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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엔 누룽지나 오차즈케로 - 삶의 중요한 순간마다 함께했던 혀끝의 기억
후카자와 우시오 지음, 김현숙 옮김 / 공명 / 2025년 5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반면 재일동포 2세인 어머니는 전후 잠시 민족학교에 다니긴 했지만, 그 후 전학 간 일본 학교에서 수많은 차별을 받았던 경험들과 아버지 가 관동 대지진 당시 자경단에게 거의 죽을 뻔했던 경험 때문에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최대한 숨기며 살아왔다. (-21-)
한국 체류 중에 상짱 아재가 인두암으로 사망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나는 아버지께 청해 다시 한 번 다방으로 갔다. 우리 외에는 다리 손님도 없는 조용한 다방에서 아버지와 마주보고 조용히 인스턴트커피를 마셨다.
이런 맛이었던가! 이번에는 그다지 맛이 없었다. 나는 생크림이 가득 올라간 코코아와 제빙기의 얼음을 아련하게 떠올렸다. (-42-)
언니가 죽은 것은 1975년 7월 21일의 일이었다. 장례식을 끝내고 유골이 된 언니가 집으로 돌아왔다.
그 즈음 우리 집은 도쿄도 시나가와구 하타노다이의 단독주택에서 임대로 산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64-)
일본에서 더 이상 민주화운동을 못 하게 되었다고는 해도 김대중 씨를 지원했던 아버지는 그 이후로도 늘 감시당하고 있었다. 박정희 정권의 시절 KCIA 에 이어 전두환 정권의 안전기획부 사람들이 한국대사관의 공사 또는 영사관의 영사라는 신분으로 재일 한국인의 행동을 감시하고 있었다. (-120-)
2023년 , 한국 서울에 갔을 때는 이전보다 공정무역 커피나 초콜릿이 눈에 많이 띄었다. 세련된 카페나 초콜릿 숍이 공정무역 상품을 취급하고 있다는 것은 선진 의식이 패션이나 트렌드에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아주 바람직하다. (-193-)
이런 생각과는 달리, 지금껏 밝혀 왔듯 내 연애가 결혼으로 연결되는 일은 없었다.
그래서 결국은 '나도 재일코리안 사회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가' 하며 체념을 하고 선을 보기로 했다. (-238-)
기분좋게 남은 포테이토를 먹으며 레모네이드를 홀짝거렸더니 옆 테라스석의 여성들이 이제야 눈에들어왔다.비슷한 나이대라는 것을 깨닫고 시선 끝으로 관찰하기 시작했다. 바질 치킨이 들어간 샌드위치와 포테이토를 안주로 해서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291-)
우카자와 우시오씨는 1966녀 도쿄에서 태어났으며, 일본에서 가장 주목 받는 재일교포 소설가다. 2012년 소설 <가나에 아줌마> 로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R-18문학상' 대상을 수상했다.
그녀는 재일 한국인,재일코리아인 임에도 일본에서 살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꽁꽁 숨겨왔다. 90대가 된 아버지와 외할아버지가 일본에서 겪었던 끔찍한 자경단 사건 때문이다.1923년 일본 관동 대지진 당시 일본은 재일 한국인을 색출하여, 학살을 자행한 바 있다. 이런 아픈 기억이 대를 이어서, 우카자와 우시오씨의 삶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책 『마지막엔 누룽지나 오차즈케로』은 그녀의 음식 에세이다. 한국의 음식에 대한 맛을 기억하고 있으며, 어릴 적 먹엇던 김치를 잊지 않고 있다.일본에 기거하고 있지만, 틈틈히 한국에 다녀옴으로서,서울의 변화, 부산의 변화를 눈으로 보고 , 느끼고,경험하였다.치킨에 대해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있다.
그녀의 눈에 비친 한국은 일본에 비해 변화가 매우 빠른 편이다. 생겨났다가 사라지는 게 다반사였고,물가가 비싼 일본보다 더 비싼 것도 존재했다.이런 상황을 그녀는 이 에세이집에 담아놓았으며, 1970년데 언니의 죽음은 저자의 인생관에 영향을 끼치고 만다. 엄격한 부모 밑에 자라면서, 족쇄 아닌 족쇄를 경험하며 살아왔다. 탈출하고 싶은 마음도 존재햇으며, 그 당시 20대가 되면, 결혼을 꼭해야 하는 상황에 내몰렸다. 다행이 중매로, 서른이 안된 나이에 결혼하였고, 지금껏 재일 한국인으로 살아오고 있다. 그녀의 소설 작품 곳곳에는 재일한국인의 정서가 반영되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