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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시선 - 역사학자 전우용의 시대 논설
전우용 지음 / 삼인 / 2025년 3월
평점 :

백남준이 TV 수상기를 샤먼의 몸으로 해석한건 탁견이었다.이 물건은 실제로 현대의 샤먼 역할을 톡톡히 수행했다. 대중은 TV 수상기를 통해 흘러나온 개그맨들의 우스꽝스러운 말을 마치 방언이나 주문처럼 암송했고, 가수들의 노래와 춤을 따라 했다. TV수상기가 보여주는 영상과 드려주는 말들은 선지자의 예언과 같은 권위를 지녔다. 대중의 논쟁은 종종 "TV에서 봤다" 나 "TV뉴스에 나왔다" 라는 말로 종결되곤 한다. (-57-)
1894년 갑오개혁 때에도 주한일본공사관은 개혁 주도 세력을 친일파로 분류했다. 그러나 일본의 왕후 시해와 내정간섭에 반대해 곳곳에서 의병이 봉기했음에도, 이 무렵까지 한국인들은 '친일파' 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다.임진왜란에 대한 기억을 잊지 않은 한국인들에게, 게다가 일본을 오랑캐, 왜구로 인식하면서 문화적 우월감을 간직해 왔던 한국인들에게, 일본을 '부모처럼 심기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69-)
임진왜란 5주갑이던 1892년 ,고종은 임진왜란 당시의 국왕 선조의 존호를 추가했고, 이듬해에는 선조의 환도 5주갑을 기념하는 의식을 치렀다. 이때는 개항 이후여서 일본 상인들이 국내에 많이 들어와 있었는데, 민간에서는 그들에 대한 여러 형태의 공격이 끊이지 않았다. 일본 외교관들은 조선인들이 중국인보다 일본인을 훨씬 싫어한다고 불평을 늘어놓았다. (-75-)
이듬해인 2012년의 '임진왜란 7주갑' 행사는 그 이태 전 설립된 사단법인 '임진란정신문화선양사업회'가 안도에서 개최했지만,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주갑'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된 세태 변화도 작용했겠으나 일본의 식민 통치를 정당화하고 친일 반민족행위르 옹호하는 한국인들의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한 것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77-)
대한민국이라는 국호에 반대하는 주장들이 다 나름대로 일리가 있었으나, 제헌국회는 굽히지 않았다. 다른 정치적 고려들도 있었지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광복'의 역사적 의미를 인식하는 문제였다. 독립을 연합국이 승리한 덕에 거져 얻는 것으로 생각한다면,그 독립을 이루기 위해 혹독한 시련을 겪다 돌아간 선열들의 희생은 무의미한 것이 되고 만다. (-92-)
굳이 해외에 나가지 않아도 오늘날 아낌없이 헌금하고 합당한 은총을 받아 더 나은 인간이 된 듯한 느낌을 받게 해주는 곳은 어디에나 있다.옛날 신전이 수행했던 역할을 현대에는 '욕망의 소비공간'들이 수행하고 있는데, 이 신전들에 모신 신이 세칭 '지름신'이다.에밀 졸라의 예언은 한 세기쯤 지나 국민의이 대다수가 절대빈곤에서 벗어난 나라들에게 예외 없이 실현됐다. (-121-)
'인도' 란, 휴머니타리아니즘(Humanitarianism)의 반역어인 인도주의를 줄인 말이다.역사상 크게 보아 세 차례의 인도주의 고조기가 있었다. 첫번째는 그리스 로마 시대, 두 번째는 르네상스 시대, 세번째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의 시대다. 앞 두 시대의 인도주의가 신에게 속박되어 있던 인간의 자립을 지향한 반면, 세번재 인도주의는 그와 정반대 방향, 동물적 삶을 극복한 인간을 전망했다. (-131-)
1919년 기미독립선언서는 사회진화론이 퇴조하고 인도주의가 부상하는 상황을 '인류적 양심의 발로에 기인한 세계 개조의 대기운'으로 규정하고'위력의 시대가 가고 도의의 시대가 오도다'라고 선언했다. 부자와 빈자, 강자와 약자가 모두'공존동생권'을 갖는 것이 3.1 운동이 주창한 '인도'이며, 이 인도에 부합하는 것이 '정의'였다. (-132-)
1934년께부터는 '빨갱이'라는 단어가 생겨 사상법과 동의어로 쓰이기 시작했다/인색한 사람을 뜻하는 '노랭이'에 이어 사람의 성향을 색깔로 표현한 두 번째 단어였다. 둘의 공통점은 당사자의 의사와 무관하게 불리는 이름이라는 점 뿐이었다. 노랭이는 처벌 대상이 아니었으나, 빨갱이는 중세의 '대역죄인'과 똑같은 취급을 받았다. 중세의 대역죄가 의심받는 것만으로 죄였듯이, 근대의 빨갱이고 의심받는 것만으로 죄였다. (-142-)
1923년 도쿄 일대에 대지진이 일어났을 대, 그들의 눈에 이 불만과 불안감을 분출할 대상이 보였다.바로 조선인들이었다. 그들에게 조선인은 자기들의 '우리'안에 들지 못한 열등한 타자였고, 사상이 의심스러운 데다가 자기 일자리까지 위협하는 자였다. '맘씨 좋고 친절한' 이웃집 아저씨를 한순간에 미쳐 날뒤는 살인마로 만든 것은"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탔다" 따위의 헛소문만이 아니었다. (-168-)
1910년, 한국을 강점한 일본이 처음 한국인즐에게 요구한 정신적 가치는 총량, 온순, 착실 등이었다. 그들에게 지조와 기개를 갖춘 사람은 성가신'불령선인'이었다. 그들에게는 한국인의 '실력양성'도 못마땅한 일이었다. (-187-)
첫째, 하인은 군식구다. 주인이 몸소 일하면 될 걸 굳이 군시구를 둬 식비와 주거비를 낭비하는 건 어리석은 짓이다.
