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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척의 기원 - 나주 여성농민 생애사
최현숙 지음 / 글항아리 / 2021년 1월
평점 :


그으으 학교 갈 욕심 그거 하나로 하침에 새벽같이 인나가지고, 그거 두부 이어다가 동강 장에다 갖다두고, 엄마가 이제 다 못 이고 가니까,그러면은 내가 먼저 여다 갖다두고 , 엄마는 나 먼저 보내고 좀 있다 자기 두부 이고 나오고, 그때 엄마는 이제 아버지 몰래 내 가방도 가지고 나오는 거지. 장으로도 가져오고 , 어떤 대는 학교 앞으로도 가져오고, 아부지한테는 나 자에 갔다고 하고 .그럼 나는 책가방 받아서 아부지 몰래 학교 가고. 내가 학교 간 거를 아버지가 알기만 알면, 이제 엄마하고 아버지하고 쌈을 대판하고, 학교 보냈다고....(-15-)
집에 가서 할 일을 찾으니까,이제 버섯을 하면서 시골에서 살면 되겠더라고요. 친구가 버섯을 한디, 짭쩝이 있는 시간 내서 3일 동안 가서 배와가지고 버섯을, 무조건 새송이버섯을, 한 동에 한 4000만 원정도 되는데, 그걸 두 동을 무조건 지었어요. (-66-)
전여농 가니까 당 문제로 또 한바탕 난리가 나더라고요. 근디 인제 통합진보당은 그렇게 해산이 됐고. 다시 민중당으로 당을 만들려고 하는디, 전여농이 그 민중총궐기 해서 같이 하자 이게 또 단합이 된 거예요. 그럴려면 우리 전여농이 거기를 들어가야 돼요. 그냥 나는 ,인제 모든 면에서 들어가야 돼요. 내 입장으로도, 민중 총궐기 단합으로, 나중에야 민중당으로 정해졌지만 ,인제 진보적으로 다듬어가야 된다고 해서, 그때는 다 들어가야 한다, (-113-)
동네서 내가 한동안 소고기 한 근 있으면 반 틈을 꼬옥 챙겨주고 하건 친구가 있었어요. 그 친구는 내가 어디 가자 하면 한 번도 노를 안했어요. 오밤중에도 나오고, 그래서 내가 진짜 귀하게 알고 모든 걸 다 열고 주고 했지. 근디 어느 날 그 친구가, 내가 남자들하고 버스 기사들하고 놀았다고 소문을 쫘악 내분 거예요. (-173-)
맞아요. 교련 다했지요. 고등학교 때 내내 했어요. 여학생들은 붕대 싸는 거 배우고 행진도 하고 , 교련 선생님이 엄청 무서웠어요.나는 이름도 안 잊어버려. 박송자 선생님이라고 키는 쪼그만해가꼬 눈은 부리부리하고 소리 지르면 막, 너무 무서웠어요. 키 작은 애는 뒤에 서고 큰 애가 앞에 서고, 저는 워낙에 반듯하게 커서 교련 그런 것도 잘했어. (-231-)
허리 수술을 네 번을 했어요. 이틀에 걸쳐서 .원래는 한 번으로 끝낼 생각이었죠. 근데 이틀 연달아 네 번이나 수술을 하게 돼버린 거예요. 내 보기에 그 병원에서 뭘 가볍게 여겼냐면,내 혈압을 너무 쉽게 생각한 거야. 당시 부여에서 세신하면서 하도 허리가 아프니까, 누구 소개로 함평에 있는 한의원으로 침을 맞으러 다녔어요. 침도 맞고 약도 지어 먹고 그런 거지. (-269-)
근디다 농사짓고 살림만 하는 게 아니라 여성농민회나 부녀회 활동도 하고 직책도 맡은 데다 남편을 이장으로 세워 동네 일을 나름대로 열심히 해나가다보면 , 보람도 많지만 여차하면 남들 말이나 사람 관계에 휘둘리게 되더라구요. 특히 농촌 여자로서는 좀 고학력이다보니 더 조심스럽지요. 나름 내 판단도 있고 활동하면서 이견도 있고 한데 그걸 말했다가는 견제도 들어오고 뒷말도 나고 오해도 받고 하더라고요. (-328-)
유투브와 페이스북을 통해서,구술생애사에 관심을 가지다가 알게 된, 최현숙 작가였다. 최현숙 작가는 구술생애사 작가이며, 『작별 일기』, 『할매의 탄생』, 『할배의 탄생』, 『막다른 골목이다 싶으면 다시 가느다란 길이 나왔어』, 『천당허고 지옥이 그만큼 칭하가 날라나』, 『삶을 똑바로 마주하고』, 등의 저서를 출간하였다. 천주교로 인해 사회 노조을 시작하였으며, 민주노동당 여성위원장 , 성소수자위원회위원장을 지낸 이력이 있다.
