,그대로 따랐다. 그의 불교적 가치관은 무소유에 있으며, 필요한 것만큼만 쓰되, 채우려 하지 않는 것이었다. 성냄, 탐욕, 어리석음과 멀리함으로서,누구나 지혜로운 사람이 될 수 있을을 중생에게 전해주고 자신의 역할을 다하였다.1993년 성철 스님은 경남 합천 해인사에서 열반에 들었으며, 수행과 정진을 실천하였으며,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책 『무소유』은 두 사람이 우리에게 남기고자 하는 지혜로운 인생을 살아가는 법을 정리하였다. 무소유하되, 탐욕하지 않는 삶을 살아가는 것, 행복을 갈망하지 않고, 과거에 연연하지 않으며,오직 현재에 살아가는 삶이 지헤로운 삶이라 했다. 물질적인 소유가 커질 수록 ,그 물질에 얽매이게 된다. 비싼 명품 하나를 가지게 되면,그 명품에 얽매이게 되고, 어떤 직책이나 직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소유하지 않으면, 탐욕과 어리석음, 성냄에서 자유로워지게 되고,나의 감정조차도 소유하지 않게 된다.



불행한 삶과 행복한 삶은 종이 한장 차이에 불과하다. 내 앞에 놓여진 행복한 삶을 즐기되, 불행한 삶에 천착하지 않아야 한다.이 세상 모든 것은 생겨났다가 소멸되어 지므로, 인과관게에 따라서 언젠가는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성철스님은 정진에는 타협이 없다 하였다. 도를 얻기 위해서는 목숨을 걸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 말은 인간의 삶에서, 수행은 잠깐이 아닌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며, 스스로 거듭나야 함을 일깨워주고 있었다. 매순간 참선하며,자신의 행위를 되돌아 보되,그 과거에 대해서, 연연하지 않는 삶을 살아가야 행복한 삶이 깃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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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물결이 파도가 되어 - 김삼환 목사의 나누는 삶, 섬기는 사랑에 대하여
은파기념사업회 지음 / 현암사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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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김삼환 목사의 어린 시절, 그가 살았던 집은 첩첩 산중 두메 산골이었다. 자동차도 없고, 버스도 다니지 않았다. 사람들의 발자국만을 헤아리며 찾아가야 했던 , 자칫 잘못하면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벼룩길'이라는 길을 지나야 나오는 집이었다. (-17-)



그는 그렇게 신학교에 다니고 이후 1963년 고향 근 처의 작은 교회에서 목회를 시작했다. 그러나 송편을 버릴 때의 다짐과는 달리, 나눔의 목회를 마음껏 펼칠 수가 없었다. 그는 나누어줄 것이 아무것도 없는 가난뱅이 전도사였던 것이다. (-26-)



그 병원이 바로 성소병원이었다.지금 명성교회가 운영하고 있는 안동성소병원은 김삼환 목사가 피눈물을 흘리며, 첫 아이를 하나님께로 보냈던 바로 그곳이다. 차비도 없고 장례비용도 없어 차갑게 식은 작은 아이를 품에 안고 직접 산에 묻어주었던 그대, 슬피 우는 그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듯했다. (-28-)



MCM을 시작할 당시 에티오피아에는 의사가 약 4천명 밖에 없었다. 그 사이에 숫자가 많이 늘어 현재느 1만명 가까이 되지만, 에티오피아 인구가 약 1억명인것을 생각하면 인구 만 명당 의사 1명인 셈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의사가 인구 500명당 1명인 것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숫자였다. (-73-)



그리하여 1991년에 영광여자고등학교를 인수하게 되었다.가장 시급한 과제는 학생들이 더 나은 학습 환경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었다.아이들은 나무와 같아서 물만 잘 주면 알아서 쑥쑥 자란다. 마음 놓고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면 공부하라고 강요하지 않아도 잘 해낼 것이었다. (-109-)



안동성소병원은 경북 지역에 최초로 세워진 서양식 병원으로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인 작터 플레처가 사택 마당에 천막을 치고 교회와 진료소를 열면서 시작되었다. 처음으로 안동에 서양의술이 전래된 것이다. 천막을 처서 만든 임시진료소에 사람들이 구름 떼처럼 몰려들었다. 초대 병원장 플레처선교사와 2대 병원장 스미스 선교사 이후에도 수많은 선교사들의 노력이 있었다. 일제에 의해 병원이 강제 폐원되고 한국 전쟁 당시에 전물이 폭파되었음에도 안동성소병원은 다시 일어섰다. (-132-)



내가 사는 경북 영주에는 영광 재단이 잇다. 영광중학교, 영광여자중학교,영광고등학교,영광 여자고등학교,이렇게 네개의 교육기관이 영광재단 소속이었다. 이 학교들은 사립학교이며, 기독교 종교 교육이 학교 수업에 포함되어있으며,경상북도 영주에서,어느 정도 공부잘한다는 아이들이 입학하는 곳이다. 이 학교를 인수한 곳에 은파 김삼환 목사가 1980년 개척한 서울 명일동 명성교회다. 가난한 학교 재단의 어려움을 알고 있었던 김삼환 목사는 나눔과 섬김으로서, 가난한 이들을 모른척 할 수 없었던 것이다.그의 기독교적인 사랑이 곳곳에 스며들었다.



작은 물결이 파도가 되어』의 주인공은 명성교회를 개척한 김삼환 목사였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인구가 적은 경상북도 영양군의 두메 시골에서 태어났으며 ,자동차나,버스가 거의 들어오지 않는 곳이었다. 스스로 가넌한 삶과 어려운 가정환경 속에서,신학교를 다니게 되었고, 1980년 서울 명일동에서 명성교회를 개척하게 된다. 그의 사역 활동은 국내에 머무르지 않았다. MCM을 통해, 1억 인구 에티오피아에서,의료 사역을 진행하였다. 대한민국은 의사를 늘리기 위해서, 의과 대학을 확충하려는 추세이지만, 대한민국보다 의료 인프라가 부족한 에티오피아에는 의사 1명단 1만명의 에티오피아 인들을 치료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한국의 탁월한 의료 인프라를 해외에 사랑과 나눔으로, 함께하기 시작하였으며, 에티오피아인들이 조금 더 나은 의료 혜택을 누리도록 힘써왔다.자신의 어린 시절의 고난과 고통과 상처가 목회자의 길을 걸어옴에 있어서, 나와 비슷한 처지에 놓여지거나, 자신보다 어려운 이들을 가벼이 여기지 않았으며, 섬김과 사랑으로 그들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학고 있었다. 김삼환 목사는 1980년부터 2015년까지 담임목사로 활동하다가,이제는 우리 사회의 가장 소외된 사람을을 찾아가서 돕는 일읋 지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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