둘째, 하인은 주인의 물건을 아끼지 않는 습성이 있어 음식도 많이 먹고, 무엇이든 헤프게 쓴다.
셋째, 쌀이나 숯을 훔치거나 물건 사는 심부름을 하면서 주인몰래 돈을 빼돌리는 게 다반사다.
넷째, 주인집 내정을 염탐해 뒀다가 밖에 나가서 나쁜 소문을 퍼뜨려 체면을 손상시키거나 심하면 큰 손해를 입히기도 한다. (-212-)
3.1 운동 이후 불같이 번진'실력양성운동'에 감화를 받은 그의 부모는 어려운 형편에도 그를 가르치는데에 온 정성을 기울였다. 그는 뒤늦게 보통학교에 입학해 열여덟 살에 고등보통하교를 졸업햇으나 몇 년 전부터 계속된 불황 탓에 취직자리를 구할 수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1929년에는 세계 대공황이 조선에까지 밀어닥쳤다. (-221-)
1997년 외환위기가 닥쳤을 때 그는 이미 정년을 앞둔 나이엿다. 명예로운 퇴직을 선택한 그는, 국민연금과 의료보험의 덕을 보며 큰 불편 없이 살 수 있었다. 그는 개인적으로 '세계 최빈국 어린이'에서 OECD 국가의 노인'으로 성장했고,기대 수명도 부모 세대보다 두 배 가까이 늘었다. 평생을 '팽창하는 세계'에서 살아온 그는, '세계는 넓고 할일은 많다'던 모 재벌 총수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223-)
일제강점기 한국인들에게 '애국'은 두개의 상반된 의미로 분열됐다. 하나는 군주와 분리된 동포애, 민족애였다. 나라를 잃은 상태였기 때문에, 이 마음을 '애국심'이리고 부르기는 어려웠으나, 그래도 나라를 되찾으려는 의지를 애국심이란 말로 표현하곤 했다.물론 이런 마음을 배양하기 위한 체계적인 교육과 훈련은 불가능했다. (-240-)
역사학자 전우용의 저서 『망월폐견』에 이어서 『역사의 시선』을 읽는다.이 책은 100년 남짓 대한민국의 역사를 통섭하고 있었다. 임진왜란 이후 조선이 걸어온 역사,일제강점기를 지나,일본의 메이지 유신 이후, 제국주의 일본이 추구하였던 야망에 대해서, 대한제국은 나라를 잃고,1945년 광복 해방 이후, 곧바로 1950년 6.25 동란이 발발하기까지,우리의 고통스러운 역사의 순간을 집고 있었다.
21세기 지금 우리는 여전히 좌우 갈등,이념 갈등,지역 갈등, 세대 간의 갈등이 존재하고 있다.갈등은 분열, 혐오, 분노와 고토으로 표현된다. 1948년 당시 제헌국회가 열릴 때,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를 정하기까지 진통이 있었다.초대 대통령 이승만이 추구하였던 정치적 계산과 국민이 요구하였던 나라는 매우 이질적이었고 , 평행선이었다. 특히 대한민국 특유의 빨갱이 라는 단어에는 친일파와 빨갱이로 주홍글씨를 쓰면서, 서로 마녀사냥 뿐만 아니라,. 혐오와 분노가 잠재되어 있다.
이 책에는 주갑이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서양의 시선으로는 100년이 기준이다. 하지만, 동양의 기준은 60년이다. 조선시대를 지배하였던 시간적 개념은 주갑이었으며, 1592년 시작했던 임진왜란을 들어서,주갑이라는 단어가 시대에 따라서,어떻게 바뀌었고, 사람들의 기억 속에 서서히 사라지고 있는지 확인시켜주고 있었다.2012년은 임진왜란이 시작된지 420년, 즉, 7주갑에 해당한다.
1910년생 이 살아온 삶은 무지했고, 가난하고,배고픈 삶이었다. 책에서는 1910년생이며, 고등보통하교를 겨우 나와서, 세상 풍상을 온몸으로 다 느끼며 , 겨우 생존하였던, 글을 배운 사람을 소개하고 있다, 그 사람이 살아온 인생,그의 아들과 손자, 증손자 뿐만 아니라 ,고손자가 살아온 삶은 너무나도 차이가 난다. 배고픈 최빈국의 신세를 면치 못했던 우리가, 잘살아보겠다는 의지로 지금까지 걸어온 인생을 이해하고,공감하는 것은 여전히 어렵다. 100년의 시간 만큼이나 경험의 차이는 넘어서기 힘들다. 바로 이 부분에 대해서, 이 책에서는, 역사의 시선으로 인간의 시선으로, 삶과 시간, 각각의 세대의 시선으로 확인하고 있으며,한국인의 의식,역사관, 세계관은 어떻게 만들어졌고,그것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확인해 볼 수 있다.