구술 생애사 『억척의 기원』에는 두 명의 여성이 나온다. 한 사람의 과거를 보고 싶다면, 그 사람의손과 발을 보라고 했다. 살면서 부딪치는 수많은 시간과 견디면서 살아온 인생이 손과 발에 묻어나 있다. 손이 거칠면 그 사람의 인생은 거칠었고, 손이 고으면, 그 사람의 인생도 고운 인생을 살아가는게 보편적이다.
전라남도 나주 동감면에 살고 있는 1959년생, 장녀 김순애씨와 1960년 생 나주 금천명에 살고 있는 정금순씨다, 가난한 삶, 억척스럽고, 고단하고,골병드는 게 다반사인 농사일을 도맡아 하고 있는 두 사람의 인생을 구술과 채록으로 적어 가다 보면, 구술생애사 작업을 통해 한사람의 인생과 마주하고,그 사람의 가치관,신념, 삶의 궤적을 마주할 수 있다. 녹취와 채록을 통해서, 만들어진 인터뷰 형식의 대화에는 질문에 있어서,한계는 없었다. 전여농 출신 김순애씨는 나즈에서 버섯 농사를 짓고 있으며,무학이지만, 전농 출신으로 자신의 인생에 대해 자신감을 피력하고 있었다.
한편 정금순씨는 막내이지만 눈치보지 않고 학교를 무사히 다닐 수 있었고,고등학교까지 학교를 나온, 여성으로서는 고학력에 속한다. 하지만, 결혼 후,남편의 외도로 인해 큰 상처를 입게 된다.목욕탕에서, 세신사로 일한다는 것은 해를 보지 못하는 습한 곳에서 막노동을 하는 것과 진배 없었다. 허리가 아파서, 허리 수술을 받았지만, 이틀 동안 연이어 4번의 수술을 받은 몸의 흔적을 담담하게 쓰고 있었으며,보호자 없이 ,누구하나 의지할 수 없는 병원에서, 의료과실을 마주하게 된다.세며이 한 조를 이루었던 세신가, 누구보다 열심히 일을 하였지만, 버는 돈을 N분의 1로 똑같이 나눈다는 것에 대해서 ,불공평하다고 생각한다. 버는 것에 비례해서, 받아가야 한다는 게 그녀의 구술 채록에 쓰여진다.
처음에는 구술생애사라는 주제를 가지고 있어서 읽게 된 책이다. 우리 삶에서,여성의 삶은 제약이 많다. 학교에 다니고 싶어도, 여자가 배워서 어디다 쓸 거냐는 뿌리깊은 사회적 편견이 1960년대~1970년대에 만연했다.무학이면서, 까막눈 신세였으며, 아버지 몰래 학교를 다니는 김순애 씨의 배움에 대한 갈망을 구술과 채록을 통해 읽을 수 있다. 정금순씨는 막내로 태어났으며, 오빠 중에는 의학대학교를 나온 이가 있었다. 고등학교를 무사히 졸업할 수 있었던 것은 가정 환경 덕분이다.하지만 결혼하고 곧바로 이혼하였고, 직업을 전전하다가 , 세신사로서 일하게 된다. 청각장애를 가진 남자와 제혼을 하게 되었고, 농사를 지으며, 성질이 불같은 남안편과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구술 채록을 통해서,인터뷰 안에 드러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