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차라투스트라의 말 - 위버멘쉬 위의 위버멘쉬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계토피아 편역 / 팬덤북스 / 2025년 11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이 책은 해설서가 아니라, 지금 나에게 말하는 위로와 깨달음의 말을 전한다.
나는 20대에 니체를 만났고, 50대에 차라투스트라를 다시 만났다.30년의 간격에서 난 차라투스트라가 내 삶의 언저리에 있음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혼자 밤의 고독을 보내면서, 차라투스트라의 말을 다시 곱씹어본다. (-13-)
그들은 외쳤다.
"아, 차라투스트라여! 우리에게 그 말종 인간을 주시오,우리를 그 말종 인간으로 만들어주시오!그러면 그대에게 초인을 선사하겠노라!"
그러면서 모든 사람들은 환호성을 지르고 혀를 찼다. (-41-)
그렇다면 차라투스트라가 말하느 무거운 짐은 무엇일까?
자신의 오만에 고통을 주기 위해서 자신을 의도적으로 낮추는 것, 혹은 자신의 지혜를 조롱하려고 자신의 어리석음을 드러내는 것, 혹은 자신의 일의 성공을 축하하면서 그것에서 물러나는 것, 유혹하는 자를 유혹하려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는 것, 아니면 병석에 누워 있으면서도 병문안 오는 자들을 돌려보내는 것, 그대가 들려주려고 하는 것을 결코 듣지 않는 귀머거리와 우정을 맺는 것, 우리를 경멸하는 자들을 사랑하는 것, 신이라는 유령에게 손을 내미는 것....(-62-)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한다.
"많은 덕을 가진다는 것은 멋진 일이기는 하지만 고통스러운 운명이 따르기도 한다...그러나 이러한 악연은 필연이며,그대의 여러 덕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질투와 불신과 비방을 결코 피할 수 없는 것이다.그러기에 맞서 싸워야 한다."(-83-)
차라투스트라는 죽음의 장사치 같은 그들을 , 영혼의 결핵환자 같은 그들을, 피로와 체념 밖에 가르칠 줄 모르는 그들을, 세치 혀로 설교 밖에 하지 못하는 그들을, 제대로 인간이 되지 않는 그들을 경계할 것을 주문한다. 그러고 차라투스트라는 그들에게 스스로 삶의 포기를 설교하고 스스로 떠날 것을 경고한다. (-90-)
위버멘쉬, 차라투스트라, 초인에 대해서, 우리에게 위로와 깨달음을 얻고자 한다. 니체는 1844년에 태어나, 1900년에 사망하였다.. 목회자의 길을 포기하고, 스스로 깨달음을 옫고자 하였다. 그가 살아온 삶은 100년이 훨씬 지난 지금 우리 삶의 새로운 이정표가 되고 있으며,새로운 가치를 얻고자하였다.''
우리 삶에 필연적으로 따르는 시련과 고통 앞에서,인간은 자신의 나약함을 노출하게 된다. 어떨때는 사나운 사자처럼 살아가면서, 어느 순간 추위에 덜덜 떠는 가련한 고양이 처지로 돌변하고 있다.이런 인간의 나약함에 대해서,니체는 깊은 깨달음과 울림을 주고 있다.그 나약함이먀말로, 스스로 고독한 나 자신과 마주할 기회이며, 새로운 인생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의 철학적 가치관은 100년이 지난 지금 우리 삶에 있어서, 지혜와 진리를 얻을 수 있다.
우리에겐 각자 무거운 짐을 안고 살아간다. 황량한 들판과 사막위를 뚜벅 뚜벅 걸어가야 하는 낙타의 상황이 되었다. 인간에게 낙타로 살아간다는 것은 큰 고통의 본질이다, 그 상황에 우리는 어떻게 일어서야 하는지 느낄 수 있다. 니체의 철학을 20대에 마주하였던 저자는 50대가 되어서,그의 철학에 가까워질 수 있었다.위로와 깨달음을 얻는 그 순간이 왔다. 이해되지 않느 순간,그 이해가 니체를 통해 얻을 수 있었다.많은 덕을 가진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가혹한 시련이 따른다.
스스로 무너지지 않는 삶, 내 인생에 덕을 우선하는 삶을 살아간다면,그야말로 시련의 가시밭길을 걸어가게 된다.그 순간이 내 앞에 찾아온다 하여도, 무너지지 않고, 포기하지 않으며, 나다운 인생을 살아간다면, 자기 스스로 빛나는 존재가 될 것이다. 우리 삶 뿐만 아니라, 내 주변의 사람들을 돌보는 힘이 되고 있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과,나를 마음껏 경멸하는 자들 , 그들을 이해하고, 뚜벅뚜벅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이유를 니체의 철학에서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