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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왼발 - 여섯 작가의 인생 분투기
김미옥 외 지음 / 파람북 / 2025년 4월
평점 :

대개 우리가 겪는 아픔과 좌절은 굳이 실패라고 이름하지 않아도 될 일들이다. 한 때의 실수이거나 기대에 미치지 못했던 경험일 뿐이다. 또 실패를 경험했다고 한들 실패자라고 할 수도 없다. 최소한 스스로 그렇게 낙인하지는 말자. (-7-)
나는 남자가 필요없는 삶을 살고 싶었다.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는 경제적 독립이 나의 꿈이었다. 언니는 빈둥거리는 남자와 자식들을 먹여 살렸다. 내가 19살 때 그녀는 행당동 좁은 골목길에서 문방구를 하고 있었다. (-37-)
15년이 흐른 어느 날 발톱을 깎으려고 깔아놓은 잡지 속에서 네가 화가가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너랑 헤어진 뒤 처음 5년은 그립다가 10년이 지나자 덤덤해졌다. 죽은 형제도 , 떠난 너도,죽은 아이도 시간이 흐르자 희미햐졌다.나는 잡지 속의 너를 보고도 놀라지 않았다.
한 집에 살았던 우리의 기억이 아득해졌다.
네가 죽으면 내가 슬플까.
내가 죽으면 네가 슬플까.
아니지, 우리는 서로의 죽음조차 모를 것이다. (-73-)
나는 웃었다. 그리고 기뻤다. 세상이 나를 알아준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라,'가장 그림을 못 그리는 작가'라는 명명이 마치 내 정체성을 정확히 짚어낸 것 같아서였다. 그때부터 '오른손잡이지만 왼손으로 그릴 거야' 프로젝트는 마치 고래가 바다에서 춤을 추는 것처럼 신이 났다.
왼손으로 그린다는 불편함은 오히려 내게 가장 편안한 마음을 안겨주었다. (-113-)
나의 시적 엔진에 결정적으로 시동을 걸어주신 두 분의 선생님을 추억하는 한여름 밤이다. 두 분 덕분에 나의 가슴에 탑재된 시적 엔진을 가동시켜 그간 수많은 별들을 돌고 돌아 지금의 성간 공간에 이르렀다. (-134-)
엄마 말 잘 듣고 살아온 내 인생이 성공했느냐 하면 그건 아니다. 나는 엄마 말을 들으려고만 했지 제대로 들은 적이 없다 . 울부짖는 엄마의 등 뒤에서 고작 열 두 살짜리가 다짐했다고 해서 그대로 지켜졌다면 무엇이 문제였겠는가/ (-179-)
자취방이라는 공간에서 나의 세계를 다지는 동안, 나는 표정이 없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내성적이지만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고, 맥주를 앞 두고 이야기를 나누길 즐겼던 내가 철저히 혼자가 되기로 한 것이다. 사람들을 만나질 않고 수업과 과제에 매달렸더니 과 수석을 했다. 등록금의 반을 장학금으로 받았고 아버지는 처음으로 칭찬하셨다. (-212-)
책 제목 나의 왼발은 1989년 나온 짐 쉐리단 의 '나의 왼발' 영화제목과 똑같다. 우리에게 왼발이 어떤 의미르 상징하고 있는지 엿볼 수 있으며, 고통과 좌절, 아픔과 상흔을 뜻하고 있었다.여섯 작가가 쓴 이 책은 나름 자신의 인생에서 마이너적인 요소들을 언급하고 있었으며,희망과 꿈,응원과 지지를 얻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연결하고 있다.특히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살아온 우리의 삶 속에서,내가 선택할 수 없는 것은 여전히 존재한다. 부모와 자녀, 환경과 성격,기질 ,이러한 요소들이 내 인생을 지배하고 있었으며,결국 스스로 아픔이 될 수가 있다. 책에는 내가 놓치고 있었던 요소들로 채워지고 있다.차라리 살지 않는 게 더 나았을 수도 있다. 무존재감, 무표정,무감각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슬픈 일이기도 하다. 때로는 그렇게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부모와 나의 갈등, 서로 다르게 받아들여지는 가장 큰 갭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결정화는데 판단의 기준이 될 수 있었다. 누구를 위해 살아가는 것이 아닌, 누군가를 의식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닌, 마이너 인생이라 할지언정, 스스로 내 인생을 개척하며 살아간다면, 지금보다 더 나은 인생을 살아갈 것이며,아파 하지 않고, 슬퍼하지 않으며,스스로를 자기 비난하지 않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 결국 나의 의지에 달려있다. 나의 왼발은 날씨의 변화를 감지하는 센서다.그 센서가 때로는 고통이 될 수 있고,나의 꿈과 의지를 꺾어 놓는 경우도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주진 인생에 대해서, 스스로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개척해 나가야 한다는 것을 잊지 않게 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